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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안부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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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혼자노는 법에 익숙해지는게 좋을듯 싶다.</title>
			<description><![CDATA[<b><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7/2bfabba24a5b28477771d8927f63b4d61326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친하게 지내던 몇안되는 친구가 또 죽었다. 직년에 구강암 수술을 했고 함암 치료를 받았는데, 워낙 전이된 부분이 크고 독한 항암치료를 하다보니 식도가 망가져 오랫동안 목구멍에 호수를 박아 연명하더니 며칠전에 세상을 떠나 버렸다.</font></b><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열흘전쯤 안부를 물으려고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나 싶었는데 곧바로 문자메세지로 말을 할 수 없어 문자를 보낸다 하여 그런가 했는데 죽기전에 유언으로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했다며 장례를 치루고 난 후에야 죽음을 알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미친 것, 자기가 무슨 이순신장군이나 된양 '적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하여 친구들을 외면했고 가족들도 그래도 친한 친구나 지인에겐 부고를 알렸어야 했는데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어 괘씸했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란 생각으로 그의 별세를 애석하게 받아 들였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이젠 부고 소식을 들어도 놀라지 않을 정도의 나이가 된게 서글프고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홀로 그 두려운 길을 떠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친구들의 존재가 부인당한 것 같아 마음이 울적하다. 나 역시&nbsp;'허심탄회(虛心坦懷)'한 성격이 못되지만 어쩜 세상을 살다보면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과연 기탄(忌憚)없이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몇이나 있는가?&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무 꺼리킴없이 속마음을 들어낼 수 있는 사람을 몇이나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엔 몇쯤 있을 거라 여겼는 데, 지금은 거의 없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nbsp;못났으면 못난대로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솔직 담백하면 좋으련만 실력이나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부리는&nbsp;허장성세(虛張聲勢)에 너무 길들여져 가고 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믿고 의지할 대상이 사라지면 공허해진다.&nbsp;멀쩡해 보이던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불법 다단계에 들어가고, 테러리스트가 된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도 적지 않다. 왜 그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를 모두 포기한 채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길을 선택한 것일까?</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우리는 흔히 나약한 마음을 지녔거나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는 사람이 심리 조작에 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이 심리 조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심리 조작은 보다 더 교묘하고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도 특히 의존성 인격장애 문제를 심리 조작에 걸린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으로 지적하고 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판단을 의존하고 항상 타인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를 대신해 결정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까지 발생한다.특히 오늘날처럼 개인의 소외감이 심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불안정한 내면을 다스리기가 더욱 힘들다. 똑같은 환경에 놓이더라도 심리 조작에 잘 걸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취약한 마음 밭을 지닌 사람들이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7/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13283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믿을만한 사람들이 없으니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에 흔들리기도 하고 사이비에 빠지기도 한다. 내 주변에 아형아제하며 지내는 후배가 있다. 건축 자재상을 하는 관계로 알게 되었지만 몇년간 함께 하다보니 정이 들어 거의 매일 전화 통화를 하고 일주일에도 몇번씩 만나기도 한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의형제를 맺자고 당부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냥 현재의 상태에서 서로 돕는 공생관계면 족하지 너무 '허심탄회(虛心坦懷)'하면 실망이 클 거라는 생각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때로는 멘토가 한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허한 생각이 들 땐 누군가를 의지하고픈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완벽한 신뢰는 바라지도 않는다. 비교적 ‘신뢰 있는’ 사람과 집단을 찾게&nbsp;되는데, 불신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믿고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차선책(次善策)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고 차악(次惡)이라도 찾자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신뢰도 조사’라는 것이 자주 발표된다. ‘절대 신뢰’는 불가능하니 여론조사로 신뢰를 측정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세월호의 참극에 따른 국민의 분노와 불신을, 적어도 여론의 50%는 돌려놓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가공할 ‘눈물’도 먹히지 않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살다 보니 최순실에 기댔고, 거기에서 뜻하지 않은 불운을 만나고 말았다는 신파는, 박근혜가 그동안 넘치게 보여준 불통과 아집과 부패와 권력 남용의 시궁창 속에 속절없이 파묻히고 말았다.&nbsp;‘부모를 비명에 잃은 불쌍한 공주’의 이미지는 더는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nbsp;최순실 주변의 권력 농단과 전횡이 불러온 공분의 깊이와 규모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증거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윤석열씨도 자기의 부모나 형제간에도 단절하고 처가집과 김건희에게 의지하더니 몰락의 길로 빠져 들었다. 정말 국정을 함께 할 파트너가 그들뿐이었을까?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말할 대상이 없을 때 사람은 고독을 느끼고 복잡한 사고에 사로잡힌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목사와 교인. 가장 허심탄회(虛心坦懷)한 관계이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빌 허(虛), 마음 심(心), 너그러울 탄(坦), 품을 회(懷)가 합쳐진 사자성어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음 또는 명랑(明朗)하고 거리낌이나 숨김이 없는 마음을 의미하는 데, 과연 목양관계에서 그런 면이 존재하는가.&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목회 현장에서 얻은 경험론이지만 세상에서는 똑똑하고 총명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교회에 오면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nbsp;끝없는 소모전에 말려들기 싫어서 일부러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nbsp;아니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nbsp;반면, 어줍잖은 사람일 수록&nbsp;교회에서 말이 많다. 마치 제 세상 만난듯 요란을 떤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요한3서에 보면 &lt;디오드레베&gt;라는&nbsp;사람이 등장하는 데,&nbsp;성경에 오명을 남긴 불행한 사람이다. 그는 교회에서 말 많은 사람이었다.그는 으뜸 되기를 좋아한 교만한 사람으로 요한의 사도권에 도전을 한 사람인 데, 성도라 자처하면서도 복음 진리를 거부했고,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지도 않고 두리어 핍박을 했으며 성도들 중에 주의 일꾼들을 대접하려는 자들을 비난하고 교회에서 쫓아버렸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러니 사도의 시름이 깊어졌고 교회 성장의 암초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말이라고 다같은 말이 아니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엇일까? 교회 성장 전문가인 톰 레이너 박사(라이프웨이 리서치)가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절대 해서는 안될 말’에 대한 칼럼을 보면' 세상에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직업이 어딨어요?'라는 말이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 말은 ‘그 많은 쉬는 시간이 뭐하세요?’와 비슷한 말이다. 교인들이 보기에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목회자는 주일만 일하는 아주 ‘편한’(?) 직업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그 중엔 일주일에 몇번씩 골프치러 다니고 당회(당구 모임)를 하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목회자는 주중에 주일 설교를 꼬박 준비하며, 이외 교인 심방과 상담, 전도를 비롯해 교회 행정을 돌보고 때로는 교회 차량 운전까지 한다는 점에서 목회자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 중에 압권(?)은 '목사님은 신학교에 갔으니 공부를 제대로 안하셨겠네요’라는 말이다.&nbsp;목회자를 은근히 무시하는 발언치곤 최악의 경우인 데, 군소 신학교가 수백개에 이르니 '할 일없으면 신학교나 가지 뭐!'하는 말이 항간에 떠 돌았던 걸 감안하면 목회자들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7/563a7e52e0773b26c4cdbd0cbb19cece13353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일이 많은 목회자이기에, 보이는 부분만 판단해 목회자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비하하는 말은 실망과 상처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무튼, 가까운 사람이라고 마음편하게 말할 수 없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 실수를 덮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입조심해야한다. 그리고 교역자는 교역자가 세워주고 지켜줘야 한다는 그 말을 마음에 다시 새기게 되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내 생각과 의도와는 다르게 나오는 말들때문에 고개를 들지못할 일들이 생긴다. 마음이 편할때 그 때를 조심해야 한다. 난 교인들과 식사하기를 참 좋아했다. 별 일이 없으면 오늘은 누구와 식사를 할까를 생각하다 생각나는 사람을 불러 식사를 함께하곤 했다. 난 목회를 하면서 물론 대접받을 때도 많았지만 내가 살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때로는 고급스러운 곳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nbsp;기사식당을 주로 이용했고, 자장면 칼국수 등 서민 식당을 이용하면서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며 퍽이나 행복한 시간들을 가졌었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그러나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누군가에게 내 사정을 말하고 싶어도 너무 멀어져 버렸다. 마음이 답답하고 외로울 땐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말 할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설령 그런 대상이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금이다. 하도 말을 많이 했고, 말많은 곳에서 살다 빠져 나왔기에 이젠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말을 많이하면 더 공허해진다. 그리고 탈진하게 되고 더 큰 외로움에 빠진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버지이기에, 자식이기에, 남편이기에, 아내이기에, 친구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수록 감사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호의가 지나치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려 한다.&nbsp;나는 그간에 마음이 모질지 못해 손해보는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몇일 몇날에 걸쳐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고 나면 마음이 후련하다.&nbsp;</font></b></div><div><b><font size="4"><br></font></b></div><div><b><font size="4">아직은 본격적인 영농의 계절이 아니지만 빈들녁에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마음속의 생각들을 끄집어 내어 반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nbsp;어차피&nbsp;'허심탄회(虛心坦懷)'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니 혼자노는 법에 익숙해지는게 좋을듯 싶다.&nbsp;</font></b></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7</guid>
			<dc:date>Fri, 17 Apr 2026 13:41:0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명당자리</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5/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12083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가끔 지인들에게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뜻밖에도 생각이 같았다. 젊었을 때는 장미나 작약, 샐비어(일명 사루비아), 양귀비꽃처럼 화려하고 향기 짙은 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작고 향기도 없는 꽃들이 좋단다.&nbsp;</font></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span></div><div><font size="4"><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모든 꽃은 꾸밈이 없어도 예쁘다. 치장하지 않고 저마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서로 먼저 피려고 서두르지도 않고 유유자적 여유롭다. 어쩌면 꽃은 모든 생명의 아름다운 결정체인지도 모른다.&nbsp;&nbsp;</span></font><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어떤 노승은&nbsp;꽃을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메신저'라고 표현을 했다. 그래서 신들에게 꽃을 바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팔 여인들은 아침 일찍이 메리골드 꽃을 신께 바친다.&nbsp;우리나라도 장례식장에서 영정 앞에 흰 국화를 놓는다. ‘헌화가’에서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바친 꽃은 철쭉이었다고 한다.</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난 나일먹으면서 야생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보잘 것 없는 화초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왜 나이 들면 작고 보잘것없는 꽃이 좋아질까. 늙어 시력은 나빠졌으나 세상은 더 잘 보이기 때문일까?&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 보는 눈도 달라졌다. 젊어서는 잘나고 성공한 사람들만 보였는데, 지금은 못나고 가난한 루저들이 더 잘 보인다.&nbsp;</span></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세상에 나와 보니 온통 세상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인맥을 통해 돌아가고 있었다.&nbsp;나는 매일 기도문을 만들면서 오늘은 미련한자가 되지도 말고 미련한 사람을 만나지도 말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잠언서는&nbsp;모든 사람의 마음과 귀를 향하여 외친다.&nbsp;어른들을 향하여서&nbsp;미련한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자가 되라고,&nbsp;어린이를 향하여는 어리석은자가 되지말고 슬기로운자가 되라고,&nbsp;그리고 잠언의 말씀은 이렇게 경고한다.&nbsp;차라리&nbsp;새끼&nbsp;잃은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라&nbsp;(잠언17:12)고.&nbsp; &nbsp; &nbsp; &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주말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의 성의 없는 대답이 나오는 순간, 화면 자막에 ‘영혼 없는~’이라는 말이 꼬리표로 달려 나오는 것을 종종 본다. 그만큼 천지 분간 못하고 개념이 없거나, 내켜 하지 않아 심드렁하게 내뱉는 무성의한 말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젊은 층이나 연예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유행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최근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특히 관료사회를 보면, 이 ‘영혼이 없다’는 유행어를 실감하게 된다.&nbsp;약속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아무리 손해가 되어도 지켜야 할 불문율(不文律)이다.&nbsp;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지만 역시 예전에 비해 감각이 많이 떨어진게 사실이다. 나일먹으면 어쩔 수없이 감각은 무디어지고 진한 추억만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지난 세월의 얘기들이 기쁨을 안겨준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font color="#ff483f"><b>추억(追憶)</b></font>.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 감동으로 보았던 영화 한 장면 같이 다가온다.&nbsp;그런 추억을 가장 잘 되살려 주는 것이 사진이 아닐까? 여행 중에 카메라 앞에 서며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겨진 낡은 사진을 바라보는 마음은 즐거움 그 자체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다. 또한 추억의 되새김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하는 원동력이 된다.&nbsp;요즘은 젊은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나이를 먹고 남은 생보다 남겨진 자취가 더 길다고 느껴지면 딱히 뭐라 인식하지 않아도 과거에 심취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게 더럽고 추하건 아름답고 귀하던 사람은 그렇게 추억을 붙잡고 살수 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5/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210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감수불보(甘受不報)'란 말이 있는데,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니 원망하지 않고 달게 받으며 복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게 일어나는 화나고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일들은 시련도 아니고 절대자가 별 생각 없이 주는 시험도 아닌 다 내가 지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 진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남에게 미루거나 원망대신 내가 '감수(甘受)'해야 할 일이라고 작정하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자주 느낀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삶이 모두 자기의 작품이기에 조금 부족(不足)해도 위축(萎縮)되지도 않고 누구를 원망(怨望)하거나 부러워하지않고 자기장단(長短)에 맞추어 즐거워하고 스스로의 목소리로 노래 부르며 춤추고 행복(幸福)해 하고 싶다. 일을 좋아하며 건강(健康)하고 삶이 여유(餘裕)롭고 자녀(子女)와 남을 의지(依持)하지않고 당당(堂堂)하며 독립심(獨立心)이 강(强)하게 살려 노력중이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font size="4">옛 어른들이 게으른 사람을 빗대어 "콧등에 파리가 앉아도 혀바닥으로 쫓을 놈"이란 말이 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을 질타하는 말일게다. 나 역시 날 성가시게 하는 파리를 좋아할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성가시게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성가시게 만들고 불쾌한 감정을 안겨 준 사람을 원망하기 보단 내가 너무 민감하게 산게 아닌지를 생각하며 너그럽게 살기로 했다.&nbsp;</font></div><div><font size="4"><br></font></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The Highly Sensitive People)'은 대개 까다롭고, 비사교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회적 압박과 시선 때문에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내가 주런 부류였다. 이젠 남들과 갈등할만큼 한가하지도 않을뿐더러 여유가 있는 노후생활을 목표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태국에 가면 파타야란 곳이 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두번 안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친숙한 곳으로 지금은 세계적인 유흥가로 변신했지만 원래는 베트남 전쟁중 미군들 휴양지로 개발되었던 곳이다. 전장터를 벗어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해소시키지 않으면 안되기에 전장터엔 이런 곳이 있기 마련이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난 목회현장을 벗어난 은퇴자들도 일정한 기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낙향을 권유하고 자연을 벗삼아 인생2모작을 시작하자고 꼬드긴다.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귀촌 예찬을 늘어 놓는다. 내가 전문가 못지 않는 농사꾼이란 말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시눙은 낼줄 알고 마음만큼은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땅에 묻혀 살기를 원한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자연속에서 살면서 심미적인 치료를 수없이 경험했고 계속해서 마음을 수련중이다. 나는 종종 거울앞에 서보곤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 불과 10년 전하곤 너무 큰 차이를 보인다. 멋이라곤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내 삶을 조용히 관조(觀照)해 보면 목회자로만 일생을 살았다면 정말 멋없이 세상을 살뻔 했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계속 대접을 받으면서 그걸 당연시하고 쥐꼬리만한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 했을게 뻔하다. 나도 한 땐 귀공자 타입이고 선비 타입 등 세련된 매너 등으로 인해 멋있는 사람이라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말이다. 보통 '멋'하면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남성들이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노인이나 병약자에게 서슴없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젊은이들에게서 쉽사리 보지 못하던 멋을 느끼곤 한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문제는 대부분의 노년 남성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미 지나간 젊음을 아쉬워하기만 했지 찾아오는 노년에 대하여 멋스럽게 맞이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남자들이 노년을 지나면서 점차 멋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족들에게 남겨 준 것이라고는 신앙심 하나뿐인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물론 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에 이르기 까지 공부시켜 준 것은 있지만 그건 일반 부모들도 모두가 하는 일상이고, 화려한 색깔, 아름다운 소리, 좋은 맛, 신나는 사냥 등에 선 별로 내세울 게 없다. 왠만하면 몇개씩 다니는 학원 한번 보내보질 못했고 한우고기 한번 실컷 먹여보지 못한게 마음에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김살 없이 잘 자라준게 너무 고마워 이제는 신앙 유산말고 화려한 색깔,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고, 좋은 음식이나 여행 스케치를 만들어 주고 싶어 일년에 한두번은 반강제적으로 여행을 주선하고 있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내 딸들은 이제 자식들 걱정말고 아빠의 건강이나 챙기고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망설이지 말고 자유롭게 하라고 당부하지만 나는 내 남은 시간들에 대하여 현재로서 만족스럽고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먹는다지만 지금에 와서 내 처지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냥 더디지만 저속으로 가다 멈춰 서는 시간까지 가볼 생각이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그간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만 살아 왔기에 이제는 사랑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기도하고 결심한바가 있다. 가족들은 물론 몇 안되지만 친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 주려 노력하고 있다. 여행은 물론 어쩌다 만남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먼저 지갑을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고 날 기억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어찌 처삼춘 벌초하듯 할까?</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5/c11b37e1df35e938bb23472cf4b9e6b31211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불문율처럼 여기는 것중에 하나는, 내가 말씀을 붙잡고 애쓸 떄 내 수고를 인정하신다는 사실이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했을 떄 "나사렛에선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는 완강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부터 그를 알아 보셨다. 주님은 요행을 바라는 사람을 가까히 하지 않는다. 애씀과 수고의 현장에서 부르신다.</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독실한 크리스찬인 목수 오야지가 내 사정을 알았는지 4일 정도 인테리어 작업을 예상했는데 이대로라면 3일이면 마칠 수 있을 정도로 속력을 내었다. 우리 인부들도 비지땀을 흘리면서 마당 배관작업과 정화조를 설치했다. 아직 로바시 작업 등 할일이 남아있지만 내일중 마무리 작업을 모두 마치겠다고 의욕을 불태운다. 다음주쯤 도배 장판 보일러 업자들에게 시간 약속을 받았고 전기업자가 마지막 마무리를 하면 잔디를 깔고 공사를 마칠 생각이다.</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늘 부모님 산소가 있는 곳이라 일년에 몇번씩 다니는 길목이지만 막상 다녀 버릇하니 먼 길이 아니지만 처음 오는 인부들은 꽤나 멀게 느껴지는 모양이지만 고속도로 통행료와 하루에 유류비로 2만원씩 더 주니 좋아라 한다. 목수들도 주택지로는 천혜의 장소라며 노년엔 속세를 떠나 이런 곳에서 살면 더 건강해질 거라며 명당 자리라고 호평한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size="4">아마도 집주인인 박목사님이 조경에 관심이 있고 꽃을 좋아하시니 시간이 지날 수록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질 것이고 총회장을 지낸 박현모목사님이 기념으로 복숭아 자두 등 과일나무들을 식재해 주셨기에 내 후년쯤이면 과일철에 방문하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대가 높아 해지는 광경이 일품일 것이며 뒤로 산이 평풍처럼 둘러쳐 있어 마음이 편해지는, 대한민국에서 몇안되는 명당임에 틀림없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 &nbsp;&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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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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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15 Apr 2026 12:12:5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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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3/2c3c347fe1fde625ec54a7547a28d139224802.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형색이 일용잡부만도 못하니 처음 현장을 찾는 사람들은 나에게 책임자가 누군지를 물어 올 때마다 내 몰골에 대하여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nbsp;</div><div><br></div><div>조적 오야지나 목수 오야지도 거의 현장에 있지만 넥타이 차림에 K2 정도의 의상에 초생달 모양의 표식이 있는 신발을 신고 개폼을 잡고 호령하는데, 정작 사장이란 작자는 남루한 옷차림에 인부들 틈에 끼어 허드레 일을 하니 이해하기 어려운가 보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편하게 살려 작정했다면 귀촌을 안했을 것이고 발악적(?)으로 정년을 채우려 했을 것이다. 모든 걸 내려 놓으려고 작정했고 가장 낮은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여기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nbsp;</div><div><br></div><div>내 현장안에서는 내가 분명히 갑이지만 한번도 갑질을 해본적이 없다. 누구와 얼굴을 붉혀 본적도 없지만 억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지도 않는다.</div><div><br></div><div>요한계시록을 보면,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6:2) 말세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이기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풀릴 문제도 풀지 못하고, 묶여서 끌려가다가 쓰러지게 된다. 내려놓으면 쉽게 풀릴 문제가 많다. 갈등은 왜 생기는가? 통제하려는 욕망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nbsp;&nbsp;</div><div><br></div><div>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된다는 자세를 가지면, 갈등은 사라지고 묶인 것은 풀리게 되어 있다. 뭐든 빠른 시간 안에 변화시키려고 하면 폭력적이 된다. 나라를 빨리 변화시키려고 하니까, 폭력에 의한 혁명을 한다. 아이들을 빨리 변화시키려면 몽둥이를 들고 때리는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도 교인들을 빨리 변화시키려면, 강압에 의한 몰아침 밖에 없다.&nbsp;&nbsp;</div><div><br></div><div>하지만 모든 것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으면, 폭력은 사라진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상황을 답답해했지만, 그냥 우셨다. 원치 않은 상황이지만, 받아들였다. 그래서 예수님에게서는 폭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손발이 안맞으면 맞는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다. 목회 생활을 하면서 평탄한 길이 많았겠는가? 눈물의 힘든 시간이 많았다.&nbsp;</div><div><br></div><div>&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젊었을 땐, 사소한 일에도 발끈했지만 이젠 왠만한 일엔 달관까지는 아니지만 관조하는 여유가 생긴게 사실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weight: bold;"><font color="#f10b00">'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fon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라는 노랫말이 유행을 타고 있다. 그건 늙음을 합리화시키려는 자구책에 불과할뿐 나이는 어쩔 수 없다는게 내 지론이다. 봄에 돋은 싹들이 여름날 번성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잎새의 색이 바래지고 거칠어 지는 것과 같은 이치는 비단 겉모습만 그리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공사현장에선 왠만하면 모두가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미장공도 사장이라고 불러 주어야 좋아라 한다. 옛날엔 오야지의 권한이 막강했지만 지금은 같은 인부중에 한사람 정도의 취급을 받으니 옛날을 회상하며 그 때가 좋았지를 난발한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금방 냉각되기도 하고 살벌해지기도 한다. 나는 가능하면 우리 현장에선 큰소리가 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nbsp;&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3/1616dc6ee8e99f7e88fd1e20528b20b422492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자주 화를 내는 편은 아니지만 분노의 감정을 누그러트리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게 내 최대의 단점이다.&nbsp;분노의 감정이 생기면 오랫동안 지속되기에 가능하면 화를 내지 않으려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분노는 오랫동안 인간 삶의 문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중요한 감정이다. 심한 경우 분노를 정신병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스토아학파 후기 철학자인 세네카는 분노에 한번 사로잡히면 자식이 부모를 죽일 수도 있고, 선왕을 폭군으로 만들기도 하며, 가장 선한 존재에서 가장 사악한 존재로 변하게 할 수 있으므로 분노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 뿌리까지 제거할 것을 주장했지만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릴 때부터 선친을 보면서 목사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오직 주님과 해결해야 한다는 걸 보고 자랐기에 싫어도 싫다는 소릴 못하고 좋아도 속으로만 간직하는 소극적인 방식에 길들여 지면서 함부로 내 감정을 밖으로 들어내지 않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었다.&nbsp;그 결과 결국 병원신세를 져야 했었다.&nbsp;&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r></div><div>한 때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처방에 따르지 않은걸 후회했지만 그래도 세상을 내 기분대로 살 수는 없는 일이고, 더군다나 교인들을 상대로 투쟁적으로 살 수는 없는 일이며, 눈엣 가시들을 다 제거하면 해결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nbsp;그래서 난 당회를 하면서 일곱명 중에 한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안건 자체를 결론짓지 않았다.&nbsp;물론 얼굴을 붉히며 싸울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nbsp;</div><div><br></div><div><div>아리스토텔레스는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도 중용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 보았다. 분노를 적합하게 표출하고 분노를 제대로 순화해야 중용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 셈이다.&nbsp;이와 반대로 헬레니즘 철학에서는 분노를 일종의 ‘영혼의 질병’으로 분류하고, 인간의 행복과 정신적인 건강함을 위해 필히 제거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보았다.&nbsp;</div><div><br></div><div>아직도 나에게 이 문제는 결론을 내지 못한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분노를 표출하는게 좋은지, 아님 끝까지 참는게 옳은 것인지, 모든 사안은 각각 상황이 다르지만 세상을 순하게 살면 손해보는게 사실이다. 내 삶의 언저리 곳곳에 복병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였다.&nbsp;세상 곳곳에 악마의 덫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을 옥죄는 올가미라는 걸 알기 까지는 어리석은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이&nbsp;대부분이다. 건강을 잃고, 인생의 쓴맛을 알고 난 다음에 덫에 걸리지 않고 사는게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를 알게 된다.&nbsp;</div></div><div><br></div><div>한낮은 여름을 방불케 하지만 아침 저녁은 아직 쌀쌀하다. 오늘도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날씨이다. 이런 흐린날이 지속되면 난 철학자가 되어 있을 것 같다.&nbsp;나는 기분이 언잖으면 두문불출하거나 입에 지퍼를 채우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病을 얻기도 했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방식이기에 그대로 성격으로 굳어진 것같다. 어떤 땐 내 성격이 싫을 때도 많다. 화가나면 소릴지르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nbsp;</div><div><div><br></div><div>하지만 지금껏 나는 한번도 소릴지르며 싸워 본 적이 없었고, 목소리 큰 사람관 친분 관계를 맺지 않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 목소리 큰 놈(년)들은 남의 생명을 잘라먹는 암덩어리들이다. 교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강단에서 갑질을 부리는 인물이 예상외로 많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3/e5b4e1e8125d7c140206b451bf4c2ea02250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은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적이 없고 강단을 떠나면서 혹시라도, 부지중(不知中)에라도 나로인하여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에 집단심리치료(集團心理治療)를&nbsp;실시하고 떠나면 어떨까를 생각했었다. 경험론적으로 느낀바가 있어 제안해 보는 소리이다.&nbsp; &nbsp; &nbsp;&nbsp;</div><div><br></div><div>어려서부터 속으로만 삭이는 사람은 내면적 공상이 많고, 그 속에서 좌절된 욕구를 채우고 절제하지만, 직관적이고 예술적인 재능이나 창조적인 면도 있다. 나에게 그런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얼음위를 걷듯 생활했다. 일회성 인생길에 서 있는 동안 멋지게 인생을 마감하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은 촌노가 다되었지만 나도 한 때는 그런대로 봐줄만 했었다. 멋대가리 없단 소린 듣지 않았다.&nbsp;</div><div><br></div><div>내일부턴 다시 공주현장으로 출퇴근을 해야 하기에 트럭을 빌려 정화조와 PVC 집수정 등을 실어 놓아야 하고 목수팀과 포크레인 장비를 점검하고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해야 하기에 목자재를 주문해야 한다. 이란 전쟁으로 유류비가 만만지 않은데, 공주까지 배달하라니 난색을 표하지만 후한(?)이 두려워서인지 마지못해 응하지만 일단은 준비를 마쳐야 한다. 아침 6시까지 연무대 IC로 집결하라며 오늘 미리 상차를 해놓으라고 압력을 가했다.</div><div><br></div><div>전기 싱크대 설비 타이루 벽지 장판 보일러 업자 등에게도 그간의 관행을 무시하고 인건비 등은 아예 견적에 넣지 말 것을 주문했다. 교회 장로인 방통업자도 은퇴목사님이 살 집이란 말에 120만원중 105만원만&nbsp; 받아갔다니 도대체 얼마에 수주했느냐고 반문한다. 예술하는 사람은 작품에 올인하는 법이라며 세상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법이라고 일축했다.&nbsp;</div><div><br></div><div>군산시청에 가서 측량 성과도와 서울보증보험 회사를 방문하여 토지이동 강제이행금 서류를 만들어설계사무실에 가져다 주어야 한다. 이번주 안에 준공이 떨어져야 하고 누이네집 준공에 필요한 서류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몸은 부실한데 산적한 문제가 날 한곳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텃밭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전혀없다. 상추를 심으려고 땅을 일구어 놓았는데,&nbsp; &nbsp;</div><div><div><br></div></div></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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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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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13 Apr 2026 22:51:3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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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별 걸 다 훔쳐간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1/264a83e8f6958a50b62da2ebe39219b023080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창세기 1장31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윌리암 아메스(William Ames)는 하나님의 창조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능동적 창조와 수동적 창조로 나누어진다고 말하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능동적 창조는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이 세상에 만물을 직접 창조하신 것이고 수동적 창조는 이미 창조된 것들의 변이를 가리킨다.&nbsp;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중에 아름답지 않을 게 없다. 인간이 그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에 시비가 생길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창조하신 목적이 있음을 안다면 세상엔 하찮은 게 없다. 하다못해 버러지같은 것들도 하나님의 창조사역 안에 있었음을 부인해서는 않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버려선 안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잘났으면 잘난대로 살고 못났으면 못난대로 살면 그 뿐이다. 가난하다고 비굴해질 필요가 없고, 못생겼다고 얼굴을 가리고 살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작품들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 나에게 건강을 위해 골프를 배우라고 강요한다. 이렇게 공사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며 아둥바둥해봤자 인생무상이 아니겠느냐고 반협박조로 윽박지른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나는 내 삶을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내 삶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고 남의 삶의 방식에 내 삶이 평가받게 되는 일을 지극히 경계하며 살고 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우리 집안은 '안되면 되게 하라'는&nbsp;해병대 구호를 신뢰하지 않는다. '안되면 되는 길을 찾으라!'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nbsp;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달란트가 다른데 오직&nbsp;하나에 올인하여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투자하는게 안스럽기만 하다. 물론 한 우물을 파면 언젠가는&nbsp;샘물이 터진다고 가르친&nbsp;교육의 문제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교육의 목표가 잘못된게 분명하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 자녀들이 노량진 근처에 가보지 않은게 너무 고맙다. 우리 집안은 재수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조카나 생질들도 재수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nbsp;&nbsp;지금은 모두 장성하여 의사나 약사 직장인 전업주부로 있지만 재수생이란 말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대단한 집안이라 말할 순 없지만 모두가 제 갈길을 잘 찾아 가고 있어 부모가 걱정을 하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 자녀들이 최고가 되길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영혼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 매일 매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길 원한다. 그리고 남에게 지탄받지 않는 삶이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원하고 지지를 보낼 것이다.&nbsp;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문을 두드릴 권리가 없는 죄수"라고 말했다.&nbsp;</div><div><br></div><div>결국 나를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은 남이다. 이처럼 고수로 대접하고 인정해주는 것도 타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남이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최고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얼치기라고 부른다.&nbsp;</div><div><br></div><div>비트겐슈타인은 '얼굴은 육체의 영혼' 이라 했고, 키케로는 '모든 것은 얼굴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했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를 링컨은 마흔, 조지 오웰은 쉰을 기준으로 삼았다.&nbsp;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고달프고 힘든 일의 연속이지만 내 삶에 연민을 느끼거나 동정하지 않으려 한다.&nbsp;</div><div><br></div><div>초라한 행색을 하고 다니지만 영혼없는 삶을 살지 않으려 분투중이며 내 삶에 환멸이 찾아오는 순간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매일 매일 창조적인 삶을 꿈꾸며 노력중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우월이 존재한다. 머리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 등 특출하고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속에 정한 기간동안 살다가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이 올 거라는 분명한 사실을 안다면 자고(自高)할 수 없다.&nbsp;</div><div><br></div><div>뭐가 그리 잘났다고 기고만장하는가. 누구나 빈손으로 나아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할 존재들뿐이다.&nbsp;눈을&nbsp;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을때까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결국 잠자리에 누워서는 내가 오늘&nbsp;무슨 생각을 했지? 내가 정말 알고 있는게 뭐지? 아까 생각했던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 등등 생각의 홍수속에 살아가고 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1/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2309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상을 살다보니 전혀 예상못한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인생을, 세상을, 교과서적으로만 살 수 없다는게 고민이다. 점점 세상은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 성장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게 되며 점차 뒤쳐져 결국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버리게 된다.&nbsp;</div><div><br></div><div>예술가들은 누구나 자기의 작품에 서명을 한다. 자기의 공적이나 이름을 들어내고 싶어한다.&nbsp;그러나 여기 르네상스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작품에 결코 서명을 남기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다음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nbsp;</div><div><br></div><div>시스틴 성당의 천정 벽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받은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온 정성과 열의를 다하여 작품에 임하게 되었다.&nbsp;&nbsp;그리하여 몇 달을 벽화 그리기에 몰두했던 그가 마침내 불후의 명작 "천지 창조" 를 완성했는 데, 흡족한 마음으로 서명을 한 뒤 교회당 문을 나서던 순간 그는 눈부신 햇살과 푸른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nbsp;</div><div><br></div><div>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어떤 화가도 그려내지 못할 대자연의 아름다움! 그때 문득 그에게 한 가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시고도 그 어디에 서명 같은 것을 남기시지 않았는데 기껏 작은 벽화를 그려놓고는 나를 자랑했다니....&nbsp;</div><div><br></div><div>그는 즉시 되돌아가 천정 벽화에서 자신의 서명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는 어떠한 작품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 더 배운 것이 그리 자랑스런 일인가. 조금 더 크게 키운 교회가 그리 자랑하고 싶은가. 그렇게 총회장하고 싶은가. 만세반석 열릴 때&nbsp;모두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할 존재들이다. 오히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을런지도 모른다. 세상에선 쓸모없는 인간이었을지 모르지만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다.&nbsp;</div><div><br></div><div><div>바람을 마주보고 맞으면 역풍(逆風)이지만 뒤로 돌아서서 맞으면 순풍(順風)이 된다. 움켜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 또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내가 평생을 꿈꿔왔다고 믿었던 오늘,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살다보면 그 모든 것들의 ‘진짜 모습’에 대한 고민이 불쑥 가슴을 파고드는 때가 있다. 가시 돋친 한마디에 마음을 베이는 날이면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고 외로움까지 쏟아진다.&nbsp; &nbsp;</div><div><br></div><div>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다.&nbsp;그럴 때마다 '지켜보는 가마솥은 더 늦게 끓는다'는 격언을 떠올린다. 아직은 실망하기에 이르다는 생각을 품는다.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한 개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젊은이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늙은이는 지름길을 안다.&nbsp;&nbsp;나일먹고 보니 이제서야 겨우 눈을 뜨고 사물을 인식할 정도가 되었다.&nbsp;</div><div><br></div><div>내려놓아도 손해될 게 전혀없다. 내 시대는 끝났어도 그 다음세대, 그 다음세대가 자라고 있기에 최소한 욕심만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nbsp;그랬듯이&nbsp;시간은&nbsp;시나브로&nbsp;또&nbsp;다른&nbsp;계절을&nbsp;데려다&nbsp;놓고&nbsp;새롭게&nbsp;시작하라&nbsp;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div></div><div><br></div><div>소장을 비롯 인부들을 충청도 공주 현장으로 보냈다. 오늘중 지붕 박공공사와 물통을 설치 완료하라고 임무를 부여했다. 내일까지 중요한 일정이 잡혀있어 자릴 비울 수가 없고 그간에 밀린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라 약간 염려스럽긴 하지만 인부들을 각 현장으로 나눠 투입시켰다. 공주현장 근처의 인부들이나 자재를 구입하면 조금 절약은 되겠지만 여간 어려운게 많아 익산에서 인부와 업체를 동원하려니 자연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 내 정위치는 여전히 공주현장이고 하루라도 빨리 마쳐야 다음 현장도 안정이 될 거란 생각에 올인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오늘은 예배를 마치고 그간에 방치해 두었던 작은 텃밭을 관리하려 한다. 일단 풀을 제거하고 비닐 멀칭을 하는 등 농사지을 준비를 마쳐야 한다. 오늘이 아니면 올해 농사는 접어야 될 상황이라 마음은 공주현장으로 따라 갔지만 몸은 텃밭을 주시하고 있다. 새벽에 나가 늦은 밤에 들어오다 보니 고양이가 집을 나갔고 호미 낫 등 내 유일한 농기구를 누군가가 다 집어 가 버렸다. 별 걸 다 훔쳐간다.&nbsp;&nbsp;</div><div><br></div><div>&nbsp;</div><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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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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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11 Apr 2026 23:10:3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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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파도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1/3b9e0715a7da28d08a2ded4b2f9136db112252.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nbsp;읽노라’&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금도&nbsp;그러는지는 몰라도 우리 학창시절엔 음악 시간이 꼭 배정되어 있어&nbsp;일주일에&nbsp;한번씩&nbsp;음악실로 수업받으러&nbsp;다녔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다른 반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음악실은 교정의 한쪽 구석에 있었는데, 다른 시간은 늦장을 부려도 음악시간은 지각생이 없을 정도였다. 학교에서 유일한 여교사이기에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고, 아무개의 애인이란 소문이 꼬리를 무는 루머의&nbsp;산실이었던&nbsp;음악교실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nbsp;때 배운 노래가 박목월 시인의 노랫말 ‘4월의 노래’였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nbsp;읽노라’로&nbsp;시작하는 노랫말이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 같은 데, 음악 선생님이 이 노래를 즐겨 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nbsp;슬픔』에 나오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못다 이룬 사랑에 가슴앓이하는 그 시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약혼자가 있는 한 여성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작품인 테,&nbsp;당시 이 소설을 읽은&nbsp;독일 청년들이 잇따라 자살해 ‘베르테르 효과’로 익히 알려져 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베르테르의 이야기는 지금이야&nbsp;흔한 사랑의 열병으로 가볍게 읽힐 수 있겠으나, 당시로서는 충격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당대의 모든 금기를 민감하게 건드림으로써 식자들 사이에&nbsp;논쟁을 불러일으켰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금기와 전통의 파괴뿐 아니라 당대의 도그마적 기독교에 대한, 신분사회에 대한, 기성도덕에 대한&nbsp;반기를 들고 있는 &lt;젊은 베르테르의 슬픔&gt;에는 독일 낭만파를 이끌어간 ‘질풍노도(疾風怒濤, strum undDrang)’의 이념과&nbsp;정열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nbsp;</span></div><div><br></div><div>소설이 출간될 당시 독자들은 베르테르의 비극적 운명에 눈물을 흘렸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베르테르의 복장이 크게&nbsp;유행했다. 유부녀를 사랑하는 풍조가 유행했으며, 권총 자살을 모방하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가&nbsp;나타났다. 목련의 계절은 4월이지만 가을에 더 어울리는 노래이긴 하지만 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벚꽃이 지고 목련도 서서히 꽃잎을 떨구고 있는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nbsp;&nbsp;</div><div><br></div><div>마음이 울쩍할 때 자주 찾는 곳 충남 서천의 '비인' 갯마을 체험장을 찾았다. 비가 내린 탓인지 역시 쌀쌀한 기온 탓인지 주말이지만 인적이 없고 바람에 훝날리는 꽃잎이 철이른&nbsp; 바다를 더욱 을시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조용한 까페를 찾았다. 분위기는 거의 포장마차 수준이지만 음악만은 70년대의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낯익은 음악이 깔리고 있다. 학창시절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 몇곡쯤 안 불러 본 사람이 없겠지만 나 역시 7080 노래라면 거의 섭렵을 했을 정도였다.&nbsp;&nbsp;</div><div><br></div><div>공사비 내역을 기재하는 노트에 붙힐 곳이 없는, 뜻모를 편지를 낙서처럼 끄적거리고 있었다. 편지를 써본지가 까마득한 옛날이다. 굳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베트남에 파병된 외아들이 전사한 소식을 알린 것도, 10대 까까머리 사내와 단발머리 처녀 간 사랑과 이별을 전한 것도 편지였다. 어느 미래학자가 우리 생애에 사라질 9가지 중 가장 빠른 것이 우체통이라고 했지만 기다림과&nbsp;반가움의 정서마저 사라지는가 해서 아쉽기만 하다,</div><div><br></div><div>우리&nbsp;시대는 편지쓰는게 유행이었다. 지금은 편질 써 본 적이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선친께서는 나에게 일주일에 한통 정도는 편지를 보내셨던 것 같다. 아현동 3가 35번지 기숙사에 대한 추억이 있어 그러셨겠지만 당신의 뒤를 따르겠다는 둘쨰 아들이 어쩜 안스러워 그러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선친께서는 형제간 친척간 그리고 친구들에게도&nbsp;곧잘 편지를 썼다.&nbsp;</div><div><br></div><div>학창시절에 펜팔을 안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편지쓰는 일은 보편적이었다. 편지는 진한 감동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편지는 말과는 다른&nbsp;매력이 있다. 과거와는 다르게 말이 조금씩 가벼워지면서 글의 강점이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nbsp;이에&nbsp;따라 글로 쓴 편지만이 줄 수 있는 감정이입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nbsp;</div><div><br></div><div>편지를 쓰기 위해 일일이 편지지와 봉투를 구입했을 것이며, 그 편지에&nbsp;쓴 글들을 하나하나 써내려 갔을 것이며, 또한 상대방을 생각하며 말보다는 다른 깊음으로 한번 더 생각해서 작성했을 편지에서 더욱 많은 감동을&nbsp;받는 건 당연할 것이다.&nbsp;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였기 때문일까, 교과서에 실린 글이나 저자들의&nbsp;이름은 머릿속에 깊이 남아있게 마련이다.&nbsp;민태원의 ‘청춘예찬’을 비롯하여&nbsp;정비석의 ‘산정무한’,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등은 교과서에 실려&nbsp;더욱 유명해진 작품들이다. 이들 명문장뿐 아니라 교과서의 저자들도 쉽게 잊혀지지&nbsp;않는 이름이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 class="imgwrap" style="width: 41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1/10/16/1f39959fa48539fcfc5341a2440523f31146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서천 '비인' 바닷가는 갯벌 냄세보단 진한 향수의 냄세를 간직한 곳이다. 썰물 때라 그런지 바다가 속살을 들어내려 한다. 억만년 전부터 반복된 일이지만 나에겐 다른 의미를 일깨워 준다. 기세등등하게 밀고 들어왔겠지만 불과 몇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비워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밀물 다음은 썰물이라는 걸 내 시야에서 비웃듯 증명해 주는 것 같다. 물들어 올 떄 노젓지 못한 회한의 자책이 긴 한숨속에 묻어 나올 무렵 내 기분을 가장 잘아는 친구가 곁에 와서 선다. 말은 없었지만 그도 밀물의 때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젊었을 때 잘 나가던 사람일 수록 들숨보다 날숨이 길다. 이런 곳에 오래 머물면 안된다. 잠시 눈물 한방울이라면 모를까 오래 있으면 病이 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바닷가에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다. 예전엔&nbsp;애완견이나 그냥 개였던 것이 최근 유행하는 ‘반려견’이란 말로 가치가 상승했다. 그것의 이면엔 인간이 아닌 동물에 자신의 고독을 달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신문이나 방송의 사회면에서 이젠 흔해진 ‘고독사’란 단어를 접할 때면, 개의 가치가 왜 상승하게 됐는지 이해할 만 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끼리론 더 이상 안 되는 그런 사회가 된 것이다. 그냥 함께 모여 살다가 그냥 그렇게 헤어지는 세상,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가족의 탄생이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구성해서 미래를 책임질 구성원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이제 그 의미도 감감한 사회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인간은 점점 고독해 가며, 도리어 불행해가고 있다. 그래서 인생 말년에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나 보다. 고독사란 위험을 피할 수 없는 시대, 우리 모두의 아픔이지만 다가오는 현실이기도 하다.&nbsp;&nbsp;</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생, 참 역설적이다. 혼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기에 뭉쳤고 관계를 맺었고 사회를 만들었고, 동료를 만들었고, 가족을 만들었다. 그런데 고독해진다. 그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필요한데 인간은 관계를 만들게 되며, 관계 속엔 피치 못하게 구속과 거래가 존재하게 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서로 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관계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더 이상 필요 없거나 버겁게 되는 순간, 혈육이든 부부든 깨지는 게 요즘이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외롭게 되는 것인가 보다.<br>&nbsp;<br>그래서 인간이 아닌 반려견이 필요하게 되었고,&nbsp;&nbsp;그것의 이면엔 인간이 아닌 동물에 자신의 고독을 달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성경을 보면 '개'가 간간히 등장하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람을 개에 빗대어 표현한 경우이다. 열왕기서에 하사엘이 자신을 낮추어 '개 같은 종'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 좋은 예인 데,&nbsp;이사야서에는 부패한 종교 지도자를 개로 서술했다. 그리고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던 가나안 여인 또한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며 자신을 개로 묘사했다.<br>&nbsp;<br>개에게 재산을 상속하고, 심지어는&nbsp;자기를 낳아 준 부모는 나몰라라 하면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아닌&nbsp;스테이크를 제공하는 것 자체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내 집에 있는 한 개는 여전히 개일뿐이다. 난 사람은 사람같이, 개는 개같이 살면 된다는 생각이다. 개에게 나의 반려가 되어 줄 것을 바라지도 않지만 사람처럼 처신하라고 요구하진 않는다.</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도 역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개처럼 살면 &lt;개같은 놈&gt;이란 소릴 듣는다. 아니 &lt;개만도 못한 놈&gt;이 되고 만다. 약속을 천금처럼 여기고, 아무리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지만 시종이 여일해야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부득이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상습적이 되면 피차에 고달퍼진다.&nbsp;</span></div><div><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color: rgb(51, 51, 51); font-size: medium;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color: rgb(51, 51, 51); font-size: medium;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참 좋아했다. 산도 한라산 지리산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소싯적엔 날다람쥐처럼 돌아다녔지만 나이가 들면서 바다를 선호했고 지금도 여전히 바다가 더 좋다. 넘실대는 푸른 파도가 있는 동해안도 좋아하지만 낙조가 아름다운 서해바다를 더 좋아하고 바다 내음 물신 풍기는 갯벌의 바다를 더 좋아한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공자님 말씀에 "어진 자는 의리(義理)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하고, 지혜(智慧)로운 자는 사리(事理)에 통달(通達)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논어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씀이다.</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골짜기를 흐르는 물을 보노라면 물은 장애물이 있으면 그 장애물을 감싸고 흐른다. 포용성, 관용성에서는 물을 능가할 자가 없다. 사람은 장애물이 있으면 부딪히며 대적하려고 하여 마찰이 발생한다. 장애물을 감싸 안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는 장애물을 감싸고 흐르는 물에서 포용성을 배워야 한다.&nbsp;</font><span style="font-size: medium;">나는 바닷가에 설 때마다 위대한 자연의 가르침을 얻는다. 강보다 큰 바다는 더 낮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개방적이고 수용적이다. 쉴새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다.</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11/85a41fcf13b0df8f5c623e3cdcdc046111430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태양도 지치면&nbsp;바다에 눕는다"고 했던가.&nbsp;바다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다. 바다는 모든걸 포용한다. 주위의 모든 것은 받아들이고 흡수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며 위대한 사람이 아니런가. 그래서 바닷가에 서면 철학자의 강의에 빠져드는 기분을 느낀다.&nbsp;&nbsp;</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바다는 작은 물 큰물이나 가리지 않고 더러운 물 깨끗한 물이나 어떠한 물이든 사양하지 않고(海不讓水 故不能其大), 산은 적은 흙이나 큰 돌이나 가리지 않고 능히 받아들여 크게 높일 수 있다(山不辭土石 故能成其高)"는 말이 있다.</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돌을 조그만 연못에 던지면 그 파장은 엄청나게 크지만 바다에 던지면 약간의 파장만 일고 만다.&nbsp;그 넓고 푸른 바다는 모든걸 포용하고 정화한다. 모든 고통, 시름 다 끌어안았기에 멍든 파란색일지 모르지만 자못 완전을 향해 노력하는 인격체라면 이를 닮으라고 무언 손짓한다.</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바람은 바다를 육지로 내몰기라도 하듯이 거세게 몰아부친다. 누군가는 파도가 바람탓이라고 또 어떤이는 바다가 거칠어서라고 한다.&nbsp;언뜻보면 바람과 바다가 뒤엉켜 한바탕 싸우는 것 같다. 그러나 바다는 바람에 저항하지 않는다. 바람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nbsp;바람에게 모든걸 내맡겨 스스로 몸부림치며 자신을 뒤집는다.&nbsp;</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br></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것은 정화다.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을 받아들이는 포용이다. 땅에 사는 생명과 자신의 품에 사는 생명을 살리려는 숭고한 아픔이다. 그래서 혼자있는 시간은 바다를 찾는다.&nbsp;살다보면 미운 사람도 있고, 기피하고픈 사람도 있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nbsp;내 입맛에 안맞는 사람도 있고, 밥맛떨어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nbsp;</font><span style="font-size: medium;">그래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럴 수록 바다의 마음을 닮아보려고 낙조의 시간 바다를 서성일 때가 종종있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br></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51, 51, 51);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내일은 소장과 인부들만 공주로 파송했다. 하룻만에 지붕 박공 물받이 공사를 마치고 돌아오라고 했다. 약간은 무리겠지만 시간을 절약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고 오늘 전기업자를 보내 배선작업을 했기에 곧바로 실내 인테리어 작업에 돌입하려고 활당량을 선정해 주었다. 바닷가에서 오래 머무른 탓에 콧물감기에 걸린 것 같지만 지난 가을에 독감예방주사를 맞았기에 오늘밤을 푹쉬면 내일은 거뜬할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도 철석이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듯하다.&nbsp;&nbsp;</span></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3</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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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11 Apr 2026 11:51:5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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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해로 가는 이유</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9/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215636.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다니엘서 6: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는 말씀이 있다.&nbsp;&nbsp;</div><div><br></div><div>다니엘의 삶에 나타난 많은 기적적인 승리의 바탕에는 그의 거룩한 삶의 습관이 있었으니 그것은 감사하는 삶이요, 기도하는 삶이었다.&nbsp;<b style="font-weight: bold;">'거룩한 삶의 습관'</b>&nbsp;우리가 간절히 사모해야 할 명제이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nbsp;</div><div><br></div><div>'생각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어지고 습관은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된다.' 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생각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일게다.&nbsp;옛말에 '제 버릇 남주랴'라는 말이 있다. 몸에 붙은 습관이나 머리에 굳어진 생각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겠다. 요즘&nbsp;실감되는 속담이다.&nbsp;</div><div><br></div><div>제 버릇을 남 못준다. 본래 갖고 있던 버릇, 본태성 인 버릇, DNA 염색체를 부모로 부터 물려 받은 버릇, 누군가에게서 배우지도 습득 하지도 않았지만 일상처럼 자신도 모르게 몸으로 행하게 되는 행위를 '제 버릇'이라고 한다면&nbsp; 그걸 고친다는 건 정말 어렵다.&nbsp;아마도 버릇은 몸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 생각 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행위 일 것이다.&nbsp;</div><div><br></div><div>머릿속으로 다짐을 했다고 해서 몸이 그것을 기억 하여 약속을 이행 한다는 보장이 없는 그런 것이다. 한번쯤의 오류를 누구나 사람들은 눈 감아 주는 형색이지만 그 오류의 번잡을 버룻 처럼 붙들고 보증 수표 처럼 난발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 눈을 돌리고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외면 하게 되고 존재를 인정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의 약속이라도 어떻게 하든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애를 쓰는 편이고 어쩌다 그 약속을 지키지못해 오류를 범 했을 땐 본인의 실수를 백배 사죄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인의 진실을 일으켜 세우려 하는게 정상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버릇이 있고 그것이 잘못된 거라면 고치려 노력하는 것이 인간됨의 도리이다.</div><div><br></div><div>요즘 트럼프의 행적에 전세계가 경악을 금치못하고 그의 말한마디에 경제가 출렁인다. 휘발유 경유가 2천원을 뛰어 넘었고 한번 주유할 때마다 10만원씩 소요되는데 장거리를 운행하다 보니 사흘에 한번씩 주유소에 들려야 하고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싼 시대를 살고 있다. 싼맛에 경유차를 타던 시절은 옛말이고 전세계인이 호루무즈를 매일 검색하며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div><div><br></div><div>2주동안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을 선언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트럼프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 버리겠다고 엄청난 폭탄을 아직도 쏟아 붓고 있는 가운데 부활절을 기해 어린아이들을 초청하여 자신의 사인을 받아가면 장차 25000달러를 받을 거라며 마치 시정잡배 장삿꾼이나 할만한 소릴를 늘어 놓는데 이런 해프닝이 한두번이 아니라 일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사람은 안변한다. 한번 만들어진 습관을 바꾼다는 건 사막 한가운데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이야기이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버릇있는 아이를 보면 그 부모의 인품을 생각하게 되고, 집안 내력까지 알 수 있다. 나도 평상시 버르장머리 없단 말을 듣지 않으려고 무던 애를 쓴다. 조부님께서는 어른보다 숟가락을 먼저 집어서는 안되고 어른보다 숟가락을 먼저 놓아서는 안된다고&nbsp;입에 침이 마르도록 교육하셨다. 먼저 식사를 마치면 숟가락을 밥그릇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가 어른이 식사를 마치면 그 때서야 내려 놓는게 예의라고 배웠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현장은 사장이나 인부의 차별을 가능한 두지 않으려 밥상을 차려 놓고 아무나 먼저 식사를 하도록 배려했다. 하는 일이 각각 다르기에 일제히 식사하기가 어려워 먼저 오는 사람들이 먼저 먹는게 당연지사이겠지만 조기나 계란후라인 늦게 오면 남아나질 않는다. 분명히 숫자에 맟춰 음식을 시켰기에 일찍 오나 늦게 오나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두는게 상식인데 항상 모자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별 것도 아닌데 남의 것을 손대는 작자들이 있다. 무슬림들은 돼지 고기 등 가리는 음식이 많기에 이들을 배려하여 특별 음식을 따로 준비시키는데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부들이 있다. 내가 제일 늦게 식사를 하기에 꼭 바라는 건 아니지만 먹을만한 것이 없어 숟가락만 빨다 굶을 때가 많다. 좋아하지도 않지만 계란이나 조기 등 생선은 일부러 좋아하지 않는다고 양보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밥먹는 습관을 보면 집안 내력을 알 수 있고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인간성을 알 수가 있다.&nbsp;나는 누이나 형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먼저 숟가락을 집어 들지 않는다.&nbsp;왜 그리 힘들게 사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습관이 되면 전혀 힘든 일이 아니다. 내 주변엔 음식을 먹을 때 쩝쩝소릴 내는 사람이 여럿이다. 고치기 어려운 습관이던지, 아니면 구강 구조가 소리가 나는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밥맛이 떨어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본인들이야 소리를 내던말던 무슨 상관이냐 할지 모르지만 양반집 가풍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어떤 땐 숟가락을 빼앗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동으로 먹는 찌게 그릇에 숟가락을&nbsp;넣는 순간 나는 밥을 물에 말아 버린다. 그리고 내 반찬은 김치에 한정된다. 함께 찌게 그릇을 사용할만한 비위가 없기에 남의 숟가락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있다. 내 버르장머리도 형편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정말 버르장머리 없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9/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21575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예의가 없다는 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치명적이란 걸 알아야 한다. 버르장 머리를 고친다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인간은 관뚜껑을 덮을 때 변한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목회여정에서 통성기도를 강요해 본적이 없다. 통성기도를 안하니 '주여 삼창'이란 말을 사용할 일도 없었다.&nbsp;</span></div><div><br></div><div>왜 '주여삼창'이 한 때 유행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nbsp;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너무나 이기적이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욕심으로 가득한 것을 본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필요를 요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 들어가는 그 자체를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기 전에 선행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는 이성이 없는 짐승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기도에 대하여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세월이 나를 퇴화시켜 나의 뒤편으로 빠르게 흘러 가버리는 것을 올해처럼 아프게 느낀 적은 일찍이 없을성 싶다. 본능적이긴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면서 두손을 불끈 쥐고 태어난다. 손바닥을 보이는 건 죽었다는 사인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땐 손을 펴고 죽는다. 그 좋았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떠난다. 그래서 어차피 움켜쥘 수 없는 것이 세월일 바에야 나는 두 손을 활짝 펴서 그것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 주리라고 소회(所懷)를 정리했다.&nbsp;</div><div><br></div><div>과거로 뻗은 나의 희미한 발자국을 결코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우리를 두고 거침없이 흘러가버리듯 우리도 멀지 않아 모든 것을 남겨두고 거침없이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태어나면서 방랑자로 운명지워졌다. 이 땅에서 영원하지 않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근래 썬그라스를 끼는 것은 처진 눈가의 주름때문인 데, 어차피 감출 수 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아직은 젊다는 걸 알리고 싶어 발광(?)을 하고 있을뿐이다. 선글라스를 끼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nbsp;썬그라스를 끼고 실내에 들어가면 너무 어두워 더듬거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썬그라스를 끼고 있다는 생각 대신 실내가 어둡다고 생각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색안경(色眼鏡)을 끼고 보면 진실을 볼 수없다. 타인의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은 없다. 거기에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이 더해지면 사람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는 어느새 사실이 되고 진실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색안경 너머에는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 숨겨져 있다. 이제는 색안경(色眼鏡)을 끼고 볼 사람도 없고&nbsp;처진 눈가의 주름을 감출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9/1e16e5d80d3f844d6c22ebe268102dc521590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공주현장은 방통을 했기에 이번주까진 출입할 수가 없어 비를 핑게대고 며칠간 쉬기로 했다.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오늘까지 비가 내릴 거라니 모처럼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소장에게 3천만원짜리 시골 주택을 구입해 주었다. 몇년간 비워 놓았기에 거의 흉가 수준이지만 뼈대가 튼튼한 집이기에 리모델링을 하면 몇천만원 정도는 이익을 볼 수 있는 집이기에 무조건 사라고 강요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기집을 가졌다고 좋아라 한다. 원래 이 집을 은퇴한 목사님에게 주려했지만 뉴라이트 사상에 쩔어사는 꼬락서니가 볼썽사나워 소장에게 넘기고 말았다. 오전에 수리할 부분을 체크하고 공주현장일을 마치면 곧바로 수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충 3천만원 정도가 소요될 거 같은데 시내가 가깝고 창고도 넓어 수리하면 재산가치가 괜찮을 거란 확신이 드는 곳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가 뜸해지니 인적이 드문 호젖한 바닷가라도 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바다는 육지에서 보면 풍경이지만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을 때는 사상이다는 말이 있지만 함부로 범접(犯接)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서해바다를 좋아한다. 일출을 보러 동해를 찾는 사람보다는 이제 낙조를 보러 서해를 찾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안면도 정도라면 내 체력정도나 운전 경력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감당되는 되는 곳이기에 나들이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무쇠 덩어리가 아닌 이상 오늘은 우요일을 핑게삼아 무조건 늦장을 부리기로 했다. 목욕도 하고 오랫만에 면도도 하고 숨겨 놓았던 향수도 바르고 나들이를 해야겠다. 지난 주일은 주봉리 촌교회에서 예배를 드려 본교회를 가지 못했기에 이번 주일은 소장에게 인부들을 데리고 들어가 지붕 박공작업과 물받이 작업을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주도 빠지면 제명 처분을 받을지도 모르기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nbsp;</span></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12</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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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9 Apr 2026 22:01:4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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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요일 아침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며</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8/98e6ea0dcfc0173504024ee07271bdb123063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 오후부터 많은 비가 내릴 거란다. 어제 공주 현장에 방통을 쳤기에 일단 며칠간 양생되는 동안 출입을 할 수 없기에 현장을 퍠쇄했지만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활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위해 준비할게 많아 비 핑게를 대고 오랫만에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 뭉기적거렸다.&nbsp;&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가 내리면 골사현장에 대형 차량의 출입이 어렵기에 건축하는 사람들은 비는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비는 자연을 꺠우는 단비임에 틀림없다, 봄비 머금은 천지가 촉촉할 것이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자취를 감추겠지만 본격적인 봄이 시작될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번 비가 내리고 나면 나무들이 너무도 싱싱하게 보일 것이다. 갓 피어난 새순들의 연한 푸름은 꽃의 붉음보다 아름답다. 진초록위의 연초록이란 청순한 이미지는 화가들조차 잘 그려낼 수 없는 그린 색의 난해함이자 우리들 가슴속 깊은 곳을 선연하게 만들어 주는 청량제이다.&nbsp;&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런 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무도 모르게 봄비가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사람 세상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봄비 같은 삶이란 누구든 봄비가 지난 한참 후에라야 제 가슴이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적셔졌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닐까.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봄비소리는 여전히 소리 없이 내리 듯. 그때나 지금이나 조용히 생명을 일으키고 기르듯 한다.</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제까지만 해도 시골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밭을 가는 사람, 멀칭을 하는 손길, 하다못해 부지깽이도 거들어야하는 바쁜 나날이었을테지만 오늘 하루는 모두 일손을 놓고 하늘의 고마움을 만끽했을 것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는 정말 고마운 존재이다. 이곳의 내 이웃들은 인생을 그다지 복잡하게 보는 것 같지 않다. 적어도 나를 비롯해 나와 비슷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면 더 확연히 보인다.&nbsp;멋있는 말로 그 이유를 대자면 단순한 삶이 가지는 아름다움일 테고, 좀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자면 가난한 삶이 주는 불확실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nbsp;그러나 이유야 어찌됐건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그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충만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만큼 충만하게 살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말이 그들의 가난한 삶을 낮추어 보고 조롱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그들의 가난을 미화할 이유도 멸시할 이유도 없으니 나는 그저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말할 뿐이다. 가난한 이웃들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보며 이렇게 큰 하나님의 선물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삶, 안락하고 나태하게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삶들을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가난하고 힘들지만 스스로가 괜찮은 삶이라 여기는 긍정적인 태도야말로 가지기 쉽지 않은 축복이며, 희망이라는 또 하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얻는 길이리라.&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지금 가난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얼마나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 글에서 나누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내가 얻은 긍정적인 경험들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성격적으로 과격하진 않지만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여지껏 마음 고생을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이곳을 선택하면서 삶을 단순하게 살아야겠다고 작정했다. 불확성이 충만한 곳이긴 하지만 남의 눈치를 안보고 이중적 태도로 상대방을 기만하는 이 지긋 지긋한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8/517fa0cfe467a85bb40da423aa4e8c76230728.jpg" width="480" align="left" class="photo" alt="">이곳의 생활. 내 생전 이런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몸서리가 쳐진다.&nbsp;사실 목회자 생활이 고달프다고 하지만 정신적 고뇌는 있을런지 모르지만 솔찌기 목사란 직업처럼 편한 직업이 없다.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으며 경제적으론 넉넉하진 않지만 초창기 선배들에 비하면 몸으로 때우는 고생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막노동판에서 한시간만 일하면 모두 거품을 물고 쓸어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하게 사는 사람일 수록 건강하다는 사실이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건축 자재상을 하는 고교 후배가 앞으로 건축 관련 일을 몇년이나 할 예정인지를 묻는다. 힘닿을 때까지 할 예정이지만 한 5년쯤? 이라고 답변을 했더니 자신과 협업하여 20억원 정도를 벌자고 꼬드긴다. 영 하나를 빼면 가능한 목표일 거라고 말해주었지만 그 정도의 목표를 위해 개고생(?)하느냐고 나란 사람을 이해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개고생'이란 말에 꼿혀 한참을 상념에 잠겼다. 나는 농사를 짓고 건축을 하면서 고생은 했지만 그 걸 개고생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그런 날 한심하게 보는 후배가 오히려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 나는 호구지책때문에 일하는게 아니라 아무일도 안하면 더 이상 나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일을 즐긴다고 말해주려다 그만 두었다. 고단하긴 하지만 아프단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div><div><br></div><div>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고난은 우리에게 엄청난 유익을 준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고 고백한다. 고난이 없다면 인간은 자고하게 되고 안하무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실패는 인간을 더 겸허하게 겸손하게 만든다.&nbsp;</div><div><br></div><div>영국 속담에 보면 "사람에게는 반드시 피해 가야 할 세 가지가 있는데&nbsp;<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낯선 개, 홍수,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font></b>이라고 한다.&nbsp;낯선 개를 만나면 두렵고, 홍수도 공포의 대상이다. 그중에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는게 가장 위험한 일이다. 낯선개에게 물리는 것이나 홍수에 휩쓸려도 큰 일이지만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사람을 곁에 두면 필연적으로 망하게 된다.</div><div><br></div><div>봄비치곤 비가 꽤나 올 모양이다. 하지만 봄비는 히루종일 내리진 않는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릴 것 같아 일이 없단 핑게를 대고 오랫만에 시내로 나갈 생각이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찜질방에 가서 땀을 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조금있으면 포기할게 편하기에 일단 외출할 생각이다. 대게는 이런 날이면 절친을 불러내고 취미생활에 몰두하겠지만 나는 이제 혼자있는 생활에 익숙해져서인지 그런 번거로운 일을 가능한한 만들지 않으려 한다.</div><div><br></div><div>섹스피어의 어록중에 '힘들 때 울면 3류, 참으면 2류, 웃으면 1류'라는 말이 있다. 힘이들면 힘든대로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며 참는 훈련에 안간 힘을 쏟는 걸 보니 2류 인생 정도로 올라서는가 보다. 전에는 당연히 3류 인생을 살았다. 난 선천적으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다. 활달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가리는게 많은 편이다.&nbsp;</div><div><br></div><div>영국에서 만든 한국 안내서에 '한국에서 기업을 성공시키려면 개인적인 인맥을 파고 들라'고 했을 정도로 우리네 풍토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어떻게 맺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여부가 판가름나게 된다. 실제로, 우리의 주위를 잘 살펴보고 분석해 보면 내로라하는 사람치고 독불장군처럼 '나홀로' 성장한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8/bae80cf80fec5b0bd6ee796a3cca139f2308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종종 나에게 생각을 바꿔 보라고 권면하는 소릴듣는다. 물론 적극성을 띠고 인맥도 관리하고 고지식하게 살지 말라는 말일게다. 그러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lt;일부러&gt;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에, 즉 의도적이란 의미가 포함된 것이기에 잘 안된다.&nbsp;</div><div><br></div><div>난 의도적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만큼 비위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고지식하게 살진 않으려 그 말에 귀를 기우린다.&nbsp;</div><div><br></div><div>뭔가 갈등의 앙금이 있고, 인간관계가 친밀하지 못하다면 세월의 흐름에 방치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 첫 단계이자 핵심이 바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nbsp;<span style="line-height: 1.5;">일부러라도....&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사고방식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이것이 금세기&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인류최대의 발견이다" - 하바드 대학의 심리학교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생각이 바뀌면&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세상이 바뀌고&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나는 공사현장에 있는 동안에도 왠만해선 일일히 간섭하지 않는다. 한번 지시해 놓으면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감독할뿐 차안에서 인부들의 움직임을 눈여겨 볼뿐이다. 피곤한 거 같으면 쉬게하고 내 생각과 전혀 다를 때만 간섭할뿐 거의 위임해 놓고 지켜볼뿐이다. 하루종일 차안에 머물지만 소장은 수시로 나에게 자문을 구하지만 사실은 나보다 더 전문가이기에 가능하면 잔소릴 하지 않는편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비가&nbsp;</span>내릴 거란 말에 며칠간 쉬자고 했지만 조금있으면 오토바이로 달려 올 것이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시간은 해외 여행을 떠났을 떄뿐이다. 요즘은 해외도 함께 갈 때가 많다. 살다보면 많은 인연이 있지만 이 정도로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니는게 흔치 않은데 이해관계를 떠난 관계로 발전시키는게 중요하다.&nbsp;</div><div><br></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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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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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8 Apr 2026 23:11:5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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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벚꽃이 피는지 지는지</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7/dd08339f6fa1633ed128580c619298881151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농촌의 봄은 농토의 풀씨를 태우는 매캐한 연기로 시작된다. 농부들의 노래도 잡초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전의를 그렇게 불태우고 있다. &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한편 이제 막 봄볕을 만끽하기 위해 고개를 내민 잡초들이 육중한 트랙터 바퀴에 맥없이 갈아 엎어지는 봉변을 당하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것도 모자라 이번에&nbsp;<span style="line-height: 1.5;">독한 제초제 세례를 맞는 잡초. 발 한번 붙여 보려고 안간힘 쓰려는 잡초와 이를 몰아내려는 인간과의 전쟁, 봄을 맞은 농촌은 그야말로 총성없는&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전쟁터이다.&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지금도 듬성 금성 돋아나는 잡풀이 신경쓰이지만 조금있으면 내 일상은 매일 풀과의 전쟁이 될 것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호미 한자루로 농작물을 심기위해 밭갈이를 하면서 밭에 우후죽순으로 돋아나는 잡초를 제거해 주는 일과 홀리팜 전체를 살피려면 하루 해가 짧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언젠가 풀과의 전쟁이란 말을 무심코 사용할 때 오랜 친구 하나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24~30)를 들려주며 "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9)."는 말씀이 있는 데, 풀을 안 뽑는게 성경적이라 해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었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설명할 때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고 표현할 정도였다(막 4:34). 예수님께서 비유를 즐겨 사용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주제 자체의 특성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영적인 실재인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미 우리가 경험해 본 것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우리는 비유를 통해서만 겨우 영적인 실재인 천국을 조금 빗대어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유에 있는 그 자체의 특성 때문에 비유는 종종 이해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때가 많았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24~30)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비유 속에서 주인이 말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9)." 이 말씀에 따라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교회 내에 존재하는 가라지(거짓 신도)를 뽑아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망설이곤 한다.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참신도)마저도 뽑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하지만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성경 다른 곳에서는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권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요일 4:1),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거짓 신도들을 분별하여 출교시키라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5:13). 성경은 교회 내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을 때 권고하여 회개하는 것을 도울 것이지만,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출교시켜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마 18:15~20).&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만일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예로 들면서, 교회 안에서 죄악을 악의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들을 출교시키거나 치리하지 말고 그냥 놔두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교회에는 끊임없이 가라지와 같은 자들이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때로는 양의 옷을 입었지만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들과 같은 거짓 선지자들도 생긴다(마 7:15). 심지어 그 거짓 선지자들은 귀신을 내어 쫓기도 하고 말씀도 아주 파워풀한 메시지를 선포하기도 한다(마 7:22~23).&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우리는 갈라디아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에 쉽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갈 3:1).</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마13:27절에 보면 &nbsp;'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nbsp;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좋은 씨를 뿌리셨는데, &nbsp;마귀는 가라지를 뿌렸다고 하는 대목에 내 관심이 집중되었다.&nbsp;</span>홀리팜을 거칠게 만드는 잡초를 마귀가 뿌렸다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건 아니지만 난 이 풀과의 전쟁을 치루면서 교회안에 성령의 역사와 함께 마귀도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정말 가라지와 알곡은 자랄때에는 비슷하여 구별하기가 힘들다. 내 경험으로 볼 때 파밭엔 파처럼 생긴 풀이 자라고, 무우밭엔 무우처럼 생긴 풀들이 자란다.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열매가 맺힐 때를 보면 알곡은 익어 고개를 숙이는 반면 가라지는 쭉정이가 되어 구별이 쉽게 된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7/ae52af3c54b561c51c699dc9ec2dab92115303.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땅콩이 처음 새싹을 낼 때와 울금이 막 돋아날 때, 그리고 모든 작물의 새싹이 나올 때 이게 뭔가를 몰라 시기를 놓치는 때가 많았다.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약간 자랄 때까지 방치했다가 확연히 구별될 때 일일히 수작업으로 풀을 뽑으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nbsp;</span><span style="line-height: 1.5;">이것들은 식물과 거리를 두고 자라는 게 아니라 거의 식물의 뿌리에 기생하고 있기에 자칫 잘못하면 알곡이 다칠까봐 조심스러워 진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현역에 있을 땐 가라지를 제거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려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nbsp;</span>그간 몇번의 텃밭을 일구면서 거의 풀이 없는 깨끗한 밭을 만들어 왔던 경험이 있기에 힘이 들긴 하겠지만 이번에도 별로 걱정하진 않는다.&nbsp;</div><div><br></div><div>다행히 내 텃밭엔 거친 풀은 별로 없다. 전엔 질경이와 억새때문에 손이 성할 때가 없었지만 지금의 텃밭엔 냉이와 쑥 그리고 토끼풀 정도여서 힘들이지 않고도 풀을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nbsp;</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밭을 일구다 보니 순식간에 대파 심을 자리가 만들어졌다. 예전엔 논을 밭으로 개간한 땅이라 돌처럼 단단한 땅에서 고생했는 데, 이번 흙은 참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퇴근후엔 마치 어린 아이들이 흙장난하듯 밭에서 몇시간 동안 흙을 매만지며 논다. 시골일은 노동이라 생각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놀이라고 생각하면 몇시간쯤은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오늘도 공주현장을 다녀오는 중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들어 호남고속도로를 통해 여산까지 갔다. 부여를 거쳐 연무대로 나와야 하는데 요즘 생각이 많아져 이런 저런 생각하다 보니 익숙한 길임에도 30분을 우회해야 하는 수고를 했다. 현장소장이라도 옆에서 귀띰을 해주면 좋으렸만 차에 타자마자 코를 고니 야속하지만 벌써 열흘동안 먼길을 다니다 보니 피곤해 하는 건 당연지사라 누굴 탓할 성질이 아니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내일 방통을 치기위해 보일러 엑셀을 까는 작업을 하는 도중 일찍 일을 마치고 공주 공산성과 무열왕릉을 구경가자고 약조했으나 준공검사가 급해 서둘러 일을 마치고 군산을 다녀와야 하는데 길을 잘못들어 헛고생을 했다. 갑짜기 피곤이 몰려온다. 방통업자에게 아침 8시까지 공주현장으로 출근하라고 점검하고 매일 여섯명이 출근했으나 내일부터 기공 두명에 잡부 한명으로 줄였다. 힘들고 중요한 일은 대충 마치었기에 이제부턴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늘 함께 하던 인부중 몇을 쉬게하는 마음이 편치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다음 현장에서 부르기로 하고 일단 다이어트를 했다. 매일 새벽 여섯시에 출근하려면 집에서 다섯시엔 나와야 했을 것인데 왕복 출퇴근 시간에 과속을 하면서도 세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약간은 힘들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충청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식사시간을 반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그래도 어느 정도 집의 윤곽이 들어나고 방통을 치고나면 전문분야의 인부들을 투입하는 관계로 우리 직원들은 조금은 편해질 것이다. 일주일이 고비지만 4월 중순 무렵까진 일을 마치려고 계획을 짜놓았다. 이왕이면 멋진 집이란 소릴 듣도록 짱구를 열심히 돌린다. 65번쨰 집이 가장 마음에 든다.&nbsp; &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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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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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7 Apr 2026 11:56:4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난 시간이 없어서 죽지 못한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6/8e9196482770065b0b734717ba9060a61353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청명에는 부지깽이와 같이 생명을 다한 나무를 꽂아도 다시 살아 난다는 뜻으로 청명에 심으면 무엇이든 잘 자라난다고 한다. 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속담도 있다.&nbsp;</div><div><br></div><div>한식과 청명은 보통 하루 사이임으로 별반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속담이다. 예로부터 청명에서 농사비가 내리는 곡우 이전까지의 15일 동안을 3후로 나눈다. 1후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2후에는 들쥐대신 종다리가 나타나며, 3후에 비로소 무지개가 보인다고 했다.</div><div><br></div><div>이날은 농가에서 일손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 무렵부터 바쁜 농사철에 들어가 논밭의 가래질, 논밭 둑 다지기, 채소 파종 등 농사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년 24절기 중의 다섯 번째 절기,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청명(淸明)이 어제였고 오늘은 찬 음식을 먹는다는 한식(寒食)이다.&nbsp;&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고 한다. &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를 ‘사화(賜火)’라 하고, 수령들은 한식 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 한다.&nbsp;속담에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는 말이 있다. 오늘도 공주현장으로 총회장을 지낸 박현모목사님과 대전에서 박용규목사가 다녀갔다. 빈손으로 오지 않고 인부들 음료를 준비했고 감나무 살구나무 등 묘목을 사가지고 와 기념식수를 하셨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마침 새벽부터 비가 내려 나무를 심는덴 가장 적기였을 것인데, 유실수를 심는 걸 보아하니 앞으로 이곳이 동기생들 아지트가 될 확률이 높을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였다. 과일이 익어갈 무렵 천혜의 공기를 마시며 왈자지껄 하는 그림이 그려지면서 이집 주인 박목사님은 참으로 福받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인덕을 쌓은 결과가 과실이 되는 걸 목격하고 있다. 한식(寒食) 선물로는 이만한 것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한식(寒食)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전통적인 4대 명절이었다. 중국에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을 본따왔다. 중국의 춘추시대에 진(晉) 나라에 개자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공자 중이가 제후위에 오르기 전부터 충실하게 따랐다. 중이가 훗날 진나라 제후가 되어 문공이 되었는데, 중국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를 추모하는 데서 비롯됐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 먹일만큼 헌신하며 망명 중인 문공을 구했지만, 문공은 왕이 된 뒤 그에게 아무런 벼슬도 내리지 않았다. 분노한 개자추는 산으로 들어가 버렸고, 문공이 뒤늦게 후회하고 불렀지만 나오지 않았다. 산불을 놓아 유인했지만 끝내 버드나무 아래서 타 죽었다. 이런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한식의 기원이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6/bba773250763760987230034238d7a041354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대체로 한식과 청명은 양력 4월 5～6일쯤 하루 사이로 든다. 6년에 한번씩 겹치기도 하지만 대게는 청명 다음날이 한식이다. 여기에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란 말이 나왔다.&nbsp;비슷한 속담으로는 “도긴개긴”과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가 있다. 모두 별 차이가 없음을 나타낼 때 쓰이는 속담들이다. 청명에 죽는 것과 한식날 죽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고 의미가 있겠는가.&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 세상에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대문밖 나서면 저승이라는 속담도 있다. 나는 이 말들을 묶어 우리 조상들의 사생관이라 부르고자 한다. 태어남과 죽음의 순서로 말하면 응당 생사관이겠지만 이미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남은 문제는 죽음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바야흐로 100세 장수 시대다. ‘축복이 되느냐 재앙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한 때 열풍을 타던 참살이(Wellbeing)가 이제는 참죽음(Welldying)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성찰하는 삶의 출발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물질을 좇는 삶을 살 것인지, 끊임없이 물질에 종속되는 삶을 경계하며 주체적이며 본질적인 삶을 살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명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공주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난해한 점은 식사문제이다. 열흘동안 출퇴근을 하면서 한 식당을 두번 가본일이 없을 정도로 매일 식당을 바꿔 보지만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전라도 음식에 길들여진 탓인지 충청도 음식에 거의 식사를 거르다시피 하고 있다. 하지만 배고픈단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nbsp;</div><div><br></div><div>오늘이 한식이니 굳이 따스한 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들녁으로 나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니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없기에 나온 말이겠지만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식탐이 사라져 굶는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지금 대한민국 교회들도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다. 교회들이&nbsp; 몸살을 앓고 있다. 사순절의 절정인 종려주일과 부활절이 지났지만 부활신앙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길 듣지 못했다.&nbsp;</div><div><br></div><div>교회력에 따른 절기가 사라져 버렸다. 또한 이젠 주일성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금기 사항도 깨져 버렸다.주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죄의식을 갖는 것도 문제지만 주일날 교회 안가도 전혀 문제가 될게 없다는 안일함이 문제이다. 흙탕물에 한번 빠지기가 어렵지 몇번 빠지다 보면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다. 고착화되는게 치명적이다.&nbsp;</div><div><br></div><div>외부적으로는 기독교는 이기적이며 독선적이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내부적으로는 습관이 되어 이젠 무슨 일이 생기면 주일을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nbsp;반감될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 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처신한다. 내일 해도 될 일이지만 가능하면 미루지 않으려 무리를 하고 있다. 무리를 안할 수 없는 건 산적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은 아니지만 텃밭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경작해야 할 농지가 여러 곳이다 보니&nbsp;몸을 몇개로 쪼개도 부족하다. 계분을 뿌리고 나무를 심고 서서히 작물을 파종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공사현장으로, 관공서를 쫓아다니고, 틈틈히 주변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어야 하니 농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6/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3561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공주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앞에 버려진 캐리어 하나를 발견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눈딱감고 차에 실어 왔다. 거의 새 것이나 다름이 없는 여행용 가방인데 이 정도를 버리는 사람이 누구일까가 궁금해진다. 그러안해도 여행용가방이 오래되어 새 것으로 구입할까를 망설였는데 착하게 살려 노력했더니 주님이 허락해 주셨다.</div><div><br></div><div>이왕 캐리어를 공짜로 얻었으나 훌쩍 떠나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기약이 없다. 물론 가방이 없어 여행을 못간 건 아니지만 지퍼가 고장나 애를 먹고 있었는데 앞으로 10년은 걱정없이 여행을 떠나도 될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큰 가방을 얻었으니 유럽여행이나 한번 다녀 왔으면 좋겠다. 그간엔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찮가지라는 생각이었지만 좋은 캐리어를 얻고 보니 단 하루 차이지만&nbsp;이왕이면 청명날 말고 한식날 죽었으면 좋겠다.&nbsp;</div><div><br></div><div>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데, 하루면 그게 어디인가? 조만간 공항가는 기대감으로 즐겁게 살아야겠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버린다. 멀쩡한 것도 아무런 생각없이 버린다. 하긴 제 부모도 버리는 세상이니 말한들 무엇하겠는가. 남이 버린 걸 주어다 재활용하는 걸 청승떤다고 지탄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앞으로도 이런 정도라면 남눈치 안보고 가져 올 생각이다.&nbsp;</div><div><br></div><div>시내 곳곳엔 벚꽃이 만개하여 혼자 보기가 아까울 지경이다. 집집마다 하얀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 운치를 더한다. 개나리와 수선화도 담장마다에서 수줍은 자태를 들어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꽃을 참 좋아한다. 작은 마당안에 꽃들이 가득하다. 외모로 보면 도저히 꽃과 매치가 안되는 사람같지만 꽃을 가꾸는 정성으로 삶을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div><div><br></div><div>내일은 방통을 치기전 바닥에 보일러를 설치해야 하기에 스츠로폼을 구입하여 추럭에 실어 놓고 엑셀과 와이메시 차광막 등을 가져갈 준비를 마치었다. 공주 현지에도 있겠지만 거래처에서 구입하면 조금이라도 싸게 구매할 수 있고 얼마안되는 분량이라 비싼 운송비를 줘가며 현지 조달하는게 싫어 미리 구입하여 다시 내일 새벽 출발할 준비를 완료했다.</div><div><br></div><div>잠만자고 다시 공주로 떠날 채비와 온통 더 좋은 집을 지어 드리려는 구상으로 열흘동안 세수도 못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하필 트럼프의 불장난(?)으로 기름값이 치솟고 판넬값이 두배 가까히 폭등했지만 이런 땐 가장 저렴하고 실용적인 집을 짓는게 기술자가 아니던가?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동기생들 중에 몇이 집을 지어 달라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일단 올해 스케줄은 10월까지는 죽을래야 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난 시간이 없어서 죽지 못한다.&nbsp; &nbsp;</div><div><br></div><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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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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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06 Apr 2026 13:57:03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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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주의 종을 오랫동안 동네 마을회관에 머무르게 하는 건 불충이다.</title>
			<description><![CDATA[<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5/688b8a4423a01a1fb3c517de2ea43f4513312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은 24절기 중의 다섯 번째 절기,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청명(淸明)이다.&nbsp;'청명'이라는 말은 봄이 짙어지며 하늘이 맑아시는 시절이라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중국의 전통의학서인 &lt;황제내경(黃帝內經)&gt;(기원전 475~221)에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삶에 대해 언급된 이래, 당나라의 역사서인 &lt;구당서(舊唐書)&gt;(945), 원나라의 &lt;수시력(授時曆)&gt;(1281) 등 여러 문헌에 청명 기간을 5일 단위로 3후로 구분하고 있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청명에는 부지깽이와 같이 생명을 다한 나무를 꽂아도 다시 살아 난다는 뜻으로 청명에 심으면 무엇이든 잘 자라난다고 한다. 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속담도 있다. 한식과 청명은 보통 하루 사이임으로 별반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속담이다.</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요수불이(夭壽不貳)'란 말이 있다. 단명(短命)하거나 장수(長壽)하거나 젊거나 늙거나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나이가 들었다고 더 많이 깨닫는 것도 아니고&nbsp;늙도록 살았다고 복 받은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본성을 알지 못하면 부질없는 길이일 뿐이</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다.&nbsp;</span>길면 100년 남짓 살다가 누구나 어느 날 홀연 대문 밖을 나서듯 죽음이라는 피안의 언덕길을 휘그적 휘그적 걸어 넘어갈 것이다, 그 때 살아 생전에 조금더 인정을 베풀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걸 후회하지는 말아야 한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청명(淸明)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구름을 다 날려 보내므로 하늘이 가장 맑은 날이란 뜻이고, 그 날 모든 백성들은`묵은 불씨`를 끄고 `새 불씨`를 기다리는 풍속이 있었다. 임금은 새 불씨를 대신들에게 나누고, 대신들은 고을 수령들에게 전하고, 수령들은 파발마를 총동원해 전국 방방곡곡 집집 마다 전달한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백성들은 이 날부터 묵은 불을 끄고 찬음식을 먹으며 `나랏님이 내린 새 불씨`를 기다렸다가 예를 표하고 화로의 잿불로 소중히 보관한다. 이 불씨는 연중 내내 끄트리지 말아야 하는데, 이사 갈 때도 불씨를 화로의 재속에 담아 갈 정도였다.&nbsp;</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내일부턴 찬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한식이니 굳이 따스한 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들녁으로 나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니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없기에 나온 말이겠지만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식탐이 사라져 굶는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강하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예로부터 청명에서 농사비가 내리는 곡우 이전까지의 15일 동안을 3후로 나눈다. 1후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2후에는 들쥐대신 종다리가 나타나며, 3후에 비로소 무지개가 보인다고 했다.이날은 농가에서 일손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 무렵부터 바쁜 농사철에 들어가 논밭의 가래질, 논밭 둑 다지기, 채소 파종 등 농사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nbsp;</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청명을 전후로 찹쌀로 빚은 술을 청명주(淸明酒)라고 하며 담근지 7일 뒤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맑은 것을 마신다. 또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그기도 하고, 서해에서는 곡우 무렵까지 작지만 연하고 맛이 있는 조기잡이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하였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고, 날씨가 좋아야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 같은 생업 활동을 하기에도 수월하다. 곳에 따라서는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이날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하는 데, 이러한 일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겨우내 미루어두었던 것 들이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지금 내가 신축공사를 하는 곳이 여러곳이고 지금은 만사를 제껴놓고 은퇴목사님 집을 지어 드리고 있지만 온통 관심이 정원을 만들다 현장을 옮겼기에 따로 인부를 동원하여 정원공사를 마무리 하도록 지시하며 몸과 마음을 쪼개어 사용하려니 엄청 피곤하기만 하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그간 단풍나무 대추 사과 꽃사과 복숭아 삼색도화 셀릭스 자두 살구 포도 앵두 석류 산수유 배롱나무 에머랄드 골드&nbsp;연산홍 동백 남천 대봉시 화살나무 홍가시나무 은목서 금목서 천리향 등 수백그루를 그간 심었다. 그뿐인가, 채송화 수선화 꽃잔디 멘드라미 백일홍 등 꽃씨와 꽃나무도 무진장 심었다.</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5/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13331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공사중 현장에서 가만히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nbsp;인부들보다 내가 더 바쁘게 움직인다. 뒷마당쪽에 대파와 감자 상추 도라지도 심어 놓았다.&nbsp;</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13add">어차피 남의 것이 될 거라며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지만 내가 가장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간의 노하우가 쌓여 조금만 노력하면 멋진 정원이 만들어지고, 농장주들이 곁에 많이 있어 시중보다 1/3은 싸게 구입할 수 있기에 이왕 분양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제대로 된 정원을 만들어 주고 나오려 작정했다.</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span></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열흘이 넘더록 충남 공주로 출퇴근했더니 몸상테가 좋지 못하지만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 수일내에 끝마치려고 분투중에 있다. 이렇게 하면, 과부하에 걸리는 건 자명하지만 끙끙거리면서도 가능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이 일을 감당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font></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먹는 건 부실하고 너무 일이 힘들었는지 코피를 흘렸다. 그래도 내일싸진 벽체를 완성하고 화요일 보일러를 깔고 수요일까지 방통을 마치려고 인부들을 다그쳤다. 잠시 바닥이 양생되는 동안 내 현장을 살펴야하기에 인원을 더 많히 투입하였는데 생각보다 진척이 없어 인건비가 만만치 않게 소요되지만 은퇴하고 부모님이 살던 집을 허물고 그곳에 정착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고와 그냥 감내하기로 했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어젠 지인들이 공주 현장을 방문하여 최00목사님 아들이 운영하는 초밥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고 오늘은 상황이 급해 군상 교회까지 갈 수가 없어주봉리 세광교회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렸다. 20여명이 모이는 시골교회임에도 8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미자립교회를 돕는 열린 교회였고 목사님 설교도 깔끔했으며 특이한 점은 장로님이 사회를 보는 교회였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지붕을 올리는데 열악한 환경이라 아시바를 매지 않고 지붕을 올리려니 인부들이 무척 힘들어했지만 모른척했다. 크레인을 불러 지붕을 올리면 오전이면 끝날일임에도 늦은 시간까지 자력으로 지붕을 올리다 보니 퇴근 시간이 늦어져 일당에 보너스를 지불하고도 다 올리질 못했다. 내일 완성하고 이어 내부공사를 완성하려고 우즈백 인부를 더 선정했다.</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돌아오는 길이 무척 힘들었으니 부여에서 논산의 어간에 벚꽃이 만발하여 노무 아름다웠다. 내가 어렸을적엔 벚꽃이 흔하지 않았고 창경궁 정도에 가야 벚꽃 구경을 했었는데 이젠 봄에 피는 꽃중에 가장 흔한 꽃나무가 되어 버렸다. 대나리와 어울려 노가는 길에 꽃구경을 실컨하고 있다. 집을 짓는 박목사님도 현재 살고있는 당진을 떠나 동네 마을회관에 머무르고 있는데 오랫동안 고생시킬 수가 없어 인부들을 닥달하고 있다.&nbsp;</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13add"><br></font></p><p style="border: 0px;"><br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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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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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05 Apr 2026 13:34:4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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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봄비내리는 어둠을 뚫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3/9780fa28a0d4db21249a653e4f78397719570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1577년(선조 10년) 율곡 이이(李珥) 선생께서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격몽요결(擊蒙要訣)'에 보면,&nbsp;‘거경궁리(居敬窮理)’란 말이 나오는데, 학문수양의 방법을 알려주는 교훈으로 거경이란 모든 잡념을 끊어버리고 한 가지 일만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방법이고, 궁리란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div><div><br></div><div>곧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격물) 지식을 넓히는 것이란 뜻이다. 갑짜기 시골로 낙향하여 무슨 귀신 씻나락까먹는 소리냐며 야유를 보내는 분도 있겠고, 내 스스로도 자기 합리화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난 시골생활이던 귀양살이던 간에 한번밖에 없는 내 삶의 길을 떠나며 가능하면 과거에 억매이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에 집착하기 보다는 현실을 중시하기로 독한(?) 마음을 먹었다.</div><div><br></div><div>남들이 보면 하찮은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허접한 일이라 할찌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하려 무던 애를 쓰고 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귀담아 들으려 했고, 곡식 자라는 소리가 정말 들리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매일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과연 눈에 보인다는 의미를 깨달아 갔다. 자연속에 빠져들어 한동안 지루하단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nbsp;</div><div><br></div><div>이렇게 바쁘게 살다보면 죽을 시간도 없을 거 같아 걱정이지만 죽음의 순간을&nbsp;카운트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지만 삶을 카운트하는 사람은 불멸의 정신으로 남기에 염려는 없다. 내 생명이 다하는 날을 조부님과 선친의 경우로 유추해 볼 때 앞으로 살 날이 15년 정도 남았지만 왠간해선 죽을 거 같지 않고 설령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나같은 사람이 또 나타나 내 흔적을 더듬을 것이고 따를 걸 믿고 있다.&nbsp;</div><div><br></div><div>아무튼 아직은 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려한다.&nbsp;그렇다고 일벌레는 되지 않으려 한다. 때론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노을진 석양을 바라보며&nbsp;언제든 즉흥적으로 이삼일 동안 짧은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nbsp;해놓고&nbsp;여행을 떠나고 싶기도 하다.&nbsp;</div><div><br></div><div>몹시 힘들고 외로울 때 모든 근심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 나를 향해 떠오르는&nbsp;밝은 태양을 향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nbsp;인생은 짧고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자질구레한 일들로 삶을 채우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하고, 언제해도 해야 할 일이라면 오늘하고, 지금 내가 할 일이라면 더 잘하자' 그럴듯하게 구호를 만들어 놓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nbsp;</div><div><br></div><div><div>나는 열외되고 싶고 내일로 미루고 싶고, 남들도 대충하는데 왜 나만 사서 고생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nbsp;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늙으면 안아픈 곳이 없다. 그렇다면 골병까지는 아니겠지만 일을 무서워하거나 바쁜 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 일도 많지만 남의 일에 더 바쁜 경우가 많다. 내 라이프 스타일을 알기에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부탁하는 사람이 많지만 왠만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사실 내 일과 남의 일의 비율이 5:5일 정도로 바보 노릇을 하고 있다.&nbsp; &nbsp;</div><div><br></div><div>그러다가 골병이 들 거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골병이란 특정한 질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심각한 병을 가리키는 말이기에 염려하지 않는다. 골병이란 치료가 곤란한 만성적인 근육통, 관절통 등을 가리키는 말로 현대인 90% 이상이 과거에 비해 적어진 움직임과 스마트 기기의 잦은 사용으로 근골격계에 다양한 ‘통증’을 겪고 있는데 노동으로 오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늘도 충남 공주로 출발해야 한다. 밤새 두시간만에 한번씩 깨었지만 비가 내리는지를 확인하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하기에 애써 잠을 자려 애를 썼다. 오늘같은 날은 일을 안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지만 오늘은 미리 예약해 둔 지붕판넬과 벽판넬을 입고시켜야 하고 지게차와 하차시킬 인부를 많이 동원했기에 인건비를 감안하여 비가 내려도 일을 강행해야 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벌써 소장이 여러번 전화를 하지만 일단 강행하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전달하고 자재를 전날 추럭에 실어 놓았기에 어쩔 수 없이 공주로 출발해야 한다. 더군다나 동역자 목사님들이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기에 이런 날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실 무리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살다보면 이런 일 정도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일상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만들며 지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하루를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예전부터 가진 생각은 아니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잡생각이 들 틈이 없으며 과거에 사로잡혀 내 삶의 방향을 표류시키고 싶진 않기에 난 무슨 일이던지 움직이려 작정했고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복을 타고 난 것은 아니지만 난 일이 있을 때가 더 신이난다. 건축이 올스톱된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지만 이 때가 아니면 농작물을 심고 키울 수 없기에 짬만 나면 텃밭으로 향한다. 오늘밤 부터 내일에 걸쳐 비소식이 있기에 열무와 얼갈이 배추를 심으려 땅을 파며 망중한을 즐겼다. 흙을 만지는게 나에게는 휴식이고 치료인셈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단순히 은둔생활만을 생각했다면 난 시골에 정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div></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3/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1958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주변 사람들은 일하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놀자, 먹자하면 일개 소대라도 집결하지만 일 좀 거들어 달라하면 이런 저런 핑게를 대고 홀리팜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하긴 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 막일 할 사람 한 명을 고용하면 좀 수월하겠지만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일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다.&nbsp;</div><div><br></div><div>난 보기와는 달리 혼자서 조용히 일하는게 편하다. 성격상 시끄러운 건 질색이다. 집에서도 아직까지 큰 소리를 내 본 적이 없다. 화가나면 말을 안하는 편인 데, 그건 목회에서도 마찮가지였다. 난 교회에서 목소리 큰 사람을 가장 혐오했다. 기분이 언잖을 땐 더욱 말을 아꼈고 가능하면 속으로 삭이려 애를 썼다.&nbsp;이건 내 성격탓도 있지만 집안적으로 기질적으로 화가나면 말을 안하는게 전통이다.&nbsp;</div><div><br></div><div>부끄런 이야기지만 조부님께서 부부싸움을 하고 일년동안 말 한마디 안했다는 일화를 무용담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정고집'이란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집안 분위기가 대게는 이러니 아내들이 마음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nbsp;화를 안내니 사람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대게는 속으로 골병이 든다. 신경성위장병,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감정이 속으로 파고들어 몸에 병을 만든다.&nbsp;</div><div><br></div><div><div>오늘 밤새 내리는 비는 단비일 것이고 오후엔 그친다니 지체되는 만큼 강행할 것이다. 비구름에서 떨어진 구름을 보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분명히 눈을 지긋히 감으면 정지된 그림이지만 구름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멸을 위해 또 다른 구름을 찾아가 몸집을 키워 땅을 적셔준다. 아무런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구름은 흘러간다. 의식하면 가만히 멈춰 보이고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구름의 모습은 다양하며, 비가 오는 날엔 새까맣기까지 하다.&nbsp;</div><div><br></div><div>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모양도 색도 다르다. 결국, 우리의 시간관념을 변하게 하는 건 삶의 목표다. 목표가 있을 때 삶은 피어난다. 떠나는 계절, 저무는 노을, 힘겨운 삶마저도 연약한 내가 어찌하리. 흐르는 것이 삶이었던가. 저 강물도 흐르고 저 바람도 지나가고 저 구름도....나도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기에&nbsp; 아픔 속에서도 길 떠나는 나그네 심정으로 가고는 있지만 함께 할 수 없음에 가슴시릴 뿐이다.</div><div><br></div><div>근래 공주까지 운전하다 보니 고속도로 통행료 용지가 한가득이다. 납부해야 할 날짜가 제각각이라 오늘은 모두 계좌 이체해줄 생각이다. 출발할 땐 생생하던 인부들이 출근할 땐 모두 잠들어 버리는 피곤한 나날이지만 내 운전에 목숨을 맡기고 편하게 잠든 모습들을 보노라면 안스러운 생각이 든다.&nbsp;</div><div><br></div></div><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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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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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03 Apr 2026 20:00:4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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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quot;남들도 다 하니까” 생각하며 무작정 쫓아가면 공허함만 남는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2/73352a2dfe0ed32083ff9b4817ce06d822522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불교서적을 읽다가 반려라는 표현을 보았다. 함께 도를 닦으며 고락을 같이하는 도반(道伴)이라는 말과 누구에게나 성불할 수 있는 다가올 부처라는 말의 여래(如來)가 더해져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nbsp;</div><div><br></div><div>그러므로 반려(伴侶)란 말은 그 의미를 모르고 아무 곳에 사용해선 안되는 말이고,&nbsp;같이 수도하며 같이 성불하고자 동고동락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통상적으로 반려(伴侶)란 말은 '짝'이란 말인데 일반적으로 부부간을 말할 때 반려자라고 한다. 최근 반려라는 말이 다양하게 사용되면서 반려동물이니 반려식물이니 심지어 반려로봇까지 등장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노벨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 1903~1989)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서 평생을 함께하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이게 되었다고 하는데 짐승이 성불할 수 있는가?</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주변엔 항상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개는 물론 고양이 흑염소 거위와 닭, 그리고 토끼와 기러기 물고기 등을 키웠다. 물론 내 입으로 들어 간 동물은 한마리도 없었다. 동물은 없으면 쓸쓸하고 있으면 귀찮은 존재이다. 흔히 개를 말할 때 ‘애완견’이라고 한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중에 ‘애완견’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우리는 개를 가지고 노는 정도로 인식하게 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애완견이라고 부르는 동시에 강아지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 생기고, 강아지는 장난감으로 전락해버린다. 귀촌하여 10년이 넘는 동안 한번도 개가 없어던적은 없었지만 반려라는 말이나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개나 고양이는 물론 돼지도 실내에서 키우는 사람이 있고 뱀이나 카말레온 등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나는 동물들에게&nbsp;반려(伴侶)라는 말을 붙히는 것에 찬동하지 않는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개인적 취향이기에 시비할 생각이 없지만 반려란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나&nbsp;행동을&nbsp;함께&nbsp;하는&nbsp;짝이나&nbsp;동무"라고 본다면 애완이라면 몰라도 그 이상은 동의할 수가 없다. 스페인의 한 지방도시가 반려견 복지를 위해 세금을 걷기로 했다고 한다. 엘파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스페인의 소도시 '사모라'는 내년부터 반려견을 가진 주민에게 연 1회 세금을 걷기로 했다. 책정된 세금은 9유로, 우리 돈으론 약 1만2000원 정도인데, 사모라 당국은 이른바 '견공세'로 명명된 이 세금으로 매년 약 5~9만 유로가 걷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nbsp;'주민세'를 내듯 개도 '견공세'를 내는게 당연한데, 사모라 당국은 이에 대해 공식 해명을 내놨다. 시에 따르면 환경미화원이 길에 있는 개똥을 치우는 데 사용하는 업무시간은 매일 평균 15분이고,&nbsp;개똥을 수거하고 쓰레기차로 옮겨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하면 매년 약 25만 유로가 든다고 한다.&nbsp;그러고 보면 시골에서는 '개똥도 藥이다'는 말이 있는데 나무 등에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어 전혀 문제가 될게없는데, 이제는 개도 반려동물이라니 견공세를 물어야 할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만큼 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작년 가을 보도에 의하면 직장인 A(27) 씨는 얼마 전 15년 가까이 키운 반려견을 병으로 떠나보냈다. 애완견을 장례 치루기&nbsp;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나니 돌아온 답변은 "고작 개 하나 죽은 걸로 휴가를 낸다" "유난이다"라는 따가운 시선이었다고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A씨는 "비반려인은 반려동물이 죽은 뒤의 고통을 모르는 것 같다"면서 "가족과 다름 없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비난하는 것은 또다른 상처"라고 호소했다. 조금은 생소한 말이겠지만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은 반려동물이 죽거나 잃어버린 뒤 겪는 여러 가지 정신적 어려움을 말한다. 대개 반려동물을 잃은 것에 대한 충격이나 부정, 분노, 절망감, 슬픔, 자책, 죄책감, 우울감 등 다양한 감정을 겪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밀리 코다로 텍사스 스테이트 대학 교수는 2012년 10월 발표한 논문에서 '펫로스 증후군'을 '인정받지 못한 비애'(disenfranchised grief)라고 표현했다.&nbsp;또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 심리학'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세르주 치코티는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남자들은 가까운 친구를 잃었을 때와 같은, 여자들은 자녀를 잃었을 때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말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즉 보호자들은 큰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는 뜻이다.&nbsp;문제는 펫로스 증후군으로 인한 슬픔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면 반사회적 공격성, 우울증과 이로 인한 자살로 이어지는 등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nbsp;전문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에 감정을 억누르다 보니 반려동물 선진국인 영국이나 독일 등과 비교해 펫로스 증후군 치유 기간이 무척 길다"고 말했다. 감정 표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2/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22535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도 키우던 동물이 죽으면 한동안은 마음이 찡하지만 그렇다고 식음을 전폐하거나 애절한 마음이 들진 않는다.&nbsp;몇년전 부터는 고양이를 키웠고 최근까지도 방안에서 키웠으나 얼마전 집을 나가 돌아오질 않아 한동안 사체라도 찾으려 돌아다니다가 포기해 버렸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전에 살던 곳에서도 너른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 놓고 여러마리의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어느날 동시에 입에 거품을 물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쥐약을 놓았을 거란 심증에 그 곳을 떠나 이사해 버렸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때문에 세번 이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필리핀 유명 록 밴드 '레이저백'의 드럼 연주자 브라이언 벨라스코(41)가 투신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자살 1년전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가 죽은 뒤 우울증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 2012년 부산에서 펫로스 증후군을 이기지 못한 40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물론 비반려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반려인의 슬픔을 질타해서는 안 된다. 동물을 잃은 상실감에 대한 공감이나 지지보다 중요한 것이 비난하지 않는 행위라는데 사족을 달고 싶지 않다.&nbsp;요즘 지자체마다 반려견 놀이터, 공원을 만들려 혈안이 되어 있는데 아무리 전국민의 1/4이&nbsp;동물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고양이 놀이터도 만들어 주어야 하고 공원도 만들어 주어야 할텐데 그만한 예산이 따라줄지가 문제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또한 혈세가 투입된다면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지도 문제인데 이미 서울에 4개 정도가 운용되고 있다 한다. 인간의 가치가&nbsp;형편없이 추락하는 가운데 왜 동물을 의인화(擬人化)시키려 혈안이 되어 가는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인간의 존엄성이 점점 사라지는 가운데 관심이 다른 곳에 집중되는 걸 우려하여 해보는 소리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개사료와 고양이 사료값으로 한주에 4만원 가량 소요된다. 한달이면 16만원 정도 사용하지만 그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인계점이라 생각되어 수용하지만 더이상 출혈이라면 언제던지 없앨 각오이다. 언젠가 해외 여행을 떠나면서 개를 지인에게 맡기고 다녀왔는데 선물 비용으로 10만원 정도의 선물을 사다주면서 애물단지란 생각이 들었지만 소일거리가 전무한 상태이기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동물을 가까히 두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개를 모두 처분하고 한동안은 고양이만 키우는데 내가 동물을 좋아하는줄 알고 친구녀석이 개를 가지고 와 떠맡기듯 내려 놓고 가버렸다. 사료값이 장난이 아니라고 해도 '발발이'라 많이 먹지 않는다는데, 완전 속았다. 먹이도 많이 먹지만 퍼질러 싸는 똥때문에 죽을 지경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촌에서 살다보면 이런꼴 저런꼴 가려서는 안된다. 농부가 짐승 똥을 더럽다고 하면 안된다. 하여. 똥을 치울 때마다 거름을 생산하느라 수고했다고 칭찬하기로 했다. 하루에 200g씩 생산하면 일년이면 73000g, 73kg에 이른다. 행여 텃밭이 똥밭이 될지언정 마음껏 싸도록 눈감아줄 생각이다. 먹고 싸는 동물적 근성까지 시비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반려(伴侶)란 어림반푼없는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무리 외롭다고 반려까지로 끌어 올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nbsp;나를&nbsp;주변에서 '선생' '사장'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으니 대게는 그렇게 불러준다. 한번도 기업을 해본 적이 없어도 다들 그렇게 부른다. 노가다 판에서 잡부 일을 하는 사람도 사장이라고 불러줘야 좋아라 한다. 문제는 호칭이 아니라&nbsp;&nbsp;내 근본이 무엇인가를 아는게 중요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온라인에서 개인을 대신하는 캐릭터. 분신, 화신을 의미하는 말로 아바타(&nbsp;avatar)란게 있다.&nbsp;원래 고대 인도아리아어인 산스크리트로 '하강'이라는 뜻의 아바타라(Avatara)는 힌두교에서 세상의 특정한 죄악을 물리치기 위해 신이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동물이 내 아바타가 될 순 없는 일이다. 나를 지으신 이의 뜻에 따라 원본적 삶을 살아야 한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주도적이어야 한다. 주관이 없으면 남들을 따라서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도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2/f4f0070fcc10032bd78d72f1943fcbbe2255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지금 ‘나는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주인인가? 아니면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가?’라고 자문해 본다면 자신이 주도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도적인 사람은 남들과 비슷한 삶, 혹은 복사판이 아닌 ‘원본’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개인이 가진 독특한 가치관과 잠재능력은 매우 소중하고 충분히 계발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워지길 원하는가. 내 주체적으로 살질 못하고&nbsp;누구의 아바타(&nbsp;avatar)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게 고민이고 내 삶을 반추해 보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괜한 목사인척하고 장로인척하며 산다.&nbsp;이를 흉내 낸 복사본 인생을 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유사 이래로 인류는 늘상 남들을 카피해왔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이전에 흉내내는 동물이다. 흉내내기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생존본능 중의 하나이다. 물론&nbsp;흉내내기도 간단한 게 아니다.&nbsp;&nbsp;누굴 흉내낼지를 판단하려면 적어도 스타일을 감별하는 안목이 필요한데 이건 결국 진흙속의 진주를 골라내는 능력이다. 그러나 아무리 흉내내기 복사하기가 유행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한계가 있다. 카피를 통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들에겐 결국 자기가 카피하는 대상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밖에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런 기생살이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데 이 소수는 지금까지 늘 카피를 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도 그래왔지만 자신이 정작 무엇을 꿈꾸는지 알지 못한 채 “남들도 다 하니까” 생각하며 무작정 쫓아가면 공허함만 남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현장엔 도배하는 아줌마들이 있지만 현장엘 가지 않았다. 몇일간 누적된 피로가 쌓여있고 오전내내 게으름을 필 생각이다. 간밤에도 충분히 잠을 잔 것 같은데 몸이 개운하지 못하고 의욕이 반감되는 느낌이 들어 텃밭에서 소일거릴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금방이라도 매화가 필 것처럼 움이 돋아나고 햇볕이 좋다. 항상 새벽에 보고 밤에만 보았더니 내 집안에도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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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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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2 Apr 2026 22:56:4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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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럴 땐 가난한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title>
			<description><![CDATA[<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1/d84f19782b7ecfc891ad36d0889155da1055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간밤에 삭신이 쑤셔 너무도 힘든 밤을 보냈다. 귀촌하고 10년이 넘도록 두어번 감기에 걸린적은 있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인 것 같다.<div><br></div><div>샤쉬 사장이 감기를 가지고 와 소장에게 옮겼고 마스크는 물론 아무런 대비책없이 매일 함께 지내다 보니 결국 건강에 취약한 나에게 까지 옮겨 놓았다. 현장에서도 흐르는 콧물때문에 주로 차안에서 인부들을 감시(?)하며 하루를 보냈다.&nbsp;</div><div><br></div><div>정신이 몽룡해지는 느낌이다. 오늘밤도 고통받을게 뻔하여 공주현장에서 일찍 퇴근하여 인부들을 데려다 주고 병원 문을 닫기 전에 진통제와 몸살 감기 주사를 맞았다. 사시나무 떨리듯 몸이 춥다. 건축 준공검사 문제로 마음이&nbsp;편하지 못하니&nbsp;몸도 좋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속에 분투하다 보니 한계점에 도달한 모양이다.</div><div><br></div><div>생전 아퍼도 내색을 하지 않는 체질인데 이번에 조금 다르다. 지난날 담낭제거 수술을 받기 전의 아품이 떠올랐다. 쓸개가 터졌을 떄 차라리 죽고 싶단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때보단 경미하지만 몇년동안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온게 무용지물이란 걸 새삼 느낀 하루였다.&nbsp;</div><div><br></div><div>사람이 이렇게 변덕스럽다. 남들이 보면 강철같은 사람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조금만 아파도 두려움이 생기고 의기소침해 진다. 그런 존재이면서도 잘났다고 호언장담하는 내 모습이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독선과 고집이 자신의 생각을 지배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nbsp;&nbsp;</div><div><br></div><div>나에게는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다양한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오늘 하루, 어떤 감정을 나의 주된 감정으로 붙들고 생활했는지에 따라 오늘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단순한 남자들은 인생도 단순하다. 어느 누구도 일만 하며 살도록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다양한 욕구와 특성들을 갖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지를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진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히 유명인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나도 그 범주 안에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남자는&nbsp;울면 안된다는 강압속에서 성장한 탓도 크다. 넘어져도 울면 사나이가 아니라는 말에 눈물을 삼키며 남자가 되길 열망했었다. 갑짜기 고독한단 생각이 들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엉뚱한 발상이지만 나는 내 또래에 비교하여 현재의 나이로 10년 이상은 더 산 거라고 믿고 있다. 건<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4px;">강상으론 문제가 있었겠지만 매<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4px;">일 밤 12쯤 잠에 들었다가 새벽3시 50분에 기상하여 교회버스를 운전하여 교인들을 수송하는 일을 몇<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4px;">십년간 계속했으니 다른 사람보다 더 산게 분명하다.</span></span></span></span></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br></span></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4시간 이상은 잠들지 못하고 새벽 4시면 깨었다가 다시 잠에 들기도 한다. 언젠간 화들짝 놀라 옷을 입고 차량 운전하러 나간적도 있었다. 정신을 차린 후에 밀려오는 고독감에 한동안 잠을 못이뤘지만 말이다.&nbsp;</span></font><span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지금이야 새벽기도를 잠시 쉬고 있지만&nbsp;그나마 부모님들의 기도속에 자랐고 지금도 대신 기도해주는 사람이 많으니 안심이고, 체질적으로 숙면을 못하니 '잠이 보약'이라는데 아무래도 이대로 가단 오래 살진 못할 거 같은 기분이 드는게 사실이다.&nbsp;느낌상&nbsp;앞으로 30년 이상은 못버틸 것 같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br></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아무튼 간밤엔 자다가 깨어 내복을 벗어 던질 정도로 땀을 쏟았다. 온풍기와 전기장판을 동원하고 근육통증완화제와 감기약을 먹었더니 벼게가 적셔질 정도로 땀을 흘렸지만 거의 나았다는 전조증상이라 여겨 감사를 했다. 지금은 아직 완쾌 상태가 아니지만&nbsp;</span><span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이젠 한동안 감기는 안걸릴 거라 생각하니 감사가 나온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br></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4/01/abb73469d2ead197180fcf8c926dfd2310570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체질은 일년에 한번씩 년중 행사로 치루는 일이기에 이젠 내년까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어 홀가분한 생각이 들고&nbsp;또한&nbsp;내 스스로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한 효험이 일주일만에 나타난 거에 대한 감사이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br></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역시 난 '감기안수전문가'란 레떼루가 절로 붙은게 아니라는 걸 체험하고 있다. 교인들이 감기 몸살로 찾아와 기도를 받으면&nbsp;100% 일주일만에 나았다. 혹여 8일이라고 시비를 걸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발명 날짜를 자세히 계산해 보면 일주일이 정확하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br></span></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내가 어렸을 시절에 한창 이름을 날리던 김기동목사와 현신애권사에게 안수 한번 받으려고 엄니 손에 끌려 줄지어 서있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잠든 적도 있었지만 어째튼 안수를 받으면 금방 나을 거란 믿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요즘은 매일 고속도로를 통해 충남 공주까지 가서 공사를 하고 있다.&nbsp;</span></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br></span></font></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먼 거리이지만 인부들을 태우고 오가는 길이 즐겁다. 이미 고속도로 주변엔 벚꽃이 피고 있고 개나리도 참 보기 좋다. 은퇴한 친구의 집을 지어 준다는 것이&nbsp;</span></font><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매일 매일 나에게 가느다란 흥분을 일으키기에 하루의 시작이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오늘은 어떤 작품을 만들까를</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tyle="font-size: 16px; 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 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구상하는게 즐겁다.</span></p></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4px;"><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4px;"><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line-height: 24px;"><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variant-alternates: normal; font-size-adjust: none; font-language-override: normal; font-kerning: auto; font-optical-sizing: auto; font-feature-settings: normal; font-variation-settings: normal; font-variant-position: normal; font-variant-emoji: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6px; line-height: 24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color: rgb(0, 51, 102);"><br></span></font></span></span></span></span></font></div><div>트럼프가 전쟁을 일으켜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석유를 원료로 하는 건축 자재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아예 문을 닫는 공장이 늘어나고 건축하는 사람들도 나가 자빠지는 형극이다. 거의 100% 이상 가격이 상승한다는데 쓰레기 봉투도 품귀 현상이란다. 이대로 전쟁이 길어지면 경제가 파탄날 지경이라는데 감기가 나으면 전쟁을 만류시키러 가야 할 모양이다.</div><div><br></div><div>철강과 판넬 등은 웃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어 인맥을 동원하여 겨우 금요일에 납품받기로 했다. 마치 선심을 쓰는듯 어렵게 구했다는데 돈있는 것들이 이미 사재기 등을 통해 이번 기회에 한묷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을게 뻔하고 시국이 이러하니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자재를 구하니 건축비 상승을 건축물에 반영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싸게 내놓아도 안팔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니 업자들의 부도가 이내 사회문제가 될 전망이다.</div><div><br></div><div>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열흘가는 꽃이 없고 아무리 힘들어도 봄은 오기 마련이다. 통상적으로 아침 여섯시에 인부들을 소집하니 오후 3시30분 정도에 마치지만 요즘은 30분에서 한시간 정도 연장시키고 있다. 이럴 때 고통을 분담하는게 의리이고 공무원이 아닌 이상 아홉시 부터 일 시작하려는 것들은 퇴출시킬 기회이다.</div><div><br></div><div>이틀만에 바닥 기초작업을 마쳤고 또 이틀만에 철골조 공사도 거의 마무리지어 내일이면 지분 뼈대가 세워지고 판넬이 들어오는대로 외관공사를 마치려 한다. 건물주 박목사님이 당진에서 매일 출근하시기가 어려워 동네 마을회관에서 기거하는가 본데 쌀이랑 반찬을 가지고 왔다지만 틀림없이 라면을 끓여 잡수실텐데 지체말고 끝내 드려야겠다.&nbsp; &nbsp;&nbsp;</div><div><br></div><div>하필이면 내가 여러곳에 현장을 두고 있는데 트럼프가 불장난을 하고 있으니 되살아 나던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고 국민들의 부담이 점점 커지니 국가에서 지원금을 줄 모양이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나야말로 민생지원금을 받아야겠는데 소득 순위 70% 까지만 준다니 그나마 안심이다. 가난한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nbsp;&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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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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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1 Apr 2026 10:58:4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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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봄비 내리는 밤에 엉뚱한 기도</title>
			<description><![CDATA[<div><font color="#0021b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30/98e6ea0dcfc0173504024ee07271bdb113145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면서 체험한 것이지만 일하는 걸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죽어라고 땅을 판다. 남들 골프치는&nbsp;대신 난 호미질을 한다&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내 텃밭이 200평 남짓하지만 항상 너무 작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조금 더 큰 텃밭이 있다면 또 이사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 생전 백번은 이사 다닐 생각이다. &nbsp;&nbsp;&nbsp;&nbsp;&nbsp;&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난 가만히 있으면 병이나는 체질이다. 요즘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은 무색해지고 있고, 멀지 않아 인생 구십, 인생 백세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오래 사는 것이 복된 일이긴 하지만, 몇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일반적으로 말해, 60세에 은퇴한다고 생각해도 25년 내지 30년 정도의 은퇴 후의 삶을 대비해야 한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33, 176);">행복한 은퇴 후의 삶을 위해서는 건강, 화목한 가정, 다양한 교우관계, 보람 있는 취미나 직업 등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nbsp;</span><span style="color: rgb(0, 33, 176);">또한 평생 목회자로 산 까닭에 매일 처음 발자국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살려하니 일이 많은게 걱정이 아니라 무료해질까봐 염려스럽다.</span></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div><font color="#0021b0">내가 사는&nbsp;동네에도 여든을 훨씬 넘긴 할머니 두 분이 정신이 혼미해지는 증세가 있어서 동네 이장을 비롯 여럿이 돌보고 복지사도 자주 다녀 가지만 머지않아 시설로 옮겨질 모양이다.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갈데도&nbsp;없다. 두 분 모두 자녀를 많이&nbsp;두신 분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책임지고 모시겠다는 자녀가 없으니 어쩌겠는가.&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자녀들도 마음이 아픈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러나 치매끼가 있는&nbsp; 부모를 모시기에는 너무나 어려움이 많으니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방안에만 있기에 낮인지 밤인지를 구별못해 낮에 자고 밤새도록 TV를 시청하니 가족들이 짜증을 내는 데, 거기에 부실한 이(齒) 때문인지 반찬 투정을 하여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부모와 떨어져 살아 온 시간이 길어서인지 실감은 못하지만 당사자들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노인들에게 아파트는 편의 시설이 아니라 천덕구니가 될 확률이 높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33, 176);">백세인생이 대세이긴하지만 아무리 장수하면 뭐하는가? 무덤덤하고 무감각한,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 모호한 식물인간 같은 삶은 자신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나 모두 괴롭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미국 시인 롱펠로는 “나는 노인을 존경한다. 그러나 나는 인생 황혼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즉 저녁의 어둠이 눈물어린 눈가에 모이고 황혼의 그림자가 인간의 지각에 넓고 길게 드리우는 그 시기를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nbsp;&nbsp;</span></div></div><div><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span class="txt_search"><font face="Malgun gothic">늙는다는 일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이며<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그럴수록&nbsp;<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나<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는 세상에 우뚝 선 가장 크고 중요한 존재로 느끼기보다는 세상의 작은 일부이며 자연의 하나로도 만족스러운 존재로 느끼게 된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그게 삶에 대한 예의이자 겸손이라는 걸까<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그리고 이 또한 지난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의 크기도 그만큼 커지기도 하는 일이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font></span></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span class="txt_search"><span style="letter-spacing: 0pt;"><font face="Malgun gothic">‘늙음<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은&nbsp;<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그리움<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을 불러온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살아온 날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보다 훨씬 많으니<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그리움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그래서일까<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부모의 나이가 되었을 때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떠올리곤 한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nbsp;비로소 그 나이가 되어서야 '<span class="txt_hanja"><daum:word id="hhw000010228">達</daum:word><daum:word id="hhw000009311">觀'이란 걸 겨우 알게 되었다. 달관이 '<span class="txt_mean"><daum:word id="kkw000207667">인생</daum:word><daum:word id="kkw000202851">의</daum:word>&nbsp;<daum:word id="kkw000243771">진리</daum:word><daum:word id="kkw000079766">를</daum:word>&nbsp;<daum:word id="kkw000040989">꿰뚫어</daum:word>&nbsp;<daum:word id="kkw000112478">보아</daum:word>&nbsp;<daum:word id="kkw000163935">사소한</daum:word>&nbsp;<daum:word id="kkw000208444">일</daum:word><daum:word id="kkw000177759">에</daum:word>&nbsp;<daum:word id="kkw000245475">집착하지</daum:word>&nbsp;<daum:word id="kkw000169631">않고</daum:word>&nbsp;<daum:word id="kkw000050081">넓고</daum:word>&nbsp;<daum:word id="kkw000086277">멀리</daum:word>&nbsp;<daum:word id="kkw000100071">바라봄'이라면 이제서야 눈을 뜬 거라고 할 수 있다.</daum:word></span></daum:word></span></font></span></span></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span class="txt_search"><span style="letter-spacing: 0pt;"><font face="Malgun gothic">세상은 온갖 것들을 사이에 두고 다투고 경쟁하면서 이기고 지는 사람으로 나누기를 좋아한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그리고 사람들은 이기고 성공한 사람에게 환호하고<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지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그 이유를 묻길 좋아한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nbsp;그것이&nbsp;<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사람 사는<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일로 여겼다<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지난날이 그러한데<span style="letter-spacing: 0pt;">,&nbsp;</span>늙은 지금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span style="letter-spacing: 0pt;">.</span></font></span></span></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섹스피어의 어록중에 '힘들 때 울면 3류, 참으면 2류, 웃으면 1류'라는 말이 있다. 힘이들면 힘든대로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며 참는 훈련에 안간 힘을 쏟는 걸 보니 2류 인생 정도로 올라서는가 보다. 전에는 당연히 3류 인생을 살았다.</span></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r></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예전같으면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불평했을 것이다. 바라는 것도 많았지만 포기도 빨랐던게 내 단점중에 하나였다. 아직도 수양이 완성되려면 멀었지만 공짜 면류관은 얻지 않으려 작심했다. 십자가없이 트로피를 얻으려하는 사람이 가장 얌체이다. 더디긴 하지만 결과보단 과정을 우선시하니 바람불어 나무가 쓸어져도 불만대신 또 하나의 지혜를 배운다.&nbsp;&nbsp;</font></p><div><span style="line-height: 1.5;"><font color="#0021b0"><br></font></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font color="#0021b0">세상에서 가장 기운이 쎈 남자는 삼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다가 결국 적군에게 사로잡혀서 노예가 된다. 힘은 있었지만은 그 힘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절제이고 참는 것이다.&nbsp;</font></span></div><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30/53777b08c32c6a90d15c1c590320af21131652.gif"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후들어 비가 내리더니 밤새 내릴 모양이다. 내일은 아무리 비가 많이 내린다 하더라도 충남 공주에 가서 철골작업을 해야 한다. 가능하면 이번주 안에 지붕공사까지 마치려니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자재상을 돌아 다니며 물품을 구입했고 BC 아시바도 추럭으로 옮겨 실었다. 용접기도 새것으로 구입했고 왠만한 건 현지에서 직접 구입하려 마음먹었다.&nbsp;</span><span style="color: rgb(0, 33, 176);">징크판넬은 우리 거래처에서 공주까지 배달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도배와 장판, 인테리어 팀도 공주로 데려갈 생각이다.&nbsp;&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내일 오전까지는 비소식이 있지만 일단 강행할 생각이다. 새벽 5시 30분까지 휴게실로 모이라고 지시했다. 왕복 거리를 감안하여 약간의 수당을 더 지불하기로 했지만 꼭두 새벽에 소집하는게 미안하기만 하다. 오늘밤 비가 부슬 부슬 내림에도 내일 일정을 구상하며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의 미끄러짐을 감상한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내일 아침까지만 비가 내린다니 천정 용접은 오후로 미루고 오전내내 바닥에서 가쇼를 짜려고 작정했다. 겨울가믐이 심했던 걸 감안하면 비가 조금 더 내려야겠지만 이번주를 피해 주었으면 좋겠다. 시공하는 나보다 건축주 박목사님의 심정이 편치 않을 것 같아 비가 그치길 기도해야겠다. 주여, 주의 종이 향후 30년을 살 집이니 좋은 일기를 허락하소서.&nbsp;&nbsp;</span></div></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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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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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30 Mar 2026 13:18:43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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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매주 복권을 사는 남자</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8/27469b843428e461928e46ba3120d45c22472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아담은 그 마음속에 들어오는 생각 중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생각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 결과 아담이래로 인간 마음은 완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난 생각으로 가득 찼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 마음은 생각 저장고이며, 생각 활동 장소이다. 인간은 생각에 따라서 말하고 행동한다. 그 생각이 얼마나 활동적이냐 하면 인간이 잠을 잘 때, 대부분 생각들도 활동을 중단하고 이불을 덮고, 내일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 단잠을 청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데 생각 중에는 아주 지독한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인간이 잠을 자고 있을 때, 꿈이 되어&nbsp; 인간과 상관없이 수만리까지 돌아다니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식이 시작되면 잠을 자고 있던 오만가지 생각들도 이불을 걷어내고, 자기 옷을 주어 입는다. 생각은 의식과 무의식을 오고가며 쉬지 않고 활동 한다. 그래서 로댕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 고 했다. &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 생각들이 주로 하나님 없는 생각들이다 보니 문제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없는 생각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인간 마음을,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한다. 창 6 장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한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 이라고 기록한다.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과 모든 표현은 다 이렇게 심히 부패한 인간 마음에 있는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산물이며,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태를 나타내어 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점점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사회가 매말라가는 느낌이 든다. 가끔 지인들이 귀촌 이후의 삶에 대하여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는 데, 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사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말해준다. 억지로 만들어내고 생산해내고 갖추어진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형성해가는 그런 생활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생은 곱셈이다. 어떤 기회가 와도 내가 제로(0)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그릇을 엎어놓고 있으면 한 방울의 물도 받을 수 없다. 내가 제로 상태인데 무얼 기대할 수 있는가?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만 빛을 준다. 태양을 향해 서 있는 자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않아도 된다. 말하자면 실패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누구나 몇번씩은 넘어져 본 기억이 있을테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넘어진 횟수만큼 일어서는 사람들이다. 슬픔이 그대의 소중한 것을 쓸어가 버리면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면 어떨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이 약이다.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존보다 생활이 중요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요한 것은 자아(自我)를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Be yourself!). 절망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취된다. 하나님은 우리 손을 잡은 것을 절대 놓지 않으신다. 게으름은 쇠붙이의 녹과 같아서 노동보다 더 심신을 지치게 한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낙심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진정으로 강한 이는 치열하면서도 온화하다. 이상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여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 color="#013add">삶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font></b>로 나뉜다.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믿든지, 기적은 절대로 없다고 믿든지 둘중에 하나이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고 기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원초적으로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 현장소장은 매주 로또 복권을 구입하지만 오천원권 이상을 맞아 본적이 없으면서도 주말의 사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특히나 중국 사람들의 사행심리는 알아줄만 하지만 나는 그걸 퇴행심리라 여긴다. 자주 뒤돌아보는 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길이 가깝다 해도 가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고, 일이 작다 해도 행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 다행히 현장 소장은 나를 만난 이후 제법 재산을 많이 모아 중국에 아파트 두채와 상가 건물을 구입했고, 교회로 인도하지 못한 것외엔 내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듯 싶다. 일단 방향은 제대로 잡아 준 것 같은데, 계속해서 뻗어나갈 거로 믿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8/d1ab6181c876eadf22c8d575d763595322510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그러고보니 옛말에&nbsp;<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013add">'호박 넝쿨과 딸은 옮겨 놓은 데로 간다'</font></b>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방향을 잘 잡아주어야 한다는 말일게다. 난 딸들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어느 부모나 자식에 대한 자랑을 팔불출소릴 들으면서도 해대겠지만 마음이 참 고운 애들이다.&nbsp;</div><div><br></div><div>내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복중에 가장 큰 복이 바로 이것이다. 그냥 방향만 잡아주었을뿐인데,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잘 자라주어 너무 고맙다. 그러고보니 호박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nbsp;</div><div><br></div><div>올해도 호박을 많이 심을 생각이다. 하나님은 경이로우신 분이시다. 마치 어린아이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이런 저런 색깔을 칠한 것 같이 작은 밭 속에 욕심껏 여러 작물을 심어놓고 바라보는 사이에 행복의 씨앗을 풀어놓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땀 흘리며 일을 할 때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도 한 팔 가득한 행복을 수확하게 하신다.</div><div><br></div><div>작은 것 하나를 보면서도 그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시골생활이 가져다 준 은헤요 축복이다. 도심에서 찌든 공기를 마시면서 부댓기며 살았다면 난 큰 욕심때문에 작은 행복을 영영모르고 살 뻔했다. 역시 시골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에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서 소소한 행복감을 만끽할 수가 있을까?&nbsp;</div><div><br></div><div>오랫만에 대형 거울 앞에 앉아 내 모습을 유심히 살펴 보았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 내 모습이라곤 상상이 안갈 정도로 변해 버린 모습에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 고운 모습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초라하고 깡마른 노인네가 거울속에 앉아 긴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소싯적엔 한 인물 한다는 소릴 하도 많이 들어 내가 정말 잘 생긴줄로 착각하며 살아 왔었는데 이제보니 내 진면목(眞面目)은 전혀 자랑할게 없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div><br></div><div>언제 이렇게&nbsp;변해 버렸는가. 늙음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괜시리 서글프단 생각이 들어 거울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내 선친의 모습이 그 속에 있고, 어머니의 병색에 지친 모습도 엿보였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 왔다고 자부하면서 왜 초라함에 눈을 감으려 하는가.</div><div><br></div><div>'언행휘찬(言行彙纂)'에 수오탄비(羞惡歎悲), 즉 인생에 부끄럽고 미워하고 탄식하며 슬퍼해야 할 네 가지 일을 꼽은 대목이 있다. 그 글은 이렇다. '가난은 부끄러울 것이 없다. 부끄러운 것은 가난하면서도 뜻이 없는 것이다. 천함은 미워할 만한 것이 못된다. 미워할 만한 것은 천하면서도 무능한 것이다. 늙는 것은 탄식할 일이 아니다. 탄식할 일은 늙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죽는 것이야 슬퍼할 것이 못 된다. 슬퍼할 것은 죽은 뒤에 아무 일컬음이 없는 것이다.('늙을수록 더욱 씩씩하고, 궁할수록 굳세야 한다(老當益壯, 窮當益堅).'&nbsp;</div><div><br></div><div>마원(馬援)의 말이다. 노익장(老益壯)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늙어 주눅든 모습처럼 보기 민망한 것이 없다.'살아서는 뜻을 빼앗을 수가 없고, 죽어서는 이름을 빼앗을 수가 없다(生則不可奪志, 死則不可奪名).' '예기(禮記)'의 구절인데, 남이 뺏지 못할 뜻과 이름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해야지, 남이 안 알아주는 것을 탄식하지 말라는 얘기다.</div><div><br></div><div>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미워할 것(羞惡)은 빈천이 아니다. 그 앞에 기가 꺾여 제풀에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탄식하고, 슬퍼할 일(歎悲)은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망령 떨고, 이룬 것 없이 큰소리치다가 죽자마자 잊혀지는 일이다.</div><div><br></div><div>아직도 내복을 벗지 못하고 사는 내 모습이 허약해 보이지만 아직은 할일이 많고 해야할 일이 많기에 조심 또 조심헤애 한다. 감기에 걸린 소장이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이유는 어쩜 나를 위한 배려일 거란 생각을 해 보았다. 젊은 사람은 감기 정도는 병도 아니지만 늙은이들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8/2c3c347fe1fde625ec54a7547a28d139225236.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내일부터 비가 내린 거란 예보가 나와 있고 화요일 부턴 다시 충청도로 매일 출근하여 철골조 공사를 해야 하기에 소장과 함께 오늘은 예배를 마친 후 집을 구하러 다니기로 했다. 늙으면 병원이 가까워야 한다지만 나는 왠지 바다가 좋고 시야가 가린 곳은 답답해서 못살 것 같아 소장에게 노구의 몸을 의탁해야 할 곳을 찾아 보라고 부탁했었다.&nbsp;</div><div><br></div><div>소장은 지금 미분양된 여러개의 집중 제일 좋은 곳으로 이사하여 편안한 노년을 보내라 하지만 나에겐 편안한 노년은 아예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연명 치료도 안받겠다는 생각이 여전하고 단지 교회와의 거리가 50km 미만이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다.&nbsp;</div><div><br></div><div>내 운전 실력으론 50키로이면 두시간 거리이다. 그 이상이면 격주로 다녀야 할판이고 그 이상이면 한달에 한번 갈까 말까한 거리이다. 그러다간 주께서 내 얼굴을 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nbsp;</div><div><br></div><div>제일 가까운 해변이라면 새만금이 있는 부안 변산반도이겠지만 매일 출퇴근 하기엔 조금 먼길이고 충남 서천 장항의 갯벌도 마음에 두고 있는 곳이긴 하지만 이미 가격이 오를대로 올라 나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교회는 가까워지지만 겨울철 눈이라도 내리면 출퇴근이 불가능한 곳이다.&nbsp;</div><div><br></div><div>일단 김제쪽으로 답사가기로 했다. 빈집은 많지만 거의 흉가 수준인 곳들이라 고치려면 여간 자본이 많이 들어 간다. 망해사가 있는 신포항으로 가보려 한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한탓에 졸찌에 민물이 되어 가는중이지만 예전엔 바지락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곳이다. 새만금 고속도로가 뚫려 익산까지 40분 거리이고 교회까진 70분 거리라 약간 무리가 되겠지만 천성에 가는 길이 험란한 일이기에 일단 가보려 한다.&nbsp;</div><div><br></div><div>예배 드리자고 안할테니 밖에서 기다리다가 중동 시장에 가서 매운 잡체와 호떡을 먹고 역으로 새만금을 거쳐 김제로 가자니 이것이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알레지 반응을 일으킨다. 다른 건 내 지시라면 무조건 따르지만 교회가잔 말엔 경기를 일으킨다. 목사님 설교를 자장가 삼아 눈감고 한시간 동안 쉬고 나오자 해도 내가 절에 들어갈 때 사천왕을 보며 꺼림칙한 것처럼 요녀석도 교횔 가면 기분이 별로란다.&nbsp;</div><div><br></div><div>이번이 도대체 몇번째 이사하는지 모르지만 인천에서 두자녀를 둔 젊은이들이 시골집을 구한다는 소릴 듣고 서창에서 이사올 거란 말에 약간 손해를 보고 팔았다. 소래포구의 추억이 아직 남아 있고 내 큰 딸도 지금 서창에 산다는 말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내가 산 가격 이하로 넘겨 주었다. 내가 살고있는 집은 제법 리모델링을 잘해 놓아 사는데 불편이 없겠지만 과연 촌생활에 잘 적응할지 모르겠다.&nbsp; &nbsp; &nbsp; &nbsp;</div><div><br></div></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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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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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28 Mar 2026 22:57:4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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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외로울 거라 생각하시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7/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11361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중국인은 자그마한 찻잔으로 차를 마시고, 일본인은 차를 휘저어 거품을 만들며, 티베트인은 버터를 넣는다. 러시아인은 레몬을 곁들이고, 영국인은 밀크와 설탕을 넣으며, 인도인은 연유를 넣는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나라는? 딱히 특색이 없는 듯하다. 세계적인 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과 일본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 이토록 차를 즐기지 않으니 미스터리 할 뿐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전분 음식과 비전분 음식을 입 속에 한꺼번에 넣고 먹는 습관을 가진 한국인에게 식후 짠맛을 상쇄 시켜주는 음료는 차보다는 숭늉이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1970년대 말 이후 전기밥솥이 널리 보급되면서 더 이상 가정에서 숭늉을 만들어 먹지 않게 되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한국인이 '밥 + 탕 + 반찬'이라는 식사 형태를 지속하는 한 단맛이 나지 않는 차는 식후 음료로 자리 잡기 어려울 듯하다. 특히 한국인의 짠 맛 나는 식사에는 씁쓸한 맛의 녹차 대신 단맛의 믹스커피가 어울리나 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의 식사가 다양한 형태로 바뀐 지금,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해가 간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연평균 기온 1도가 올라가면 기존 작물의 생육(生育) 한계선이 직선거리로 100㎞ 정도 북상한다고 한다.&nbsp;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1.5도(전 지구 평균 0.7도)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남쪽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던 작물의 주산지가 150㎞ 정도 북상했다는 말이 된다.&nbsp;실제로 지난 10년 사이 강원도 지역의 사과 재배 면적이 122㏊, 배 재배 면적이 310㏊증가하는 등 과수 재배지가 점점 북상한 것으로 나타났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반면 같은 기간 동안 제주지역은 10도 이상의 평균기온이 10개월 이상 지속되는 아열대 기후로 바뀌었다.&nbsp;북위36도는 녹차의 북방한계선으로 이 위도를 넘어가면 녹차를 재배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우리나라 자생 차밭의 북쪽 한계선이라는 익산 웅포 차밭은 북위 36도3분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김제시 금산사 일대보다 30여km 더 올라가서 있고, 북방한계선은 웅포 차밭에서부터 동쪽을 향해 전북 고창, 순창, 경남 산청, 창원, 밀양, 울산으로 선을 긋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차나무는 최저 -14도씨에서 동해가 발생하는데 익산지역은 자주는 아니지만 1월 극 최저기온이 -20.7도씨까지 내려간 예가 있어 차 재배 안전지역은 아니나, 최북단 자생지로서 의미가 있고, 점점 기온이 상승하는 걸 감안한다면 앞으로 녹차가 대량 생산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나는 오다가다 몇번들려 녹차를 시식해 보았지만 이런걸 돈주고 사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녹차나무로 울타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뿐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의 선친께서도 녹차는 풀냄세가 난다며 별로 좋아하시질 않았다. 우리 식구들은 유별나게 녹차 종류를 선호하는 사람이 없다. 중국인 현장소장이 고향을 다녀 올 때나 인편에 가끔 보이차를 가져다 주지만 이런 걸 돈주고 사먹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차피 형제들은 보이차를 극단적으로 싫어 하기에 담임목사를 위시하여 지인들에게 보이차를 나눠 주는데 지푸락 썩은 냄세가 나는 이런 차가 몇십만원씩에 팔리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로 여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정말 맛을 알고 마시는 건지 알쏭달쏭하지만 일단 기호식품이기에 탓할 필요성을 느끼진 않지만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의 짐속엔 반드시 20여만원씩 하는 보이차를 가져 오는데 솔찍이 말해서 난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민족성에 대하여 한심한 정도를 넘어 경멸하고 싶을 때가 종종있다. 안좋은 건 모조리 세계 최고이며, 좋은 것은 한없이 뒤로 밀리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이 왜 이렇게 막가는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이해 관계가 생기면 신앙도 인격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다. 십자가가 장식물이 되어 버린지가 오래이다.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내가 양육했던 교인들도 세상에 나가 살 떄 이런식으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내가 걸어 온 길이 호화스런 길은 아니었다. 내세울만한 것도 별로없다. 그렇다고 해서 거름이나 만지며 살고 있는 지금이 진부하다고 느껴 과거에 집착하는 건 아니다. 자신을 반추해 보면 그만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립다. 그리고 아픔이 되어 눈을 감으면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어쩌다가 이리 되었을까?&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꽃은 흔들리면서 크고, 인간은 거짓말을 하면서 성장하고, 거짓말 한 것을 후회하면서 성숙한다. 거짓말을 전혀 못하는 인간은 순진해서 피곤하고,&nbsp;거짓말을 잘하는 인간은 믿을 수 없어서 피곤하다.'는 말이 있다. 도종환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라고 읊었는 데,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많이 흔들렸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소한 말한마디에도 흔들렸고, 그냥 넘어 갈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가슴앓이를 했던 때가 부지기수이다. 당시에는 비분강개(悲憤慷慨)하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역시 흔들면서 피는 꽃이라는 말에 실감이 간다. 그래서 화가 날 땐 일단 입을 닫는 버릇이 생겼다. 내 말수가 줄어들 때는 화가 몹시 나 있을 때라고 보면 틀림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주변에선 먹지도 않을 채소를 심는 이유가 뭐냐고 야유를 보내지만 따지고 보면 영농뿐만 아니라 짐승을 키우는 일이나 건축하는 일도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다. 세상사 모든 일이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nbsp;어거지 논리같지만 나는 내 존재감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살고 있다. 아무 일도 안하기엔 너무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고, 그 일로 인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부모는 되지 않으려고 꼼지락거린다.&nbsp;</span></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7/abb73469d2ead197180fcf8c926dfd231137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만약 내가 아무 일도 안하고 백수로 살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 예상대로 라면 앞으로 5년은 더 일할 수 있고, 이 기간동안 남에게 의존하여 살지 않을만큼의 자금이 필요하며 손주들을 일년에 한두번쯤 비행기를 태워주려 독한(?) 맘을 먹었다.&nbsp;</div><div><br></div><div>나는 현역시절에도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는 생각을&nbsp;가지고 임했다. 교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했고 교인들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nbsp;교인들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교인들도 날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 보았던 것 같다. 서로가 불쌍한 마음을 가지면 문제가 반감된다.&nbsp;아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가질 때, 남편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면&nbsp;우여곡절(迂餘曲折)은 아무 것도 아니다.&nbsp;</div><div><br></div><div>나같은 목회자를 만난 교인들이 불쌍하고 송구한 마음이 들어야 목양관계가 형성된다. 교인들도 나같은 염소를 양육하는 목회자에게 연민의 정을 느낄 때 우여곡절(迂餘曲折)이 해소된다.&nbsp;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nbsp;</div><div><br></div><div>우리 가운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긍휼이 가장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nbsp;늘 같이 살다보니까 서로의 단점이 너무나 잘 드러난다. 그래서 갈등이 생겨난다.&nbsp;그러다보면 미움이 싹트고 싸우게 되고, 그래서 부부가 갈라서고, 형제가 의가 나는 것이다.&nbsp;&nbsp;그런데 서로가 불쌍한 마음을 가지면 갈등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긍휼의 마음은 갈등을 이긴다. 미움을 이긴다.&nbsp;</div><div><br></div><div>그래서 성경은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 하느니라”(약2:13)고 말씀하신다. 나는 성경을 읽으며 마태복음 18장에&nbsp;나오는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에 도전을 받는다. 그가 가난하여 갚을 길이 없자 주인이 불쌍히 여겨 빚을 전부 탕감해 주는데,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이 길을 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종을 만나 그것을 갚으라고 강요하고 갚지 못하자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이야기가 있다.(마18:32-34)&nbsp;</div><div><br></div><div>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니었던가?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마18:32-34)&nbsp;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약2:13)고 하신다.</div><div><br></div><div>만약에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면 나는 천국 입성이 불가능할 것이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의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으로 부터 그런 은혜를 받았으니 일백 데라리온 정도는 베풀어야 하지 않겠는가?&nbsp;</div><div><br></div><div>나는 때론 수전노가 되어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목적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년초 기도하면서 내가 받은 일만 달란트 중 일백 데라리온 정도는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 은퇴한 위대한 선후배들을 위로하기로 했다. 조만간 그 계획을 실행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건축의 '건'자도 모르는 사람이 이만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은혜요, 나누라는 준엄한 메세지가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7/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11392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어제에 이어 충남 공주에 가서 절친의 집을 짓는 일을 했다. 하룻만에 블럭시멘으로 25평형 건물의 바닥 기초를 끝내고 철근작업을 마쳤으며 오늘 콘크리트 타설작업까지 마치었다.&nbsp;</div><div><br></div><div>새벽 5시 30분까지 인부들을 소집했는데 우즈백 인부 한명이 예고도 없이 결근을 하여 타설에 필요한 인원이 부족함에도 일단 공주로 가면서 노임을 더 주기로 하고 둘이 세명 묷을 하라고 독려했다.&nbsp;</div><div><br></div><div>그 중에 한명은 명색이 기공이랍시고 힘든 일을 안하려 하니 결국 소장 혼자 독박을 쓴셈인데 심한 감기 몸살을 앓고 있어 힘든 하루였지만 레미콘 사용일자가 금요일까지이니 오늘 타설을 못하면 몇일을 더 기다려야 하니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즈백 인부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수신 거부했다. 난 무책임한 사람들하곤 일을 하지 않는 불분률을 오늘날까지 지켜 오고 있다. 긍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가까히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에 이 바닥에선 무단 결근은 용서받기가 어렵다.&nbsp;</div><div><br></div><div>익산에서 공주까지 오가는 길이 평소에 내 운전 습관으로 볼 떄 왕복 3시간 거리지만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에 한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뿐 돌아오는 길은 시속 120km로 40분만에 돌아왔다. 차만 타면 코를 고는 소장이 나를 곁눈질하며 무슨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게 내 진짜 모습이란 걸 감추고 태연한척 느긋한척 해왔던 내 본래의 모습을 보고 놀래는 눈치이다.&nbsp;</div><div><br></div><div>바닥이 양생되는 동안 사흘동안은 내 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다음주부터 계획한 철골공사 부터는 더 쎄게 일을 시킬 생각이다. 약간만 느슨하게 해도 공사비가 눈덩이처럼 커지기에 미리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내 또다른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현장에 몰려와 오랫만에 고향으로 귀촌하는 박목사님을 환영하면서 나에게도 빈집이 있으니 함께 이사오라고 강요(?)를 한다.&nbsp;</div><div><br></div><div>여기에서 군산 교회까지 가려면 2시간 걸리기에 힘들다니 이 동네에도 교회가 있단다. 그러고 보니 마을 초입에 예쁜 예배당이 있다. 이 동네는 외갓집이 있는 마을이고 부모님 산소도 10분 거리이기에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총회장을 지낸 박현모목사님이 오늘 딸기와 뻥을 사가지고 현장을 방문하여 외로운 사람끼리 모여서 살라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외롭다는 말을 해본적이 없는데 왜 외로울 거라 생각하시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nbsp; &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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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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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7 Mar 2026 11:42:5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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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참고서보단 교과서적으로 살려하지만</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5/394ff49a24db101240bf876fe60acfee11582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매일 출전을 앞둔 용사처럼 비장한 생각으로 새벽에 집을 나선다. 낼 모레가 4월이지만 아직은 아침 저녁으론 쌀쌀함이 여전하고 유리창엔 성애가 끼어 애를 먹지만 아침 공기가 산뜻하기만 하다.</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난 12월부터 다섯개의 집을 신축하며 거의 휴식없이 강행군한 결과 4개는 거의 완성했고 마지막 하나도 철골조 공사사 진행중이지만 은퇴이후 고향으로 귀촌을 계획한 친구네집 공사가 워낙 급해 일시적으로 일을 중단하고 충청도 공주시 이인면으로 내일부터 출퇴근을 하기로 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익산에서 꽤나 먼거리이지만 부모님의 선영이 있는 곳이고 내가 자란 곳은 아니지만 조상님들의 묘역이 있는 곳이기에 낯선 곳이 아니라 약간 피곤은 하겠지만 출퇴근하는덴 지장이 없을 것이고, 평생 주를 위해 헌신한 동역자가 기거할 곳이기에 기대감이 크다. 생각같으면 멋진 전원주택을 지어 드리고 싶지만 아직까진 그만한 여력이 없고 본인들도 25평 정도의 집을 원하는 것 같아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트럼프가 미친짓만 않했어도 공사비를 산출할 수가 있을텐데 근래엔 자재 구하기가 쉽지가 않아 일단 내 현장에 있는 자재를 먼저 투입시키려 작정하고 일찍 일을 마치고 차량 여러대를 동원하여 물품을 실었다. 함꼐 일하던 인부들을 전원 투입시키자니 인건비가 장난이 아니고 최소 경비로 가장 아름다운 집을 지으려 일하던 인부들을 모아놓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사님이 살 집인데 주의 종을 잘 섬기면 3대가 복받는다며 자원자 중에 몇을 선정했다. 또한 때가 때인만큼 분위기를 다잡고 충성서약(?)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분야별로 투입해야 할 인원이 달라지겠지만 믿을만한 사람으로 선정하고 제대로된 집이 만들어지면 6월중에 장가계를 여행시켜 주겠다고 당근을 제시했다. 조선족 소장도 장가계란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가 보다. 청도에 살고있는 아내와 손주를 부르겠다며 벌써 부터 마음이 설레이는가 보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북경이나 상하이도 가보지 못한 촌놈이다. 어린시절 연변에 살 때 백두산에 가본게 전부라는데 소장 역시 나를 만나 호강을 하게 생겼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먼길을 출퇴근해야 하기에 시간을 최대한 절약해야 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독려했다. '마음이 천 리면 지척도 천 리라'는 말처럼 마음에서 멀어지면 가까이 있는 사이도 멀어지는 법이고, '막술에 목이 멘다'고 탈 없이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가서 일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주인의식을 가져 주기를 바라지만 내 뜻대로 움직여줄지는 몇년씩 함께 했지만 자신할 수가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기둥이야 되든 말든 목침 먼저 자른다'는 말이 있지만 남들이야 어찌되든 전혀 개의치 않고 제 욕심부터 차리는 꼴을 더이상 수수방관했다가는 공사비도 문제이지만 부실이 생길 위험이 있어 이번 공사는 자율적이란 말을 회수해 버리고 내가 직접 간섭하고 시간을 카운터 하기로 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잔소릴 거의 안하는 편이지만 입을 함구하고 있다고 건축에 관한 상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Beware of a silent dog and still water."이란 말이 있다. 짖지 않는 개와 잔잔한 물결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떠벌이는 사람보다 진중한 사람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거의 하루종일 현장에 있는 동안 아무 말도 않는다는게 쉽진 않지만 왠만해서는 잔소릴 안한다. 그래서 인부들이 더 어려워하지만 실제로는 매의 눈으로 인부들의 행동을 일일히 체킹을 하고 있다.&nbsp; &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을 좋아하고 노동을 즐기는 편이지만 매일 현장 근무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솔직(率直)히 하루 하루가 즐겁다는 사람을 만나면 부럽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다. 나는 내 주변에 치매로 인해 거의 무뇌증(無腦症) 증상을 보이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때론 주변인들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항상 히쭉거리며 사는 모습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눈을&nbsp;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을때까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결국 잠자리에 누워서는 내가 오늘&nbsp;무슨 생각을 했지? 내가 정말 알고 있는게 뭐지? 아까 생각했던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 등등 생각의 홍수속에 살아가고 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5/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11593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상을 교과서적으로만 살 수 없다는게 고민이다. 점점 세상은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 성장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게 되며 점차 뒤쳐져 결국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버리게 된다. '자연도태(自然淘汰)'라는 말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이러한 세태를 나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nbsp;</div><div><br></div><div>아마 미래에도 여전히 그 때의 세태를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교과서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하고, 꼭 들어맞는다고는 말할 수없지만 그렇다고 완전 세상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써놓은 책도 아니고, 세상의 밝은 면만 강조하기 위해서 거짓말만 잔뜩 써놓은 책도 아니기에 참고서보단 교과서적으로 살려하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div>나는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페이지를 좀 더 빨리 넘기고 싶을 때가 종종있었다. 아닌 것 같아도 나에게도 한국인 모두에게 있는 '빨리빨리병'이 있는 것같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한국인의 특징을 물으면 자주 나오는 대답은 한국인은 빨리빨리 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관련된 말 중에 나쁜 의미로 냄비 근성도 있다. 어딜 가나 빨리 빨리, 줄이 많이 밀려있는 가게는 차라리 다른 가게를 옮겨 가고, 영화가 끝나면 자막이 나오기 전에 일어나 버린다.&nbsp;</div><div><br></div><div>단 몇초라도 남들보다 일찍 일어서야 밀려 나오지 않기에 끝까지 앉아 있는 사람이 거의없다.&nbsp;비행기가 착륙하면 아직 문이 열리기도 전인 데, 모두 복도에 일어서서 기다리곤 한다.&nbsp;&nbsp;일본은 반대로 줄이 많이 있는 가게는 인기가 있는 가게로 인식되어 오히려 줄을 서는 경우가 많으며, 영화가 끝나도 엔딩송 OST를 들으며 제작자나 출연한 배우, 제작자 등을 확인하며 마지막까지 감상을 한 뒤, 불이 켜지면 일어난다.&nbsp;</div><div><br></div><div>남들이 보기엔 좀 느긋한 거 같아도 나도 성질이 급한 편이다. 예를 들자면 컴퓨터의 마우스를 클릭했는데도 화면이 늦게 뜰 때, 운전중 신호 대기중일 때, 도로가 막혀 차가 서 있거나 서행 중일 때, 누구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때, 특히 나는 항공기로 여행을 갈 때 그런 기분을 제일 많이 느끼는 편이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비행기를 탈 때 기분이 별로여서 유럽을 다녀 올 때도 거의 뜬눈으로 열 몇시간을 보내려니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nbsp;</div><div><br></div><div>비행기에서 널부러져 잠든 사람이 가장 부럽다. 지인들로 부터 미국을 한번 다녀가라고 초청을 여러번 받았지만 태평양을 건널 자신이 없어 사양하고 있을 정도니 기다리는 건 질색이다.&nbsp;나처럼,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 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번잡함을 못 견디어 하는 사람에게 밤은 귀한 휴식의 시간이며 행복의 시간이다.&nbsp;가녀린 불빛 아래 조용히 음악을 듣기도 하고 밀렸던 생각도 정리하기도 한다.&nbsp;</div></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5/ffa51010e37cddc416baa6f2a0e5d1fa12010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밤의 수면 속을 떠다닌다.&nbsp;고요와 침묵 속에서 생각은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늦은 밤 정원을 바라 보노라면&nbsp;달빛이 길게 누운 정원에는 자연 위에 존재하는 모든 신비로 가득 차 있다.&nbsp;뜨거운 태양아래 화려함을 뽐냈던 꽃들도 겸허히 내리는 이슬에 몸을 맡기고, 날벌레 마저 내일을 위한 휴식으로 날개를 접는다.&nbsp;</div><div><br></div><div>아침을 기다리는 적막 속에서 생각은 쉬지 않고 밤하늘 높이 떠다닌다. 그런가 하면 어느새 나팔꽃이 만발했던 내 유년의 한옥 뜰 앞에서 멈추어 갑자기 눈시울을 뜨겁게 하기도 한다. 나는 이 밤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nbsp;그리고 이 모든 아름다운 자연을 지으시고, 내 호흡을 지켜 주시며 선한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nbsp;</div><div><br></div><div>나의 생각이 악한 것에 머물지 않게 하시려고, 밤이면 하루 동안의 나의 미숙함을 그분의 이름으로 반성하게 해 주시는 분. 사랑하는 그 분에게로 향하는 묵상 속에서 밤의 아름다움은 절정을 이룬다. 외로움도 슬픔도 밤의 정적 아래 더욱 깊이 스며들지만 내일을 바라보는 희망으로 이 밤을 소중하게 보내는 행복이 있다.&nbsp;&nbsp;</div></div><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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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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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25 Mar 2026 12:02:2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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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호미질 체질</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3/f7f3811002a9fe84840b287381debd8a103953.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목회의 현장에 있을 때도 설교와 심방만큼은 절대 대충하지 않았다. 준비없는 설교는 하지 않으려 작정했기에 갑자기 설교를 부탁하면 거의&nbsp;거절했다. 심방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그 가정이 처한 상황과 심령상태를 점검하며 설교준비를 하였고, 즉흥 설교는 거의 하지 않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때로는 이웃교회에서 헌신예배 등 설교 초청을 받을 때 젊었을 때는 100% 초청에 응했지만 철들고 나서는 거의 90%는&nbsp;사양했다. 멋진 설교 한편 준비하여 인기끌고 오면 그만이지만 그 교회의 정황과 영적 상태는 담임 교역자만큼 잘 아는 사람이&nbsp;없기에 30분 내외에 은혜끼치기도 어렵거니와 시건방지게 영적 처방을 내린다는게 불가하다는 생각에서 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물론 내 생각이 옳다는 이야기는&nbsp;아니다. 내가 보는 관점이 그렇다는 것이고, 자칫하면 담임 교역자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사양했던 것이다. 대신&nbsp;내가 담임하는 교회에서의 설교도 다른 분들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초청하지 않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흔히 내가 한번 초청하면 상대방도 초청해주는 관례도 마음에&nbsp;안들었고, 몇푼 사례비를 받아오는게 부담스러웠다. 사실은 많던 적던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기에 다른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는 교회에 반납하는게&nbsp;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런 이유에서만이 아니고 다만 30분내에 은혜를 끼칠 자신이 없어서 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난 사람을 사귀는 것에 대하연 너무도 보수적이다. 이해타산을 따져 이익이 될만한 사람을 고르는 건 아니지만 내 가슴이 너무도 작기에, 많은 사람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없기에, 몇사람만 가슴에 담고 살고 싶은게 사실이다.&nbsp;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 모두를 가슴에 간직하기에 내 생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가능하면 좋은 사람에게 올인하고 싶어 아무에게나 내 마음을 전하는 걸 금기시하고 있다.</div><div><br></div><div>조금 오래된 일이지만 부흥사로도 꽤나 명성을 날리던 친구와 심한 말다툼을 벌렸다. 노아의 세 자손인 셈, 함, 야벳과 관련된 창세기 기사에서 함은 노아의 벗은 모습을 들춰냈고 이에 노아는 함의 자손인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려 다른 자손들의 노예가 되었다며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저주를 오늘날까지 받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아마도 많은 목회자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이를 전파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nbsp;</div><div><br></div><div>이 이야기는 성경과 함께 기독교가 전래된 나라들에 각각 퍼졌는데 흔한 레퍼토리가 바로 "저 민족들은 함의 자손이고 우리는 셈(혹은 야벳)의 자손인데 창세기에 따르면 저들은 저주를 받아 노예가 되도록 되어 있다"는 식으로 자신들이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무시하는 인종차별적 사상에 대한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div><div><br></div><div>이는 한국 교회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으며 한국인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인 셈족의 자손이라는 설정과 함께 다른 민족은 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저주받아 못 살고 있다는 인종차별적 사상이 유포되고 있다. <b>과연 한국인이 선민인가? </b>기독교 안에는 변질된 선민이식이 판을 치고 있다.&nbsp;그런데 그런 변질된 선민의식은 갖가지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데 대형교회는 대형교회 선민의식으로,&nbsp;조그만 군소교단은 십사만 사천 같은 남은 무리 선민의식으로 변질되어 있다.</div><div><br></div><div>자기들만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왜곡된 선민사상에 빠져있는 것이다.&nbsp;이러한 사상은 매우 위험하고 버려야 할 유대인적인 자세이다.&nbsp;어떤 교단이나 교회에 소속됨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어떤 신조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오직 성경만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그런 믿음,&nbsp;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이다.&nbsp;</div><div><br></div><div>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얼마나 강한 확신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바르게 믿느냐 이다.&nbsp;잘못 믿고 그르게 믿으면서 확신에 찬 사람들을 만날 때면 대책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nbsp;변질 된 종교만큼 위험한 것은 세상에 없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택하심은 사명을 위한 택하심이지 특권과 차별적 구원의 택하심이 아니다. 셈족이기에 선택받았다고 믿는 건 지독한 오만한 발상이다.&nbsp;</div><div><br></div><div>난 언젠가 책상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는 스마트폰 사용 설명서를 끄집어내어 읽어 보았다. 돋보기가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깨알같은 설명서를 읽다가 짜증이 나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매달 당뇨 혈압약 처방전을 받을 때에도 왕짜증이 난다. 한글이라고는 주치의가 누군지를 알뿐 8개의 알약중 이게 무슨 약인지를 알지 못하고 복용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nbsp;<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3/c60cd2a6cafcf50caf99bac8d2ba2b731057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f483f">&nbsp;인생의 사용설명서</font></b></div><div><br></div><div>인간도 하나님이 만드신 사용 설명서가 있을 것이다. 가족 관계든, 연인 관계든, 친구관계든, 어떤 관계든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아서 아닐까? 특히 개인이 살아오면서 각자 다른 배경과 환경에서 형성된 고유의 사용설명서를 무시하고 내 생각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nbsp;갈등이 생긴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div><div><br></div><div>난 36년동안 목회를 하면서 ‘쓸 만한 사람’이라는 소릴 들어야겠다는 생각의 중압감때문에 내 자신을 스스로&nbsp;고달프게 만들었었다.&nbsp;그러다보니 본래 내가 가진 사용설명서보다 상대가 원하는, 필요로 하는 사용 설명서에 나를 맞추기에 급급했었다.&nbsp;</div><div><br></div><div>흔히 목회자들은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나는 자서전 같은 것은 꿈꾸어 본 적이 없지만 자화상은 언제가는 한번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 미술대회에 나가 겨우 입상해 본 정도지만 언제가는 내 모습을 그려 볼 생각이다. 예술하는 사람들이나 문인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가 무엇인가?&nbsp;사갈이나 고흐같은&nbsp;당대 최고의 화가들은 물론 왠만한 그림쟁이들은 모두 자화상을&nbsp;몇점씩은 그렸다.&nbsp;</div><div><br></div><div>화가 마다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가 따로 있기 마련이지만 반 고흐와 프리다 칼로는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의 순간순간, 자신의 한계를 기록하듯 자화상을 그렸고, 현재까지 지상에 40여 점의 자화상이 소개된 렘브란트의 경우, 풋풋한 가운데 예리한 20대 청년의 얼굴에서 말년, 빚쟁이들에 시달리다 못해 빚 갚음으로 그려줘야 했던 60대 노년의 얼굴까지, 그의 자화상은 그의 삶과 시대를 완성하는 하나의 연대기 노릇을 하고 있다.</div><div><br></div><div>문학이나 음악, 미술 같은 예술작품들은 시대를 반영한다. 거기에는 창작인의 경험과 지식이 들어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술작품은 자전적 요소가 있다. 모든 동식물들은 흔적을 남기려는 본능이 있다. 자화상이나 자서전을 남기는 것도 그 중 한 유형이다.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돈이 들지 않고 항상 준비되어 있는 모델에, 표현에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nbsp;</div><div><br></div><div>생전을 궁핍하게 살았던 반 고흐는 40여점에 가까운 자화상을 남겼으며 중산층으로 일찍이 명망을 얻은 렘브란트는 말년까지 100여점의 다양한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고가의 가치를 지닌 유명 화가들의 자화상속에는 단순히 한 사람의 얼굴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묘한 느낌의 맛이 들어 있다. 아직까지도 내 자화상을 그려보지 못했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진실한 모습을 보려 노력중이다.&nbsp;</div><div><br></div><div>세상이 너무 복잡하게 돌아간다. 그냥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왜 이리 요구하는게 많은가? 그러고 보니 KTX를 타고 서울을 오가다 보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이가 몇시간 동안 스마트폰으로 영화감상, 인터넷, 게임 등으로 기계를 조작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난 부럽기는 커녕 차창을 내다보며 스치는 풍광을 보며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훨씬 더 좋았다. 이런 성격이기에 시골생활에 만족하며 사는지 모르겠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늘도 현장일을 하면서 요즘 내 몸이 정상이 아니지만 매발톱이란 야생화와 생소한 꽃나무를 얻으려고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어제도 하루종일 텃밭에서 풀을 뽑으며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 고생하고 있지만 꽃을 얻는다는 건 절대 사양할 수 없는 유혹이 되곤한다. 양파 마늘밭이 깔끔해진 걸 바라보며 대견하단 생각을 해보았다. 일할 때는 입에서 거픔이 나올 지경이지만 땀흘린 후 상쾌한 기분은 일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nbsp;</span></div><div><br></div><div>그것도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호미 한자루로 단단한 땅을 개간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내 농기구는 오직 호미뿐이다. 물론 괭이나 쇠스랑 삽 등이 있지만 호미질이 체질에 맞는 것 같아서 이 방식을 택한다. 일의 능율률에선 제로에 가깝지만 그래도 사색이 있고, 느릿한 것 같지만 내 지난 세월을 반추할 수 있기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nbsp;</div><div><br></div><div>보다 못한 동네 주민이 무료로 트렉터를 이용해 로타리를 만들어 주겠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이 방법이 좋다. 호미로 파고 손으로 흙덩이를 부스러트리며 마음의 앙금을 땅에 묻고 있다. 내가 살고있는 이 마을엔 아이들이 한명도 없다. 모두가 약간 귀가먹은 노인네들뿐이라 동네 개들이 그렇게&nbsp;짖어대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천둥이 쳐도 놀라는 사람도 없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3/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11090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밤눈이 어두워 아예 해가 지면 밖에 나오는 사람도 없다.&nbsp;한마디로 공동묘지나 별로 다를바가 없는 곳이다. 큰소리로 노랠불러도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애들이 &lt;스카이콩콩&gt;을 타고 놀아도&nbsp;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부잡스런 나이들을 키우기엔 정말 좋은 곳이기도 하다.&nbsp;</div><div><br></div><div>자주는 아니겠지만 지인들과 여러번 파티가 있었다. 도시에서는 손님을 초대하기에 번잡스럽다는 것외에 이웃과의 관계가 문제가 될테지만 이곳은 전혀 그런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nbsp;</div><div><br></div><div>소나무 동산에 가려 동네에서&nbsp;잘 안보이는 탓도 있지만 넓은 초원에서 남의 간섭이나 규제를 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다는 점이 시골의 장점이다. 도시같으면 윗층에서 화장실&nbsp;물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심한 곳은 방귀뀌는 소리도 들린다는 데, 이곳은 방귀를 뀌던 별짓을 다해도 전혀 간섭을 받지&nbsp;않는다.&nbsp;아침이면 까치가 날아들고, 낮에는 꿩들이 찾아와 오수를 즐기는 곳이다.&nbsp;</div><div><br></div><div>발코니엔 이웃집 도둑 고양이가 털을 고르며 게으름을 피며 하품하는 광경이 정겹고, 봄이면 청개구리가 문틈으로&nbsp;들어와 방안까지 활개치는 것도 시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정경이다. 가을엔 잔디밭에 메뚜기가 한가득이 될 것이다. 주차장 있는 집이 없어도 주차시비가&nbsp;일어나지 않는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 공사 준비를 해주고 커피 타임을 가질 무렵, 동쪽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게 일품이다. 동해안으로 해맞이 가지 않아도 우리집에서, 공사현장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천혜의 곳이다.&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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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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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23 Mar 2026 11:12:2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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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치매 예방 방법</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1/9780fa28a0d4db21249a653e4f78397723382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우리에게는 많은 교훈적으로 행하고 나서야 할 일들이 많지만 답습하는 과정은 때로는 사치인 듯 당장 시간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만 산재하여 가는 삶을 살아간다.&nbsp;</div><div><br></div><div>현대인들은 여유(餘裕)를 잃었다. 노정객 손학규가 '저녁이 있는 삶'을 말했을 때 내용은 차치(且置)&nbsp;하고서라도 일단 마음에 확 와닿는 명제임에 틀림없어 감명을 받았다.&nbsp;</div><div><br></div><div>돈을 벌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야&nbsp;하는걸 당연시 해 온 세월이 얼마 동안이었던가.&nbsp;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은 여유의 시간을 찾지 못한다.&nbsp;과거의 일을 회상하거나 생각 속에 즐겨갈 일들이 점점 현실에서 벗어나 버린다. 양보와 배려는 커녕 여유(餘裕)를 가진 사람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조선조 세종 때 유관이라는 정승이 있었다. 그는 정승이라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울타리도 없는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다.&nbsp;그러나 청렴결백하고 낙천적이었던 유관은 언제나 평안한 표정을 지으며 누구보다 기쁘게 살았는 데, 비가 오던 어느 날, 방안까지 빗물이 새어 들어오자 유관은 삿갓을 쓰고 앉아 비를 피한다. 그러면서 걱정하고 있는 부인에게 여유 있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삿갓이 없는 사람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nbsp;진정한 삶의 멋은 여유로움에 있다. 여유로움은 물질의 풍요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여유는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自足)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멋스롭고 여유로운 삶일 것이다.&nbsp;나는 과연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득병하였으나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겨우 빠져 나왔기에 약간은 여유(餘裕)롭게 살고 싶지만 아직 여유만만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적어도&nbsp;나에게는 삿갓 하나보다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삿갓없는 사람을 걱정해주는 여유가 없다.&nbsp;&nbsp;여유는 품격의 조건이며. 인내는 품격의 형성 과정이며, 인성은 품격의 결과다. 인생은 여유로 풀어가는 품격의 게임이다.&nbsp;여유와 품격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욕망의 광장은 거칠고 흉하고 사납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여유와 품격이 없으면 실수가 잦고 견고하지 못하며 남에게 피해를 준다.&nbsp;여유와 품격은 내실과 평온을 만드는 생필품이기 때문이다. 다투지 않고 갈등을 조율하는 것은 생활의 품격이고, 버리면서 새로워지는 것은 정신의 품격이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게 최고의 품격이며 속이고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품격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삶은 서두르고 욕심을 낼수록 손해를 보는 사업이다. 한 박자 쉬어서 실수를 줄이고, 불필요한 걱정과 근심을 버려서 견고한 내공을 쌓으며, 때로는 곡선으로 돌아가는 여유로 삶의 진미를 찾는게 현명한 길이다. 그래서 늙그막의 삶은 너무 촐랑대며 살진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난 선천적으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그러나&nbsp;처음이 힘들지 마음을 트기 시작한 이후로는 걷잡을수 없을만큼 깊은 정을 나눠주는 스타일이다. 혈액형은 O형이지만 A형 기질을 완벽하게 타고난 결과, 든든하고 뿌리깊은 인맥을 자랑한다.낯을 가리는 처음의 벽만 잘 극복하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와도 베스트 프랜드가 되는 허물없는 성격이야말로 더 쫀득한 인간 관계를 만들어가는, 더 관심받고 싶어하는, 더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성격이다. 처음엔 활달한 성격을 부러워 했으나 지금은 이대로가 좋다. 소심하기에 나를 컨트롤할 수가 있었다.&nbsp;&nbsp;</div><div><br></div><div><div>나는 요즘도 틈틈히 꽃을 가꾸며 흙을 매만지며 살고 있다. 정원안에 각종 꽃들을 심었고, 꽃나무를 중심으로 더 많이 심으려 수소문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허튼 생각이 생기고 몸과 정신을 정지시켜 놓으면 그것은 편한게 아니라&nbsp;치매(癡呆)가 올지도 모르기에 혹사시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규칙적으로 일을 만들어 행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치매는 노년층에서 일어나는 뇌조직의 위축과 신경조직의 광범위한 소실로 지적 능력의 상실과 성격변화가 오는 질환을 노인성 치매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위험한지 모르겠다. 이러한 질환이 생긴 사람은 대부분 피하지방의 감소, 근육쇠약, 피부탄력성 상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희어지는 등 노화증상이 나타난다.&nbsp;</div><div><br></div><div>또한 걸음걸이가 불안하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자기중심적으로 되고,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기도 하며, 노인성 치매의 주요 원인으로 기억상실, 언어장애, 정신기능 진행성 상실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전적 위험인자가 알려졌으나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치료에 있어서도 증상을 늦출 수는 있으나 완전한 치료법은 없는 상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1/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2339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치매는 남의 이야기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평생 머리 쓰는 일을 게을리 했기에 두뇌가 싱싱하다(?)고 억지를 쓰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에 몇시간씩 글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드리는 기도중 유일한 제목은 행여 치매가 와서 주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일이 없길 기도한다.&nbsp;</div><div><br></div><div>평생 목회만 해 온 목회자 중 치매로 인하여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행동거지를 보이는 경우를 보았다. 심한 경우엔 예수 믿어야 아무 소용이 없다며 천국이 어디 있느냐고 불신앙적인 언사를 내 뱉는데, 치매가 오기 전 깔끔하게 세상을 떠나는게 소원이다, 내가 그간 외친 수많은 설교를 부인하는 참사(?)가 벌어지지 않길 소원한다.&nbsp;</div><div><br></div><div>학창시절 설교와&nbsp;관련하여&nbsp;함석헌 선생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 분에게서 배운&nbsp;것이&nbsp;있다면,&nbsp;'누에의&nbsp;철학'이다.&nbsp;누에는&nbsp;뽕잎을&nbsp;먹지만,&nbsp;결국&nbsp;자기&nbsp;꽁무니에서&nbsp;비단실을&nbsp;뽑아낸다.&nbsp;아무리 성경&nbsp;말씀을 많이 읽어도&nbsp;결국&nbsp;그&nbsp;말이&nbsp;제소리로&nbsp;나와야&nbsp;함을&nbsp;뜻한다.&nbsp;&nbsp;</div><div><br></div><div>구약이나&nbsp;신약이나&nbsp;성경&nbsp;말씀을&nbsp;아무리&nbsp;많이&nbsp;외우고&nbsp;주워 섬겨도&nbsp;그것은&nbsp;여전히&nbsp;남의&nbsp;말일&nbsp;뿐이다. 그것을&nbsp;어떻게&nbsp;제소리로&nbsp;표현할&nbsp;것인가가&nbsp;문제다.&nbsp;그&nbsp;제소리가&nbsp;바로&nbsp;설교여야&nbsp;한다고 주장했다.&nbsp;근래 성직자의 일탈을 보면서 영적치매증상이 심각하단 생각이 든다.&nbsp;뽕잎을 먹지 않아서인지 비단실을 만들어 내는 성직자를 보기 힘들다. 교단 정치를 한답시고 시정잡배들이 하는 짓거릴 일삼는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만들어 내는데 성직자에게서 성스러움이 사라진지 오래이다.&nbsp;</div><div><br></div><div>오늘은 소장의 개인적인 사유로 하루동안 휴식하기로 했지만 나에겐 따로 쉬는 날이 없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잔디가 나기도 전에 민들레 등 잡초가 먼저 돋아나 지금 손보지 않으면 나중엔 풀밭이 될 거 같아 풀을 뽑으며 시간을 보내려 작정했다. 뿐만 아니라 작년 가을에 심은 양파밭과 마늘밭 그리고 쪽파와 부추 등이 풀밭에 갇혀 볼썽사나운데 잘되었다 싶어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오늘이 아니면 60일동안은 정원을 가꿀 수 없는 일에 내몰릴 것이기에 지체할 수 없는 일이라 믿어 힘든 일이지만 강행하려 한다.</div><div><br></div><div>어쩌면 이 집도 조만간 내어주고 이사할지 모르겠지만 갈 땐 가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걸 보고 그냥 넘길 순 없는 일이라 약간의 수고를 할 생각이다. 텃밭 안엔 작년에 심었던 식물이 한가득이지만 그것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추김치를 좋아하긴 하지만 나에겐 화중지병이다. 작년에 수확한 맷돌 호박도 십여개가 썩어 버렸고 시간이 없이 고구마도 캐질 못했다. 그럼에도 또 다시 무얼 심을까를 고민중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1/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23412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이번주까지만 신축현장에 머물고 다음주 부턴 충남 공주에 농가주택을 지으려 협력업체와 인부들, 그리고 자재상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자재와 장비의 입고 날짜를 조정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현지에도 중장비나 자재가 있을테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일한다는게 부담스럽고 하다못해 가벼운 물품이라도 현지에서 구입하러 다니는게 힘들기에 아예 필요한 물품을 빠트리지 않고 현장으로 가져갈 생각에 연장은 물론 사소한 물품까지 챙기고 있다.</div><div><br></div><div>전기업자와 인테리어 목수, 도배업자에게 나에게 있는 절친중 몇안되는 인연이기에 귀촌을 한다는데 전혀 이익을 따지지 말고 공사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고 공주시 이인면 일대에선 가장 인상적인 집으로 소문나도록 열흘안에 집을 완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소장을 비록 외국인들도 인건비를 안받겠다는데 인건비를 착취할 강심장은 아니고 4월 초순까지 완성하고 전북 김제에 지어줘야 하는 집부터 충분히 댓가를 지불해 주기로 했다.</div><div><br></div><div>4월 말쯤 일년에 한번씩 원로목사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고, 5월말엔 가족들과의 동유럽 여행 약속이 있기에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다. 늙어서도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그러니 오늘은 주일이지만 텃밭의 잡초를 오늘중 해결하지 않으면 않된다. 지금 때를 놓치면 올해 농사는 물론 일년내내 잡초속에 살아야하기에 마음이 급하기만 하다.&nbsp; &nbsp;</div><div><br></div><div>&nbsp;</div><div><br></div></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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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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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21 Mar 2026 23:42:5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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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春分에 부는 바람</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0/8e9196482770065b0b734717ba9060a60934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봄이 다가왔지만 몸이 불편한 것인지 한기가 들고 비내린 후라 그런지 한 겨울속에 있는 것처럼&nbsp;춥게만 느껴진다. 출근길에 안개가 끼어 애를 먹었지만&nbsp;</font></span><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하지만 오늘이 절기상 춘분이 아닌가.&nbsp;</span><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태양의 중심이 춘분점(春分點) 위에 왔을 때이며,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경이다.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span><div><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r></font></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춘분을 전후하여 철 이른 화초는 파종을 한다. 그리고 아울러 화단의 흙을 일구어 며칠 남지 않은 식목일을 위하여 씨뿌릴 준비를 한다. 춘분을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준비에 바쁜 절기이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font></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r></font></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하지만 음력 2월중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꽃샘’이라고 하는데,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는다.</font></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r></font></span></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font color="#0021b0">봄은 겨울에 응축되어 있던 한기가 풀리고 인체의 기운이 위로 흐르는 성장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감기, 비염 등의 환절기 질환들이 많아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춘분 즈음에는 꽃샘추위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예로부터 춘분 무렵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 일 년 중 농부들이 일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로 과거 조상들은 ‘춘분 하루를 밭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고 여기며 춘분날을 농경일로 삼아 씨앗을 뿌렸다.&nbsp; &nbsp;</font></span></p><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춘분은 밤낮의 길이가 같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이 조금 더 길게 느껴진다.&nbsp;춘분 기간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1년 농사일을 시작하는 시기이지만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는 속담도 여기서 유래했다.&nbsp;음력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바람의 신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nbsp;&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div><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33, 176);">3월 25일안엔 무슨일이 있어도 공사를 마쳐야 하기에&nbsp;</span><span style="color: rgb(0, 33, 176);">날씨와 상관없이 예정된 공정을 진행해야 한다. 다음주면 충청도 공주에서 이후엔 김제에 조그만 농가주택을 지어줘야 하기에 인부들을 약간 혹사시켰다. 다른 인부들은 건축주가 왜 이러나 의아해 하겠지만 소장은 내 스케줄을 알기에 군소리없이 인부들을 독려시킨다.&nbsp;</span></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33, 176);">군산시청과 노동고용센타에 들려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을 들어 착공계를 내고 농업기술센터에 들려 농지전용 허가를 득하는 등 현장과 군산을 오가며 눈코뜰새 없이 싸돌아 다녔다. 소장을 시켜 인부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라 일렀지만 매지공 미장공을 위시하여 우리 인부들까지 열명이 넘기에 안전에 마음조아리며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를 확인해야 했다.&nbsp;</span></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33, 176);">식사를 거르며 동분서주하다 보니 이게 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젊어서 한량으로 지낸 탓이라고 자책하며 무진장 빠쁜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다. 나는 내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 섰을 때는 결코 아니다. 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어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 앞에 섰을 때이다.</span></p><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양심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물질로 인해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에게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아무것도 갖지 않고 있을 때 비로소 나를 찾고 온 세상이 편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易理)라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떠오른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span style="font-size: 16px;"><br></span></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span style="font-size: 16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0/bba773250763760987230034238d7a0410080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아직은 계절적으로 이른 탓인지 양파 모종 정도가 있지만 지난 가을 심었던 까닭에 시금치와 적상추 씨앗 정도를 구입하여 돌아왔다. 춘분이 지났으니 너무 늦지 않게 기회를 보아 파종해야 한다.&nbsp;</span></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먹지도 않을 식물을 힘들여 심는 이유는 새생명의 성장과정을 즐기기 위함이다. 아무 것도 안하는 건 내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거라는 억지(?) 이론을 만들어 적용시키고 있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가능하면 모임을 회피하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외출을 삼가는 편이다. 엊그제 은퇴목사들 정기 모임이 있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대화의 내용을 듣다보면 내가 이 자리에 와 있는게 후회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이다.&nbsp;</font><span style="color: rgb(0, 33, 176);">내가 전에 보았던 그 분들이 아니다. 내가 전도사 시절 보았던 그 패기와 정열은 찾아 볼 수 없고 이젠 70대 후반에서 팔십대 까지 꼬부랑 할아버지들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color: rgb(0, 33, 176);">나이도 나이려니와 대화 내용을 보면 완전 극우 태국기 부대들로 변해있었다. 유튜브를 통해 학습된 철저히 왜곡된 정보를 신봉하는 걸 보니 왠지 씁쓰레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nbsp;</span><span style="color: rgb(0, 33, 176);">나는 목회도 시원치 않았지만 정치도 잘 모르기에 한마디 말도 섞질 않았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건축에 관련한 것들뿐이다.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났는지 재산이 많을 거라는 말이 오갔지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이상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의 무일푼이면서도 삶의 즐거움을 가진 사람도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비가 내린 탓인지 공기가 크린하고 가까히 다가 서서 보면 거의 잡초이지만 산천이 푸르러지고 있다. 아침 점심을 굻었지만 배가 고프단 생각이 들지 않아 현장으로 돌아와 정원을 꾸밀 구상에 빠져 들었다. 이미 공사는 소장의 감독아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기에 혼자있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우수(憂愁)에 젖어드는 것도 괜찮다. 한번쯤 무상을 느껴보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 속에 흠뻑 젖어들어도 좋을 것이다.&nbsp;</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r></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가을에 꽃이 지는 줄 뻔히 알면서도 지는 꽃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 그런 게 인생 아니던가.&nbsp;</font><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size: 16px;">비록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이미 봄을 깊이 느끼고 있다. 이제 춘분이 지나면 곧바로 여름이 될 것이다.&nbsp;</span><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size: 16px;">아직은 나무들이 푸른 빛을 낼 기미를&nbsp;보이질 않지만 말이다. 겨우 움이 돋았다가 요즘&nbsp;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 꽃망울들이 숨어 버리곤 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size: 16px;"><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size: 16px;">하지만 봄은 봄이다.&nbsp;이제부터 촌노들의 움직임이 바뻐질 것이다. 아무튼 춘분은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지는 시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는 침울한 어두움의 일들이 점점 짧아지고 희망의 시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은 세계인 누구나에게 있는 소망이 아닐까? 고통의 길이보다 희망의 길이가 점점 커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춘분을 맞이한다.&nbsp;</span></div><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r></font></span></p><p class="desc_section"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font color="#0021b0">밤의 적막이 나를 다시 시상의 세계로 불러낸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밤이 왔다. 하루동안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처소로 돌아가 달콤한 꿈을 꾸고, 이름 모를 산새들도 살며시 눈을 감는 시간. 고요와 적막 속에 풀벌레 가끔씩 밤바람 뒤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만이 정겨움으로 다가온다.&nbsp; &nbsp;</font></span></p><div><font color="#0021b0">&nbsp;&nbsp;&nbsp;<br><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3/20/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0211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처럼,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 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번잡함을 못 견디어 하는 사람에게 밤은 귀한 휴식의 시간이며 행복의 시간이다.&nbsp;가녀린 불빛 아래 조용히 음악을 듣기도 하고 밀렸던 생각도 정리하기도 한다.&nbsp;</font></div><div><font color="#0021b0"><br></font></div><div><font color="#0021b0">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에서 지느러미를 활짝 핀 물고기가 되어 마음껏 밤의 수면 속을 떠다닌다.</font></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고요와 침묵 속에서 생각은 한없이 자유로워지고 늦은 밤 마당을 바라 보노라면&nbsp;달빛이 길게 누운 정원에는 자연 위에 존재하는 모든 신비로 가득 차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아침을 기다리는 적막 속에서 생각은 쉬지 않고 밤하늘 높이 떠다닌다. 나는 이 밤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nbsp;</span><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외로움도 슬픔도 밤의 정적 아래 더욱 깊이 스며들지만 내일을 바라보는 희망으로 이 밤을 소중하게 보내는 행복이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일주일에 한두번씩은 문자메세가 온다. 75세 남자 호리호리한 몸매에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0일 0시간에 집을 나간 후 연락두절되었다며 연락주시면 사례하겠다는 가족들의 애타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찾는다는 호소인데 나는 새벽에 내 발로 출근했다가 내 발로 집을 찾아 들어오니 이만하면 행복한 사람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조금 일찍 귀가하여 텃밭의 풀을 뽑았다. 양파 마늘 쪽파 부추 등을 심었는데 풀이 텃밭을 점령하여 이대로 방치하면 수확은 커녕 동네 망신일까봐 일주일에 걸쳐 풀을 뽑기로 작정했다. 하루에 퇴근 후 2시간 정도만 노력하면 망신을 당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당분간은 소장을 비롯 지인들과의 만남을 가지지 않으려 마음먹었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하루종일 굶었지만 컵라면이 준비되어 있기에 염려없고 스마트팜으로 딸기 농사를 짓는 친구가 몇상자를 가져다 주어 간식거리도 넉넉하다. 늘 베풀며 사는 것 같아도 얻어 먹는 것도 꽤나 많다. 2주전 사모님이 건내주신 바나나도 겉은 검정색으로 변해 버렸지만 속은 아직 먹을만 하고 당진 친구가 만들어 준 홍어회도 아직 건재하다.&nbsp;</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r></span></div><div><span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자주가는 식당에서 만들어 준 갓김치와 파김치도 여전하고 베트남에서 사온 주전부리도 많지만 문제는 변덕이 심한 내 입맛이 문제이다. 도대체 안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으니 어쩜 좋은가? 위와 대장 내시경 결과도 양호한 편이고 간, 심장 폐 등도 이상이 없는데 안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은게 나에겐 가장 큰 病이다,&nbsp; &nbsp;&nbsp;</span></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192</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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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0 Mar 2026 10:46:2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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