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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안부두</title>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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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인간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2/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114518.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nbsp; 사람은 절대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돛단배의 돛을 조정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원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현명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지금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아량이 없고, 소화해 낼 여유가 없기에 가능하면 마음 다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영양가 없는 대화보다는 혼자 노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더 깊은 산속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상 누구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체질이 못되기에 사람을 피하여 은둔의 장소를 찾으려 했는데 어딜 가나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고 불편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젊어서는 헤프게 인연을 맺고 친분을 넓혀 갔지만 이젠 조금 진지하게 살고 싶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옛말에 "가마가 많으면 모든 것이 헤프다"는 말이 있다. 일이나 살림을 여기저기 벌여 놓으면 결국 낭비가 많아짐을 이르는 말인데, 그럴 능력도 없지만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꼭 필요한 만남외엔 가능하면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혼사족'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혼밥족은 알겠지만 혼사족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았더니 혼자 죽는 고독사를 일컫는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은 어차피 혼자 죽는다. 문제는 그 임종을 누구도 지켜주지 않고 죽음을 알지도 못하는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데, 주의 사자의 손에 이끌려 천당가는 사람이 혼사족인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만은 고독때문에 아무나 하고 교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만약 둘만 내 곁에 있었더라면 오히려 일을 기피하려 했을지도 모른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혼자이기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노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아름답게 디자인해야겠다는 열정이 내 안에 존재했기에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span>십년이 넘는 동안 거친 공사판에서 살다 보니 내 성격도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오가는 말투가 너무 쌍스럽고 거칠다 보니 내 생리에 맞지 않았지만 적응하는 수 밖에 없었다.&nbsp;<div><br></div><div>별 거 아닌 일에도 흥분하기 일수이고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가 난무하는 곳이고 특히나 외국인들에겐 거의 쌍욕을 해대는 걸 들을 때가 가장 안스럽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일 때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이 바닥에선 <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모기도 새'</font></b>란 말이 통용되는 곳이다. 무조건 목소리 큰 놈이 정의라고 인정되는 곳이다. 나도 예전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많이 했지만 최근엔 가능하면 줄이려 노력중이다.&nbsp;</div><div><br></div><div>주변에 말도 안되는 생각과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라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왠만하면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말이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생기는데 특히나 공사장은 이런 부침이 심한 곳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2/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1153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새로운 신(神)을 섬기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가 기소돼 사형 선고받은 게 BC 399년쯤이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에서 패한 뒤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침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희생양이 필요했고, 소크라테스는 좋은 제물이었다.&nbsp;</div><div><br></div><div>`너 자신을 알라’며 평소 권력자·작가·시인 등 아테네의 실력자나 지식인들을 깨부수고 다녔던 소크라테스에게 박힌 미운털의 역습이었다. 하지만 따져보면 소크라테스는 대책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가장이었지만 평생 돈을 벌어본 적 없이, 허구한 날 시장에서 젊은이들과 공론했다. 가장이 내팽개친 가정사를 책임진 건 아내 크산티페였다.&nbsp;</div><div><br></div><div>`악처’의 대명사로 남은 그 이름이다. `세기의 재판이야기’ 저자는 크산티페의 명예 회복을 주장한다. “지아비 섬기고 대문 밖은 얼씬도 하지 않은 정숙한 부인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살기 위해 몸부림 친 이 여인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는 것이다.&nbsp;&nbsp;&nbsp;</div><div><br></div><div>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죽었다.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진 게 있네. 기억해뒀다가 꼭 갚아주게.’ 마지막 유언이 이랬다. `철학자의 가장 완벽한 죽음’(`세기의 재판이야기’)이라는 평가 이면 `무책임한 가장의 허세’로도 이해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선택했고, 독이 든 잔을 건네 받았다.&nbsp;&nbsp;</div><div><br></div><div>그는 슬픔에 빠진 동료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의 영혼의 불멸에 대하여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죽음은 곧 육체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것이라고 보았고, 진정한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크리톤 등은 소크라테스에게 도주를 권유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부했다. “철학하는 자유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내 이성의 명령이네.”&nbsp;&nbsp;</div><div><br></div><div>BC 399년 5월에 소크라테스는 한 달 동안 제자들과 담소하다가 독차를 마시고 죽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에게 평온한 죽음을 보장해주는 독약을 내려준 것에 감사하였고, 곧 독약을 마시고는 숨을 거두었다.&nbsp;</div><div><br></div><div>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병패는 철학이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나 언론에서 철학을 발견한다는 건 해변에서 바늘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울 정도이다. 요즘 언론의 양태에 대하여 실망감을 넘어 허탈감에 빠져 거의 뉴스나 만평을 시청하지 않는다. 전엔 연속극을 기피했지만 요즘은 뉴스까지도 귀를 막아 버렸다. 기대와 달리 대개의 보도는 주변적인 호기심, 또는 알아도 몰라도 그저 그런 주변적 담론만 되풀이하고 있다.</div><div><br></div><div>생각이 다른 사람을 붙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곤혹(困惑)스러운게 없다. 요즘 내 주변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nbsp;&nbsp;담론(談論)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주제가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더더욱 아니며 영양가없는 말을 주고 받는게 전부인데 왜 내가 이런 저런 말을 다 들어주며 시달려야 하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노인이 되어갈 때 아름다워야 한다. 뒤에 나선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빠르면 어서 좁은 길을 비켜서서 앞서가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연륜이 묻어난 당부를 하는 것이 도리이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도 있다. 결코 좋은 뜻은 아님에는 분명하다. 순수해진다는 좋은 의미로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순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2/6d63541cb88b66fac6ce4ea0412aff2f1155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한 때 생각이 많아 몹시 곤고하게 산 적이 있었다. 길거리에 앉아 왜 나만 거머리같은 상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청승을 떠는지 내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분노도 용서도 사그러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갑짜기 피곤이 몰려 오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힘든 나날이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고지가 바로 눈앞이기에 견디는 방법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귀촌의 삶의 질이란 여가 만족도와 직결한다.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귀촌하였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혼자 놀 줄 모르면 귀촌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 뭐가 유익하고 이득인가를 버린지 오래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아니다. 하다못해 하루종일 남의 일에 동원되었어도 손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운동을 하여 근육량이 늘어 났을 것이고 혈당을 떨어트린 날이었다고 자평하며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노동에 매달린다는 말은 아니다. 그 짧은 시간에 내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난 농사 일은 커녕 평생 낫 한번 잡아 본 일이 없다. 인터넷으로 공부하면서 조경을 하고 식물을 심는다. 아마도 얼마 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자리잡아 갈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없는 일에 녹초가 될 지경이지만 나를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왕초보에게 배울게 뭐가 있다고 이곳을 찾아 준 분들에게 한편으론 미안하고 고마웠다. 은퇴를 앞둔&nbsp; 목사님 한 분이 이 정도를 가꾸는 데 얼마가 소요되었느냐고 묻는다. 막연한 질문이다. 워낙 땅을 구입하는 문제가 힘들고, 택지로 전환하여 집을 지었을 때의 경관을 고려해야하고 지형에 맟추어 정원을 꾸미고 장식하는 문제를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하였기에 딱히 얼마가 소요되었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직접 만들어 보라고 조언해 드렸다. 남의 손으로 모든걸 갖추려면 족히 몇억원은 들어 갈테니 경험삼아 직접 시도해 보라니 목회 외적인 일은 잼병이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제길헐! 나도 잼병이긴 마찮가지였는 데, 노력하고 연구하고 배우고 힘쓰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건만 미리 못한다고 발을 뺀다. 그렇다면 거져줘도 관리도 어렵다. '죽을뻔' 몇번해야 작품이 나오는 법이지 가만히 있으면 죽도 밥도 않된다. 난 은퇴를 앞둔 그 분에게 '죽을뻔' 몇번 넘기고 깨달은바가 있어 도를 닦는 중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죽을뻔' 몇번 넘기지 않는 인생은, 목회는, 공허한 결과를 만들어 낼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원광대학교 병원을 다녀 왔다. 이젠 6개월에 한번씩 가는데 CT 촬영과 피검사 그리고 방광대시경 검사가 에정되어 있어 인부들에게 일을 지시해 놓고 병원엘 갔는데 그 큰 병원이 북새통이다. 대게는 70대 이상이고 8~90대 노인들도 눈에 띈다. 틀림없이 노인이 되면 한두가지 병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 얼마나 더 살자고 이처럼 병원 문턱을 드나드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조금있다가 백내장 수술을 해야하고 인플런트도 몇개쯤 더 해야 한다. 옛날같았으면 벌써 죽었었을텐데 의학의 힘으로 수명을 이어가곤 있지만 병원가는게 정말 싫다 어릴적엔 학교가는게 싫었고 젊어서는 군대가기가 싫었으며 나일먹으면서는 병원가는게 싫다. 은퇴 후엔 교회가는 것도 의무적일 때가 대부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태극기 부대가 광화문을 점령하면서 이삼년 사이에 기독교인 백만명이 줄었다고 한다. 익산만 해도 교회가 엄청나게 줄었다. 이층 개척교회들이 거의 문을 닫았고 목회자들도 알바에 나갈 정도로 심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골교회는 할머니 몇명이 교회를 이루고 있을 정도이다. 아! 어쩌다 그리 되었을까? 인간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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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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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2 Jun 2026 12:22:3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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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허리 사이즈를 30인치로 늘리기 운동</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1/f745df3b8c794f267bc5c83f402aa67f141722.jpg" width="200" align="left" class="photo" alt="">우리에게는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일이 필요하다. 힘센 사람, 박학자, 재주꾼, 활동가들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바탕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생각하지 말고 반응하라’는 모바일 시대의 생활양식이 문제이다. 모바일 기기는, 인간을 정보를 작동시키는 프로세서로 만든다. 검색하고, ‘좋아요’를 클릭하고, 톡을 보내고,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 때마다, 우리는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기계의 일부가 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젊은이들의 놀이터 쯤으로 치부하던 SNS의 세상에는 언제부턴가 중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스팩트럼이 확대되었고 그들도 알게 모르게 온라인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 내 주변을 보면 나이 불문하고 작은 틈만 있으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공사현장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잠시 쉬는 시간이면 모두가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대세가 그러니 크게 한탄할 순 없지만 외연상으로 긍정적인 문화확산이 점점 온라인 세계 속에서 오히려 자기의 주장이 강해지고, 생각과 사상이 집단의 광기 속에 갇혀 개성이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같은 사이버세계의 엄청난 영토확장은 긍정적인 부분 못지 않게 부정적 요소도 많이 가져 왔는데 그 폐해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마 악플이 아닌가 생각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최진실씨의 자살을 필두로 수를 헤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연예인들이 악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자살의 길을 택했으며 자신과 뜻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의정활동을 못할 정도의 문자폭탄을 보내고, 종내는 의견충돌로 오프라인에서 살인이 발생하는 등 이미 금도를 넘어선 행태를 보이고 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세상이 辱이 아니면 대화가 안될 정도로 거칠어지고 있다. 하지만 辱에 대한 긍정적인 면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국 스탠퍼드대, 홍콩대 등의 공동 연구진은 일반인 276명 대상으로 게임에서 속임수를 쓴 적이 있는지, 남을 속여 이용한 적이 있는지 등을 설문해 참여자들의 정직도를 파악했다. 입이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거짓말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nbsp;&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연구에 참여한 데이비드 스틸웰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사회 규범에 덜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거친 표현이 걸러지지 않은 진솔한 감정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통적으로 온화한 말을 사회적 덕목으로 여겨왔지만 욕설을 자제하는 사람이 종종 더 기만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그럼에도 불구하고 辱은 습관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Voltaire)는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는 말을 남겼다. 상대방과 온전한 대화가 가능한 자신의 철학, 이성, 지식, 경험, 생각 등이 소진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말이 아닌 욕설을 쏟아낸다는 의미일 것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 style="font-weight: bold;">나도 전혀 안해본바는 아니겠지만 가능하면 辱을 하지 않으려 노력중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욕'을 모르고 자랐다. 선친의 영향이 컸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큰 소리나는 걸 들은 적이 없었으며 더군다나 욕하는 사람이 우리 형제들 중엔 없었다. 기껏해야 '요녀석' 정도가 심한 욕설이었고, 아무리 화가 나도 '욕하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배웠기에 아예 욕이란 남의 나라 이야기쯤으로 여겨질 정도였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학교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흉악하고 징그러운 욕을 일상용어로 알면서 듣고 자랐다. 내 주변 어른들은 “미친놈”이나 “지랄한다” 정도는 너무 고운 말이었다. 내가 자랄 때는 그 정도는 '욕'을 욕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욕은 상대를 얕보거나 무시하고 부모를 저주하거나 잔인하게 죽는 과정을 말하는 것 같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천부적으로 '욕쟁이'가 있다. 욕설이나 거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입이 걸다' 나 '걸레를 물다' 라는 표현을 쓰는 일도 많이 있지만, 욕쟁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 군대에 가거나 주방에 들어가면 멀쩡한 사람도 욕쟁이가 된다는 풍문이 있다. 욕쟁이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욕을 하는 게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고 사람을 구분한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1/f3c4883fbb5abacf0cc715053af3d4cc14191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화초 두 개를 놓고 키울 때, 하나에는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다른 하나에는 욕을 하면 욕을 들은 화초가 말라죽는다고 한다. 욕은 듣는 사람도 나쁘지만 욕을 하는 사람의 뇌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평소 욕을 자주 하는 아이일수록 충동성과 공격성이 높고 학습 능력은 떨어진다고 연구 결과도 있는데, 그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나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엔 이러한 점들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div><b style="font-weight: bold;">순화된 말로 의사가 전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 할 경우에 사용되어지는 욕(辱)이라도 인격적인,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기성찰에 기반을 둔 표현이라면 좋을 것이다.&nbsp;</b><b style="font-weight: bold;">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란 독설을 퍼붓었지만 그의 욕(辱)은 강단에서 설교로 미화되고 교훈이 되고 있다. 춘성(春城)스님이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써서 욕(辱)쟁이 스님으로도 통했으나 그는 평생 옷 한벌 바리때 하나만으로 살다간 무소유의 실천가였기에 욕먹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았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할 것 다하고, 가질 것 다 챙기면서 남을 정죄하는 차원에서 욕(辱)을 하는 것은 엄청나게 기분만 상한다. 가능하면 순화된 용어로 살아야겠지만 辱먹을 짓도 삼가야 한다. 공사 현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도 많이 거칠어졌고 내 말투도 예전같지가 않은게 사실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매일 성찰의 시간을 가지긴 하지만 가능하면 깊은 인간 관계를 맺지 않으려 노력중이다.</b></div><div><b><br></b></div><div><b>나는 지금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아량이 없고, 소화해 낼 여유가 없기에 가능하면 마음 다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 영양가 없는 대화보다는 혼자 노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더 깊은 산속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겼을지도 모르겠다.&nbsp;</b></div><div><b><br></b></div><div><b>내 성격상 누구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체질이 못되기에 사람을 피하여 은둔의 장소를 찾으려 했는데 어딜 가나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고 불편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젊어서는 헤프게 인연을 맺고 친분을 넓혀 갔지만 이젠 조금 진지하게 살고 싶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옛말에 "가마가 많으면 모든 것이 헤프다"는 말이 있다. 일이나 살림을 여기저기 벌여 놓으면 결국 낭비가 많아짐을 이르는 말인데, 그럴 능력도 없지만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꼭 필요한 만남외엔 가능하면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nbsp;</b></div><div><br></div><div><b>나는 지난날들을 반추해 보면 역시 실패를 부끄러워 했었지만 두려움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는 날이 있는데 미리 내가 그걸 선택해서도 안되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별이 참 많다. 이별이라는건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지기 어렵다.&nbsp;</b></div><div><b><br></b></div><div><b>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내가 속해있는 조직과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내가 아끼는 물건과의 이별 등등. 신기한건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그 때 그렇게 망설일 필요가 없었는데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별엔 좀 더 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쿨한 척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 감정에 쿨할 필요는 있다.&nbsp;</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1/eaae8a91ee98758d5f1d95d177317216142053.jpg" width="249"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즐겁고 의욕이 생기고 순간순간 기쁨을 느낀다면 이별은 필요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이별을 하려고 한다. 물론 100% 만족하고 100% 싫은게 어디 있겠나.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내 순간의 느낌에 충실한다는 말이다. 만약 어떤 이별로 인해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나는 어떨지 등등을 생각하는건 앞으로 일어나지도 않을(그리고 꼭 내 생각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한) 것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이다.&nbsp;</b></div></div><div><b><br></b></div><div><b>넝쿨식물들을 위해 지지대를 세우고 빵끈으로 고정시켜주는 작업을 했다. 사모님이 건내주신 화초도 심었고 내 텃밭안의 잡초도 모두 뽑았다. 그간 바쁜단 핑게를 대고 게으름을 핀 후휴증이 만만지 않지만 오늘이 아니면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아 무리하게 작업을 마쳤다. 시간이 부족하여 전지작업은 내일로 미루었지만 전지를 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기에 내일 컨디션에 따라 움직일 생각이다.&nbsp;</b></div><div><b><br></b></div><div><b>인부들과 자주 가는 식당에 부탁하여 멸치조림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영양실조에 철분이 부족하단 말에 탄수하물과 철분을 보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창한 표현이지만 햇반에 물말아 멸치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해야겠다는 말이다. 먹기 싫어도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갈 순 없기에 조금씩이라도 하루 세끼를 모두 찾아 먹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허리 사이즈를 30인치로 늘리는 걸 목표로 삼았다. 한창 때는 바지 사이즈가 38로는 부족하고 40까지 육박했었는데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nbsp;&nbsp;</b></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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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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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31 May 2026 14:22:2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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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영양실조에 걸린 재벌</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0/24a81a10b447ba9d1868b91a2c784f4a11475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구두수선공의 아이들이 맨발로 다닌다(The cobbler’s children go barefoot)"는 말이 있다. 비슷한 속담중에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는 말도 있다. 보통 남의 일은 잘 해결해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일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말은 자기 일은 자기가 못한다는 이야기다. 원래부터 세상사는 인인성사(因人成事)였다. 남의 인연에 기대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을 살면서 독불장군이란 없다. 다만 그런 것처럼 착각할 따름이다. 독불장군이란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에나 가당한 말이다.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말은 그 방면에서는 제일 잘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일을 처리할때는 할 수가 없거나, 잘 못하거나 또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들에 보통 사용하는 속담이다. 건축현장에서 이들과 전적으로 애환을 함께 한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가능하면 이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고 들어주려 노력중이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귀촌 이후 먹는 것, 입는 것은 대충하기로 했다. 없으면 안되는 것외엔 일체 지출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철저하게 냉정하고 가혹하지만 남에게는 할 수 있는한 너그럽게 베풀며 살기로 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난 삶을 뒤돌아 보면, 잘 살았단 생각보단 후회스러운 일들이 나무 많아 나에게 한시적으로 남은 인생 2모작은 정 반대로 살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젠 '나의 바람'만을 고집하지 않으려 한다. 진정한 성직은 '너의 희망'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젊어서는 '나의 바람'을 주장해 왔다. 내가 가장이기에 아내는 무조건 내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자식들도 '나의 바람'대로 살길 소원했다. 교회도 '나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이젠 가능하면 '너의 희망'을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지만 가능하면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바람'을 위하여 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대면 그 때가 망령의 시작이고 은퇴의 시점이다. 이젠 가능하면 '나의 바람'을 줄여 살려 한다. 설령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의 희망'이 크다 할찌라도 원망하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매일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진즉 이렇게 철든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면 득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삶의 무게에 허덕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자 절반의 실패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현장에서 외국인이라고 하대하거나 무시하려는 사람들에겐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정색을 하며 질타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거친 말투는 용납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거의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사장엔 특히나 엄격한 갑을 관계가 존재하지만 이들이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살피고 다독여 준다. 가능하면 내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애로 사항을 드어주는 편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0/b5a5107e665a09846201103b9247e5b71149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밀레니엄 맨'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나는 배운 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는 말을 신봉한다. 경청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통의 90%는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라고 해서 다는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열지만 잘 듣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은 힘이다. 자기 말만 늘어 놓으면 사람들은 그 주변을 떠나고 싶어 한다. 심지어는 부부나 가족간에도 자기 주장만을 강요하면 대화의 문이 닫히고 불통이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주변에는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이 정말 많다. 나르시시즘이라고도 하는 자기도취는 물에 비친 제 얼굴을 제가 사랑하다 연못에 빠지는 나르시스처럼 스스로 황홀감에 빠져드는 일이다. 요즘 그런 사람을 공주병, 아니면 왕자 병으로 비유하는 것도 이것과 비슷한 말이 되겠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해치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지나친 자기도취는 자칫 다른 사람을 무척 불편하게 할 수가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일 먹으면 잘 듣지 못하는 난청(難聽)은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질병으로 어쩜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나이가 들어 청각 기관이 약해져 생기기도 하지만 요즘은 소음에 오래 노출돼 생기는 소음성 난청도 늘고 있다고 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히 소음성 난청은 어지러움과 전신피로, 수면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하면 고혈압, 소화 장애까지 일으킨다고 하는데 난청(難聽)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문제는 생리적인 난청도 문제이지만 도무지 남의 말에 귀를 기우려 주지 않는 무관심이 더 큰 문제이다. 자기 말만 늘어 놓는 사람도 문제이고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바른 말이 잦으면 사이가 벌어지는 법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 사람에게 가장 서글픈 것은 사람들이 여러 번 말하다가도 안 되겠다 싶으면 자기라도 그와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어 그의 곁을 떠나버리는 일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시급한 것은 더 늦기 전에 남의 눈으로 제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일에는 늦고 빠름이 없다. 내가 내 모습을 알려고 할 때가 가장 좋을 때이고, 알려고 하지 않아 때를 놓치면 이미 주변 사람이 떠난 다음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요즘 현상을 타개하려고 애써 변명하려는 사람을 측은(惻隱)한 심정으로 대하고 있다. 성격이 너무 급하고 단순하여 몇번씩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서 대략난감일 때가 많아 조금 거리를 두었더니 그게 큰 상처가 되었나 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정사를 비롯해 부부관계 가족관계 등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해결해 주어야 하는 곤욕(困辱)을 치루다 보니 이젠 내 자신을 위해 멀어지고 싶은 심정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철저하게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게 얄밉다는 생각이 들어 말문을 닫아 버렸다. 귀도 물론 닫아 버렸다.&nbsp;&nbsp;</span></div><div><br></div><div>'폴 투르니에'는 “소통이 잘 안된 이유는 내 생각이 옳다거나 내 방식대로 결론내거나 상대방을 말을 자르기 때문”이라며 “경청과 공감은 신뢰를 부르는 소통의 비밀”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절반만 듣고, 들은 것은 절반만 이해하며, 이해한 것의 절반만 믿는다. 나도 그런 부류이지만 정말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일이 더욱 힘들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0/104af02d0ff768aa3fca40a8a978aa0e11511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은퇴후 시골에 사는 지인과 함께 부안을 다녀왔다. 오랫만에 변산 해수욕장의 추억을 떠올려 보고 채석강 내소사 줄포 등지를 쏘다녔다. 모항에 있는 가족 호텔에 머물며 그간의 근황을 물었다. 처음 시골에 적응하느라 무던 애를 쓴 모양인데 이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박수를 보냈고, 곰소에 들려 낙지젓과 갈치 속젓을 한보따리 사들려 보냈다.</div><div><br></div><div>어디에서 잘못된 소문을 들었는지 건축을 하여 대성공을 했다는 말에 대하여 속빈 강정이라고 대답해 주었지만 쫄딱 망해 거지처럼 산다는 소문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제 농협에 들려 고유가 피해 보상금 신청을 하였더니 대상자가 아니라며 면사무소에 들려 확인하란 말을 듣고 찾아 갔더니 한참동안 확인해 보더니 여직원 둘이 박수를 치며 축하한다는 뜻모를 제스처를 보낸다.</div><div><br></div><div>사실인즉, 전국 30% 안에 들어 지원금 대상자가 아니라며 상위권에 든 걸 축하한다는데, 시골집 하나 가진 사람이 상위 30% 안에 든다는게 말이 안되지만 아무런 시비를 벌리지 않았다. 인천에 있는 아내도 20만원인가를 받았다는데 부부 재산은 합산이라고 알고 있는데 왜 나만 못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생각해 보니 차가 두대라 그런 것이라 이해하고 나는 지금부터 전국 상위 30% 안에 드는 재벌이라고 턱빠지게 웃었다.</div><div><br></div><div>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는 상위 30%의 고귀한 부자임에도 아직까지 스타벅스에 한번 가보질 못하고 맥심 커피만 마시는데 계속 부자인척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 남에게 손 안벌리고 사는 것만 해도 다행이며 이 나이에도 일을 하며 새로운 구상을 한다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div><div><br></div><div>내일은 교횔 다녀와 고추를 비롯 오이 토마토 등에 지지대를 만들어 주고 빵끈으로 고정시켜 주는 일을 계획했다. 무엇인가 자꾸 꼼지락거려야 그나마 건강을 유지시킬 수 있기에 건강도 상위 30%안에 들기를 열망하면서 일을 한다.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다. 당뇨 120, 혈압 110/85 콜리에스톨, 간 위장 대장 등 대부분이 정상이지만 다만 빈혈이 심하다며 철분이 많은 식품을 먹으라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먹는일이다. 도무지 먹고 싶은게 없고 먹는 것보다 귀찮은 일이 없을 정도이다.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div><div><br></div><div>세상에 주요한 병명은 다가져 보았지만 21세기 전국 상위 30% 안에 드는 재벌이 영양실조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무래도 누군가를 꼬드겨 베트남에 가서 쌀국수와 반미라도 먹고 와야할 모양이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영양실조에 걸린 재벌이 있다면 믿어지는가?&nbsp; &nbsp;</div><div><br></div><div>&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6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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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30 May 2026 11:53:4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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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 사람은 ?</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8/6453608f6e361aea9e96e308d3bf89fb10452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엊그제 옥수수 100개를 심었는데 오늘 다시 70개 정도를 더 심었다. 대충 두개씩 열매가 열린다면 300개 이상을 수확할텐데 옥수수 장사를 할 것도 아니면서 욕심을 부렸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별히 옥수수를 즐기는편도 아니면서 이렇게 많이 심는 것은 우선 담장에 심어 어설픈 농사꾼의 치부를 감추기 위함이고, 지금도 입맛이 여전한지는 모르지만 귀촌 첫해 많은 옥수수를 심어 손자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걸 보았던 기억때문이었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또한 벌레가 먹지 않는 유일한 농작물이고 소만과 망종 사이에 심는 옥수수는 그냥 던져 놓아도 살기에 사이비 농부에겐 더할나위없는 식물이기에 욕심을 부렸다. 결험적으로 볼 떄 옥수수는 성장하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잘 자라기에 이 글을 마치는 순간 수확하게 될지도 모를 정도로 식량 대체식물론 그만이기에 많이 심었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1986년 대한민국 국민들 가슴에 아름다운 깊은 슬픔을 전해준 도종환의 &lt;접시꽃 당신&gt;에 </span>"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는 첫구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리며 살려했었는데 내가,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 하루의 앞날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div><br></div><div>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오고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nbsp; 아파해야 합니다.(중략)</div><div><br></div><div>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동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싯구 한 구절 정도는 읊조리며 삶을 사랑을 슬픔을 노래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그 당시에만 해도 불치병이던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랑하는 부인에게 순간순간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겪어야만 했던 어느 한 남자의 순애보에 많은 이들이 같이 울고 갗이 슬퍼하며 같이 사랑했었다.&nbsp;</div><div><br></div><div>접시꽃 당신은 그렇게 국민들 가슴에 깊고도 강하게 묻혔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날,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다고 하던 그 순애보의 주인공 도종환 시인이 처녀장가 든다고 할 때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으로 인해 ‘접시꽃 당신’을 불태워버렸던 수많은 독자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하기엔 내 식견이 너무 짧지만 많은 이들은 배신을 당했다며 허탈해 했었다.</div><div><br></div><div>애 딸린 혈기 왕성한 젊은 홀아비가 새장가 든다는데 그것도 처녀장가를 든다는데, 보통인 경우에는 축하를 해주고 이해를 해줄만 한데도, 많은 이들이 극한 배신감을 느끼고 멘탈이 붕괴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이런 구절들이 가슴 속 깊이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울려퍼져 올라오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nbsp;</div><div><br></div><div>내 집안 홀리팜 주변에 접시꽃을 많다. 직접 정원에 심진 않았지만 이웃 이장님 댁을 비롯 집집마다 접시꽃이 바람에 건들거린다. 누가 처음에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유독 접시꽃이 많아 '접시꽃 마을'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흔한 꽃이 되었다. 접시꽃은 화단에서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어귀, 길가 또는 담장의 안쪽과 바깥쪽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자란다.&nbsp;</div><div><br></div><div>할머니들이 좋아하고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줄기, 꽃, 잎,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 멀리서 보면 무궁화처럼 보이지만 아욱목 아욱과 식물이며 두해살이 풀로 분류되고 있다. 아마도 꽃 모양이 접시모양처럼 납작하게 생겼다 하여 접시꽃이라 불리워진 모양인 데, 예전엔 덕두화 촉규화 단오금 무당풀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다.</div><div><br></div><div>무당의 옷처럼 화려한 점에서 착안된 이름인 것 같은 데, 장미꽃과 한데 어울려 있으니 너무도 잘 어울린다. 장미와 접시꽃은 전혀 다른 식물이지만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넝쿨 장미가 휘감아 버렸어도 불평없이 자태를 자랑하고 한치도 물러섬이 없이 여름내내 꽃을 피우고 지기를 반복한다.&nbsp;</div><div><br></div><div><div class="imgwrap" style="width: 41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2/06/02/f47c6da96f96f04dff39e8fa3ada698f113451.pn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난 접시꽃을 보면서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 해도 잘 자라는 것이 그렇고, 태풍이 지나가도 생체기를 감추고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에서 이 땅의 어머니를 연상한다.&nbsp;</div><div><br></div><div>성장 속도가 빠르고 2m 이상 자라기에 창가에 심으면 시야가 가리기에 금기시하고 있지만 이웃 빈집의 담장을 수놓은 접시꽃을 그대로 두고 감상하기로 했다. 내가 거실에 지쳐 잠들어 있을 때에도 방안을 기웃거린다. 창문을 열면 끝내 거실까지 밀고 들어 올 기세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해바라기처럼 해를 향해 따라 도는게 아니라 사랑해 주는 사람을 향해 피어나는 신비로운 꽃이다.</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div><div><br></div><div>옥수수를 심으면서<b style="font-weight: bold;">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b>를 몇번이나 읊조렸는지 모른다. 옥수수 잎은 바람을 맞을때 부대끼며 서걱인다. 그 소리는 너무 서늘해 요의(尿意)가 자연스럽다. 게다가 옥수수 잎에 비라도 들이치면, 보기에 듣기에 사뭇 낭만이다. 그래서 올해도 작심하고 옥수수를 많이 심었다. 처치하기 곤란할 정도이지만 심는 사람이 있으면 따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하여 나눠줄 사람을 떠올리면 행복한 감상에 젖을 수가 있다.&nbsp;</div><div><br></div><div>역시 옥수수 하면 뻥튀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팝콘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 처음 맛봤던 강냉이 빵맛은 잊을 수 없다. 성조기와 태극기가 엇갈려 그려진 부대자루에서 나온 그 강냉이로 만든 빵 말이다. 잉여농산물 구호물자가 배고픈 우리 아이들에게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던 식량이었다. 노릇하며 갈색으로 잘 구어진 강냉이 빵은 냄새도 맛도 구수했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나는 도시락을 지참하는 사람에겐 배급이 안되었기에 도시락과 바꿔 먹기도 했었다. 아예 도시락을 일부러 가지고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지금같으면 거들 떠 보지도 않겠지만 옥수수 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옥수수 차(茶)도 맛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맛이 구수하기가 보리차나 엽차와 버금간다. 차가워도 뜨거워도 맛이 삼삼한데 퍼지는 냄새 또한 그윽하다.</div><div><br></div><div>고향의 맛인지도 모른다. 사족이지만 옥수수를 심을 적엔 씨를 서너개씩 구덩이에 넣는다. 한 알만 넣으면 자라면서 쓰러진다 했다. 우리네 짧은 인생도 비오고 바람이 부는 때까지 서로 기대고 버티고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가 보다. 비오는 날 옥수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텃밭을 바라보며 꽃과의 대화를 하다가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시들 땐 더 훙물스럽게 지는걸 알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연은 노력한만큼 풍성함을 선사한다. 아직은 초보이기에 내놓고 자랑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땀흘린 이상의 것을 자연은 선물한다. 초야에 묻혀 살면서 난 많은걸 깨달아 간다. 또한 생소한 것이기에 이곳 할머니들도 나에게는 모두 스승이시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만 알려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경험도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 들인다고 했던가?</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간에는 사람 농사짓는 일을 했지만 지금 식물을 키우는게 훨씬 재미있다. 자연은 나에게 위대한 스승이시다. 자연은 배신하지 않는다. 살아 쉼 쉬는 자연 속에 있다 보면 인간도 미물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어느 곳에 있던지 그 사실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지 가르쳐 주는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연은 언제나 다가서면 자리를 내주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오늘도 자연은 모나지 말고 둥글게 살라 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다. 자기가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진 안하무인을 좋아할 사람이 없다. 세상을 살다보면 잃는 것도 많고 손해 볼 때도 많다. 그 중에서도 사람을 잃는게 가장 치명적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8/f3c4883fbb5abacf0cc715053af3d4cc10474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주공(周公)이 제후로 임명되어 임지로 떠나는 아들에게 교훈하길,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은 큰 잘못이 없다면 버리지 말고(故舊無大故 &nbsp;則不棄也)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기를 바라지 마라.(無求備於一人 )" 고 신신당부했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재를 감동시키려면 호선망세(好善忘勢) 해야 한다고 했다.</span></div><div><br></div><div>이용 가치를 따지는 사람은 군자가 되질 못한다. 아무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이지만 달다고 간이라도 빼줄듯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고 때로는 쓴 것도 꾹 참고 삼킬줄 알아야 한다. 세상을 간사하게 살아선 않된다. 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 사람은 간사한 사람이다.&nbsp;</div><div><br></div><div><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nbsp;</font></b></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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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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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28 May 2026 11:08:2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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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화와 이름모를 야생화</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6/23587bee833f7b6c49f9dcd4bd0cc0432244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은 가면 갈수록 불투명한 미래는 근심을 내려 놓을만한 여유가 없다. 어떤 사물을 보고 감성을 자아내기란 쉽지 아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에게는 많은 교훈적으로 행하고 나서야 할 일들이 많지만 답습하는 과정은 때로는 사치인 듯 당장 시간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만 산재하여 가는 삶을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여유(餘裕)를 잃었다. 노정객 손학규가 '저녁이 있는 삶'을 말했을 때 내용은 차치(且置) 하고서라도 일단 마음에 확 와닿는 명제임에 틀림없어 감명을 받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안해도 웃음에 인색한 편이지만 요즘 웃을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지만 어떤 것 하나 끄집어내 미소 지을 일 하나가 없는듯 싶다. 생활은 늘 긴장 속에 반복이고 전투적인 삶을 살아간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은 여유의 시간을 찾지 못한다. 과거의 일을 회상하거나 생각 속에 즐겨갈 일들이 점점 현실에서 벗어나 버린다. 양보와 배려는 커녕 여유(餘裕)를 가진 사람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조선조 세종 때 유관이라는 정승이 있었다. 그는 정승이라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울타리도 없는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청렴결백하고 낙천적이었던 유관은 언제나 평안한 표정을 지으며 누구보다 기쁘게 살았는 데, 비가 오던 어느 날, 방안까지 빗물이 새어 들어오자 유관은 삿갓을 쓰고 앉아 비를 피한다. 그러면서 걱정하고 있는 부인에게 여유 있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삿갓이 없는 사람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nbsp;</div><div><br></div><div>진정한 삶의 멋은 여유로움에 있다. 여유로움은 물질의 풍요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여유는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自足)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멋스롭고 여유로운 삶일 것이다. 나는 과연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득병하였으나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겨우 빠져 나왔기에 약간은 여유(餘裕)롭게 살고 싶지만 아직 여유만만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nbsp;</div><div><br></div><div>적어도 나에게는 삿갓 하나보다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삿갓없는 사람을 걱정해주는 여유가 없다. 여유는 품격의 조건이며. 인내는 품격의 형성 과정이며, 인성은 품격의 결과다. 인생은 여유로 풀어가는 품격의 게임이다. 여유와 품격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욕망의 광장은 거칠고 흉하고 사납다.&nbsp;</div><div><br></div><div>여유와 품격이 없으면 실수가 잦고 견고하지 못하며 남에게 피해를 준다. 여유와 품격은 내실과 평온을 만드는 생필품이기 때문이다. 다투지 않고 갈등을 조율하는 것은 생활의 품격이고, 버리면서 새로워지는 것은 정신의 품격이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게 최고의 품격이며 속이고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품격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6/eb5360e96c7cf1c3eb59fd637d3b4ba12307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한 박자 쉬어서 실수를 줄이고, 불필요한 걱정과 근심을 버려서 견고한 내공을 쌓으며, 때로는 곡선으로 돌아가는 여유로 삶의 진미를 찾는게 현명한 길이다. 그래서 늙그막의 삶은 너무 촐랑대며 살진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nbsp;</div><div><br></div><div>난 선천적으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다. 언젠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두 집사가 불원만리하고 이곳을 찾아 왔다. 반가운 마음이야 그지없지만 어찌할지를 몰라 쩔쩔맬 때 "목사님 악수를 하던지 아님 안아주셔야죠?"할 때 귀밑까지 붉어지며 난처해한 때가 있었다. 전혀 활달하지도 않고 좋게 말해서 세심하긴 하지만 솔찌기 말하면 소심한 성격이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처음이 힘들지 마음을 트기 시작한 이후로는 걷잡을수 없을만큼 깊은 정을 나눠주는 스타일이다. 혈액형은 O형이지만 A형 기질을 완벽하게 타고난 결과, 든든하고 뿌리깊은 인맥을 자랑한다.낯을 가리는 처음의 벽만 잘 극복하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와도 베스트 프랜드가 되는 허물없는 성격이야말로 더 쫀득한 인간 관계를 만들어가는, 더 관심받고 싶어하는, 더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성격이다. 처음엔 활달한 성격을 부러워 했으나 지금은 이대로가 좋다. 소심하기에 나를 컨트롤할 수가 있었다.&nbsp;</div><div><br></div><div>어제 빈집 철거작업을 하면서 뒷뜰에 버려진 국화와 이름모를 야생화를 괘나 많이 수집해 왔다. 아마도 그 집 노친네가 어디에선가에서 가져다 심었을 텐데 이젠 꽃을 보아도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잊혀진 모양이지만 아직은 꽃을 보면 살레이는 나에겐 안성맟춤이란 생각에 양해를 구하고 가져 왔다.&nbsp;</div><div><br></div><div>소장은 어차피 이사할 거라면 애써 정성을 쏟을게 뭐냐며 대충해서 대충 넘기라고 잔소리를 늘어 놓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대충'이다. 내가 과실을 따려고 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내가 수확하지 못하면 내 후손이 거둘 것이고, 내가 덕을 심으면 반드시 결실의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데,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을 쏟아낸다.&nbsp;</div><div><br></div><div>같은 말이라도 좀 크리스챤다운 말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살아왔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말들은 가리지 않으면 믿는자의 품격에 문제가 있고 복음에 역행하는 사람이 된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div><div><br></div><div>"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그런 팻말을 목에 걸고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 다리 위에서 한 장님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곁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그 걸인에게 당신이 이렇게 해서 구걸하는 액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걸인은 침통한 목소리로 겨우 10프랑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nbsp;&nbsp;</div><div><br></div><div>그 소리에 행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걸인의 목에 걸려있는 팻말을 뒤집어 놓으며 다른 어떤 말을 적어놓았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그 행인이 그 곳에 다시 나타났을 때 걸인은 행인의 손을 붙잡고 감격해 하며 묻는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녀 가신 뒤 요사이는 50프랑까지 수입이 오르니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글을 써놓았기에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겁니까?"&nbsp;&nbsp;</div><div><br></div><div>그러자 행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별다른 게 아닙니다. 원래 당신의 팻말에 쓰여 있는 글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는말 대신에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써 놓았을 뿐이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nbsp;</div><div><br></div><div>'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이라는 무미건조한 말만 가지고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지만 같은 의미이지만 거기에 좀더 아름다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줌으로서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말, 같은 생활이라도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주면 보다 맛깔스럽고 정감어린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아무런 생각없이 즉흥적인 말들을 너무 쉽게 쏟아낸다.&nbsp;</div><div><br></div><div>내 현실이 저녁이 있는 여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아직은 비관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전에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고 동정심을 유발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조금 더 세련되게 나를 표현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nbsp;</div><div><br></div><div>괘나 많은 비가 올 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겨우 땅을 적실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다. 인부들을 현장에 투입시켜 놓고 국화와 야생화를 심으려 집으로 돌아왔다. 양파가 자빠지기 시작했고 마늘도 누렇게 시들해지는 걸 보니 곧 수확할 시기인 것 같다. 적당한 시기에 수확하고 그 자리에 아내의 부탁으로 당근을 심을 생각이지만 당근과 생강으론 재미를 못본 탓인지 망설여지고 그것도 틀림없이 내 것이 아닐 가능성때문에 생각을 정리중이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6/8a7741485a8fa0240af02652c4140524230906.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전북 부안 위도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바다가 보이는 땅을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다가 보이면 무조건 70만원 이상간다는데 어촌일수록 빈집이 그렇게도 많은데 왜 땅값이 그리 비싼지 알 수가 없다.&nbsp;</div><div><br></div><div>아마도 도시의 투기꾼들이 쓸만한 곳은 묻지마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아직 내 한몸 운신할 곳이 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탁했다.</div><div><br></div><div>현장소장에게 백평 남짓한 땅을 구해 주었다. 평당 3만원에 구입했으니 열흘 인건비 정도에 불과한데 이 땅에 시간이 나는대로 농막을 지으라 선물했더니 좋아라 한다. 건축자재도 준비되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그럴듯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소장은 큰 집을 구해 함께 살았으면 하지만 내 체질이 <b>독고다이</b>란 걸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여럿이 있으면 시상이 떠오르지 않고 중국인들도 나 못지 않게 지저분한데 둘이 함께 살면 돼지우리가 될게 뻔하기에 사양하기로 했다. 소장도 한곳에서 십여년 살다보니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본데 자투리 땅에 농막 정도의 집을 만들어줄 생각이다.</div><div><br></div><div>사장님 노후는 자기가 책임지겠다는데, 그건 어림없는 수작(?)이다. 내 노후는 주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고 설령 고독사하여 백골로 발견된다 하더라도 주의 천사들의 환송을 받으며 세상을 하직하는게 내 소원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nbsp;</div><div><br></div><div>&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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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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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26 May 2026 23:05:5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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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title>
			<description><![CDATA[<div><font color="#0021b0"><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5/f7f3811002a9fe84840b287381debd8a2326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추억이란 어느 분위기 좋은 찻집 벽에걸려있는 마른꽃과 같은것이다. 생화처럼 싱그러운 향기는 없지만 오래 오래 마음속에 액자처럼 걸려 있는 것, 그래서 본래의 빛깔이나 향기는 사라졌다 해도우리들의 마음안에 늘 은은하고 곱게 자리하고 있는 소중한 기억이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사람은&nbsp; 누구에게나 추억이 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은 시간이 흘러가고 나면 하나의 추억이 된다. 부모님에 대한 추억, 형제 자매가 어린시절 같이 살았던 추억, 학창시절의 추억, 연애시절의 추억 등 불행이든 행복이든 모든 과거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하지만 의외로 사람에겐 옛 추억을 골라서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 불수의(不隨意) 능력이라선지 자신의 의지이면서도 자신의 맘대로 다룰 수가 없다. 그러기에 어떤 특별히 지정된 정보 또는 지식을 딱히 골라 뽑아 되새긴단 의미와는 분명 다르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나는 때로는 독종이란 소릴 듣기도 한다. 해가 지면 어둠속에 갇혀 버리고마는 이런 깡촌에서 어떻게 혼자 사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고 아침 저녁으론 아직도 쌀쌀한 날씨인데 보일러도 없이 어떻게 나는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하루중 이 곳에서의 시간이 가장 진지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있으며 우주적인 사고로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라 믿기에 외로움이나 고독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가끔 잊을만 하면 불현듯 꾸중물을 일으키는 못된 것들이 있어 탈이지만 그것마저도 長江의 물도 윗물에 밀리듯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하고 모질게 마음을 먹고 내 삶을 디자인해 가는 중이다.&nbsp;</b></font></div><div><div><font color="#0021b0"><b>서울에서 오랫만에 친구가 내려와 60년된 인연을 그렇게 무우자르듯 할 수 있느냐며 자주 만날 것을 종용하지만 미워서가 아니고 싫어서도 아니라 피차에 갈 길이 다르기에 더이상의 만남을 이어가지 않는게 좋다 생각하여 찾지 않았을뿐인데, 어거지로 관계를 복원시키자 한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냥 추억속에 묻어 두고 가끔 빚바랜 사진첩을 꺼내 보는 정도로 위안을 삼으려고 마음먹었는데 억지춘향이 되라고 강요한다. 내 지론인즉, 사람은 관뚜껑을 덮기 전까진 변하지 않는다. 모래 사장에 똥덩어리를 묻었어도 일시적으로 가려졌을뿐이지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듯 본성이 변하려면 바울사도처럼 날마다 죽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nbsp;&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래서 때로는 추억에 잠길 때도 있을테지만 추억은 아련하게 남아 있을 때 좋은 것이지 매시간 꺼내 보는 건 차라리 고통이라는 생각으로 혼자 가는 길을 선택했다. 친구는 나를 독종이라고 타박을 하겠지만 더이상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苦肉策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친구가 아니기에 그러는게 아니라 내가 좋은 친구가 될 자신이 없어서라고 볼멘 소릴했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냥 추억속에 간직하는게 더 나을 거란 말에 더이상 강요를 하지 않는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추억과 잊어버리려 애쓰는 추억이 간단히 구분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잊으려 애를 쓰면 쓸수록 가슴에 각인되는 깊이는 거꾸로 더 깊어진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의지는 기억의 창고에 수납되기가 쉽고 무의지한 감성적 느낌이라야 추억의 골방에 남겨진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추억이란 말이 붙으면 그건 이미 절반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자신의 옛일일 따름이다. 추억은 바다와도 같은 것 날씨에 따라서 잔잔히 흐르는 것도 있고 격랑을 이루며 구비치는 것도 있다. 좋은 날씨의 추억은 햇살을 닮아 맑고 투명하지만 흐린 날씨의 추억은 역시 회색이며 무겁다. 가장 괴롭고 어려운 추억은 거친 격랑에 휩쓸리듯 사나운 추억이 아니다. 끝도 모르는 바다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방향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오리무중인 것이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은 맑고 투명하지만, 맑은 술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은 매번 진회색 투성이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젖어드는 추억은 커피색처럼 진하다. 색만 진하지 한숨 한 스푼에 온기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다. 무심한 사람들이 미처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단맛은 식은 커피가 더 달다. 시간도 우려 넣고 한숨도 우려 넣고 빈 눈길로 오래 휘저었으니 마냥 우러난 커피가 더 단 건 당연하다.&nbsp;&nbsp;</span></b></font></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font color="#0021b0"><b>오래된 어릴 적 추억은 돌아보며 슬며시 미소를 보이지만, 근래 만들어진 추억은 눈물 한 방울 ‘찍’ 묻어나는 게 많다. 아직 설익은 탓이리라. 날 살찌게 하는 추억도 있고 마르게 하는 추억도 있다. 이미 청춘을 한참 넘어선 나이지만 추억의 깊이를 헤아릴 정도는 된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5/937547981ab90a17c66e217543621a9d23273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실 때에 떡과 잔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이것들을 나누어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22:19～20) 그 후 제자들은 박해의 위기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주님의 떡과 잔을 나누며 주님을 기념했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때 그들은 주님과 함께 지낸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위로를 얻고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nbsp;&nbsp;그래서 성만찬은 주님을 추억하는 행위이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하며 주님을 추억했고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했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양심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비내리는 날에는, 비가 뿌리는 우수(憂愁)에 젖어드는 건 괜찮은 느낌이다. 한번쯤 무상을 느껴보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 속에 흠뻑 젖어들어도 좋을 것이다. 잠시 감성의 비를 맞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 그런대로 견딜만한 시간이 될 것이다.&nbsp;</span></b></fon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br></b></font></span></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color="#0021b0"><b><font size="3">비에 젖어 본 새는 다시 비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기가 처한 환경을 탓할 때가 많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고, 찾을 수 없을 때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기까지 한다. </font><span style="font-size: medium;">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나를 그곳에 다 던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medium;">무엇을 하든지 거기에 온몸을 던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이 자유로워진다. 지금 열심히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멈추면 안 된다.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한쪽 문은 열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span><span style="font-size: medium;">왜 많은 일과 장소가 있음에도 일단 촌구석을 선택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medium;">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에만 급급해 일상을 즐길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살아왔기에 이젠 여유를 가지고 내 삶을 반추해 보기로 했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medium;">당시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이 일조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trong style="font-size: medium; letter-spacing: 0px;"><font color="#0021b0"><br></font></strong></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medium; letter-spacing: 0px;">"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 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nbsp;</span><span style="font-size: medium;">시인의 말처럼. 떠날 것은 그저 집을 떠나 낯선 도시와 먼 외국어로 가는 것뿐 아니라, 내 익숙해져 버린 타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습관이기도 하겠다. 아니 사실은 그게 더 필요한 것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로부터 떠나는 시간들 역시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span></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span></p><div><font color="#0021b0"><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nbsp;</b></font></span></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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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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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25 May 2026 23:29:1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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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스타벅스와 넝쿨장미</title>
			<description><![CDATA[<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img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2/seoul/20260522001420028fyrl.jpg" alt="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판매 촉진 행사로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을 합성해 이를 조롱하는 듯한 사진·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는 등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 2026.5.21 온라인 커뮤니티"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r></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동기생이 스타벅스에 관한 동영상을 보내왔다. 요즘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에 신세계 그룹이 뜬금없이 탱크데이란 이벤트를 만들어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저급한 장사치의 속성을 들어내었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스타벅스가 얼마나 유명한지 잘모르지만 나는 커피하면 맥심외엔 별로 아는바가 없고 베트남 커피 G7나 다람쥐 커피가 맛있다 하지만 입에 달달한 맥심외엔 마시지 않기에 스타벅스가 그렇게 유명한 브랜드인지를 알지 못했다. 스타벅스를 기독교가 지켜야 한다고 선동하는 김아무개 목사를 향해 미친놈 날굿이 한다고 욕해 주려다 참았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우리들의 생애 어느 한 날 무의미한 날이 없겠지만 무미건조(無味乾燥)함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을 향한 상술이 만들어 낸 기념일은 지나칠 정도로 많다. 이런 상술을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일상에 뭔가 스토리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서 영업을 확대하는 전략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특히 현대와 같이 매스컴이 발전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있는 그대로의 단순한 정보제공은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당길 수 없으므로 뭔가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스토리를 만들어 이를 통해서 더욱 많은 성과를 거두는 전략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원래 스토리텔링은 문학용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혹은 구전을 말하는 것인데, 사건과 사물에 대한 사실보도(report)가 아닌 인물과 사건에 대해 이야기로 지어서 말하는 것으로, 마케팅에서도 상품에 대해 이와 관련한 인물이나 배경 등을 설명하는 기법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모든 장사꾼은 거짓말쟁이다(All Marketers Are Liars)’라는 책을 써서 스토리텔링 마켓팅의 전도사가 된 세쓰 고딘(Seth Godin)은 또 이렇게 말한다.&nbsp; "People buy what they want, not what they need, and that they demand stories from marketers to help convince themselves to buy what they already decided they want."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산다. 그리고 그들이 뭘 원하는지를 이미 결정해 놓고도 그것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 장사꾼들로부터 스토리를 원한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스토리텔링은 최근 경영의 화두로도 부상하고 있는 데, 목회도 원래가 말씀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말씀에 심어지는 스토리가 아주 중요하다. 아무 고민없이 아무 준비없이 자신만의 경험이나 느낌만으로 설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조사하고 공부해야하는 것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역사와 철학등의 문제제기와 문학적 뒷바침이 없는 설교가 힘을 줄리가 없다. 이러한 인문학적 연구와 사회과학적 고민없이 목회를 한다는 것은 교회를 하나의 물건 파는 가게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 없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0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회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48.4%로, 2009년 33.5%보다 무려 14.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발표되었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지금은 수치를 말하기에 너무 부끄러운 정도이다. 이는 특정 사건의 영향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하면서 비기독교인의 개신교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개신교회 성장에 중요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교기관의 신뢰도 순위를 보더라도 가톨릭교회(41.4%), 불교(33.5%), 개신교회(20.0%)의 순으로 3개 주요 종교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아무리 옥수수 밭이 탐이나더라도 한 곳에 머물면 철새는 죽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금강하구는 겨울철 철새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수십만 마리의 군무를 보노라면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철이 지나면 황망한 땅으로 비워진다. 철새들을 위해 일부러 추수하지 않는 너른 평야의 곡식 낱알이 이들에겐 매력적이지만 이들의 발목을 잡지 못한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떠날 때를 알고 비워주어야 할 때를 알기에 북쪽으로 향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 안주하고 있다. 미래를 너무 낙관하고 있다. 얼마나 심각한지를 잊고 있다. 목회현장에서 보는 것과는 너무 다른 체감온도라는게 있다. 실제보다 훨씬 춥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교회가 혐오시설이라고 인식된지가 오래이다. 심지어는 방폐장이 들어서는 것보다 교회가 들어오는걸 꺼질 정도라면 지나친 경고인가? 목회자에게 허울뿐인 직함을 맡기는 것은 목사를 상품화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일부 단체들은 목사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후원금과 회비만 잘 내면 무분별하게 감투를 씌워주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 목회자들 중 일부는 명예욕에 불타 이를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후원금과 회비는 거의가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중 일부는 자신을 상품화시키고 있다. 또한 자신을 포장하는데 들어가는 경비를 자신이 부담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대부분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을 물 쓰듯이 마구 사용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목소리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여기에 염증을 느낀 교인들은 목회자의 곁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목회자들은 망각하고 있는 듯 하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아고 하셨던 요 2:15∼16절의 예수의 성전정화가 다시금 필요한 시기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오늘날 한국교회 전반에 만연한 사행과 물질주의의 첨예화는 이미 지적자체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갱신과제다. 지금 급선무는 평판을 바꾸는 일이다. 너무 평판이 안좋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은 성공의 첫 번째 요소로 ‘평판’을 꼽았다. 성공에는 수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다른 건 다 제쳐놓고 평판을 최고로 강조했다. 그만큼 평판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4/9780fa28a0d4db21249a653e4f78397723152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모든 평판은 평생 가는 것이다. 연기는 잠깐 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의 본성까지 평생 연기할 수는 없다. 정말로 진실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남을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전혀 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는 속일 수 있겠지만, 마지막까지 속일 수 없는 자기 자신이 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연기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신뢰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값'은 경제생활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바로 자신의 브랜딩 값이 자신의 연봉과 직결되는 시대이다. 경제 위기 이후 자신의 이름값으로 먹고 살아가는 직업군이 점차 늘어나면서 대한민국의 평판 산업은 자연스럽게 발전되어 왔고 급속도로 성장해 왔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나는 가끔 세상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할까에 시선이 고정될 때가 많다. 남이 뭐라하던 내 방식대로 살 순 없는 일이기때문에 더욱 고민스럽다. 어떤 사람에 대한 평판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부풀려지거나 축소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나 타인의 평판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평판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구약 성경’의 ‘열왕기’에는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아라비아반도 시바라는 곳에 사는 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확인하고 많은 예물을 바친 뒤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간의 손가락질이나 비난을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염두(<span class="phonetic"><daum:word id="hhw000002700">念</daum:word><daum:word class="over" id="hhw000011231">頭)</daum:word></span>해 두고 살았지만 그것도 자신있게 말하긴 어렵다. 때로는 내 생활이 자꾸 어려워지는 이유중에 하나는 주변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여 훗날 나쁜 소리라도 들을까 늘 긴장하다보니 힘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 소심해진다.</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나는 2011년 5월 마지막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그간 정들었던 인천을 떠나 귀촌이란 이름으로 촌으로 숨어 들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음성을 역행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처럼 그런 기분으로 무작정 내려 왔다.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없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토록 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냥 "너무 오랫동안 시무했기에 이젠 자리를 비워주는게 좋겠어!"라는 말 한마디만 남겼다.&nbsp;&nbsp;1988년 5월 30일 울산에서 인천으로 올라 갈 때에도 무작정이었다. 어떤 교회인지 몇명이나 모이는지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다만 담장마다에 눈부시게 핀 넝쿨 장미를 보면서 핑크빛 감상에 젖어 아름답게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im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rc="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5/05/31/1602c5bc11f74ddfe0f3c9fa933e7fd4205306.jpg" style="margin: 0px; padding: 0px;"></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리고 24년을 고운정 미운정 들이면서 숨가쁘게 달려왔다. 마지막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전 난 사십회에 걸쳐 &lt;화려한 외출&gt;이란 글을 연재했었다. 교회 카페에도 동시에 올렸으니 대게는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컨셉을 &lt;88년 장미&gt;로 정하고 심정을 솔찍 담백하게 적어 내려 갔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처음 인천의 부름을 받았을 때 00교회는 불과 열명 남짓 모이는 교회였고, 예배당은 하꼬방 수준이었다. 상견례도 할 틈이 없이 부임부터 이루어졌다. 처음 부임 설교를 하고 부터 교회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임 교역자와의 불화로 교회가 분열되어 교인들이 거의 다른 교회로 떠나고 00교회는 희망이 없는 교회로 지방회에서도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은 교회였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러나 나는 희망을 보았다. 최소한 내가 몇년간 시무할지는 모르지만 반듯한 교회로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의욕이 있었고, 교인들도 모두 안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짓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래도 00교회는 훨씬 양호한 형태였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런대로 교회가 몰라보게 변했고, 어느 덧 지방내 세번째 크기의 교회로 성장했으며, 예배당도 4층으로 지었다. 한 때 많은 부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선교비만큼은 줄여 본 적이 없었다. 목회의 여정에서 때로는 질식할 것 같은 숨막히는 답답함이 치밀어 오를 땐 5월의 장미를 연상하며 참는 연습을 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난 배고픈 건 잘 참는 편이다. 그러나 자존심을 건드리면 그 땐 모든걸 내려놓는 버릇이 있다. 난 어느날 이 교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지론인 &lt;양은 뿔이 없다&gt;는 모토로 살아 왔기에 내가 인격적으로 대해주면 뿔로 받지는 않을거라고 믿어 왔다. 설령 그래도 받는다면 그대로 감내하리라고 수없이 되뇌이며 지내왔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러나 갑작스런 득병으로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미 이 교회에서 내가 할 일이 끝났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임지를 옮기거나 조기 은퇴를 늘 마음 한자락에 깔고 있었다. 나는 목회하면서 마음속으로 날 반대하는 사람이 세사람 이상이면 미련없이 사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교인들과 인상찌뿌리며 주접떨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젠 떠날 시기라는 생각이 들자 지체하지 않고 오월에 와서 오월에 떠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하니 같은 오월이지만 내 눈에는 그전의 장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설레임도 감동도 모두가 벌레먹은 장미뿐이었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16px;">난 꽃중에 장미를 제일 좋아한다. 아마도&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겨울철 흰 눈이 내릴 때까지도 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길고 다른 꽃들이 흉내를 낼 수 없는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난 시간이 허락된다면 현재 장미가 백여종 유통된다는데 더 많은 장미를 홀리팜으로 가져 올 생각이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16px;">20세기의 천재 시인인 릴케가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유달리 장미를 좋아했는데, 그가 만년에 살았다는 론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오래된 성의 정원에는 지금도 수많은 종류의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차가운 돌로 지어진 오래된 성에서 수도승처럼 혼자살며 시를 지었던 릴케. 그는 어느날 자신을&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찾아온 손님을 정원까지 배웅하다 나무 뒤에 피어있는 장미를 발견한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16px;">그리고 그 장미 가시에 손가락이 찔리는 바람에 패혈증으로 고생하다 그해 12월 29일에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 사인이 백혈병임에도 이런 전설이 전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nbsp;&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아마도 릴케라는 시인의 섬세한 이미지와 함께 생전에 그가 기이할 정도로 장미를 좋아했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내가 처음 인천으로 부임할 때 주안2동은 장미넝쿨이 집집마다 있어 너무 감명이 깊었었다. 이처럼 화사하게 교회를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결심했었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div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난 장미를 보면 그 때의 교회와 그 때의 몇사람의 얼굴을 떠 올린다. 참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어 가까히 하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전임자는 교회를 떠난지 얼마만에 나를 찾아와 두사람을 조심하라고 간곡하게 충고했다. 난 두사람을 조심할게 아니라 두가지를 빼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b></font></div><div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쓸개는 빼버렸는데, 간을 빼주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간이나 쓸개는 결정적으로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다. 물론 인생사 스트레스 없는 직업이 없을 수는 없지만 특히 목회자에게 있어 정신적인 압박은 치명적일수도 있기에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말기를 충고 드린다. 난 목회의 여정에서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처음 보았던 장미를 떠올린다. 장미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꽃이 아니다. 최고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b></font></div><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 style="font-size: 16px;"></b></font></p></div><p style="border: 0px;"><br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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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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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24 May 2026 23:17:3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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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사유(思惟)하지 않으면 인간은 괴물이 된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3/3901161a27feecf9bf2835a96ad5124511365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몇년을 살았는지와는 상관이 없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 돌아봄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지난 시간을 반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살아온 그 시간이 의미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이기도 할 것이다.&nbsp;&nbsp;</span><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나는 할일없이 가만히 있는 것보단 무엇이라도 하려 마음먹었기에 일을 만드는 스타일이다. 물론 그것이 수익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이기에 무모한 짓이란 소릴 듣지만 내가 세상을 살면서 무모한 일을 한두번 한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거의 올인하는 버릇이 있다.&nbsp;</div><div><br></div><div>목회만 해왔던 사람이 어느날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그랬다. 그래서 관련서적을 뒤적거리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견습을 많이 했다. 일생에 집한칸 만들기도 힘들다는 데, 난 경험을 축적하려고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며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몇번은 더 시도하겠지만, 그리고 한계가 있는 일이긴 하겠지만 내가 원하던 그런 그림을 그리는 순간 멈추게 될 것같다.&nbsp;&nbsp;</div><div><br></div><div>세상엔 편한게 없다. 남들이 보면 쉬워 보이는 일도 직접해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가까운 지인들이 농담으로 건네는 말중에 <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ba4b01">'어이 집 하나 지어줘!'</font></b>이다. 금방 똑딱하면 집이 만들어지고 그럴듯하게 정원을 꾸며 놓으니 손쉬운 거로 생각하는가 본 데, 한번 지어보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nbsp;&nbsp;</div><div><br></div><div>건축 설계를 의뢰하는 순간부터 준공검사를 마칠 때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모른다. 안전사고는 물론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건축과정에서 때려 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왜 사서 고생하나 싶을 때가 수없이 든다. 예상에서 빗나가기 일수여서 정말 못해먹을 것중에서 건축이 의뜸이다.&nbsp;&nbsp;</div><div><br></div><div>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축 일이 재미도 있고 즐겁다. 아니 즐기는 편이다. 아파트가 정말 편리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에는 편한 것만이 좋은 건 아니다. 아무런 속박을 받지 않는 독신생활이 좋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소가없으면 구유는 깨끗할지 모르지만 이로인하여 얻는게 많기에 소를 키우는게 아닌가?&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의미를 상실한 사람에겐 세상에 어떤일도 만족을 얻을 수 없다. 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장)를 설교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장구한 교회 역사와 현대교회 강단에서 수없이 해석되고 가르쳐진 내용이다. 모두에게 친숙한 이야기이기에 굳이 사족을 보탤 의도는 없지만 예수님 당시 ‘강도 만난 사람’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nbsp;</div><div><br></div><div>이타적으로 그를 도왔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현대적 적용은 무엇인지, 도대체 제사장과 레위인은 무슨 핑계와 합리화로 피해자를 외면한 것인지, 복음의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현대교회가 짐짓 회피하고 있는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 등 지금도 던져지는 질문들이 이 비유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3/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11381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현대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이 불편해지는 지점은 강도 만난 사람을 앞장서서 도울 것으로 기대됐던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유기다.&nbsp;&nbsp;만일 제사장과 레위인을 종교법정에 소환한다면 그들은 아마도 ‘회 칠한 무덤’(마 23:27)처럼 고상하고 설득력 있게 자신을 변호할 것이다. 종교 업무상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고 핑게를 댈지 모르겠다.&nbsp;</div><div><br></div><div>불교계에 이판승(理判僧)보다 사판승(事判僧)이 더 많았던 것처럼 경건이나 선교에 소홀히 하고 정치한답시고 나돌아 다니는 사판목(事判牧)들이 너무 많다. 교단의 주요 요직을 몇번이고 사양하는게 정상인데 그 자리에 가고 싶어 안달이고 꼼수가 난무한다.&nbsp;</div><div><br></div><div>그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아니었다. 꼭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현대적 해석으로 목사나 성직자가 강도 만난 이웃이 아니고, 오히려 질시를 받는 사마리아인이 선하다는 평가가 내려진다면 그건 아니라고 강변할 수있는가? 이재록 사건이 그렇고, 명성교회 사건도 일반 사회인들로 부터 교회와 성직자는 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평가가 내려졌던 결과물이다.</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제는 당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가, 목회자가 어떤지를 살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맹목적 순종을 강요한다면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독교의 탈을 쓰고 무속신앙으로 범벅이 된 언어가 지금도 공동체 속으로 깊이 파고 들고 있다. 교회 강단위에서 “목사를 내 쫓더니 암 걸려 죽었다” “십일조 내면 암에 안 걸린다” “예수 잘 믿으면 고속도로에서 펑크 안 난다” 이런 말을 듣고 열광하는 대형교회 신도들 중에는 지식인들도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너무 맹목적으로 길들여져 사유(思惟)하는 힘을 잃었다. 사유(思惟)하지 않으면 인간은 괴물이 되는데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생 제군은 내게서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철학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즉 다만 흉내 내기 위해서 사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사유(思惟)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 우리에게는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일이 필요하다. 힘센 사람, 박학자, 재주꾼, 활동가들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바탕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 ‘생각하지 말고 반응하라’는 모바일 시대의 생활양식이 문제이다. 모바일 기기는, 인간을 정보를 작동시키는 프로세서로 만든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검색하고, ‘좋아요’를 클릭하고, 톡을 보내고,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 때마다, 우리는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기계의 일부가 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을때까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결국 잠자리에 누워서는 내가 오늘 무슨 생각을 했지? 내가 정말 알고 있는게 뭐지? 아까 생각했던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 등등 생각의 홍수속에 살아가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을 살다보니 전혀 예상못한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인생을, 세상을, 교과서적으로만 살 수 없다는게 고민이다. 점점 세상은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 성장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게 되며 점차 뒤쳐져 결국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버리게 된다. '자연도태(自然淘汰)'라는 말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이러한 세태를 나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마 미래에도 여전히 그 때의 세태를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록 교과서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하고, 꼭 들어맞는다고는 말할 수없지만 그렇다고 완전 세상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써놓은 책도 아니고, 세상의 밝은 면만 강조하기 위해서 거짓말만 잔뜩 써놓은 책도 아니기에 참고서보단 교과서적으로 살려하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3/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1392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살인과 도적질을 빼놓고는 무엇이던지 도전해 볼 생각이다. 때로는 생각치도 못했던 난맥상(亂脈相)이 있을 수도 있고 난기류(亂氣流)를 만날 때도 있을 것이다. 난기류는 방향과 속도가 불규칙하게 바뀌면서 흐르는 기류. 항공기가 운항할 때 기체가 흔들리거나 고도(高度)가 갑자기 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듯 내 인생에도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믿진 않는다.&nbsp;</div><div><br></div><div>과거에도 있었고 사는 날까진 또 찾아 올 것이다. 강한 기류가 산맥을 넘을 때 그 산맥의 바람이 아랫쪽에 강한 회오리 바람이 생기기 때문에 발생하고, 성층권과 대류권 사이의 경계면에서 생기는 것은 강한 제트기류(Jet Stream)로 인해서 그 주변 공기가 교란되기 때문에 난기류가 형성된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항공기가 순항 중에 난기류 지역을 지나게 되면 기체가 요동을 치면서 순간적으로 급강하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고도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그 폭이 무려 상하 60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이 세상엔 난맥상(亂脈相)없는 곳이 없고 난기류(亂氣流)는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러기에 인류는 진보한다.&nbsp;</div><div><br></div><div><div>그나마 난기류(亂氣流)가 적게 일어나는 곳이 시골이고, 비록 전혀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농사일이 다. 아예 기대하지 않고 시작하는 일이니 놀랄일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늙으막에 시골가서 농사나 짓겠다는 소릴하는 데, 농사짓는 것이 가장 속편하다는 말은 개가 풀뜯어 먹는 소리다. 뙤약볕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농부를 보면 그런 사치스런 말이 안나올 것이다. 벌레에 물리고 모기에 피를 빨리면서 죽어라 땀흘리고도 본전도 못 건지는게 농사다.&nbsp;</div><div><br></div><div>내가 농사짓는 대부분은 지인들에게로 돌아 간다. 오늘도 가위로 부추를 베어 친구에게 주었다. 고생하여 키운걸 그냥 가져가기 미안한지 망설이는 녀석에게 기대 이상으로 상추도 수거해 가고 조금있으면 오이 가지 토마토 애호박이 생길텐데 내가 없어도 가져 가라고 허락해 주었다. 현장에서 일찍 돌아와 차를 파킹하면서 보니 동네 할머니 한개(?)가 오디 열매를 따고 있다.&nbsp;</div><div><br></div><div>아무리 시골이지만 남의 집에 들어와 오디를 딴다는게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눈감아 주었지만 혹시 이 할멈이 낫과 호미를 가져가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벌써 몇번째 농기구를 가져가는 손버릇 나쁜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이다. 지인에게 몇번 얻어다 놓았지만 계획 없어진다. 군산 공설시장 대장간에서 만들어 온 호미는 꼭 현관에 들여 놓을 정도이다.&nbsp;&nbsp;</div><div><br></div><div>하늘이 더 크린해지고 공기가 상쾌해졌다. 비가 그치니 풀벌레 소리가 더 청아하게 들린다. 자연의 소리가 너무 아름답다. 해가지면 적막강산에 빠져드는 곳이지만 대신 자연의 소리가 더 선명해진다. 소쩍새가 울고 산비들기들이 구구대는 소리에 내 마음이 가장 순수해지고 맑아진다.&nbsp;</div><div><br></div><div>보름달이 아니면 가로등 하나 없어 어둠속에 잠기는 곳이지만 조명을 끄면 상념의 세계가 열린다. 조명을 줄이면 자연의 세계가 열린다. 도시의 레온사인은 인간의 혼줄을 빼어버린다. 정신을 황패시켜 버리지만 불을 끄면 자연이 보이고 삶의 방향이 더 잘 보인다.</div></div><div><br></div></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nbsp;&nbsp;<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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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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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23 May 2026 11:39:5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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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골에 살려면 억척스러워지고 만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2/98e6ea0dcfc0173504024ee07271bdb111105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잡초가 잘 뽑아지기도 하지만 아침 나절에 옥수수를 백개를 심는데 예상보다 뤌씬 수월하게 심었다. 비가 흡족하게 내린 탓에 식물들이 땅맛을 알았는지 잘 자라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식물들에겐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했는지 모르지만 비는 사람의 마음을 우울 모드로 만들어 버린다. 유리창에 포물선을 그으며 빗방울 하나가 떨어질 때 작은 알갱이로 있었으면 저렇게 속절없이 낙하하지는 않았을텐 데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무거우면 추락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그래서 새털처럼 가볍게 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얼굴은 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능하면 정리할 건 정리하고 살려 노력중이다. 오늘 문득 미처 버리지 못한 잉여의 것들이 축제를 축제로 여기지 못하도록 나를 막았던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실제로 비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머릿속일 것이다. 정리된 마음은 정리된 환경에서 나올 것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오늘 갑자기 먼지를 날리며 쉬지 않고 정리를 하기로 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침부터 땀을 흘렸더니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오전내에 농삿일을 마치고 현장으로 출근해야 하기에 쉴틈없이 작업을 했는데, 난 식물들을 보면서 지난 세월 내 목회 여정을 반추한다. 모두가 주인의 손길만을 바라보는 애처로운 몸짓을 하고 있다. 잡초는 제발 자라지 말라해도 얼마나 생명력이 끈질긴지 뽑아도 뽑아도 이겨낼 재간이 없을 정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차피 식물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 텃밭 근처엔 제초제 사용을 일체 금하고 있지만 대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풀을 뽑아도 장마가 시작되면 난 결국 포기하게 될 것이다. 텃밭에서 좀 멀찍이 자라면 잡초도 생명이기에 구태어 악날(?)한 방법을 동원하고 싶진 않지만 꼭 이것들은 식물과 뿌리를 함께 내리고 기생하려 한다. 신기한 것은 파밭엔 파와 생김새가 비슷한 풀들이 자라고 이파리가 큰 작물곁엔 생김새가 비슷한 것들이 자란다. 주인을 헷갈리게 만들려는 수작이다. 목회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처음부터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흔지 않다. <span style="line-height: 1.5;">어떤 땐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럴듯하고 좋아 보일 때도 있다. 교역자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목소리를 내리 깔면 신령하게 보이고 팔에 줄이 두어개 그려진 가운을 입혀 놓으면 실제로 유식하게 보인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어차피 교인들이 못 알아 듣는 설교이기에 영어 몇마디쯤 섞어 유식한 티를 내야 인정받는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class="imgwrap"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width: 412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매일 물주고 비싼 거름을 주며 가꾸면 자양분을 잡초들이 다 빨아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 사생결단하듯 풀을 제거한다. 잡초도 생명이라는 자연론자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지만 식물을 키우는 농부의 심정이나 목양을 하는 목회자의 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린 식물들이 억센 풀들 틈에서 자라기엔 너무 힘든 여건이다.<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잡초는 내버려 두어도 환경에 구해받지 않고 자라지만, 심지어는 돌틈에서도 자라지만, 식물은 조금만 방심하면 말라 죽거나 병충해의 습격에 시들어 죽게 된다. 그렇다면 선택은 자명하다. 여린 식물에 더 관심과 애정을 쏟는 방법밖에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힘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치닥거리하느라 점점 기력을 잃어 간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농부의 심정이 아니라 기업가의 판단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목사가 목자인가? CEO에 가까운 목회자가 대부분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경영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목사는 많지만 목회자가 사라지는 추세이다. 교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목사들이 많다. 자그만 텃밭을 일구다 보니 정말 내 목회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실감하고 있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텃밭에 가득한 잡초들을 손마디가 부서져라 뽑는 이유는 식물을 지키기 위함이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굳은 살이 박혔지만 날이 갈수록 애정의 강도는 더해만 간다. 이런 심정으로 목회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남은 내 생애는 진지함을 더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내 텃밭엔 어느 것 하나 저절로 핀 것이 없다. 내 손 길을 거쳐 만들어진 식물들과 꽃들이기에 애정이 더간다. 황혼에 비춰진 꽃들이 정말 아름답다. 홀리팜을 거닐며 내일 일을 구상한다. 지칠만 하지만 일하는 동안은 항상 마음이 가볍다.&nbsp;</span>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덕담을 건넨다. 식탐이 줄어 먹는게 부실하다 보니 체중이 많이 줄었는데도 건강해 보인다며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고 묻는다.&nbsp;</div><div><br></div><div>건강의 비결? 잘먹는 것도 아니고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데, 건강해질리가 없다. 구내어 말하라면 노동을 즐긴다는 점과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한다는 걸 신조처럼 신봉한다는 점일게다. 어차피 도움받을 곳이 없다는 점과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가능하면 짜증내지 않고 노동을 즐기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난 홀리팜 마당을 필드라고 부른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나이샷을 외친다. 그 뿐이다.&nbsp;</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2/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11115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하루가 다르게 식물들이 성장하기에 내 쉼의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일손을 놓을 수가 없다. 다른집에 비해 내 텃밭은 물과 정성만을 가지고 키우기에 힘이 배나 더 든다.&nbsp;</div><div><br></div><div>제초제로 풀을 제거하고 화학 비료와 농약으로 벌레를 퇴치하면 훨씬 일이 줄어들고 수확도 많아지겠지만 일일히 수작업으로 풀을 뽑고 물만으로 키우려니 내 손은 항상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되어 가고 있다.&nbsp;</div><div><br></div><div>저녁이면 바늘로 물집을 터트리고 일회용 밴드를 붙히고 잠에 들고 자가가도 다리에 쥐가 나 한두번씩 깨어자지만 그래도 고달프단 생각보다는 시골생활을 하면서 가능하면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난 원래 콩밥을 싫어하여 어렸을 적부터 콩은 골라내고 먹는 버릇이 있었고, 청국장이나 된장은 생김새가 꼭 거시기 같아서 입에 대지 않았는데, 요즘은 일부러 찾아 먹을 정도로 까다로운 식성이 변했다.&nbsp;</div><div><br></div><div>변한게 식성만이 아니다. 모든걸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기에 세탁기 사용법에서 부터 농작물을 키우는 법, 농기구 다루는 법까지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며 응용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식물들에게 시선을 돌리기에 너무 바쁜 나날이다. 건축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들지만 혼자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사색하는 시간이기에 불만이 없다.</div></div><div><br></div><div><div>시골에 살려면 억척스러워지고 만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봐도 대견스럽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시골로 가겠다고 했을 때 석달을 못견디고 올라 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끔 친구들은 이제 지치거나 실증이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난 지금 생활에 내 삶의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nbsp;</div><div><br></div><div>일하는게 즐겁다. 지금의 나는 비닐 하나도 그냥 버리질 않는다. 시골생활은 모든걸 재활용할 수가 있기에 버리면 손해라는 생각으로 모두 모아놓았다가 재 사용한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도 하소연 할 사람도 없기에 모든걸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무조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버린지가 오래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떨지는 모르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매일 매일 쏟아 붓고 있을뿐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2/eb5360e96c7cf1c3eb59fd637d3b4ba111132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최고는 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려 한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찾으려 노력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 편하고 너무 흔했기에 소중한걸 놓치고 살아 온 지난 날이 후회스럽기만 하다.&nbsp;</div><div><br></div><div>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너무 많으면 귀한줄 모른다. 가까히 있으면 소중한줄을 모른다. 부모도 세상을 떠나야 불효한 것이 생각난다. 난 개척교회로 부터 중형교회를 담임하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처음 개척교회 시절 신자 한 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 살이라도 뜯어 먹여주고 싶은 심정으로 목회를 하였었다.&nbsp;</div><div><br></div><div>나중에 교인이 많아져 할 일이 많아지니 의도적은 아니지만 초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물론 세상도 마찮가지이지만 많아지면 손길이 덜 가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누구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lt;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gt;는 성경구절을 목양실에 걸어두긴 했지만 목회 외적인 일에 마음을 빼앗겨 전심전력을 하지 못한걸 후회한다.</div><div><br></div></div></span></span></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span></div></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br></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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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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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2 May 2026 11:14:33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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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와 Tango</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1/f7f3811002a9fe84840b287381debd8a1044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비가 내리니 더 을시년스러워 지고 이유도 없이 마음은 한없이 나약해지기 시작한다. 비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 할일이 많은데 이런 감상에 빠져들면 감내하기가 어렵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별히 만날 사람도 없지만 바람이 불면 가슴이 시려오고 비라도 내리면 가슴이 먼저 어딘가를 향해서 젖어든다. 빈 하늘이 더 없이 크게 느껴지고, 바람 타고 흔들리는 나무가지의 몸부림이 내 몸부림 같아 마음 속이 아려올지도 모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마음은 텅 비어 있고, 무념도 아닌 것이 무상도 아닌 것이 흘러가는 시간앞에 지나가는 바람앞에 사정없이 흔들릴 것이다. 비울래야 쉬 비워지지 않고 채울래야 쉬 채워지지 않는, 늘 2% 부족한 그 무엇을 느끼며 시간 앞에 바람 앞에 기대고 싶어질게 뻔하다. 공허하다는 건 꼭 부족한 것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난은 채움 때문에 생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nbsp;중장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묘약은 버티는 것이다. 버티다 보면 세상이 가소로워 보인다. 세상은 작아진다. 독일인 저널리스트인 레베카 니아지 샤하비가 '나는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에서 규정한 '이기적 삶'을 정리해 보면, 이기적으로 산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현명하고 똑똑하게 나 자신을 생각하고 산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사람으로써 갈등하지 않을 수없는 현실 앞에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nbsp; &nbsp;</div><div><br></div><div>물론 사회는 깐깐한 사람 위주로 돌아 간다. 나 같이 물텀벙처럼 살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노골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은근히 무시당하는 느낌을 수없이 받아왔지만 싸움에 잼병이기에 차라리 피하며 살아 온게 사실이다. 그래서 독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nbsp;</div><div><br></div><div>비가 계속 내리면 자크 프레베르의 시 한 구절과 이브 몽땅의 노래가 절로 떠오른다. 우리네 생도 저와 같지 않은가. 생이 아름답기를 열망하면서 먼저 살다간 많은 이들도 비 속에서 한때 외로웠으리라. 시심(詩心)을 부르는 비가 내리고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 꽃잎위에 구른다. 봄비는 새뜻하고 여름비는 장쾌하고 가을비는 차 한 잔을 부르고, 겨울비는 '떠나보낸 사랑'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던가?&nbsp;</div><div><br></div><div>캄캄한 하늘에서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빗소리. 저 비는 한 많고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내려주는 ‘자비(慈悲)의 물줄기’일 수도 있고, 남이 편안하게 잠에 빠질 시각에 지붕에서 빗방울이 새서 깡통을 받쳐놓고 있거나 하수구가 넘쳐 물이 휩쓸지 않도록 대비하고 있을 가난한 이웃들에게는 정련(精鍊)의 신호일 수 있다.&nbsp;</div><div><br></div><div><div>시인 조병화가 노래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은 아니더라도 세월의 어께를 살짝 들취보여 비에 얽힌 추억 한토막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 한적한 지방도로라 그런지 차들이 빗속에 질주한다. 우산 쓴 행인들을 고려하여 빗물이 고인 웅덩이는 조심스럽게 운행하지 저렇게 내달리면 물보라가 일고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생길텐데 거침이 없다.&nbsp;&nbsp;</div><div><br></div><div>특히나 25톤 '압사바리'들의 횡포엔 '저 쌍놈의 새끼'하는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나 역시 한적한 도로를 드라이브할 때 일부러 물웅덩이에 바퀴를 넣고 세차를 했지만 큰차들은 비오는 날 조심 운전을 해야 한다. 큰차의 질주엔 속수무책이다. 시골 길가집 창문은 흙탕물로 얼룩진 자국들이 선명하다. 그래서 큰차들의 횡포를 막으려 동네마다 '방지턱'을 설치한다.&nbsp;&nbsp;</div><div><br></div><div>오늘날 성공한자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대형 '압사바리'라고 마구 달리려 하면 대형사고가 난다. 교회도 마찮가지이다. 대형교회 목회자들도 빗길은 조심해야 한다. 나로인해 가슴을 후벼파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겸허해져야 한다. 비오는 날 우산쓰고 길거릴 나선 놈의 잘못이라고 우기지 말아야 한다. 물이 고이도록 도로 설계를 잘못한 놈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등치 큰 것들이 조금만 조심하면 된다. 교세 좀 키웠다고 기고만장(氣高萬丈)할 때 개척교회, 미자립교회 목회자의 눈에선 피눈물이 흐른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1/ea49a2f30887fa493edd40971f9088d7104643.gif"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이런 침묵이 길어지는 시간에 우수(憂愁)에 젖어드는 건 괜찮은 느낌이다. 한번쯤 무상을 느껴보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 속에 흠뻑 젖어들어도 좋을 것이다. 가을에 꽃이 지는 줄 뻔히 알면서도 지는 꽃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 그런 게 인생 아니던가. 비가 사람을 감성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nbsp;&nbsp;사람들이 비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nbsp;</div><div><br></div><div>서로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날은 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이 더 높은 확률을 차지한다고 한다. 전적으로 공감이 되는 말이다. 그래서 사랑을 고백하려거든 비 오는 날 하라고 했던가. 시간의 흐름을 독촉이라도 하는 듯....... 잠시 감성의 비를 맞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 그런대로 견딜만한 하루였다. 다행히 두터운 내복을 입고 나온게 다행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차가운 건 날씨뿐만이 아니다.&nbsp;</div><div><br></div><div>머리의 회전만을 중시하는 세상은 더없이 냉혹하고 차갑다. 이 사회는 머리만이 존재할 뿐 따뜻한 가슴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라. 온갖 종류의 부정과 비리, 사기와 속임수, 그 밑바탕에는 간교와 머리가 작용하고 있다. 심장은 그런 걸 관여하지 않는다. 가슴은 그런 일에 관계하지 않는다. 사람을 뽑는 대학에서 머리만 중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머리의 회전만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문제를 안을 수밖에 없다.&nbsp;</div><div><br></div></div><div><div>비는 사람의 마음을 우울모드로 만들어 버린다. 유리창에 포물선을 그으며 빗방울 하나가 떨어진다. 작은 알갱이로 있었으면 저렇게 속절없이 낙하하지는 않았을텐 데....무거우면 추락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새털처럼 가볍게 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얼굴은 펴고 살아야겠다. 가능하면 정리할 건 정리하고 살려 노력중이다.&nbsp;</div><div><br></div><div>오늘 문득 미처 버리지 못한 잉여의 것들이 축제를 축제로 여기지 못하도록 나를 막았던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실제로 비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머릿속일 것이다. 정리된 마음은 정리된 환경에서 나올 것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오늘 갑자기 먼지를 날리며 쉬지 않고 정리를 하기로 했다.&nbsp;</div><div><br></div><div>비가 내리니 무엇인가 생각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설픈 시작(詩作)을 해보았다. 유치한 글만 만들어진다. 내 영성이나 감성이 무디어진 탓일게다. 몇번 끄적이다 포기하고 말았다. 내 책상머리엔 모든 책을 다 치워 버렸지만 빛고을 박성준 시집만은 항상 비치되어 있다. 나도 시인으로 등단을 했었지만 대부분 미완성작으로 마칠 때가 많았다. 아무나에게 시상(詩想)이 주어지지 않는다.&nbsp;</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5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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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21 May 2026 10:47:3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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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비가 내리니 정원이 더 푸르러진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0/6bb87f1e28039ea6231b750ef7aee40113245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과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차분히 앉아 텃밭을 가꾸려했는데 예보완 달리 아침 일찍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왕 작정한 일이기에 비를 맞으며 풀을 뽑았다. 옥수수 백여개를 울타리 근처에 심기 위해 이 정도의 출혈은 감내해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허리가 부실하기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땅을 파는 일은 힘이들진 않지만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허리가 몹시 아프다. 몇년동안 고생했던 터널 수지증후군은 사라졌지만 허리가 말썽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다못한 인부들이 할머니들이 일하며 허리에 차는 방석을 하나 구입하라고 닥달하지만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앉은뱅이 의자라도 하나 있으면 앉아서 작업을 하면 능률도 오르고 힘도 덜 들 것 같은데, 나는 이 자세로 몇년간 일을 했기에 기어다니며 일하는게 편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난 일을 할 때 삽보다는 호미가 편하다. 앉아서 기어다니며 호미질을 하는게 내 체질적으로 맞는 것 같다. 친구녀석들이 내가 일하는 걸 보더니 호미로 만리장성을 쌓을 놈이라고 빈정대는데, 삽이나 괭이 또는 쇠스랑으로 하는 것보단 그냥 땅바닥에 앉아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호미질하는게 편하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여유작작하는게 좋아서 좀 미련한 방법이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 빨리 끝낸다고 누가 표창장을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빨리 할 필요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가능하면 계획적으로 살려 노력중이다. 그간엔 너무 즉흥적으로 살아왔기에 이젠 마음에 작정한 것은 반드시 지키려 애를 쓰고 있다. 아무리 조신한 사람이라 해도 마음먹은대로, 흐트러짐없이 살긴 어렵다. 그래서 매일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내가 매일 이 시간이면 어줍잖은 글이라도 만들려 고민하는 이유도 흐트러짐을 미연에 막고자 함이다.&nbsp;</span></div><div><br></div><div>나라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몇가지 있다. 먼저는 간밤에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이 첫째일 것이다. 이는 열아홉살 때 서울신학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거의 40년동안 습관적으로 해 온 일이기에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다.&nbsp;</div><div><br></div><div>혹자는 목회의 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났으니 자유롭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자칫하면 스스로 허물어질까봐 영성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비록 길게 기도하지는 못하지만 깊고 간절하게 기도한다.&nbsp;&nbsp;그리고 기도를 약속한 몇몇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난 죽는 날까지 목사로 남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때로는 목사가 된 걸 후회할 때도 있었지만 소명에 대한 확신은 언제나 똑같다. 비록 교회와 섬겨야 할 교인은 없지만 말이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무심한 봄비가 하루종일 내려 마음을 침울하게 만든다. 일을 중단하고 책상머리에 앉아 궁상을 떨었다. 하지만 이 비에 녹색정원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자 힘들다는 걸 잊어버리게 만든다.&nbsp;&nbsp;다른사람들에게도 마찮가지겠지만 나에겐 녹색이 절대 필요하다. 아니, 현대인에게는 綠色이 절대로 필요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에 들어서면 대게는 상쾌하고 편안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초록색 식물들이 갓 뿜어낸 싱싱한 산소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도 있지만 초록색이 주는 안전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초록색은 몸 속의 모세혈관을 넓혀 혈압을 낮추고 긴장을 풀어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 봉사 단체의 옷이나 마크가 대부분 초록색인 것도 이 때문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0/bba773250763760987230034238d7a041326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쿠르트 골드슈타인(Kurt Goldstein)은 색채의 심리학적 측면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재능이 풍부한 연구자이다. 골드슈타인의 견해에 따르면, 빨간 빛의 영향을 받고 있을 때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영향이 있으며, 그와는 반대로 초록색이나 파란 빛을 받을 때에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즐겁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과 장시간 비행을 하는 시간의 길이는 같더라도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다르다. 유럽을 몇차례 다녀오면서 열시간이 이렇게 긴 시간인 걸 깨닫았다. 몸살이 날 정도이다. 그러나 비록 몸은 힘들지만 홀리팜에서 땀흘리다 보면 식사 시간을 놓칠 때가 대분이다. 금방 해가 저물고 날이 저물어 버리는 걸 느낄 때가 많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상대하기 거북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의 길이는 더 길게 느껴진다. 하기 싫은 일을 강요받았을 때의 시간도 지루함으로 인해 길게 느껴진다. 반면 좋은 사람과의 교분과 자발적인 노동의 시간은 긴 시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특히나 녹색(綠色) 정원에서의 시간은 인간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만들고 한결 여유로움을 선사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고민이다. 그나마 녹색 정원을 만들면서 심리적으로 위안을 삼지만&nbsp;<span style="color: rgb(15, 15, 15); font-family: Roboto, Arial, sans-serif; font-size: medium;">근감소증이 나에겐 최고의 관심사가 되었다. 근육이 사라지는 걸 염려 하면서 먹기에 열중하려지만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도 도무지 배가 고프단 생각을 해보지 않을 정도이</span>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책상위엔 겉저리 김치와 멸치볶음이 놓여있어 수시로 입근육이 활동하도록 근것질(?)을 한다. 아마도 그것이 내 영양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탄소화물을 언제 먹어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밥이 싫다. 가끔 국수를 먹어 보지만 그것도 초딩보다도 못한 량이다. 가끔 먹방 프로그램을 보면서 깡마른 여자가 짜장 열그릇씩 먹어치우는 걸 보면 입맛이 돌아올까 기대해 보지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이야기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주가는 식당에 부탁하여 건 오징어 조림을 부탁했다. 무엇이라도 입에 넣어야 할 것 같아서 주전부리를 하려 마음먹지만 그것도 일주일을 못가 실증을 느낄게 뻔하다. 소장이 내일은 본죽집에 가서 낙지죽을 사다 준다지만 아직은 사지가 멀쩡한데 환자식을 할 수 없고 내일도 비가 내리면 부안에 가서 바지락죽을 먹기로 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비가 그치면 마저 땅을 파려 했는 데, 점점 빗줄기가 굴어진다. 방에 들어와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갑짜기 홀리팜에 내려 가 옷을 벗고 개구장이로 돌아 가 비를 흠뻑 맞고 싶어진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라 부자집 몇을 빼놓고는 모두가 단벌이어서 비를 맞으면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어야 했기에 빤스 하나만 걸치고 냇가에 나가 철이른 물장구를 치며 고무신으로 붕어를 잡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nbsp;&nbsp;</div><div><br></div><div>어려서는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점점 나이를 먹게 되자 오히려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아이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요즘 가만히 내 마음을 되짚어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어른이 되면서 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이들은 옷이 젖어도 상관없어 하나 어른들은 옷이 젖는 걸 몹시 두려워한다.&nbsp;</div><div><br></div><div>아이들은 속옷이 젖을까봐 걱정하나 어른들은 젖은 속옷을 입더라도 겉옷이 젖은 것은 숨기려 한다. 벌거숭이가 되어 뛰어 놀다보면 맨살에서 김이 모락 모락 나는데 어른들은 감기든다고 성화를 대지만 아량곳하지 않았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0/0f19efb7eb7714c60ef7a67e81f409a913270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은 우요일(雨曜日),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옷만 아니라 온 몸이 다 젖고, 마음까지도 젖고 싶다. 그렇게 일단 흠뻑 젖고 나면 조금만 비가 내려도 이내 속까지 스며들지 않겠는가. 느낌도 감정도 메말라 버린 내게 일주일 7일 중 한 날은 우요일로 하여 마음도 몸도 젖어보는 때를 누리고 싶다.&nbsp;&nbsp;</div><div><br></div><div>젖는다는 것은 나를 내놓는다는 것이리라.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말이리라. 가식과 위선을 벗고 순수로 돌아간다는 말이리라. 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교만과 아집의 때, 나를 두르고 있는 거짓스런 치장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저 어린 날처럼 빗속을 마구 달리고 싶다.&nbsp;</div><div><br></div><div>비를 맞는 것, 비에 젖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던 어린 날처럼 말이다. 시골은 비가 내리면 질퍽거리면서 얼마 안있어 모두 땅속으로 스며들지만 도시는 전혀 딴판이다. 스며들 곳을 찾지 못해 낮은 곳으로 몰려가는 빗물들이 아스팔트길에서 갈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nbsp;</div><div><br></div><div>도시의 가로수는 어쩜 불행한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이 몹시 피곤하지만 근사한 소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비의 리듬을 들으며 망중한을 즐겼다.&nbsp;&nbsp;비가 내리니 정원이 더 아름답다. 마음에 꼭 드는 건 아니지만 방문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상당한 수준이란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최소 경비로 정원을 꾸미고 가꾸었다는 점에선 할 말이 많다.&nbsp;</div><div><br></div><div>엊그제 정원에서 일하다가 미끄러지면서 대추나무에 얼굴을 부딪혔다. 다행히 외상은 없지만 콧잔등이 욱신거리더니 하루밤이 지나고 나니 코뼈가 부었는지 만지지도 못할 정도로 아프다. 그러안해도 주일날만 겨우 세수하고 사는데, 이제 당분간은 면도도 못할 지경이다. 오늘은 그나마 비를 맞았기에 세수를 자동적으로 했지만 내일부턴 이를 핑게대고 그냥 활보해도 될 것 같다.</div><div><br></div><div>내가 아침마다 기도한 덕에 나무 가지에 눈이 찔리지 않은 거라 생각이 들자 갑짜기 감사한 마음이 든다.&nbsp;&nbsp;<span style="color: rgb(0, 0, 0); font-family: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quot;Noto Sans Kr&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algun Gothic&quot;, dotum, 돋움, tahoma, sans-serif;">“Those who trust in the LORD are like Mount Zion, which cannot be shaken but endures forever. As the mountains surround Jerusalem, so the LORD surrounds his people both now and forevermore.”(Psalms 125:1∼2)</span></div><br style="margin: 0px; padding: 0px; color: rgb(0, 0, 0); font-family: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quot;Noto Sans Kr&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algun Gothic&quot;, dotum, 돋움, tahoma, sans-serif;"><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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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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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20 May 2026 13:28:2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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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우울증 초기 증상이 내안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관이 없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9/688b8a4423a01a1fb3c517de2ea43f4505494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칠십 평생을 살았으니 대충이나마 인생을 통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정리가 안되어 있어 고민스럽기만 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기능하면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아 후회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며 객관화시켜 보는 데, 결국 아직 미숙한 면이 더 많다는 결론을 얻을 때가 많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미숙한 사람은 자기를 닮은 사람만 좋아하고 </span><span style="line-height: 1.5;">성숙한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도 좋아한다. </span><span style="line-height: 1.5;">미숙한 사람은 인연도 악연으로 만들고 </span><span style="line-height: 1.5;">성숙한 사람은 악연이야말로 인연으로 </span><span style="line-height: 1.5;">나아가는 징검다리라는 사실을 알고있다. </span><span style="line-height: 1.5;">미숙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찾지만 </span><span style="line-height: 1.5;">성숙한 사람은 꼭 해야만 하는 일들로부터 </span><span style="line-height: 1.5;">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산다.&nbsp;</span><div><div><br>미숙한 사람은 고난이나 불행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바람과 물결이 항상 유능한 항해사 편에 선다고 믿으며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미숙한 사람은 좋고 싫고를 따지지만 성숙한 사람은 옳고 그르고를 선택한다. 미숙한 사람은 불행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지만 성숙한 사람은 큰 불행도 망원경으로 들여다본다.</div><div><br></div><div>신영복 선생은 그의 저서 '강의'에서 "나는 그 '자리'가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라고 적고있다.&nbsp;</div><div><br></div><div>능력이 50인 사람이 100의 자리에 앉아있으면 그 구성원들이 불행해지고, 자신도 좌불안석(坐不安席)이 되어 눈치보기에 급급해진다. 결국 그 모자라는 부분을 거짓이나 위선 그리고 아첨으로 채우게 되는 순간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 밖에 없다.<div><br><span style="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background-color: rgb(128, 0, 0);">동양화가 서양화에 비하여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백(餘白)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전체를 채우는게 아니라 약간의 공백을 두어 독자의 상상력에게 맡기는 기법이야말로 동양화의 진수(眞髓)였다.<br></span></span><br>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얻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부(富)나 높은 자리도 좋지만, 그 이전에 그렇게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깜냥과 그릇을 잘 살펴, 무리하지 않고 그칠 줄 아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즉 자신의 분수(分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div>내 삶의 숨가쁜 시간들에 잠시 <span style="line-height: 1.5; color: rgb(255, 255, 255); background-color: rgb(128, 0, 0);">여백(餘白)</span><span style="line-height: 1.5;">을 만끽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고쳐먹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언제 촛불을 켜보고 언제 별을 헤아려 볼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나에게도 예수님의 마음이 약간은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span>주님은 유다의 입맟춤도 허용하셨다. 알고도 눈감아 주신 그 사랑때문에 우리가 존재한다.&nbsp;</div><div><br></div></div></div></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9/0d6b3fcec0f98ec6a386b09d71b34eef05505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우선시하면 안된다. 나는 가끔 비행기를 타고 35000피트 상공을 날 땐 지금 시속 1000km로 날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모든게 정지된걸로 착각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비행한다. 내가 느낄 수 없다고 비행기가 그냥 떠 있기만 했는가?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목적지에 착륙할 때 엄청난 속도로 비행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젊은 시절 허비한 시간들이 후회로 남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선진국보다는 미개발국을 선호하여 아직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나라를 가보질 못했다. 아마도 내 생전엔 가지 않을 생각이다. 미국 갈 돈있으면 동남아 열번 다녀오려 한다. 일단 마음이 여유롭다. 인위적으로 꾸민 관광지보단 물과 땅이 맞닿은 곳엔 어김없이 풍성한 수초들, 그리고 새들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고, 흙탕물에 세수하고 목욕하고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캄보디아 톤레샵호수에서 난 조용히 탄식한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아무렇지도 않게 널려있다. 아마 우리나라에도 몇 십 년 전엔 너무도 당연했던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러했던 당연함을 이젠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이 곳 먼 곳까지 와야 볼 수 있다니...우린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이 너무 많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금강 지류에 불과한 흙탕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비맞은 중 구시렁거리듯' 알듯 모를듯 신음처럼 내뱉는 소리겠지만 지금은 앙코르왓보다 더 장엄한 자연의 서사시에 취해 버렸다. 둔덕 위에는 선들 바람에 마른 억새풀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은 잔뜩 날이 흐려있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태세이다. 모내기가 시작되어 물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고 내 텃밭에도 물이 필요한 시점이라 비를 기다리고 있지만 비가 내리기 전 지지대를 설치해 주어야 한다.&nbsp;<br>&nbsp;<br>몸이 천근만근이다. 어제 늦게까지 잔디를 심었더니 허리가 더 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등이 굽은 걸 후회하진 않는다. 황혼의 시간, 낙조를 바라보며 뜻모를 감상에 젖는 우울증 초기 증상이 내안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관이 없다. 떠오를 때는 어지간히 천천히 올라오던 해도 넘어갈 때는 왜 그리 바삐 서둘러 가는지 모른다. 똑같은 속도이지만 일출과 일몰에 느끼는 시간의 길이는 전혀 다른다. 황혼녘 인생 같다. 모래시계의 남은 모래알처럼 차츰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실버들에겐 공통적으로 있을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주변의 사람들 중 자꾸만 마음의 크기가 커지고 삶의 깊이가 깊어지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두려워지기 한이 없고 그렇게 두렵고 두려워서 삶에 대한 의지와 열의를 다져보다가 책을 읽으면 저리 될까. 생각을 많이 하면 저리 될까. 고민 고민하다. 끝내는 다 포기하고 에라 모르겠다. 나는 나대로 살지 뭐. 그러다가 지금이라도 뭐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된다.<br><br>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거다. 죽을만큼 아팠던 기억까지도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을만큼 의연해 질 수 있다는 것. 뒤돌아서서 눈물 흘릴지언정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보일 수 있다는 것. 아주 사소한 일에조차 시기와 질투를 번갈아가며 되풀이하던 일상도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거라고 자위했다.<br>&nbsp;<br>어릴 때 썩은 이를 뽑기위해 명주 실로 이를 묶으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간 소처럼 닭똥같은 눈물을<br>흘리며 뽑히지 않으려 앙탈을 부렸다. 그래도 이를 뽑으면 포상금을준다는 말에 결국 뽑았지만 이젠 썩은 이를 뽑아줄 부모님도 안 계시고, 뽑은 이를 지붕위에 던지면 새 이가 난다는 속설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세월은 그렇게 무심히 흐렀다. 그나마 텃밭을 일구며 열심히 호미질하는게 얼마나 행복한가.&nbsp;&nbsp;<br>&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4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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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9 May 2026 05:52:2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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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지구의 종말이 다가와도 난 고추를 심는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7/ae63f7a16b84685674cfab53adcb864505141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일 먹어갈 수록 여자들의 상투적인 말을 들어보면, "늙어 밥굶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마누라 말 잘 들어야 해~"라고 한 마디씩 명언처럼 던진다. 그럼 그 말을 듣는 주위 모든 사람들은 '옳거니!' 하고 박장대소하며 함께 깔깔거린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부부 사이에도 이런 농담은 자연스럽게 오고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농담들을 주고받을 때 내 절친 한녀석은 '나는 끝까지 밥 세끼 다 차려 얻어 먹고 간식에 야식까지 얻어먹다 갈란다~'라고 마치 무슨 심통이라도 부리듯이 그런 고약한 다짐을 스스로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대단한 강심장이며 간댕이가 붓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담대(?)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그 자랑스런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남편의 밥은 항상 아랫묵 이블밑에 넣어 두었다가 한밤중에 귀가했어도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던 어머니 세대가 들으면 통탄할 노릇이지만 현실인즉, 삼시 새끼를 다 집밥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남자도 할 수만 있다면 부엌에 들어가는 걸 당연한 일로 받아 들이는게 좋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 혼자사는 구성원이 천만명을 웃도는 현실이긴 하지만 슈퍼에 가면 혼밥족의 천국이라 할만큼 다양한 식재료들이 많다. 한국인의 식탁에 빠질 수 없는 메뉴 중 하나인 국, 탕, 찌개는 1인 가구들에게는 남는 재료와 불편한 식재료 손질 때문에 부담이 되는 메뉴가 아닐 수 없지만, 아워홈이 선보이는 국, 탕, 찌개 가정간편식을 이용하면 손쉽게 데우기만 해도 요리사가 만든 듯한 맛을 선보일 수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뿐아니다. 매 시즌 마다 삼계탕, 육개장, 사골곰탕, 감자탕, 해장국, 김치찌개 등 없는게 없다. 오히려 어설픈 요리사가 만든 것보다 월씬 맛도있고 영양가도 높다. 나도 최근에 '동태알탕'을 끓여 먹었는 데, 돌아가신 어머니 솜씨를 방불했다. 그냥 '동태알탕’은 끓는 물에 제품을 그대로 넣고 5~6분간 데우거나, 냄비나 뚝배기에 직접 부어 강불로 4~5분간 끓이면, 직접 요리한 듯한&nbsp; 매운탕을 즐길 수 있다.&nbsp; &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은 여성에게 자유의 시간이 허용되는 것이 대세이다. 얼마전 TV를 보니 장경동목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설교하는 걸 보았다. 정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었는지는 나중에 천국에 가서 물어 볼 생각이고, 일단 내 생각은 아브라함보다 그의 아내 사라가 모든 남성의 로망이고 천사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라가 아브라함을 만들었다고 본다. 첩질해도 그 꼴 다보고, 자기 목숨 부지하겠다고 불레셋 왕에게 보내었으며, 아무 관련이 없는 지나가는 행인을 불러 소잡아 대접하고,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가지 긁지 않는 걸 보면서 사라의 위대함에 감탄하게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중에 한가지만 걸려도 초전박살 났을 것이다. 요즘 대세가 혼밥족이지만 혼자 밥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내 지은죄(?)가 막중한 데 어찌 삼시세끼를 바라겠는가?</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릴적 내가 살던 곳은 역전 근방이었다. 호남선과 전라선 군산선으로 갈라지는 분깃점에 있었기에 서울역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가장 큰 驛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이기에 서울에 가려면 반드시 열차를 이용해야 하고 통상적으로 완행열차는 아홉시간이라고 말하지만 두세 시간은 연착하기 일수였지만 항의 한번 못해 본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여름밤에는 역전 벤치가 시민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고 서울을 다녀 오는 사람을 온가족이 마중나오기도 했다. 지금이야 해외여행을 다녀 와도 인천공항에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고 해외에 나가는 교인을 위해 직접 공항에 나가 축복 기도를 해주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주일날 안보이면 거의 해외에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nbsp; &nbsp;&nbsp;<br><div><br></div><div>그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나는 역전을 서성일 때가 종종있다. 어렸을 떄 보고 느꼈던 광경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직도 내 뇌리속엔 그 시절의 광경이 너무 또렷하다. 이리역은 인근 지역에서 이 곳의 특산품인 밤고구마를 잔뜩 실은 소 달구지가 열차시간에 맟추어 오곤 했는 데, 지금처럼 도로가 포장된 상태가 아니기에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질퍽해 진 신작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nbsp;</div><div><br></div><div>당연히 진흙탕속에 마차 바뀌라도 빠지는 날이면 아무리 기운이 쎈 황소라도 별 수가 없었다. 마부의 소리는 거칠어지고 육두문자가 난무하며 채찍질해보건만 욕심껏 짐을 실은 마차는 더 깊어 빠져들어갔다. 결국 마차에 실린 고구마를 다 내려놓고서야 수렁에 빠진 마차를 마른 땅으로 끌어 올릴 수가 있었는 데, 뒤에서 밀어주고 싶어도 마차에서 튕기는 흙탕물에 누구하나 도와줄 염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추억의 장소로 영원히 남아 있을 풍경이 가끔씩 클로즈업될 때가 많다.&nbsp;</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7/b9e540085c2f69f21fb914d28d87437305150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귀향후 십년이 지나면서 의도적이던 아니던 간에 내 존재감이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부질없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면서 불필요한 만남을 기피하다 보니 내 주변에 심혼을 알아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독한마음(?)을 먹고 분투한다. 믿는 구석이 없을 때, 한 걸음 뒤면 절벽이라는 절박함이 있을 때, 필사의 노력이 나오고 위대한 성취가 나온다.&nbsp;</div><div><br></div><div>사람은 믿는 구석이 있으면 거기에 기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기 어렵다. 벼랑 끝에 나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면 자기 힘의 100퍼센트만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사람의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과연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일들도 마음 독하게 먹고 하면 가능한 일이 꽤 많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그런 능력은 평상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매우 절박한 상황에 놓여야만 비로소 그런 능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사실은 내가 직접 체험하고 있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문제이다. 만약 조수라도 한명 있었다면 손바닥 마디 마디에 물집이 생기고 부실한 허리의 통증을 피할 수 있을을테지만 나에게는 주님외엔 믿는 구석이 존재하지 않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일하면서 삶의 의욕을 얻었다는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nbsp;</div><div><br></div><div>나는 시골 사람들은 무식하고 거칠다는 편견을 버린지 오래이다. 모두 위대한 부모님들이다. 자기 몸 하나 운신하기도 어렵지만 아직도 허리 한번 펴질 못하고 일에 내몰리고 있다. 내가 죽겠다고 한숨을 토해낼 때마다 노인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저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인데 엄살이 너무 심하단 생각이 든다.</div><div><br></div><div>예배를 드리러 가기 전 열심히 땅을 일구었다. 오늘중으로 일반고추 오십개와 청양 꽈리 고추를 심으려면 천상 햇볕이 약할 때 힘든 작업을 마치고 오후에 고추를 심어야겠기에 일단 땅을 일구었다. 오후엔 예보된대로 영상 3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여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지만 비닐 멀칭을 하고 고추를 심어야 한다.</div><div><br></div><div>내일은 새벽부터 잔디를 심어야하기에 오늘이 아니면 영 고추를 심을 기회가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고추를 심어야 한다. 30분 일하고 30분을 쉬면서 작업을 하는데 먹지도 않을 고추를 왜 심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단 생각이 들었지만 십년동안 한번도 심지 않은 해가 없었기에 당연한 일로 받아 들이고 땀을 흘리고 있다.&nbsp;</div><div><br></div><div>너무 힘이 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아직은 아니다. 몸은 부실하지만 아직 마음은 강건하다. 내일은 더 더워진다고 한다. 여름의 한복판을 뚜벅 걸음으로 걷기로 했다. 남들의 막연한 도움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설령 그것이 현실이라 해도 남을 원망하거나 시빗거리가 되지 않도록 인내하려 한다. 오월의 장미가 피어 난다. 꽃들을 보면서 남들이 알아주던 말던 피고지는 장관(壯觀)에 고개를 떨군다.&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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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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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17 May 2026 05:18:12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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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몇달만에 다시 농부로 돌아오며</title>
			<description><![CDATA[<p style="border: 0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6/204da78a1f4aaad04961d2365a4e83dc13061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요즘은 거의 상비藥을 복용하지 않지만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텃밭이나 공사현장에서 뙤약볕 아래 일하다 보니 한여름이 되려면 아직 멀었음에도 팔에 화상을 입어 껍질이 벗겨졌고 예전과는 많이 호전되었지만 아직 손가락 마디에 터널증후군이 약간 남아있어 불편한 것외엔 몸상태는 근래 가장 좋은 것 같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물론 검사를 받은 건 아니지만 기분상 그렇다는 말이다. 몇일전 심은 야생화들이 밤새 이슬을 먹어서인지 시들지 않고 방긋 인사를 한다. 너무 예쁘다. 불과 일년전 이 집을 구입했을 때만 해도 거의 흉가 수준이었을 때를 상상해 보면 엄청 달라졌다. 이제 완전 초록으로 변해 버렸고, 하루가 다르게 나무들은 물론 각종 채소들도 자라나고 있다.&nbsp;</p><p style="border: 0px;"><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오늘 현장에서 인부들에게 휀스를 치도록 임무를 부여하고 집에 돌아와 오이 가지 토마토 애호박 등을 심었다. 며칠전에도 몇개 심었지만 욕심을 부려 먹지도 않을 식물이지만 틈만 있으면 식물을 심는다. 물론 전문가가 보면 웃을 일이지만 아예 농약없는 농사를 지으려 작정했기에 계분 약간만 사용했을뿐 농약은 물론 그 흔한 비료 한번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데 이거야말로 기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과분하게 수확을 한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고추 농사를 지으면서 옆집에서 건조기에 말려 준다며 가져 오라해도 이왕이면 태양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귀찮아도 햇볕에 말린다. 사실 건조기에 말리면 5~6 시간이면 말릴 수 있지만 태양초가 되는 과정에서 비타민 D를 얻을 수 있기에 고집스러울 정도로 고추를 말리는 데, 어렸을 적 어머니가 마당 한가운 데서 고추를 말리던 추억이 생각나서 이를 답습해 보고 있는 중이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고추가 고르게 마르도록 뒤집어 놓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이마에 땀이 흐른다. 어릴적에 장마철 비라도 내리면 불을 지피고 아랫목에 고추를 널어 놓던 기억도 새롭다. 한푼이라도 절약하려고 생고추를 사다가 말리는 풍경은 아주 흔한 풍경이었다. 왠만한 부잣집이 아니면 말린 고추를 사다 먹는 집이 거의 없었다. 된장 고추장도 집집마다 직접 담궈 먹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장독대가 있어 장난질하다 항아리라도 깨틀이면 엄청난 재앙이 기다리고 있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우리집도 목사의 가정이라 늘상 손님이 드나들어 보통 김장 배추 4~500포기는 해야 하는 관계로 가을이면 교회 예산에 사택 김장대 항목이 있을 정도로 고추장 된장 간장을 많이 담았던 걸로 기억이 된다. 따로 공부방이 있을리 만무하기에 매꽤한 냄세를 맡으면서 성장했다. 당시엔 가난한게 별로 부끄러운 게 아니었고, 대게가 가난했기에 차별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언행휘찬(言行彙纂)'에 수오탄비(羞惡歎悲), 즉 인생에 부끄럽고 미워하고 탄식하며 슬퍼해야 할 네 가지 일을 꼽은 대목이 있다. 그 글은 이렇다. '가난은 부끄러울 것이 없다. 부끄러운 것은 가난하면서도 뜻이 없는 것이다. 천함은 미워할 만한 것이 못된다. 미워할 만한 것은 천하면서도 무능한 것이다. 늙는 것은 탄식할 일이 아니다. 탄식할 일은 늙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죽는 것이야 슬퍼할 것이 못 된다. 슬퍼할 것은 죽은 뒤에 아무 일컬음이 없는 것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정말 부끄러워 해야 할 것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정말 미워해야 할 것은 공중의 권세를 가진 사탄과 마귀의 일인 데, 자기의 영달을 위하여 자기 패거리가 아니라고 질시하고 대적하려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며 저주받은 사람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나는 36년동안 남을 가르친다고 주제넘는 짓(?)을 해왔다. 어쩌다가 방송 설교를 듣다보면 지루하여 채널을 고정시키질 못했다. 솔찍히 저런걸 설교라고 하느냐는 교만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내 생각이 항상 옳았고, 내 주장하기에 열을 올리면서 살아왔다. 나일먹어 가면서 깨달은 것은 가능하면 말하는 것보단 듣는 일에 더 시간을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나는 아직까지도 내 주변에서 &lt;설교를 하는 입장에서 듣는 입장&gt;으로 바뀐 걸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인들을 자주 만난다. 그러나 내가 설교자로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내 자신을 구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지금이 홀가분하고 만족하며 감사하고 있다. 아무런 수고나 노력없이 듣고만 산다는 것에 대하여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6/1616dc6ee8e99f7e88fd1e20528b20b413070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현역시절보다 은퇴한 이후 내 삶이 진지해졌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 있다. 사실인즉, 난 습관적으로 기상하면 텃밭을 몇바뀌 돌며 일제 점검하면서 경건의 시간을 가진다. 동산을 거니는 주님의 심정으로 식물들을 살핀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가지 이상무, 호박 오케이, 케일 상추 치커리 양배추 봄배추 이상무, 생강 감자 쪽파 상태 양호, 토마토 방울 토마토 고추 옥수수 오이 참외 딸기 이상무, 출석을 부르듯 하나 하나 점검 한다. 한결같이 초보이지만 그런대로 잘 자라나고 있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이미 오이고추와 청양고추 각각 열개씩 심었지만 내일 일반고추 백여개를 심으려 비닐 멀칭을 하고 우선 지지대를 설치하고 줄을 띄워 주었다. 그리고 물을 좋아하는 식물에게는 물을 듬북주고, 물없이도 잘 자라는 것들에게는 약간만 주는 등 강약 조절을 하면서 물을 주는데 처음 시작할 때보다 요령도 늘었고, 좀 더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잔디밭을 비롯하여 전체에 물을 주는데 예전보다 시간이 반으로 절약되었다. 어제 지인이 가져다 준 야생화를 새벽부터 홀리팜 구석 구석에 식재했다. 씨로뿌린 꽃들이 아직 피어나진 않았지만 봉선화 채송화 한련화 사르비아 등의 새싹이 얼굴을 내밀고 좀 늦게 만개한 철쭉이 장관을 이루고 있고 마당에 양귀비가 화사하게 피어 혼자 보기에 아까울 정도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솔로몬 대왕의 말에 빨리 달린다고 선착하는게 아니라더니 때가되니 어김없이 화사함을 선물하여 혼자 감상하는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잡인이 드나드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기에 가능하면 동네 사람들과 왕래하는 걸 금하고 있는 데, 사실인즉, 오랫동안 혼자 생활해서 인지 누가 곁에 있으면 더 부자연스럽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그렇다고 무인도에서 생활하지 않는 이상 사람사는 집에 사람 찾아 오는 일을 말릴 수는 없기에 우리집에 동네 어른들이 예고없이 드나 드는 것을 모르는 척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을 남에게 보여주는 건 가능하면 안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면 텃밭쪽으로는 가능하면 인도 안하는데 그건 꼭 심사받는 기분이라 그렇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난 나무는 물론 채소 이름도 몇가지외엔 잘 알지도 못했고, 지금도 내가 심어놓고 이게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케일인줄 알았는 데, 키우고 보니 콜라비다. 가령 오이와 참외가 그렇다. 같은 라인에 심었는데 꽃모양도 똑같고, 이파리도 거의 흡사하기에 오이같기도 하고 참외같기도 해 일단 지지대를 설치해 두긴 하지만 아무래도 참외인 것 같아 지지대를 철거해야 할 것만 같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이런 정도의 수준이기에 누구에게 보여 주기가 무섭다. 그래도 나름대로 낙제점은 아닌 것 같다. 농약 한방울 안쓰고 화학비료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이만큼 키우는 것은 정성을 쏟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심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이곳 죽촌마을은 대게가 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땅콩이나 들께 등을 심는다. 커다란 밭에 집중적으로 한가지 작물을 심기에 가짓수만을 놓고 보면 이 동네에서 내가 제일 부자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30여 가지가 넘으니 호기심에 동네누님(?)들이 텃밭을 기웃거리며 이래라 저래라 잔소릴 늘어놓는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lt;동상!&gt;이라고 부르는 통에 졸찌에 누나가 여럿이다. 한번은 인근 딸기 비닐 하우스에서 일을 하면 네시간 일하고 25000원을 준다며 일손이 부족하니 함께 가자는 통에 난처했다. 이곳 누나들은 조금 극성스런 편이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6/9fdcf664aaa78f8a5117988a42f2170813080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그래도 잔머릴 굴리는 사람이 없어 좋다. 아직 동네 어르신들과 교류는 없지만 동네 극성 누나들 때문에 피곤하다니 그나마 내가 소싯적 한인물하던 시절을 기억하는지 왕따 당하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며 할머니들이 더 시샘이 많다며 조심하란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뭔가 그리 궁금한지 시도때도 없이 느나들며 질문 공세를 펼친다. 부인은 있느냐? 함께 살 아들이 없느냐? 직업은 무엇이냐? 꼬치꼬치 묻는데 일일히 답변하기가 귀찮다. 동네 이장도 추도식 예배를 드린줄 알고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며 교회가 멀면 자기 교회로&nbsp; 오라고 강제한다. 자기 교횐 기장측 교회지만 뜨거운 교회라고 강조한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일 에배를 드리고 오후에 고추를 심고 넝쿨식물을 심으려 지지대를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박과 호박 수세미 여주 가시오가피 등 기댈 곳이 없어 괴로워하는 식물들을 위한 작품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넝쿨식물에게 기댈 곳이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도 한 때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의절했지만 한동안은 호형호제하며 절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nbsp;</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 지지대를 타고 올라가면 세상이 내려다 보일줄 알았었다. 그러나 철저히 장삿속이고 사람을 이용할줄 아는 협잡에 달인이었다. 몇년동안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유턴하는 데 많은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았다. 나를 지지해줄 분은 오직 한분뿐이시다. 인간을 지지대로 여겨 낙관했다간 실망뿐이란 걸 진즉 깨달았어야 했었다. 난 식물들에게 절대 올려놓고 흔들지 않을테니 마음껏 올라가라고 격려했다.&nbsp;</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삶은 감자 몇개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창가에 앉아 텃밭을 감상하는 데, 지지대에 촉수를 걸고 방긋 웃는 넝쿨 식물들을 보며 지난날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지대없이 고단하게 살았 왔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맴돈다. 남에게 의탁하면 조금 더 쉬웠을테지만 성격상 남의 힘을 빌리지 못하는게 내 단점이다. 남에게 아쉰 소리 못하고 아랫사람에게 지시도 못하는 체질이라 고단한 시간들을 보낸셈이다.</span></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개척교회를 하면서 부모형제들에게 힘들단 이야기를 해보지 않았다. 부교역자나 동역자들에게도 민폐가 될만한 일은 아예 만들지도 못했다. 결국 홀로 사는 법을 터득하기로 했지만 그게 꼭 좋은 방법만은 아닐 것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들이었다. 대신 이제부턴 내가 지지대가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목회자가 든든히 서면 그 지지대에 의지하여 교인들이 자랄 수 있다. 가정안에서 가장이 굳건하면 온 가족이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지지대가 부실하면 넝쿨식물들에겐 치명적인 환경을 초래한다. 장마철이면 하루에 한뼘씩 자라는 넝쿨식물도 지지대가 없인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다.&nbsp;&nbsp;</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요즘 1인 가구 1000만 시대에 들어 서면서 집 안에서 기르는 식물에 정서적 애착을 갖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식물에도 ‘반려’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면서도 정서적 안정과 조용한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는 반려식물. 최근에는 키우던 식물을 소소하게 재테크에 활용하는 사례까지 늘고 있어 흥미롭다.</p><p style="border: 0px;"><br></p><p style="border: 0px;">생각해보면 ‘식물을 키운다는 것’이 지금 사회에 갑자기 등장한 유난스러운 일은 아니다. 화단에 식물을 키운다거나 난을 가꾸는 모습은 어느 가정에서나 예전부터 쉽게 볼 수 있던 장면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식물을 키우는 행위보다 ‘반려식물’이라 부를 만큼 식물의 순기능에 더욱 주목하는 대중들의 심리다. 식물에게나마 마음을 주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변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레옹’에 등장했던 화분처럼 말이다.</p><p style="border: 0px;"><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p><p style="border: 0px;"><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p><p style="border: 0px;"><br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p style="border: 0px;">&nbsp;&nbsp;&nbsp;&nbsp;</p><p style="border: 0px;"><br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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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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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16 May 2026 13:09:2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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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최상의 마음 치료제</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4/08d22a1473fd39f717549f92a60484f4010418.pn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인부들을 현장에 투입시켜 놓고 고추 파종을 위해 텃밭을 로타리치려 돌아왔다. 내가 촌구석에서 거름을 매만지며 농사짓는 걸 보며 불행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아직까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nbsp;<div><br></div><div>물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 전에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면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이라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일에 대하여 행복감을 상실하는 순간 창의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고 무료함에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nbsp;<div><br></div><div>생활이 매일 똑같으면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창의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창의력이 생기려면 개구장이들처럼 살아야 한다. 아이들은 재미있을 생각만 한다. 아이들이 싸우고 벌을 서면서도 잠시 후에 보면 둘이 장난을 치고 있다. 그런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왜냐면 아이들은 항상 즐거울 생각만 하니까 걱정이 없다.&nbsp;&nbsp;</div><div><br></div><div>그래서 다섯 살짜리 아이의 창의력과 40살 어른의 창의력을 비교해 보면 5~60살 어른은 다섯 살짜리 아이의 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감성지수가 떨어지면 창의력이 생기지 않고 행복한 순간은 뒤로 밀리게 되어 있다. 정서를 공유하는 리추얼(ritual)이 잘 발달된 집단을 보고 집단의 감성지수가 높다고 하는 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감성지수가 높은 집단이라면 두가지를 들 수 있다.&nbsp;&nbsp;</div><div><br></div><div>첫째는 해병동우회이다. 동네마다 해병전우회 컨테이너가 있다. 군에서 예편한지가 얼마인 데, 저들이 뭐하는 사람들인가 싶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만 들어가 있으면 그렇게 좋다고 한다.해병대끼리 만나면 고생했던 것이 생각나면서 서로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며 쪽팔리는줄도 모르고 군복을 입고 나다닌다.&nbsp;&nbsp;</div><div><br></div><div>하나의 집단은 호남향우회이다. 충남향우회나 강원향우회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호남향우회가 없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세계에 내세울 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은 전라도에서 개발된 문화이다. 호남사람들끼리 만나면 뭔가 독특하게 통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거시기'라는 말만 해도 모두 통한다. 이런 집단들은 집단의 감성지수가 높다. 왜냐면 모이면 서로 공유하는 방식이 무엇인가 있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나는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 목회자들과의 교류를 기피하는 정도가 좀 심한편이다. 같은 주님을 섬기고 같은 목적을 위해 헌신한 것만 두고보면 엄청난 감성지수가 높을 거라고 생각들지만 해병전우회나 호남향우회를 따라가려면 멀었다. 목회자가 목회자를 두둔하고 칭찬하는 걸 별로 본 적이 없다.&nbsp;</div><div><br></div><div>수평이동으로 인한 문제점 중 가장 크게 지적되는 것은, 목회자들간의 갈등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수평이동이 심화되면서 근접지역에서 활동중인 목회자들 사이에 경쟁관계가 형성됐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는 공통적인 목표에서 벗어나, 자신의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상대방의 성도를 빼앗게 된 것이다. 그런점에서 목회자들에게 감성지수를 찾는 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에게도 감성지수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때론 감격이나 심지어는 희노애락의 표정이 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나는 무엇을 결단하거나 장고(長考) 할 일이 생기면 거의 혼자있는 시간을 가진다. 그 곳이 공원 베치던 강가이던 상관없이 혼자서 골몰(汨沒)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나는 한없이 너그러운 것 같아도 한번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매몰찬게 내 성격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리를 피하여 한적한 곳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라다보면 괜시리 외롭단 생각이 든다. 주변에 도움을 받을 지인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멘토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내 자신을 나보다 더 잘 알 사람이 없기에 우선은 낮선 곳을 찾아 고민을 해 보고 사색하며 독백에 빠진다. 사람들은 혼자있는 걸 참지 못한다. 혼자있는 시간을 두려워하기도 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혼자있는 시간을 고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치이다 보면 어떨 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더러는 사람이 별로 없는, 그러니까 장사가 잘 안되는 곧 망할 것만 같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또 더러는 동행 없이 북적거리는 길거리에 나가기도 한다.&nbsp;&nbsp;&nbsp; &nbsp; &nbsp; &nbsp; &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10b00"><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4/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01054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nbsp; &nbsp;혼자 사는 사람들</font></b>&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히 일상의 생활 영역에서 사람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이들은 길거리로 나가 사람 구경하는 것이 일종의 일탈이 되기도 한다. 내 가까운 친구중에 미니홈피나 블로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만들어 놓고 수천의 사람들과 인터넷 셔핑을 하며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해결책을 찾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개인의 단자화가 심해질수록 우리의 고독은 더 깊어져 갈지도 모른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시간이 흐르면 지금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미니홈피나 블로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넘어서는 또 다른 시스템이 만들어질 게 뻔하다.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그 옛날 초창기 PC통신이 나에게 해주었듯이 사람이라는 섬과 섬을 연결해 준다면,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처음에는 아주 가까운 친구들과 개인적 수다를 떠는 용도로만 사용되던 트위터에서 우연한 기회에 독자들에게 ‘발견’될 것이고 하룻밤 사이에 수백 명이 나를 팔로(follow)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실제적으로 트위터의 놀라운 위력을 모르는바는 아니다. 예를들어 유명 맛집을 찾는다고 올리면 순간적으로 수많은 리플이 달리고 힘들이지 않고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나 트위터가 사람과 사람 사이이 모든 일에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예를들어 처음 대면한 누군가가 “트위터에서 봤는데 집을 52번째 지으셨다면서요?”라고 말을 걸어온다면 솔직히 무섭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를 모르는데, 그쪽에서는 진즉부터 내 일상을 꿰뚫어 보고 있다면 얼마나 섬짓한가.&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도 일상생활의 편린을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혹시 내가 사방이 환히 뚫린 유리방에 노출되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 문제를 내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아파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트위터에서 해결하려는 편리주의가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느날 내가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생,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내 근황을 물어 온다. 인터넷상에서 내 흔적을 알아 낸 사람도 있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와 친구가 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최소한 10년 정도는 교류해야 친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오다 가다 만난 사람을 내 머릿속에 입력하지 않는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얼마 전 세월호 참사 때 학생 하나가 부모에게 보낸 카카오톡에서 '배가 가라않고 있어요. 그 다음은 어떻게 해요?'라는 문자를 날렸다. 위기의 상황을 타개하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육상에 있는 사람들은 그 절박한 순간을 자세히 알 길이 없기에 조명조끼를 입고 일단 바다로 뛰어 내리라, 아님 선내에서 요동하지 말고 선장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는 등을 쉽게 조언할 수가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 때의 상황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내릴 수 있다. 끝까지 선장의 말을 듣고 선내에 머룰 것인가. 아님 적극적으로 살 길을 모색할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해야 했는 데, 결국 어른들 말을 들은 학생들만 희생되었다. 선장을 비롯해 선원들은 자기들만 살겠다고 어린 생명들을 선실에 가두고(?) 탈출해 버렸고, 그나마 어른들 말 안 들은 학생들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4/543529a23efa83af932f7e86c2a01832010644.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모든 판단은 오롯이 자신의 묷이기에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땅을 파고 영농을 하는 건 수확을 목적으로 하는게 아니다. 건축현장에서 땀흘리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 시간 나는 진정한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는 떠들석한 자리를 선호했지만 이젠 가능하면 혼자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 노력중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제 인천 임석빈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라오스에 다녀온지 아직 두 주도 되지 않았는데 또 여행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나야 언제던지 준비되어 있으니 나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정확히 만난지 57년이 되었으니 그 쯤되어야 친구라 할 수 있고 형 아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알고 지냈다고 아무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제 동기생인 원목사님이 현장을 방문했다. 신안 천사의 섬에 들렸다가 지나는 길에 들렸는데 동기 모임에 자금을 꽤나 확보된 모양인데 여행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러마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 두달 정도는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동기생이라고 모두가 친한 건 아니고 여행은 심혼을 함께 나눌 친분이 있어야 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고추 모종 50개를 준비했다. 내가 먹을 거라면 오이고추 다섯개면 충분하지만 아직 마음을 식힐 시간이 더 필요하기에 더 땀흘리며 땅을 파고 고민을 해야 한다, 홀로 마음의 고민을 털어내기 위해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흙을 매만지다 보면 모든게 용서되고 봄눈녹듯 마음이 풀어진다. 최상의 마음 치료약은 노동이다.&nbsp; &nbsp; &nbsp; &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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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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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14 May 2026 01:07:3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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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좌견천리</title>
			<description><![CDATA[<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3/264a83e8f6958a50b62da2ebe39219b000070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주변인들을 유심히 살펴볼 때,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가정생활에도 갈등이 생기는 모양이다. 출퇴근이 없다보니 아내들이 힘들어 하는 추세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만히 앉아 삼시 세끼를 다찾아 먹으려니 좋을리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소일거릴 찾아 무엇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친구들이 여럿이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삶이 황패된다는 걸 알면서도, 힐링을 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게 된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5월 말쯤 가족들과 동유럽 여행을 계획했다가 뜻하지 못했던 일로 구월이나 시월로 시기를 늦추었지만 일년에 한두번씩 가족들과 비행기를 탈 때가 가장 행복하단 생각이 들곤한다. 동남아나 중국 등 가까운 곳은 이미 여러번 가본 나라들이고 코발트빛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며 손자 손녀들이 노는 모습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감상에 젖는다. 조금 젊었을 땐 무조건 내 위주로 했지만 이젠 자식들 의견을 최우선시한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나마 아직 내가 현역아닌 현역(?)으로 사업가란 이름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 이런 사소한 즐거움이 없다면 삶의 의미도 그많큼 줄어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비록 힘든 일이지만 거친 공사 현장을 누비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아 있지만 동유럽의 단풍을 황홀하게 느꼈던 감정이 아직 나에게 남아 있고, 다뉴브강가의 추억이 강열했기에 손자 손녀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려 계획했지만, 내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못하다는 걸 알기에 아무리 바쁘고 어려워도 이 일만은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믿어 강행하고 있다.</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nbsp;&nbsp;</span></div><div><br></div><div>우린 다들 ‘힐링’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시대는 참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쌓여버렸다. 살짝만 건드려도 울화통이 폭발하는 사람, 분노가 목젖까지 치고 올라오는 사람이 수백만명 모여 있다면 도시는 그야말로 폭탄이다. 특히나 건설공사판에서 여러해를 보내다 보니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새벽 공기가 차가운데 아침부터 사소한 일로 인부들이 언성을 높히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nbsp;&nbsp;</div><div><br></div><div>사람에 따라 이런 일이 하찮은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어떤 일이던간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그간 해보지 않았던 일이기에 호기심이 존재할 것이고 현실적으로 나일먹어 아무 할 일도 없이 우두커니 세월을 허비하는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div><div><br></div><div>만약 내가 은퇴하고 아무런 할일이 없이 빈둥거린다면 내 자신이 먼저 견딜 수 없을 것이고 주변이나 가족들, 특히 자녀들 볼 면목이 없었을 걸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힘든 나날이지만 아무렇지 않은듯 하루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나름대로 씩씩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div><div><br></div><div>내 주변엔 그간 만들어 놓은 년금이나 재산으로 노후를 편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게는 화려했던 과거 전성기를 회상하며 진즉 은퇴 이후를 생각하지 못한 걸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빨리 다가 올줄 몰랐다고 한탄한다. 나도 내 생전에 은퇴라는 걸 생각해본적도 의식해본바가 전혀 없었으니 준비가 있었을리가 만무하다.&nbsp;&nbsp;</div><div><br></div><div>30대 부터 준비했다면 몰라도 4~50대엔 자식들을 양육하기 위해 노후를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고 자식들을 분가시키면서 그나마 재산을 줄이다 보니 노후가 초라하단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아무 할 일이 없다는 사람과 무엇이던 간에 일을 만들어 하려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경제생활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삶의 의욕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div><div><br></div><div>&nbsp;<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3/563a7e52e0773b26c4cdbd0cbb19cece00085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목회만 해왔던 사람이 어느날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그랬다. 그래서 관련서적을 뒤적거리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견습을 많이 했다.&nbsp;</div><div><br></div><div>일생에 집 한칸 만들기도 힘들다는 데, 난 경험을 축적하려고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며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 동안은 더 시도하겠지만, 그리고 한계가 있는 일이긴 하겠지만 내가 원하던 그런 그림을 그리는 순간 멈추게 될 것같다.&nbsp;&nbsp;</div><div><br></div><div>세상엔 편한게 없다. 남들이 보면 쉬워 보이는 일도 직접해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가까운 지인들이 농담으로 건네는 말중에 '어이 친구 집 하나 지어줘!'이다. 금방 똑딱하면 집이 만들어지고 그럴듯하게 정원을 꾸며 놓으니 손쉬운 거로 생각하는가 본 데, 한번 지어보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nbsp;&nbsp;</div><div><br></div><div>건축 설계를 의뢰하는 순간부터 준공검사를 마칠 때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모른다. 안전사고는 물론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건축과정에서 때려 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왜 사서 고생하나 싶을 때가 수없이 든다. 예상에서 빗나가기 일수여서 정말 못해먹을 것중에서 건축이 의뜸이다.&nbsp;&nbsp;</div><div><br></div><div>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축 일이 재미도 있고 즐겁다. 아니 즐기는 편이다. 지난 14여년 전에 막연하게 귀촌하려 결심하고 무작정 이사를 했지만 전혀 준비없는 내 자신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속수무책이었던 내 현실에 자지러지게 놀랐다. 내가 이렇게 한심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날 동안 가슴앓이를 했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직 고민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날마다 불태우고 있다. 그 결심으로 65개의 집을 지어 분양을 했고 불황시기를 견디어 내고 있다. 얼마만큼 이윤을 냈느냐엔 별반 관심을 두지 않지만 그간엔 외형적으로 볼 땐 그런대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살인과 도적질을 빼놓고는 무엇이던지 도전해 볼 생각이다. 텅빈 공사현장에서 비행운을 그리며 멀어져 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신세타령에 빠질 떄가 종종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미세한 바람에도 흩어지는 구름이 상황에 따라, 삶의 허무를 연상시켜 줄 때는 흘러가는 방향이나 제대로 알고 찾아가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빛을 받는 방향과 질량에 의해 자신의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지듯, 살면서 겪어야 하는 우여곡절로 인해 행동반경의 울타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려나가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색깔을 가늠한다. 눈을 지긋히 감으면 정지된 그림이지만 구름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멸을 위해 구름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무런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구름은 흘러간다. 의식하면 가만히 멈춰 보이고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구름의 모습은 다양하며, 비가 오는 날엔 새까맣기까지 하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3/104af02d0ff768aa3fca40a8a978aa0e00100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모양도 색도 다르다. 결국, 우리의 시간관념을 변하게 하는 건 삶의 목표다. 목표가 있을 때 삶은 피어난다. 떠나는 계절, 저무는 노을, 힘겨운 삶마저도 연약한 내가 어찌하리. 흐르는 것이 삶이었던가. 저 강물도 흐르고 저 바람도 지나가고 저 구름도.. 당신도&nbsp; 나도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기에&nbsp; 아픔 속에서도 길 떠나는 나그네 심정으로 가고는 있지만 함께 할 수 없음에 가슴시릴 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이 있었다. 멍하니 앞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이 오늘의 행복이든 과거의 불행이든 간에 시간은 항상 정적을 유지한다. 그러나 시간은 정적인 동시에 역동적이다. 나는 그동안 고독이나 외로움들은 무조건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왔지 정작 문제의 근원지인 자신에 대해선 소홀했던 것 같았다. 이제 보니 타인이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외로움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기에 고독했다는 결론을 내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나도 따라 흐를뿐이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세상사에 지칠 때는 사람 외적인 것의 위안이 필요하다.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이 없는 조용한 숲속이나 바닷가 같은 자연 속에 파묻히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흙을 밟고 걸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보면 적잖은 위안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노자 &lt;도덕경&gt;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무릇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로 자연과 인생의 순리를 말해 준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은 모든 더러움을 씻어내고 정화하면서 만물에 생명을 준다. 흘러가는 물은 먼저 가려고 앞을 다투지 않기에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라고 하였다. 다툼을 피해갈 수 있는 삶은 지혜로우며, 물처럼 담담하게 흘러야 강을 이루고 바다에 이르게 된다. 나도 언젠가는 바다에 이를 것이다.&nbsp;</div></div><div><br></div><div>이번주 안에 공주현장의 박목사님댁 공사를 마무리지어 주려 건재상에 들려 배수 시멘트 수로관을 선정하고 상차시킬 생각이며 잔디를 심을 인부를 수배해 놓았다. 내 현장도 테라스 부분에 대리석 치장을 위해 인부들을 투입시켜 놓았고 우리 직원들은 창고를 지어달란 부탁을 받아 일주일 가량 외근을 시키고 있다. 현장이 여러곳이기에 한곳에 오래 머물질 못한다. 내가 감독을 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하지만 최종 책임은 내가 지어야하기에 좌견천리를 해야 한다.&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41</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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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13 May 2026 00:11:0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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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내리는 아침 풍경</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2/53777b08c32c6a90d15c1c590320af21001005.gif"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새벽 무렵부터 엄청난 비가 쏟아져 잠에서 깨어났다. 며칠전 심었던 오이 가지 토마토 애호박 등 모종들이 흙맛을 보고 일어설 걸 생각하면 이번 비는 해갈에 큰 도움이 될 단비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작년 가을에 심었던 양파와 마늘도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좀 했을텐데 이번 비로 시름을 덜게 되었다. 그까짓 먹지도 않을 식물이고 이사하면 남의 것이 될 것들인데 무엇때문에 애지중지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자라는 과정에서 무수히 오간 대화를 기억하기에 더 애착이 간다. 상추도 싹이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를 제법 잘 안다는 친구가 '곱게 살았던 사람이 어찌 땅이나 파는 천한 일을 하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농사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신(修身)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흙을 매만지며 농사일을 하는 동안 나는 잡념 없는 무의식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에 정신 건강만큼은 예전과 비교할 수가 없다.</span></div><div><br></div><div>퇴계(退溪)와 반계(磻溪) 역시 농사를 지었다. 옛 선비들은, 체면치레를 하느라 굶주리는 자를 진정한 선비로 여기지 않았다. 조선의 국왕도 권농, 즉 농사를 권장하고 장려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권농을 위한 여러 조처 가운데 친경(親耕)은 국왕이 몸소 밭을 가는 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국왕이 직접 쟁기질 시범을 보임으로써 농사의 중요성을 신하와 백성에게 널리 주지하는 것이다.</div><div><br></div><div>익산에서 나만큼 바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살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한해도 농작물을 심지 않은 해가 없을 정도이다. 물론 내 입으로 들어간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농사꾼이란 말에 거부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손톱 사이의 검은 흙 때가 영락없는 농사꾼임을 말해주는 지금도, 농부로서 나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긴다면 50점 이상은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라 손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nbsp;</div><div><br></div><div>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은 것은 밭에서 억세게 자라는 잡초를 바라보며 인간세상도 돌아본다. 잡초가 적당히 섞인 밭에서 자란 농작물이, 제초제를 사용하여 잡초를 몰살시킨 밭에서 농부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농작물보다 더 건강하고 맛이 있다.&nbsp;</div><div><br></div><div>새벽 5시에 출근하여 해가 지고 나서야 돌아오는 고달푼 건축일을 하면서도 텃밭을 비워 놓은적이 없다. 얼마전에도 쪽파를 수확하여 자주가는 식당에 가져다 주고 그 자리에 대파를 심었다. 거름이 풍족하지도 않고 비료도 사용하지 않기에 볼품은 없지만 무공해 식품이라 욕심내는 사람이 있지만 거져 가져 가라해도 수확해 달라는 말에 그냥 밭에서 썩힐 때가 종종있다. 그냥 일하면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하게 되고 마음 수련하는 일로 만족이다.&nbsp;&nbsp;</div><div><br></div><div>과학자들이 캘리포니아주 마린 카운티(Marin County)에 사는 55세 이상 주민 2025명을 5년간 조사해 보니 두 곳 이상에서 일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사망률이 보통 사람들보다 63퍼센트나 낮았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44퍼센트, 매주 교회 등에 나가는 사람들은 29퍼센트 순으로 사망률이 떨어졌다. 말하자면 오래 살려면 운동하는 것보다, 교회 다니는 것보다 일하는게 더 좋다는 말이다.&nbsp;</div><div><br></div><div>매일 교회에서 사는 사람이 장수할 거 같아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예수믿고 천국에 가세요!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종종 듣게 되는 소리다. 그는 과연 승객들의 천국행을 진정으로 돕고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승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 내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진심으로 남을 돕고자 한다면 남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해하든 말든 일방적으로 다중을 향해 외쳐 대는 건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생활 속에서 성결과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이는 절대로 진정한 신자가 아니라고 칼뱅은 말하였다는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한다’고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건만, 우리의 모습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무엇이 다르며 무엇이 차별화 되었는가?</div><div><br></div><div>최소한도 기독교도라 한다면 그리스도의 모습이라도 닮아가려고 하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할 터인데 작은 흉내하나 내지 못하고 따르지 못함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 비기독교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 그들을 향해 분개만 할 것인가?&nbsp;</div><div><br></div><div><div>자연과 소통하는 삶이라면 ‘전원별곡’ 박인호 작가를 빼놓을 수 있다. 전직 신문기자였던 박인호 작가는 “행복한 인생2막이란 도시를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은퇴 후 강원도 홍천에서 귀농·귀촌 생활을 하며 &lt;전원생활도 재테크다&gt; &lt;인생2막 귀농·귀촌 난 이곳으로 간다&gt; 등 집필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div><div><br></div><div>자연과 소통한다는 것은 이타적인 생각으로 바꾼다는 의미이다. 나 또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주위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보람을 느끼는 게 진정한 인생2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치 속죄하는 심정으로 미력한 힘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한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너무 은혜를 입고 살았기 때문이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2/bae80cf80fec5b0bd6ee796a3cca139f00113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끊임없이 대지를 적시는 비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갑짜기 마당에 내려 가 옷을 벗고 개구장이로 돌아 가 비를 흠뻑 맞고 싶어진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라 부자집 몇을 빼놓고는 모두가 단벌이어서 비를 맞으면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어야 했기에 빤스 하나만 걸치고 냇가에 나가 철이른 물장구를 치며 고무신으로 붕어를 잡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nbsp;</div><div><br></div><div>어려서는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점점 나이를 먹게 되자 오히려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아이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요즘 가만히 내 마음을 되짚어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어른이 되면서 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이들은 옷이 젖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어른들은 옷이 젖는 걸 몹시 두려워한다.&nbsp;</div><div><br></div><div>아이들은 속옷이 젖을까봐 걱정하나 어른들은 젖은 속옷을 입더라도 겉옷이 젖은 것은 숨기려 한다.벌거숭이가 되어 뛰어 놀다보면 맨살에서 김이 모락 모락 나는데 어른들은 감기든다고 성화를 대지만 아량곳하지 않았었다.</div><div><br></div><div><div>오늘은 우요일(雨曜日),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옷만 아니라 온 몸이 다 젖고, 마음까지도 젖고 싶다. 그렇게 일단 흠뻑 젖고 나면 조금만 비가 내려도 이내 속까지 스며들지 않겠는가. 느낌도 감정도 메말라 버린 내게 일주일 7일 중 한 날은 우요일로 하여 마음도 몸도 젖어보는 때를 누리고 싶다. 젖는다는 것은 나를 내놓는다는 것이리라.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말이리라. 가식과 위선을 벗고 순수로 돌아간다는 말이리라.&nbsp;</div><div><br></div><div>내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교만과 아집의 때, 나를 두르고 있는 거짓스런 치장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저 어린 날처럼 빗속을 마구 달리고 싶다. 비를 맞는 것, 비에 젖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던 어린 날처럼 말이다. 홀리팜은 비가 내리면 질퍽거리면서 얼마 안있어 모두 땅속으로 스며들지만 도시는 전혀 딴판이다. 스며들 곳을 찾지 못해 낮은 곳으로 몰려가는 빗물들이 아스팔트길에서 갈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도시의 가로수는 어쩜 불행한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든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2/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00123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비가 그치면 시내에 나가 주택 철거작업의 견적을 뽑아야 한다. 돈되는 일이 아니지만 거래하는 부동산 업자의 부탁이고 내 인부들에게 인건비라도 벌게 해주려 일을 만들어 주어야겠기에 아무리 거칠고 힘든 일이라도 사양하는 법이 없다. 6월까지 일할 물량을 잡아 놓았고 다시 내 집을 지을 때까진 허드레일이고 수입이 안되는 일이라도 계속할 생각이다.</div><div><br></div><div>김제에 농가 주택을 평당 4백만원에 지어 달라는데 40평 이상이라면 모를까 17평 정도라면 600만원 이상을 받아야 하는데 친분을 앞세워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데 현장소장은 눈짓으로 거절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건축일은 노가다가 아니고 예술이라고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이해할 까닭이 없는 소장의 눈엔 내가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향후 3년안에 35개의 집을 더 짓고 마지막으로 내 집을 지으려는 봉황의 뜻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게다.&nbsp;</div><div><br></div><div>비가 그치면 고추를 심으려 모종 100개를 주문해 놓았고 이어 고구마도 심어야 하고 옥수수도 파종해야 한다. 건축일도 이번주 안에 창고 한개동과 공주 신축건물도 마무리하러 가야 한다. 준공검사의 지연으로 많은 손해를 보아 마음이 짠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처음 귀촌했을 때보다 재산이 많아진 것에 대하여 그냥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어차피 내 거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잘 알기에.....&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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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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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2 May 2026 00:14:53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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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향방이 결정되었다면 올인해야 한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1/23587bee833f7b6c49f9dcd4bd0cc04306055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복음서에서 포도원에 온 종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왜 늦게 온 종과 차이를 두지 않느냐고 볼멘 소릴 하는 종들이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인의 묷이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 공사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정해진 그것도 빼앗고 싶은 생각이 들 떄가 많다. 힘든 일은 잡부들에게 시키고 항상 쉬운 일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주인이 아무리 벽창호라 해도 한 눈에 알 수가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간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서 얻은 소득이 있다면 직접 전문적인 일을 할 순 없지만 일하는 인부들의 등급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경험이 농축되었다는 점엘게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타카총을 쏘는 소리만 들어도 기능공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숙련도를 짐작할 수 있어 그에 따른 인건비를 책정하는데 어려움이 사라졌다는 점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을 마치고 각자 인건비를 지출하면서 잡부로 출근한 인부에게도 일당 20만원을 준다. 15만원 정도를 기대하고 왔는데 놀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내 일꾼들에게도 늘 하던대로 20만원씩만 정산해 주었다. 잡부에게 그만큼 주었으면 자기들은 더 많이 받아야 할 거로 생각하지만 그건 주인의 묷이다. 표정이 별로 밝질 않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몸에 밴 습관이 있고, 역시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가 그렇게 힘든 걸 잘 알고 있지만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타성에 젖어 일하는 인부들을 좋게 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남말 할 필요가 없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해 왔을 것이다. 주인이 볼 때만 부지런을 떨고 주인이 없으면 '농땡이'를 친게 한두번이 아니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교회는 내가 굉장한 실력자인줄 알았겠지만 나야말로 깡통이었다. 나야말로 진실되지 못한 불량 일꾼이었을지도 모른다. 교회를 다녀 본 사람이라면 다들 인정하다시피, 교회 속 현실도 여전히 찌질하고 비루하며, 인간의 삶은 목회자나 성도나 할 것없이 부덕하다. 교회라고 다를 것이 없다. 문제는 이렇게 비루하고 너저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대하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태도다.</div><div><br></div><div>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미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권징과 치리, 대화와 용서 등의 여러 기독교적인 철학과 전통이 녹아있는 적절한 대응으로 투명하게 해결하면 될텐데 마치 그런 문제가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이 거짓으로 위장하며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해서 이상한 게 아니라 도처에 문제가 있는데 그걸 없는 척해서 망신당하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된다.</div><div><br></div><div>재밌는 것은 비신앙인들조차 교회가 완전무결해야 한다고 기대하지 않을 뿐더러, 많은 기독교인들이 &nbsp;걸핏하면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로 원형적 교회에 대한 바람직한 모델로 여기고 있는 '초대교회'조차 완전무결하고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이나,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서에 묘사된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라.&nbsp;</div><div><br></div><div>시기, 질투, 음행, 탐욕, 위선, 분열, 돈 문제...심지어 교회 지도자의 범죄에 이르기까지 현대 교회가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총망라되어 기록되어 있고 그런 일들이 발생했을 때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게다가 비신앙인들이 비난하는 것도 '교회의 문제’ 자체 보다, 교회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뻔히 보이는 '위선과 거짓'으로 덮으려하는 거짓된 행태를 비난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nbsp;</div><div><br></div><div>비신앙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진리와 사랑을 부르짖는 교회가 거짓말로 자기를 포장하는 행태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일지. 공사장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크게 보면 두 부류이다. 돈을 지불하는 사람과 돈을 받는 사람이다. 모두의 지갑이 두툼해 지는데 내 주머니만 점점 허약해져 간다. 자신에게 주어진만큼의 일을 하고도 높은 소득을 기대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지만 내 입장을 헤어려 주길 기대하는 자체가 잘못된 일인지도 모르겠다.</div><div><br></div><div>이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完璧)이란 말은 '완벽귀조(完璧歸趙)'에서 온 말로 중국의 전국 시대 말기, 조(趙)나라의 명신(名臣) 인상여(藺相如)가 구슬을 가지고 진(秦)나라에 갔다가 완전하게 구슬을 도로 가져왔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누구나 가끔씩은 완벽한 사람이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심지어는 자신이 완벽주의를 추구하거나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흠은 있다.&nbsp;</div><div><br></div><div>완벽은 환상이요, 완벽주의(perfectionism)는 어떠한 주의(主意, ism)보다도 현실성 없는 구호이다. 완벽주의자들은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며, 완벽하지 못하면 불안해 한다. 나는 완벽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완벽한 외모, 조각 미남을 보면 거부감이 생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신성일 같은 사람이 공부도 잘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얼굴이 잘 생긴 팔등신 미인이 살림을 잘 하는 꼴도 잘 보질 못한다.&nbsp;<div><br></div><div>뭔가 어설픈 구석이 있고 2%가 부족해 보이면 죽은 삼촌을 보듯 반가워 한다. 왜 완벽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부터 습관적으로 완벽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습관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왜 완벽해야하는 지 이유도 모른 채 완벽하지 않을까 걱정만 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꼭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다보니 완벽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완벽하게 어떤 일을 처리했다고 해서 별로 기뻐하지는 않는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1/c90e5dd8a82a882695f8c67f5a430c800607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傳承에 의하면 요한 사도가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 있을 때 비둘기를 키우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장로가 사냥을 다녀오는 길에 요한의 집을 지나다가 그가 새를 데리고 노는 것을 보았다.&nbsp;&nbsp;</div><div><br></div><div>그 장로는 요한 사도에게 '대 사도께서 그런 하찮은 일로 시간을 보내서야 되겠냐'고 했는 데, 그 때 요한은 그 사냥꾼의 활을 보면서 활줄이 늘어져 있다고 딴전을 피우며 말한다. 그러자 장로는 "사냥을 하지 않을 때는 활줄을 늘 이렇게 느슨하게 해 놓습니다. 만일 항상 팽팽한 채 두게 되면 탄력성을 잃어 사냥할 때 실수를 하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nbsp;</div><div><br></div><div>이때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마음의 활을 느슨하게 하는 중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의 화살을 더 잘 쏘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이치가 무조건 빠르다고 선착하는게 아니다. 나는 상당히 급한 성격이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이루기까지 내 자신을 엄청 학대하는 스타일이다.&nbsp;</div><div><br></div><div>그래서 내가 시골행을 결심하면서 제일 먼저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은, 남들과 경쟁하지 말자, 천천히 하자는 슬로건이었다. 비록 변화를 따르지 못해서 낙오되었지만 내 방식대로 한번 살아보자는 오기같은 것이 작동되기 시작했다. 남들과 경쟁의식을 가지면서 동역자를 잃었다.&nbsp;</div><div><br></div><div>지금도 '수년내에 부흥케 하소서'란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문을 '수년내에 잘 살게 하소서'라고 잘못 인용하는 분들이 있을테지만 나도 그 중의 한 부류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panorama)처럼 스쳐 지나간다. 정말 숨가쁘게 살아왔고,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뒤돌릴 수 없는 걸 알기에 남은 시간만이라도 촌음을 아끼려하는 데, 그것마저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nbsp;</div><div><br></div><div>내가 귀촌을 결심할 무렵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모든 일에 열심이었지만 내가 아니면 더 잘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종종있다. 목회의 현장에서도 그랬다. 내가 아니면 안되겠다는 교만(?)한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아니면 더 잘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걸 내려 놓기로 했었다. 병색이 짙어 피곤한 몸으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질 않았다.&nbsp; &nbsp;&nbsp;</div><div><br></div><div>나는 내 생애중 지금이 가장 진지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남들이 보면 하찮은 일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사소한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며 열심히 살려 노력중이다. 그러나 방향없는 ‘열심히’는 모래성을 쌓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살지 말자.” “노력하지 말자.”라는 슬로건도 만들었다. 방향을 모른다면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노력하지 않고 게으름피우는 게 오히려 현명한 방법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시키지도 않았는 데, 아직 익지도 않은 벼를 열심히 타작했다면 그게 칭찬받을 일인가?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반면, 향방이 결정되었다면 올인해야 한다.</div><div><br></div><div>&nbsp;</div><div><br></div></div><div><br></div><div><br></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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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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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11 May 2026 06:08:4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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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둑님 미안해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0/ae63f7a16b84685674cfab53adcb864504330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더 나이가 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한 곳에 안착하지 못할 것만 같다. 노후가 불안정한 이유도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땅을 보면 디자인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nbsp;</div><div><br></div><div>일하지 않고 가만이 있으면 공허한 마음이 일어나고 스릴(a thrill)을 즐기는 체질인지 파도를 보면 무섭다는 생각보다 올라타고 싶어진다.&nbsp;</div><div><br></div><div>때론 상식이 없어 유물산포지역의 땅을 매입하여 한동안 고심했지만 덕분에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했고 몇달동안 문화재청을 쫓아다니며 자문을 구하고 개인 문화재 발굴 연구재단을 선정하여 시굴한 결과 번듯한 땅으로 만들어 내었다.&nbsp;</div><div><br></div><div>건축과 도시계획과 산림과 문화예술과 그리고 농어촌공사 문화재단 등을 쫓아다니며 많은 공부를 했다. 사람도 많이 사귀었고, 상식도 많이 늘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겠지만 이러다 보니 10년은 늙어 버린 것 같다. 그래도 이 방랑벽은 멈추어질 것 같지 않다. 내가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유심히 본 건축설계사 친구와 토목설계사 후배도 혀를 내두른다.&nbsp;</div><div><br></div><div>대단한 인맥이 있는걸로 생각하지만 나에겐 대단한 끈기가 있을뿐이다. 나는 흔들릴 수록 강해지는 체질을 물러 받았다. 그래서 천막을 치고 개척하던 시절이 나에겐 반면교사가 된 셈이다. 친구 녀석들은 이러다 건축회사를 차려도 되겠다며 천재적인 머리라고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알쏭달쏭한 말을 내 뱉으며 처음 땅을 구입할 때도 이상한 인연으로 땅을 헐값에 구입하고 엉성하게 지은 집인데도 쉽게 임자가 나타나는 등 뭔가가 있는 놈이라고 수근댄다.&nbsp;</div><div><br></div><div>하긴 주는 밥상이나 받으며 편한 직장 생활을 했던 것들이 알 까닭이 없을게다. 이래뵈도 내가 예배당을 세번씩이나 건축해 본 경력이 있고, 맨 땅에서 개척을 해 본 캐리어가 있는 데, 무슨 일인들 못할까. 세상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개척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천막속에서 3년을 살면서도 한번도 괴로운 표정을 지어 본 일이 없는 나의 진면목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 것이다.&nbsp;&nbsp;</div><div><br></div><div>천막안에서 살 떄 빗물이 방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걸 어린 두딸이 보고 밥그릇을 빗물 떨어지는 곳에 정확히 가져다 놓는 걸 보고 이 녀석들은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위안을 삼았다. 내 아이들은 왜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한번도 묻지 않았다. 다른 목사님들은 아파트에서 사는데 왜 우린 교회 사택에서 만 살아야 하느냐고 물어 절간엔 중이 있듯 교회엔 목사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해주니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떤 사람은 나에게 신기(神氣)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를 돕는 주님이 계시지만 그 전에 죽을만큼 일하고 배운다는 결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채근한다. 나는 귀촌하여 열세번을 이사다녔고, 65번째의 집을 지어 보았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악덕업자를 만나 집을 잘못 짓는 바람에 그 정도라면 나도 지을 수 있겠다는 오기가 발동되어 시작한 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엔 때려 죽일놈이라고 辱을 했지만 내 운명이 달라진 이훈 모든게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신봉하기 시작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농가주택이던 정원주택 부지던 간에 한번도 비싼 땅을 구입해 본 적이 없다. 땅을 보는 안목이 남다른 건 아니지만 이 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곳에 전원주택이 형성될 것인가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까진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현상을 보는게 아니라 이 땅에 숨겨진 본질을 보려 애쓰고, 그래서 저평가된 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나는 할 일이 있을 때는 전혀 괴롭지가 않다. 차라리 할 일이 없을 때가 더 힘들었다. 악동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계속하니 역마살(驛馬煞)이 낀게 분명하다고 놀려대지만 나는 살(煞)을 믿지 않는다. 남편을 잃는 살을 `청상살(靑裳煞)`이라 하고 문상이나 문병을 잘못 가서 부정과 질병의 우환이 생기다는 살은 `상문살(喪門煞)`이라 하며, 과부가 될 불길한 살을 `상부살(喪夫煞)`, 부부간에 사이가 나쁜 살을 `공방살(空房煞)`, 바람끼가 많은 사람을 `도화살(桃花煞)`이 끼었다고 하여 `살풀이`를 해 주어야 된다고 한다.&nbsp;</div><div><br></div><div>나는 어느 곳에 정착하던지 죽일 煞은 걱정하지 않는다. 땅의 기운도 믿지 않는다. 지인들이 땅의 수맥을 봐주겠다지만 그것도 믿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농가주택도 서쪽으론 함라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동쪽으론 미륵산이 보이며 남쪽으로 너른 김제평야가 펼쳐져 전망이 그만인데다가, 지대가 높아 해가 뜨고 지는걸 한 눈에 볼 수 있기에 시적 감흥이 살아 날 수 있는 곳이란 점에 낙점을 했다.&nbsp;&nbsp;</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0/2c46655d7830268a67178ed831d86ac804341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혹자는 내가 계속 주택을 짓고 분양하는 걸 보며 상당한 이익을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확히는 나도 잘모른다. 이번에도 집을 팔고 준공이 늦어지는 바람에 수천만원의 손실을 보았다.&nbsp;</div><div><br></div><div>법적으로 대응하면 그런 출혈은 흘리지 않아도 될일이지만 그냥 고스란히 손해를 감수하였다. 악질적이고 교활한 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감정은 들어나지 않을뿐 분명 내 안에도 있을 것이다.</div><div><br></div><div>세상에 장점만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도 시비를 가리고 장점만을 따져가며 화를 내는 것은 성숙한 사람의 행동이라 할 수 없다. 잠언 20장 3절에 보면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인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나 쉽게 다툰다." 21장 19절엔 "다투며 성내는 아내와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廣野)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29장 11절에 "미련한 사람은 화를 있는 대로 다 내지만, 지혜(智慧)로운 사람은 화가 나도 참는다"고 하셨다.&nbsp;</div><div><br></div><div>격한 감정을 다스리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우기 귓전을 스치는 바람으로 여기라는 말은 고도의 수양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를 희망한다.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살 수 있다. 나는 내 생애를 통털어 지금이 가장 곤고하다고 생각한다. 목회현장에 있을 때가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도 사실은 지금이 가장 당황스럽고 미래에 대란 불안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다.&nbsp;&nbsp;</div><div><br></div><div>하지만 돈이란 벌면 되고 가끔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로 만족하려 노력중이다. 다만 이 나이에도 일이 생겼다는 즐거움만 있을뿐이다. 손익은 이 세상을 떠날 무렵 계산해 볼 생각이지만 이 땅에 온 것만으로도 행운이었고, 좋은 부모를 둔 것과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순간에 날 붙잡아 천국으로 이끌어 주실 분이 계시니 행복한게 아닌가.&nbsp;</div><div><br></div><div>내가 이 세상에 올 때 기저귀 한장 직접 가지고 온게 없다. 물론 부모님 은혜지만 최소 일년동안은 어머니 젖을 꽁짜로 무진장 빨았고, 어린시절 굶지 않고 살았으며, 지금도 처음 세상에 올 때보다 가진게 월등히 많다. 때론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지만 처음을 생각해 보면 나는 엄청난 축복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nbsp;</div><div><br></div><div>학창시절 수학점수가 낙제점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지금도 아내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할 날짜와 남에게 줄 이자 날짜, 약간의 기부금 날짜 등을 정확히 기억하는 걸로 보아 아인스타인보다 못하단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이라고 해보아야 일년에 한두번 정도이니 지출만 관리하면 된다. 아니, 안쓰면 그나마 걱정할게 없다.&nbsp;</div><div><br></div><div>모든게 생소하고 처음해보는 것들이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농밀(濃密)한 때이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절박하기에 농밀하다. 사람 만날 때도 그 사람을 내일 만날 수 있다, 모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농밀하지 않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늘 가까히 있다고 생각하면 소흘해지기 쉽고, 부르면 언제고 달려오는 사람에게 그런 감정이 있을리만무하다.&nbsp; &nbsp;</div><div><br></div><div>하지만 인생에 있어 늘 그런 날이 있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나일먹은 탓인지,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저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보이고, 금방 녹아 없어질 눈들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오늘이 내 인생의 전부라는 걸 알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해서 가장 농밀하게 사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nbsp;</div><div><br></div><div>농밀(濃密)하게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할 때나 몰두하는 것인데, 인생에서 모든 일이 몰두할만한 일이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항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부분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그것에 몰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꾸미고 방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내 인생 전반에 걸친 장기적 미션이라고 믿고있다.&nbsp;</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10/946ebbbee616042f7f28b24e72e92c5a04361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연암(燕巖)선생은 세상에 사물을 대하며 "귀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좋아해서도 안 되고(貴不可偏愛) 아무리 하찮다고 해서 지나치게 버려두어도 안 된다(賤不可偏棄)"고 하였다. 나는 근래 세상을 통달한 건 아니지만 자연속에서 살며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세상인심이란 것도 그렇고 인간관계라는 것도 알고보면 내 마음속에서 생성되고 소멸된다.&nbsp;</div><div><br></div><div>명심보감에 보면 "가난하게 살면 번화한 저자거리에 살아도 서로 아는 사람이 없고 부유하게 살면 깊은 산골에 살아도 먼 곳에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는 말이 있다. 때로는 내 처지가 그렇다는 생각이 들 때면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똥깐에 들어 갈 때와 나올 때의 생각이 같을 순 없지만 세상인심이란 건 朝夕之變이다.&nbsp;&nbsp;</div><div><br></div><div>내가 힘이 있고 잘나갈 때를 붙들고 살면 서러워 제명대로 살지 못한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그나마 나를 지키며 살 수 있다.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람도 있었고 평생 은인으로 알고 살겠다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장춘몽이다. 저자거리에 나가 보아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걸 원망하거나 분연하고 싶은 생각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nbsp;</div><div><br></div><div>어차피 그렇게 귀결되어 가는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마음위에 불을 더하지 말고 다만 귓전을 스치는 바람쯤으로 여기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반드시 부자는 아니며, 가난한 집이라 해서 늘 적막하지만은 않다. 사람을 부추켜 올린다 해도 푸른 하늘까지는 올릴 수 없고, 사람을 밀어뜨린다 해도 깊은 구렁에까지 떨어뜨리지는 못한다.&nbsp;&nbsp;</div><div><br></div><div>인생의 길에는 경사가 분명히 있다. 오르는 길이 있으면 내려 오는 길도 있을뿐이고 나는 지금 어느 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아마 내리막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불행한 일을 당하면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하기도 하고 자학(自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인 자신이 그렇게 느낄뿐이지 인생만사는 큰 달(月)이 있으면 작은 달(月)도 있는 법이고, 더운 날이 있으면 추운 날도 있기 마련이다.&nbsp;&nbsp;</div><div><br></div><div>나에게 매번 좋은일만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나쁜일만 연속되는 것도 아니다.세상사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돌고 돌아 어느 누구에게라도 예고없이 찾아들수도 있고 또한 비켜갈 수도 있다. 단지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복을 받고 화를 피할 수 있을 뿐이다.</div></div><div><br></div><div>예배를 마치고 돌아왔다. 어버이 주일이라고 사모님이 카네이션 대신에 브럿치를 가슴에 달아 주신다. 한동안 가슴에 부착하고 다닐 생각이다. 어버이주일이지만 오늘 설교 내용은 전혀 효도란 말은 꺼내지도 않으신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교회에서 가장 영계인셈이니 정작 들어야 할 사람이 없으니 천국가는 말씀이 더 필요할 거란 생각에 작금의 한국교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nbsp;</div><div><br></div><div>돌아오는 길에 중동 공설시장에 들려 매운 잡체와 김밥 한줄을 먹는둥마는둥하고 오이 토마토 가지 애호박 모종을 구입했다. 내가 먹을 건 아니지만 오늘밖에 시간이 없기에 오후엔 텃밭을 꾸밀 생각이다. 동네 손버릇 나쁜 이웃이 있어 호미 낫 등 사다 놓으면 집어 가지만 대장간에 들려 거의 삽이나 다름없는 호미를 구입했다. 오늘만 사용하고 아예 대문옆에 모셔둘 생각이다. 이왕 도둑질해 갈텐데 눈치보지 말고 가져 가라고 눈에 띄는 곳에 모셔둘 생각이다.&nbsp;</div><div><br></div><div><br></div></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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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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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10 May 2026 04:37:3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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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궁화처럼 멋지게 낙화할 생각이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9/165c5b63a83e73d0fe962568d2a35b0613050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계 각국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꽃들이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라꽃이 무궁화(無窮花)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국민들의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선호도와 인식정도는 정말이지 말이 안될 정도로 낮은 편이다.&nbsp;우리나라에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다는 기록은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저술된 동양 최고의 지리서인「산해경(山海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nbsp;</div><div><br></div><div>“군자의 나라에 훈화초(薰化草)가 있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國 有薰化草 朝生暮死)”고 적혀있다. 여기서 말하는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킨 것이고, 훈화초는 무궁화의 한자명이다.&nbsp;이로 미루어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자라고 있었던 것은 2000년이 훨씬 넘은 아주 오랜 옛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무궁화에 진딧물이 많고, 꽃이 질 때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아름답긴 하지만 벌레가 많이 모여 싫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정원에 장미를 가꾸는 정성의 3분의 1정도만 기울이면 진딧물 걱정 없이 깨끗한 꽃을 피울 수 있다. 무궁화는 지기 전에 다른 나무의 꽃잎처럼 바람에 산발하여 자기의 몸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어지럽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잎을 봉우리처럼 단정하게 도로 오므린 다음 고운 자태로 낙화되어 오히려 깨끗하다. 무궁(無窮)은, 한자의 훈(訓)대로라면, ‘없다+그침’이란 뜻이 된다.&nbsp;&nbsp;</div><div><br></div><div>오늘 군산현장에서 오랫만에 마무리 작업을 늦게까지 강행했다. 가능하면 이번주 안에 모든 걸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인부들에게 일을 지시해 놓고 나무를 심으면서 각집에 무궁화 한그루씩 심었다. 구매자의의 취향에 따라 이 나무가 이곳에서 수명을 이어갈진 모르지만 지난번 집에도 무궁화를 대여섯 그루를 심어 주었는데 모두 뽑아내고 감나무를 심는 걸 보며 깊은 탄식을 한적이 있었다. 비록 벌레가 많은 나무이긴 하지만 은근과 끈기의 상징인 무궁화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게 아쉽다.&nbsp;&nbsp;</div><div><br></div><div>나는 내가 걸어 온 길을 반추해 보면 호화스런 길은 아니었다. 내세울만한 것도 별로없다. 그렇다고 해서 거름이나 만지며 살고 있는 지금이 진부하다고 느껴 과거에 집착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하더라도 해갈이 없이 꽃을 만들고 피고지길 바랄뿐이다. 그래서 나일 먹을 수록 상념이 깊어진다. 내 자신을 반추해 보면 그만큼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때문이다.&nbsp;&nbsp;</div><div><br></div><div>'꽃은 흔들리면서 크고, 인간은 거짓말을 하면서 성장하고, 거짓말 한 것을 후회하면서 성숙한다. 거짓말을 전혀 못하는 인간은 순진해서 피곤하고,&nbsp;거짓말을 잘하는 인간은 믿을 수 없어서 피곤하다.'는 말이 있다. 도종환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라고 읊었는 데,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많이 흔들렸다.&nbsp;&nbsp;</div><div><br></div><div>사소한 말한마디에도 흔들렸고, 그냥 넘어 갈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가슴앓이를 했던 때가 부지기수이다. 당시에는 비분강개(悲憤慷慨)하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역시 흔들면서 피는 꽃이라는 말에 실감이 간다. 그래서 화가 날 땐 일단 입을 닫는 버릇이 생겼다. 내 말수가 줄어들 때는 화가 몹시 나 있을 때라고 보면 틀림없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9/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13114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자랑할 게 많은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기만 하다. 정말 자랑할게 그렇게 많던가? 밀림의 사자는 어금니가 빠지면 무리를 말없이 떠나 동굴속에 엎드려 굶어 죽는다. 구차하게 허세를 부리거나 남에게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nbsp;사자후(吼)란 말도 있듯이 사자의 울음소리는 늪과 초원지대에 몰려드는 짐승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nbsp;</div><div><br></div><div>아프리카 케냐의 사바나 지역의 동물들은 사자가 굶주리지 않기 위해 서로를 희생함으로서 평화를 유지 한다고 하던가? 텔레비전의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는 사자가 먹이를 사냥하고 포식하는 장면을 주로 보여준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사자가 늘 풍부한 먹잇감을 탐닉하는 걸로 착각한다. 하지만 하루 평균 40킬로미터를 걷고 달려도 만만한 먹이 하나 발견하기 힘들다. 생존의 사투는 그래서 더 치열하다.&nbsp;더욱 처절한 광경은 늙고 굶주린 사자다.&nbsp;</div><div><br></div><div>어느 누구도 범접지 못했던 이빨을 상실한 뒤의 모습이란 차라리 측은하다. 늙고 굶으면 백수의 제왕인 사자도 별수없나 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주먹거리도 안되던 하이에나 무리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게 어찌 사자에 그칠까. 삶이 무상하기는 사자나 사람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nbsp;더 겸허한 마음으로 살지 못했음이 후회가 된다.&nbsp;</div><div><br></div><div>키다리는 더 큰 키다리를 만나면 마음이 위축이 된다. 반면, 난장이는 더 작은 난장이를 만나면 키큰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마음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못한 자들을 보면서 살 맛이 나기도 하고 자신보다 큰 자들을 보면서 살맛을 상실하기도 한다.&nbsp;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nbsp;</div><div><br></div><div>우리 모두는 자연속의 일부분이고 자연은 말없는 우리들의 질투하지 않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앞으로 나가고 또 성장하고자 하는 것들과 그 열망을 무엇으로 막을까!&nbsp;&nbsp;그러나 조금만 돌아보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퇴보’라는 말도 모두 그렇게 생각할 일과 그렇게 획일적으로 살아가야 할 일이 아닌 면도 있다는 거다.&nbsp;</div><div><br></div><div>누군가는 늘 그 자리에 있어서 기준점이 되고 고향 같은 그림으로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달리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들과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박수도 있어야 한다. 외롭고 고독하지만 거기 그 자리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흔적과 향유가 있다. 나는 15년, 혹은 30년, 늘 같은 그 자리에서 존재하면서 충분하게 추억을 생산하는 사람들과 장소들을 만나면 참 고마운 생각이 든다.&nbsp;</div><div><br></div><div>그곳이 문구점이든 자장면집이든, 오래된 서점이든 한곳에 마음을 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한번도 객지를 떠돌지 않고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 남다르게 본다.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을 사는 소박함이 고맙다. 더 크고 싶고 더 넓은 꿈 누리가 그리웠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안분지족’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더 멋져 보인다.&nbsp;</div><div><br></div><div>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나누고 살면서 때로는 그들의 삶으로 타인들을 치유해내는 사람들이 좋다. 얼마나 치유가 많이 필요하고도 부족한지 세상에 넘쳐나는 말들이 무슨 무슨 “힐링” 그리고 “치유”와 같은 말들이다. 자연에 순응하면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삶이 더 소중함을 순수한 경험으로 만난다.&nbsp;</div><div><br></div><div>세상에는 누구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이빨이&nbsp;강한 라이온과 같은 짐승은 뿔이 없다. 뿔이 있는 소와 같은 짐승은 이빨과 발톱이 없다. 오늘 내가 가지는 것이 뿔인지 이빨인지는 알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nbsp;&nbsp;남과 달리 가진 것들 덕분에 나와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환한 빛이 우리를 인도해 줄 것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09/ffa51010e37cddc416baa6f2a0e5d1fa13130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상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 그리고 고마운 것 한가지는 어떤 시점이 되면 우리는 단지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행복해 하는 순간이 온다는 점이다.&nbsp;&nbsp;</div><div><br></div><div>그래서 내가 세상을 다녀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박제된 한마리의 생명없는 새처럼 먼지를 뒤집어 쓰고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하면서 보낸 나날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것이다.&nbsp;나도 그중에 하나이지만 말이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너무 속상한 일로 며칠동안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입맛이 없어 일주일 내내 2000칼로리도 못먹은 것 같다. 젊었을 때는 하루에도 5천 칼로리를 먹은듯 싶은데 요즘은 어쩔 수 없이 하루 두끼를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많이 먹으면 반그릇, 어떤날은 밥 한숟가락 넘기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너무 안먹으니 위가 줄어 들었는지 물만 마셔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어떤이는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서도 식탐을 줄이지 못하는데 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영양실조 죽는 사람이 될 전망이다.</div><div><br></div><div>당진 박목사님이 남도에 다녀오면서 김제 만경이란 곳에 들렸다가 쭈꾸미를 가져다 주었는데 늦게까지 일한 인부들에게 식당으로 회집하여 술안주로 내 놓았을뿐 거의 입을 대지 못했다. 빛고을 박목사님이 미식가이긴 하지만 생물이라 갑짜기 호출하기가 어렵고 담임목사님은 머지 않아 내 전철을 밟을텐데 미연에 그런 불행한 일을 예방하려면 절제시켜야 하니 가까운 인부들만 수지를 맞았다.&nbsp;</div><div><br></div><div>요즘이 쭈꾸미철이긴 하지만 너무 안잡혀 엄청 비싸다고 주변인들조차 모여들어 포식을 하는데, 나만 개점휴업이다. 나도 한 땐 胃를 비우는 건 죄악이란 신조로 살 때가 있었는데, 이대로 질 모양이다. 하지만 무궁화처럼 멋지게 낙화할 생각이다.&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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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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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9 May 2026 13:15:5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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