<?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연안부두</title>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link> 
		<dc:language>ko</dc:language>
		<item>
			<title>때와 장소를 구별할줄만 알아도</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21/2bf82cecf1d3415aa961c7a487ac424423594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요즘 시외곽에 집을 짖고 텃밭을 일구며 사는 귀촌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회색도시에 지친 현대인들의 로망이 전원주택이라고 했던가? 나를 비롯해 경험이 전무한 도시인들이 시골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다.&nbsp;</b></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해도 해도 끝이없는 시골 일에 진저리를 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시골 생활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라 해도 그런대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곳이고 흙속에 묻혀 사는 생활이 고독감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도시 생활보다 더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귀촌생활 시작은 마음들뜬 기분이라 처음 1년은 정말 열중이다. 복잡한 도심생활에 지쳐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시골에 터잡고 집지어 아기 자기 텃밭도 가꾸며 마음과 몸을 쉬어보려는 맘 누구나 같은 생각일 것이지만 주변에 정착하려 안간힘을 쏟는 사람들의 귀촌생활을 들여다 보면 꿈을 이룬후 1~2년동안은 정말 열심이지만 점차 로망이 사라지는 걸 볼 수 있다.</b></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조경도 잔디도, 이것 저것 가꾸는 재미도 느끼고 하지만 1년차를 넘겨 2년차가 되면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혼선이 생기면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꾸준한 소일거리 등 시골에서의 지속성 있는 소일거리를 만들지 못함과 본인외 가족 전체가 즐기고 재미를 느낄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꼭 필요하다는 걸 느끼보곤 한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귀농 귀촌해서 제2의 삶을 살겠다는 야무진 포부와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를 일단은 환영한다. 귀농 귀촌해서 잘 살겠다는 그 희망과 의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림같은 집을 초원 위에 짓고... 유행가사 같은 전원생활을 꿈꾸는 것도 환영한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과연 촌(농촌, 산천)에서 농사 지어 돈을 벌어서 그림같은 집 즉 전원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느냐의 확률을 따지면?&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 수밖에 없다. 귀농한 뒤의 전원생활이란 개념이 동일시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귀농은 말 그래도 농사 지어서 돈을 버는 거다.&nbsp;</b><b>전원생활은 돈이 충분해야만 가능한 생활이다. 즉 농사 짓지 않아도 전원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촌구석으로 들어 가 돈을 벌겠다. 더 나아가 그림같은 집 안에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야무진 희망과 꿈은 그 누구도 꿀 수 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그런데 실현가능성은? 내 대답을 글쎄다. 나는 귀농과 귀촌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닫는 데는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1~2천에 불과했던 귀농·귀촌 가구가 2010년대 들어서 빠르게 늘어나 2020년에는 44,586가구(세대원 80,855명)로 확대됐다. 그만큼 땅을 딛고 살고 싶고, 도시생활에 지치고,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싶은, 시골 생활을 통해 안빈낙도ㆍ힐링의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22/76b8a90b896273dc70ed0371c0c5a9dd0001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특히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이 인생 2모작을 위해 귀농ㆍ귀촌을 하는 경우가 많다.귀농 귀촌인의 가파른 증가 원인은 세대별·지역별로 조금 다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50대 이상 장년층의 경우는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목적이 강한 반면, 40대 이하 젊은 층은 대부분 교육비나 주거비 등을 절감하고 도시의 일자리 부족, 실직불안에서 벗어나려는 경제적 이유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특히 50대 이후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귀농ㆍ귀촌을 시작한 이들은 육체적 힘이 필요한 '중노동'인 농삿일에 적응하기가 어려워 억대 농부의 꿈은 이루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농촌은 자녀 교육을 비롯해 문화ㆍ상업ㆍ종교ㆍ의료 등 생활편의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문 밖에 나가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우리 집 바로 곁에 양로당이 있지만 나는 한번도 기웃거리질 않았다. 중늙은이에 불과한 내가 갈만한 곳이 못되며 할머니들이 장악(?)하고 있어 금남의 집이 된지 오래다. 물론 꼭 양로당에 가겠다면 시비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을 똥친 막대기 취급을 하니 아예 얼씬거리질 않는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발냄세나지, 아무데서나 방귀 뿡뿡뀌니 좋아할리 만무하다.&nbsp;</b><b>그 놈의 방귀만 안꿔도 이런 찬밥 신세는 안당할텐 데, 나일 먹으면 괄약근(括約筋), 좀 유식하게 말하면 오무림살이 제대로 작동이 안되어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생리작용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언젠가 여자는 방귀를 안뀌냐는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걸 본 적이 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보통 건강한 사람의 경우 평균적으로는 어른은 보통 하루에 합계 0.5~1.5 리터의 방귀를 5번에서 20번에 걸쳐 뿜어낸다. 방귀를 없앨 수는 없나? 내 경험으로 볼 때 그런 방법은 없다. 나오는 게 정상이다. 나오는 방귀를 참는 것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안 좋다. 본인이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방귀가 안 나오는 경우는 없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다만 결장암, 직장암 등으로 장이 완전히 막히는 경우 안 나올 수 있지만 그 정도로 암이 진행됐다면 심각한 복통 등이 발생해 당장 응급실로 실려 갈 것이기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루 스무번은 방귀를 뀐다고 보면 틀림없다. 문제는 때와 장소를 안가리는 것이 문제일뿐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fe2419"><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22/fc4b808a124d1beae3bd42bd56373fd200023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nbsp; &nbsp;때와 장소!</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도 이 말을 수없이 사용해 왔고 가능하면 이 말을 신봉까지는 아니더라도 가급적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가릴줄 모르면 민폐가 된다. 가장 흔한 말이지만 때와 장소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상황 판단이 안되는 사람일 수록 때와 장소를 구분할줄 모르고 천방지축이 되고 만다. 나도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기에 가능하면 말을 아끼고 말수를 줄이며 살고 있다. 조금 심한편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일체를 함구하고 살다보니 병이 생길 정도이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다음주에 젊은 후배를 만나기로 했다. 교회가 부채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단 소린 들었지만 사모님은 진즉 알바를 하고 있었지만 근래엔 목사님 자신도 일용잡부로 노가다를 하고 있단 말에 마음이 아팠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쩌다가 교회가 극과 극으로 치닫는가. 정식 철학박사 학위를 가진 교단 인재인데 노가다가 왠 말인가?</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작은 교회의 실상이 안알려져서 그렇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아예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몸서리치는 이 땅의 젊은 사역자들을 이대로 방관하고 있을 때인가? 지금이 교인들 눈에 잘 안띄는 필리핀 베트남에 가서 골프를 칠 때인가? 젊은 사역자들을 공사장으로 내몰지 말았으면 좋겠다.&nbsp;</b><b>몇일동안 노가다를 다녀보면 입에서 거품이 나올 지경이다. 물론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노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젊은 목회자를 노동 현장으로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심으로 목회만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기도해 주어야겠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어제 비가 한차례 내리더니 거의 영하권으로 급격히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앵두나무와 모과나무 석류와 보리수를 심고 양파 묘도 500개 이상을 심어야 하기에 오늘은 두문불출하기로 했다. 조금있으면 한시도 떨어져선 살 수 없다는 듯 소장이 날 찾겠지만 연락이 오기전 오전중에 이 일을 마치려 작정했다. 불과 20kg에 불과한 거름을 나르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십여미터에 불과한데도 다리가 훌덜거릴 정도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예전같았으면 15kg의 군장을 메고 10km를 한시간만에 돌파했고 100km 행군에도 낙오된 적이 없었는데 이젠 뒷뜰까지의 거리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어 버렸다. 오늘중으로 텃밭일을 마쳐야 내일부터 신축현장으로 출근하여 휀스를 치고 주변 정리를 마칠 수가 있다. 이미 탈곡을 끝낸 힁한 논이 시야에 들어 온다. 가을은 어느새 내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nbsp;</b></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br></div></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7</guid>
			<dc:date>Thu, 22 Oct 2026 00:25:0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死去龍仁)?</title>
			<description><![CDATA[<b><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20/d84f19782b7ecfc891ad36d0889155da2338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스킨쉽에 익숙하지 못하다. 누가 내 몸을 만지면 병적으로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다. 오랫만에 만난 동창생과 악수를 나누거나 교회에 가서 목사님이 손을 잡으려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끼고 현역시절 여성 교인들과 악수하는 건 철저히 금기시하던 버릇이었다.</font></b><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고속버스를 탈 때에도 둘 하나 배치라면 반드시 홀로 앉는 의자를 선택해야 하고 싱글 좌석이 없으면 다음차를 기다리기 일수였고 옆사람과 수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눈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이런 성격으로 70평생을 살았다는게, 그리고 목회를 해왔다는게 믿어지지 않지만 아주 부득이한 일이 아니라면 아예 교류를 하지 않는 걸 불문률처럼 여기며 살아 온 것 같다.&nbsp; &nbsp;</font></b><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font color="#000000"><b>나는 대화중에 제스처가 큰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말하고 싶지 않은데 호들갑을 떨면 의도를 알긴 하지만 이상하게 알레지 반응을 일으킨다.&nbsp;</b><b>그래서인지 왠만큼 친해지지 않으면 농담도 안한다. 눈치를 너무 살피기에 피곤한 삶을 살게되지만 그래도 아무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눈치 코치가 없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너무 눈치를 보는 것도 문제라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한평생을 살아왔다.&nbsp;</b></font><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우리 주변에는 어디에나 꼭 한사람씩은 눈치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다. 눈치가 없어도 어느 정도지. 어느정도의 눈치없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정도가 심한 때에는 정말 주변사람들의 속은 만두속처럼 터진다. 만두가 터져 속이 쏟아질 때의 그 난감함때문에 만두를 기피하는 사람이 많다.&nbsp;&nbsp;&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눈치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의 변화를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주변의 분위기나 공기의 흐름을 잘 읽지 못하고 본인의 의견을 계속 말한다던지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등의 특징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몰염치한 면에 사람들은 식상하기도 한다.</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호의나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상대에게 다가갔지만, 상대의 개인 공간을 침범해버려 의도한 바와는 달리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경우도 많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람은 눈치 없는 사람이라 불리며 회사나 학교 내에서 소외당하는데, 이 거리감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도 왕따를 당할 수 있다.</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눈치없는 사람은 자기 기분대로 행동한다. 상대방 기분은 어떨지 생각하기 전에, 자기 기분대로 행동을 하는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정말 심각하면 본인은 안 그러더라도 일반사람의 경우엔 심각한 척이라도 해주는데 눈치없는 사람은 ‘척’ 해주는 것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분위기 파악 못한단 말을 듣는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그러나 눈치없는 사람중엔 착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다. 아예 기질적으로 악한 사람이라면 끊어 버리면 그만인 데, 눈치가 잼병이라 그렇지 심성은 착하기에 고민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눈치를 안보는 사람은 대게가 남의 얘기는 안듣는다. 자기 하고싶은 말만한다. 상대방 기분을 별로 생각 안하기 때문에 자기 하고싶은 말은 다해 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20/ae52af3c54b561c51c699dc9ec2dab92233913.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영국 런던 소아건강센터의 카트리나 굿(C.D. Cood) 박사 연구팀은 타인의 표정을 읽는 작용이 뇌의 어느 부위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터너증후군 환자 64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터너증후군(Turner’s syndrome, 성염색체인 X염색체 부족으로 발생하는 유전 질환) 환자들은 타인의 표정이나 감정을 잘 읽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MRI 장치를 사용해 환자들의 뇌를 관찰하자 터너증후군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전두안와 영역과 편도체가 눈에 띄게 비대했다. 카트리나 박사의 연구팀은 왜 터너증후군 환자들의 전두안와 영역과 편도체가 큰지, 그리고 기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뇌 속 어느 부위가 타인의 표정을 읽는 기능을 수행하는지 분명하게 밝혀냈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전두안와 영역은 눈이 움푹 들어간 곳 뒤쪽에 있는 대뇌피질이다. 뇌 깊숙한 곳에 있으며 좋고 싫음, 공포와 즐거움, 편안한 감정 등을 끌어낸다. 결론은 타인의 표정을 잘 읽는 사람과 못 읽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며 일종의 정신 질환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말하자면 정신적인 결함이 생겨 눈치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나는 최소한 민패를 끼치는 일만큼은 하지 않으려 한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안타깝지만, 눈치는 노력으로 키우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표정을 파악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인데 관련된 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에 눈치를 살피지 못한다. 그렇기에 만약 눈치가 없는 사람 때문에 화날 일이 있다면 ‘내 속도 몰라주고’라며 화내기 전에 자신의 기분을 한번 자세히 설명해 보는 것이 어떨까? 설명하는 동안 화도 가라앉을 것이고, 상대도 당신의 마음을 더욱 이해해줄 것이다.&nbsp;</font></b></div><h1 style="padding: 11px 0px 1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border-bottom: 1px dotted rgb(223, 223, 223);"><font size="3" color="#000000">나는 귀촌 이후 몇번의 이사를 하면서 가장 우선시하는 건 주변 환경이다. 전원주택을 지을 때, 고압선 태양광 축사 묘지 등이 있는지를 따지지만 그 중에 이웃에 목소리 큰 놈이 살고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따진다. 시골에 정착하려면 아웃사이더(outsider)가 되는게 신상에 유익하다는 결론이 생겼기 때문이다.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살아왔지만 향후에도 그럴 생각이다.&nbsp;</font><span style="font-size: 16px;">일단 시골에 정착하려면 아웃사이더(outsider)가 되는게 신상에 유일하다는, 체험에서 나온 고육지책의 산물이다. 아웃사이더로 사는게 정말 편하다.</span></h1><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내가 지관을 보는 사람도 아니고 풍수지리에 능통한 사람도 아닌데 가끔 좋은 부지를 구해 달라는&nbsp; 부탁을 받는다. 아마도 본의아니게 여러번 집을 짓고 그간에 성과가 제법 있었을 거라 예단하고 당부하는 것이리라. "좌청룡 우백호 북현무 남주작(左靑龍 右白虎 北玄武 南朱雀)" 등은 믿지도 않지만 알지도 못한다. 나는 집터를 고를 때 바로 이웃에 말많은 할매가 있는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세상엔 세부류의 인간이 있는데, 남자와 여자와 할매이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살아서는 좋은 환경을 갖춘 집자리에서 살기를 원하고, 죽어서는 땅의 기운을 얻어 영원히 살기를 원했던 사람들의 땅에 대한 사고가 논리화된 것이 풍수지리설인데 음냉하고 습한 곳은 좋지 못한 땅이며, 밝고 따뜻한 곳이 좋은 땅, 곧 명당이다. 꼭 풍수지리설이 아니더라도 주변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능력을 지녔음을 증명해주는 문명의 출현도 인간이 한 곳에 터를 닦고서야 비로소 가능했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터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기반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터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가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핵(核)이다. 농촌여자는 농촌여자만큼의 삶이 있고, 공장에 다니는 여자는 바로 그만큼의 삶이 있고, 백화점에 다니는 여자는 또 그만큼의 삶이 있다. 그것을 통틀어, 전체의 연관 속에서의 자기 거처를 스스로 정하고, 그 분수에서의 자기 자세를 설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의 살아가는 터다.</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20/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23401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아직 완전하게 결정된 건 아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얼마나 오래 살지를 고민하고 있다. 시내와 가깝고 리모델링하면 괜찮은 집이긴 하지만 일년 정도 적응해 보려 일부러 월세로 일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면서도 유실수를 엄청나게 심는 건 내가 안따먹어도 누군가에겐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 였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입지 조건은 그만해도 좋은 곳이다. 먼저는 좌우 옆집이 비어 있어 간섭을 받지 않아서 좋고, 울안에 텃밭이 있고, 전통가옥을 개조하였고, 시내에서 10분 거리여서 생활에 불편이 없다는 점이다. 대청 마루에 앉아 전망을 보노라면 앞에 아파트 숲이 있어 경관이 좋고 무릉도원은 아니지만 철따라 꽃이피고 벌과 나비가 날고 30여 가지의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곳이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한마디로 철학적 사유가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이 땅에 영원한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死去龍仁)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다 지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진천에도 무덤이 즐비하고 용인은 죽은 자를 묻을 땅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다.</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어제에 이어 오늘도 양파를 심으려 땅을 파고 있다. 저장용 양파와 자색 양파를 심으려는데, 일단 대야장에 가서 모종을 구입하고 내친김에 석류와 앵두 나무를 구해 올 생각이다. 어제 비가 내린 탓인지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땅을 파는데 한결 수월하다. 오일장을 다녀와&nbsp;</font></b><b><font color="#000000">비닐 멀칭을 할</font></b><b><font color="#000000">&nbsp;생각이다. 많은 량이 필요한게 아니기에 지인이 비닐을 준다고 하지만 한해 두해 사용하고 말 것이 아니기에 구입할 생각이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nbsp;</font></b></div></div><div><b><font color="#000000"><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b></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6</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6</guid>
			<dc:date>Tue, 20 Oct 2026 23:42:0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별난농부의 변명</title>
			<description><![CDATA[<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9/3f0e883bd09a02dc0449383118e4fd9823521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가을비가 또 내릴 거란다. 주말에 많은 비가 내렸는데 우산 말릴 틈이 없이 오늘 오후부터 다시 비가 내릴 거며 이 비가 그치면 드디어 영하의 날씨를 보일 거라는데 이제 겨울이 성큼 다가올 모양이다.</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들녁엔 한창 벼베기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벼농사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밭농사엔 그나마 도움이 되어줄 비소식이기에 어설픈 농부이긴 하지만 이번주에 양파 파종을 하기 위해 밭갈이를 서둘러 해야겠고 비닐 멀칭을 하려 작정했다.&nbsp;</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농사가 생업이 아니고 농사를 지어 이익을 내겠다는 발상은 대단위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꿈꿀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철따라 밭을 일군다는 건 나에게 한번도 걸러 본적이 없는 일상이었고 생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항상 나를 설레이게 하는 일이다.</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는 언젠가도 밝혔지만 사이비 농부이고 내 딸들은 시를 쓰는 농부라고 좋게 미화시켜 불러주고 있지만 수확하는 건 잼병이지만 심는 것만은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받지 않을 정도로 수준을 올려 놓았다. 그것도 트렉터나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오직 호미 한자루로 생명을 잉태시킨다는 점에서 '별난 농부'라는 이름이 어울릴 거라는 생각을 가진다.&nbsp;</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한번도 내 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지만 그래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묘목이나 씨앗은 시험삼아서라도 공부하며 재배를 한다. 아마도 병적으로 빈 텃밭은 내 자존심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무조건 심는데 어제만 해도 '코끼리 마늘'을 얻어와 심을 정도였다.</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오늘 다시 비가 내릴 거란 예보를 듣고 </b><b>익산 북부시장에 가서 사과나무 천도 복숭아 나무 그리고 자두와 앵두 구지뽕 나무를 사다가 심었다. 석류와 무화과 나무는 다음 장에 가져오기로 했고, 오랫동안 기다릴 인내심이 부족하기에 몇년을 키운 성목을 구입하여 내년에 당장 과일을 얻으려 욕심을 부렸다. 감나무 대추나무와 어울려 텃밭이 제법 과실나무로 가득이다.&nbsp;</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아직 디자인할 단계는 아니지만 집의 전면엔 조경수로 뒷 뜰안은 유실수로 채우려 작정했는데 몇년전만 해도 텃밭 500여평도 거뜬했는데 이젠 100평 정도만 작물을 심고 대신 유실수로 채우려는 건 게을러진 탓도 있지만 내 힘이 그 전만 못하다는 체념에서 나온 자구적 선택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시늉은 내야겠다는 생각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nbsp;</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그러기에 날 '별난농부'라고 불러 주는 것에 거부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이 이름에 오히려 만족한다. 배추와 무우가 잘 자라고 있지만 현장 소장이 토끼와 토종닭을 키우니 소요하는덴 문제가 없다. 사람이 우선이지만 소비처가 마련되어 있으니 김장을 하지 않을 거지만 염려할게 전혀 없고 별난 농부란 소릴 듣겠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내 친구의 아내는 일이 잘 안풀린다고 해서 이름을 바꾼적이 있었다. 발음하기가 정말 쌍스럽고 까다롭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을 개명한다는 게 보통 결심은 아니었을텐데, 개명후 정말 잘풀리고 있지는 현실을 보면 의아하지만 용한 무당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좋아라 한다. 서쪽으로 거처를 옮기면 안되고 자녀문제나 집안 대소사도 보살에게 코치를 받고 있다. 열심히 새벽기도를 나가지만 간접적으로 '보살'에게 장래를 알고 싶어 기웃거린다.</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9/2c46655d7830268a67178ed831d86ac823543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달라지는게 아니다. 무늬만 달라진다고 본질이 변하는게 아니건만 사람들은 현상을 바꾸려 한다. 재작년 군산시 '서수면'을 '항쟁면'으로 바꾼다고 주민 투표를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름에 자존심이 생기고 긍지가 생기는가. 이름을 바꾼다고 운명이 달라진다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바꾸려 할 것이다.</b><br></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비오고 난 뒤 산에 구름이 몰리는 풍경이 너무 좋아 한동안 자리에 머물며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풍경들을 연신 카메라에 담을 때 소나무 잎사귀 몇 점에 묻은 빗물방울이 초롱거리며 달려 바둥거리는 모습이 너무 정겹다. </b><b>묻어오는 솔향기와 억새와 갈대가 흔들리는 시골길의 풍경. 운무가 몰리는 산의 전경은 또 다른 묘미가 있어 보인다. 마음 속에 이는 바람마저 잠재울 듯한 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새벽공기를 한껏 호흡해 본다.</b></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p><div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친구녀석이 심심한지 오늘은 뭘 하느냐고 묻다가 일하는게 재미있느냐고 묻는다. 제일 짜증나는 말이 바로 이 소리이다.농촌 일이 재미있을리가 만무하지만 사생결단하고 하는 것으로 비쳐진 모양이다. 어쩔 수없이, 할 수없어 하고 있을뿐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는 데,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b></div><div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는 몸은 고달프고 생활은 척박하지만 행복지수만큼은 그렇게 낮다고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무료(<span class="phonetic"><daum:word class="over" id="hhw000005777">無</daum:word><daum:word id="hhw000007955">聊)</daum:word></span><span class="bracket"></span>하기는 하다. 외로운 것도 사실이고, 지난날에 대한 향수에 젖을 때는 몹시 아쉬운게 많다. 그렇다고 모든걸 돌려 놓아 보려고 시도해 본 적은 없다. 주변에 은퇴하고도 개척을 꿈꾸는 분이 계시지만 난 그 자체(<span class="phonetic"><daum:word class="over" id="hhw000008197">自</daum:word><daum:word id="hhw000011553">體)</daum:word></span>를 이해하기 힘들다.&nbsp;&nbsp;&nbsp;</b></div><div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이 낯설고 외롭고 지루해 보이는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삶을 꿈꾸며 느긋한 마음으로 찾아낸 나만의 시골 생활 적응 비법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먹을 것은 물론이고 반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며, 계속 몸을 부지런히 놀려야 하는 노동집약적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느린’ 일상 이야기를 적고있는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b></div><div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9/84ff806b9d76eccd24878a5be8d9cda82355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때가 되면 일하고, 때가 되면 노는' 그런 삶.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삶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도, 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 무엇을 해도 기꺼이 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 그간 잊고 있었던 ‘자연스러운’ 삶을 살면서 이왕이면 기쁘게 하려고 마음먹었었다.</b></div><div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도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내가 가족과 친구, 일터 등 모든 것을 밀어놓고 다른 곳에서 살겠다는 게 만만한 일이었겠는가. 그럼에도 난 한 가지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난 살고 싶어. 다시 살고 싶어. 몸도 마음도 다 지쳐버린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마치 이곳에서 사는 것인 양 난 다른 어떤 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b></div><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class="more_contents" oldblock="inline" style="display: inline;"><b><br></b></span></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class="more_contents" oldblock="inline" style="display: inline;"><b>“뭐 하고 살 거야?” “어떻게 살래?” “무섭지 않겠어?” 요약하면 이렇게 딱 세 가지. 어느 정도 집을 짓고 들어앉으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삶의 자리를 옮긴다는 일. 그것도 사는 공간을 도시에서 시골로 옮겼다는 것과 한술 더 떠 현대적 주거 공간을 떠나 열린 공간으로 들어왔다는 데 많은 사람들은 ‘용기’라는 단어를 들먹였다.</b></span></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class="more_contents" oldblock="inline" style="display: inline;"><b><br></b></span></p><p style="font-size: medium; 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class="more_contents" oldblock="inline" style="display: inline;"><b>“용기 있다. 대단하다.” 처음엔 그 말을 들었을 때 조금은 그런 줄 알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나 용기가 있나 봐. 하지만 보는 이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그 말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일이었을까? 아마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아주 신중히 결정을 내려서 이곳에 왔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용기’라는 단어를 들어도 마땅할지 모르겠다.</b></span></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5</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5</guid>
			<dc:date>Mon, 19 Oct 2026 23:56:5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주저리 주저리</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9/24a81a10b447ba9d1868b91a2c784f4a00490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며칠전 인천에서 륭기를 들고 난동을 부려 십여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이런 참사는 이미 일상이 된지 오래이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세상이 점점 거칠어지고 사나워지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가 점점 너무 음란해지고 관능적이 되고 사나워 지고 있다. 태풍보다 더 거칠어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안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이 정말 사나워졌다.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고 불안하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를 관류(貫流)하는 핵심코드는 사실 분노의 정서가 아닐까?&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헝그리(hungry·배고픈) 사회’였던 우리는 어느덧 ‘앵그리(angry·화난) 사회’로 바뀐 것이 더욱 문제이다. 분노의 정서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파괴적인 사회 에너지인데, 지금 이 땅에선 만인이 만인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그 부정적 에너지가 뭉쳐 다니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 폭발할 경우 국가 실패, 즉 한국 사회의 몰락 내지 해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내가 귀촌을 권하고 강조하는 이유는 살벌한 도시에서 살면 사람들이 사나워지기 때문이다. 사유(思惟)의 공간을 잃은 현대인들은 너무 조급해졌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살아 간다. 공생이란 말은 사치스런 말이 된지 오래되었다.&nbsp;</b></span></div><div><b><br></b></div><div><b>성서를 읽다보면 골란고원의 끝자락에 있는 거라사의 광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치광이야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이지만 이 사람을 묘사하는 성서의 기록이 특이하다. 그들이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도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기도’(마가복음 5장5절) 했다고 한다. 그리스어 성서에는 ‘En krazon kai katakopton heauton lithois’라고 돼 있다.&nbsp;</b></div><div><b><br></b></div><div><b>영어로는 ‘through all day and night among the tombs and in the mountains he was crying and gashing himself to stones’이다. 먼저 ‘through all day and night’이다. 낮과 밤을 통틀어 그들은 내내 사로잡혀 있었다. 그게 고통의 시간이다. 우리가 고통에 빠질 때도 그렇다. 낮도 어둠이 되고, 밤도 어둠이 된다. 고통은 밤낮으로 계속된다. 그러니 얼마나 괴로웠을까?&nbsp;</b></div><div><b><br></b></div><div><b>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울부짖으며(crying), 자신의 몸을 돌에다 내려쳤을까(gashing himself to stones).어찌 보면 우리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도 종종 ‘무덤과 산(among the tombs and in the mountains )’속에 갇힌다. 그렇게 어둠 속에 갇힌다. 그 속에서 소리쳐 울면서 내 몸을 돌에다 내려친다.&nbsp;</b></div><div><b><br></b></div><div><b>꼭 거라사 광인처럼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자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누구라도&nbsp;</b><b>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게 된다. 그래서 무덤가에서 소리치며 돌로 제몸을 치는 현대인은 예수를 만나야 한다. 문제는 화려한 도시의 레온사인의 십자가가 걸린 곳에서 과연 만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집착이 강하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되새김질하는 버릇이 생긴다.&nbsp;</b></div><div><b><br></b></div><div><b>잘 알려진 문제지만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란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다. 마음 이론이 발달하면 다른 사람의 심적 변화를 유추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능력은 전전두엽의 넓은 부위에서 일어나는 활동에서 비롯되며 세로토닌 신경이 활성화돼 있지 않으면 사람의 실수에 너그럽지 못하고 노발대발 화를 내거나 과거에 저지른 실수까지 들먹이며 비난하기 쉽다.&nbsp;</b></div><div><b><br></b></div><div><b>그러면 대인관계는 갈수록 틀어지고 아랫사람을 이끌거나 키울 수 없다. 통계청 발표를 보니 지난 1년 동안 방화사건이 2,537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고의적으로 불 지르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인 데, 사람들의 마음이 악해지고 강퍅해지고 허망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묻지마 살인 사건이 많고, 화풀이성 범죄가 많다. 대한민국은 소송천국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는 데, 우리나라의 민사소송은 일본의 6배, 형사 고소는 155배라고 한다.&nbsp;&nbsp;</b></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9/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00504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듯이 낙타는 화가 났을 때 위액이 약간 섞인 침을 뱉는데, 이 냄새가 정말 지독하다고 한다. 그리고 낙타는 의외로 성깔이 더러워서 주기적으로 화를 풀어줘야 한다. 일단 낙타의 스트레스가 일정 이상이 됐다 싶으면 분풀이 대상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찌라도 화를 풀어주어야 하는데, 사회적 제도적으론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이다.</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그렇다면 종교적 신앙적으로 해결책은 있기나 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근래 느끼는 것은 교회의 위상이 그 전만 못하다는 아쉬움을 느낀지 오래이다. 당장 거라사의 광인들이 날뛰는게 교회의 책임은 아니더라도 이대로 수수방관하는 건 교회의 존재 이유를 따져야 할 문제가 된다. 사회가 이렇게 광난을 보일 때 복음의 역할은 무엇인가?&nbsp;&nbsp;</b></span></div><div><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b></div><div><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초기 기독교는 관용을 주장하는 종교였다. 기원후 1세기, 로마제국 내 소수 종교였던 기독교는 무진장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쟁취한 뒤 일탈의 길을 걷는다. 로마의 전통 종교를 거부하고 이교도들을 탄압한 것. 기독교인들은 종교 개혁 이후에도 신을 믿는 방식의 차이를 두고 피와 목숨을 내건 전쟁을 치렀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박해받던 종교가 박해하는 종교로, 관용을 주장하던 자들이 불관용의 대명사가 된 셈이다. 기독교는 가장 관용적인 종교지만 기독교인들은 가장 관용적이지 않은 사람들로 변해 버렸다. 낙타 근성이 작렬한게 현실이다. 기회를 엿보다 언젠가는 밟아 버려야겠다는 근성이 마음 한구석에 잠재된 상태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nbsp;</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북한 속담에 보면 &lt;고인물도 밟으면 솟구친다&gt;는 말이 있다. 사실 늘 큰 소리를 치고 파도를 내고 있는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말없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nbsp;</b><b>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놈은 '김안나면서 뜨거운 놈'이다. 펄펄 끓는 물이라면 대충은 알아차릴텐 데, 김이 안나니 끓는 물인지 식은 물인지를 분간 할 수 없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사람에게는 누구나에게나 낙타근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주인이 잠든 사이 목을 짖누르고 말겠다는 보복 심리가 작용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되로 받은걸 말로 값을거란 복수심이 작용하기도 한다.&nbsp;</b><b>주머니에 버스표 몇장이 전부였던 시절이 훨씬 더 인간적이었고 즐거웠던 시절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어영부영하다 한시절을 다 보내고 말았으니 어쩜 좋은가? 거라사( Gerasa)의 광인처럼 제 몸을 상하게 하는줄을 모르고 무덤가를 배회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어제 교회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식사를 한 기억이 있고 토요일 국수 반그릇쯤 먹은 기억은 있는데 그 외엔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기억이 없다. 책상위엔 유통기한이 약간 지난 뻥튀기나 간식거리가 있지만 어쩌다 입가심을 할뿐 먹는 것 자체를 중요한 일과에서 제외시켜 버린지 오래가 되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class="imgwrap" style="width: 412px;"><b>중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친구가 이른 아침 내 텃밭을 털어갔다. 며칠전 그의 아내에게 텃밭에 있는 아욱과 시금치를 수거해 가라고 요청했더니 부부가 이른 아침에 가을 아욱은 문잠그고 먹는다는 말을 남기고 초토화시켜 버렸다. 네가 기피하는 음식중에 하나가 시금치와 아욱이라 정말 아욱국이 맛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b></div><div><b><br></b></div><div><b>나는 친구에게 하루 삼식이 되지말고 일식이나 이식이 정도로 만족하라고 일러 주었다. 퇴직하고도 하루 세끼를 다 찾아 먹으려면 틀림없이 사달이 난다며 칠십이 넘으면 마누라 눈치를 보는게 상책이라고 삶의 지혜를 말해주는데도 낄낄거릴뿐 내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nbsp;&nbsp;</b></div><div><b><br></b></div><div><b>나일 먹어갈 수록 여자들의 상투적인 말을 들어보면, "늙어 밥굶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마누라 말 잘 들어야 해~"라고 한 마디씩 명언처럼 던진다. 그럼 그 말을 듣는 주위 모든 사람들은 '옳거니!' 하고 박장대소하며 함께 깔깔거린다. 부부 사이에도 이런 농담은 자연스럽게 오고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농담들을 주고받을 때 내 절친 한녀석은 '나는 끝까지 밥 세끼 다 차려 얻어 먹고 간식에 야식까지 얻어먹다 갈란다~'라고 마치 무슨 심통이라도 부리듯이 그런 고약한 다짐을 스스로 한다.&nbsp;</b></div><div><div><b><br></b></div><div><b>대단한 강심장이며 간댕이가 붓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담대(?)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그 자랑스런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남편의 밥은 항상 아랫묵 이블밑에 넣어 두었다가 한밤중에 귀가했어도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던 어머니 세대가 들으면 통탄할 노릇이지만 현실인즉, 삼시 새끼를 다 집밥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nbsp;</b></div><div><b><br></b></div><div><b>남자도 할 수만 있다면 부엌에 들어가는 걸 당연한 일로 받아 들이는게 좋다. 요즘 슈퍼에 가면 혼밥족의 천국이라 할만큼 다양한 식재료들이 많다. 한국인의 식탁에 빠질 수 없는 메뉴 중 하나인 국, 탕, 찌개는 1인 가구들에게는 남는 재료와 불편한 식재료 손질 때문에 부담이 되는 메뉴가 아닐 수 없지만, 아워홈이 선보이는 국, 탕, 찌개 가정간편식을 이용하면 손쉽게 데우기만 해도 요리사가 만든 듯한 맛을 선보일 수 있다.&nbsp;</b></div><div><b><br></b></div><div><b>그뿐아니다. 매 시즌 마다 삼계탕, 육개장, 사골곰탕, 감자탕, 해장국, 김치찌개 등 없는게 없다. 오히려 어설픈 요리사가 만든 것보다 월씬 맛도있고 영양가도 높다. 나도 달포전에 '동태알탕'을 끓여 먹었는 데, 돌아가신 어머니 솜씨를 방불했다. 그냥 '동태알탕’은 끓는 물에 제품을 그대로 넣고 5~6분간 데우거나, 냄비나 뚝배기에 직접 부어 강불로 4~5분간 끓이면, 직접 요리한 듯한&nbsp; 매운탕을 즐길 수 있다.&nbsp; &nbsp;</b></div><div><b><br></b></div><div><b>요즘은 여성에게 자유의 시간이 허용되는 것이 대세이다. 얼마전 TV를 보니 장경동목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설교하는 걸 보았다. 정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었는지는 나중에 천국에 가서 물어 볼 생각이고, 일단 내 생각은 아브라함보다 그의 아내 사라가 모든 남성의 로망이고 천사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b></div><div><b><br></b></div><div><b>사라가 아브라함을 만들었다고 본다. 첩질해도 그 꼴 다보고, 자기 목숨 부지하겠다고 불레셋 왕에게 보내었으며, 아무 관련이 없는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소잡아 대접하고,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가지 긁지 않는 걸 보면서 사라의 위대함에 감탄하게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중에 한가지만 걸려도 초전박살 났을 것이다.</b></div></div><b><div><b><br></b></div>난 혼밥족을 운명처럼 받아 들이기로 했다. 무슨 뱃짱으로 노후를 준비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자책감이 일단은 크고 '늙어서 잘 살기 위해서' 오늘의 현실을 운명처럼 받아 들이기로 했다.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린 탓인지 공기가 크린하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 깊어질 것 같다. 오전엔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오후엔 비피해가 없는지 현장을 둘러 볼 생각이다.&nbsp;</b></div><div><b><br></b></div><div><b>&nbsp;</b></div><div><b><br></b></div><div><br></div></div><b><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b><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b><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b><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4</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4</guid>
			<dc:date>Mon, 19 Oct 2026 00:58:47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비가 내리니 별것이 다 후회스럽다.</title>
			<description><![CDATA[<div><b><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8/73352a2dfe0ed32083ff9b4817ce06d804500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느닷없이 비가 오는 날이면 내 가슴은 서걱인다. 물론 날이 화창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감정이 지워져 버리지만 비오는 날이면 못내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나를 혼돈의 세계에 빠트려 버린다.</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b></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아침나절에 예배를 드리러 가기전에 이틀에 걸쳐 심었던 대봉시와 사과대추 나무를 관리하며 내년엔 따먹을 수 있겠지만 분양할 집에 심어주는 나무는 보기에 번뜻한 나무가 대부분이지만 내 울안에 심을 나무는 외형적인 것보다 얼마나 튼실한가를 따져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font></b></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예보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미리 각오는 하고 있지만 이내 추워질 거란 생각에 여름옷을 세탁기에 돌려 세탁후&nbsp;</font></b></span><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내년을 기약하며&nbsp;</font></b><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0000">장롱 깊숙히 집어 넣고 긴팔옷을 꺼내 놓았다. 하늘은 꽤나 비가 많이 내릴런지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피한다. 가을비엔 장인 구렛나루 밑에서도 피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오늘 내리는 비는 통념을 깨는 꽤나 많은 비가 내릴 거란다.&nbsp;</font></b></div><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갑짜기 몸에 한기가 들었다. 나는 비를 참 좋아 한다. 하기야 비건 눈이건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면 나는 도대체 가만히 있질 못하고 주인 맞으러 달려 나가는 강아지 마냥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nbsp;</font></b><b><font color="#000000">물론 갈만한 곳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만 방안에 갇혀 있는 것 자체가 구속당하는 기분이 들어서이다.&nbsp;</font></b></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span style="line-height: 1.5;"><br></span></font></b></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span style="line-height: 1.5;">시심(詩心)을 부르는 가을비가 오전내내 내리고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낙엽위에 구른다.</span><span style="line-height: 1.5;"> </span><span style="line-height: 1.5;">봄비는 새뜻하고 여름비는 장쾌하고 가을비는 차 한 잔을 부른다. 가을비는 '떠나보낸 사랑'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span><span style="line-height: 1.5;"> </span><span style="line-height: 1.5;">여름철 습한 비가 아닌 가을철</span><span style="line-height: 1.5;"> </span><span style="line-height: 1.5;">내리는 음산한 비는 이 비가 내리고 나면 추워질 날씨를 암시하는것 같다.&nbsp;</span></font></b></p><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font color="#000000"><br></font></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font color="#000000"><div>이 비가 그치고 나면 금방 겨울이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을비는 내복 한벌이라는 말이&nbsp;<br>있던가?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찬 대륙성고기압의 접근이 이뤄져서 추위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가을비가 내린 뒤에 갑작스런 추위가 시작하게 되면 춥기에 내복을 꺼내 입게 되고 그 추위의 강도가 워낙 강하게 느껴지기에 내복 한벌을 껴입어야 할 정도로 춥다는 것이고, 갈 수록 추워지는 것을 나타내는 말일게다.&nbsp;<br><br></div><div>제법 굵은 빗방울이 벌레먹어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낙엽위에 떨어질 때마다 나는 진한 커피 한 잔의 유혹에 빠진다. 커피향기는 여수(旅愁)보다도 짙다. 언젠가 커피는 오미(五味)를 품고있다고 예찬하는 글을 보았다. 그리움 설레임 쓸쓸함 애틋함 아늑함이 그것이다. 나도 커피하면 자다가도 깨는 매니아지만 아직 오미를 느끼는 수준은 아니다.&nbsp;</div><div><br></div><div><span style="font-size: medium;">비는 추억을 불러온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추억의 소리가 넘실거린다. 조팝꽃이 하얗게 피어나던 그 푸릇한 사월에도, 가느다란 줄기에 꽃이 무거워 사정없이 고개를 숙이는 수국의 계절에도, 무성했던 나뭇잎을 털어내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을에도, 그리고 죽음을 망불케하는 혹한의 계절에도 추억은 여전히 가슴 한켠에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size: medium;"><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 medium;"><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8/53777b08c32c6a90d15c1c590320af21045107.gif"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때로는 여백으로, 때로는 실루엣(silhouette)으로 남겨 놓는 일이 많아졌다. 아무리 몹쓸 인사라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그리움이나 후회로 남을 수 있기에 칼로 무우자르듯하지 않는다. 그냥 두고 보다보면 세월은 마치 한계령처럼 동서로 갈라놓는다. 동해로 흐를 물과 먼 서해까지 흘러가야할 추억으로 정리해 준다.</span></div><div><br></div><div>하루종일 내리는 비는 인적이 끊어진 사찰에 새색시처럼 내릴 것이다. 시들어 가는 나무잎에 떨어져 그나마 힘들게 심술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span style="line-height: 1.5;">그냥 내버려 둬도 이내 떨어질 운명인 데 왜 저리 제촉을 하는가. 여름내 고즈넉한 산사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을텐 데, 이제 그만 떠나라고 제촉한다. 가을은 가혹한 계절이다.</span></div><div><div><span style="font-size: medium;"><br></span></div><div><span style="font-size: medium;">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비를 손으로 받아 보기도 하고, 혀를 내밀어 비의 맛을 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비를 즐기며 한가로움을 즐겨본다.&nbsp;</span><b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51, 102);"><font color="#000000">한참을 그렇게 비를 맞다 걷다를 반복해 본다. 봄비가 아닌 가을비라 비에 젖은 식물들이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font></b><b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51, 102);"><font color="#000000">예전에 비가 내리면 빗속에서 발로 느끼던 흙의 감촉,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빗물의 알싸한 기운, 흐르던 빗물을 발로 가르며 걷던 그것들까지 그리워진다.&nbsp;</font></b></div><div><b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51, 102);"><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51, 102);"><font color="#000000">사람의 입맛은 연애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쳐다보기도 싫거나 혐오했던 음식도 어느 순간 먹을 만해진다. 심지어 마니아가 되기도 한다.&nbsp;</font></b><b style="font-size: medium; color: rgb(0, 51, 102);"><font color="#000000">내겐 호박죽이 그랬다. 엄마 꾸중에 못 이겨 마지못해 물컹하고 진한 호박 냄새가 났던 죽을 맛을 봐야 했다. 억지로 먹다 보니 언제부턴가 그 맛이 참 좋게 느껴졌다. 나도 호박죽을 ‘배운’ 것이다. 호박죽이 맛있는게 아니라 어머니가 그리운 것일게다.</font></b></div></div></font></b></span><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잘익은 맷돌 호박을 차에 실고 다닌지가 꽤나 오래되었다. 동네 어르신이 애써 따준 것이지만 내가 농사지은 것도 지천에 널려있고, 이웃집에도 거의 내 것이나 다름없는 것들이 많으니 소중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한번 호박죽을 끓여 보려고 보관중이다. 추억을 끄집어 내어 보기 위해서이다.&nbsp;</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비는 사색이다. 비는 세상과 나 사이에 물의 장막을 드리워 모든 소음을 차단해준다. 비 오는 날이면 창밖 비의 커튼을 보며 평면적이지 않았던 내 삶을 더듬어 본다. 시골에서 유년을 보냈다. 땅강아지처럼 흙속에서 뛰놀며 야생적으로 자랐다.&nbsp;</font></b><b><font color="#000000">한국전쟁이 막 끝나면서 태어난 세대이기에 가난의 대물림이 여전했고 폭탄을 장난감처럼 매만지던 어린 시절이었다.&nbsp;</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이런 시절에 호박 한덩이만 있으면 전가족이 포식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물컹하다는 느낌이 싫었고, 굶으면서도 까다로운 입맛때문에 눈총을 받아야했다.&nbsp;</font></b><b><font color="#000000">국에서 대파를 건져내다 혼나기 일수였고, 복숭아 고등어를 안먹어 본지 50년은 되었을게다. 알레지때문이긴 했지만 그냥 이유없이 싫었다. 그러나 이젠 약간씩이나마 먹는다. 아니, 추억을 씹고 있는지 모른다.&nbsp;&nbsp;</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비가 내리면서 가을이 안녕을 고한다. 가로수가 점점 앙상해진다. 나무에게 가을은 자기와 작별하는 시절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봄날의 연둣빛 유년에서 여름날의 초록빛 청춘까지 무성했던 푸른 잎들은 일제히 노을빛으로 물들어 자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하나둘 나무를 떠난다.&nbsp;</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어떤 나뭇잎들은 부모 마음 아플까봐 부러 환하게 웃으며 입영하는 아들처럼 노랗게 물들고, 충혈된 눈처럼 붉어진 잎들은 간절한 사랑의 고백 같은 마지막 뜨거운 포옹으로 제 나무를 한껏 끌어안는다. 그렇게 저마다 노랗게 빨갛게 단풍 들어 나무를 떠나기 직전인 한때가 나무에게는 절정의 시간이다. 머물러야 할 때와 떠날 때를 알고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im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5/11/13/14ff424b0b419480d4601bb956141402195149.png" style="margin: 0px; padding: 0px;"><b><font color="#000000">그 한때가 지나면 여러 날 동안 서서히 마른 잎은 차창 밖에서 흔드는 손짓 같은 작은 바람 한 자락에도 한순간 나무의 손을 놓는다.&nbsp;</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나무를 떠나는 순간 나뭇잎은 낙엽이 된다. 낙엽은 멀리 떠나지 못해 자기 나뭇가지 범위 안의 바닥에서 뒤척이며 잠든다. 지난 일들이 빗줄기 속에 영화처럼 스친다.</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비록 내 의지대로 이어진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들 속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었나 생각해 본다. 비를 보며 산만했던 내 인생을 조곤조곤 정리해 본다. 좀 더 살갑게 보듬을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 온다.</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나뭇가지만 주목하다보면 숲을 잘못 파악할 수 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한번 생긴 오해는 자칫 고정관념으로 굳어지기 쉽다. 이 고정관념은 입에서 입을 거치고 시대에서 시대로 건너가면서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조퇴한 걸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너무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살았음을 후회한다. 숲을 보지 못하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가에 관심을 쏟으며 살았었다.&nbsp;</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세계 최초의 항공사인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에서 뜻밖의 일을 경험했다. 아직 후진국으로 갈수록 스튜디어스(<daum:word id="ekw000160073">stewardess)가 선망의 대상이지만 유럽노선엔 건장한 아줌마들이 주로 이 일을 맡는다.</daum:word> 좁은 비행기 안에서 10시간 넘게 중노동을 하는 관계로 승무원들은 건장하고 엄격하다.&nbsp;</font></b><b><font color="#000000">항공 규칙에 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을 정도로 단호하다. 땅콩 회향이란 말은 어림없는 일이다.</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비지니스석이던 이코노미석이던 관계없다. 때로는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느낌마저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신뢰가 간다.&nbsp;</font></b><b><font color="#000000">그리고 불과 몇시간 머물고 헤어질 손님이지만 승객 이름을 수고스럽게 외워서 불러준다. 발음하기도 까다로운 한국식 이름을 불러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저 스치는 승객이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이름을 불러줄 필요조차없다. 그러나 기내에서 한시적이지만 자신이 서비스를 맡은 승객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갖어 준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오랫동안 감동을 받았다.</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난 목회의 여정에서 이런 서비스 정신을 갖어보질 못했다. 비가 내리니 별것이 다 후회스럽다. 좀 더 내 자신을 다 주지 못한 게 가슴아프다. 내 뇌리속에서 잊혀진 수많은 사람과 사연들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그 뚱뚱한 스튜디어스도 하는 일을 나는 게을리했던 것 같다.&nbsp;</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size: medium;"><b><font color="#000000">나는 오늘도 비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내게 추억이고 그리움이고 사색이 되어준 비. 그 예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간간이 나를 들춰보게 해 줄 고마운 비.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는 계속 내리고 나는 여전히 창가에 있다.&nbsp;</font></b></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3</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3</guid>
			<dc:date>Sun, 18 Oct 2026 05:01:09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왜 그렇게 살어?</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7/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0002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언제부터인지 그 사람의 순수와 현실적 관계만을 생각하기로 다짐했었다. 너무 깊이 그리고 넓게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어차피 인간은 인간일 뿐이며, 모두가 자신의 일을 먼저 염두해 두고 관계의 장으로 나오는사람인 만큼 그 앞에서 어떠한 연약하거나 나약한 태도를 취하지 말고 당당해야 한다고 마음속에 암시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믿으라는 사람이나 믿어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우선 기피하기로 했다. 약속은 깨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지만 본인 스스로 약속한 일을 번복하기를 밥먹듯하는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기란 정말 인내가 필요한 일이고 어려운 일이다. 교회라고 예외는 아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어떤 경험 많은 사람은 “인생은 평생 공사 중이다.”라고 말한다. 완벽한 사람이 없고 어느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와 부족함 때문에 평생 배우며 만들어 가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절대적'이란 용어를 신봉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이들어 가면서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을 믿는 편이다. 그만큼 실망을 했으면 인간을 절대시하지 말아야 하는데 너무 잘 믿어 버리는 버릇이 있다. 이내 실망과 절망을 느끼면서도 말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어느새 시월의 가을이 시간에 떠밀려 지나가고 있다. 어제 대야장에 가서 대봉시 두그루와 단감나무를 사왔고 오늘 오전중에 친구네 집에서 사과 대추 나무 몇그루를 캐와 식재하려 마음먹었다. 작은 묘목부터 키우는 묘미도 있지만 내년부터 당장 수확할 수 있는 제법 큰 성목으로 골라왔다. 만원짜리 묘목을 키워도 3년이면 열매를 딸 수 있지만 3년이란 시간은 나에게 너무 긴 시간이다.&nbsp;</b></div><div><b><br></b></div><div><b>지금 내 곁에 와있는 가을만 보더라도 너무 세월이 빠르게 흐른다는 걸 일깨워 주기에 늙은이들에겐 그만큼 바쁘게 살고 싶은 생각이 존재한다. 이제 내일 전국적으로 큰 비가 내린 후에 급격하게 날이 추워질 거라는데 만추에 젖는가 하면 금방 겨울로 들어 설 것이다. 벌써 거리엔 아름다운 단풍이 되려는 몸부림이 시작되고 있다.&nbsp;</b></div><div><b><br></b></div><div><b>전어(錢魚)의 계절이 돌아왔다. 은퇴한 목회자 친구들을 불러 전어 파티라도 열어야겠다는 생각에 달력을 보며 어느 날짜로 할까를 생각하며 행복한 감상에 빠져 보았다. 이미 마음은 하롱베이 선상에서 다금발이 회를 먹는 상상에 빠져 있지만 그 전에라도 인생의 가을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걸 공유하고픈 생각이 들어 초대장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b></div><div><b><br></b></div><div><b>살이 통통하게 오른 가을전어가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그간 경험으로 볼 떄 신통한게 아니다.&nbsp;</b><b>‘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가을 전어는 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나는 전어 맛을 느낄 수가 없다.&nbsp;</b></div><div><b><br></b></div><div><b>조선시대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전어는 맛이 종아 상인들이 염장해 파는데 귀천이 모두 좋아했다. 전어를 사는 사람은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고 유래를 적었다. 돈을 따지지 않을 정도라니 맛에 관해서는 일찌감치 검증을 받은 셈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충청도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청도·경상도·전라도 및 함경도에서 전어가 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nbsp;&nbsp;</b></div><div><b><br></b></div><div><b>영조 때에 편찬된 읍지들을 보면 황해도를 제외한 전 도에서 생산되고 있다.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 玆山魚譜≫에도 전어를 한자로 전어(箭魚)라고 쓰고 그 속명도 같다 하였으며, 그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고 하여 전어라는 이름의 유래도 언급하고 있다.&nbsp;</b></div><div><b><br></b></div><div><b>전어 굽는 냄세에 정말 며느리가 돌아 올까? 한번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오면 받아 주기는 하겠는가? 모두가 말쟁이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남들이 그렇다니까 인천 공주 광주 친구들을 불러 한번 대접을 해야겠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예전의 맛이 아니다. 보리 개떡을 먹으면서도 행복해 했던 예전의 입맛이 아니다.&nbsp;</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7/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003624.jpg" width="400" align="right" class="photo" alt="">불과 일주일 사이 황금물결을 이르던 들녘이 점점 비워져 가고 가을 냄세가 물씬 풍긴다. 아직은 곱게 물들진 않았지만 가로수들이 가을 색체를 띄기 시작했다. 샛노란 은행잎도 변신을 시작했다. 단풍(丹楓)든 산행이 벌써 부터 기다려지지만 그것도 한가할 떄 이야기이지 내년을 기약해야 할 판이다.&nbsp;&nbsp;</b></div><div><b><br></b></div><div><b>요즘 웃을 일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생활이 사람의 마음까지 위축시켜 놓는다. 찬 서리 내리는 시월은 모든 게 을씨년스럽다.&nbsp;</b></div><div><b><br></b></div><div><b>어찌된 영문인지 봄과 가을은 소리 소문 없이 계절의 느낌을 가져보지도 못한 채 찰나에 지나가고 더위와 추위만 한반도에 뿜어대는 모양새에 당혹스러울 뿐이다. 단풍은 이제 좀 더 지쳐 있는 듯 자꾸만 오므라 들어가고 있다. 유독 짧아진 가을이라 그런지 모양도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nbsp;</b></div><div><b><br></b></div><div><b>가을은 관심 밖에 있던 것들이 문득 시선을 잡는다. 같은 길을 걸었을 뿐인데 가을을 입은 나무들은 곱게 치장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 눈과 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늘상 눈에 익숙하게 들어왔던 그 나무가 아니다. 뚝 뚝 지는 나뭇잎은 또 다른 의미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4계절을 사람의 일생과 비교해 보면 1년과 일생의 사이클이 비슷하다. 자연의 순환은 인생 과정과 많이 닮아 있어 예사롭지 않다.&nbsp;&nbsp;</b></div><div><b><br></b></div><div><div><b>요즘 이란전재의 여파로 경유값, 등유값이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다. 내가 처음 낙향했을 무렵 보일러를 작동해 본 이후 거의 10년이 넘는 동안 냉방에서 살고 있지만 그 전엔 등유 한 드럼에 15만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30만원이 넘으니 조금 따스하게 살려면 두 드럼은 가져야 되고 생활비 중 유류세가 찾이하는 비중이 커 부분 난방만 하는 가정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nbsp;</b></div><div><b><br></b></div><div><b>간난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들은 더 힘들 것이다. 그런점에서 한 드럼으로 살려니 춥게 살 수밖에 없다고 투털거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마저도 감지덕지로 여길 일이다. 난 아예 보일러를 작동시키지 않으니 나에게 비하면 호강하는 사람들의 넉두리쯤으로 여겨진다. 난 귀촌하고 거의 10년이 넘는 동안 보일러를 틀어본적이 없을 정도로 자린고비(?)로 살아왔다. 단순히 생활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혼자있으면서 기름 사용하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전기장판이 유일한 겨울나기 도구가 된지 오래이다.&nbsp;</b></div><div><b><br></b></div><div><b>하루에 책상에 앉아 있는 세시간 정도는 전기난로를 이용하지만 잠자리에 들어서면 콧잔등이 시려워 이블속에 파묻혀 몸으로 온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내 주변인이 내 몰골을 보며 늘상 하는 소리가 남들에겐 그렇게 후하게 하면서도 왜 자신을 그렇게 학대하며 사느냐고 끌탕을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7/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0037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익산 재산가(?)가 무슨 청승이냐는 소릴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이지만 설령 로또에 당첨된다 해도 내 생활방식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티나지 않게 살면되고, 가진게 없는 사람도 구차하게 살지언정 비굴하게 살지 않으면 그만이다. 자신의 삶에 만족도는 가진 걸로 결정되는게 아니다.</b></div><div><b><br></b></div><div><b>한번도 안가본 사람은 있지만 한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인도의 VARANASI를 가기위해 준비중이다. 겐지스에 정말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천명씩 대기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겠고 죽음을 앞둔 이들의 표정을 앵글에 담아오려 마음먹었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차별이 없는 겐지스는 인간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들어보려 작정했다.</b></div><div><b><br></b></div><div><b>죽을 때가 되면 가족들은 거의 시신이 되어가는 부모를 겐지스에 눕힌다는데 과연 그들에게 정말 행복한 미소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 화목으로 태워지는 모습을 보며 영혼이 떠나는 모습을 마음에 담아보려 한다. 영혼은 카메라 앵글을 담을 수 없지만 마음에 담아오려 한다. 그걸 확인해 보고 싶다. 내가 자린고비로 살았던 호사스럽게 살았던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이번에 만인들에게 확인시켜 주리라는 생각에 캐리어를 만지작 거린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음에도!</b></div><div><b><br></b></div><div><b>&nbsp;</b></div></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2</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2</guid>
			<dc:date>Sat, 17 Oct 2026 00:46:54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사람 냄새가 전연 나지 않는 비인간화(比人間化)된 세상</title>
			<description><![CDATA[<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6/f50343a649b667fc9a6e6e7908c93e2400580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계 3대 단편작가로 꼽히는 프랑스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데뷔작 ‘비계 덩어리(Boule de Suif)’는 인간의 추악한 이기주의를 그린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nbsp;</b></div><div><b><br></b></div><div><b>1870년에 발발한 ‘보불전쟁’ 상황을 극적 요소로 삼은 이 작품은 가진 자들이 약자를 어떻게 짓밟고 이용하는지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b></div><div><b><br></b></div><div><b>프로이센군에 점령된 루앙에서 디에프로 가는 역마차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10명의 인물들이 한 마차에 합승한다. 백작, 의원, 돈 많은 상인과 그들의 정숙한 아내들, 수녀, 민주주의 운동가와 창녀까지….&nbsp;</b></div><div><b><br></b></div><div><b>제목인 ‘비계 덩어리’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창녀 엘리자베스 루셰(Elisabeth Rousset)를 일컫는다. 루셰는 창녀라는 미천한 직업과 뚱뚱한 몸매 때문에 고상한 귀부인들에게 암묵적 견제와 멸시를 한 몸에 받는다.&nbsp;</b><b>하지만 루셰는 혹한의 피난길에 일행들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하게 된다.&nbsp;</b></div><div><b><br></b></div><div><b>마차 안에서 굶주림에 매가리가 풀려버린 사람들에게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허기를 이길 수 있게 했으며, 길을 막아선 프로이센군 장교에게 몸을 내주고 통행 허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비계 덩어리’라고 부르며 비하하고 천대하면서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그녀를 성노리개로 내모는 지도층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새롭다.&nbsp;</b></div><div><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div><div><div><b>누가 거룩한가. 누가 의인인가. 비계덩어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 준다. 너무 바뻐 생각없이 살다보니 백작이나 의원, 돈 많은 상인과 그들의 정숙한 아내들, 그리고 수녀는 선이고 창녀는 악이라고 나름대로 규정하고 살았다. 하지만 강단에서 내려와서 보니 진짜 비계덩어리가 누군지를 알게 만든다. 왜 부지기 천국에 들어가는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b></div><div><b><br></b></div><div><b>유행가 가사에서 처럼 '에레나가 된 순이'는 악이라 여겼고 매주일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당을 찾는 사람은 선이라고 단정적으로 설파해 왔던 내 자신이 비계덩어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오래전 부터 가지고 있었다.&nbsp;</b><b>이런 상념이 길어지면 난 철학자가 되고 만다. 나는 어차피 성자의 흉내도 내지 못할 사람이고 위선과 가식까지는 아닐찌라도 인간은 어차피 비계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걸 언제부터인가 내 뇌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nbsp;</b></div><div><b><br></b></div><div><b>나는 기분이 언잖으면 두문불출하거나 입에 지퍼를 채우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病을 얻기도 했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방식이기에 그대로 성격으로 굳어진 것같다. 어떤 땐 내 성격이 싫을 때도 많다. 화가나면 소릴지르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나는 한번도 소릴지르며 싸워 본 적이 없었고, 목소리 큰 사람관 친분 관계를 맺지 않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b></div><div><b><br></b></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6/0d6b3fcec0f98ec6a386b09d71b34eef00595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어제 같은 밤에는 특별한 이유없이 슬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온다는 사람이 없었지만 누군가가 찾아 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 보기도 했다.&nbsp;</b></span><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항상 이런 것은 아니지만 또한 여럿이 어울리는 걸 질색하면서도 때론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게 사실이다.&nbsp;</b></div><div><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b></div><div><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애써 수소문을 해보지 않았지만 문득 추억의 페이지를 넘기다 어느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nbsp;</b><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맥심커피 한 잔으로 창가를 지키다 보면 잠시 잊고 살았던 수많은 얼굴들이 다가온다.&nbsp;</b></div><div><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b></div><div><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뜨거운 커피가 천천히 가슴을 타고 흐르는 동안 늘 그리운 어머니도 다녀가시고 넓직한 아버지의 웃음도 만난다. 조건없이 베풀어 주는 내 형제들과 내 삶을 자주 치료해 주는 착한 친구들이 묵직한 발자국으로 다가 온다. 짙은 안개가 밤을 더 을시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b><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어제 뜻</b><b>밖의 소식을 들었다.&nbsp;</b><b>치매에 걸리기 전까진 자주 왕래하던 김0목사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내 무심함이 작지 않았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삼개월 전쯤 시골집을 구해 달라고 사모님과 함께 내 집을 방문했을 때, 그러안해도 치매로 죽은 친구 녀석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는데, 그 정도가 심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대학 이년 선배였는데 전라남도 섬지방 등지에서 주로 목회를 하며 고생하셨는데, 치매에 걸려 나를 동생처럼 아끼던 분이 식사하는 도중 몇번이고 아저씨는 잘 생기셨는데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 노가다 한다고 퉁명스럽게 답변한게 마음이 걸렸다. 정말 치매가 가장 가혹한 병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내 친구를 통해서도 터득한바가 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지능이 다섯살 이하로 현저하게 떨어지고 젊었을 때의 열정, 평생 사목한 걸 단숨에 부인해 버리고 마는 치매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일이지만 정말 피하고 싶은 끔찍한 질병이다. 퇴직하고 열평 미만의 시에서 무상으로 공급하는 텃밭을 얻어 이것 저것을 심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마음이 아파왔다. 말그대로 코딱지 만한 텃밭을 무상으로 임대받고도 그렇게 좋아했던 순수한 분이셨는데.</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라며 간병인 보험을 들라는 소릴 하루에도 수없이 듣고 살지만 난 치매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 대신에 치매에 걸리기 전에 죽게 해달라는 기도를 시작한지 오래이다. 더불어 노년을 아름답게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멋지게 늙으려 채근대며 살고 있다. 그래봤자 인간은 비계덩어리일뿐이지만 가식덩어리로 살진 않으려 한다.&nbsp;&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지금은 촌노가 다되었지만 나도 한 때는 그런대로 봐줄만 했었다. 멋대가리 없단 소린 듣지 않았다. 멋이란 풍치(風致)스러운 것, 영어로 쓰면 Elegance이다. 그리고 호방하고 기품나는 몸매를 멋이라 쓰기도 하고 사물의 참맛(Reason)을 포괄하는 단어가 멋이다. 단순히 외모만을 말하는게 아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6/019a4bc9d88f7de4a42c1406dcac4c10010308.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맥아더 장군이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고 곧바로 필리핀에서 일본의 '原木비행장'에 갔을 때 자신은 입에 특유의 파이프를 문 채 허리에 권총은 물론 촌철의 무기도 휴대하지 않고 유유자약하게 트랩을 내려온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특히 당시의 일본은 전쟁이 끝났다고 하나 곳곳에는 아직 우익세력들이 포진하여 결사항전을 벌리려는 특공대들이 날뛰고 있는 터에 자신 뿐 아니라 자기를 수행하고 있는 10여 명의 보좌진에게도 비무장으로 내리라는 엄명을 해서 맥아더의 멋과 지도자의 품위는 두고두고 뭇사람의 가슴에 회자되고 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주위를 살펴보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 냄새가 전연 나지 않는 비인간화(比人間化)된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다. 자고로 사람은 '멋'이 있어야 인간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멋'이란 말은 인간의 행동양식, 예술 ·기예 및 사물의 존재양식에서 독특한 감각으로 여과(濾過) ·표출되는 미적 관념(美的觀念), 또는 그 미적 형태를 말한다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멋은 몇 마디로는 풀이하기 어렵다. 그 말에는 일반적 의미가 아닌 특수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풍류(風流)나 서양의 유머는 한국의 멋에 가까운 것일 수가 있다. 그러나 풍류 ·유머는 멋의 한 속성(屬性)으로서 멋의 한 단면이 될지언정 멋이라는 개념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은 물론, 부분적으로도 완전히 부합된다고 할 수 없다. 멋은 그만큼 한국적 독자성을 가지는 말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는 멋진 정원을 한번 만들어 보는게 꿈이다. 그 동안 몇번의 정원을 만들어 보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정원은 아직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단순히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정도였지 보잘 것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배우고 연습한다. 정원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데, 아직 그럴만한 여유가 없기에 경험을 축적시키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지만 불원간에 한곳에 정착하게 되면 꼭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멋'을 만들 기회가 과연 있을지 모르겠지만.&nbsp;</b></div><b><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b><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nbsp; &nbsp;</b></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90</guid>
			<dc:date>Fri, 16 Oct 2026 01:04:40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을까?</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4/2ac7f0c9bb91cdd17c3f747bbe50817723333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여행할 땐 고향집에 조용히 머물고 싶고, 고향집에 머물면 또 여행을 하고 싶을 때가 많다. 변덕스러운 까닭도 있겠지만 그만큼 현재의 삶에 만족을 못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인생을 살면서 지금이 가장 소중한 시간인데 과거의 추억에 매몰되거나 미래에 대한 환상때문에 현재를 소훌히 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금 처한 그 순간이 최선의 공간이고 최고의 행복의 순간임을 알지 못한다. 금방 싫증을 내고 또 다른 뭔가를 기획하는 것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여행하고 싶어 여행하는 것이니 여행하는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고, 또 칩거하고 싶어 칩거하는 것이니 칩거하는 그 순간이 또 행복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행복은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늘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한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지나간 과거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수 많은 인연과 우연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nbsp;</span></b><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어차피 내 삶의 최고의 순간은 나이로 볼 떄, 미래는 아닐 것이고 이미 지난 시절중에 있었을테지만 나는 남들이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 순간은 바로 지금 이순간이라고 믿고 싶다.&nbsp;</span></b><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딱히 기억나진 않지만 내 생애 가장 설래이고 기뻣던 날중에 하나는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내가 처음 증기기관차를 타본 건 국민학교 6학년 때 서울수학여행을 갈 때였다. 한자리에 둘 셋은 보통이었고 짐을 실는 선반에 누어 가는 얌체족도 있었다.&nbsp;</span></b><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예 복도에 신문지를 깔고 잠는 자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고, 술쳐먹고 토하는 사람이라도 생기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토였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그래서 나는 아련한 추억을 머금은 기차여행의 낭만을 좋아한다. 기차가 느리게 달리니 짜증도 나련만 모두가 하나같이 즐겁고 신나는 표정들이었다. 자주 울리는 기적소리 여운과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덜커덩'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찐계란 있어요, 김밥 있어요!"를 외치고 다니던 홍익회 아저씨 얼굴이 눈앞에 그려진다.&nbsp;&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보통 열시간 정도 걸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처음 남대문을 보았고 경복궁 창경궁(창경원)도 보았다. 12시간이면 미국 동부까지 날아갈 시간이지만 당시엔 이런 열차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였으니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겠지만 가끔은 우리 나라에서 제일 느린 기차를 타고 필름처럼 돌아가는 차창을 보며 꾸역꾸역 추억을 토해 내고 싶을 때도 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눈물 나도록 서러운 계절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한번쯤 내 삶의 자리 훌훌 털고 싶어서, 철새처럼 날아올라 무작정 날아가고 싶었다. 가다가 지치면 주저 앉는곳에 짚시가 되어 어색한 캉캉춤이라도 추고,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산골 마을로 찾아들어 흙냄새 나는 토방하나 세 내어 장작불 지피라 하고, 청국장 냄세 그윽한 아랫묵에 누어 내 마음 노릿 노릿 구워 내며 몇날 며칠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생각,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인생의 일기를 고쳐쓰고 싶다는 생각을 줄곳 해왔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근래들어 추억에 잠기는 일이 많아졌다. 흙 마당과 댓돌이 있고 긴 빨랫줄이 걸린 시골집을 보게 되면 수십 년 전 과거로 돌아간 양 추억에 잠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실물이지만 우리는 그 실물을 탈색한 뒤 자기 소유의 기억으로 윤색한다. 그래서 시골풍경은 늘 그리움과 연민의 대상이다. 막연하긴 하지만 그 추억을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돌아 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 비슷한 장면이라도 보노라면 마음에 응어리진 병이 도지고 굵은 눈물을 쏟아낸다. 왜 남들은 잘도 견디는데 난 잊혀지지 않는게 많은지 모르겠다. 가끔 내가 자라고 뛰놀던 이리시 평화동 골목길을 찾아 간다. 선술집 골목으로 바뀐지 오래지만 그 자리에 서면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이 너무 많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4/946ebbbee616042f7f28b24e72e92c5a23343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너무 무심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게 그리움이 될줄 알았다면 이렇게 살진 않았을텐데 제대로된 추억의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지상에 영원히 머무를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두 다 떠난다. 언제가 떠나야 한다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며 살아야 한다. "삶이란 한줌의 모래를 쥐었다 펴면 은빛 모래 몇 조각 남는 추억뿐이다”라는 말이 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 추억도 아름답게 남는법인데 난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지금부턴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려 노력중이다. 그래서 촌음을 아끼는 중이다. 나는 서두르는 버릇이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나중에'라는 말을 가장 싫어 한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일으킬 때가 많았지만, 그러기때문에 '불도저'란 소리를 들으면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가능성이 10%도 안되는 극단적인 상황속에서 이만큼 이룬 공적에 대하여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걸 성공이라고 보진 않지만 목회외엔 경험이 전무했던 사람이 굶어 죽지 않고 하루 하루를 견디어 간다는 점에선 절반의 성공쯤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표현도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벽에 못하나 박을줄 몰랐던 사람이 벌써 65개의 전원주택을 지었고 매년 농사도 마치 직업이라고 착각하며 한해도 거르지 않고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상황이었고 거의 반거충이 수준이었음에도 이 나이에도 직업이랍시고 매일 일속에 파묻혀 사는 모습을 보며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집안 대대로 상공인이 없을 정도로 학자 집안이고 선친께서도 성직에 봉사했으므로 전부적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지금도 매일 매일 공부하면서 내 길을 만들어 갈뿐이다.</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내가 제일 잘하는 일은 46년 동안 큰 대형 사고없이 운전해 온 것일테고 남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은근과 끈기가 있다는 점일게고, 그 외엔 모든게 은혜였고 어머님의 기도의 열매라고 믿고 있다. 그러기에 남에게 칭찬받을만한 이유가 없고 공치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nbsp;</b></span><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마다 공치사(功致辭)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4/104af02d0ff768aa3fca40a8a978aa0e23354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사람은 살아가면서 때로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도하며 공치사(功致辭)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기에 덕담은 덕담으로 받아들여야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다가는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 역시 공치사(功致辭)를 좋아하고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우쭐해지기도 한다. 사실은 공치사(功致辭)를 남발하는 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랑하기에 급급하여 오해와 불신을 받기도 한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공치사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1, 남을 위하여 수고한 것을 생색내며 스스로 자랑함. 2, 빈말로 칭찬함이다. 요즘은 자기 피알시대라고 하지만 공치사(功致辭)를 너무 남발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내고 공치사(功致辭)가 치사(恥事)스러운 인간이 되기 쉽상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 수록 치사하게 살진 말아야 한다.&nbsp;</b></div><div><b><br></b></div><div><b>나는 늙었다는 이유로 대접받기를 거절한다. 가능하면 대접하며 살기를 열망한다. 나는 딸들을 여전히 '손님'처럼 대우한다. 무거운 중압감을 가지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과 아빠 집에 왔을 때 편하게 쉬다가는 곳이어야지,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늙음이 무슨 벼슬인가?&nbsp;</b><b>내 집에 오면 최선을 다해서 대접하고 편히 쉬다가면 그것으로 만족이다.</b></div><div><b><br></b></div><div><b>거의 일년 열두달 일에 쫓겨 살지만 올 해만큼 한가한 해가 없을 정도로 여유작작하게 보내고 있다. 지금은 일을 안하는게 손실을 막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들어 쉬어가기를 반복하는데, 매일 수입이 끈긴 소장이 선유도로 낚시를 가자고 꼬득인다. 오면서 가면서 기름값도 문제지만 가면 망둥이 몇마리 건질 것이고 점심 값으로 뻔한 손해가 예상되지만 자빠진 김에 쉬어 간다고 여유있을 때 바다나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려 약속을 잡았다.&nbsp;</b></div><div><b><br></b></div><div><b><br></b></div><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9</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9</guid>
			<dc:date>Wed, 14 Oct 2026 23:36:2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햇볕은 눈부시지만 바람은 차갑다.</title>
			<description><![CDATA[<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4/a6e238b3084375c78cdaa315fe76bb2c00272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파리 날리는 집에 가보면 '네 시작은 미약했지만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성구가 걸려있다. 교회에서 개업 선물로 가져다 준 거겠지만 보기에도 민망하다. 세상살이라는게 모두가 비슷하다. 부픈 꿈을 안고 출발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이던가?&nbsp;</b></div><div><b><br></b></div><div><b>목회도 모두가 실패할 거라 생각하고 개척하진 않았을테지만 자립하는 교회로 성장하는 교회는 그리 많지가 않다. 열교회 중 한교회 정도만 자립하고 나머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태일 것이다. 아마도 부침이 가장 심한 곳이 목회 현장일지도 모르겠다.&nbsp;</b></div><div><b><br></b></div><div><b>열명이 출발하여 한명만 자립하고 나머진 모두 도시민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열악한 환경에 시딜리고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의 말을 믿고 사과나무 심어 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사과 한상자에 만원도 안가니 지구 종말이 오기 전 사과나무부터 처리하는게 교과서적이다.&nbsp;</b></div><div><b><br></b></div><div><b>그러고 보면 요즘은 할 일을 안하는게 정설이 되고 있으며 열심과는 상관없이 차라리 일을 안벌리는게 지혜로운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만큼 삶이 녹록지 않다는 말일텐데 그렇다고 아무런 일을 안하고 우두커니 세월을 잘라 먹는 일은 내 존재에 대한 부정이라 생각이 들기에 미친듯이 땀을 흘린다.</b></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한 때, 가상화폐의 열기에 너도 나도 뛰어 든 사람들이 요즘 쪽박을 차게 되었다고 하고, 내 주변에도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이 많지만 손해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퇴직자들이 전 재산을 투자하여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 들었다가 노후 젖줄인 퇴직금을 날린 사람이 여럿이다. 말하자면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가 이 시대에 만연되고 있다. 너도 나도 투기에 열풍일 때 내가 비정상인가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span></b></div><div><b><br></b></div><div><div><b>어떤 땐 내가 정상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가 않다는 걸 잘 알기에 주어진 동안은 최선을 다하리라는 다짐을 하였다. 엄청 경제가 어려운 시기인지라 일할 자리가 없어 공원 벤치를 지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그나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고 날 찾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한 일이다.&nbsp;</b></div><div><b><br></b></div><div><b>요즘 전라북도는 특별 자치도로 승격되고 바이오 산업의 메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로 충만하고 이를 기대하는 시민들이 들 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것보다 고향에서 소박한 꿈을 이뤄가며 지금에 만족하기로 했으며 지금의 고달픈 현실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일하는게 즐겁다는 말을 함부러 할 순 없지만 아무 할 일이 없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란 생각으로 일을 한다.&nbsp; &nbsp; &nbsp; &nbsp;</b></div><div><b><br></b></div><div><b>고향이란 그런 것인가?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자라난 환경(環境)적 요소와&nbsp; 유전적(遺傳)요소가 함께 뒤엉켜 오늘의 내가 이렇게 존재(存在)하며 행동(行動)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국(異國)에 나가 살며 고향의 향수가 그리워 '6시 내고향' 프로그램을 고정 채널로 기다리는 교포 동문들도 있지만. 나역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저녁 6시 방송을 즐겨 보았다.</b></div><div><b><br></b></div><div><b>구수한 흙냄새가 풍기는 고향의 산야(山野)를 바라보며 고향의 기운(氣雲)을 만취(滿臭)해 볼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울에 상경했는데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고향에 가기만 하면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편안함이 온 몸을 휘감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온 몸의 모든 긴장감이 턱 하고 내려 앉아버린다.&nbsp;</b></div><div><b><br></b></div><div><b>무장해제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고향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간직된, 말하자면 사라지지 않는 일기장이 아닐까 싶다. 그 일기장을 보면서 우리는 특히 어린 시절의 즐거웠고 해맑았던 자신의 모습과 한 없는 사랑으로 가득찬 엄마의 품을 떠올리는 것 같다. 나는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서 그 고향의 따뜻함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힘든 일을 겪거나 할 때, 힐링받을 수 있는 자기만의 고향을 갖을 수 있다. 뿌리가 없어 성장하는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b></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4/0f19efb7eb7714c60ef7a67e81f409a90028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우리는 고향을 이야기 할때&nbsp; 부친 원고장인 족보의 근원을 묻지만 또 어디에 태(胎)를 버리고 자났느냐에 따라 고향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대개 소시적 뛰놀던 운동장 .교실. 옛친구,시냇가, 거닐던 오솔길, 옹달샘, 정든 얼굴들.구수한 토박이 방언. 보이스의 억양, 잊을 수없는 추억과 정서&nbsp; 그것이 문화가 되고 몸에 배어 향기를 날리고 있다.</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내 딸들도 다른 곳이 아닌 고향에서 노후를 보내겠다는 내 결심에 박수를 보내 줄 거라고 믿고 있다. 만약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라면 나를 가련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수구초심(首丘初心)하려는 내 의지가 확실하기에 조금은 안심하는 것 같다. 만약 여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패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할 일없는 늙은이가 되어 초라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nbsp; &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그래서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하나님이 끝내기 전에 내가 임의로 끝맺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내 맘대로 섣불리 오판하지 말고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는 실패가 없다(빌 1:6)는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빌 2:13). 하나님의 소원을 알아야 한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게 중요하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비가 내렸던 탓인지 날씨가 쌀쌀하다. 햇볕은 눈부시지만 이미 가을이 깊어진 걸 느끼게 된다. 창가에 심어놓은 황금사철나무가 햇볕에 반사되어 노란색이 더욱 돋보인다. 가을 국화도 곧 망울을 터트릴 기세이다. 가을의 정취를 잊은지 오래이지만 이런 땐 억새가 장관을 이룬 들녁으로 나들이 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그런 아침이다. 공기가 너무 크린하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새벽부터 늦장을 부리며 인도에 대한 인터넷 서핑을 하였다. VARANASI의 겐지스강을 눈여겨 보며 빨리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인도인들이 죽을 때만 되면 반드시 찾는 고도이다. 평생 소원이 겐지스강에 시체가 태워지기를 바라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어떤지를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고향이 아니더라도 죽을 땐 바라나시로 몰려와 때를 기다리는 영혼의 고향이라 믿는 그 곳은 어떤 곳일까?</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그 겐지스강가엔 시신을 태울 화목을 파는 장사꾼들이 몇만명이라는데 그 중에 부자들은 향나무를 사용하고 서민들은 일반 참나무나 잡목을 사용한다는데 내 능력으로는 향나무는 안될 것 같고 더 나일먹으면 사용할 지팡이라도 하나 구해 올 생각이다. 사람이 죽을 때를 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죽을 날을 강가에서 움막을 치고 기다린다는 저들의 집념을 꼭 확인하고 올 생각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힌두교의 교리상 겐지스에서 태워지고 그 성스러운 강에 뿌려져야 다시는 이 지긋지긋한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거라는데 얼마나 지옥같은 세상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런 곳에 비하면 한국인 대다수는 천국에 살고 있는셈인데 만족을 모르며 사는 내 모습을 투영해 볼 생각이다.&nbsp;&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8</guid>
			<dc:date>Wed, 14 Oct 2026 00:38:1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악질적으로 오래 사는 길</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3/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00005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가을 비치곤 제법 많이 내린다. 마치 장마철 내리는 장대같은 비가 연상될 정도로 줄기차게 내리는데 이번 비로 충분히 해갈은 되겠지만 타작을 시작한 농부들의 시름은 깊어질 것 같기만 하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나는 어설픈 농부축에도 끼지 못할 초보 농부이지만 가을비는 농사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정도의 상식은 가지고 있기에 오늘 내리는 가을 비는 농부들에겐 희비가 엇갈리는 결과가 만들어질 것 같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매일 텃밭에 물을 주는 내 입장에서 보면 비가 반갑기는 하지만 논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한참 고구마 등 수확을 앞둔&nbsp; 농부들에게는 분명 반갑지 않은 비일 거란 생각이 들어 아침부터 창밖에 내리는 비를 무념으로 바라보며 아침을 열고 있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그제 쪽파를 모두 뽑아 지인에게 넘겨주고 쪽파씨를 구입하여 다시 파종했기에 반가운 비임에 틀림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란 생각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비를 바라보며 이 비가 그치면 당장 양파를 심기위해 남겨진 텃밭의 풀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손톱 사이의 검은 흙 때가 영락없는 농사꾼임을 말해주는 지금도, 농부로서 나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50점 이상은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 손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것은 밭에서 억세게 자라는 잡초를 바라보며 인간세상을 돌아본다. 잡초가 적당히 섞인 밭에서 자란 농작물이, 제초제를 사용하여 잡초를 몰살시킨 밭에서 농부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농작물보다 더 건강하고 맛이 있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얼마전에도 친구에게 '곱게 살았던 사람이 어찌 땅이나 파는 천한 일을 하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농사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신(修身)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흙을 매만지며 농사일을 하는 동안 나는 잡념 없는 무의식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에 정신 건강만큼은 예전과 비교할 수가 없다.</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과학자들이 캘리포니아주 마린 카운티(Marin County)에 사는 55세 이상 주민 2025명을 5년간 조사해 보니 두 곳 이상에서 일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사망률이 보통 사람들보다 63퍼센트나 낮았다고 한다.&nbsp;</b><b>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44퍼센트, 매주 교회 등에 나가는 사람들은 29퍼센트 순으로 사망률이 떨어졌다. 매일 교회에서 사는 사람이 장수할 거 같아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nbsp;</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예수믿고 천국에 가세요!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종종 듣게 되는 소리다. 그는 과연 승객들의 천국행을 진정으로 돕고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승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 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남을 돕고자 한다면 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해하든 말든 일방적으로 다중을 향해 외쳐 대는 건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생활 속에서 성결과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이는 절대로 진정한 신자가 아니라고 칼뱅은 말하였다는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한다’고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건만, 우리의 모습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무엇이 다르며 무엇이 차별화 되었는가?</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최소한도 기독교도라 한다면 그리스도의 모습이라도 닮아가려고 하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할 터인데 작은 흉내하나 내지 못하고 따르지 못함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 비기독교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 그들을 향해 분개만 할 것인가?&nbsp;</font></b></span><div><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b><font color="#013add">나도 그 문제에서만큼은 자신이 없기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아마도 죽는 날까지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겠지만 낙제점을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중이다. 이건 영적인 문제만이 아니고 일상 생활에서도 최소한의 인간 도리는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매일하게 된다. 높이 날아야겠다는 건 이미 접었지만 추락하는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분투중이다.</font></b></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font color="#013add"><br></font></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font color="#013ad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3/517fa0cfe467a85bb40da423aa4e8c7600015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몇일간 신축 전원주택을 돌아다니며 잡초를 제거했다. 여름철 제맘대로 자란 풀들이 한가득이다. 이제 가을의 막바지인 한로도 지났기에 더이상 자라진 않겠지만 미관상 풀과의 씨름이 계속되었다.&nbsp;</font></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font color="#013add"><br></font></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font color="#013add">텃밭일도 같은 마음이다. 농작물을 심을 자리만 우선적으로 가꾸고 나머진 예초기로 깍으려 마음먹었다 농약을 살포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지난 십년 동안 친환경 영농을 주창해 온 전력(?)때문에 힘이 들어도 풀과 함꼐 살 생각이다.</font></b></span></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font color="#013add"><br></font></b></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font color="#013add">막상 필드에 나가면 어디에서 부터 손댈지 막막하지만 영농뿐만 아니라 정원을 조성하려면 이제 서서히 움직여야 할 시기라 몸을 풀고 있다. 매일 풀과의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더이상 자라지 않기에 그냥 놔두어도 다른 밭작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멀대같은 자란 풀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남의 집이나 음식점을 방문했다가도 마당의 풀을 보면 뽑아내야 직성이 풀릴 정도다.</font></b></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font color="#013add"><br>언젠가 풀과의 전쟁이란 말을 무심코 사용할 때 내가 쓴 글을 보고 지인 한분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24~30)를 들려주며 "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9)."는 말씀이 있는 데, 풀을 안 뽑고 놔두는게 성경적이지 않느냐 해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었다.</font></b></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font color="#013add"><br></font></b></p><div style="font-style: normal; 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정말 가라지와 알곡은 자랄때에는 비슷하여 구별하기가 힘들다. 내 경험으로 볼 때 파밭엔 파처럼&nbsp;<br>생긴 풀이 자라고, 무우밭엔 무우처럼 생긴 풀들이 자란다.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열매가 맺힐 때를 보면 알곡은 익어 고개를 숙이는 반면 가라지는 쭉정이가 되어 구별이 쉽게 된다.</font></b></div><div style="font-style: normal; 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style: normal; 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난 땅콩이 처음 새싹을 낼 때와 울금이 막 돋아날 때, 그리고 모든 작물의 새싹이 나올 때 이게 뭔가를 몰라 시기를 놓치는 때가 많다.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약간 자랄 때까지 방치했다가 확연히 구별될 때 일일히 수작업으로 풀을 뽑으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nbsp;</b><b style="">이것들은 식물과 거리를 두고 자라는 게 아니라 거의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고 있기에 자칫 잘못하면 알곡이 다칠까봐 조심스러워 진다.&nbsp;</b></font></div><div style="font-style: normal; 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style: normal; 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 style="">나는 밭작물 씨를 파종할 땐 반드시 팻말을 세우기도 했었다. 내가 심어 놓고도 하도 가짓수가 많으니 보통 헷갈리는게 아니었다.&nbsp;</b><b style="">처음에는 생강을 심어놓고 근 한달 이상 새싹이 나오지 않아 모두 죽은줄 알고 갈아 엎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전혀 농사 경험이 없으면서 무모하게 뛰어 든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았지만 당시엔 의욕만 가지면 어려울게 없다는 자신감 하나로 버티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주변을 눈여겨 보며 배웠지만 이젠 약간이나마 농사에 눈을 뜬 것이 큰 수학이다.</b></font></div><div style="font-style: normal; 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style: normal; 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깊은 밤부터 내리던 비가 절정에서 벗어난듯 소강상태를 보이지만 이미 한가득 텃밭에 물이 가득하기에 한동안은 텃밭에 들어가질 못할 지경이다. 가을비는 영감님 수염 아래에서도 피한다는 말이 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아무튼&nbsp; 이번 비는 그간 가믐을 해소시켜 줄 모양이다.&nbsp;</font></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font color="#013add"><br></font></b></span></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span style="line-height: 1.5;">봄비는 새뜻하고 여름비는 장쾌하고 가을비는 차 한 잔을 부른다. 가을비는 '떠나보낸 사랑'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span><span style="line-height: 1.5;"> </span><span style="line-height: 1.5;">여름철 습한 비가 아닌 가을철</span><span style="line-height: 1.5;"> </span><span style="line-height: 1.5;">내리는 음산한 비는 이 비가 내리고 나면 추워질 날씨를 암시하는것 같다.&nbsp;</span></b><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 비가 그치고 나면 금방 겨울이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을비는 내복 한벌이라는 말이&nbsp;</b><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있던가?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찬 대륙성고기압의 접근이 이뤄져서 추위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nbsp;</b></font></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렇게 가을비가 내린 뒤에 갑작스런 추위가 시작하게 되면 춥기에 내복을 꺼내 입게 되고 그 추위의 강도가 워낙 강하게 느껴지기에 내복한벌을 껴입어야 할 정도로 춥다는 것이고, 갈 수록 추워지는 것을 나타내는 말일게다.&nbsp;</b><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제법 굵은 빗방울이 벌레먹어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낙엽위에 떨어질 때마다 나는 진한 커피 한 잔의 유혹에 빠진다.&nbsp;</b></font></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커피향기는 여수(旅愁)보다도 짙다. 언젠가 커피는 오미(五味)를 품고있다고 예찬하는 글을 보았다. 그리움 설레임 쓸쓸함 애틋함 아늑함이 그것이다. 나도 커피하면 자다가도 깨는 매니아지만 아직 오미를 느끼는 수준은 아니다.&nbsp;</b><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커피를 마실 때 주로 속깊은 머그잔에 마신다. 줄어드는 양을 보면 공연히 허탈해지기 때문이다. 머그 잔의 커피의 양이 반쯤 줄었을 때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바닥이 보일듯 하는 순간엔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지나 간 생이 아쉬워 더이상 잔을 비우지 못하고 싸늘하게 식혀 버린다. 마지막 한방울을 삼킬 때가 가장 우울하다.</b></font></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span></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3/79fd5b1470db81c093d3194897da35bf00042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고요속에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던 찰라 소장이 전화를 하여 오늘 무엇을 할지를 묻는다. 갑짜기 비가 내리니 무엇을 할지 나 자신도 모른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한 힐링의 시간인데 걱정이 되는가 보다.&nbsp;</font></span></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r></font></span></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가끔 주변에서는 사장님은 무슨 재미로 사는가가 주된 관심사가 된다. 꽤나 많은 돈을 벌었을 거로 착각(?)하는 저들은 돈버는 것이 유일한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nbsp;</font></span></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r></font></span></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 느그들 밥사주고 술사주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고 말하려다가 자재했다. </span>나는 가끔 그간 내가 지었던 집을 투어하면서 희열을 느끼는게 사실이다. 예술작품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내가 지은 집들을 바라보면 그런대로 봐줄만 하고 전원주택의 위치나 정원을 꾸민 솜씨만큼은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nbsp;</font></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br></font></b></span></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내 인생이 이렇게 변할줄은 꿈에도 상상해 본적이 없다. 아직까지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무료하지 않다는 점과 내 노후를 남에게 손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큼은 잘한 선택이라고 믿고 싶다. 아마도 아침에 일어나 아무런 할 일이 없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텃밭에 머무르는 시간도 나에겐 즐거움이고 짐승들을 돌보는 것도 나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으며 공사판에서 땀흘리는 시간도 나에겐 유익한 시간이라고 자부한다.&nbsp;</font></b></span></div><div><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b><font color="#013add">사람은 제 잘난 맛에 산다는데 그런면에서 나는 정말 잘난 사람이다. 가능하면 거친 공사 현장에서 살기에 독한 마음을 품자고 다짐해 보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마음 약한 것도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한다. 나에게 사정하면 다 들어 줄 거라 믿어 약속을 밥먹듯하는 선후배들이 많다. 독한 마음을 품을까를 생각한다. 악질적으로 살면 고민이 그만큼 줄어든다. 미친 개처럼 살면 건드리는 사람이 줄어든다. 반면, 착하게 살려면 심장병이 생기던지, 아님 스트레스로 수명이 짧아진다. 그래서 악질적으로 오래 사는 길을 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만 그게 말처럼 될진 장담할 수가 없다.</font></b></div><div><b><font color="#013add"><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br></font></b></div><div style="font-variant: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5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13add">&nbsp;&nbsp;</font></b></div><div style=""><b><font color="#013add"><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b></div><div><b><font color="#013add"><br></font></b></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7</guid>
			<dc:date>Tue, 13 Oct 2026 00:05:5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무념의 곳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고 긴 잠을 자고싶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2/cb18c95744fbec4b8afbb7fa64c56bc70645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도시 사람들도 마찮가지이겠지만 시골 사람들을 잘 못 건드리면 낭패를 만나게 된다. 촌사람이라고 순진무구할 거라 생각한다면 나폴레옹이 겨울철에 모스코바를 침공했던 것 보다 어리석은 일이다.</b></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법이나 상식보다 관습법이 우선이고 목소리 큰놈이 무조건 이기게금 되어 있기에 특별한 지연이 없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는게 상책일 거라는 생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벌써 귀촌 이후 열몇번을 이사했지만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려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이장이 누군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이다.&nbsp;</b></span><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절 동네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으니 조금 어려워 하는 것 같고 행여 싸가지 없다는 소릴 듣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헤픈 인연은 안 만들려 작정했다.&nbsp;</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금 이사한 곳도 이장과 통성명을 나누긴 했지만 내가 누군지 직업이 무엇인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일절 내색하지 않고 살고 있다. 내 성격상 누구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체질이 못되기에 사람을 피하여 은둔의 장소를 찾으려 했는데 어딜 가나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고 불편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nbsp;</span></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젊어서는 헤프게 인연을 맺고 친분을 넓혀 갔지만 이젠 조금 진지하게 살고 싶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지금에 와서 과거의 인연을 무우자르듯 할 순 없지만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것 보다 훨씬 좋겠다는 생각에서 가능하면 새로운 인연을 안 만들려 작정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옛말에 "가마가 많으면 모든 것이 헤프다"는 말이 있다. 일이나 살림을 여기저기 벌여 놓으면 결국 낭비가 많아짐을 이르는 말인데, 그럴 능력도 없지만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꼭 필요한 만남외엔 가능하면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혼사족'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혼밥족은 알겠지만 혼사족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았더니 혼자 죽는 고독사를 일컫는단다.&nbsp;</b></div><div><b><br></b></div><div><b>사람은 어차피 혼자 죽는다. 문제는 그 임종을 누구도 지켜주지 않고 죽음을 알지도 못하는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데, 주의 사자의 손에 이끌려 천당가는 사람이 혼사족인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만은 고독때문에 아무나 하고 교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만약 친구들이 많다면, 그리고 날 도울 사람들이 몇명이라도 내 곁에 있었더라면 오히려 일을 기피하려 했을지도 모른다.&nbsp;</b></div><div><b><br></b></div><div><b>혼자이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노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아름답게 디자인해야겠다는 열정이 한 여름의 열기를 잠재울 수 있었다.&nbsp; 노인이 되어갈 때 아름다워야 한다. 뒤에 나선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빠르면 어서 좁은 길을 비켜서서 앞서가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연륜이 묻어난 당부를 하는 것이 도리이다.</b></div><div><b><br></b></div><div><div><b>난 나에게 있어 그 종점은 언제나 가까스로 와 닿은 하나의 강기슭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절망감이나 후회 같은 것은 없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길 열망한다. 백 미터 경주에서 가진 힘을 다 해 뛴 사람이 4등을 했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b></div><div><b><br></b></div><div><b>요즘은 누구나 제각기 단거리 선수가 되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고들 있다. 산다는 것은 곧 뛰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어디에다 채찍을 가하고 무엇을 뉘우쳐야 한다는 말인가? 종점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주변을 휘둘러 보기도 하고 자기의 텅 빈 논을 허탈한 눈으로 내려다보기도 할 것이다.</b></div></div><div><b><br></b></div><div><div><b>세상이 불안할 때 가진 것을 손에 움켜쥐느라고 안간힘 할 것이 아니라 두 손을 활짝 펴고 갈 것은 가라고, 놓아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빈손에는 평화와 자유가 가득 담겨 질 수도 있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언제나 고독을 벗하며 적적함으로 동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월이 나를 퇴화시켜 나의 뒤편으로 빠르게 흘러 가버리는 것을 올해처럼 아프게 느낀 적은 일찍이 없을성 싶다. 그러나 어차피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세월일 바에야 나는 두 손을 활짝 펴서 그것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 주리라.</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2/543529a23efa83af932f7e86c2a01832064607.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과거로 뻗은 나의 희미한 발자국을 결코 뒤돌아보지 않아야겠다. 세월이 우리를 두고 거침없이 흘러가버리듯 우리도 멀지 않아 모든 것을 남겨두고 거침없이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무념의 곳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고 긴 잠을 자고싶다.</b></div><div><b><br></b></div><div><b>내가 현역시절이나 지금이나 가장 애창하는 곡이 있다면 '주는 저산밑에 백합'이란 곳이다.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nbsp;</b></div><div><b><br></b></div><div><b>내 몸의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간 나와 항상 같이 하여 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악마의 계교를 즉시 물리치사 날 지키시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 보시니&nbsp; 주는 높은 산성 내 방패시라."항상 입에 달고 사는 찬송인데, 그 중 2절 세번째 소절에 있는 '온세상 날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하는 소절인데 목회를 할 수록 더 애틋하게 부르게 된다.&nbsp;</b></div><div><b><br></b></div><div><b>요즘도 흥얼 흥얼 거리며 하루에도 여러번 되뇌이면서 부르고 또 부르고 한다. 그럴 때 마다 어김 없이 내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목회의 고비 고비 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 까지, 주 예수께서 함께 하심을 나타내 주심으로 늘 위로하심 속에 지금까지 수많은 태산을 넘어왔고, 또한 앞으로 넘어야 할 태산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많큼 많이 있다고 생각할 때 이 찬송은 멈추지 않을 것같다.&nbsp;</b><b>지금까지 넘어 온 것도 크고 힘이들어 숨막히듯 힘들고 지치고 어려웠는데 앞으로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넘어 설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nbsp;</b></div><div><br></div><div><b>비어가는 들녁에 콤바인이 지나 다니면서 허수아비의 웃는 모습이 보인다. 무서운 모습, 바보 같은 모습 등 처음 농부가 그려준 그대로 표정도 변하지 않고 묵묵하게 다가오는 참새들을 쫓는 일을 했을 것이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따가운 햇살에 입었던 옷의 색깔도 변하여 더욱 누더기로 변한다.&nbsp;</b></div><div><b><br></b></div><div><b>하지만, 푸른 잎이 누렇게 변하며 알곡들이 탐스럽게 익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힘든 처지를 잊게 된다. 그들은 말없이 뜨거운 들판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한 계절 소임을 다한다. 그는 낮과 밤을 통틀어 휴식도 없고 눕지도 안는다. 더욱이 대가도 없고 누구도 그를 칭찬하는 법이 없다. 세찬 겨울바람에 누더기가 들썩이면 몸 속 지푸라기 한 움큼이 바람에 빠져버린다.&nbsp;</b></div><div><b><br></b></div><div><b>본래의 모습도 사라져 새들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가끔 새들은 그의 머리에 앉아 지난 위용을 비웃기라도 하듯 몇 번 부리로 쪼아보기도 한다. 흰눈이 쌓이고 그의 몸은 차가운 한기로 얼어붙는다. 그렇게 논 가운데서 겨울을 보내고, 초봄 땅을 일굴 때 맥없이 불태워진다. 이것이 바로 그 허수아비들의 외로운 일생이다.</b></div><div><b><br></b></div><div><b>그게 모든 남자들의 운명(?)이겠지만 그 걸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억울하면 억울한대로 내 운명이거니 하면서 참아내는 수 밖에 달리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할 일이 없어지면 더더욱 부침이 심해질뿐이다. 그래서 숨가쁘게 할 일을 찾아 나서는게 그나마 내 존재감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기에 안간힘을 쓴다.</b></div></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2/84985b8930ef87135a4800c6044bac51064724.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오전에 전주 외국인 등록 센타에 가서 현장소장의 비자를 F2에서 F4로 바꾸어 매년 중국에 가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결해 주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건축일을 하는 동안은 필요한 존재이고 일을 떠나서도 내가 베픈 은혜에 대하여 고마움을 간직할줄 아는 사람이다. 집에 돌아와 두달전 심었던 쪽파를 모두 뽑아내고 새로 구입한 씨를 파종했다.&nbsp;</b></div><div><b><br></b></div><div><b>평상시완 달리 어제 오늘은 기분이 상당히 다운된 것 같아 애써 점심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어둑한 방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방안에 있으니 고양이들이 같이 놀아 달라고 졸라댄다. 책상에 앉아 있으니 발등을 타고 허벅지까지 타고 오르면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생체기를 남긴다. 내가 지금 니들하고 놀아줄 기분이 아니라 해도 두놈이 내 다리를 등산하려 한다. 아프다는데!</b></div><div><b><br></b></div><div><b><br></b></div><div><b><br></b></div><div><b><br></b></div><div><b><br></b></div><div><b><br></b></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5</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5</guid>
			<dc:date>Mon, 12 Oct 2026 06:48:4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역풍(逆風)과 순풍(順風)</title>
			<description><![CDATA[<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0/946ebbbee616042f7f28b24e72e92c5a23084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삶을 반추해 보면 할 수 있었지만 안했고, 하고 싶은 일을 못했으며 꼭 해야만 할 일을 뒤로 미룬적이 많았었다. 이는 게으름때문에 기회를 놓쳤고, 눈치보느라 못했으며 다음에 다시 기회가 있을 거라 믿는 어리석음때문에 내 삶은 헛점 투성이였다.&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b><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어쩜,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두려움이 나를 안일한 길로 내몰았을 거란 진단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나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다. 뭔가 2%가 부족한단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내가 왜 이러는가 하는 불만스런 생각에 마음의 고통을 겪은 적이 많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을 싫어한다. 결점으로 인해 상처받고 전전긍긍할 때가 많다. 이 모든 문제는 '본질적인 나'보다 이름·나이·경험·사회적 지위·보여지는 인격 등으로 이루어진 '가면을 쓴 나'에만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뿐 아니라 단점과 결점을 가지고 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단점이나 결점이 드러나는 것을 무서워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하지만 단점이나 결점이 없다는 것은 인간적 매력이 없다는 의미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위대함은 불완전함에 있다는 역설로 볼 때 그렇다. 결점이 전혀 없는 사람은 계곡이 전혀 없는 산과 같다. 서양 속담에 "결점이 없는 사람은 갈라진 틈이 없는 산악과 같아서 전혀 재미가 없다(A man without faults is a mountain without crevasses. He is of no interest to me)"는 말이 있다.</b></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톨스토이는 "사람은 때때로 남의 결점을 파헤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돋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결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은 총명하고 선량하면 할수록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한다. 그러나 어리석고 짓궂으면 그럴수록 남의 결점을 찾는다"고 했다.&nbsp;</b></div><div><b><br></b></div><div><b>어떤 점에서 남보다 뛰어나더라도 그것에 너무 의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어떤 점에 있어서 남보다 열등하더라도 그것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 잘난 사람도 어떤 점에 있어서는 남만 못할 것이며, 못난 사람도 어떤 점에 있어서는 남보다 나을 수 있다.&nbsp;</b></div><div><b><br></b></div><div><b>자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리어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의식 또한 똑같은 정신적 부담을 지는 것이며, 자칫하면 남을 시기하게 되고 혹은 고독에 빠지기 쉽다. 날씨가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된다. 항상 좋은 일만 있다면 인생의 참 맛을 느끼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b></div><div><b><br></b></div><div><b>비가 내리고 바람도 불어야만 비옥한 땅이 된다. 봄바람은 어설프고 을씨년스럽지만, 겨울을 지낸 나뭇가지들을 계속 흔들어서 새 잎이 나오도록 수액을 끌어올리는 운동을 돕는 것이다. 내 친구중에 꽃나무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필 때와 질 때가 너무 상반되어 싫다고 한다. 하지만 지저분하게 진다고 기피할 건 아니다. 어차피 인생도 그렇게 낙화하는게 아닌가? 영원한 이름다움이 존재하질 않는다.&nbsp;</b></div><div><b><br></b></div><div><div><b>바람을 마주보고 맞으면 역풍(逆風)이지만 뒤로 돌아서서 맞으면 순풍(順風)이 된다. 움켜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 또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내가 평생을 꿈꿔왔다고 믿었던 오늘,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살다보면 그 모든 것들의 ‘진짜 모습’에 대한 고민이 불쑥 가슴을 파고드는 때가 있다.&nbsp;</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0/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23095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가시 돋친 한마디에 마음을 베이는 날이면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고 외로움까지 쏟아진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다. 그럴 때마다 '지켜보는 가마솥은 더 늦게 끓는다'는 격언을 떠올린다. 아직은 실망하기에 이르다는 생각을 품는다.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한 개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젊은이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늙은이는 지름길을 안다.</b></div><div><b><br></b></div><div><b>나일먹고 보니 이제서야 겨우 눈을 뜨고 사물을 인식할 정도가 되었다. 내려놓아도 손해될 게 전혀없다. 내 시대는 끝났어도 그 다음세대, 그 다음세대가 자라고 있기에 최소한 욕심만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꼭 그리하겠노라고 다짐을 한다.</b></div></div><div><b><br></b></div><div><b>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연대기]에서 "인간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친숙함, 안정성, 편안함의 감정들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nbsp;</b><b>익숙한 환경과의 결별은 새로운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넣고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맞이하게 한다. 변화 그 자체가 절대적인 善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세상은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조금씩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는 멈출 수도 없고, 막을 수는 더더욱 없다.&nbsp;</b><div><b><br></b></div><div><b>그래서 변화에 매우 수동적인 사람들은 옛것의 가치를 지킨다는 이름으로 保守라고 말한다. 기실 그 단어 속에는 극도의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변화를 원하는 심정은 동일하지만 변화가 가져올 여러 상황들에 대한 대처가 난감하기 때문이다.</b></div><div><b><br></b></div><div><b>나는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어쩔지 모르지만 지금은 계속 변화를 위한 도전을 하려 마음먹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는 病이 나는 체질이다. 더군다나 성하의 계절을 너머 만추의 계절이 아닌가? 이런 계절에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다면 나는 제풀에 넘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b></div><div><b><br></b></div><div><b>간밤에 코피를 흘렸다. 어제 너무 피곤했었나 보다. 관리해야 할 집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하고도 4개이다 보니 하루에 한집씩 옮겨 다니며 잔디와 풀을 제거하기에도 너무 벅찬 일의 연속이다. 돌아서면 풀이 나는 계절은 아니지만 거의 2m 가까히 자란 망초를 제거하고 풀을 모아 불로 태우다 보면 거의 해질 무렵이다.&nbsp;</b></div><div><b><br></b></div><div><b>집을 구경오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긴 하지만 풀을 제거하지 않으면 풀씨가 날려 이웃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에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내 몸도 거의 파김치 수준이다. 일용잡부를 한명 더 고용하면 내 몸이 조금은 더 편해지겠지만 풀을 모아 처치하는 것조차 남의 손에 맡기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 돈을 모아 친구들을 불러 가을 생선 전어구이를 먹는게&nbsp; 나을 거란 생각이 들어 힘겹지만 노동을 한다.&nbsp;</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0/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23110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도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야장에 가서 쪽파씨를 구입해 어느 정도 자란 쪽파를 수확하고 다시 심으려 마음먹었다. 조금은 늦은감이 있지만 지금 심으면 김장 전에 한번 더 수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돈도 안되는 무모한 짓(?)을 감행한다. 오늘 수확할 쪽파 정도라면 농약으로 키운 채소완 비교할 수 없는 무공해 자연산이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할 생각이다.&nbsp;</b></div></div><div><b><br></b></div><div><b>이미 생명의 신비를 만끽한 마당이기에 나에게는 식품이란 것외엔 전혀 아까운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나이에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중이다. 늙은티를 내지 않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행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제와 오늘, 나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나는 어제보다 한걸음이라도 진보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뒤로 물러서고 있는가, 어제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nbsp;</b></div><div><b><br></b></div><div><b>어제를 무의식적으로 답습했던 지난 날을 반성하면서, 지금 나의 모습과는 달라져 있을 내일의 희망을 보려 노력중이다. 아인슈타인의 지능지수는 일반인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어록에서 유추하자면 그가 일반인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기게 된 계기는 선천적인 지능에서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남다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nbsp;</b></div><div><b><br></b></div><div><b>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지 않으리라는 신념, 그것을 바탕으로 각고의 노력과 실천을 행한 것이 아인슈타인을 범재가 아닌 천재의 반열에 올려놓은 시작을 만들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에 안주한다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이다.&nbsp;</b></div><div><b><br></b></div><div><b>엊그제 시작된 벼베기가 불과 이삼일 사이에 거의 절반 가량 수확했고 가을 들녁이 텅비워져 간다. 바로 엊그제 모심기를 한 것 같은데 한해의 결실이 거두어 들여지는 모습을 보며 참 세월이 빠르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nbsp;</b></div><div><br></div></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4</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4</guid>
			<dc:date>Sat, 10 Oct 2026 23:13:59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페루는 너무 멀고 Varanasi 정도라면 도전해볼만 하다.</title>
			<description><![CDATA[<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0/1298152676b746e11ee8e70ed8ef9b8410050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요즘 한창 고구마를 캐는데 주로 베트남 아줌마들이다. 하루에 8만원 정도받고 고구마를 캐는데 이들이 아니라면 농촌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할 정도이고 돼지를 키우거나 비닐 하우스 안에서 키우는 딸기 등 밭작물도 거의 동남아인들이 아니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형편이다.&nbsp;</b></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모두가 편하고 안락하게 살고자하기에 실업자는 늘어나도 차라리 노숙을 할망정 힘든 일은 거들떠 보질 않는 추세이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렇게 되었는지 믿어지지 않지만 이대로 가다간 큰 일이 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span>&nbsp;&nbsp;</b></div><div><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은 올림픽 격투기 종목에서 메달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전 같으면 복싱에서 몇개쯤 거뜬히 거두어 들이던 메달밭이었는데 이제는 매스컴에서 조차도 권투 중계를 기피하고 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예전엔 홍수환의 권투가 있는 날은 거리가 한산할 정도였고 지금 사람들은 기억할지 모르지만 김기수 장정구 등 세계 참피언은 국민들의 우상일 정도였다.&nbsp;</span></b><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그만큼 힘이들고 격렬한 운동을 하려는 사람이 그만큼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하긴 3D로 불리워지는 곳엔 아무리 구인광고를 내어도 사람을 구할 수가 없기에 동남아인들로 채워진 것은 오래전일이다. 내 현장만 하더라도 외국인 일색이다. 외국인이 아니면 한국 건축 경기는 당장 올스톱되고 말 것이고, 시골도 필리핀 베트남 신부가 아니면 장가못 간 몽달귀신들이 득실거릴 것이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사람들이 너무 쉽게 살려하기에 대한민국이 위험해지고 있다. 오늘도 햇볕에 화상을 입으면서 까지 인부들은 잔디를 깍고 난 갈쿠리로 잔해를 끌어모아 태우면서 주말에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죄(?)로 지금이라도 더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려운 순간 순간을 견디고 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아침부터 굶은 탓도 있겠지만 인부들의 왕성한 식욕을 보면서 젓가락만 빨다 나온 탓인지 어지럼 증상이 생기고 혈당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탁에 앉으면 마치 사약을 받는 것 처럼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이대로 라면 100세까지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육신이야 어차피 점점 내리막 길을 걷겠지만 정신적으로도 한없이 나약해지고&nbsp;</b><b>野性이</b><b>&nbsp;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의기소침해 지는 분위기이다.&nbsp; &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인천에 살 땐 서울 대공원을 자주 찾았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우리와 매끈하게 다듬어진 동물들을 보면서 한 때의 無聊함을 떨쳐 버리고자 이곳을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철창(鐵窓)안에 갇힌 고릴라(gorilla)를 보면서 야생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만끽해야 할 동물이 인간의 노리개감이 되고 철저히 강요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되면서 憐憫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密閉된 좁은 공간안에서 강요된 생활을 하는 저들에게 野性이 破壞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릴적부터 인공적으로 만들어 진 습성때문에 가축화가 되어 자연으로 돌려 보내도 생존할 확율이 거의 없다는 사육사의 말을 들으면서 씁쓰레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젠가 오랫동안 安逸한 목회를 한 탓인지 목사의 野性(?)이 살아진 것 같은 허탈감을 느끼며 괴로워 한 적이 있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0/4443ef5dc115099024a48567e4d17d9210200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너무 오랫동안 우리안에 갇혀 이제는 동공(瞳孔)이 흐려져 하루 하루를 無聊하게 지내는 미스터 고(gorilla)처럼 새로운 도전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았다.&nbsp;</b></div><div style=""><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b></div><div style=""><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난날 어떻게 개척교회를 했었는지? 어떻게 교회를 몇차례 지었는지? 모를 일이다. 정말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로 느껴지는 일들로 사투를 벌리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왜 지금은 그 때의 감격과 패기가 살아졌는지를 곱씹어 본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젊은 후배들이 들으면 날 때려 죽이려하겠지만, 또한 지독한 교만한 생각이겠지만 아직도 개척을 하면 한 200명 교인을 만드는 것쯤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게 얼마나 교만한 발상인줄 잘 알지만 마음만큼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또다시 서울대공원을 찾고 싶은 생각이 든다. Gorilla 아우님에게 아직도 野性이 남아있는지를 물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기회를 보아 철창문을 부수고 함께 탈출하자고 꼬드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나는 내 가족들이 좀 더 치열하게 살기를 원한다. 편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 늘상 딸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를 위한 기도보단 딸들을 위한 기도의 길이가 더 길고 간절하다.&nbsp;</b><b>확실히 딸들이 에비보다 낫다. 내가 그 나이엔 건물은 고사하고 내 앞으로된 한평의 땅도 집도 없었는데, 두 딸이 모두 상가의 주인이 되었으니 축하할 일이고 축복할 일이기에 감사가 넘친다.&nbsp;</b></div><div><b><br></b></div><div><b>선친께서는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인도 하시니'를 즐겨 부르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길이 순탄한 길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하여 언제나 기도 제목으로 삼으셨다. ‘길’은 길의 받침 ‘ㄹ’의 모양처럼 길게 늘어져 길이 되었을 것 같다. 거칠고 힘이 들기에 때론 내가 대신 걸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b></div><div><b><br></b></div><div><b>분명히 나보다 잘 살지만 그래도 안스러운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울컥해 진다. 아내가 키운 자식들보다 자식들이 손주를 키우는 것이 더 힘들 거란 생각이 드니 대접을 못받고 사는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대신 살아줄 순 없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항상 이럴게다. 즐거움은 본인들의 묷이고 어려운 일은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다행히 주님께서 자식의 축복을 주셔서 한번도 자식문제로 고심해 본 적이 없고 자식들도 어려운 내색을 보이지 않고 자기의 길을 잘 가고 있다. 피차에 안스러워하며 살아 간다.</b></div><div><b><br></b></div><div><b>러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작가 로맹 가리(1914-1980). 1980년 12월 2일 오후가 저물 무렵, 로맹 가리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유서 마지막 줄엔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의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Les oiseaux vont mourir au P rou)'를 다시 음미했다.&nbsp;</b></div><div><b><br></b></div><div><b>새들은 페루의 리마 북쪽10Km쯤 떨어진 해안에 널브러져 죽는다. 왜 새들은 페루로 가서 죽는 걸까? 정확하게 말해 새들은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 북쪽에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새들에게는 자신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리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b></div><div><b><br></b></div><div><b>이달 말쯤 인도의 바라나시를 가기로 했다. 겐지스 상류에 있는 바라나시는 인도인, 특히 힌두교인들에게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영혼의 안식처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바라나시로 가서 죽음을 기다린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은 화장을 시키지만 임산부나 하류 계층은 겐지스 강에 돌에 묶여 수장을 시킨다고 한다. 물이 많을 땐 시체가 강에 떠다니는 모습이 흔하다는데, 그들은 겐지스강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게 평생의 소원이라고 한다.&nbsp;</b></div><div><b><br></b></div><div><b>시체가 떠다니고 극강의 오염된 강에서 목욕하고 빨래하는 인도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전세계를 수차례씩 여행했으면서도 인도만큼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왜 저들이 늙거나 병들면 겐지스 강가에 앉아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더 나일 먹기전에 나도 겐지스 강가에 가보려 작정했다.&nbsp;</b></div><div><b><br></b></div><div><b>'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고(Les oiseaux vont mourir au P rou)' 힌두교인들은 떄가되면 바라나시에 가서 죽음을 맞이한다는데, 한국 사람들은 중환자실에서 연명 치료에 기대감을 가지고 그 날을 연장시키려 혈안이 되는데, 내 눈으로 페루까지는 못가보더라도 바라나시에서 화장되는 시체를 보고 강가에 떠다니는 송장을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nbsp;</b></div><div><b><br></b></div><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10/1e16e5d80d3f844d6c22ebe268102dc510444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사람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다. 처음에도 혼자였고, 마지막도 결국 혼자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지만, 인간은 본질상 ‘고독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새들은 혼자 날아오르고 혼자 떨어져 내린다. 무리를 지어 날더라도 다른 새의 날갯짓을 대신 해 줄 수는 없다.</b></div><div><b><br></b></div><div><b>태초의 생명이 올라왔을 바닷가 언저리 어딘가에서 삶의 끈을 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제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고독의 끝에서 절망과 타협하며 희망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댓가를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nbsp;</b></div><div><b><br></b></div><div><b>인간만이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하고 아둥바둥한다.&nbsp;</b><b>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는 데, 그 끝이 어딘줄도 모르고 허둥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인다. 그러므로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오늘 하루만 해도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움이 작렬했지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Les oiseaux vont mourir au P rou)'는 말을 회상하며 내가 죽을 자리는 한가하게 여유작작하는 자리가 아님을 다시 인식했다.</b></div><div><br></div><div><b>나는 내 인생이 서럽다고 느껴질 땐 시작(詩作)을 시도한다. 이 때의 시편들은 처량하고 맑은 여음(餘音)으로 하염없이 서럽다.&nbsp;</b><b>시적 사유는 명상적이고 고요한데 저릿저릿 온몸으로 퍼져가는 기운을 느낀다. 그 서정적인 여음속에 로뎀나무 숯불처럼 오래 꺼지지 않는 뜨거움이 있고 바람에 우는 대숲처럼 서늘한 기운도 있다. 가을밤이 깊어간다.&nbsp;</b></div><div><b><br></b></div><div><br></div><div><b><br></b></div><b><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b><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div><br></div></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3</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3</guid>
			<dc:date>Sat, 10 Oct 2026 10:55:07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고향에서 노후를 보내고 죽을 거라는 결심</title>
			<description><![CDATA[<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9/98e6ea0dcfc0173504024ee07271bdb111341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한 땐, 내가 죽으면 여섯명이 관을 옮길 때 꽤나 죽을 맛일 거라고 낄낄거렸는데 이젠 관속에 여자가 누워 있다고 오해할까봐 걱정이라고 낄낄거린다.&nbsp;</b></div><div><b><br></b></div><div><b>내 목표는 절대 60kg미만으로는 떨어지지 않으려 작정했지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마음대로 안된다.&nbsp;</b></div><div><b><br></b></div><div><b>몇년 전 귀촌하기 전까지만 해도 114kg까지 나갔던 걸 감안하면 사실 너무 체중이 빠진 건 사실이다. 5년까지만 해도 72kg이더니 지금은 58kg 정도이다. 내년 고3이 되는 큰손주는 이미 내 체중을 추월해 버렸고 둘째 세째 손주들도 곧 나를 추월할 것이다.&nbsp;</b></div><div><b><br></b></div><div><b>내가 주로 이용하는 의원 의사는 당뇨 혈압 수치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신장이나 간 위 심장 등 우려했던 이상 소견이 없어졌지만 빈혈이 심하다며 철분부족에 신경쓰고 영양실조에 관심을 가지라고 진단을 내렸다. 말하자면 체중 미달이 지속되면 근육저하 증상으로 인해 걷을 때 지장이 생길 거라고 반협박조로 권면을 한다. 밥맛도 없지만 입맛이 없는데 무슨 재간으로 체중을 늘릴 수 있나?&nbsp;&nbsp;</b></div><div><b><br></b></div><div><b>가만히 거울을 들여다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의 몰골이다. 젊었을 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갑짜기 살이 빠지니 주름살이 많아져 사진을 찍을 땐 꼭 라이방을 낀다. 선그라스말이다. 살을 빼려 그렇게 노력할 땐 빠지지 않더니 이젠 살을 찌우고 싶은데 대책없이 빠져 나간다. 지인이 티셔츠 두벌을 가져다 주었다. 사이즈 100짜린 너무 커서 못입을 정도이다. 95가 적당한 사이즈다. 예전엔 와이셔츠도 110짜린 단추를 잠글 수 없었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nbsp;</b></div><div><b><br></b></div><div><b>장농 안에 양복이며 옷이 가득하지만 입을만한게 한개도 없다. 10년만에 60kg 가량이 빠졌다. 일년에 6kg씩 줄어든셈인데 이러다간 40kg대에 들어서면 머지않아 손주하고 비슷해질지도 모르겠다. 예전 바지를 입어 보니 허리띠가 없으면 순식간에 발목까지 내려온다. 이건 인간이 입은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nbsp;</b></div><div><b><br></b></div><div><b>밥한그릇을 다 비우기 위해 선 일단 냉수에 말아야 한다. 도대체 배가 고프질 않고 고기는 눈으로 보기만 해도 입맛이 싹 달아난다. 하지만 기운없어 일을 못하겠다는 말은 엄살에 불과하다. 적게 먹지만 일은 우직스럽게 한다. 오늘도 공주에 귀촌한 박목사님과 현장소장과 함께 일전에 깍아 놓았던 풀을 태우고 다시 잔디밭을 예초기로 깍으면서 연못 주변에 풀을 날렵한 호미질로 장리했다.</b></div><div><b><br></b></div><div><b>나는 누누히 밝히지만 서서 하는 일엔 잼병이지만 앉아서 하는 일엔 하루종일 일을 해도 지치지 않는 체질이다. 내 딸들이 내 텃밭을 보면서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지만 나는 텃밭일은 절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거부하는 편이다. 전문가 솜씨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농부의 흉내는 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nbsp;</b></div><div><b><br></b></div><div><b>다음주쯤 마늘을 심고 곧이어 양파도 넉넉히 심을 예정이지만 밑거름을 아끼지 않으면 상품 가치가 있는 채소를 만들어 낼 자신이 있지만 올해 거름을 배정받지 못했기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겠지만 흉내는 내볼 생각이다. 내년엔 100포 정도 신청하여 밑거름을 많이 주고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예정이다.&nbsp;</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9/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11364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새벽기도회에 가는셈치고 통상적으로 4시에 기상을 한다. 가축들 먹이를 만들어 주고 자그마한 텃밭에 물을 주고 6시경에 집을 나서 인력사무소에 들려 외국인 노동자를 태우고 현장에 도착하여 커피 타임을 가진 후 늦어도 7시쯤 일을 시작하는 생활을 10년째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가물 가물하다. 내 일상이 너무 틀에 억메어 기계적으로 살아 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b></div><div><b><br></b></div><div><b>숙소에 돌아오면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쓸어지 듯 잠자리에 들면 또 같은 날이 반복된다. 그러니 오늘이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아리송하다. 벌써 10년이 넘도록 이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고 최근들어 2개월 가까이 땅바닥에서 먼지를 마시며 식사를 하다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또한 기사식당에서 배달해 오는 음식이 너무 한결같아 짜증이 난다.&nbsp;</b></div><div><b><br></b></div><div><b>결국 밥을 찬물에 말아 들이킬 때가 많은 데,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하니 마늘쫑과 고추장아찌를 지인이 가져다 주어 그럭저럭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어제만 해도 광주 공주 군산 등지의 목사님 내외분들과 튓고기를 먹으면서 주인에게 따로 '짜빠께티'를 끓여 달라해서 반쯤 먹다가 중단했다. 예전에 비하면 라면의 분량이 현저히 줄었지만 그것도 반절 이상 먹어본적이 없을 정도로 식탐이 사라져 버렸다.</b></div><div><b><br></b></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이런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나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어머닌 영향이 부족한 시절이라 그 비싸다는 '원기소'를 자식들에 꼭 먹였다. 지금 사람들은 원기소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원기소를 매일 매일 규칙적으로 복용하시면, 풍부한 비타민을 비롯한 각종 영양 성분들이 골고루 보급되어 위장에 근본적인 활력을 줌으로써 아름다운 건강미를 창조하여 줍니다. 단기 4292년(1959).'이란 선전을 기억할 것이다.&nbsp;</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div><b>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잣집 친구들이 원기소 먹는 걸 부러워했는데 우리 부모님은 원기소를 자식들에게 먹이려 상당한 비용을 들이셨던 것 같다. 그 힘으로 114kg까지 나가는 우량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원기소를 챙겨줄 어머니가 없으니 자연 살이 빠질 수 밖에.....가능하면 원기소 먹던 힘을 내어 60kg을 유지하는게 어머니에 대한 예의라고 마음에 작정했다.&nbsp;</b></div><div><b><br></b></div><div><b>명절 때 시어머니가 역귀향을 하신 까닭으로 작은 딸 애가 에비를 찾지 못했었는데 년휴를 통해 오늘도 여섯시간이 넘게 지체된 길을 달려왔다. 혹시 입맛이 살아날까를 고려하여 익산 맛집 장어집으로 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도 있지만 아버지 주머니 걱정말고 얼마던지 먹으라고 카드를 내놓으니 중학생이 된 손주 녀석이 할에비의 호탕함에 안심이 되었는지 엄청 많이 먹는다.</b></div><div><b><br></b></div><div><b>뼈가 한창 자라는 시기이니 다이어트 생각말고 일단 먹고 싶을 땐 무조건 먹으라며 할에비도 어릴 때 라면 다섯개씩 먹었던 무용담을 들려 주었다. 나는 손주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픈 시기이니 잘 먹기도 하지만 할에비에겐 지병을 고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주지시켰다. 손주들 먹는 걸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듯하다.&nbsp;</b></div><div><b><br></b></div><div><b>도대체 배가 고프지 않으니 별일이다. 하루 세끼를 다 굶어도 전혀 공복감이 없다. 위가 그만큼 줄어 든 반증이겠지만 문득 이렇게 불량 체질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생기기도 한다. 딸애들은 먹기 싫어도 어거지로 라도 먹으라고 수없이 강요를 받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nbsp;</b></div><div><b><br></b></div><div><b>폭식으로 인한 비만을 막기 위해 위를 절개한단 말을 듣었지만 위를 확장시키는 기술이 있는진 모르지만 요즘같아 선 위를 늘려 볼 방도가 있는지를 찾고 있는중이다. 이미 악바리 소릴 들은지 오래이기에 고생 따윈 염려가 되지 않는다. 다만 때가 되면 밥 한공기를 다 비워 보았으면 좋겠다.</b></div><div><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div></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9/f7d31de0484726d2332ae4b772a389ac113751.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잠시 아빠 곁에서 온갖 예쁜짓을 하던 작은 딸애가 떠났다. 지금도 고속도로에 있겠지만 이 먼길을 오가는 모습에 힘을 얻는다. 처음엔 건강이 회복되는대로 인천으로 올라오라고 강요했지만 이 말이 사라진 건 아빤 고향땅에서 죽을 거란 걸 인정하는 눈치이다. 우리는 고향을 이야기 할때&nbsp; 부친 원고장인 족보의 근원을 묻지만 또 어디에 태(胎)를 버리고 자났느냐에 따라 고향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대개 소시적 뛰놀던 운동장 .교실. 옛친구,시냇가, 거닐던 오솔길, 옹달샘, 정든 얼굴들.구수한 토박이 방언. 보이스의 억양, 잊을 수없는 추억과 정서&nbsp; 그것이 문화가 되고 몸에 배어 향기를 날리고 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내 딸들도 다른 곳이 아닌 고향에서 노후를 보내겠다는 내 결심에 박수를 보내 줄 거라고 믿고 있다. 만약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라면 나를 가련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수구초심(首丘初心)하려는 내 의지가 확실하기에 조금은 안심하는 것 같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만약 여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패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할 일없는 늙은이가 되어 초라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하나님이 끝내기 전에 내가 임의로 끝맺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내 맘대로 섣불리 오판하지 말고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는 실패가 없다(빌 1:6)는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빌 2:13). 하나님의 소원을 알아야 한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게 중요하다.&nbsp;</b></div><b><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b><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2</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2</guid>
			<dc:date>Fri, 09 Oct 2026 11:39:2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내년에 다시 본다는 보장이 없다</title>
			<description><![CDATA[<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7/264a83e8f6958a50b62da2ebe39219b02315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눈부신 가을 아침이다. 들녁은 이미 벼가 익어 타작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은행나무도 새노랗게 채색되고 있다. 이내 단풍이 들 거란 생각이 들자 새삼 세월무상을 느끼게 된다.</b><div><b><br></b></div><div><b>오늘은 절기상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이다. 한로(寒露)는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 9월, 양력으로 10월 8일경인데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말뜻 그대로 찬이슬이 맺힌다.</b></div><div><b><br></b></div><div><b>한로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찬 이슬이 내린다. 아침 저녁으론 쌀쌀하여 옷가지를 가을 옷으로 갈아 입은지 오해이다. 이제 가을이 점차 깊어가는 절기라서 농촌이나 산촌에서는 농작물 수확하기에 매우 바쁜 철이다.&nbsp;</b></div><div><b><br></b></div><div><b>옛 선조들은 이무렵 높은 산에 올라가 수유열매를 머리에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색이 벽사력(辟邪力)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당들이 푸닥거리를 할 때 붉은색을 쓰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nbsp;</b></div><div><b><br></b></div><div><b>두보(杜甫)의 詩에 보면, '내년 이 모임에 누가 건재할 지 아는가, 얼근히 취한 눈으로 수유를 쥐고 자세히 들여다 보네(明年此會知誰健 醉把茱萸仔細看).'라는 시가 유명하다. 인생의 찬 이슬이 맺히는 이 계절이 사람마다 나이마다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내년에 다시 본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b></div><div><b><br></b></div><div><b>요즘은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노력해서 '나이'를 먹은 게 아니고 살다보니 저절로 나이를 먹었기에 나이 먹은 것을 내 세울 것이 없다. 나이 듦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권위도 지위도 아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의 조그만 동정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나일 먹을 수록 남에게 기대어 살지말고 혼자서 즐기는 외로운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nbsp;</b></div><div><b><br></b></div><div><b>인간의 개성이란 그 영혼 안에서 주어진 한계의 생명이다. 어렸을 때는 영혼의 성숙함이 미숙하고 개성이 발달되지 못하여서 소속감을 가지고, 즉 부모 형제 선배 스승 이웃한테 인정 받음으로써 안정감을 느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노인이후 부터 성숙하고 성장한 자기 영혼의 골방에 들어가 자기 속에 보화를 갖고 외롭게 혼자서 다둠는 것이어야 한다.&nbsp;</b></div><div><b><br></b></div><div><b>생의 중심이 어렸을 때는 감각적인 것에서 청소년 때는 이상적인 것과 활동적인 것인데 반해 노인이 되고부터는 현실적이고 자기 안에 세계로 깊어진다. 마치 가을이 되면 잎들이 떨어지고 그생명이 뿌리로 내려가 추운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듯 노인 이후에 삶도 점차 자신속으로 깊이깊이 들어 간다.대단한 허무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창 펄펄 피가 끓는 젊은이라 할지라도 간혹, 혹은 간헐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은 있다.&nbsp;</b></div><div><b><br></b></div><div><b>그래서 한로는 일년의 내면, 인생의 내면을 바라보기 좋은 절기이다. 찬 이슬에 맺힌 달빛을 볼 수도 있고, 새벽빛이 찬이슬에 스며들어 신비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이슬방울이 국화꽃잎에 맺혀 있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한로가 지나가면 기온이 '뚝' 떨어질 것이다. 다음이 가을 절기의 마지막이다.&nbsp;</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7/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23214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엊그제만 해도 한낮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이었는데 이젠 내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점버 차림이 어울리는 계절이다. 자재상을 하는 지인이 현장에서 입으라고 여러벌을 가져다 주어 인부들에게 단복처럼 나눠 주었다. 아직 인부들은 반팔옷을 입고 일을 하지만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하다.&nbsp;</b></div><div><b><br></b></div><div><b>이내 입동이 다가 오겠지만 봄과 가을은 너무 짧아서 아쉽다. 하지만 짧은 것은 가을만이 아니다. 영원하자고 맹세한 연인들의 사랑도 짧고, 죽마고우라고 믿었던 친구들의 우정도 아주 짧다.&nbsp;</b></div><div><b><br></b></div><div><b>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자신의 마음만 모든 것을 본다. 그래서 간혹 친구나 연인이나 혹은 가족이라도 섭섭하고 보기 싫을 때가 있다. 그 때 한로의 찬 이슬을 손으로 만져보자. 삶이란 이 찬 이슬처럼 금방 사라지고, 저 광활한 우주의 한 점 티끌처럼 떠돌다 사라지는 그 무엇인 것이다. 타인에게 큰 기대를 하지 말고, 그냥 그저 사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한 길이다.</b></div><div><b><br></b></div><div><b>조금 있으면 국화 축제가 시작될테지만 이 이슬방울이 국화꽃잎에 맺혀 있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도시에는 가을이면 국화 전시회가 반드시 열리기 마련이다. 옛 시절처럼 국화전을 지지고, 국화 술을 빚어 먹지는 못할지라도 국화전시회를 보고, 찻집에서 전시회에서 맡았던 국화향기를 떠올리며 국화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이 가을을 즐기는 한 방법일 것이다.&nbsp;&nbsp;</b></div><div><b><br></b></div><div><b>설악산이 점점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이곳까지 단풍이 내려 오려면 한동안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우리집엔 맨드라미와 형용색색의 꽃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국화도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끝내고 가을을 불러 들이고 있다.&nbsp;가을이 깊어간다. 어느 틈에 가을이 샛길로 돌아와 나를 저만치 앞질러 간다.&nbsp;</b></div><div><b><br></b></div><div><b>뒤돌아보니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마치 올 봄에 시집갔다가 친정에 돌아온 새댁의 다홍치마처럼 곱다. 시내에서 내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엔 억새가 가을 햇살에 눈부실 정도로 발광체 역할을 한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자연의 테마로는 단풍과 억새를 꼽을 수 있다. 단풍이 오색 빛 화려함으로 가을을 꾸민다면 은빛 억새는 은은한 느낌으로 수수한 듯 황홀한 가을의 낭만을 담아낸다.&nbsp;</b></div><div><b><br></b></div><div><b>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오히려 억새를 '가을의 서정'에 곧잘 빗대곤 한다. 한바탕의 가을 바람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억새의 군무. 눈앞에 어른 거리는 은빛물결은 '가을의 열병'을 한아름 안겨 놓고 사라진다.&nbsp;어느새 가을이 짙어지긴 했나 보다. 강아지 녀석 털빛도 바래지고 녀석 등짝 털의 감촉이 뻣뻣해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nbsp;</b></div><div><b><br></b></div><div><b>내 얼굴의 피부도 까칠해지고 가을을 타는 머리카락도 유연기를 잃어가고 있다. 봄에 돋은 싹들이 여름날 번성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잎새의 색이 바래지고 거칠어 지는 것과 같은 이치는 비단 겉모습만 그리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nbsp;가슴속에선 공연히 가을 바람이 불고 서걱서걱 댓잎 스치는 소리도 날 것이고 떠나야 할 때를 앞둔 쓸쓸함도 생겨날 것이니 그 또한 가을의 기질이 가져다 주는 정서의 변화들이겠다.&nbsp;</b></div><div><b><br></b></div><div><b>요즘들어 한층 높고 푸르러진 쪽빛 가을하늘이 청명하다 못해 눈시울이 불거질 지경이다.&nbsp;결실과 조락의 이 분기점에서 조우하는 계절 앞에서 유독 나는 남다른 몸살을 앓는다. 모르긴 해도 어딘가에 감추어진 한 가닥 실낱같은 그리움이나 꿈과도 같은 희망의 절대치가 똬리를 틀고 있는 까닭이리라.&nbsp;이젠 거리를 나가보아도 온통 가을 색체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하나같이 우울한 색깔이다.&nbsp;</b></div><div><b>그 어디에서도 웃음을, 웃음냄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숨죽이며 지켜보아야만 하는, 방관과 자조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 소시민적 비겁성을 명패로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b></div><div><b><br></b></div><div><b>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다. 낙엽이 나뒹구는 쓸쓸함에 가을 남자는 빈 노트에 가을을 쓴다. 연분홍빛 벚꽃 터널이 몽환적이라면 줄지어져 흩날리는 은행나무 가로 숲은 깊은 사색의 감흥을 게워낸다. 그리하여 조금은 쓸쓸한 기운이 감돌고 뭔가 채움을 기대하는 심리가 발동한다.&nbsp;조금만 이상한 표정을 지어도 친구들은 “너 가을 타는 모양이다”라고 핀잔을 준다.&nbsp;</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7/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23345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가을을 탄다’는 참 오묘하면서도 아름다운 말이다. 가을이 되면 심적으로 우울해지거나 침체되는 심적 상태를 표현하는 것일게다. 여리고 아린, 숭숭하고 털털한 마음결을 읊은 시구가 아닐 수 없다.&nbsp;</b></div><div><b><br></b></div><div><b>가을은 왠지 참한 규수의 인품마냥 들뜨지 않아 좋다. 물먹은 티슈처럼 차분하다. 그러면서도 산만하지 않은 색채의 수채화를 볼 때처럼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는 건 또 무엇 때문일까? 인생이 무상해지면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털갈이를 하는 동물들처럼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nbsp;</b></div><div><b><br></b></div><div><b>남성은 모험과 스릴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 한순간 현실에서 일탈하려는 성향을 보일 수 있다.가족이 옆에 있어도 사랑이 그립다. 남자의 가을은 싱숭생숭하고, 가을날의 푸닥거리로 잊고 지낸 추억 속의 그 사랑이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새로운 사랑에 목말라한다. 그나마 이렇게 가을앓이를 하는 것은 복에 겨운 사치일지도 모른다.</b></div><div><b><br></b></div><div><b>더 나이 든 남성들은 가을이라도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줄어들면서 가을도 못 탄다. 이런 남편은 그저 아내 치마 꼬리만 잡고 따라다니려고 하니 딴짓하려고 애썼던 지난날의 전력때문에 구박받으면서도 일언반구(一言半句)도 못한다. 하루 세끼 다 찾아먹으려하는 삼식이들 외엔 대부분 가을타는 남자가 된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b></div><div><b><br></b></div><div><b>나일먹으면 더위에 약해지고 추위에 취약성을 들어낸다. 젊어서는 대충 살았어도 늙으면 부대비용이 많이 들어 간다.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인부들 중에 가장 베스트만을 선정하여 다음주부터 몇일간 시골집 리모델링을 해주기로 했다. 요즘은 망치질만 할줄알면 아무나 목수라고 자처하는데 제대로 배운 인테리어 목수를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nbsp;</b></div><div><b><br></b></div><div><b>하긴 엉터리 목사도 많은 세상이니 사이비 목수도 많을 것이다. 어설프게 신학서적 몇권 읽고 강단에서 폼잡는 사람들을 보면 솔찌기 가소로운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설익은 목수가 연장 탓한다고 주변 환경을 탓하기 전에 내공이 있는 목회자가 그립기도 하다.&nbsp;</b></div><div><b><br></b></div><div><b>오늘은 광주 공주 군산 등지에서 벗들이 올 거라는데 시내 맛집을 예약해 놓았다. 고기 먹어본지가 언젠지 가물 가물할 정도이지만 오늘은 몇조각이라도 시식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겨울을 나려면 체중을 좀 늘려야 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체중을 늘리는 일이다. 예전엔 살빼는게 소원이었는데 이젠 살찌우는게 소원이 되고 말았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b></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1</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1</guid>
			<dc:date>Wed, 07 Oct 2026 23:39:53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아랫목 타령</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6/8e9196482770065b0b734717ba9060a622271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아침 기온이 현저하게 떨어진 기분이다. 아직 한낮은 여름의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만 한여름의 더위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귀촌 이전엔 겨울은 낭만적이고 심지어는 몽환적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골에 거처를 정하고 나서는 추위와 눈이 내려도 걱정, 비가 많이 내려도 걱정이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이제 조금있으면 풀을 뽑으러 출근해야겠지만 간밤에도 방안의 냉기가 가시질 않아 원적외선 난로에 얼굴을 데일 정도로 가까히 했지만 발이 시려워 양말을 신고도 걸상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청승을 떨어야 했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옛날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것 같다. 입는 것도 부실하고 먹는 것도 빈약하니 겨울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배고파 지친 이들에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추운 겨울이었기에 춥고 배고픔을 직접 체험한 이들에게 겨울생활은 공포스런 기억이며 세대가 몇 번 바뀐 지금 먹거리 걱정이 없는 세대들에게까지 춥고 배고프다는 말은 두렵고 자존심 상하는 말이 되었다.&nbsp;</font></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옛날에는 비닐로 밀봉한 창문 때문에 환기를 포기해야만 했었다. 집 안 구석구석, 찬바람이 솔솔 들어왔던 시절이니, 외풍이 곧 환기였다. 그 시절의 겨울은, 거리엔 군고구마나 붕어빵 같은 노점상들이 생겼고, 집 안 한가운데엔 석유난로나 연탄난로가 있었다. 난로 위엔 양철 주전자를 올려두었고, 생강차 같은 것을 끓였다. 주전자의 주둥이로 나오는 수증기로 집 안의 건조함을 다스렸다. 무엇보다 아랫목으로 옹기종기 가족들이 모여들었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아랫목에 항상 깔아둔 두툼한 솜이불 아래에 발을 넣고 손을 넣었다. 밥이 그득한 밥통이 이불 아래 가장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장판은 유독 아랫목만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연탄을 갈기 위해 누가 추운 바깥으로 나가야 할지 형제들은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기담요가 아랫목을 대신한다. 단열도구로 방한 텐트까지 등장했다.&nbsp;</font></b><b><font color="#000000">아예 </font><font color="#ec0078">아랫목</font><font color="#000000">이란 말이 사라져 버렸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00000">없는 사람에게 겨울나기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단속 때문일 테지만, 노점상도 사라져 버렸고 서민들에게 겨울은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font><span style="color: rgb(0, 0, 0);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젠 태양이 두렵지가 않은 계절이 되었다. 미친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한 까닭에 기온이 불과 1~2도 내려 갔을뿐인데도 가을 냄세를 느낄 수 있다.&nbsp;</span></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사실 한여름의 푸름이 약간만 탈색된게 사실이다. 무딘 사람은 여전히 여름이겠지만 계절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이미 가을이 다가와 있다.&nbsp;</font></b><b><font color="#000000">한낮엔 여름 날씨이더니 해질 무렵엔 실바람이 살갗을 어루만지는 감촉이 비단자락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 산산하고 간지럽고 상쾌하다. 한낮에도 간간히 바람결에 실려 온 사늘한 기운이 얼굴을 쓰다듬는다. 한동안 폭염에 휘둘려 어리둥절했는데 이제 맑은 정신을 찾은 느낌이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내가 이 땅에서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지나 온 시간을 반추해 보니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늙은이들은 아예 처음부터 늙은이로 태어났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처럼 엄벙덤벙하다가 구닥다리가 되어 버린다는 걸 알았다.&nbsp;</font></b><b><font color="#000000">아직도 고교 생활이 선명하고 군에 입대하여 GOP를 순찰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이 넘었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6/659e2662f5931b84e5db2680d741aa4e22283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 땅엔 영원한 것이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닌데, 영원토록 내 것이 어디 있으랴. 앞사람으로부터 잠시 빌려서 사용하다가 그다음 사람에게 아무런 미련 없이 물려주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삼베바지에 방귀가 새어나가듯이, 어느 날 문득 ‘슬그머니’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div><b><font color="#000000">나는 할아버지 까진 뵈었지만 바로 윗대인 증조부 조차도 뵌 일이 없지만 조부모님과 선친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할아버진 자식들에게 약간의 재산을 남겨 주시기도 했지만 자식들에게 영향을 끼시셨을 것이다. 유학자(儒學者)로 명망이 높으셨던 그 분은 인간의 도리라는 큰 명제를 후손에게 물려 주셨다. 후손들이 함부로 손댈 수 없도록 복잡하게 땅을 마련하여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선산도 여기저기에 만들어 놓으셨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선친께서도 富하곤 담쌓고 살았지만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잡기 오락 취미생활을 철저히 금하시고 허튼 생활을 멀리하셨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 땅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주시고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비단 내 부모님 이야기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세상을 살다가 때가 되면 떠난다. 그런데 정작 내 자신만은 예외라고 믿는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떠나니 오랜 세월 머물지 못했어라. 구름 가득 덮인 광릉의 무덤길이여 밝은 해도 가리웠으니 죽음의 집이어라. 빽빽하게 둘러싸인 숲 속 어둑한 곳이여 그대의 혼은 흩날리면서 어느 곳으로 가시는지..."&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조선조 시인이자 비평가(평론가)이며 정치가였던 허균은 그의 누이 허난설헌의 죽음에 이렇게 읊었었다. 사람은 대체적으로 천 년을 살 것처럼 끝남을 망각한 채 산다. 찰나의 삶에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면서 말이다. 이러함에도 빈 깡통이 요란한 줄은 안다만은, 세속적인 부(富)만으로 어떤 모임에서든 혼자서만 말이 많거나 그에 빌붙은 간신배까지 있어 곤혹스러움을 안길 때가 있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죄악 중에 탐욕보다 더 큰 죄악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통상적으로 생의 끝자락에 서면 지나침이 없어야 함에도 그르치기도 한다. 끝없는 노욕에 후배들에게 설 곳조차 제공하지 않는 '그들만의 굿판'만을 보다가 돌아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자기스스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우리말에 제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말이 있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실제로 자기가 묻힐 무덤을 스스로 파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정말 자기 무덤을 파는 사람이 많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무덤을 만들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이 무덤을 만들고 있다. 그게 자기가 묻힐 무덤이란 걸 모르고 열심히 파고 있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살아 생전에 거대한 중원대륙을 통일하여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진시황(秦始皇)은 자신의 영원한 삶과 권력을 위하여 불사약(不死藥)을 개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다량(多量)의 수은(水銀)이 함유된 그 불사약의 부작용에 의해 그는 오히려 타고난 천수(天壽)도 다 누리지 못한 채 단명(短命)하게 된다.　&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그리고 그는 불사(不死)의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사후(死後)의 권력 지속을 위하여 숱한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거대한 지하궁전까지 만들게 하였다. 그것이 바로 중국 산시성(陝西省) 린퉁현(臨潼縣) 여산(驪山) 남쪽 기슭에서 발견된 그 유명한 진시황릉(秦始皇陵)이다. 무덤 둘레가 무려 6km 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가히 그 거대한 고분(古墳)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6/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22344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포로 70만명을 동원하여 30년에 걸쳐 자기 무덤을 팠다. 진시황만 자기 무덤을 파는게 아니다. 요즘 인간들의 군상들을 보면 모두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으로 보인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 음모를 꾸몄지만 실제적으론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되어 버린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경우는 일일히 열거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가까히 있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너무 잔머리를 굴리지 말고 좀 느긋하게 좀 모자란듯이 살아가는게 현명하다. 나는 무료한 시골생활이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힘들어도 이타적인 발상으로 살고자 하는 생각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요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새겨 놓았다. 노력하지 않는 건 범죄라는 생각을 가졌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나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 가며 수많은 여성들을 속여 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야말로 몰락한 공주이며, 언젠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리 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 즉, 신데렐라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지 않았다면 결코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nbsp;&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실제로, 도대체 그 어떤 정신 나간 왕자가 별 볼 일 없는 여자에게 구애하겠는가? 백마 탄 왕자는 별볼일없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인생에서 ‘로또’를 맞는 것도 결국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주위를 보면 아직도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성들은 더러 있다.&nbsp;&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거기까진 아니어도 자신보다 나은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자를 만나려는 여성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신을 부자로 살게 해주는 남편이 영원히 자신만 사랑해줄 거라고 믿는 건 엄청난 착각이다. 며칠전&nbsp; 'Internet surfing'을 하다보니 "둘이 괴롭느니 혼자 외로운 게 낫다..5060 이혼족 급증"이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nbsp;&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여성들의 힘이 세지면서 1인 가구가 전 연령대로 퍼지는 추세인데, 전에는 4인 가구가 가장 많았는데, 2020년 들면서 1인 가구가 역전을 하더니 이제는 1인 가구가 제일 많다고 한다. 7집 중에 3집 꼴이다.</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이곳은 재선충으로 인해 소나무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고 내 정원안에도 고사된 소나무가 여러개이다. 모레쯤 공주 박목사님이 전기톱으로 제거해 주기로 했지만 다른 나무에게도 피해가 옮겨 가기에 시급을 다투는 일이 되어 버렸다. 온통 군산으로 가는 길은 재선충의 피해로 누렇게 죽은 나무들로 흉물스럽기만 하다. 단풍을 보기도 전에 죽은 나무들의 잔해가 내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다.&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font></b></div><div><b><font color="#000000">&nbsp;</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b></div><div><b><font color="#000000"><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b></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80</guid>
			<dc:date>Tue, 06 Oct 2026 22:54:1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사람꼴'을 잘 못보는 체질</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5/394ff49a24db101240bf876fe60acfee23110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벌써 시월로 접어 들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줄 몰랐다고 한탄한다. 30대 부터 준비했다면 몰라도 4~50대엔 자식들을 양육하기 위해 노후를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고 자식들을 분가시키면서 그나마 재산을 줄이다 보니 노후가 초라하단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아무 할 일이 없다는 사람과 무엇이던 간에 일을 만들어 하려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경제생활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삶의 의욕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가정생활에도 갈등이 생기는 모양이다. 출퇴근이 없다보니 아내들이 힘들어 하는 추세이다.&nbsp;</div><div><br></div><div>가만히 앉아 삼시 세끼를 다 찾아 먹으려니 좋을리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소일거릴 찾아 무엇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삶이 황패된다는 걸 알면서도, 힐링을 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게 된다. 우린 다들 ‘힐링’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시대는 참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쌓여버렸다. 살짝 건드려도 울화통이 폭발하는 사람, 분노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오는 사람이 수백만명 모여 있다면 도시는 그야말로 폭탄이다.&nbsp;</div><div><br></div><div><div>노가다 판에서 여러해를 보내다 보니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새벽 공기가 차가운데 아침부터 사소한 일로 인부들이 언성을 높히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이성보단 감성이 앞서는게 공사판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조금만 양보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불상사가 사그러들텐데 정말 인간 군상을 이해하기가 어렵다.&nbsp;&nbsp;</div><div><br></div><div>사람에 따라 이런 일이 하찮은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어떤 일이던 간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그간 해보지 않았던 일이기에 호기심이 존재할 것이고 현실적으로 나일먹어 아무 할 일도 없이 우두커니 세월을 허비하는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div><div><br></div><div>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미세한 바람에도 흩어지는 구름이 상황에 따라, 삶의 허무를 연상시켜 줄 때는 흘러가는 방향이나 제대로 알고 찾아가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빛을 받는 방향과 질량에 의해 자신의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지듯, 살면서 겪어야 하는 우여곡절로 인해 행동반경의 울타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려나가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색깔을 가늠한다.&nbsp;&nbsp;&nbsp;&nbsp;</div><div><br></div><div>눈을 지긋히 감으면 정지된 그림이지만 구름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멸을 위해 다른 구름을 찾아가는 중이다. 다른 구름과 합해져 비가 되어 소멸한다. 그 소멸에 대하여 아무런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구름은 흘러간다. 의식하면 가만히 멈춰 보이고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nbsp;</div><div><br></div><div>구름의 모습은 다양하며, 비가 오는 날엔 새까맣기까지 하다. 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모양도 색도 다르다. 결국, 우리의 시간관념을 변하게 하는 건 삶의 목표다. 목표가 있을 때 삶은 피어난다. 떠나는 계절, 저무는 노을, 힘겨운 삶마저도 연약한 내가 어찌하리. 흐르는 것이 삶이었던가.&nbsp;</div><div><br></div><div>저 강물도 흐르고 저 바람도 지나가고 저 구름도.. 당신도 나도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기에&nbsp; 아픔 속에서도 길 떠나는 나그네 심정으로 가고는 있지만 함께 할 수 없음에 가슴시릴 뿐이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이 있었다. 멍하니 앞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이 오늘의 행복이든 과거의 불행이든 간에 시간은 항상 정적을 유지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5/4443ef5dc115099024a48567e4d17d9223120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그러나 시간은 정적인 동시에 역동적이다. 나는 그동안 고독이나 외로움들은 무조건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왔지 정작 문제의 근원지인 자신에 대해선 소홀했던 것 같았다. 이제 보니 타인이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외로움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기에 고독했다는 결론을 내렸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이 없는 조용한 숲속이나 바닷가 같은 자연 속에 파묻히는 것이 효과적이란 생각을 가진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흙을 밟고 걸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보면 적잖은 위안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노자 &lt;도덕경&gt;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무릇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로 자연과 인생의 순리를 말해 준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은 모든 더러움을 씻어내고 정화하면서 만물에 생명을 준다. 흘러가는 물은 먼저 가려고 앞을 다투지 않기에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라고 하였다. 다툼을 피해갈 수 있는 삶은 지혜로우며, 물처럼 담담하게 흘러야 강을 이루고 바다에 이르게 된다.&nbsp;</div><div><br></div><div>내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은 신용불량자이다,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부득불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용인하기가 어렵다.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관 인연을 만들어 가지 않으려 마음먹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동정할만큼 나는 여유롭지가 못하다.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관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nbsp;</div><div><br></div><div>흔히 나라는 사람은 무조건 이해 할 거라고 인식한다면 그 건 나를 잘못 본 결정적인 실수이다. 그간에 많은 사연과 정분이 약간은 남아 있지만 여기까지만 인연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이야기가 간단해진다. 남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하고 인정에 끌려 손해도 많이 보았지만 더 이상 사귐을 가져보아야 계속 이용만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때부턴 단호해진다.&nbsp;</div><div><br></div><div>내가 수십차례 이사한 중에 가장 큰 원인은 주변 환경이라기 보단 인간관계가 대부분이었을 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꼴'을 잘 못보는 편인 것 같다. 누구라도 가까워지는 친화력이 나에게는 결정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난 어린 시절부터 습작(習作)하기를 좋아했었다. 성격이 내성적이라 말하는 것보단 낙서하기를 좋아했고,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기피하곤 했었다.&nbsp;</div><div><br></div><div>어릴 떄 형성된 성격을 개조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할 때가 많다. 어릴 때부터 집안 바람벽은 모두 내 차지였으며 나중에는 동네 바람벽에다 끼적거리다가 어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별종(別種) 취급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느날 난 펜을 놓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명의 청중 앞에서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내는 설교자가 되어 있었다.&nbsp;</div><div><br></div><div>허나, 청중은 매료되었는지는 몰라도 내 자신은 점점 갈급해지기 시작했다. 현장 없는 공허한 설교가 계속되면서 난 말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어릴 적 버렸던 몽당 연필을 다시 집어 들었다. 경험론적으로 보면 '할말 다하고, 수다 잘 떨고, 푼수같은 사람이나 반사회성 인격자' 등의 사람들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nbsp;&nbsp;</div><div><br></div><div>일반적으로 항상 과도하게 주변을 배려하거나 남을 많이 의식하거나 너무 올바르고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회에서 다치고 상처받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자신을 위로하고, 때로는 좀 이기적이 될 필요가 있는 것이 신경성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현역시절 신경정신과를 찾은적이 있었다. 의사는 직업상 문제임을 직감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실컨 辱을 해보라고 권고했다. 속으로 끓이며 살면 위험하단 경고를 준셈이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그것도 해 본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지 늘상 남을 의식하며 살아 온 나날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화내는 걸 금기시하며 살았온 사람이 어느날 삶의 패턴을 바꾸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해 전 MBC TV &lt;뉴스데스크&gt; 최연소이자 최장수 앵커였던 백지연이 쓴 &lt;뜨거운 침묵&gt;에서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침묵’이라고 했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말 잘하기로 하면 어떤 설교자보다 탁월하고,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백지연이 말하는 "뜨거운 침묵"은 무얼 말하는가? 나를 알아달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세상이 나를 알아줄 때까지 생각을 익히고 마음을 채우며, 진정한 자신을 만날 때까지 뜨겁게 내면을 담금질하라는 메세지였다. 누구보다 많은 인터뷰를 하고,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회사까지 설립한 그가 왜 화려하고 유창한 언변 대신 침묵을 말하는가?&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가 말하는 ‘뜨거운 침묵’은 소리치지 않아도 세상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강렬한 힘이기 때문이다. 난 설교자라는 중압감때문에 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에 실패했다. 인기인이 아니면서 인기의 하락을 염려했고 말 한마디로 역사를, 세상을,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만병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다.&nbsp;&nbsp;그래서 낙서를 다시 시작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5/b606fd0d8813a7c82864604559bfd9f12312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이미 집안은 물론 동네 구석 구석 바람벽에 알듯 모를듯 한 낙서들을 채워 나갔다. 선친이 시무하시던 예배당 벼람박은 온통 낙서로 가득찼다. 그 시절에 그립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린아이처럼 아직도 눈에 보여지는 이미지에만 집착하고 있는 나의 표적은 보는것에서 보여짐을 응시할 수있는 나의 내면을 찾아서 난 길나그네를 자청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문학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문학의 기라성같은 선배들에게 누가될까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겠지만 열정이 식어버린 외침보다는 내 삶에 다시금 긴장감을 만들고 싶어 시상(詩想)을 두서없이 낙서질하고 있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침에 텃밭을 가꾸며 소일거릴 삼았다. 아욱과 시금치를 뜯어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배추와 무우 대파 쪽파 등에 물을 넉넉히 주고 인근 대야장에 가기로 했다. 시장통에서 잔치국수를 사먹고 길거리 커피도 한잔 마실 생각이다. 소장이 토끼를 얻어다 키우는데 이번에 닭과 거위도 키우고 싶은가 보다. 동물을 키우는게 여간 힘든일이지만 노가다판에서 살다보니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장려하기로 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 역시 작년에 집나간 고양이를 생각하며 다시 어린 새끼 두마리를 얻어와 키우고 있다. 매일 고양이 먹잇감을 챙겨주고 똥치우는게 귀찮긴 하지만 '사람꼴'을 잘 못보는 체질이라 동물이라도 애정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에 강아지도 얻어 오려고 지인들에게 부탁을 했다. 요즘 추세가 늙은이 꼴을 못보아 주는 세태라 몸조심하기에 급급하다.&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79</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79</guid>
			<dc:date>Mon, 05 Oct 2026 23:15:19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촌 법</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5/27469b843428e461928e46ba3120d45c00104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룰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지킬 수 있는 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 룰을 정하고 살아왔다.&nbsp;</b></span><b><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b><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교통 법규만 해도 그렇다. 왜 이런 법규를 만들어 괴로움을 안겨주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이 무시되는 순간 혼란과 무질서로 사람이 살 수없는 지옥이 열리게 된다.&nbsp;</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는 싱가폴을 탁 두번 다녀왔지만 벌써 30년전 이야기이고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필리핀 등 수십번도 더 가보았지만 싱가폴은 아예 가지 않으려 작정했었다. 깨끗하기로 말하면 싱가폴만한 곳이 드물지만 왠지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고 조금의 실수도 용납치 않는 사회 분위기에 압도 당하는 기분이 들어서이다.&nbsp;</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다리 하나 건너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로 건너가면 당장 눈에 띌 정도로 무질서가 펼쳐지지만 그래도 뭔가 모를 인간 냄세가 나는 것 같고 사람사는 것 같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는데 아마도 내 안엔 천민의 피가 흐르기때문은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든다.&nbsp;</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늦은 밤에 귀가하다가 교통 범칙금 딱지를 떼었다. 시속 30km로 달려야 하는 스쿨존에서 인데 한밤중 영시 31분에 위반을 했다는 통지서를 받고 어지간히 나라에 돈이 없는가 하는 생각에 헌법 소원을 제기하려 마음먹었다. 차량에 네비게이션이 없는 사람들은 백프로 위반을 하게 될 것인데, 왜 한밤중에도 스쿨존이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새벽 한시에 등하교하는 학생이라도 있단 말인가? 어린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건 백번 지당한 사회적 공감대이지만 새벽에도 스쿨존이 필요한지엔 내 상식으론 이해하기가 어렵다. 일년에 수조원씩 교통 범칙금이 걷히고 있을터이니 정부에서는 이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놓치기 어렵겠지만 법은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하고 범칙금을 내는 시민들도 내가 잘못했다는 인식이 들어야 하는데 백이면 백 이런 소도시에 수백개씩 감시 카메라를 달아놓고 저인망씩으로 돈을 쓸어 담으니 불만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nbsp; &nbsp;</b></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룰은 어느 사회나 필요한 것이지만 아무 때나 호루라기를 불어선 안된다. 축구나 야구 경기를 할 때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가지고 판독기를 들여다 보는 경우가 종종있는데 어쩌다 한번이나 현저하게 오판이란 생각이 들 때 항의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배번 이러면 경기가 재미없어 진다. 룰은 있지만 최소한으로 작용시키는 것이 경기의 묘미이다.</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처음 시골로 귀촌할 때 사람들의 당황해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인 규범 말고도 일명 <font color="#d40a00">"촌법"</font>이란게 존재하고 있다 시골은 룰이 도시완 다르다. 그 룰을 깨트리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보다 어렵다.</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도시는 옆집에 누가 이사를 와서 사는지 잘 모른다.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골은 다르다. 낮선 사람이 이사를 오면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찾아 와서는 어디서 왔는지 무엇 때문에 왔는지 꼬치꼬치 묻는다. 그리고 지나가는 어르신들께 인사라도 안하면 당장 소문이 난다. 싸가지가 없다고......</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자주 이사하는 까닭은 불편한 환경 때문이라기 보단 사람 사귀는 면에서 병적(?)인 거부감때문인 경우가 많다. 누구의 간섭도 안받는 곳이 시골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벗겨지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 시골이고 숟가락 하나도 모두 공개되는 곳이 시골이다. 나는 집안에 있어도 싸릿문을 닫아 놓는데 글을 만들며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이고, 누가 간섭이라도 할까봐 일부러 텃밭도 뒤안에 만들어 놓았다.</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5/bba773250763760987230034238d7a0400122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먹지도 않을 채소이지만 열심히 심는 까닭은 성장 과정을 즐기려는 생각이고 농약을 사용하지않고 일일히 벌레를 손으로 잡으며 최소한의 피해는 감내하려 마음먹었는데 촌사람들 눈엔 날 우습게 보는듯한&nbsp; 싸늘한 눈초리가 싫어서이다.&nbsp;</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행동이 저들 눈엔 바보스럽게 보일터이지만 나는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룰은 지키며 왠만하면 촌룰이 모두 옳다는 건 아니지만 이를 지키며 적응하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동네 어른들에게 접대를 해야 한다 하여 그게 시골의 룰이고 전통이라 하여 군말없이 금일봉을 내밀었다.</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군산 대야 장날은 1일과 6일이다. 다음 날은 함열 장날이고 그 다음 날은 삼례 장날이다. 난 이곳에 정착하면서 인근 장에 다니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백화점 물건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특화 상품을 고르는 재미와 흥정하는게 퍽이나 인간적이고 서민적이어서 자주 찾는 편이다. 친서민적인 오일장은 누가 정한 룰인가?&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인근의 어느 읍의 장날과 겹쳐지지 않게 하려고 서로 정해 놓은 장날....정해진 룰에 따라서 그 성황은 지금도 계속된다. 더러는 기다리기도 한다. 장날만 나오는 물건들이 있고 장날이라야 흔해지는 물건이 있고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난전 상인들의 모습들이 있어 장날은 성시를 이루고 있다. 번듯한 매장에 진열된 멋진 물건들 보다는 질이 떨어지는 물건이지만 장날의 풍경은 정겹기까지 하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사람과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몸 부딪치면서 움직이는 속에서 사람과 사람들은 정을 느낀다. 그리고 정을 들인다. 유행가 가사처럼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장날, 그래서 장날이면 그곳이 그리워 진다. 살 것이 없어도 좋고 살 것이 있어도 좋은 오일 장은 그래서 좋다. 단 한번도 깍아 달라는 말, 덤을 달라는 말을 해본적이 없지만 그 부댓김의 현장을 좋아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는 지금 내가 처한 형편과 하는 일에 만족함을 느끼려 노력중이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 전에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면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이라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일에 대하여 행복감을 상실하는 순간 창의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고 무료함에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생활이 매일 똑같으면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창의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5/d4b6aac54563f7ffc17d1d5a46efe3b80013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창의력이 생기려면 개구장이들처럼 살아야 한다. 아이들은 재미있을 생각만 한다. 아이들이 싸우고 벌을 서면서도 잠시 후에 보면 둘이 장난을 치고 있다. 그런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왜냐면 아이들은 항상 즐거울 생각만 하니까 걱정이 없다. 그래서 다섯 살짜리 아이의 창의력과 40살 어른의 창의력을 비교해 보면 5~60살 어른은 다섯 살짜리 아이의 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감성지수가 떨어지면 창의력이 생기지 않고 행복한 순간은 뒤로 밀리게 되어 있다. 나는 문화적으로 우리나라 문화는 좋지 않은 문화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감탄사가 없기 때문이다. 서양에는 원더풀(Wonderful)이라는 단어가 있다. 독일말도 감탄사가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감탄사가 없다.&nbsp;</span></b></div><div><b><br></b></div><div><b>원더풀을 번역해 보면 '오, 놀라워라.'이다. 우리는 이것이 약올리는 것이지 감탄사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감탄사가 있는지 살펴보니 한 가지가 있었다. '쥑인다!'란 말이다.'밥맛쥑인다! 경치가 쥑인다! 등등이다. 문화적으로 상당히 빈곤한 문화이다. 감탄사가 없기 때문에 서로 죽이는 문화이지 서로 키워주는 문화가 아닌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적개심이다. 못 가진 사람은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 조금 가진 사람은 더 가진 사람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다.</b></div><div><b><br></b></div><div><b>일단 치열한 경쟁이 없는 시골 생활에 매력을 느껴 귀향을 했지만 아직 감탄사를 말할 정도는 아니다. 모든 사람의 눈엔 아직 어설픔이 보이는 초보라는 주홍글씨를 적어 내려 가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내 삶에 자부감을 느끼며 오늘도 운전대를 잡는다.&nbsp;</b></div><div><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div></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7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78</guid>
			<dc:date>Mon, 05 Oct 2026 00:19:21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나는 여지껏 '걸맞게' 살아보질 못했다.</title>
			<description><![CDATA[<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3/6121425e687cef2318162d32b09be0d223332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시골에 정착하면서 달라진 것 중에 하나는 만나는 대상이다. 과거엔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경건(?)한부류였지만 내가 근래 만나는 부류는 대게 공사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약간은 거칠고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따지는 사람들에 둘러쌓여 살고 있다.</b></div><div><b><br></b></div><div><b>어제도 현장에 혼자 출근하여 잔디밭을 기어 다니며 아침 점심을 거르며 하루종일 풀을 뽑는데 뒤늦게 홀로 힘든 일을 하는줄 알고 소장이 급히 달려왔고, 가스업자 형틀목수 등이 현장을 다녀 갔지만 요즘 건축경기가 바닥이란 푸념만 늘어 놓고 돌아갔다.</b></div><div><b><br></b></div><div><b>건축주 입장에서 보면 전원주택 여러채가 미분양 상태라 자금 사정을 고려하여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싶은데, 건축 관련 자재상을 하는 사람들이나 일용잡부들, 건축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살펴 어려울 때 가불 형식으로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요구를 하며 좋은 땅이 있으니 일을 시작하자고 졸라댄다. 물론 나도 힘이 들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인부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시국에 일을 벌린다는 건 자살 행위라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 버렸다.&nbsp;&nbsp;</b></div><div><b><br></b></div><div><b>공사판의 생리가 열번 잘해주다 한번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안면몰수하는 사람들이고 잔머리들의 귀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야박할 정도로 대할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알고도 모르는척 눈감아 줄 때가 많은데 그런 헛점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속상할 때가 많다.&nbsp;&nbsp;</b></div><div><b><br></b></div><div><b>하지만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갑질한다고 할까봐 가능하면 양보를 하니 날 상당히 얕보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인연을 끊어 버린적이 몇번 있었다. 이렇게 어벙하면서도 한번 힘껏 살아 보겠다고 안간힘을 쏟는데 대다수 내 또래 노인네들이 인생을 방치하며 살기를 작정한 것 처럼 산다.&nbsp;</b></div><div><b><br></b></div><div><b>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인데 조금 힘들면 힘든대로 갈 때까지 가보는 건 어떨까? 노자(子)는 화광동진(和光同塵·진정한 빛은 혼자 잘난 체하지 않고 속세와 잘 어울린다)을 설파하며, “뛰어난 기교일수록 졸렬해보이고 훌륭한 말일수록 어눌하게 들린다”는 말을 남겼다. 세상에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많고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거 같아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nbsp;</b></div><div><b><br></b></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 역시 어벙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어벙한척하는 편이다.&nbsp;</b><b>잘난 사람보다 조금 어리숙한 사람에게 더 정감이 가고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어리숙한 사람을 좋아한다. 가끔 복음서를 읽다가 예수께서 제자를 선택하셨을 때 왜 이들을 제자로 삼으셨을까에 대한 의아한 생각을 가질 때가 많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예수님의 제자들도 가끔 어벙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귀를 정말 알아듣지도 못하고, 엉뚱한 말로 예수님을 곤란하게도 하고, 천방지축으로 살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유월절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누가 큰가를 따지는 한심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어벙한 제자들을 필요로 하셨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세상은 어벙한 사람을 이용하려 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약게 살지도 못하고 순진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손해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활한 사람보단 어벙한 사람에 정감이 간다. 나는 요즘도 틈틈히 꽃을 가꾸며 흙을 매만지며 살고 있다. 정원안에 각종 꽃들을 심었고, 꽃나무를 중심으로 더 많이 심으려 수소문하고 있다.&nbsp;</b><b>가만히 있으면 허튼 생각이 생기고 몸과 정신을 정지시켜 놓으면 그것은 편한게 아니라 치매(癡呆)가 올지도 모르기에 혹사시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규칙적으로 일을 만들어 행하고 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치매는 노년층에서 일어나는 뇌조직의 위축과 신경조직의 광범위한 소실로 지적 능력의 상실과 성격변화가 오는 질환을 노인성 치매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nbsp;</b><b>그래서 더 위험한지 모르겠다. 이러한 질환이 생긴 사람은 대부분 피하지방의 감소, 근육쇠약, 피부탄력성 상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희어지는 등 노화증상이 나타난다. 또한 걸음걸이가 불안하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자기중심적으로 되고,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기도 하며, 노인성 치매의 주요 원인으로 기억상실, 언어장애, 정신기능 진행성 상실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3/f3c4883fbb5abacf0cc715053af3d4cc23352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젊은 시절엔 머리카락이 너무 많아 이발소에 가면 머리카락을 속아낼 정도였다. 반 곱슬이었기에 왠만한 바람이 불어도 휘날리지가 않았었는데 이젠 속알머리가 다 빠지고 머리카락이 얋아져 파머를 할까 고민중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지인중에 1200만원을 주고 머리카락을 심었다고 자랑질 하는데, 나는 그런 돈이 없을뿐더러 대머리 소릴 듣지 않으려 잠자는 시간과 예배를 드릴 때만 모자를 벗을뿐 줄곧 모자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을 땐 선그라스를 반드시 낀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그런다고 늙은 모습을 감출 순 없겠지만 가능하면 어깨를 펴고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걸으려 애를 쓰고 항상 미소띤 얼굴을 보이려고 노력중이다. 어깨를 교정해 주는 벨트를 매라고 권장하지만 그런다고 사라진 기력이 되살아 날리가 만무하고 주름을 펴주는 크림을 바른다고 젊어지는게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가능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걸맞게 살려 작정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나는 여지껏 '걸맞게' 살아보질 못했다. 젊어서는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흉내를 내며 살아왔고 개뿔도 없으면서 있는척하며 살아왔다. 내가 젤 잘난줄로 착각했고 가장 의로운척하며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난 큰 변화가 있다면 이젠 걸맞게 살아야겠다는 체념에 가까운 현실 인식이 생겼다는 점이다. 늙어간다는 걸 서글퍼 하지 않기로 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예전에는 자고나면 1kg씩 늘어나던 체중이 이제는 매년 5kg씩 빠져 나간다. 식탐이 줄어 든 것은 물론 먹는 것도 귀찮고 먹고 싶은 것도 거의 없다.&nbsp;</b></span><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떤 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가지고 돌아와 개에게 줄 때가 종종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내 봄날은 지나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b></div><div><b><br></b></div><div><b>그래서인지 나는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릴 때가 많다. 이렇게 허무하게 지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닐 거라고 도리질을 해보지만 그럴 수록 더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내가 귀촌하여 깨달은 것은 내 실존이 어떤 거란 걸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직 바닥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더 추락하지만 지금이 바닥이라고 믿는 순간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기에 오히려 희망적이란 걸 알게되었다.&nbsp;</b></div><div><b><br></b></div><div><b>바닥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두려움이 생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자랑할만한 것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찾을 수 없는 '하바리' 인생이었다. 그러면서도 공치사를 남발하고 자랑하기 급급했었다. 이젠 더 이상은 눈치보기 인생은 살지 않으려 작정했다. 내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한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려 한다.&nbsp;</b></div><div><b><br></b></div><div><b>목표를 설정해 놓고 살면 고달퍼진다. 다만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를 念頭해 두고 최선을 다하면 바닥에서 부상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있을뿐이다. 내 주변 친구들을 보면, 온통 관심사가 남은 재산이 얼마인가에 쏠려 있다. 대부분은 은퇴한 늙은이들이기에 당연한 화두겠지만 부모의 상을 거의 치웠고, 자식들도 다 결혼시켰으며, 애경사가 거의 지나 간 입장이기에 앞으로 본인들이 살 것만 걱정하면 되는데, 여전히 불안한가 보다.</b></div><div><b><br></b></div><div><b>그 중에 매월 300만원 이상 년금을 받는 것이 제일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먹고 사는 건 100만원 정도면 그럭저럭 살 순 있지만 문화생활이나 삶의 질이 떨어질까봐 걱정인 것 같은데, 어차피 죽으면 거적에 쌓여 불에 태워질 몸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먼저는 본향이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고, 더 구차해지기 전에 날 그 나라로 이끄실 주님이 없다는게 문제가 아닌가?</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3/2c46655d7830268a67178ed831d86ac823370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친구들이나 지인을 만나면 거의 밥걊을 내려 한다. 내가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다. 인심이 후해서도 아니다. 년금 등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 이 나이에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게 황송한 일이고 이건 주님이 날 불쌍히 여기셔서 배푸신 은혜라 여겨 나눔을 실천하려 애를 쓰고 있다.</b></div><div><b><br></b></div><div><div><b>나일먹으면서 이것들이 더 인색해지기 시작한다. 전엔 식사 한끼를 해도 슬그머니 나가 계산하던 것들이 이젠 서로 눈치보기 시작한다. 해서, 8천원 이상하는 음식점이나 2천원 넘는 커피숖엔 안가는게 불문율이 되어 버렸다. 주로 공원 벤치가 우리들에게는 적격이고, 비둘기 모이 천원이면 한참을 놀 수가 있지만 그것도 어쩌다가 있는 일이고 주로 나는 텃밭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nbsp;</b></div><div><b><br></b></div><div><b>어영부영하는 시간이 아깝고, 움직이면 돈이기에 혼자있는 시간을 선호한다. 내가 이 땅에서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지나 온 시간을 반추해 보니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아직도 고교 생활이 선명하고 군에 입대하여 GOP를 순찰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 넘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b></div><div><b><br></b></div><div><b>이 땅엔 영원한 것이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닌데, 영원토록 내 것이 어디 있으랴. 앞사람으로부터 잠시 빌려서 사용하다가, 그다음 사람에게 아무런 미련 없이 물려주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삼베바지에 방귀가 새어나가듯이, 어느 날 문득 ‘슬그머니’ 말이다.</b></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nbsp; &nbsp;&nbsp;</b></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7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77</guid>
			<dc:date>Sat, 03 Oct 2026 23:37:58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배추밭의 벌레를 잡으며</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2/d6a8436096655e71241177718e658b14232559.jpg" width="0" align="left" class="photo" alt=""></b><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2/1e329e03dc696675fabe1875e570402123321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해가 지고나면 전화를 오프시킬 때가 종종있는데, 새벽녁이면 어김없이 깨어나는 잠버릇 때문에 일찍 잠들기 때문이긴 하지만 요즘 피하고 싶은 전화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 핸드폰에 입력되지 않은 전화는 거의 받질 않는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특히나 02로 시작하는 전화나 070, 1577 등의 전화는 거의 받질 않는다. 대게는 보험회사 전화이거나 상업성 전화가 대부분인 데, 내 체질상 단호하지 못하기에 사양하기가 어려워 아예 안받으려 작정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예전엔 유명한 대장장이님 전화가 070으로 걸려 오는 데, 긴가민가 해서 안받았다가 불호령을 당한 때도 있었지만 차라리 그게 더 편하기에 그렇게 산다. 때아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한창 일할 땐 전화를 받기위해 장갑을 벗다보면 전화가 끊어지기 일수여서 오해도 받기도 하지만 차후에라도 사과를 하며 사정을 이해시키려 노력중이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핸드폰이 문명의 이기이긴 하지만 때로는 나만의 사색이나 무슨 일에 열중할 때 지장을 받기 때문에 핸드폰이 참 편리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종종있다. 예전에 통신 수단이 발달하기 전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일상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30여년 전쯤 일명 삐삐가 유행할 때 신호음이 울리면 전화 부스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공중 전화기가 많이 없을 때 급한 용무인줄 알고 애써 전화하면 별거아닌 일로 호출한 걸 알고 허탈해 한 적이 많았었다. 공중 전화 박스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는데, 요즘은 전화 부스도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지만 바로 코앞에 두고도 핸드폰을 사용하기도 하고 집집마다 유선 전화가 없어진지 오래이다. 영업집외엔 유선전화가 사라져 버렸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요즘은 건축경기가 바닥이라 딱히 할일이 없어 집안일을 주로 하고 있지만 이대로 라면 한국 경제가 심각한 카오스에 빠질 거라는 우려가 들어 걱정을 하고 있다. IT산업이 데세를 이루고 인공지능 시대이긴 하지만 특정 종목을 제외하면 긴 불황이 계속되는 중이다. 내가 볼 땐 건축경기가 무너지는 건 서민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전 산업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걸 잘 알고 있다.&nbsp;</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그래서 건축 일을 시작하면서 나름대로의 철칙을 가지고 인부들의 노임을 정할 때 기술적인 면과 노동의 강도, 인품을 고려하여 인건비를 지출하려 작정했다. 내가 거느린 인부들은 거의가 마스터 수준이다. 고난도의 일에서 부터 잔디를 심는 허드레 일까지 일체를 담당하는데 내가 볼 땐 거의 불평을 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요즘은 주변 청소를 시켜도 오히려 감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엊그제도 고구마 이삭줍기에 동원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불평을 늘어 놓지 않는다.</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요즘은 인력사무소에 나가도 일이 없어 그냥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인부들에겐 어떻게 해서라도 일거릴 만들어 주려는 내 의중을 알아서인지 미안한 기색을 보일뿐이다. 추석전날 부안 변산반도 일대 모항으로 망둥어 낚시를 다녀 오면서도 마냥 소풍 간다며 좋아하는 인부들의 표정을 보며 함께 즐거워했다.&nbsp;&nbsp;</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건축일을 하면서 가장 고난도 작업인 용접을 하는 일에서 부터 주변 청소를 할 경우 똑같은 인건비를 지불한다. 직접 용접봉을 잡고 용접을 할 때 선그라스를 끼지 않고 1분 가량만 주변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동공이 다칠 위험성이 큰 일이지만 이를 피하려는 수작(?)을 전혀 부리지 않는다. 집을 철거할 때 온통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피차에 모습을 보며 웃어 넘기는 여유를 보인다.&nbsp; &nbsp;</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점에서 우리 인부들은 건축에 관한 마스타들이라는 타이틀을 붙혀 주었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 부터 고급 인력들이 할 수 있는 일까지 못하는게 없을 정도로 전문화가 되어 있다. 잔디를 심는 일에서 부터 왠만한 목수일까지 시키는대로 모두를 소화시킨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현장의 잡부(?) 일당을 20만원 지급하는 것에 대하여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원찮은 기공들의 일당이 25만원에서 30만원인 걸 감안하면 우리 인부들은 나에게 있어 거의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nbsp;</span></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br></b></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2/8e5d3c08a378aa1c87ee2d7290dba71723280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기공들에게 잔디를 심자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굶어 죽을지언정 이런 허드레일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하겠지만 내가 볼 땐 기공들이라고 불러주기엔 터무니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nbsp;</span></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인부들은 거의 외국인들로 특출나지는 않지만 성실성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그러니 분야에 상관없이 건축을 시작했다 하면 보통 두달 정도는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며 월 500만원 이상은 가져가게 된다. 물론 소장은 8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게 된다. 이왕 돈벌겠다고 뛰어 들었다면 자존심 따윈 버리는게 좋은데 한국사람들은 너무 폼생폼사에 길들여진 것 같다.&nbsp;</span></b></div><div><b><br></b></div><div><b>면소재지 초등학교엔 이주민 자녀들이 대부분이라 토종(?)들이 텃세를 받을 정도라니 대한민국의 장래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쉬운일엔 사람들이 몰리지만 조금 힘든 일엔 인력난이 심각하여 거의 외국인들이 없으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모두가 최고가 되고 싶고 모두가 인정받고 싶어하는 거야 인지상정이겠지만 이대로 가단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nbsp;</b></div><div><b><br></b></div><div><b>지금 시골엔 베트남 우즈백 사람들로 가득이고 식당에도 베트남 여자들이 아니면 써빙할 사람을 구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인력난을 보이고 있다. 고구마를 캐러 관광버스가 동원되지만 그 안엔 거의 베트남 태국 여자들뿐이고 돼지 농장에도 중국인 동남아인이 아니면 산업 자체가 붕괴될 정도로 한국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모두가 증권에만 혈안이 되어 푼돈(?)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nbsp; &nbsp; &nbsp; &nbsp;&nbsp;</b></div><div><b>&nbsp;</b></div><div><b>언제부터인가 그렇게 근면했던 한국사람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대기업에 다니지 않으면 마땅한 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에스카레이터를 타려 혈안이 되어 버렸다. 최고를 지향하다 보니 작은일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교회도 최고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교회 사이즈가 성공의 척도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 개신교는 보편적 교회, 공교회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깊은 우려가 든다.&nbsp;</b></div><div><b><br></b></div><div><b>모든 교회가 인종이나 신학이나 지역 등 다양성 가운데서 다른 환경에 놓일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결국 하나다. 개교회가 특정한 행동을 할 때, 개교회 하나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메시지가 니케아신경 안에 담겨 있다.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만연한 생각은 무엇인가? 개교회 우선주의다. 개교회는 자기 교회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생각에 빠져 다른 교회에 미칠 악영향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공교회 의식 부재, 하나의 교회라는 의식이 없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깊은 우려가 든다.</b></div><div><b><br></b></div><div><div><b>교회가 최고일 필요는 없다. 거룩한 교회는 무엇인가. 거룩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도쉬'(kadoshi)에는 '분리되다', '구별되다'라는 어원적 의미가 있다. 이에 따르면, '거룩하게 됐다'는 말은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일에 구별됐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 가치와 다른 무엇을 지닌, 분리되고 구별된 독특한 특성을 지닌 공동체이다.</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10/02/937547981ab90a17c66e217543621a9d23292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고 신영복 선생은 "일등은 선망의 자리지만 꼴찌는 철학자의 자리"라고 말한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서는 것을 누구나 선망한다. 어떤 방면에서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최고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앞서야만 성공할 수 있다.</b></div><div><b><br></b></div><div><b>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최고병’에 걸려 살아가는 것 같다. 최고가 될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얼마든지 불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최고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뚜렷한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고가 되는 그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기꺼이 편법과 불법, 그리고 비양심적인 방편들이라 할지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nbsp;</b></div><div><b><br></b></div><div><b>대한민국 교육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개인별, 학교별 성적을 산출하고 석차를 부여하여 학생과 학교를 서열화하는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나도 꼴등은 아니지만 일등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운동회 때 달리기 시합을 할 때도 중간 정도밖에 못했다. 현역시절에도 종주를 못했으니 낙오자라고 믿진 않지만 항간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nbsp;</b></div><div><b><br></b></div><div><b>꼴찌의 변명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운동화가 좋지 않아 달리기를 못한다는 이유를 선친께서는 그럴 거라고 믿어 주셨다. 일등은 못해 보았지만 열심히 달리기는 했었다. 우리 사회에서 꼴등은 일등과 함께하는, 상생을 이루는 바탕이 아니다. 일등을 위한 희생적 부속품에 불과하다. 일등은 곧 기쁨과 행복이고 꼴등은 슬픔과 불행의 동의어이다.&nbsp;</b></div><div><b><br></b></div><div><b>일등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성공이지만 꼴등이 갖는 사회적 위상은 실패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무서운 것은 일등은 능력 있고 우수한 사람이고 꼴등은 무능력하고 우수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개개인이 은연중 길든다는 점이다.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학업성취 능력의 차이에 의해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도록 은연중 강제되고 있는 현실이다.</b></div><div><b><br></b></div><div><b>"有錢王八坐上席, 落魄鳳凰不如鷄"이란 말이 있던가? 돈 있으면 후레자식도 上席에 앉으며, 뜻을 이루지 못한 봉황은 닭보다도 못한 법이다"라는 말이다. 밥 값 내는 사람은 밥상머리에 앉아 큰소리로 떠들고, 얻어먹는 사람은 조용하고 공손한 자세로 머리를 조아리게 되어있다.</b></div><div><b><br></b></div><div><b>오늘은 인부들에게 잠시 쉬라 이르고 배추밭의 벌레를 잡아주고 아욱을 뜯어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현장으로 가 잔디밭을 가꾸며 시간을 보내려 작정했다. 아마도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고 다른 때 같으면 인부들을 동원했겠지만 오늘은 생각할 일도 있고 혼자있고 싶은 충동이 일어 호미 한자리를 들고 집을 나서기로 했다.</b></div><div><b><br></b></div><div><b>귀촌하고 처음의 모습이 이러했다. 그 너른 텃밭을 혼자 기어다니며 무한한 꿈을 설계하던 시절 정말 막막했지만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 인천의 L형이 전화하여 근황을 물어 오는데 그러안해도 내년이 팔순이니 중국이라도 가서 팔순 잔치를 해주려 마음먹었는데 건축 경기가 바닥이란 말에 걱정이 되었나 보다. 처음 시작할 때 최악의 경우였고 지금까지도 화려하게 살아본적이 없었기에 더 떨어질 곳이 없다는 말에 안심이 되는가 보다.&nbsp; 소심한 것도 나와 비슷하다.&nbsp;&nbsp;</b></div><div><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div></div><div><b><br></b></div><div><b><br></b></div><div><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nbsp;</b></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76</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476</guid>
			<dc:date>Fri, 02 Oct 2026 23:31:09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