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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안부두</title>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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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숨고르기가 필요한 시점</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4/3f0e883bd09a02dc0449383118e4fd9821393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은 절기상 하지 후 제4경일인 중복이다. 초복 이후 두 번째 복날로 많은 사람들이 보양식을 먹으며 더위를 잊고 체력을 보충하는 날이기도 하다.&nbsp;</span><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요즘 듣도 보도 못한 더위가 계속되니 기진맥진해 지는 느낌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며 살아 가야한다는 걸 잘 알기에 가능하면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nbsp;</div><div><br></div><div>일주일 이상 후텁지근하여 열대야 현상으로 잠못이룬 사람들이 많다는 데, 사방이 꽉 막힌 도심보단 덜하지만 나 역시 어젯밤은 밤이 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div><br></div><div>열대야(熱帶夜), 즉 tropical night는 하루 최고 기온이 30℃ 이상인 한여름 기간에 야간에도 최저 기온이 25℃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 마치 열대지방의 밤처럼 잠들기 어려운 여름밤을 가리킨다. 낮 시간동안 태양열에 의해 달궈진 땅의 수분은 수증기로 변모하는데, 이 열기가 밤 시간에도 그대로 남아 고온다습한 날씨를 유지한다고 한다.</div><div><br></div><div>사람이 숙면을 취하기에 적당한 온도는 18∼20℃로 밤에도 기온이 25℃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체온 조절 중추신경계가 각성상태가 되어 잠을 이루기 어렵다. 때문에 한여름철의 더위를 나타내는 기후 지표로 자주 사용된다. 최근에는 도시 열섬(UHI) 현상의 영향으로 특히 대도시에서 열대야 현상을 보이는 날이 크게 증가하고, 나타나는 기간 또한 늘어나고 있는 데, 특히 대도시 지역에서는 공장, 자동차. 에어컨 등에서 나오는 폐별로 열대야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해마다 열대야 일수가 증가하고 있다.</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한낮의 기온이 39도에 이르니 일하는 자체가 살인 행위라 새벽 5시쯤이면 농부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목격된다. 하지만 열시만 되어도 햇볕에 노출되는게 노약자들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기에 일을 중단하라고 독려한다. 오늘도 동네 마을회관으로 삼계탕을 먹으러 오라는 전갈을 받았지만 날개달린 애들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동네 사람들과 그간에도 안면을 트지 않았기에 대답은 했지만 가지 않을 생각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뉴스를 보니 오늘 전국적으로 교통체증이 보통이 아닐까 싶다. 초복이 지나고 중복인 오늘, 일년중 여름 휴가를 모두 이 기간에 사용하니 산과 바다가 포화 상태이다. 모두 더위를 피해 피서가는 행렬일텐 데, 그게 전혀 부럽지가 않다. 옛날 선비들은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궈 탁족(濯足)을 즐기기도 하고 또 서민들은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시원한 몇 바자기의 물로 등을 적시곤 했을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나 역시도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하기로 했었지만 사정상 약간 뒤로 물렸다. 동남아 여행이라도 주선할까를 생각하다 일단 국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여러곳을 알아 보았지만 이미 콘도나 펜션을 구하기엔 하늘의 별따기처럼 불가능한데 다행히 오지랖이 넓은 지인을 통해 변산 바닷가에 있는 모항의 가족호텔을 얻어 기족들을 초청했다. 채석강은 물론 모처럼 가족들에게 해넘이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조금후 떠날 생각이다. 몸살 감기로 코를 훌쩍거리지만 이것도 휴가라고 마음이 설레인다.&nbsp;</div><div><br></div><div>오늘과 내일은 아무런 생각없이 가족들과 지낼 생각에 코감기가 심하지만 밀려있는 일을 중단하고 운전대를 잡을 생각이다. 텃밭을 바라보면 한심한 생각이 들고 이미 완성해 놓은 전원주택들도 잔디밭이 잡초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일단 중단하고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숨고르기를 할 생각이다.</div><div><br></div><div>나는 이 일을 몇 년쨰 해보니 순수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아 진다. 가령 잔디는 3년 정도 가꾸어야 보기 좋다는 말을 한다. 잔디와 비슷한 풀이 얼마나 많이 잔디밭을 침범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영상 38도의 날씨임에도 잔디밭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4/68f19f27dc7f979f219140ef2aae2b9821405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인생도 그렇지만 牧會도 마찮가지이다. 분명히 잔디를 심었는 데, 어디서 묻어 왔는지 잡초 투성이다. 처음에는 잔디인지 풀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것들 때문에 선별하는 데 애를 먹었다. 지금도 생김새가 꼭 잔디인 것 같은데, 고약한 잡초가 날 헷갈리게 만든다.&nbsp;</div><div><br></div><div>나는 목회생활 36년 동안 수십번의 잔디밭을 일구어 보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사목을 했다고 자부하지만 정말 그러했는지는 내 자신도 장담하지 못한다.</div><div><br></div><div>그러나 절대 羊들과 부딪히지 않는다는 목회 철학 때문에 잡초를 제거하지 못한 허물이 작지 않다. 때로는 화초를 가꾸는 심정으로 목회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나름대로 섬세한 목회를 했다고 자임하지만 좀 더 관심과 사랑을 쏟지 못한게 후회스럽다. 그래서 더 애착을 보이는지 모른다.&nbsp;</div><div><br></div><div>꽃 한송이가 피어나는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게 너무 많다. 올해도 부지런히 꽃씨를 받으려 한다. 야생화를 비롯 꽃이란 꽃은 모두 수집하고 있다. 모든 것이 나에게는 다음 해를 준비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그러니 땀 좀 흘리는게 무슨 대수인가. 내 손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에 올인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조선 중기의 문신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가 쓴 《옥담유고(玉潭遺稿)》에 보면,“한여름 무더위가 몹시 심하지만(盛夏苦炎熱) 밤 마루에는 풍경이 아름다워라(宵軒美景)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珠涵星照澗)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金漏月穿霞) 이슬이 무거우니 매화꽃이 촉촉하고(露重梅魂濕) 바람이 싸늘하니 대나무 운치 많구나(風凄竹韻多) 앉았노라니 함께 구경할 사람 없어(坐來無共賞) 그윽한 흥을 시에 담아서 읊노라(幽興屬吟)"고 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한여름 풍경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데,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라고 노래하니 더위도 범접을 하지 못할 듯한 선비의 기상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선비라고 안 더웠겠는가. 나는 더위를 피해 방으로 들어와 팬티 바람으로 선풍기 아래 앉을 수라도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나마 도시는 tropical night라고 아우성대지만 이 곳은 해가 지면 자연 바람이 불어 숙면하는 덴 지장이 없다. 아스팔트에서 살지 않는 것만 해도 보통 수지를 맞은게 아니다. 풀벌레 소리가 참으로 정겹다. 어두워질 수록 별이 더 빛난다. 별빛에 취해 하루를 마감하고 눈을 감는게 행복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상경하면 온가족들이 편할텐데 모두를 내려오라니 미안한 마음이지만 대신 여름을 이길 보양식으로 아이들 입맛을 찾아줄 생각이다. 고창 풍천장어집을 예약하려다가 일단 애들 취향을 불어보고 결정할 생각이다.&nbsp;</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351</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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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4 Jul 2026 21:41:40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첫눈내리기 전에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4/165c5b63a83e73d0fe962568d2a35b060559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참으로 어벙한 사람이다. 어벙이란 말은 '똑똑하지 못하고 멍청하다'는 뜻인데, 멍청하다고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똑똑하단 생각도 해보질 않았다. 한 땐, 나에게 사기 치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천사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nbsp;</div><div><br></div><div>그만큼 남말 잘 믿고 어리숙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벙하다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고 교활하고 똑똑한 사람이 아닌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게 사실이다. 좀 손해보고 좀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오히려 그게 편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다.&nbsp;</div><div><br></div><div>내가 근래 만나는 부류는 대게 공사와 관련된 사람들인지라 약간은 거칠고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따지는 사람들이다. 열번 잘해주다 한번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안면몰수하는 사람들이고 잔머리들의 귀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따지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야박할 정도로 대할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알고도 모르는척 눈감아 줄 때가 많은데 그런 헛점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속상할 때가 많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내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갑질한다고 할까봐 가능하면 양보를 하니 날 상당히 얕보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인연을 끊어 버린적이 몇번 있었다. 이렇게 어벙하면서도 살아 보겠다고 안간힘을 쏟는데 왜 인생을 방치하며 살려 하는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인데 조금 힘들면 힘든대로 갈 때까지 가보자.&nbsp;</div><div><br></div><div>노자(子)는 화광동진(和光同塵·진정한 빛은 혼자 잘난 체하지 않고 속세와 잘 어울린다)을 설파하며, “뛰어난 기교일수록 졸렬해보이고 훌륭한 말일수록 어눌하게 들린다”는 말을 남겼다. 세상에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많고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거 같아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스스로가 어벙하다는 걸 인정하긴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어벙한척하는 편이다. 요즘 개그맨 중에 어벙한 사람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데 잘난 사람보다 조금 어리숙한 사람에게 더 정감이 가고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어리숙한 사람을 좋아한다. 가끔 복음서를 읽다가 예수께서 제자를 선택하셨을 때 왜 이들을 제자로 삼으셨을까에 대한 의아한 생각을 가질 때가 많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예수님의 제자들도 가끔 어벙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귀를 정말 알아듣지도 못하고, 엉뚱한 말로 예수님을 곤란하게도 하고, 천방지축으로 살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유월절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누가 큰가를 따지는 한심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어벙한 제자들을 필요로 하셨다.&nbsp;</div><div><br></div><div>그래서인지 요즘 나는 정말 어벙한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된다. 세상은 어벙한 사람을 이용하려 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약게 살지도 못하고 순진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손해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활한 사람보단 어벙한 사람에 정감이 간다.&nbsp;</div><div><br></div><div>약아빠진 사람이 잘 사는 세상에서 언제나 뒤처지고, 변두리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순진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어벙 8단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분명 어리석다고 할지 모른다. 오히려 약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주어지는 환경과 세상 돌아가는 대로 휩쓸려 살지 않고 힘들더라도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4/fb9113e56b3a44bd83d83e68b28a698206003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처음 귀촌을 결심했을 때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강원도 인제 원통, 경상도 울산, 충청도 공주, 그리고 益山을 후보지로 두고 생각했다. 군목으로 처음 종군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했던 곳이기에 건강을 위해 공기좋은 강원도로 갈까. 부모님과 조상들이 묻혀있는 원적지 공주로 갈까. 아님 어린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익산으로 갈까를 생각했다.&nbsp;</div><div><br></div><div>사람에게 지쳐 있었기에 가능하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갈까를 고민했다. 아직까지 그나마 친구들이 존재하고 부모님의 흔적이 있는 익산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일단 하루라도 빨리 인천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서 월세방 하나를 구해 이사해 놓고 차차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막막한 현실앞에 눈물바람을 많이 했다. 목회외엔 생각해 본적이 없기에 무얼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배운 도적질'이라고 건강이 회복되는대로 다시 목회의 길에 들어서거나 요양원 목회를 하려 마음먹었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벙하기에 사람들속에 섞여 살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꼴을 안보며 사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점이 보이면 이용하려하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회에 적응하기가 만만지 않았다. 얼마전 쓴 글중에 "혼자 놀 줄 모르면 귀촌해도 스트레스"라는 말에 발끈하여 전화한 친구가 있었다. 나일 먹을 수록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친구다. 늙은이들에겐 여가(餘暇) 생활이 전부이기에 홀로 살아 선 안된다고 주장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정기적으로 병원엘 가야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콜라텍에도 가고 여행을 다니며 자유롭게 사는게 樂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기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벙한 사람이 살기엔 만만지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모습이 잘못된 거라고 믿고 싶진 않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며칠간 무리한 탓인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일년중 가장 무덥다는 대서 기간에도 일을 한 탓인지 어제부터 근육통이 생기고 오후들언 콧물 기침이 나와 편의점에서 약을 구해 먹고 하루종일 쉬었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는데 아마도 더위를 먹은 탓인가 보다. 현장소장과 인부들을 다른 현장으로 보내고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과거의 설교 동영상을 시청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하면서 소장은 걱정이 되는지 병원에 가서 링거 주사 한방 맞으라고 성화이지만 내 걱정말고 비록 남의 일이지만 열심히 마무리 지으라고 당부했다. 몸이 아프니 갑짜기 서글픈 생각이 들지만 말복 무렵 이사하면 창고를 개조하여 작은 카페를 만들 구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시내에서 전통 찻집을 하던 분이 항아리를 비롯 여물통 절구통 등 옛 물품 수십종을 보관해 줄 수 있느냐는데 당연히 오케이 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맞겨 놓는다지만 실은 내 소유가 될 가능성이 백프로이다. 피아노와 장롱 침대 냉장고도 거의 새 거나 마찮가지라며 거저 주겠다는데, 못이기는척하며 다음주에 실어 오기로 했다. 작은 찻집으로 개조하여 무료 찻집을 만들어 놓고 아무나 와서 쉬어가는 공간을 제공하기로 작정했다. 창문도 통창으로 커다랗게 만들어 겨울철엔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풍경을 연출할 걸 생각하다 보니 삭신이 쑤시긴 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하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갑짜기 소나기를 퍼붓다가 햇볕이 나오는 등 날씨가 엉망이다. 이런날이 더 후덥지근하고 견디기가 어렵다. 그래도 내일이 중복이고 이내 입추가 시작되니 조금만 더 견디면 될 것이다. 현장에 나가질 못하니 인부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인부들이 내 걱정을 해준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계속 굶었더니 배가 고프지만 해가지면 황등에 나가 군만두라도 사와야겠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350</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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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4 Jul 2026 06:02:5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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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서(大暑)와 코감기</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3/029d8097ed4986436041421a44a430161146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해마다 이만쯤이면 똑같은 표현이 등장하지만 실제로 올해의 여름 역시 내 생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것 같다. 지난주까지 엄청난 물폭탄이 내려 물난리를 겪었고, 이번주부턴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국을 지나고 있는 태풍은 우리나라에 습기까지 밀어 올리고 있어 끈적끈적한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데 습도까지 더 해 올 여름 가장 견디기 어려운 날이었다. 요즘은 샤워를 하루에 몇번씩 하지만 여름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본은 살인적인 더위에 온열환자가 발생해 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중국은 태풍때문에 물난리가 극성이라 한다. 오늘이 절기상 일년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인가 본데 대서(大暑) 더위에 '염소뿔도 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 여름의 절정에 이른 날씨는 부실한 몸으로 여름나기엔 우려할 정도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대서를 셋으로 나눠 초후(初候)에는 반딧불이가 반짝거리고, 중후(中候)에는 흙이 습하고 뜨거워지며, 말후(末候)에는 때때로 큰비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더위가 심해져 불볕더위, 찜통더위라고 하는데 밤에도 식지 않는 여름 흔적은 심신을 쇠약하게 만든다. 열대야 현상에 간밤에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두시간 정도를 잔 것 같은데 피곤이 점점 누적되는 기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예전에 대서가 낀 "삼복(三伏)에 비가 오면 대추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걱정했다는데 지금 대추가 문제가 아니다. '중종실록'에 의하면 세자의 사부가 한추위, 한더위라면 공부를 좀 늦춰도 되지 않겠느냐고 임금께 아뢰며, "강독(講讀)은 한추위, 한더위라면 3일을 넘기더라도 무방합니다"라고 아뢸 정도로 궁궐에서도 한더위, 곧 대서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나 보다. 이런 더위에 무슨 공부가 소용있겠는가?&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이니 여름은 가혹한 계절인 것만은 틀림없다. 나라에서도 이런 땐 게을러도 좋다고 공식 인정할 정도였으니 더위를 이길 장사는 없는가 보다. 이틀 후면 중복이고 머지않아 입추 말복이 도래하겠지만 앞으로 한달 가량은 힘겨운 절기를 보내야 할 것 같다. 나는 뜨거운 여름보다 이런 후덥지근하고 습도가 많은 날이 가장 견디기가 어렵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간밤에도 열대야로 숙면하질 못했다. 열대야(熱帶夜), 즉 tropical night 는 하루 최고 기온이 30℃ 이상인 한여름 기간에 야간에도 최저 기온이 25℃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 마치 열대지방의 밤처럼 잠들기 어려운 여름밤을 가리킨다. 낮 시간동안 태양열에 의해 달궈진 땅의 수분은 수증기로 변모하는데, 이 열기가 밤 시간에도 그대로 남아 고온다습한 날씨를 유지하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사람이 숙면을 취하기에 적당한 온도는 18∼20℃로 밤에도 기온이 25℃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체온 조절 중추신경계가 각성상태가 되어 잠을 이루기 어렵다. 때문에 한여름철의 더위를 나타내는 기후 지표로 자주 사용된다. 최근에는 '도시열섬'이 잠못이루는 밤을 만들고 있다.&nbsp;</div><div><br></div><div>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구조물로 뒤덮여있는 도심은 녹지가 많은 교외지역에 비해 태양열로 쉽게 달궈지며 도시 내에는 공장, 주택, 자동차 등 열원이 많아 고온의 공기를 발생 배출하므로 주변의 다른 지역보다 2∼5℃ 가량 높은 온도를 형성하게 되는 현상이다.</div><div><br></div><div>오늘도 인부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며 덥다는 말을 입밖에 내기 어려워 네번인가 얼음물을 제공하면서 오늘까지만 힘들게 일하고 당분간 여름 휴가를 갖자고 위로를 했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수입과 관련되어 타격이 심하겠지만 이런 살인적인 더위엔 잠시 쉼을 가져야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름을 피하기로 했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그건 핑게에 불과하고 주말에 손자 손녀들을 부안으로 초대했다. 낙조로 유명한 선유도나 신시도 장자도 무녀도 등지에 팬션이나 콘도를 얻으려 인맥을 통해 부탁을 해보았지만 8월 24일까진 모두 예약이 끝난 상태이고 예비자 명단도 한참 후순위라 포기하고 부안의 유력인사에게 부탁하여 채석강 인근에 있는 모항가족호텔을 겨우 예약했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3/104af02d0ff768aa3fca40a8a978aa0e11475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인근 해수욕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직사광선이 장난이 아니어서 한시간만 노출하면 화상을 입을 수 있는 상태라 해수욕은 포기하고 맛집 여행을 하려 작정했다. 토요일 내려와 주일날은 새만금 도로를 통해 교회에 갔다가 상경하도록 스케줄을 잡았는데, 나는 조금 젊었을 때에도 아름다운 곳을 보면 가족들, 친구들과 다시 올 걸 다짐했고 대부분 내 생각대로 실행에 옮겼다.&nbsp;</div><div><br></div><div>세상엔 아직 안가본 곳이 많지만 한번만 가본 곳은 한군데도 없다. 보통 두세번씩은 같은 장소를 여행했고 앞으로도 여건만 조성되면 부지런히 떠날 생각이다. 베트남 태국 등지는 30여번 이상 다녀왔고 동남아 일대도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더 나이를 먹어 운신하기 어려우면 몰라도 기력이 있는한 몽골도 가봐야겠고 우즈백 카자흐스탄 인도도 기회만 엿보고 있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는 아마도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나 만날 것 같고 아예 희망 목록에 적어놓질 않았다. 역사에 대하여 상식이 깊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전통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서 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이젠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우리 형제들은 가본 곳을 두번 여행하는 걸 금기시하지만 나는 정반대이다.&nbsp;</div><div><br></div><div>아직 스페인 포루투갈 등 남유럽을 가보지 못했지만 서유럽 동유럽 북유럽 그리스 이집트 이스라엘 터키는 두번 내지 세번씩 다녀왔다. 그러고 보면 낯선 곳을 선호하지 않는 성격이 이런 기형적인 사고를 만들어 낸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도 오랜 친구외엔 가려가며 만남을 가진다. 아마도 추억이란 명제가 내 삶에 크게 작용하는게 틀림없는 것 같다.&nbsp;</div><div><br></div><div>바람이 불거나 느닷없이 비가 오는 날이면 내 가슴은 서걱인다. 나는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때로는 여백으로, 때로는 실루엣(silhouette)으로 남겨 놓는 일이 많다. 하늘을 보며 비를 손으로 받아보기도 하고, 혀를 내밀어 비의 맛을 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비를 즐기며 걷는다. 빗속에서 발로 느끼던 흙의 감촉,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빗물의 알싸한 기운, 흐르던 빗물을 발로 가르며 걷던 그것들까지 그리워진다.</div><div><br></div><div>사람의 입맛은 연애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쳐다보기도 싫거나 혐오했던 음식도 어느 순간 먹을 만해진다. 심지어 마니아가 되기도 한다. 내겐 호박죽이 그랬다. 엄마 꾸중에 못 이겨 마지못해 물컹하고 진한 호박 냄새가 났던 죽을 맛을 봐야 했다. 억지로 먹다 보니 언제부턴가 그 맛이 참 좋게 느껴졌다. 나도 호박죽을 ‘배운’ 것이다. 호박죽이 맛있는게 아니라 어머니가 그리운 것일게다.&nbsp;</div><div><br></div><div><div>19세기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영원한 소년으로 살았던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라는 점을 실천하며 살았고 토마스 풀러는 '당나귀가 여행을 떠날지라도 말이 되어 돌아올 리는 없다.'고 했다.&nbsp;</div><div><br></div><div>카우틸랴는 '동행 없이 여행하지 말라.'고 했으며 독일이 낳은 천재적 작곡가 바그너는 '방랑과 변화를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 일까. 나는 가끔 여행의 충동에 사로잡혀 짐을 싸는 버릇이 있다. 물론 '호기심이란 맹목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여행을 떠나는 자는 방랑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철학자 고울드 스미스의 말을 머리에 담은 채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잠시 후에 만날 이국땅의 정취를 상상하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div><div><br></div><div>내가 자주 찾는 TV 채널은 '걸어서 세상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이다. 아마도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즐겨찾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물론 남미나 북미쪽을 제외하면 거의 가 본 곳이기는 하지만 몇번씩 revival해도 실증이 나지 않는 걸 보면 타고 난 放浪癖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칠십이 넘도록 아직 한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않는 친구가 있다.&nbsp;</div><div><br></div><div>힘들게 여행할 게 뭐냐며 TV를 보면 세계 각국의 풍물이나 문화 유산 등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안가봐도 가본 사람보다 더 안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언제부터인지 그 흔한 동남아 여행을 찬바람이 불면 한번 하자고 졸라댄다. 하필 눈감고도 찾아 다닐만큼 많이 가본 곳을 여행지를 선택했지만 군소리하지 않고 따라 나서기로 했다. 내 지론인즉, 여행이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릴 때 가면 늦는다는 걸 늘상 강조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3/937547981ab90a17c66e217543621a9d11494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난 돈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 여행을 떠난 본 적이 없다. 또한 여행 성수기에 떠난 기억이 별로 없다. 일행에게 민폐가 되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가 보려고 작정했었다. 바람개비를 돌려본 적이 있는가?&nbsp;</div><div><br></div><div>바람개비를 돌려 보았다면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다. 바람개비는 바람이 불어야 돌아간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바람개비가 돌지 않는 건 아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는 그 바람개비를 움직여줘야 한다.</div><div><br></div><div>즉,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만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 탓만 하고 정작 자신은 바람개비를 돌리기 위해 뛰지 않는다. 경험론적으로 볼 때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div><div><br></div><div>중국속담에 '나무는 옮기면 죽지만 사람은 옮기면 산다. 사람은 나무와 달리 한 곳에만 있지 말고 많이 다녀 봐야 활기가 생긴다.'는 말이 있다. 알고 보면 우리 삶이라고 하는 게 여행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모두다 이 지구별이라고 하는 곳에 태어나 잠시 여행하는 나그네 인생에 다름이 아닐 테다. 아마 나처럼 중년(?)을 맞이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삶의 쓸쓸함을 느끼기 쉬울 때이지만 여행은 그 쓸쓸한 빈틈을 가장 아름답게 메워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 내지 싶다.&nbsp;</div><div><br></div><div>아니 여행은 나를 젊어지게 하는 샘을 발견하는 일과 같다. 일단 일상의 문지방을 넘기만 하면 그 샘은 도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중년들이 일상에 발이 묶여 떠나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본다. 제일 먼저 가족이 눈에 밟힌다고 하는데, 지나친 희생은 오히려 자기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여행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nbsp;</div><div><br></div></div><div>일년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이지만 아직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테양광이 있어 전기료 폭탄을 맞을 염려가 없지만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선풍기도 왠만해선 틀지 않을 정도로 열대화(熱帶化)되어 버렸다. 어젯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잠들었다가 콧물 감기에 걸려 하루종일 코를 훌쩍거렸다. 거의 화장지 한통을 다 사용한듯 싶다. 늙으면서 이상한 체질이 되어 버렸다.&nbsp;&nbsp;</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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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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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23 Jul 2026 11:50:2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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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은퇴하면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2/73352a2dfe0ed32083ff9b4817ce06d808323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 신축공사 현장으로 인부들을 불러 도로 포장을 하려는데 새벽부터 한바탕 장맛비가 쏟아진다. 일단 시간을 끌며 비가 그칠지를 가름하는데 이대로는 공사를 중단하는게 옳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일로 순연시켰다.</div><div><br></div><div>인부들이야 비를 맞으면서도 강행했으면 하겠지만 건축주 입장에서 보면 하루 인건비가 120만원에 이르니 일단 일을 시작하면 인건비를 지급해야하기에 순간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div><div><br></div><div>일반 공사현장에선 부득불한 사정이 발생하면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는게 불문률이고 오전만 일하면 절반만 지급하지만 나는 일단 출근을 하면 인건비 전체를 지급해 왔기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고 그래서 비가 오락가락하더라도 일단 출근을 시키면 강행할 때가 많았었다. 우리 인부들과 몇년동안 동거동락을 함께 해왔지만 사장님 생각보다는 우선 당장 자신들의 유익을 우선시하는게 마음에 걸리지만 사용자와의 입장이 서로 다르니 그걸 탓할 수만은 없지만 한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고민해야 하기에 강행할지를 고민해야 했다.</div><div><br></div><div>낮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 힘들었지만 오후들어 다시 비가 쏟아지니 공전시킨 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신 잡초를 뽑으면서 소일거릴 했다. 그것도 일이라고 풀을 뽑다 보니 오른쪽 팔굼치가 욱신거리고 손을 펼 때마다 통증이 심해 그만 두었다. 그래도 할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평할 일이 아니다. 눈을 뜨고 할일이 없어 전전긍긍한다는 건 차라리 나에겐 고문같은 것이다.&nbsp;</div><div><br></div><div>내 주변을 보면, 노년에 아무런 변화도 원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그걸 어찌 탓할 수만 있을까만은 그러다 보니 점점 불만 가득한 노인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다 그런 거는 아니겠지만 내 주변의 지인들은 나일 먹으면서 더 집요해지는 걸 볼 수 있다. 손에 쥔 걸 안놓으려 안간힘을 쏟는다.&nbsp;</div><div><br></div><div>기력이 쇠하여지니 손에 쥔 거라도 붙잡으려 하는 걸 탓할 순 없지만 권력, 건강, 사람 등을 얼마나 품위 있게 놓아버리느냐는 개인의 성숙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본다. 놓아버리고 용서하면, 자유로워지고 새로워지며 깨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nbsp;&nbsp;</div><div><br></div><div>가끔 친구들이 나에게 던지는 화두는 '왜 위험을 감수하는가?'이다. 나는 그간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무엇인가 이루고 싶은 생각이 나를 안달하게 만듬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미 알려진 것이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친숙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nbsp;</div><div><br></div><div>적어도 그것이 나에게 잘 알려진 것이라면 일단은 안도감을 준다. 반면에 미지의 것은 나에게 불안감을 가져다 주고 떨게 만든다. '미지'라는 개념 자체가 나에게 불안감을 준다. 등산을 해본 적이 있는가? 높은 산에 오를수록 더 새롭고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 추락의 위험이 클수록, 바로 옆에 시커먼 골짜기가 입을 벌리고 있을 때 더 왕성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nbsp;</div><div><br></div><div>사람들은 안전장치를 해놓고 살려 한다. 세상의 온갖 안전장치가 난무한다. 은행 잔고가 넉넉하면 그게 안전장치인가? 부인이나 남편을 의지하며 사는게 노년의 행복인가? 나일먹으면 가족, 사회, 교회, 명망, 이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혼자가 된다. 교횔가도 늙은이는 찬밥 신세이다. 더군다나 은퇴한 교역자를 반기는 곳은 없다. 그래서 나는 교횔가더라도 천덕구니가 되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교제를 금하고 있다.&nbsp;&nbsp;</div><div><br></div><div>원로목사가 되겠다고 주접을 떠는 모양세가 좋아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은퇴후 멀리 떠나려고 작정했었다. 막상 모든이의 기억속에서 살아지려 마음먹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무슨일이던지 올인하려 작정했었다. 그래야 추억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거라 믿었었다. 그래서 나는 위험한 방식을 택해 보고 싶은 것이다.&nbsp;</div><div><br></div><div>세상엔 안전장치는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내가 위험하게 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신체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위험, 최종적으로는 영적인 위험까지 포함시켜서 말하는 것이다. 종교도 영적인 모험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지점까지 나아가는 것이 종교이다. 유태인들은 자식들을 교육할 때 "위험하게 살아라, 그것이 잘 사는 길이다"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피해를 당하지만 말고 강인하게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2/6d63541cb88b66fac6ce4ea0412aff2f08335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은퇴목사들 단톡방에 내일 내 초임지 교회에서 대접한다며 참석자들은 답글을 달라고 하지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내 초임지이기에 가고 싶기도 하고 주일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장로 안수집사로 있고, 내가 주례했던 장로님 딸이 권사로 있는 교회이지만 장강물도 뒷물에 밀린다는 말이 있듯&nbsp; 한시절 내 꿈과 열정을 쏟아부은 교회이지만 풍문으로 승리하는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이기에 가지 않으려 작정했다.</div><div><br></div><div>내일 그 시간에 중요한 계약이 있고 시청 수도과에서 현장 답사를 나온다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울산이나 인천 등 내가 지나온 교회를 떠난후 한번도 방문해 본적이 없기에 다른교회에서 초정해도 안가겠지만 이번에도 과거에 억매이지 않으려 외면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동창이며 예성 총회장을 지낸 광주의 조목사가 내 소문을 듣고 만나자고 연락을 하지만 이런저런 핑게를 만들어 기피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를 비롯 대부분은 나일먹으면서 추억에 살려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추억이 아름답긴 하지만 모든걸 기억하고픈 건 아니다. 때로는 너무 힘든 시기도 있었고, 아픈 기억들이 존재한다. 우연한 기회에 찾았던 분위기 있는 찻집 벽에 걸려있는 마른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찬란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박제되어 싱그러운 향기는 상실했지만 오래 오래 마음속에 액자처럼 걸려 있는 것, 그래서 본래의 빛깔이나 향기는 사라졌다 해도우리들의 마음안에 늘 곱게&nbsp; 자리하고 있는 소중한 기억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퇴행심리이기도 하다. 현실을 도피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아름다웠던 과거에 갇혀 지내거나 혹은 공상에 빠져들거나. 무엇이 됐든 지금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큼은 동일하다. 삶이 팍팍할수록, 현실이 답답할수록, '복고'와 '판타지' 장르가 인기를 끄는 것도 결국은 이런 '현실 도피' 심리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무일도 안하면 신간이 편하다. 내 나이 또래는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데 왜 나는 자꾸 일을 만들어 내는지 내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한다. 사실인즉, 여기에서 중단하면 스스로 무너질 거라는 불안감이 내 안에 존재한다. 나는 일이 있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이 가장 불안한 날이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러 일을 만든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다못해 할일이 없을 땐 남의 일을 도와 주러 나서기도 한다. 농사를 짓는 이유도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건 하나도 없지만 성장하는 과정을 즐기려고 부지런히 농작물을 심는다. 물론 육신은 점점 곤고해지고 피곤이 누적되어 가지만 삶이 역겹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강물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무엇이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팔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히고 창가에 앉아 비를 바라보며 추억에 젖어 본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골격구조상 시급하게 4kg 이상 근육을 만들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다음달 약을 받으러 갈 때까지 최소한 60kg로 만들어 내원하기로 약속했다. 갑짜기 몸무게를 늘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러다간 혈당을 컨트럴하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래저래 나이 좀 먹으니 내 맘대로 안되는게 너무 많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344</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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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22 Jul 2026 08:35:3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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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준비된 노후는 설레임이라고 했던가?</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1/1298152676b746e11ee8e70ed8ef9b8408253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어떤게 진정한 행복인지 아직도 알쏭달쏭할 때가 종종있다. 모든걸 무념에서 시작하려해도 현실은 각박한 곳으로 나를 내몰고 있다. 어떤 땐 '나는 아직 건재하다'고 객기를 부리지만 내가 얼마나 허접한지, 얼마나 허약한지를 내 자신이 잘 알기에 무너져 내릴 때가 많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바람이 부는 광야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을 느낄 때가 너무 많다.&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주변엔 한시도 </span><b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말</font></b><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친구가 있다. 남을 안중에 두지 않고 떠벌리는 그 수다에 맛을 들여서인지 하다못 해 남의 허물이라도 끄집어내어 씹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나 모든 인생은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혼자 떠날 수 있어야만 외로움과 쓸쓸함을 당당하게 견디어 나갈 수 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누구의 아내, 누구의 남편, 누구의 부모로써 살아가는 삶은 잠시 접어둔 채 잠시동안 만이라도 오롯이 나 자신과 마음을 터놓고 마주해보고 싶다. 내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인생은 그만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은 외향적인(extrovert) 사람을 늘 선호 하지만, 정작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내성적인(introvert) 사람인 경우가 많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는 외향적이어서 인간관계가 복잡해 고려할 것이 많은 사람과 달리 이것저것 고려할 것 없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끝까지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세상은 소수의 내성적인 사람이 바꾸고, 고독은 창의성의 열쇠이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성경에는 장수를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길게 사는게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길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어쩜 꿈으로 끝날런지도 모르지만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이 내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남들은 하던 일도 접고 쉬고 싶어할 나이에 내일할 일을 계획하고 꿈에 부풀어 있으니 이것도 일종의 병이 아닌가 싶지만 오늘도 차마고도(茶馬古道)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단 생각을 가지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느 기관에서 은퇴자 93명을 상대로 '무엇을 가장 후회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결과, 노후 여가 자금을 준비하지 않았고(12%·복수응답), 평생 즐길 취미가 없으며(10%), 운동으로 체력 단련을 못 했다(15%)는 대답이 각 항목의 1위를 차지했다.&nbsp;&nbsp;'돈·생활' 항목에 대해선 하고 싶은 여행을 마음껏 못 했고,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고, 노후 소득을 위한 설계를 제대로 못 했던 것이 후회되는 일 2~4위에 올랐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은퇴를 앞둔 목회자들에게 감히 권하고 싶은게 있는데 은퇴전에 자격증 몇개쯤은 준비해 놓으라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매월 30만원 가량을 받으면서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자격증, 즉 도배 타이루 방수 등 건축에 관련된 자격증을 따놓으면 현장관리자로 월 백만원 이상 수입을 올릴 수 있는데, 모든 건축에 의무적으로 자격증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고 출근하지 않고 수익이 보장되는 일인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70이 넘으면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조금만 꼼지락거리면 노후에 많은 도움이 될 일이기에 부지런을 떨 이유가 충분하다. 물론 그런 것 없이도 노후가 넉넉히 준비된 사람은 해당 사항이 없지만 자식들을 바라볼 처지라면 쪽 팔리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런 부류였지만 진즉 자격증을 마련해 놓지 못해 신축 때마다 수백만원씩 지출해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1/41e811f879360d83e60a3c5ef824283008263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준비된 노후는 설레임이라고 한다. 준비가 안되어 있기에 사는 게 구차해지고 비굴해져야 한다면 그건 본인 묷이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친구를 챙길 걸, 일 좀 덜할 걸, 도전하며 살 걸, 내 뜻대로 살 걸, 내 감정에 더 솔직할 걸 등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라고 하는데 나 역시 이대로라면 후회속에 인생을 마감할 것만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교만과 아집의, 나를 두르고 있는 거짓스런 치장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저 어린 날처럼 빗속을 마구 달리고 싶다. 비를 맞는 것, 비에 젖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던 어린 날처럼 말이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은 종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똑똑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훌륭하게 대처하는 종이다"고 했는데,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으니 제대로 살았을리가 없었을 것이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내가 지난날 화려(?)했던 모든걸 훌훌털고 인천을 떠나 고향이지만 낯선 곳을 향해 출발한지 십년이 넘었지만 그간에 내 자신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체험했다. 모든게 생소하기만 했고, 울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걸 내려 놓기로 하고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을 하루 아침에 다 바꿀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div><div><br></div><div>어쩌면 매일 매일 쓰러져 허우적거리며 비틀 걸음으로 살았다. 오히려 지금이 내 생애에 가장 활기찬 시간이다. 가진 것없고 들어낼 것없는 상황이지만 가장 진실하게 사는 이 시간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더지처럼 죽어라고 땅을 팠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혹사시켰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민감한 것이 내 결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감각이라는 최면을 걸었다.&nbsp;</div><div><br></div><div>오히려 예민하기에 그만큼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내가 평생동안 추구했던 사명적 삶이 퇴색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크고 어느날 갑짜기 의욕이 실종되고 의기소침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나에게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세상을 살면서 삶에 지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고, 가능하면 긍적적인 안목으로 대하려 안간힘을 쏟는다.&nbsp;</div><div><br></div><div>얼마나 비가 많이 오려는지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새벽에 일어나 공주 현장에서 일할 일꾼들을 태우고 장거리를 다녀 왔다. 장거리라고 해보았자 왕복 200km 미만이지만 이 정도는 나에게 끔찍한 거리이다. 예전같았으면 울산에서 익산까지, 인재 원통에서 익산까지 그리고 인천에서도 걸핏하면 장거리 운행을 했다. 그 먼길을 한달에 한번씩 오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왠만해선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1/fcb82d1c6417f9c8bd774abdb079ef1a08285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더군다나 빗길 운전이기에 긴장이 되는데 우리 소장과 우즈백 인부들은 차에 타기만 하면 코를 골며 잠을 잔다. 그만큼 내가 정숙 운전을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만 고속도로에서 기껏해야 80km를 달리니 약간은 답답할 것이지만 운전을 할 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nbsp;</div><div><br></div><div>졸립기도 하지만 우즈백 녀석에게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공주 공산성과 부여 서동공원 낙화암 고란사를 보여 주었다. 왜 왕궁이 없느냐고 묻는데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자기 나라는 수천년전 왕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데 경주에 가보아도 천년 수도였음에도 왕궁이 없었다는데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 부여 익산에도 왕궁이 없다. 딱히 설명할 지식이 부족함을 느껴야 했다.&nbsp;</div><div><br></div><div>돈벌러 왔음에도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게 이상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도 역사에 관심이 많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을 아직 가보질 못했고 갈 생각도 없다. 산수좋은 장가계나 계림보다 오히려 낙양이나 소림사 베이징이나 소주 항주에 가면 마음이 더 편하다. 고란사에서 시원한 약수 한사발을 마시며 땀을 식히고 돌아왔다.&nbsp;</div><div><br></div><div>집에 돌아와 풀을 뽑으면서 보니 누군가가 내 텃밭을 건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이 가지가 꽤나 달려 있는 걸 보았는데, 제발 달려 사라진 건 아닐텐데 보이질 않는다. 심증은 가지만 범인을 잡을 생각이 없다. 조금있으면 오이김치를 가지고 찾아올게 뻔하기에 손해가 아니다. 좀 멀긴 하지만 세시간 일하고 일당을 받는게 미안한지 우리집에 와서 풀을 뽑겠다는데 사양했다. 내일 경계석을 놓는 힘든 작업을 해야하기에 에너지를 축척하라고 일렀다.&nbsp;</div><div><br></div><div>&nbsp;</div><div><br></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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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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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21 Jul 2026 08:35:1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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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허정(虛靜)</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0/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111307.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봄비는 새뜻하고 여름비는 장쾌하고 가을비는 차 한 잔을 부른다고 했던가? 특히 가을비는 '떠나보낸 사랑'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하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모든 비는 더 진지하게 살 걸 그랬다는 회한의 심정이 강열해진다.&nbsp;&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성격상 비를 참 좋아 한다. 하기야 비 건 눈이 건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면 나는 도대체 가만히 있질 못하고 주인 맞으러 달려 나가는 강아지 마냥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물론 갈만한 곳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만 방안에 갇혀 있는 것 자체가 구속당하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오늘 시심(詩心)을 부르는 비가 내리고 제법 굵은 빗방울이 시든 풀을 깨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고독은 에스프레소(espresso)와 같다. 쓰디 쓴 달콤함처럼, 처음에는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매혹되는 최상의 향기다. 그리고 우리가 의미없는 방황을 멈추고 에스프레소를 즐기듯 고독 속으로 침잠(沈潛)하는 기술을 익혀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따스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 창가에 다가가 창문에 부딪혀 물결처럼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며 ‘유리창엔 비’를 떠올린다.&nbsp;</span></div><div><br></div><div>머그 잔의 커피의 양이 반쯤 줄었을 때만 해도 여유가 있다. 그러나 바닥이 보일듯 하는 순간엔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지나 간 생이 아쉬워 더이상 잔을 비우지 못하고 싸늘하게 식혀 버린다. 마지막 한방울을 삼킬 때가 가장 우울하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머그잔엔 바람만 힁하니 스치고 내 가슴도 점점 싸늘해진다.&nbsp;</div><div><br></div><div>프랑스 속담에 ‘차는 한 잔의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혼자 마시는 차를 신(神)이라고 하니 신비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이고, 두 사람이 마시면 승(勝)이라하여 더 이상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서너 사람이 모여 마시면 그냥 차가 좋아서 마시는 것이고, 더 이상 많은 사람이 모여 마시면 평범한 음료수라고’하는 다경(茶經)의 구절이 생각난다.&nbsp;&nbsp;</div><div><br></div><div>그 말에 따르면 나는 비 내리는 날 홀로 신선이 되어 액체로 된 지혜를 마시는 격이 아닐까? 비가 오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비의 노래를 찾는다. 나 역시 비가 내리면 채은옥의 ‘빗물’을 생각해낸다. 요즘 별다른 일이 없을 땐 혼자서 드라이빙을 하는데, 동행하기를 요구받는 경우가 자주있다. 혼자 돌아 다니면 심심하지 않느냐는데 난 정반대이다. 오히려 둘이 다니면 불편하다.&nbsp;</div><div><br></div><div>둘이 같이 다니면 의견이 갈라지고 셋이 다니면 거추장스럽고 대중앞에 서면 가식이 달라붙기에 차라리 혼자이길 원한다. 'burdensome'은 짐이된다는 의미인데 내가 남에게 짐이되는 것도 싫지만 남의 짐을 떠안는 것을 감당하기가 어렵기에 혼자이기를 자처했다.&nbsp;&nbsp;</div><div><br></div><div>혼자있으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허나, 처음이 문제이지 자신을 어느정도 정리하면 약간이나마 평온스런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 역시 무수한 날동안 '왜?'라는 의문 부호를 가지고 씨름해야 했었다. 내 주변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었다. 이용 가치가 있어서인지 아님 재미있어서인지 단 몇시간도 혼자있는 시간이 없었다. 늦은 밤시간까지 월미도 까페에서 정치도 하고 교제도 나누고 했었다. 하지만 이젠 홀로있는 시간들이 좋다.</div><div><br></div><div>&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남에게 속내를 보일까봐 전전긍긍하는 성격탓에 홀로있는게 더 편하고 좋다. 때론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세상을 사느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여간 나는 별난 성격의 소유자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난 세월을 감안하면 인간관계가 활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난 그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고 참으로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가진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2,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비자]가 주목 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는 이유는 인간관계를 보는 냉철한 시각과 실리를 중시하는 현실 중심의 가치관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론이나 군주론보다는 한비자가 주목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술을 통해 허정(虛靜)과 무위(無爲)로 속내를 감추면서 시공을 초월한 인간관계의 부조리, 권모술수의 허와 실을 꿰뚫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0/ea49a2f30887fa493edd40971f9088d7111420.gif"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허정(虛靜)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만물을 바라보며 일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다.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일의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고 나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정확히 판단하는 것을 뜻하고, 무위(無爲)는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세상을 살면서 터득한바로는 말이 많은 사람이나 떠벌이를 다루기가 가장 쉽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같이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만큼 그 속을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는 없다. 자신의 행동과 말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감정을 억제하고 고뇌를 숨기며 때로는 자신의 마음과 상반되게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지략과 책략의 출발점이라고 한비자는 말하고 있다. 속내를 숨기며 사는 일이 ‘처세’의 한 방법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사람의 일이 늘 겉으로만 돈다. 속내를 들켜 배반당하거나 자신의 속내만 내비쳐 작은 손해라도 입을까 염려스러운 탓에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안부를 묻고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른 아침 충청도 공주 박목사님댁 신축건물 준공검사때문에 일찍 방문했다가 엄청나게 비가 내리는 바람에 내일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근 이인면 달산리 조부의 옛집을 찾았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조상 대대로 이곳에 터를 잡았고 선산엔 도대체 몇대조인지 모를 조상님들 묘소가 즐비한 곳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버지를 비롯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등 삼형제가 이인국민학교에서 전교 일등을 놓쳐 본적이 없다는 그 학교 운동장도 여전하지만 이미 학생이 없어 폐교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참을 옛 함성을 들으며 머물렀다. 마치 빗소리가 아이들의 왁자지껄처럼 느껴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나는 감정 처리에 미숙하고 나를 지킬만한 역량도 부족하기에, 또한 위장술엔 잼병이기에 차라리 몸을 숨기고 싶을 때가 많다. 나 역시 사람에 대한 실망이 워낙 크기에 속내를 감추고 살뿐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자신마저 스스로의 속내를 잊고 말 때가 부지기수다. 아무리 귀신과 원혼이 날뛰어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인간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nbsp;</div><div><br></div><div>중국인은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 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늘 상황을 관찰한다고 하는데, 이른바 ‘바람을 보고 키를 움직인다(看風使舵)’는 민족성을 말하는 이도 있다. 돌고 도는 세상에서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 현재로서는 따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사람들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건 맞지만 이것도 사람마다 성격이 달라 꼭 그렇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nbsp;</div><div><br></div><div>한국사람도 친한 사람이라고 다 속마음을 다 보여주는건 아니니까 말이다. 가족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친한사이에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속앓이 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오랜시간을 함께 보내고 친한 사이라면 그만큼 속마음을 보여줄 가능성이 많지만 사람마다 친하고 편한 사람이라는게 다 다른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친구일지 가족일지도 사람마다 다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20/8a7741485a8fa0240af02652c414052411171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남의 아픔과 울먹임에 손수건을 내밀지 않았기에 자신의 쓸쓸함과 스산함에 남들 또한 손잡아주지 않는 것이다. ‘나’가 ‘남’에게 데면데면한 만큼, ‘남’또한 ‘나’에게 건성으로 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요새 사람들은 수많은 ‘인맥’을 관리한다지만,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늘어날지언정 사람에 대한 헤아림이 깊어지고 받아줌이 넓어지는 건 아니다. 얼기설기 나와 남을 잇는 엉성한 줄들에 엉킨 나머지 현대인들은 넘치는 사람 틈바구니에서 외로움에 부대끼기 일쑤이다.&nbsp;</div><div><br></div><div>담임목사님의 건강이 염려된다. 어제 예배를 집전하다 다 마치지 못하고 주저앉아 교인들이 많이 놀랐다. 십수년전 내가 걸어왔던 전철을 밟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못한데, 나 역시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아 몸부림을 치다 주저 앉고 말았다.&nbsp;</div><div><br></div><div>당장 신경과를 찾았지만 스트레스의 영향이라는 엉터리 진단을 받고 방심했다가 몇일 못가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결국 조기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운동신경을 약간 비껴난 곳에 경색이 일어나 뇌경변 3급 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하루에 두번씩 문학산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오르내리는 무진장 노력끝에 큰 장애로 발전되진 않았지만 한번 무너진 건강은 담낭제거 수술에 이르렀고 이대로 방치하면 단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고향으로 떠나기로 작정했다. 아이들이나 아내에게도 상의를 하지 않았다. 다만 40여년 정들었던 강단을 내려오고 당장 시골로 가야 그나마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div><div><br></div><div>담임목사님이 일단 회복의 기미가 보이긴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보아 일단 오늘 원광대학병원으로 와 MRI를 찍어보고 결과가 나오는대로 얼마남지 않은 사역을 끝까지 할 것인가를 조언해 드리려 한다. 틀림없이 강단에서 죽겠다고 하겠지만 내&nbsp; 전철을 밟지 말라고 선배로서 무거운 충고를 드리려 한다. 선배의 좋은 걸 닮아야 하는데 하필 한스러운 걸 닮아가니 어쩜 좋은가?&nbsp; 예끼 이 사람아! 내 장례식 집전해 준다더니 그리 허약해지시는가.&nbsp; &nbsp;&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341</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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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20 Jul 2026 11:20:0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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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amp;quot;저 건너편에는 많은 것이 있다!&amp;quot;</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9/394ff49a24db101240bf876fe60acfee04205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시골하면 의당 외갓집이 연상되는데 막상 들여다 보면 그게 아니다. 나는 지금도 시골에 정착하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장면들에 익숙하지 않아 시도때도 없이 혼동을 일으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시골도 예전의 시골이 아니다. 시골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지만 부부 사이가 왜 이리 험악한지 저질스런 악다구니와 육두문자가 난무한 일상 대화에 놀라 자빠질뻔했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건 부부의 대화가 아니라 견원지간처럼 험악하다. 하지만 그게 사랑이란 걸 알고 나서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먹을 것이 있으면 그렇게 철천지 원수같다는 영감을 먼저 챙긴다. 가진 것없어 몸을 재산으로 한 평생을 살아, 굽은 등에, 갈고리 같은 손에, 닳은 손톱을 가진 노인들은, 자연의 부분 같다. 부부란 이름으로 살아낸 그분들의 인생은, 도회에서 아우성거리며 사랑을 논하는 우리네 인생과는 류가 달라 보인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도무지, 알 길이 없다. 십년을 살기도 버거운 남남이, 육십 년을 해로하면, 저렇게 은근해 지는 것인지.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그저 이젠 할아버지, 할머니인 그분들이지만, 우리가 보기엔 친구같은 그분들이, 여전히 남편으로, 아내로 손을 맞잡고 그분들에게 남겨진 삶의 행로를 충실히 마무리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특히나 세상이 하도 하수상하기에 그렇다. 근래 나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3년전 암진단을 받았을 때 금방 죽을 거란 소문이 파다한 모양이다. 동기들 중엔 아직 병상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본데 난 퇴원하는 당일 현장으로 출근했고, 오늘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을 지켰으며 오늘도 특히나 세상이 하도 하수상하기에 그렇다. 근래 나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곧 죽을 거란 소문이 파다한 모양이다. 동기들 중엔 아직 병상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본데 난 퇴원하는 당일 현장으로 출근했고, 오늘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을 지켰으며 오늘도 잠시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틈을 타서 마당의 풀을 뽑았다.&nbsp;</div><div><br></div><div>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을 한다는게 너무 위험한 일이란 걸 알지만 소일거리를 넘어 분투 노력중인데,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루머를 퍼트리는 놈이 누구인지를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사는 곳엔 항상 루머(rumor)가 회자된다. 소문이란 그 내용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세상에서 얘기되는 이야기를 말하는 데, 이런 저런 소릴 안듣고 살려면 무인도에나 가야할까 남말하기 좋아하는 군상은 어디나 있기 마현이다.&nbsp;</div><div><br></div><div>거의 같은 의미이지만, 거짓이라는 쪽에 무게를 둔 표현으로 뜬소문, 루머(rumor), 유언비어, 풍문이라는 말도 있다. 심리학자 니콜라스 디폰조와 프라산트 보르디아는 소문을 '어떤 집단이 모호한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설명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이라고 설명하였다. 심리학자 알포트와 포스트만은 소문(rumor)의 강도는 그 내용의 중요성(impotance)과 불확실성(ambiguity, 모호함)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하였다.&nbsp;</div><div><br></div><div><div>그나마 객사했다는 소문이 안나온 것만해도 감사한 일이다. 내 건재함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라도 더 진지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매일 새롭게 한다. 병원에서 나온 이후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려 조심하지만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여자는 얼굴로 늙는다"라는 영국 속담 처럼 정말 마음으로 늙는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그 전만 못하다.&nbsp;&nbsp;</div><div><br></div><div>끼니 때가 되면 오늘은 뭘 먹을까? 입맛이 있을 땐 아무 것이나 없어서 못먹었지만 근래는 진수성찬을 받고도 물말아 먹는 지경이니 끼니가 되면 고민이 시작된다. 늙으며 식욕은 줄고 탐욕은 늘어 난다는 말이 정말인 것 같다. 탈무드(Talmud)를 보면 늙는 것을 재촉하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두려움(tremblewith fear), 노여움(anger), 자손(子孫-chil-dren), 악처(惡妻-bad wife)"라고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9/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04221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일먹으면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다. 또한 공연한 일에 버럭질을 하게되고, 자식문제, 남성화되는 아내 등이 늙음을 제촉한다. 좀더 젊게 살려면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마음속에서 몰아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순수를 읽어버리고 고정관념에 휩싸여 남을 무시하려는 생각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왠지 뻔뻔스러워지고 우연한 행운이나 바라고 누군가에게 기대려는 심리가 발동된다.&nbsp;</div><div><br></div><div><div>나에게도 열정(熱情)의 세월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텅 빈 가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 성격상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120%라고 믿고 있다. 발표력이 부족하고 속에 있는 걸 끄집어 내길 꺼려하는 성격이기에 친구가 많지 않다. 그러기에 나를 방임시키지 않으려고 일을 만들어 내 심신을 고달프게 만든다. 뭔가라도 해야 내 존재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채근한다.&nbsp;&nbsp;&nbsp;</div><div><br></div><div>어차피 고민하지 않고 살 순 없지만 가능하면 빈 공간에 무엇인가를 채우려 의도적으로 애쓰는 것은 싸구려 감상에 빠져 나를 파괴시킬까봐 두려워 내 인계점을 넘나들며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 “요즘 어떻게 보내?” 하고 물으면 그 답(答)이 궁색(窮塞)하다. ”글쎄 왜 사는지?“ 하고 혀를 차며 쓸쓸해 한다.&nbsp;</div><div><br></div><div>설마 내가 이렇게 늙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심정적으로는 젊은이 못지 않지만 어느새 목이 메는 가운데 지난 세월(歲月)의 거품이 사라지고 아픈 추억(追憶)만 남는다. 현실적(現實的)인 꿈도 이상적(理想的)인 꿈도 다 허사(虛事)가 된 듯하다. 후회(後悔)나 회한(悔恨)이 아니라, 그저 매순간(瞬間)의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은 늙어가면서 느끼는 다양(多樣)한 상실감(喪失感) 때문이리라.&nbsp; &nbsp;&nbsp;</div><div><br></div></div><div>1492년까지 스페인령으로 스페인이 통치하고 있었던 지브랄탈 해역에는, 라틴어 세 글자로 된 작은 표지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네블루스 울트라 네블루스 울트라"로 영어로 번역하면 '노 모어 비얀더(NO MORE BEYOND)'이다.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후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곳이 지구의 끝이 아니라고 용감하게 넘어간 사람이 있었다.&nbsp;</div><div><br></div><div>그는 그곳이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들의 생각대로 그들의 앞엔 참담한 벼랑만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는 신대륙 아메리카가 있었다. 그래서 그 후 사람들은 그 표지판을 바꾸었는데, 사람들은 첫 글자 "노우" 라는 단어를 떼어 내고 'MORE BEYOND'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한 단어가 빠지니까 이제는 "저 건너편에는 많은 것이 있다!" 놀라운 것이 있다는 간판으로 바뀐 것이다.&nbsp;</div><div><br></div><div>만약 우리네 인생이 적당히 살다가 죽는 걸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그 인생이야말로 가장 처참할지도 모른다. "저 건너편에는 아무 것도 없다"가 아니라 "많은 것이 있다!"고 믿는다면 인생은 달라지게 된다. 사후는 분명히 존재한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람은 결정적으로 인생을 잘못 사는 사람들이다.&nbsp;</div><div><br></div><div>성경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 25:46)"라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은 최소한 이 문제만큼은 해결하고 살아야 한다.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람은 너무 무책임하다. 설령 아무 것도 없다 해도 전혀 손해될게 없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9/1e16e5d80d3f844d6c22ebe268102dc5042330.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요즘 '궁즉통(窮則通)'이란 말을 자주 떠올린다. 궁하면 다 통하게 마련이다. 양자강 이남의 유자가 강북에서 자라면 탱자가 되듯이 사람도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아예 안하려고 시도를 안하니 그렇지 사람은 죽을 각오를 하면 뭐든지 할 수가 있다. 죽을 사람에게도 힘을 주는 말이 궁즉통(窮則通)이다.&nbsp;&nbsp;&nbsp;</div><div><br></div><div>궁하면 통하게 되어 있다. 헬조선을 한탄만 하고 있거나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면 통할 리가 없겠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하늘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살길이 전혀 없을 리가 없다. 내 현역시절 아파트 11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 집사의 주검에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평소에 농담도 잘하며 밝은 성격인줄 알았는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모양이다.&nbsp;</div><div><br></div><div>우울증이 무서운 정신질환이란 걸 알았지만 내 관심안으로 품지 못한 죄책감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었다. '저 너머엔 놀라운 것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일깨워 주지 못한 내 잘못이 작지 않다. 내 자신이 그 사실을 가끔은 잊어 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려 했으니 어찌 나와 무관하다 할 수 있겠는가? 먼저 내가 'MORE BEYOND'를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는게 중요하단 걸 이제서야 깨달아 간다.</div><div><br></div><div>&nbsp;</div><div><br></div><div><br></div></div><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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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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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19 Jul 2026 04:24:44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비오는 날 허풍선(虛風扇)을 떨어 본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8/dd08339f6fa1633ed128580c619298880221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지금은 촌노가 다되었지만 나도 한 때는 그런대로 봐줄만 했었다. 멋대가리없단 소린 듣지 않았다. 멋이란 풍치(風致)스러운 것, 영어로 쓰면 Elegance이다. 그리고 호방하고 기품나는 몸매를 멋이라 쓰기도 하고 사물의 참맛(Reason)을 포괄하는 단어가 멋이다.&nbsp;</div><div><br></div><div>나도 한 때는 제법 멋있다는 소릴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아예 멋하고는 담을 쌓고 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모나 겉치레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산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다. 세상을 살다 보니 '멋이 있다”, “멋이 없다”라는 단순한 한 마디가 사람의 입장을 바꿔놓기도 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nbsp; &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이는 단순히 외모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몇년전 캄보디아 여행을 하면서 요즘 밭농사를 지을 때 요긴하게 입는 일명 '선풍기 바지'를 여러벌 구입해 왔다. 한벌에 2달러씩 하는 바지를 십여개 구입하여 선물로 나눠주고 요일별로 몸배를 입고 일하는데 때론 시내에 나갈 때도 알록달록한 바지를 입고 활보한다. 예전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들이 일상에서 반복된다.&nbsp;</div><div><br></div><div>세수도 자주 안하고 머리 손질도 거의 안하니 영낙없는 촌노의 모습인데, 부끄럽단 생각이 안드는 걸 보면 나도 많이 뻔뻔해진 것 같다. 주일날이 없었다면 정말 상거지 모습이 될뻔했다. 세월은 멋과 낭만의 개념도 바꾸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외모에서 멋을 찾는다. 여자들은 압구정 얼굴을 선호하고 남자들은 보디빌딩으로 초콜릿 복근을 만들기 위해 성형까지 한다.&nbsp;&nbsp;</div><div><br></div><div>심지어 키가 작으면 루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진정한 멋을 모르는 탓이다. '<b style="font-weight: bold;">멋'은 ‘무엇’</b>에서부터 시작된 말이다. ‘멋있다’는 ‘무엇인가 있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한 사람 내면에 그 무엇이 있음을 의미한다. 각자가 지닌 사상이나 철학 혹은 낭만이 될 수도 있다. 타인과 구별될 수 있는 그 사람만의 향기를 멋이라 할 수 있다.&nbsp;</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신의 생각과 철학에 운치를 가미하면 품격과 세련미가 나타난다. 이것이 진정한 멋이다. 멋의 메카라고 부르는 프랑스의 파리, 런던, 로마, 도쿄, 뉴욕 같은 도시의 멋스러운 색채가 공통점이 있다는 말이 그런 뜻 같다. 억지로 꾸며 놓은 멋이란 남의 눈을 잠깐 속이는 정도의 효과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의 멋은 속에서 풍겨나는 진한 멋을 말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주위를 살펴보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 냄새가 전연 나지 않는 비인간화(比人間化)된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다. 자고로 사람은 '멋'이 있어야 인간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멋'이란 말은 인간의 행동양식, 예술 ·기예 및 사물의 존재양식에서 독특한 감각으로 여과(濾過), 표출되는 미적 관념(美的觀念), 또는 그 미적 형태를 말한다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멋은 몇 마디로는 풀이하기 어렵다. 그 말에는 일반적 의미가 아닌 특수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풍류(風流)나 서양의 유머는 한국의 멋에 가까운 것일 수가 있다. 그러나 풍류 ·유머는 멋의 한 속성(屬性)으로서 멋의 한 단면이 될지언정 멋이라는 개념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은 물론, 부분적으로도 완전히 부합된다고 할 수 없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멋은 그만큼 한국적 독자성을 가지는 말이다. 내 외모로 보면 멋과는 동떨어진 사람같이 보이겠지만 나름대로 멋진 인생을 살고 싶은 욕망이 아직도 내 안에 꿈틀댄다. 나는 멋쟁이는 못되었지만 멋진 정원을 한번 만들어 보는게 꿈이다. 그 동안 몇번의 정원을 만들어 보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정원은 아직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8/2c46655d7830268a67178ed831d86ac802233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단순히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정도였지 보잘 것없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의 실력으로 조언을 하고 알바를 다니는게 한심하단 생각이 들지만 정원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데, 아직 그럴만한 여유가 없기에 경험을 축적시키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지만 불원간에 한곳에 정착하게 되면 꼭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다.&nbsp;</div><div><br></div><div>그래서 주변에 친구를 두지 않고 인간 관계를 만들 시간을 갖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나이들면서 느끼는 것은 가능하면 '필요 없는 것은 버리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비생산적인 인간관계는 가능한한 정리하고,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인간관계도 정리할 수 있으면 정리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욕하는 것보다 아예 어울리지 않는 편이 낫다.&nbsp;</div><div><br></div><div>&nbsp;&lt;도미니크 로로&gt;가 서구와는 다른 생활방식 속에서 삶의 핵심이 ‘심플(Simple)’임을 발견하고, 심플하게 살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내용이 있다. 인생 별 거 아니다. ‘심플(Simple)’하게 살면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지지 못한 걸 위해, 가지지 못할 걸 위해 인생을 그렇게 방임에 빠트리고 자기 자신을 학대할 필요가 없다. 그건 자기 자신을 죽이는 길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 오늘도 부나방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다.</div><div><br></div><div>&nbsp;"Nobody to call on and to meet me." 나를 만나러 올 사람도 없고 또 나를 만나고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다. 친한 친구를 적어도 두 사람은 만들어 두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이 없다는 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반증이고, 날 만나러 올 사람이 없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다. 또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죽은 송장과 같다. 그리고 나는 아무 것도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사람은 인생을 다 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div><div><br></div><div><div>시인 천상병은 인생은 잠시 소풍 왔다 가는 거라 했지 않은가? 천상병시인의 말처럼 인생이란 즐거운 소풍 같은 것 아닌가? 즐겁게 놀러왔다가 즐겁게 놀고 가는 것 그게 인생 아닌가? 나이 들면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적어지고 나를 찾는 사람도 줄어드니 서두를 것은 없지않은가? 사실 나이 들면서 가장 넉넉해지는 재산은 시간뿐이다. 내주변에서 약속 시간을 잡으려하면 바쁘다는 이야길 꺼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nbsp;</div><div><br></div><div>하루에도 성가실 정도로 많은 전화 통화를 받았지만 이젠 벨소릴 듣는 것도 뜸해졌다. 나는 가끔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시간이 '노년'인지 '중년'인지 햇갈릴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견한 사람이고 훌륭한 일을 했다고 허풍선(虛風扇)을 떨어 본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박수쳐 줄 걸 기대하지 않으니 스스로 할 수 밖에....</div><div><br></div><div>사람들은 오직 박수받는 한 순간을 위해 모두가 자신의 삶 전체를 쏟아 붓는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성적이 신통하지 못했다. 잘했던 기억이 별로없다. 옆집 '똥꼬'녀석이 통신표에서 ‘수(秀)’를 셀 때마다 이단옆차기로 넘어 트리고 싶었다. 한마디로 ‘수(秀)’ 공장같았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니 ‘수(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우면 어떻고 미 양 가면 어떤가? 어차피 한번 주어진 삶을 살다가면 그것으로 끝이다.&nbsp;</div><div><br></div><div><div>법정 스님은 "투철한 자기 결단도 없이 남의 흉내나 내는 원숭이 짓 하지 마라."고 했던가? 나는 내 자신의 길을 나답게 갈 것이지, 그 누구의 복제품이 되려는 생각을 버린지 오래이다. 홀로 있어도 의연하고, 늘 한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와 일관된 철학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그 전엔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이제는 가능하면 남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도움을 받지 않으려 결심했다.</div><div><br></div><div>내가 근래 깨달은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는 점이다.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길 때 더 가련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행복이 넘친다고 할 때 정말 천국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가급적 말수를 아낀다. 자칫하면 ‘눈치 없는 인간’ 내지는 ‘감(感) 떨어진 꼰대’로 낙인찍히기 딱이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8/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02245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먼저는 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戰戰兢兢할 때가 많기 때문이고 관점이 다르면 아무리 보편적인 이야기일지라도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게 뻔하기에 말을 삼간다. 모두가 ‘돼지’라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그렇게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nbsp;</div><div><br></div><div>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지는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대로 자기의 느낌을 중요시하며 근시안적으로 살아 간다. 나 역시 한동안 신세타령에 젖어 살아왔다. 불행한 사람을 못보아서이지 나보다 훨씬 곤고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도 많을테지만 잘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처지를 비관한 적이 많았다.&nbsp;</div><div><br></div><div>연암(燕巖)선생은 세상에 사물을 대하며 "귀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좋아해서도 안 되고(貴不可偏愛) 아무리 하찮다고 해서 지나치게 버려두어도 안 된다(賤不可偏棄)"고 하였다. 나는 근래 세상을 통달한 건 아니지만 자연속에서 살며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세상 인심이란 것도 그렇고 인간관계라는 것도 알고보면 내 마음속에서 생성되고 소멸된다.</div><div><br></div><div>오늘부터 3일동안 아니, 다음주도 거의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와 있다. 비가 소강 상태를 보일 때마다 밖에 나가 풀을 뽑으며 소일거릴 하고 있다. 비가 많아지면 잠시 피했다가 잦아들면 다시 풀을 뽑는다. 곧 이사할 집이지만 가능하면 귀신 나올듯한 집으로 방치하고 싶지는 않다. 새로 이사할집으로 옮겨가려고 채송아와 봉선화도 따로 분갈이 해놓았다.&nbsp;</div><div><br></div><div>내 자신에게서 멋을 잃어가고 있기에 집이라도 제대로 가꿔 멋진 집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남겨놓은 건축자재로 쉼터를 만들려 준비중이고 야외탁자를 만들려 목재상을 하는 지인에게 두꺼운 나무도 주문해 놓았다. 또 비가 쏟아 진다. 더웁지 않아 좋기는 하지만 장마가 이제 시작인데 지겹단 생각이 드니 몇일동안 일하지 못했더니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모양이다.&nbsp; &nbsp;</div><div><br></div></div><div><br></div><div>.&nbsp;</div></div><div><br></div><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33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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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18 Jul 2026 02:28:4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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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내 초임지였던 지명을 따 曰雲亭이라 명명하고자 한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6/2c3c347fe1fde625ec54a7547a28d139230237.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인간의 적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nbsp;</span><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류가 이미 4만5천년 전부터 북극권에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살았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찍이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사는 힘은 강하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의 적응력, 즉 익숙해짐은 환경적이나 생존의 부분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면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nbsp;</span>다른걸 주장하기 전에 내 자신을 봐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한동안 나를 짖눌렀지만 어느새 모험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nbsp;</div><div><br></div><div>몇번의 미천한 경험이지만 또한 건방진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전문가나 하는 소릴 지껄이는 내 자신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막상 시골에 내려와 무엇을 할까 고민했는데 이젠 남에게 조언을 하고 훈수를 둘 정도가 되었으니 많이도 변했다.&nbsp;&nbsp;<div><div><br></div><div>처음에 몇번의 건축과정을 통해 업자와의 갈등을 겪으면서 하도 속을 썩어서 그런지 그 정도라면 내가 지어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모험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이젠 잘 짓는다는 소리는 못들어도 왠만한 건축가 흉내는 낼 수가 있고, 가능한한 양심적으로 짓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 가다보니 원가가 많이 들어 큰 이익을 내진 못하고 있지만 소일거리로는 그만이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농사꾼 흉내도 내고 있다. 건축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두가지 일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아예 텃밭이 없는 곳을 선택하고 싶지만 이번에도 500평 가까운 집을 넘보고 있다. 장마철 자라는 풀을 감당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너른 텃밭이 있는 집을 계약했다. 원래 이 집 주인도 나같은 꿈을 가지고 귀촌했겠지만 뒤안에 280평 정도의 텃밭을 감당하지 못하고 매트를 깔아 풀자라는 걸 막아놓은 걸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마도 남편과 함께 전원생활의 환상을 가지고 시작했겠지만 집을 지으면서 남편이 癌에 걸려 미처 완성하지 못한체 세상을 떠난 이후 준공검사는 커녕 미완성 상태로 혼자 살다가 결국은 도심으로 이사하려고 집을 내놓고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월세로 라도 들어오라며 에어컨을 비롯 쓰던 침대와 가전제품을 꽁짜로 주겠다며 옷소매를 부여 잡는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금 사정이 좋지 못하여 현금으로 구입할 수 없다니 월세로 살면서 돈을 벌어 일년안에 잔금을 치루라니 나에게는 구미가 땡기는 제안이긴 하지만 소장은 절대 침대나 가구는 내다 버리라고 성화이다. 죽은 사람이 쓰던 침대엔 귀신이 붙어 건강을 해친다는 논리인데 그 말에 동의하진 않지만 환자가 쓰던 침대는 버릴 생각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얼마전 소장도 시골집을 구입해 리모델링을 마쳤는데 중국에 있는 아내가 지난 월요일인가가 손없는 날이라며 꼭 이날 새집에 들어가 잠을 자라고 했다며 아직 정리가 끝나지도 않은 집에 침구를 가져다가 잠을 잔 걸 알고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가 괜찮았느냐고 물으니 손없는 날이라 그런지 잠을 자고 개운해진 기분이라고 너털 웃음을 짓는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장님도 손없는 날을 택하여 일단 마른 쑥을 태워 집안 구석 구석에 연기를 피우고 잠을 자라고 권고하며 대문옆에 복숭아 나무를 심으면 귀신이 얼씬 거리지 못한다는데, 이자식, 내가 산사람은 무서워하지만 죽은 사람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이고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사람에게 쑥이나 복숭아 따위로 귀신을 쫓으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모두가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세상 사람들은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도 손없는 날이 언제인지를 찾는게 보통이다. 아예 손없는 날을 표기한 달력을 걸어놓은 집도 허다하다. 아마 이 집 주인도 내가 이사할 날짜와 상관없이 8월 1일날 꼭 이사를 할 거라는데 얼마나 인간들의 심성이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지만 아직 준비가 안되어 한동안은 비워두고 내 방식대로 디자인할 생각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6/bba773250763760987230034238d7a0423050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뒷 뜰안에 깔아 놓은 매트는 그대로 둔체 가능하면 여러 종류의 과실수를 심을 예정이고 텃밭용으로 약간만 매트를 걷어내고 여전히 농사꾼 흉내를 내려 작정했다. 앞마당도 200평은 되기에 조경수와 4계절 화초를 심고 이왕이면 연못을 만들고 예쁜 정자도 만들어 내 초임지였던 지명을 따 曰雲亭이라 명명할 예정이다. 구름도 쉬어가는 곳을 만들어 이번엔 제대로 된 정원을 가져볼 생각이다.&nbsp;&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시내 가까운 곳에 500여평의 집을 구했다는 소문이 퍼져 어디냐고 묻는 이가 많지만 소장에게 일체를 함구하라고 지시했다. 내가 가장 기피하는 리박스쿨의 아무개 목사가 다니는 교회가 바로 옆에 있어 소문이 알려지면 이내 찾아올 것이고 울안에 스피아로 그럴듯한 집이 있는 걸 보면 틀림없이 자기에게 달라고 조를텐데 차라리 귀신하고 사는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사하면 30평의 멀쩡한 집이지만 허물어 버릴 생각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귀향하여&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12년동안 열번이상 이사를 다녔지만</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시골집치고 노인네들이 죽지 않은 집이 없었을테지만 아직 귀신을 본적이 없고 일부러 이사 비용이 싸기에 손있는 날을 택했지만 손해보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은 다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랑하는 이와 아픈 이별을 한 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은 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을 수 있게 되고 저 엄중한 독채 치하에서도 평범한 생활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 익숙해짐은 언뜻 비인간적으로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인간 생존의 원천이자 근본적인 힘인 것이다. 적응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생존을 이어갈 수 있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만약 슬픔과 아픔의 경험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이가 있다면 그는 머지 않아 정신병동에 앉아있게 될 것은 자명하다. 우울증에 걸려 생을 끝마치는 사람이 다반사일 것이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느 사상가의 말 중에 ‘사막이 아름다운건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며 인생이 아름다운건 끝없는 노력과 도전이 있기때문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히나 내 또래의 연배들은 무한정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기에 더 진지하게 열중하는 자세를 가진다. 대단한 허무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창 펄펄 피가 끓는 젊은이라 할지라도 간혹, 혹은 간헐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은 있을 것이다. 나도 나일 먹으면서 그런 성찰의 시간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nbsp;</span></div><div><br></div><div>&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곳 시골은 오나 가나 무덤이다. 좋은 자린 죽은 사람들이 모두 선점해 버렸다. 나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무덤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언제 출생하여 언제 졸업했는지가 궁금하여 비석 뒷쪽의 이력서를 읽는다. 아마도 살아 있을 땐 혈기방장하여 거침없이 살았을테지만 죽으니 모두가 허사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언젠간 저럴 운명이란 생각이 들면 숙연해진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성봉목사님의 허사가가 입가에서 맴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말라 영웅호걸 열사들아 뽑내지 마라 유수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토지많아 무엇해 나 죽은 후에 삼척광중 일장지 넉넉하오니 의복 많아 무엇 해 나 떠나갈 때 수의 한벌 관 한개 족하지 않나"&nbsp; &nbsp; &nbsp;&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자랑할 게 많은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기만 하다. 정말 자랑할게 그렇게 많던가? 밀림의 사자는 어금니가 빠지면 무리를 말없이 떠나 동굴속에 엎드려 굶어 죽는다. 구차하게 허세를 부리거나 남에게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사자후(吼)란 말도 있듯이 사자의 울음소리는 늪과 초원지대에 몰려드는 짐승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6/abb73469d2ead197180fcf8c926dfd2323064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아프리카 케냐의 사바나 지역의 동물들은 사자가 굶주리지 않기 위해 서로를 희생함으로서 평화를 유지 한다고 하던가. 텔레비전의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는 사자가 먹이를 사냥하고 포식하는 장면을 주로 보여준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사자가 늘 풍부한 먹잇감을 탐닉하는 걸로 착각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하루 평균 40킬로미터를 걷고 달려도 만만한 먹이 하나 발견하기 힘들다. 생존의 사투는 그래서 더 치열하다. 더욱 처절한 광경은 늙고 굶주린 사자다. 어느 누구도 범접지 못했던 이빨을 상실한 뒤의 모습이란 차라리 측은하다. 늙고 굶으면 백수의 제왕인 사자도 별수없나 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주먹거리도 안되던 하이에나 무리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게 어찌 사자에 그칠까. 삶이 무상하기는 사자나 사람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제와서 생각하니 더 겸허한 마음으로 살지 못했음이 후회가 된다. 키다리는 더 큰 키다리를 만나면 마음이 위축이 된다. 반면, 난장이는 더 작은 난장이를 만나면 키큰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자긍심을 가져 본적이 없다. 주변에선 먹지도 않을 채소를 심는 이유가 뭐냐고 야유를 보내지만 따지고 보면 영농뿐만 아니라 짐승을 키우는 일이나 건축하는 일도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사 모든 일이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거지 논리같지만 내 존재감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살고 있다. 아내는 이제 그만 건축일을 중단하고 편히 살라고 강요하지만&nbsp; 아무 일도 안하기엔 너무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고, 그 일로 인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부모는 되지 않으려고 꼼지락거린다. 민약 내가 아무 일도 안하고 백수로 살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예상대로 라면 앞으로 5년은 더 일할 수 있고, 이 기간동안 남에게 의존하여 살지 않을만큼의 자금이 필요하며 손주들을 일년에 한두번쯤 비행기를 태워주려 독한(?) 맘을 먹었다. 처음 사회로 나와 보았더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자존심이 강하기에 누구의 도움이나 아쉰 소릴 하지 못했다. 절친 몇이 있었지만 내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친몸을 이끌고 현장으로 향한다. 오늘부터 또 몇일간 비가 내릴 모양이다.&nbsp;</span>&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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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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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16 Jul 2026 23:10:4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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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나만 빼고 다들 잘 사는 것 같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5/9780fa28a0d4db21249a653e4f78397723160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절친중에 하나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지만 절대 자기의 것을 나누려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 내 가정 내 자식 내부모에겐 더할 나위없이 관대하지만 남에겐 철저하리만큼 인색하다.&nbsp;</div><div><br></div><div>차량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다닐 정도여서 나같이 털털한 사람은 차를 얻어타기가 부담스러워 가급적이면 내 차를 이용하는 편이다.</div><div><br></div><div>그는 수십년 동안 친구로 지내지만 나를 외계인 취급을 한다. 7년전인가, 애써 비싼 사료로 키운 토끼 기러기 닭을 필요한 동네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계란이며 밭작물도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인 것처럼 개방하는 걸 보고 정신감정을 받아보라고 놀려댄다. 물론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고, 그럴만한 재력도 없다. 기껏해야 직장을 잃고 실직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매달 몇만원 정도를 기부하는 정도에 그친다.&nbsp;</div><div><br></div><div>마음같아서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강요(?) 당하는 유니세프에도 조금이라도 기부하고 싶도, 꽁짜 설교를 듣는 방송사역에도 후원을 하고 싶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남에게 인색하단 소릴 듣지 않으려 마음을 넓히는 중이지만 내 자신에겐 가혹할 정도로 인색한 편이다.</div><div>물론 어느 정도는 남을 의식하는 외식주의(?)의 영향인 탓도 있겠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마치&nbsp;</div><div><br></div><div>자기 영역을 지키려 혈안이 되어 살아가는 노년이 되지 않기를 소원한다. 수캐가 전신주에 오줌을 싸듯 제 영역을 표시하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고 은은하며 고상 무리하게&nbsp; 뒤에서 보조를 맞추며 어느 누구와도 화목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후자가 아니라는 건 자타가 알겠지만 그렇다고 전자처럼 살진 않으려 노력중이다.&nbsp;&nbsp;</div><div><br></div><div>내가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따로 있다. 꼭 내가 여기 있노라 제 모양을 나타내어야 하는 사람, 어느 곳에서도 제 생각과 다르면 목소리를 높이며, 스컹크처럼 독특한 냄새를 피우는 사람, 이들을 가리켜 옛날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꼴값 떠는 사람'이라 하였다. 약간 힘든 일을 하다보니 얼굴 값을 못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지금 내가 꼴값' 떠는 사람은 아니기에 고단해도 참는 것뿐이다.&nbsp;</div><div><br></div><div>나는 가끔 부끄러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꽤나 그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단지 아, 쪽팔려 이런 느낌을 넘어서서 내가 하는 행동이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요소다. 나는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했고 인격적으로나 도적적으로 완벽하게 산 건 아니지만 최소한 기본은 갖추고 살아야겠다고 나 자신을 채근하며 살았다.&nbsp;&nbsp;</div><div><br></div><div>그리고 더이상은 나를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 때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남들보다 실력은 없었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지키며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사람은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물론 사고방식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게 기본이 안 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기본적인 매너, 예의, 태도, 자세, 언어, 행동 등이 안 된 사람이 많다.&nbsp;</div><div><br></div><div><div>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지만 잠깐을 견디고 나면 모든것은 제자리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침묵하는 법을 터득했다. 애당초 무엇에게든 사랑받을 자신 같은건 언제나 늘 없었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인생속에서 더는 상처를 받고 싶지 않고, 더는 무엇을 믿고 싶지 않아서 우회하는 연습을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5/bae80cf80fec5b0bd6ee796a3cca139f23312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만 빼고 다들 쉽게 잘 살아가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그건 내 생각일뿐이고 사실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마사지 샾에 가면 서툰 한국말로 힘을 빼라는 주문을 자주 받는다.&nbsp;</div><div><br></div><div>뭉쳐진 근육을 만지면 죽을 것 처럼 아픈데 힘을 빼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래야 마사지를 하는데 쉬운 모양인데 인생도 그럴 때가 많다.&nbsp;</div><div><br></div><div>힘을 느슨히 빼두는 것도 방법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편이 있다면 좋을테지만 지금은 내가 누군가의 편이 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다는 것에 승복해야 할 때인것 같다. 정말 남의 주머니에 있는 데나리온일 때 목소리가 크게 내는게 인간 군상들이다. 나이를 먹는다는게 뭔가? 젊어서는 자기를 위해서 살았지만 이젠 남을 위해 몇번은 살아보는 것도 손해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공사현장에 있다보니 사장님 회장님 소릴 하도 많이 듣지만 유독 가스업체 대표는 나에게 꼭 '어르신'이란 호칭을 사용하여 식상할 때가 많고 기분이 별로이다. 농담으로 건낸 팔십세란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졸찌에 어르신이 되어 버렸다. 내가 어릴 보아 80을 넘긴 어르신인가. 하지만 아무리 변명해 봤자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nbsp;</div><div><br></div><div>제대로 꾸밈을 해 본 적도 없고 남루(襤褸)한 옷차림에 매일 현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사니 꼴이 말이 아닐테고, 끼니를 제대로 찾아 먹질 않으니 피골이 상접하여 나이보다 몇살쯤 더 올려 보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한동안 수염을 길렀더니 더 일용 잡부처럼 보였을게다. 그럼에도 자족을 소망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 노력하는게 내 현실이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안간힘을 쏟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기로 했다.</div><div><br></div><div>예전 사람들을 반추해 보면, 비록 생활이 곤고했지만 살아보겠다는 의지는 충만했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 격세지감을 느낄만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지수가 높아진 것 같지는 않다. 행복(幸福)이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nbsp;</div><div><br></div><div>나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많은 사람을 알고 사귀어 왔지만 내 마음을 송두리쨰 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말하자면 격의(隔意)없는 사람이 별로 없었단 말이다. 격의(隔意)란 "서로 거리를 두고 터놓지 않는 속마음. 또는 그 거리감"인데 성격적인 탓도 있겠지만 속마음까지 모두를 오픈시키려면 몇년이나 걸릴까를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nbsp;<div><br></div><div>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시간의 길이가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지만, 내가 변하지 않고 남이 변하길 바라는 문화가 한국 사회 전반을 물들이고 있는 상황속에서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란 설정을 해놓고 맺어가는 인간관계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해 본다. 내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여지껏 살아 본바로는 '인생 여정(旅程)은 연습이 없다'는 사실이었고, 용캐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는 점이다.&nbsp;</div><div><br></div><div>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Life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인생은 여정(旅程)이다. 목적지가 아니고)"라는 말을 남겼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장차 내가 가야할 여정이 순탄할 거라고 믿진 않지만 '여정(旅程)엔 연습이 없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5/104af02d0ff768aa3fca40a8a978aa0e23352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일회적 삶이기에 어영부영 연습하듯 살아선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좀 더 인생을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는 결벽증세 같은 것이 내 안에 있기에 남들은 손주나 보며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도 매일 새로운 꿈을 만들며 모험적으로 살려 노력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남들보다 잘나지 못했고 준비가 덜된 상태이기에 더 안간힘을 쏟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욕심 많은 사람은 날마다 새 옷, 새 신발, 새 자동차 등등 '나'가 아닌 '타'에서 새로운 물질을 탐닉(耽溺)하며 무한한 慾心을 부리며 살아 간다. 그러나 자신을 날마다 새롭게 하기 위한 사람이라면 '타'가 아닌 '나'로부터 새로운 것을 追求하고 뭔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 배움을 통해서 날마다 새로워지며 깨우침의 기쁨을 追求한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세울 것도 보잘 것도 없는 전력이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돌아보며 용캐도 잘 살아온 나를 토닥이며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남은 생은 여행하듯 가볍고 즐겁게 살자고 다짐하곤 한다. 물론 실수투성이고, 후회스런 일들만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패배자로 살아 온 거라고 단정지으며 한숨이나 쉬며 절망감에 빠져 사는 것보단 남들이 인정해 주던 말던 스스로 위안을 삼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억지춘향식으로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살기로 했다.&nbsp;</div><div><br></div><div>비가 그치면 찜통 더위가 지속되고 밤에도 열대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오늘 오후부터 3일간 비가 내릴 거란 예보가 나와있어 할일을 결정하지 못하고 하늘만 올려다 보고 있다. 집에 멀쩡한 에어컨이 있지만 올들어 한번도 틀어보질 못했다. 태양광도 설치되어 있어 전기료 폭탄을 맞을 일도 없음에도 이상하게 에어컨 바람이 싫다. 찬물로 샤워하는 것도 질색이다. 체질이 완전히 노친네로 변해가는 기분이 든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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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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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15 Jul 2026 23:44:2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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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초복(初伏) 소고</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4/24a81a10b447ba9d1868b91a2c784f4a21433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사람들은 뭔가를 잘해보려 마음먹었을 때 두 팔을 걷어붙이고 콧김을 몰아쉰다. 이것이 함정이다. 무슨 소리냐고? 이 뜻대로 안 되는 이유의 팔할은 바로 이 부담감 때문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정말 잘해내야만 하는 순간, 너무 잘해보려는 그 마음 때문에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승부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일생일대의 순간, 긴장과 불안은 극에 달하고 부담감은 목을 조른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엄청난 스트레스와 싸우면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선수나 배우, 금융거래인 같은 사람들은 모두 아드레날린의 공격 속에서도 잘 헤쳐나간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어려움에 잘 견디는 탄력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높은 중압감과 요구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일을 처리해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낮 동안 스트레스 호르몬이 치솟아도 이를 활동에 잘 활용하다가, 밤이 되면 호르몬 수치를 정상으로 되돌린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스트레스를 훨씬 깊게 받아들이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알람시계 소리에 깜짝 눈을 뜨면, 스트레스 호르몬들이 강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하고, 이런 흐름은 하루 종일 계속된다. 이런 스트레스성 반응이 지속되면, 심혈관계가 손상을 입어 고혈압과 염증이 나타나고 혈관도 손상을 입는다.&nbsp;</div><div><br></div><div>대부분의 경우 스트레스의 이런 지속적인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잠잘 때뿐인데, 이것도 잠을 제대로 자야만 가능하다. 사실 노골적인 적대감이 위험하다는 것은 우리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자동차 백미러에 분노로 이글거리는 운전자의 얼굴이 갑자기 나타나면, 우리는 그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얼른 양보를 해준다.&nbsp;</div><div><br></div><div>내가 그런 스타일이다.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양보하려 작정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데, 남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 안스러운 생각마저 든다. 의사들이 환자와 대화를 시작하고 나서 평균 18초 만에 환자의 말을 끊는다는 보고도 있다. 사실 일의 강도를 감안할 때, 의사들은 정서적으로 지치고 소진되어서 스스로 마음을 달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를 위험성이 높다.</div><div><br></div><div>그래서 의사들이 알코올이나 마약중독, 자살률도 높다고 한다. 전문직종에 몸담은 사람들이 오히려 지쳐가는 추세이다. 내 주변에도 우울해하거나 에너지가 바닥난 목사들이 많다. 이들은 유머 감각도 메마르고, 감정을 이입하는 능력과 열정도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퀭한 눈에 창백한 얼굴로 좀비처럼 발을 질질 끌며 걸어 다니는 목회자들이 이따금씩 목격된다.&nbsp;</div><div><br></div><div><div>나에게도 그런 체험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어쩌면 매일 매일 쓰러져 허우적거리며 비틀 걸음으로 살았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이 내 생애에 가장 활기찬 시간이다. 가진 것없고 들어낼 것없는 상황이지만 가장 진실하게 사는 이 시간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성격적으로 무척 예민한 편이다. 남들의 평가에 민감하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은 종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똑똑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훌륭하게 대처하는 종이다"고 했는데,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으니 제대로 살았을리가 없었을 것이다.</div><div><br></div><div>모든걸 훌훌털고 인천을 떠나 고향이지만 낯선 곳을 향해 출발한지 만 10년이 넘었다. 그간에 내 자신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화를 체험했다. 모든게 생소하기만 했고, 울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걸 내려 놓기로 하고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을 하루 아침에 다 바꿀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div><div><br></div><div>태풍 바비가 중국을 덮친 모양이다. 중국 동부를 강타하고 북상하면서 산둥성을 거쳐 한반도 북쪽으로 상륙하는 모양인데 그 영향으로 며칠 동안 비가 내릴 모양이다. 며칠전 요란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은 아니지만 비는 제법 내릴 모양인데 바람이 거세어 더위를 몰고 갔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요 며칠새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고 낮엔 37도를 웃도는 날씨 탓에 기진맥진했었기에 비내리는 아침이 참 좋다.&nbsp;&nbsp;</div></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4/53777b08c32c6a90d15c1c590320af21221719.gif"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이 정기상 초복인가 보다.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세 번의 복(伏) 중에 첫 번째 복날을 초복(初伏)이라 하고, 두 번째 복날을 중복(中伏), 세 번째 복날을 말복(末伏)이라 한다. 초복은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다.&nbsp;<div><br></div><div>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리는데, 그러나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월복(越伏)이라고 하는데 삼복기간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로 몹시 더운 날씨를 가리켜 ‘삼복더위’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div><div><br></div><div>어제와 그제가 올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던 것 같다. 물론 삼복(三伏)의 한 가운데에 있는 초복 무렵이라 더웁기도 하겠지만 텃밭의 풀을 뽑는데 그야말로 찜통이나 다름 없었다. 광해군 6년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로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 있을 때"라고 하였다.&nbsp;&nbsp;</div><div><br></div><div>그래서 엎드릴 '복(伏)' 자를 써서 '초복, 중복, 말복'이라고 하는데 최남선의 《조선상식》에는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고 하여 복날을 더위 꺾는 날이라고도 풀이한다. 젊었을 땐 여름이 무진장 싫었지만 이젠 겨울보단 여름이 지내는데 불편하지 않다. 누이가 수박 화채를 만들어 가지고 현장을 반문했다가 내 모습을 보더니 아버지를 보는듯하다며 쉬엄 쉬엄하라고 만류한다. 나도 선친의 기질을 타고 난 모양이다.&nbsp;</div><div><br></div><div>난 아버지는 더위를 안타는 것으로 오해를 했었다. 선풍기 한대없이 부채질로 평생을 사셨는데, 전주근교 완주군 상관면 신리 고덕산이란 곳에 기도원을 세울 때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라는 찬송을 부르며 몇년동안 돌을 쌓으며 결국 기도원을 혼자 세우셨던 걸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더위도 안타고 그게 취미생활인줄로 알았다. 내가 두살 때 이리 신흥교회를 건축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에 다닐 때를 더듬어 보면 흙벽돌을 찍어 예배당을 증축하던 모습이 떠오른다.&nbsp;</div><div><br></div><div>씨멘 블록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직접 흙벽돌을 찍어야 했고, 하루 일과가 오직 벽돌을 찍어 응달에 말리는 일이었다. 어릴 땐 그게 불만이었다. 가믐에 콩나듯 어쩌다가 가족들 데리고 외식해 보는게 소원이었지만 내 평생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항상 일하시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목사는 그렇게 사는 것인줄 알았다. 가정보다 교회가 우선이었고 가족보다 교인이 우선이었다.&nbsp;&nbsp;</div><div><br></div><div>아버지는 우릴 사랑하지 않는 걸로 오해하기도 했었다. 예성과 기성으로 나눠질 때 당신은 예성에 남기로 했으면서도 아들은 서울신학대학으로 가라고 모교에 대한 애착을 보이셨다. 아마도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목사들은 모두 그렇게 사셨던 분들이다. 껌 한통을 사드시는 걸 보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난 날라리 목회를 해 온 셈이다. 너무 쉽게 목회를 해온 것 같다. 그 당시 선배들의 피흘린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한국교회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열매를 따먹기만 하던 한국교회는 명맥을 이어 가기도 힘겨워 한다.&nbsp;</div><div><br></div><div><div>친구들이 초복(初伏)이라고 삼계탕을 예약해 놓았다며 시내로 나오라지만 갈지말지를 고민하고 있다. 원래 날개달린 애들을 싫어하기에 닭이나 오리를 먹지 않는데,&nbsp; 참석해 봤자&nbsp; 잡아 엉거주춤할게 뻔하고 입맛을 다시며 닭먹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생각하는 로뎅'이 되고 말 것이기에 달갑지가 않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날개달린 애들을 싫어했고 보신탕도 10년 넘게 먹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워낙 입이 짧아져 먹는 걸 게을리 했더니 그러다간 체력이 바닥이 날 지경이다&nbsp;</div><div><br></div><div>입맛이 없는데 강제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도 곤혹스럽다. 어릴 때 딸애들이 밥을 안먹으려 하면 한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 땀을 흘리던 생각이 난다. 한창 먹어야 할 때 다이어트 한다고 밥을 거르는 젊은이들이 요즘 많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먹는 것도 모두 때가 있다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밥맛이 없어도 입맛으로 먹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수성찬을 두고도 입맛이 없어 찬물에 물을 말아 먹으니 어쩜 좋은가.&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4/d1ab6181c876eadf22c8d575d763595322204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일 먹으면 식탐이 줄고 체력이 고갈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어릴적 한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가슴을 저민다. 삶이라는게 그렇다. 아무리 밧데리가 새 것이라 하더라도 제네레타가 작동하지 않으면 서서히 밧데리가 방전되고 어느 순간엔 멈추어 서고 만다. 충전된 것만큼만 가지고 살려니 발전이 없었다.&nbsp;</div><div><br></div><div>나일 먹으면 서로 느끼는 감정이지만 서서히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 젊은날 육중한 체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안스러울 것이다. 친구들이 잘 먹지도 못하고 일에 파묻혀 사는 모습에 연민을 느껴서인지 일주일에 두세번은 불러낸다. 식탐이 사라지니 몸에 좋지 않은 자장면이라도 먹이겠다는 생각이란 걸 어찌 모르겠는가. 안그런척하며 미소를 보내지만 이미 그걸 간파했을 것이다.</div><div><br></div><div><div>속내를 숨기며 사는 일이 ‘처세’의 한 방법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사람의 일이 늘 겉으로만 돈다. 속내를 들켜 배반당하거나 자신의 속내만 내비쳐 작은 손해라도 입을까 염려스러운 탓에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안부를 묻고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눈다. 나는 감정 처리에 미숙하고 나를 지킬만한 역량도 부족하기에, 또한 위장술엔 잼병이기에 차라리 몸을 숨기고 싶을 때가 많다. 남에게 속내를 보일까봐 전전긍긍하는 성격탓에 홀로있는게 좋다.&nbsp;</div><div><br></div><div>홀로 있다는 것은 외로움이나 고독을 의미하는것 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외로움이나 고독이란 느낌이 우리의 속 뜰을 더 생생하게 비춰 주고 우리 존재의 근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와 깊이를 가져다 주기에 차라리 혼자있길 열망했다. 젊어서는 자동으로 충전되니 견디어 왔지만 이제는 뭐든지 아껴야 한다. 더이상 충전이 안될지도 모르기에 조심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내 삶이 서서히 메말라 가는 기분을 느낀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nbsp;</div><div><br></div></div><div><br></div><div>&nbsp;</div><div><br></div></div><div><br></div></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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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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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4 Jul 2026 22:18:3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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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큰비가 내릴 거라는데 비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4/f7f3811002a9fe84840b287381debd8a110538.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지금까지 나는 여기 저기에 나무를 꽤나 많이 사두었다. 경제가 어려울 때, 말하자면 나무 시세가 가장 저념하다고 인식될 때 임업자를 돕는다는 심정으로 나무를 사들였다. 꽤나 많이 가져와 전원주택을 짓고 정원을 꾸몄지만 아직도 몇백 그루가 자라고 있다. 대부분 소나무이지만 과실수나 꽃나무 등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던지 수급이 가능할 정도로 인맥도 넓혀 놓았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남들이 보면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꼭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무에 대한 관심이 많고 무엇인가에 올인하고 싶어 가장 내 취향에 맞는 임업에 관심을 기우렸다. 내가 처음 목표했던 노후(老後) 1기는 철저히 배우고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강단을 내려오고 마이크를 놓으니 갑짜기 할 일이 없어졌다. 이렇게 '방충이'일줄은 나 자신도 몰랐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나는 평소에 65세는 절대 넘기지 않고 조기은퇴를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보다 훨씬 은퇴아닌 은퇴를 하고보니 정말 한심한 사람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구두와 넥타이를 버리기로 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지난날의 모든 허황된 생각을 철저히 내려놓고 거름더미를 짊어지고 노가다 현장을 누비며 배우기 시작했다.&nbsp;&nbsp;&nbsp;</div><div><br></div><div>숙달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최소한 4~5년은 앞 선 선배를 따라 다니며 배우려 안간힘을 쏟았다. 대학에도 조경학과가 있어 개방대학에 입학할까 했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현장을 따라 다니기로 했다. 농사를 짓는 일도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다. 때론 자존심이 상하지만 도리가 없지 않은가. 월 20만원짜리 단칸房 하나를 얻어 단칸방에서 시작했지만 초라하단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nbsp;</div><div><br></div><div>나이 50전까지는 종합검사를 받아본적이 없었고 기껏해야 장교로 입관할 때 신체검사 정도가 유일할 정도로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은퇴란 말은 상상조차도 않았고 노후는 남의 일로 여겨 전혀 준비를 하지 못했다. 얼마 정도를 준비해야 노후가 걱정없는 수준인지는 모르지만 교단 년금을 들었놓았으니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혹시 건강이 회복되면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일단 협동목사로 등록을 했더니 교단법에 협동목사란 제도는 없다며 년금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nbsp;</div><div><br></div><div>교목이나 군목 출신들도 년금을 지급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특수목회를 하는 사람들에겐 년금을 받지 말아야지 3~40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년금을 받아놓고 마지막에 교단법을 적용하겠다는 말에 아연실색이었지만 '빌어먹을 새끼들'이란 쌍욕 한마디하고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어차피 한달에 년금 100만원 정도를 받아보아야 노후가 해결되는게 아니기에 내 스스로 노후 준비를 하기로 했다.</div><div><br></div><div>단칸 월세방에서 살면서 매달 20만원씩 내는게 부담스러웠지만 어차하면 이리역에 가서 노숙하면 그만이라는 독한 마음을 품고 훌훌 털어 버렸다. 귀촌 후 5년 동안 금방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시골빈집을 전전하면서 10년안에 노후를 준비해야겠다고 이를 악물고 악전고투했다. 혼자 몸부림을 치며 살았더니 급격하게 체중이 감소했고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nbsp;</div><div><br></div><div>지금은 천신만고 끝에 300여평의 너른 정원에 그럴듯한 집을 가지게 되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허름한 농가주택에서 살았다. 그에비하면 지금은 궁궐에서 살고 있으니 감지덕지(感之德之)란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일을 유심히 지켜 본 형은 꼭 이렇게 살아야하는지를 묻는다. 한 떄 잘나간다고 생각했던 동생이 천덕구니처럼 사는게 안스러워 보였는가 보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과거가 무슨 소용인가. 사람은 어디 있던 역할이 끝나면 떠나야 하는 ‘유목민’일 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가 영원히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 하지만, 부도 권력도 무상한 것이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자기의 것이던가?&nbsp;&nbsp;스티브 잡스의 방은 최소한의 가구만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방에 오로지 스탠드 하나와 바닥에 앉을 조그만 방석 하나가 전부였다.&nbsp;</div><div><br></div><div>그는 그곳에서 명상을 통해 스스로와 마주한다. IT의 거장이지만 전자 기기 하나도, 책 한 권도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텅비다시피 한 공간에 머무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단순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가지고 있던 것을 버려야 단순해지는 것 아닐까? 한 때는 책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당장 읽지 않은 책이라도 다음에 보겠다면서 쌓아 놓다 보니 집에 가장 큰 짐은 책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4/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11065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이사할 때 조금씩 정리했는데도 아직도 적지 않다. 이번집으로 이사 때 눈을 딱 감고 절반은 버렸다. 돈이나 권력, 명예는 물론이고 책이든 음반이든, 가구든, 그 무엇이든 과도한 집착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보지 않은 것, 그리고 현실적으로 볼 수도 없는 책을 끼고 있을 이유는 없다. 쓰지도 못할 만큼 돈을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리라.</div><div><br></div><div><div>사람들은 움켜쥐고 사는 것에 관심이 많고 익숙하다. 삶에서 움켜잡지 못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뒤쳐진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움켜잡지 못하면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사람을 조급증 환자로 만들고,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때 무리수를 잉태하기도 한다. 너도 나도 움켜잡는 일상으로 바쁘다.&nbsp;</div><div><br></div><div>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이제 내 목표가 이루어지면 머지 않아 노후(老後) 2기를 시작하려 한다. 커다란 임야(山)을 구입하여 숲속 정원을 만들고 통나무 집을 지으려 한다. 그래서 나무에 관심을 가진다. 야생으로 닭과 염소를 키우고, 양봉도 하고 싶고, 버섯도 재배하고 싶다. 산에 밤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심어 작은 동물을 불러 들일 생각이다. 그래서 작은 개울이 흐르는 산을 찾으러 시간이 날 때마다 발품을 판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 종착역을 '雲有農場'이란 이름도 지어 놓았다. 네명의 손주들을 위한 공간이란 뜻이다. 내가 직접 지어 준 손주들 이름에 모두 '雲'字를 넣은 건 구름처럼 살자는 의미였다. 바람을 마주보고 맞으면 역풍(逆風)이지만 뒤로 돌아서서 맞으면 순풍(順風)이 된다. 움켜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순간 또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nbsp;</div><div><br></div><div>내가 평생을 꿈꿔왔다고 믿었던 오늘,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살다보면 그 모든 것들의 ‘진짜 모습’에 대한 고민이 불쑥 가슴을 파고드는 때가 있다. 가시 돋친 한마디에 마음을 베이는 날이면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고 외로움까지 쏟아진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다.&nbsp;</div><div><br></div><div>그럴 때마다 '지켜보는 가마솥은 더 늦게 끓는다'는 격언을 떠올린다. 아직은 실망하기에 이르다는 생각을 품는다.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한 개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젊은이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늙은이는 지름길을 안다.&nbsp;&nbsp;나일먹고 보니 이제서야 겨우 눈을 뜨고 사물을 인식할 정도가 되었다. 내려놓아도 손해될 게 전혀없다. 내 시대는 끝났어도 그 다음세대, 그 다음세대가 자라고 있기에 최소한 욕심만은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은 시나브로 또 다른 계절을 데려다 놓고 새롭게 시작하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로운 꿈을 꾼다.</div></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4/fb9113e56b3a44bd83d83e68b28a698211081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새로 구입한 집을 방문하여 어떻게 디자인할까를 연구했다. 470평 중 국유지가 200평이 포함되어 있지만 국가와 공동지분으로 묶여 있어 내가 사용하는덴 아무런 지장이 없을뿐더러 여유가 생기면 불하를 받을 생각으로 지적도를 놓고 소장과 함께 배치도를 그려 보았다.&nbsp;</div><div><br></div><div>도심에서 이만한 정원을 가진 사람이 흔치 않기에 제대로 정원을 꾸밀 생각에 가슴이 설래인다. 일단 월세를 내고 살다가 집이 팔리면 잔금을 지불하기로 약정하고 8월에 인수받기로 했다.&nbsp;</div><div><br></div><div>집에 돌아와 오늘밤 부터 큰비가 내릴 거란 예보를 믿고 텃밭의 풀을 뽑았다. 이미 팔린 집이지만 떠날 때까진 내 할일을 할 생각이다. 상추와 얼갈이 배추, 열무 오이 가지 토마토는 어쩔 수 없지만 90일 배추와 무우도 심어주고 떠날 생각이다. 집나갈 0이 빨래해 주는 격이지만 작물을 파종할 시기가 있기에 이 정도는 배려라 할 수도 없다.&nbsp;</div><div><br></div><div>아직은 비가 내리지 않지만 후덥지근한 바람이 부는 걸로 보아 큰 비가 내리긴 내릴 모양이다. 오이 하나를 따서 지인이 가져다 준 고추장을 찍어 저녁 대용으로 삼았다. 토마토도 몇개쯤 먹으려 수거했다. 오이가 어른 팔둑보다 커 노각이 될 시점이지만 아직 맛은 그럴듯하다. 오이가 한꺼번에 열매를 맺힌 까닭에 내일은 모두 수거하여 소장과 우즈백 친구들에게 나눠 주어야겠다. 농약을 안했더니 열무와 얼갈이 배추는 벌레들의 천국으로 변해가고 있다.&nbsp;</div><div><br></div><div>&nbsp;</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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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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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14 Jul 2026 11:10:2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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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도 한 때는 무쇠덩이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3/ae52af3c54b561c51c699dc9ec2dab92112411.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여름꽃들이 자태를 뽑내고 있다. 지난달까지 그렇게 화사하던 꽃들이 지고 여름꽃들이 방긋 웃는다. 꽃은 피었다 싶으면 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이 피고 진다”라고 탄생과 소멸의 의미를 이어서 표현하기도 한다.&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성경 시편 37:1-2절에 보면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는 말씀이 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이 말씀을 확실히 믿는다. 지난 40동안 줄기차게 외치던 메세지였다. 인간은 풀의 꽃같은 존재이고 악인은 필망의 존재라는 사실이다.&nbsp;&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같이 새가슴인 사람들은 무정한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데, 갈 곳 없이 소실되는 꽃잎들은 정작으로 고와서 서럽기만하단 생각을 가진다.&nbsp;&nbsp;‘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조지훈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의 변화에 둔감해진 현대의 도시민들도 피고 지는 꽃들 앞에선 무심할 수 없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는 그 이유가 꽃에 스며들어 있는 연약함과 쇠락(d´ecadence)의 느낌, 삶에서 죽음으로의 빠른 이행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탄생과 소멸을 동시에 품고 있는 듯한 꽃의 삶은 그 자체로 존재의 모순을 담고 있다. 거역하고 싶지만 거역할 수 없는 한계, 그 모순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안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 그래서 바람에 날리는 꽃잎들의 화려함은 비극적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극의 미학은 우리에게 한계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 주고 감히 모순을 포용하게 한다. 저질적으로 사는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낙심이 되기도 하지만 그 결국은 말씀대로 이루어질 걸 믿는다. 잘났다고 깝촉대고 조금 가졌다고 뻐기지만 그게 영원한게 아니라는 점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죽음앞에선 모든 인간이 평등해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하면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다. 한결같이 내 입장에서 생각하니 분열이 있고 갈등이 생긴다. 세상은 억척을 떨면 무시를 당하지 않고, 악질적으로 살면 손해를 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세상은 악질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반면, 순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한다. 이 세상은 불의한 자가 판을 치고 악인이 오히려 득세한다. 바르게 정직하게 살면 왠지 손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nbsp;&nbsp;</div><div><br></div><div>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그리고 행한대로 갚아 주신다. 악인이 잘 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잠시 두고 보실 뿐이다. 시편 1:6절에서는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했다. 설령 안갚아 주신다 해도 그렇게 살고 싶다.&nbsp;</div><div><br></div><div>영국 속담에 보면 "화낼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이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란 말이 있다.&nbsp;&nbsp;화가 난다는 말은 남이 알아주지 않을 때 자기의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여길 때 생기는 자연스런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옛말에 '자상자 인하지, 자하자 인상지(自上者人下之,自下者人上之)'라는 말이 있다.&nbsp;</div><div><br></div><div>무슨 잠꼬대 같은 표현인가 싶겠지만, 한자 조어 원리를 알고서 조그만 풀어서 읽어 보면, “스스로 높다고 여기면 남이 끌어내리고 스스로 낮다고 여기면 남들이 끌어올려 준다"는 뜻이다. 분노는 오랫동안 인간 삶의 문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중요한 감정이다. 나는 마음을 다치는 경우엔 더욱 입을 열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함구할 때면 주변인들이 더욱 경계한다.&nbsp;</div><div><br></div><div>"짖지 않는 개와 잔잔한 물결을 조심하라(Beware of a silent dog and still water)"는 말이 있는데, 전혀 미동하지 않으니 안전할 거라고 믿지만 사실은 이 때가 위기의 순간이다. 흔들리면서 꽃은 피어나는데 사람들은 안일함을 꿈꾸고 아무일도 안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div><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3/cb18c95744fbec4b8afbb7fa64c56bc711253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도 한 때는 무쇠덩이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걸핏하면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난 사람처럼 처신했었으며 아무리 낯선 곳에 가서도 3년만 수고하면 부자가 되리라는 자만심으로 가득찼었다.&nbsp;</div><div><br></div><div>오늘 병원에 들려 검진 결과를 통고받는데 너무 오랫동안 당뇨약을 먹은 탓에 신장의 기능이 떨어진 거 같다며 피검사를 또 하자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다는 핑게를 대고 다음달로 미웠다.&nbsp;</div></div><div><br></div><div>꼭 필요하니 검사를 요청했겠지만 두달전 같은 병원에서 위내시경과 피검사를 했고 지난달엔 원광대학병원에서 CT촬영과 피검사 등 종합검진을 했는데 별반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는데 또 피검사를 하자는 말에 나름대로 과잉진료라 생각되어 조금 더 미룰 생각이다. 나는 병원과 카센타를 갈 때마다 기분이 별로이다. 상식이 없으니 꼭 덤탱이를 쓰는 기분이 들어 말설여진다.&nbsp;</div><div><br></div><div>젊은 시절엔 병을 모르고 살았는데 이젠 약간만 무리해도 몸에 이상이 생기고 제일 자신있었던 것이 가장 취약한 것이 되어 버린 몸뚱아리로 연명하고 있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는데 성격상 말을 안하고 살다보니 속병이 생긴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떠벌이로 살지 않는 걸 후회해 본적은 없다.&nbsp;</div><div><br></div><div>난 딸들을 만날 때마다 대화를 나누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들려 준다. 잘난사람이나 못난사람이나 잠시 이 땅을 살다가는데 영원할 거라는 착각을 버리라는 것과 어떤 경우에도 절대 소릴지르지 말고 조용히 살라고 조언한다. 쉽게 흥분하고 악다구니 쓰는 건 자신이 천박한 사람이란 걸 들어내는 자충수이다. 다행히 두 딸을 보면서 성품이 예쁜 건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라 생각했다.</div><div><br></div><div>나는 기분이 언잖으면 두문불출하거나 입에 지퍼를 채우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病을 얻기도 했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방식이기에 그대로 성격으로 굳어진 것같다.&nbsp;&nbsp;어떤 땐 내 성격이 싫을 때도 많다. 화가나면 소릴지르고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나는 한번도 소릴지르며 싸워 본 적이 없었고, 목소리 큰 사람관 친분 관계를 맺지 않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nbsp;</div><div><br></div><div>일상 부드러운 대화는 60db 정도이고 코고는 소리는 80db이란다. 경운기 모타도는 소리가 90db이고 나이트클럽의 광난의 소리도 100db을 넘지 않는다는데, 마누라의 잔소리는 130db정도라고 한다. 100db 이상에 자주 노출되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정신병이나 질병에 걸릴 확율이 높다는데, 이는 소리의 크기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게다.&nbsp;</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3/1627d57b1d75fec42382afdbbef611bd11282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도 막간을 이용하여 집을 구하러 다니다가 처음에 보았던 좋은 집을 놔두고 생각치도 않았던 집을 구했다. 일단 월세로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구매하기로 계약을 했는데 500여평의 대지위에 울안에 30평짜리 집이 두채나 있어 약간만 손을 보면 두집이 기거해도 부족함이 없을 거 같은데, 잘 꾸며 말수가 적은 분에게 주거나 펜션처럼 지인들의 아지트 장소로 활용할 생각이다. 인천 임형이 회개하고 시골로 내려온다면 섹서폰 부는 장소로 줄 생각도 있다.</div><div><br></div><div>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하루를 반추하며 난 포도원에 불리움을 받은 인부들을 통해 느낀 감정을 노트에 기록했다. 포도나무는 참 볼폼이 없다. 만약 열매가 아니었다면 포도나무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혹시 저 탐스런 열매를 맺기위하여 자신을 저렇게 학대한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도 있는 건 아닌가? 쪼그라진 어머니의 유방처럼 아주 흉물스러운 나무에서 저런 열매가 맺히는 건 포도나무의 희생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없다.&nbsp;</div><div><br></div><div>나는 야트막한 포도밭처럼 살고 싶었다 산등성이 아래 몸을 구부려 낮게 낮게 엎드려서 살고 싶었다. 아니 앞으로는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는 이미 세상의 술틀에 던져진 포도알이었는지도 모른다. 채익기도 전에 으깨어져 붉은 즙액이 되어 버린 포도나무의 눈물이 유리병속에 담겨져 있다. 그리고 사람을 황홀하게 만들어 버린다.</div><div><br></div><div>얼마나 열매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던졌는지를 무언으로 설명하는 포도원엔 적막이 흐른다. 앙상한 가지에서 이렇게 탐스런 열매를 만들다니 정말 볼수록 신기하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나에서 처음 행하신 처음 이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다. 아마도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실 때 가장 세상에서 빈약하고 흠모할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 주시겠다는 암시였는지도 모른다.&nbsp;</div><div><br></div><div>그걸 십자가 위에서 증명해 보이셨다. 그리고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하셨다. 여우는 포도원에 침투하길 좋아한다. 애써 여우를 잡아내지 않으면 포도원은 이내 초토화될게 뻔하다. 포도원이 망하는 건 간단하다. 작은 여우 하나때문에 포도원이 절단난다. 크고 작은 교회들마다 여우들때문에 혼난에 빠지고 포도 농사를 망치는 경우들이 수없이 일어난다.</div></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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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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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13 Jul 2026 11:29:0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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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37도의 불볕 더위속에 주저리 주저리</title>
			<description><![CDATA[<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2/194a56e330c6bf3197def37d5a48653f084035.jpg" width="480" align="left" class="photo" alt="">이제 갓 돌이 지난 것 같은 아이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닐텐데 엉덩이를 뒤로 빼고 꺼꾸로 기어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했다. 다리가 짧고 아직 걸음에 자신감이 없기에 계단을 내려올 때 이 자세가 가장 이상적이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div><br></div><div>조금 나일 먹으면 계단을 이런 방식으로 내려오진 않을 것이지만 성인이 되기 전까진 이 방법이 최선이기에 존중해 주어야 한다. 물론 계단을 오를 땐 정상적으로 오른다. 계단을 오를 때 두발이 위를 향하고 양손이 아래에 있다면 조속히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 한다.&nbsp;<br><div><br></div><div>갓 돌이 지난 아이들의 지혜를 보며 나도 그런 방식을 따라 보려 한다. 젊어서는 계단을 두칸씩 건너 뛰었지만 이젠 계단을 오르내리는게 가장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두가지 착각속에서 살았다. 나는 절대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늙음은 늘 남의 이야기로만 인식했으며 노인네들은 처음부터 늙은이였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이 날 지배해 왔다.&nbsp;<div><br></div><div>하지만 내 청춘은 오래전에 날 떠나버렸고 나는 빈껍데기가 되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열정과 이상도 모두 청춘을 따라가던 중에 실종되었다. 더 나이가 들면 나는 빨랫줄에 널린 마른 수건 같은 모습일 것이다. 아니 지금의 외모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실은 볼품없어질 것이다. 그러다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듯 삶을 마감할 것이다.&nbsp;</div><div><br></div><div>이제와서 뼈저리게 느끼는바는 나이가 들수록 순발력도 적응력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시류를 거역하기가 힘겹다. 그렇다고 섣불리 시세에 편승하기도 마뜩잖다. 시의적절하게 임기응변하는 재주마저 없어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보 직전이다. 요즘 내가 살아가는 꼴이 그렇다는 실토이기도 하다. 대세에 따르지도(順), 거스르지도(逆) 못해 엉거주춤 견디다보니 삭신이 쑤시고 오금이 저린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내 비록 늙음은 어찌할 수 없겠지만 낡지는 않으려고 나를 채근하며 살고 있다. 퇴직하고 집 안에서 삼식이 노릇한다면 천사같은 아내라 하더라도 그 꼴을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에 은퇴한 목회자가 교회 부지안에 사택을 마련했다는 소릴 듣고 정신감정을 받아 보아야 한다는 독설을 내뱉었다. 후임자를 부담스럽게 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더이상은 교인들이 예쁜 짓(?)이라고 보아주지 않을텐데 어쩌자고 그런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nbsp;&nbsp;</div><div><br></div><div>목회생활 36년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때로는 여러가지 핑게를 대며 소흘히 한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한순간에 싸늘해져 가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다. 아무리 관계가 돈독하다 하더라도 긴장을 풀 수 없는게 목회인 것 같다. 친하다고 해서 마음을 너무 쉽게 열면 나중엔 그것이 올무가 되어 곤욕을 치루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nbsp;</div><div><br></div><div>어제 내 핸드폰에 입력이 되지 않은 번호가 전화기에 뜬다. 받을까말까를 고민하다 받았더니 금마에서 목회했던 아무개목사라며 대전에서 은퇴를 했는데 얼마전 공주 박목사님 댁을 방문했다가 내가 지은 집이라는 소개를 받고 선배님 정말 대단한 결단을 했다며 일부러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했다고 소개한다. 평소에 누구란 건 알고 있었지만 특별한 인연이 아니면 통성명을 하지 않기에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은퇴하고 대전근교에 살고 있는가 보다.</div><div><br></div><div>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 아니고 은퇴하신 목회자들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며 건축 분야가 하도 부침이 심한 곳이기에 조언을 해줄 순 있지만 아직은 마음만 있지 실행하긴 어렵지만 가끔은 폐교한 초등학교를 구매하여 각교실을 그럴듯하게 꾸미고 운동장을 화단으로 꾸며 공동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몇명이 의기투합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nbsp; &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2/1616dc6ee8e99f7e88fd1e20528b20b408415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카톡의 프로필을 유심히 보는 장로교 출신 목회자 한분이 익산 용화산 자락에 17평 주택을 지어 준적이 있는데 그림과 같이 지어 달라고 간청하지만 너무 준비없이 은퇴한 탓에 자금이 넉넉지 않아 꽤나 오랫동안 상담중이다.&nbsp;</div><div><br></div><div>조금 더 적극성을 띄면 내 체질상 거절하지 못할텐데, 처음에는 누구나 천사처럼 할 수 있지만 나중까지 천사로 살 수 없는게 우리네 인생들의 한계이다. 내 텃밭을 보며 느끼는 점은 조금만 관심에서 멀어지면 금방 잡초가 쏟아난다. 겨울이면 모두 시들해져 죽은듯하지만 새봄이 되면 내 정원은 온통 잡초로 뒤덮힐게 뻔한데 인생도 그와 비슷하다.&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얼마전 울산에서 개척하던 시절 청년으로 있었던 이0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주례를 하여 각별한 인연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일 것이고 장로가 되었단 풍문을 들었지만 장립식엘 가지 않았다. 한번 뵙고 싶다고 간청하는데 정중히 거절을 했다. 한번 예외를 만들면 나중엔 걷잡을 수가 없기에 왠만하면 구실을 붙혀 피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잊혀진 기억을 더듬자고 강요한다. 애써 변명하듯 자신의 처지를 열심히 변명하고 있지만 잊혀진 사람, 잊혀질 사람이 있음을 알기에 누굴 탓하지 않는데 그렇게라도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싶은가 보다. 이해한다고 대답해 주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월의 부침(浮沈)을 한두번 본게 아니기에 사람변하고 세월변하는 것에 이골이 나 이젠 어떤 충격에도 요동하지 않을만큼 단련되었기에 추억 저편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내 스스로 인생을 달관(達觀)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스폰지(Sponge)처럼 왠만한 것은 흡수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데, 본인 스스로 마음에 걸리는게 있는듯 애써 과거를 들추어내며 수식어를 길게 늘어 놓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장 어려운 시기에 만났고, 젊은 시절 큰 형님같이 따라었지만 울산을 떠나면서 잊혀졌고 그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당연지사이지만 한시절 함께 웃고 울었던 추억을 간직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고 나를 잊을 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기억해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난 이미 어떤 상황이라도 이해하리라 마음먹었고, 내가 더 주지 못한게 마음에 걸릴뿐 마음의 정리가 끝났음을 알리고 있음에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나에 대한 장황한 수식어를 늘어 놓는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그런 수식어를 들으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 된다. 언젠가 매일성경 본문으로 묵상을 하며, "한마디의 수식어"를 셰어링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 바나바의 생질 마가, 할례당 유스도,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nbsp;&nbsp;별처럼 아름다운 이름들이다. 바울이 일일이 거명한 각자의 이름앞에 붙여진 한마디의 수식어들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할까, 우리들에겐 어떤 수식어가 붙여질까. 훗날에....훗날에 어디선가 우리 이름이 불리워질 때, 내 이름자 앞에 딱 한마디만 붙인다면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오늘은 그 걸 묵상했다.&nbsp;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여자는 얼굴로 늙는다"라는 영국 속담 처럼 정말 마음으로 늙는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그 전만 못하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끼니 때가 되면 오늘은 뭘 먹을까? 입맛이 있을 땐 아무 것이나 없어서 못먹었지만 근래는 진수성찬을 받고도 물말아 먹는 지경이니 끼니가 되면 고민이 시작된다. 늙으며 식욕은 줄고 탐욕은 늘어 난다는 말이 정말인 것 같다. 탈무드(Talmud)를 보면 늙는 것을 재촉하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두려움(tremblewith fear), 노여움(anger), 자손(子孫-chil-dren), 악처(惡妻-bad wife)"라고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일먹으면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다. 또한 공연한 일에 버럭질을 하게되고, 자식문제, 남성화되는 아내 등이 늙음을 제촉한다. 좀더 젊게 살려면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마음속에서 몰아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순수를 읽어버리고 고정관념에 휩싸여 남을 무시하려는 생각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왠지 뻔뻔스러워지고 우연한 행운이나 바라고 누군가에게 기대려는 심리가 발동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12/2e2c81d1ca5ae853fedcd3345f7f380208435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가능하면 가지지 않으려 한다. 자식들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 싶고, 이젠 아내에게도 자신을 위한 삶을 가져 보라고 권고하고 있다. 나일먹으면서 남을 섬기기 보다는 기대려는 생각이 우선이고 도움을 받으려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든다. 남을 섬기기보다는 대우를 받으려는 생각만 든다면 늙어 간다는 증거일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마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누구나 숨어서 많은 눈물을 삼키면서 살아 왔을 것이다. 슬픔과 고통은 우리 삶에서 일상적(日常的)인 것이며 상처(傷處)위에 상처를, 아픈 기억 속에 가슴 아픈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현존(現存)의 감정이다.&nbsp;&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설마 내가 이렇게 늙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심정적으로는 젊은이 못지 않지만 어느새 목이 메는 가운데 지난 세월(歲月)의 거품이 사라지고 아픈 추억(追憶)만 남는다. 현실적(現實的)인 꿈도 이상적(理想的)인 꿈도 다 허사(虛事)가 된 듯하다. 후회(後悔)나 회한(悔恨)이 아니라, 그저 매순간(瞬間)의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은 늙어가면서 느끼는 다양(多樣)한 상실감(喪失感) 때문이리라.&nbsp;&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열정(熱情)의 세월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텅 빈 가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 성격상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120%라고 믿고 있다. 발표력이 부족하고 속에 있는 걸 끄집어 내길 꺼려하는 성격이기에 친구가 많지 않다. 그러기에 나를 방임시키지 않으려고 일을 만들어 내 심신을 고달프게 만든다. 뭔가라도 해야 내 존재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채근한다.&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차피 고민하지 않고 살 순 없지만 가능하면 빈 공간에 무엇인가를 채우려 의도적으로 애쓰는 것은 싸구려 감상에 빠져 나를 파괴시킬까봐 두려워 내 인계점을 넘나들며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 “요즘 어떻게 보내?” 하고 물으면 그 답(答)이 궁색(窮塞)하다. ”글쎄 왜 사는지?“ 하고 혀를 차며 쓸쓸해 한다.&nbsp;&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나온 삶을 서로 나누다 보면 말라붙은 주름살속에서 어려웠던 삶을 헤아릴 수 있다. 만나는 노인들 모습에서 미세(微細)한 얼굴색깔, 근육상태(筋肉狀態), 고뇌(苦惱)와 고통, 기쁨과 슬픔이 중첩(重疊)되어 있음을 발견(發見)하게 된다. 정도의 크기는 약간 다르지만 나일먹으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지인들이 많다.&nbsp;</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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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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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12 Jul 2026 08:45:4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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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 땅의 모든 목회자들에게 촌스런 삶을 권장해 보고 싶다.</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9/2bfabba24a5b28477771d8927f63b4d62240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세상을 살다보면, 앞뒤를 분간할 수 없이 흑암(黑暗)의 밤을 지날 때, 그 정처와 향방도 모르고 무턱대고 나아가야 할 때, 언제 끝날지 모르는 환난과 고통의 때를 당할 때가 있다.&nbsp;</div><div><br></div><div>우리가 잘아는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신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는 광야로 들어가 하루 종일 걸어서 로뎀나무 아래에 앉는다.&nbsp;</div><div><br></div><div>자기의 신세가 이렇게 처량하게 곤두박질할 줄 몰랐던 엘리야는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이는 내 열조보다 못하나이다.'라며 죽기를 간청하는 데, 천사가 먹을 것을 갖다 주며 '이것을 먹고 힘을 얻어 밤 낯을 가리지 말고 호렙산에 가라"고 제촉하게 된다. 40 주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이르러 호렙산 굴속에 은신하여 있을 때 엘리야는 여호와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nbsp;</div><div><br></div><div>너무 세차게 불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맹렬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고,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않았다. 도대체 여호와는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nbsp;</div><div><br></div><div>외관적으로 나타나는 맹렬한 바람이나 바위를 부수는 지진, 화염이라면 여호와의 임재가 있을 거라고 믿겠지만 기독교는 일시적 흥분, 기분, 열정, 광란 그리고 군중심리로 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철두철미 속삭이는 고요 속에 회고와 반성과 침착한 판단이 필요한 종교이다.&nbsp;&nbsp;</div><div><br></div><div>엘리야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이 지나 간 다음 세미한 소리로 임재하셨다. 영문으로 보면 a still small voice(KJV;RSV) 또 다른 성경은 a gentle whisper(NIV;Liv)라고 했다. 말하자면 속삭이는 작은 소리다.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을 외적인 힘으로 말했다면 세미한 소리는 내적으로 역사하며 보이지 않는 힘을 말하는 데, 우리는 어떤 악한 죄인이 외부적 압력이나 폭력에 강요를 받아 변화를 받았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다.&nbsp;&nbsp;</div><div><br></div><div>한 땐, 갈멜산의 강력한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지만 곤두박질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승리나 성공은 어차피 일순간일뿐이다. 그러므로 잘나간다고 자고해서도 않되고 나락에 빠졌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열흘가는 꽃이 없듯 인생의 길엔 자랑할게 별로없다. 그래서 나는 내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려 노력중이다.&nbsp;</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락(奈落)'이란 말이 있다.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절망적인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살아 있을 때에 나쁜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상상의 세계를 말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모든 것을 다 포기(抛棄)하고 희망의 끈조차도 놓고 싶을 때가 한두번은 있었을 것이다. 인생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단순하게 살아 보려 노력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9/eb5360e96c7cf1c3eb59fd637d3b4ba122433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요즘 거울을 보지 않는다. 주일날 교회 갈 때만 본다면 믿을지 모르지만 대충 차안에서 머리를 쓸어 올리는 것으로 단장(?)을 마치니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내 모습을 유심히 살펴 보았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갑짜기 서글픈 생각이 들어 왈칵 눈물을 쏟을뻔했다. 내 모습이라곤 상상이 안갈 정도로 변해 버린 모습에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 고운 모습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초라하고 깡마른 노인네가 거울속에 앉아 긴 한숨을 토해내고 있다. 정말 대학병원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는 해골인의 모습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도 소싯적엔 한 인물 한다는 소릴 하도 많이 들어 내가 정말 잘 생긴줄로 착각하며 살아 왔었는데 이제보니 내 진면목(眞面目)은 전혀 자랑할게 없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변해 버렸는가? 늙음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괜시리 서글프단 생각이 들어 우울한 기분으로 내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내 선친의 모습이 그 속에 있고, 어머니의 병색에 지친 모습도 엿보였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 왔다고 자부하면서 왜 초라함에 눈을 감으려 하는가.&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나를 잘 아는 지인들 가운데 습관적으로 들려주는 말이 노익장(老益壯)이란 말이다. 매일 일을 만들어서라도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불러주는 것일게다. 늙어 주눅든 모습처럼 보기 민망한 것이 없을 것이다. '살아서는 뜻을 빼앗을 수가 없고, 죽어서는 이름을 빼앗을 수가 없다(生則不可奪志, 死則不可奪名).' '예기(禮記)'의 구절인데, 남이 뺏지 못할 뜻과 이름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해야지, 남이 안 알아주는 것을 탄식하지 말라는 얘기이기도 하다.&nbsp;</div><div><br></div><div>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미워할 것(羞惡)은 빈천이 아니다. 그 앞에 기가 꺾여 제풀에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탄식하고, 슬퍼할 일(歎悲)은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망령 떨고, 이룬 것 없이 큰소리치다가 죽자마자 잊혀지는 일이다. 이 걸 믿고 농촌의 삶 역시 여유작작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늘상 하루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고즈넉한 하늘만큼이나 할 일이 무궁하고, 너른 벌판을 바라 볼 때마다 고단함이 펼쳐지게 마련이기에 그곳은 낙원이 아니라 ‘체험 삶의 현장’ 바로 그것이 시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왜 촌놈되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nbsp;&nbsp;늙을수록 병원 가까이에 살아야 한다는데, 그런다고 죽지 않을 재간이 읶단 말인가? 가장 편한 삶을 꿈꿀 시기에 난 시골행을 선택했다.&nbsp;&nbsp;</div><div><br></div><div>그 걸 자랑이라고 할 순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한복판에 서서 자맥질하는게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니 도시를 떠날 수 없을게다. 그 걸 시비할 생각은 없지만 한번쯤은 할 일없는 골방 늙은이로 살바에야 결단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우리 유전자 깊숙한 곳에는 농부들의 힘찬 숨소리가 원형질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절기를 잊고 사는 것은 우주에 뿌리박은 우리 몸을 잊은 거나 다름없다.&nbsp;</div><div><br></div><div>특히나 생채기가 많은 사람일 수록 시골의 촌스러운 사람이 꼭 필요하다. 유명한 미술가 루오의 작품 중에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는 제목의 판화가 있다. 자신을 찍고 아프게 한 도끼날에 독을 주는 게 아니라 향을 묻혀준다는 말이다.&nbsp;&nbsp;세상을 살다보면 미운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자기만 알아 달라고 졸라대는 철부지한 인생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 현장에서 한평생 사목을 한다는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닐듯 싶어 이 땅의 모든 목회자들에게 촌스런 삶을 권장해 보고 싶다.</div><div><br></div><div>&nbsp;노가다까지는 몰라도 은퇴후엔 고향으로 돌아가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인정하는게 좋을듯 싶다. 공연히 도시를 혼잡하게 만들 이유가 전혀없다. 한창 일해야 할 시기의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내려 와야 30평에 60억원 한다는 서울 아파트 값을 내리게 할 수 있다. 본시 촌놈들이었을 것인데 무엇때문에 주저하는가? 하루종일 현장에서 땀흘리면 초저녁임에도 잠이 쏟아진다. 잠이 보약이라는데, 그나마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쉽게 잠드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9/c11b37e1df35e938bb23472cf4b9e6b322455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거의 5일만에 태양이 뜨는 모습을 보았다. 장마철이긴 하지만 눈부신 햇살을 보니 이대로 장마가 물러갔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 뒤를 이어 몇번의 태풍이 뒤따를 것이다.&nbsp;</div><div><br></div><div>촌에 살면 기후에 민감해지는데 이제 비오는 날이 그리워지기도 할 더위가 뒤를 이을 것이다. 사는게 정말 힘겨운 사투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고 역사가 만들어진다. 벌써 들녁엔 자란 모가 푸르름을 더해 준다. 불과 엊그제 모를 심은 것 같은데 몰라보게 자랐고 어영부영하다 보면 곡식이 익어 노란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내 기력은 더 초췌해졌다고 탄식할 것이다.&nbsp;</div><div><br></div><div>부동산 업자들에게 내 갈 곳을 부탁했는데 기껏 소개한다는 것이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폐허 수준의 집들뿐이고 그렇다면 가격이라도 착해야 하는데 촌집 하나 가기고 떼돈을 벌려는 수작이라는 욕찌거리가 나올 수준이다. 물론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의 입장의 차이지만 말이다. 그럴듯하면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원만하면 거리가 멀거나 리모델링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크단 생각이 들어 열심히 찾고 있지만 갈만한 곳이 없다.</div><div><br></div><div>부동산 업자를 통하지 않고 지인을 통해 몇군데 소개받은 곳이 있는데, 가격이나 입지조건이 마음이 들어 계약하려는데, 욕심이 생겼는지 슬그머니 가격을 올리더니 시간을 지체시킨다. 자주가는 식당을 통해 소개받은 집도 리모델링을 하려면 상당한 수고가 뒤따라야 하지만 읍내에 있고 가격이 착하고 평수도 200여평에 이르니 최종 첫번째 집에게 통보하고 오늘중으로 둘중에 하나를 선택할 생각이다.&nbsp;</div><div><br></div><div>소장에게 사준 집도 처음엔 4천만원을 불러 다른집을 계약했는데 뒤늦게 3천만원으로 다운시켜 졸찌에 두개의 집을 구하게 되어 자금난을 겪고 있는데 나 역시도 그럴 확률이 높지만 일단 읍내 기와집을 계약하려 한다. 오늘은 일을 멈추고 소장과 함께 어디까지 고칠 것인가를 세세히 판단해 보고 가능하면 돈을 덜 들이고 교통이 편한 곳을 선택하려 한다. 면내 편의점 식당 철물점 주인 2층에서 개척교회를 하시는 목사님 등 왕래하는 주인들이 내가 구입한다는 소문을 듣고 좋아라 한다.&nbsp;</div><div><br></div><div>드나드는 출입구가 작아 옆집에게 더 비싼 가격에 20평만 달라해도 별로 시큰둥하는데 주변에서 압력을 넣어 강제시킬 생각인가 보다. 지금도 승용차는 출입하는데 지장이 없고 한적한 포장도로가 넓어 길에 주차해도 문제가 없지만 이왕이면 자재를 실은 추럭도 집안까지 드나들 수 있어야 편리하기에 대토를 해서라도 출입구를 넓히고 싶다. 식당 주인이 이 일대에선 꽤나 알아주는 분이 이사온다는데 또한 현싯가보다 두배를 준다는데 욕심부리지 말라고 닥달하는가 보다. 그나마 날 반기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은 걸 보니 헛살진 않은 모양이다.</div><div><br></div><div>나는 집을 구할 때 제일 먼저 주변 인물을 본다. 술주정뱅이와 말이 많은 사람과 함께 살기엔 내 인내심이 부족하고 사람들과 교제하며 살지 않은 탓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곳을 선택하려니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예전에 옆집에 농아가 살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울안에 무덤이 있어도 상관이 없다. 죽은 사람은 말이없기에 상대하기가 오히려 편하다. 시끄럽고 잔소릴 많이하고 과잉 친절한 사람만 없으면 그런대로 적응하며 살 수 있다.</div><div><br></div><div>내일 섬으로 낚시를 가기로 했기에 소장이 지렁이를 구하고 낚시대를 점검하는데 입도하는 뱃편을 예약하고 나오는 뱃편도 주일 아침 첫배로 예약을 했다. 일단 교회에 갔다가 다시 부안으로 가 오후까지 낚시하고 돌아오는 꾼들을 수송해야 한다. 얼마나 우럭을 많이 낚으려는지 모르지만 참이슬 한박스에 각종 과일을 구하려는가 본데 내가 볼 땐 공주 박목사님과 동행하지 않는한 우럭은 커녕 망둥이 몇마리 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고기가 그렇게 멍청한가?&nbsp; &nbsp;</div><div><br></div><div>&nbsp; &nbsp; &nbsp;</div><div><br></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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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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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9 Jul 2026 22:57:5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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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 흔한 우산 하나없이 장마철을 보내지만</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8/8e9196482770065b0b734717ba9060a623005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촌에 정착했기에 약간의 불편함이 따라 다니지만 도시에서 얻지 못한 걸 얻고 있어 불만은 없다. 일을 하다가 이마가 깨졌어도 대일 밴드를 붙히면 그만이다. 건축 일을 하다 톱날에 스쳐 피를 꽤나 흘린 탓에 정신이 혼미해진 적이있지만 그 정도로 병원에 가는 사람은 없다.</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되는 것처럼 내 생애 대부분을 도시생활에 젖어 살아온 까닭에 귀촌 이후 문화와의 단절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한 생활환경을 마다하고 갑작스런 변화를 모색하기란 어지간히도 어려운 결심이였음을 알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문명의 이기와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불편한 세월을 감내하는 도리밖에 없었고,&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나마 인터넷이라는 어마어마한(?) 최첨단 이기가 있기에 까막눈 신세는 모면했지만 여전히 촌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시골스럽게 살고 있다.&nbsp;&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말이지만 옛날 순정 영화에 보면 '기구(崎嶇)한 운명'이란 말이 많았다. 삶이 평탄하지 않고 가파르다는 말인데,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회 전반적으로 극심한 고통이 있었기에 기구한 사연들이 많았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기구한 운명을 탓하는 사람은 낙후되거나 진짜 기구한 생을 살았지만 그런 운명적인 처지를 극복하고 억척을 떨었던 사람들에 의해 시대가 바뀌어 나갔다.</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촌놈이 되고 보니 이제 뭐든지 할 수가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처음엔 막연한 생각으로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지만 내 안에 이런 적응력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내 안에 골수 촌놈의 기질이 꿈틀대는 걸 기여히 찾아 내었다. 그리고 촌놈 문명인이 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우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친구녀석들은 내가 촌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문화와는 담쌓고 살아가는 반문명인 취급을 하지만 문화(culture)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번역한 말로 본래의 뜻은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였는데, 나중에 교양·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니 나야말로 진정한 문화인이란 역설을 주장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시골촌놈 소릴 들은지도 십여년 지났다. 한번 비에 젖고나면 소나기가 두렵지 않듯이 처음이 문제이지 살다보니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더 깊은 산속으로 도망하여 쳐박혀 살겠다는 결심을 굳히면서부터 웬만한 문화생활과는 아무래도 아쉬운 작별을 각오해야 된다는 결심을 하지않을 수 없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8/5e949c35e2a65b5ab85f28e9a416822a23024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처해있는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시골생활이나 건축현장은 대게 이런 정도는 감내를 하며 극복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불편한 생활속에 자연친화적 삶의 의미를 알아 가는 수확을 만끽하고 있다. 무조건 손해 본 것만이 아니다. 일하면서 건강해졌고, 쓸데없는 상념에 잠기지 않고 여름에서 가을을 기다리는 것만 해도 충분한 힐링이 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집 하나를 지으려면 석달 정도 걸린다. 무진장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 100일간 기대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비록 금전 만능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굳이 따져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지만 지식을 살 수 없다. 돈으로 지위는 살 수 있지만 존경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어도 건강을 살 수 없다. 돈으로 피는 살 수 있지만 생명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여자는 살 수 있지만 사랑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주변에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보배로운 가치들이 많이 있다. 도종환 시인이 쓴 &lt;밭 매는 일&gt;이란 글을 읽었다. 텃밭에서 아침저녁으로 두세 시간 풀을 매며 싱싱한 채소를 가꾸어 먹는단다. 그 채소 값은 기껏해야 1만원도 안 되는데 채소를 가꾸며 얻는 기쁨과 보람, 그리고 일한 후의 상쾌함과 건강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는가?&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나의 채전에 각종 채소와 고구마, 옥수수를 정성을 들여 심는다. 네 입으로 들어가는 건 극소수이지만 지인이나 손자 손녀가 먹을 식물이기에 나에게는 더 소중한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댁을 방문했을 때 삶아 주시던 그 밤고구마를 60년 지난 지금도 못잊어 한다. 고구마를 먹은게 아니라 사랑을 먹은셈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돈은 일상생활에 절대 필요하고 편리한 수단이지만 어디까지나 생활의 수단이지 인생의 목적은 결코 아니다. 돈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돈만 가지고는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것은 살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작물을 심을 때마다 씨앗을 담았던 포장지로 여기에 심은게 무엇인지를 표시해 둔다. 나도 깜빡하고 풀이라 생각하고 뽑아 버릴 때가 종종있지만 우리집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아무 곳이나 헤집고 다니지 못하도록 일종의 경고문 같은 것이다. 몇푼 안되는 돈이지만 시장을 배회하며 사람사는 광경을 보며 내 삶이 각박하지 않다는 걸 체험하고 돌아올 때가 많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천원에 팔리는 호떡 하나를 입에 물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를 떠올린다. 세계 최고의 밀 경작지인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당하여 밀가루가 천장부지로 뛰어 호떡 하나에 천원으로 오른게 불만이긴 하지만 대신 두개를 고집하지 않고 하나만 먹으면 될일이고 갯수를 줄이니 더 맛을 두배로 느낄 수가 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8/84985b8930ef87135a4800c6044bac51230434.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요즘같으면 잘 사는 사람은 물가에 상관없이 살 수 있고 없는 사람은 아예 싼 걸 찾아다니면 얼마던지 살 수 있는데 중산층이 가장 문제이다. 나야 아예 최저만을 고집하기에 주유비가 문제이지 물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파트 값이 반토박 났다고 아우성이지만 나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시골 농가생활에 최적화되었기에 사는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 모두가 있는 사람들의 문제이지 맨 아래층에서 사는 나는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믿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값이 오르면 안쓰면 되고 안입고 안먹으면 되는데 무슨 걱정인가? 컵라면 하나에도 간절한 기도가 나오고 맥심 커피 한잔에도 감사가 나온다. 그만하면 되었지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지인에게 감자 열상자를 얻어 여러 곳에 택배로 붙혀 주었다. 손주들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끼게 된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오늘 아침에도 엄청난 비가 내린다. 어제 비를 맞으며 일을 했지만 오늘은 모두 쉬도록 했다. 충청 전북에 호의주의보가 내리고 노성천이 범람했다고 재난경보가 내려 오늘은 비구경하는 날로 정했다. 벌써 댓새째 비가 내려 이제 비가 그만 내렸으면 좋겠는데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 흔한 우산 하나없이 살지만 굳이 비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필요하니 내려 주시는 것이겠지.&nbsp;&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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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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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8 Jul 2026 23:06:07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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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에게 30cm는 거의 암벽타기 수준이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7/1e329e03dc696675fabe1875e57040212354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가을 들녘에 서면 벼가 익어가며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를 한자 말로 '향(香)'이라고 한다.&nbsp; '벼 화(禾)' 자와 '날 일(日)' 자가 합해진 글자인데, 한여름 뜨거운 해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벼는 그 안에 진한 향기를 잉태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처럼 사람도 내면에 치열한 내공을 쌓아갈 때 진한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香이 있기나 한지 모르지만 노인이 되어서도 고개를 쳐드는 작자들이 많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회에 크게 공헌하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 민패는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살다 갔으면 좋겠는데 정말 인간 냄세(香)가 나지 않는 숨막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좀비처럼 악에 물들어 가는 사회가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은 자고로 자만해서는 안되고 나일 먹을 수혹 더 겸허해져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두보(杜甫)의 詩에 보면, '내년 이 모임에 누가 건재할 지 아는가, 얼근히 취한 눈으로 수유를 쥐고 자세히 들여다보네(明年此會知誰健 醉把茱萸仔細看).'라는 시가 유명하다. 내년에 다시 본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에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무도 노인네들의 건강은 장담할 수가 없다지만 아직은 '明年此會知誰健'을 말할 나이는 아닌데도 그 쓸쓸한 표정에서 마음이 좋지 못하다. '내년에도 누가 건재할 지 누가 아는가?' 대단한 허무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창 펄펄 피가 끓는 젊은이라 할지라도 간혹, 혹은 간헐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즈음의 세태를 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말들이 있다. 더 높은 빌딩과 더 넓은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지만 성질은 더 급해지고 시야는 더 좁아졌다. 대체로 돈은 더 쓰지만 소소한 즐거움은 줄어들었고 오막살이에서 사각의 콘크리트 집으로 공간은 커졌지만 같이 생활하는 식구는 줄었다. 일을 해도 끝이 없어 대충 넘겨도 시간은 늘 모자라며, 정보 통신의 발달로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줄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과거보다 약은 더 먹지만 건강은 더 나빠지며 가진 것은 수량적으로 몇 배 되었지만 그에 대한 가치는 줄었다. 좋은 음식을 마주대하고도 맛을 못느끼고 좋은 풍광을 보면서도 즐겁다는 생각이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어릴적엔 여름철엔 인근 만경강에 완전 나체로 뛰어들어 하루종일 시간가는줄 모르고 헤엄을 쳤지만 이젠 고급 호텔의 수영장에 가서도 수영복을 입지 못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얼마전 다낭의 오성급 호텔 25층에 만들어진 풀장에 수영복을 입고 등장했지만 다낭 시내의 야경을 볼뿐 물에 들어가질 못했다. 어릴적 익혔던 수영 솜씨가 어디 갔을리가 없지만 수영에 흥미를 잃었고 열대지방이지만 물에 들어가면 한기를 느껴야 하는 체질이 문제였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도 한 땐 식탐가 소릴 들었지만 이젠 맛을 감별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싸고 비싸다는 걸 알아낼뿐 맛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식당에 갈 때마다 미원을 가지고 다닌다. 조미료를 넣지 않은 건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어릴적부터 '아지노모도'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음식맛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둔화된 까닭이리라.&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파트 계단을 통상적으로 17cm 정도로 만드는데 나는 집을 지을 때 테라스로 오르는 계단을 거의 15cm로 더 낮추어서 시공한다. 한창 땐 거의 2m 정도는 뛰어 내리기도 했는데 이젠 30cm는 힘들게 오르기는 하지만 내려 올 땐 여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시절엔 2m가 넘는 친구네 자취방 천정을 발차기로 뚫을 정도였는데 이젠 화중지병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7/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2355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늙어간다는 징표인진 모르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하늘을 바라보며 비행운(Condensation Trail)을 보며 비행기가 구름속으로 사라진 후에도 한참동안 흔적이 남는 걸 보면서 내가 남겨야 할 삶의 흔적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와 앞으로 남은 시간 어떤 흔적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삶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고귀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나 하찮은 삶을 살았던 사람일지라도 그 흔적은 남는다.&nbsp;</span></div><div><br></div><div>나는 지금도 석양을 등지고 있는 순간이면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삶의 흔적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한다. 내가 처한 현재의 평판도 중요하긴 하지만 내가 그간 남겼던 삶의 자취, 흔적이 어떤지를 생각할 수록 비행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래야 늦은감이 있지만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육지책에서 생각을 하늘끝에 고정시키고 비행운이 사라질 때까지 상념에 잠기게 된다.&nbsp;&nbsp;</div><div><br></div><div>진즉 철이 들었었더라면 좀 더 자상하고 진지하고 진실하게 삶을 영위했을텐데 이미 어지럽혀진 흔적을 지우느라 초라한 변명을 만들어 내며 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이라도 현역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식과 위선을 벗어 버리고 후회없을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미 엎지러진 물인데 어쩌자고 가슴앓이를 하는지 내 자신이 미워진다.&nbsp;</div><div><br></div><div>내 허벅지엔 직경 10cm가 넘는 커다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 초등학교 입학전 녹슨 철근 토박에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패인 상처의 흔적인데 아마도 내 몸이 썩어 사라질 때까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파상풍 균으로 다리를 절단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의 순간은 넘겼지만 흔적은 60년이 넘도록 그대로 남아 있다. 누구라도 삶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nbsp;</div><div><br></div><div>러시아 북서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오래동안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러시아 역사의 중심지였다. 이 도시는 1917년 2월 혁명의 현장이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포위공격을 끝까지 버텨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도시의 건축 양식이다.&nbsp;</div><div><br></div><div>우선 오래된 건축들이 역사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방문객들이 가장 놀라는 것은 같은 모습의 건축이 없었다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보면서 오랜 시간의 흔적은 고귀하다는 것과 오랜 역사의 흔적은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심코 지나가 버리는 시간은 그대로 사라질 것 같지만, 어디엔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긴긴 역사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가는 역사와 문화와 정신세계는 반드시 다음세대에 남겨야 한다.</div><div><br></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7/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23564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위대한 삶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듯 위대한 역사와 문화는 오랜 시간의 흔적들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요즘은 전에는 대충 대충 넘어 갔던 것들이지만 근래는 작은 풀잎 하나를 보면서도 철학적 명제로 접근한다. 사색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혼잡한 도심보다는 사유하는 공간에 머무르길 좋아한다. 비행운(Condensation Trail)을 남기며 사라지는 비행기를 바라 보며 내가 남겨야 할 흔적을 떠올린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쩌다가 어릴적 친구들을 보노라면 60년대에 머물러 사는지 이해 안갈 때가 있다. 생각하는게 유치하고 존재의 이유를 찾아 볼래야 찾을 수 없는 단말마적(斷末摩的) 사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 작정했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나일 먹어가면서 점점 옹졸해지는 것 같다.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몇시간 머물기가 거북하단 생각이 들어 기피하는 편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난 화를 잘 안내지만 한번 감정이 상하면 최하 3년은 간다. 아예 절교해 버린 친구도 여럿이다. 내 스스로 못된 버릇이라고 질책하지만 좀처럼 고쳐질 것 같지 않다. 사내다움(?)이 없는게 사실이다. 박터지게 싸우다가도 막걸리 한잔 먹고 툴툴 털어버리는 사람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싸우지 않으려 하고 최대한 양보하며 살려 노력중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잘나갈 땐 친구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을뿐만 아니라 대인기피증에 걸린 사람처럼 왠만하면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세월이란 천변만화(千變萬化)하기에 모든게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어 내 스스로 대화를 이어 갈 자신이 없기에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고립을 자초한다. 세월이 흘러 모습이 변해서라기보다 자신의 기억이 퇴색했기 때문이리라.&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다. 어릴적 친구들이 가끔 수소문하여 날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가능하면 만남을 기피한다. 한 때는 그렇게 다정했었는데 얼굴이 까마득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그리움이란 추억속에 남아 있길 소원했는지도 모른다. 만나면 할 말이 무진장 많이 남아 있을줄 알았는 데, 사실은 그 간의 단절이 가져온 여백이 너무나 커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nbsp; 많다. 어쩜 그냥 그리움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게 아름답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피하는데, 나는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때로는 여백으로, 때로는 실루엣(silhouette)으로 남겨 놓는 일이 많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제 새벽에도 엄청난 천둥 번개와 비가 내렸지만 한낮은 너무 더워 일하는 인부들이 고생을 했는데, 오늘 아침에도 또 비가 내린다. 소장이 비를 맞으면서도 인부들을 현장에 투입시키겠다 하여 허락하고 일단 양도소득세 신고를 하고 새로 구입할 농가주택을 답사한 후 현장으로 들어가려고 늦장을 부리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벌써 몇일째 비가 오락가락하니 일에 많은 지장을 받지만 자빠진 겸에 쉬어 간다고 급히 서두를 생각은 없다. 장마철이니 비가 오는 건 당연지사이고 사흘가는 비는 없다고 곧 그칠 것이기에 한여름의 강열한 태양보단 비내리는 날이 운치는 더하기에 이걸 망중한이라 생각하며 여유작작이다.&nbsp; &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322</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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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7 Jul 2026 23:59:28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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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막치고 출발한 인생치곤</title>
			<description><![CDATA[<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6/23587bee833f7b6c49f9dcd4bd0cc04322512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이스라엘 장교들은 ‘돌격’ 대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한다고 한다.</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유태인들은 자식들을 교육할 때 "위험하게 살아라, 그것이 잘 사는 길이다"라고 가르치는데, 피해를 당하지만 말고 강인하게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div><div><br></div><div>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으로 부터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붙을만큼 들으며 살았을 것이다. 자식들이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걸 달가워 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nbsp;</div><div><br></div><div>하지만 위험하게 산다는 것은 진실로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하게 살지 않는다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꽃은 오직 위험 속에서만 피어난다. 안전 속에서는 삶의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삶의 꽃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만 피어난다.&nbsp;</div><div><br></div><div>몸을 사리고 안전을 도모할 때 그 곳은 고여 있는 연못이 된다. 풍랑도 없고 시련도 없지만 연못은 죽은 물이다. 사람들은 안전장치를 해놓고 살려 한다. 세상의 온갖 안전장치가 난무한다. 어제만 해도 예쁜 목소리를 가진 아줌마가 당뇨 고혈압이 있어도 가입이 된다며 대한민국 1등 보험회사에 가입하라 꼬드기며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으려면 보험에 들라고 강요하여 이를 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nbsp;</div><div><br></div><div>딸들이 효녀 심청이는 저리 가라이고, 결정적으로 나야말로 가장 확실한 보험에 들어 있는데 말이다. 평생 사목 활동을 했고 결혼식 장례식 세례예식 등 수백번 정도는 주례했으며, 개척교회 한번에 예배당 건축을 네번 했으니 이만한 보험이 어디 있는가. 솔로몬이 말년에 왕싸가지 노릇을 할 때 소행으로 볼 때 당장 나라를 찢으려 하셨지만 성전을 지었다는 걸 정상 참작하여 당대는 보장해 주신다는 말씀도 있는 데, 까짓 다 늙은 나이에 보험을 들라고 꼬시니 얼토당토한 일이다.&nbsp;&nbsp;&nbsp;&nbsp;&nbsp;</div><div><br></div><div>은행 잔고가 넉넉하면 그게 안전장치인가? 부인이나 남편을 의지하며 사는게 노년의 행복인가? 나일먹으면 가족, 사회, 교회, 명망, 이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혼자가 된다. 교횔가도 늙은이는 찬밥 신세이다. 더군다나 은퇴한 교역자를 반기는 곳은 없다. 그래서 나는 위험한 방식을 택해 보고 싶은 것이다. 세상엔 안전장치는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내가 위험하게 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신체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위험, 최종적으로는 영적인 위험까지 포함시켜서 말하는 것이다.&nbsp;</div><div><br></div><div>새벽 4시경에 엄청난 비가 내렸다. 귀를 찢는듯한 뇌성벽력에 번개가 치면서 한마디로 물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긴급 재난 신호가 오면서 군산 익산 김제 논산 등 인근 지자체에서 위험을 알리는 문자가 쇄도 했다.강이 범함한다는 소식으로 부터 길이 끊어지고 농경지가 침수되면서 그야말로 난리를 겪고 있다. 내 생전 이렇게 많은 번개를 본적이 없을 정도로 하늘이 노한 것 같았다.</div><div><br></div><div>예보상으론 간밤에 곳에 따라 소나기 정도가 내릴 거라 해서 인부들시까지 전원대기하라고 지시해 놓은 상태이고 소장도 꼭두 새벽에 걱정이 되는지 전화하여 오늘 스케줄을 취소할지를 물어와 7시까지 기다려 보자고 제안했다. 요즘 나는 비가 내리면 걱정이 많아지고 시름이 깊어만 간다. 그간에 수많은 집을 지어 분양했기에 행여나 누수가 되지 않을까? 아님 축대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을까.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날이 새기를 기다려야 한다.&nbsp;</div><div><br></div><div>분양한지 몇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가 지은집에 하자가 생기지나 않을까 전전긍긍인데 산밑에 집을 지은 공주 박목사님네도 피해가 없는지 염려스럽다. 흑탕물이 길에 가득하다. 요즘은 비가 자주 내리지 않지만 내렸다 하면 폭우라 염려스럽다.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는 말이 쉽게 회자되고 있지만 불과 두어시간 내린 비로인하여 이게 길인지 논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엄청난 물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div><div><br></div><div><div>3년전에 엄청난 비가 쏟아지면서 가장 친했던 친구중 한명이 작은 도랑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간밤에 엄청 비가 쏟아지니 나무가지 등이 하수구를 막을지가 염려되어 물고를 보려 나갔다가 실족하여 그대로 떠내려가 사망했는데, 요즘은 내렸다 하면 폭우 수준이다. 익산 군산 근교에 수십채의 집을 지어 분양했기에 행여나 하는 마음에 비가 내리면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비는 세상과 나 사이에 물의 장막을 드리워 모든 소음을 차단해주기에 너무 좋다.&nbsp;</div><div><br></div><div>비 오는 날이면 창밖 비의 커튼을 보며 평면적이지 않았던 내 삶을 더듬어 본다. 티비를 켜고 재난방송을 시청하며 과연 오늘도 공사를 강행해야 할지를 가름해 보았다. 폭우가 쏟아지니 내심 공사현장에 가보고 싶지만 보나마나 흙탕물이 흘러 매립한 흙이 더 쓸려 나갔을 것이고 건물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밤잠을 설친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 한밤중에 내리는 비는 내 애간장만 태울뿐 하늘이 야속하다는 생각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판넬 지붕을 새차게 두둘기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모두 닫고 잠시 쏟아지다 말겠지 했지만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갔다. 이미 장마가 시작되었고&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또 언제 큰비가 올지도 모를 일이기에 항상 긴장과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고 보니 사는게 사는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든다.&nbsp;</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비를 좋아하지만 비에 대한 두려움과 진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벌써 40년이 넘은 시절의 흘</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러간 감상이지만 울산경비사령부에서 군목생활을 접고 부대 인근에 옥동중앙교회를 개척했던시절의 이야기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교인 한명없이 장모님과 아내 그리고 </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line-height: 1.5;">네살 두살된 딸들과 지금하라면 죽어도 못하겠지만 엄청난 착각(?)속에 첫 예배를 드렸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된 도발적 결단이었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6/836bb04acb4b383e5349de6af0ac312022532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내 체질은 일을 벌리는 체질이다. 가만히 있으면 스스로 나약해지지만 일단 일이 생기면 사생결단하고 올인하는 성격이다. 다행히 <span style="line-height: 1.5;">불과 6개월이 안되어 열평 남짓한 지하예배당이 협소해져 처소를 옮겨야 하는 데, 인근에 땅을 임대하여 천막교회를 하기로 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말이 천막이지 시장에서 버려진 것을 수거하여 사용했는 데, 비만 오면 구멍난 천막으로 </span><span style="line-height: 1.5;">물이 스며들어 설교하면서 원고위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은혜라 여기고 감사했던 시절이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비가 내리는 주일날은 주보에 기재된 찬송과는 상관없이 '</span><span style="line-height: 1.5;">빈 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span><span style="line-height: 1.5;">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span><span style="line-height: 1.5;">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 듯 </span><span style="line-height: 1.5;">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span><span style="line-height: 1.5;">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span><span style="line-height: 1.5;">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신나게 이 찬송을 부르며 감격에 젖었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한밤중에 억수로 비가 쏟아지면 </span><span style="line-height: 1.5;">방안 가득 빗물 떨어지는 곳에 빈그릇을 받혀놓고 물퍼내는게 일과였다. 어린 딸애들은 감기걸린다고 만류해도 방안에 떨어지는 빗방울 낙수 소리가 좋았는지 물이 차면 내다 버리는 일을 거들며 좋아라 했다. 그야말로 </span><span style="line-height: 1.5;">천막안에서 우산을 쓰고 있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span><span style="line-height: 1.5;"> 천막 바로 위에 사는 현대정공 아파트에 사는 교인들이 부럽기만 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아이</span><span style="line-height: 1.5;">들이 학교에 입학해서는 천막속에 산다는 것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집이 어딘지를 알려주지 못할 정도였지만 </span><span style="line-height: 1.5;">그래도 내 생애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고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무리해서라도 예배당을 건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빚을 내어 개발될 가능성이 있는 땅을 구입하고 그 땅을 되팔아 마침내 성전부지를 </span><span style="line-height: 1.5;">구입하고 건축을 시작했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몇년 간은 빚 때문에 힘들었지만 아무리 비가많이 내려도 방안에서 우산쓰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span><span style="line-height: 1.5;">또한 비록 천막속에서 사는 구차한 생활이었지만 구김살없이 자라 준 딸들이 미안하고 </span><span style="line-height: 1.5;">고맙기만 하다. 평생동안 나이키 한번 사주질 못했지만 아예 그런걸 기대조차 안하는 것으로 내 </span><span style="line-height: 1.5;">스스로 단정했을뿐 왜 남들처럼 좋은 옷, 좋은 신발을 가지고 싶지 않았겠는가?&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목사는 가난해야 한다는 걸 어릴 때부터 터득한 것 같았다. </span><span style="line-height: 1.5;">이젠 모두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었지만 어릴 때 못해주었던 걸 감안하여 내 기력이 남아 있는 동안은 가족들을 데리고 해외 여행도 자주하며 </span><span style="line-height: 1.5;">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줄 생각이다. </span><span style="line-height: 1.5;">나는 비가 오면 그 때의 감상에 젖는다.&nbsp;</span></div><div><br></div></div><div>나이 칠십을 넘기고 보니 지금에야 무슨 원대한 꿈이 나에게 있을리 없겠지만 눈앞의 이익을 쫓는 작은 어항에 머물고 싶지 않은게 내 바람이다.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고, 더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매일 다짐한다.&nbsp;</div><div><br></div><div>모르긴 해도 어딘가에 감추어진 한 가닥 실낱같은 그리움이나 꿈과도 같은 희망의 절대치가 똬리를 틀고 있는 까닭이리라. 보름달은 하룻 밤새 쟁반같이 둥근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둡고 지루한 밤을 삭이며 눈썹달이 반달이 되고, 반달의 기다림 속에 둥글고 환한 보름달이 되는 것이다. 세상사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6/1616dc6ee8e99f7e88fd1e20528b20b422545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대개의 경우 모든 일이 처음부터 원만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이지러지고 어긋나고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다. 일이 원만하게&nbsp; 풀리는 것은 그런 시련을 통해서이다.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면서 느낀바가 그랬다. 착하게 살면 언젠간 만월의 기쁨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말이다.</div><div><br></div><div>갑짜기 매도인의 마음이 변해 집을 안팔겠다는 말에 실망하여 어제 하루종일 꽤나 많은 곳을 답사했다. 집은 좋지만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로 제껴두고 가까운 거리의 집은 리모델링하느니 새로 신축하는게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도무지 입에 맞는 떡이 없다. 입에 맞는 떡이 없는게 아니라 겨우 5천 6천에 좋은 집을 구하려는 내 심뽀가 잘못된 것이리라.&nbsp;</div><div><br></div><div>여러곳에 수소문을 해놓았더니 자주가는 식당 주인이 면사무소 바로 앞에 시골 농가주택이 있다며 급히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나는 귀촌 이후 십년이 넘도록 시골집을 전전했지만 면사무소가 있는 읍내 집에 한번도 살아보질 못했다. 내 한몸 사는데 집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고 언제나 자금 사정이 좋지 못하였기에 남들이 기피하는 곳을 선택해야만 했었다. 집을 그렇게 많이 지었지만 아직 나 자신에게 투자할 정도는 아니기에 주변을 떠도는 유성처럼 살아야 했었다.</div><div><br></div><div>단숨에 달려가 거의 폐허가 된 집을 보았다. 175평이면 시골집으로선 작은 평수는 아니지만 일단 면사무소 파출소 초등학교 중학교 농협 우체국 마트 등 생활하는덴 지장이 없는 곳이고 익산 시내까지도 10분거리 군산교회까지도 15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라 무조건 구매하기로 했다. 또 변심할까봐 선금을 전달하려 했지만 그럴 수록 태연한척 하는게 세상에서 배운 처세술이다.&nbsp;</div><div><br></div><div>소장과 돌아오며 집을 허물어 버리고 최소한의 자재만 구입하고 남은 자재로 조립식 집을 짓자고 결정했다. 하지만 가능하면 기둥과 서가래를 살리고 리모델링하는 것도 고려중이다. 애써 무표정한 표정이 주효했는지 절대 5500만원 이하로는 않된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식당주인이 설득하여 4천만원에 거래하겠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안그런척했다. 참 표정 관리하기가 어렵다.</div><div><br></div><div>김제시로 이사하면 인구감소지역이라 정착 자금 몇백만원을 지원해 준다는데 집도 근사하고 텃밭도 넓지만 출근시간이 하루에 10분이 길어지면 일년에 3650분이고 소요되는 기름값이 훨씬 더 들기에 포기했는데 신축현장이 근처이고 매일 지나 다니는 길목에 뜻밖의 빈집을 만나 내일 오전중에 계약금을 더 많이 건내고 내 소유로 만들 생각이다. 천막치고 출발한 인생치곤 말년에 복이 있을 모양이다.&nbsp;&nbsp;</div><div><br></div><div><br></div><div><br></div><div>&nbsp;&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321</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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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06 Jul 2026 22:55:3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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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마시작 부터 요란하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5/f59f519f99d2d5fb1502c94efab20a5f23044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아침부터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일기예보상으론 오전까지만 비가 내리고 개일 거라지만 기상청을 신뢰하지 않은 불신이 깔려있어 소장에게 인부들 출근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대신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면 시골집 답사를 가자고 제안했다. 며칠간 고민끝에 인천공항에서 리무진으로 240분 교회까진 걸어서 90분 거리에 있는 서수면 금암리에 집을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예배를 마치자마자 약속 장소로 달려갔는데 와이프가 반대하여 집을 팔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참 싱거운 녀석이라 끌탕을 하며 돌아섰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멀쩡한 집을 팔아버리고 새로운 거처를 결정하려니 시골에 그렇게 많은 빈집이 늘어나면서도 정작 운신할 곳이 없어 낭패이다. 귀향하여 십년이 넘도록 12번 정도 이사를 했지만 마음에 꼭 들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마음에 드는 집은 경제적 사정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고, 임시방편으로 구매했던 집은 실증을 느끼다 보니 주민등록 초본의 페이지가 자꾸만 두꺼워졌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곧 이사하려고 채송화 봉선화 여름꽃등을 화분으로 옮겨 심었던 수고가 허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내 한몸 운신할 곳이 어딘가엔 있을 거란 생각에 엄청 비가 내리지만 시외곽을 싸돌아 다녀볼 생각이다. 익산 외곽 용안면이나 금강포구 성당 웅포 등엔 정말 좋은 집이 많지만 매일 출퇴근해야 하기에&nbsp; 익산에서 15분이 넘으면 곤란하기에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교회야 일주일에 겨우 한번씩 밖에 안가기에 서울 인천이라도 감수하겠지만 현장은 매일 출퇴근해야 하기에 거리를 따지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건축일도 힘이 들어 못하게 될 경우엔 거리에 상관없이 산수좋은 곳이나 바닷가로 갈 계획이지만 아직은 할일이 많아 내 입맛에 맞는 집을 찿아 나서야 한다. 여차하면 근사하게 지어 놓은 신축 주택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좀 더 수고를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작은 예산으로 더 좋은 집을 찾는 얌체 노릇을 해보려 한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가 걸어 왔던 길들이 꼭 꽃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거친 광야를 건넜고 사막도 힁단했을 것이지만 그걸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다. 삶의 꽃은 오직 위험 속에서만 피어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안전 속에서는 삶의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삶의 꽃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만 피어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몸을 사리고 안전을 도모할 때 그 곳은 고여 있는 연못이 된다. 풍랑도 없고 시련도 없지만 연못은 죽은 물이다. 내 나이 또래는 거의 은퇴한 세대이다. 아직 사업을 하는 친구도 있지만 할 일없는 백수가 되어 반거충이가 되어 공원의 한구석을 지키고 있다. 노년에 아무런 변화도 원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걸 어찌 탓할 수만 있을까만은 그러다 보니 점점 불만 가득한 노인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다 그런 거는 아니겠지만 내 주변의 지인들은 나일 먹으면서 더 집요해지는 걸 볼 수 있다. 손에 쥔 걸 안놓으려 안간힘을 쏟는다. 기력이 쇠하여지니 손에 쥔 거라도 붙잡으려 하는 걸 탓할 순 없지만 권력, 건강, 사람 등을 얼마나 품위 있게 놓아버리느냐는 개인의 성숙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본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놓아버리고 용서하면, 자유로워지고 새로워지며 깨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가끔 친구들이 나에게 던지는 화두는 '왜 위험을 감수하는가?'이다. 나는 그간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무엇인가 이루고 싶은 생각이 나를 안달하게 만듬을 잘 알고 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미 알려진 것이 더 안전하다. 미래가 불투명한 일을 선호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은 친숙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 적어도 그것이 나에게 잘 알려진 것이라면 일단은 안도감을 준다. 반면에 미지의 것은 나에게 불안감을 가져다 주고 떨게 만든다. 내가 위험하게 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신체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위험, 최종적으로는 영적인 위험까지 포함시켜서 말하는 것이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5/eaae8a91ee98758d5f1d95d177317216230722.jpg" width="249" align="left" class="photo" alt="">난 늦었다고 생각되는 이 순간. 지나고나면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삶속에 일어나는 풍랑을 신학화하지 못하고 사건화하는 한 분노와 미움은 날 더 황패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또한 내가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모래성을 쌓으면서 이를 견고한 성이라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얼마나 더 있으면 깨달을지 모르지만 좀 더 인생을 관대하게 여유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붓다와 제자들이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그 마을 입구에는 강이 하나 있었는데 마을 아이들이 강가에서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모래성을 열심히 쌓으면서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모래성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다투곤 했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마을에서 나온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불렀다. 그러자 아이들은 그동안 공들여 쌓아 놓은 모래성을 마구 짓밟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의 놀이가 너무나 재미있어서 그 광경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던 붓다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의 삶도 이 이상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던져준다. 하나는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열심히 모래성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는 쌓던 모래성을 짓밟고 뛰어갈 것이니 모래성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모래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삶을 투쟁의 장으로만 생각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면서 몰입하지 못해도 안된다는 것이다. 놀이를 하면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책을 읽으면서도 딴 생각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 맛에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사랑스런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도 가슴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 간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행복이란 크게 만들어지지가 않는다.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모래성을 완성해놓고 박수를 치는거나 다를바가 없다. 나에게도 생각해 보면, 많은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엔 힘들었던 것 조차도 지나고 보니 모든게 행복이었고 소중한 것들이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날 아프게 했던 사람도, 날 사지로 밀어넣으려 했던 사람도, 내 삶속에 밀어닥친 시련의 시간마저도 지금 해석하려니 힘이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그리움이 되고 추억이 될 것이다. 때론, 내가 존재하는 이유와 방향성에 대한 회의가 들 때가 많다. 무엇을 위해 이리 급하게 사는지를 곱씹어 보기도하고 빨리 간다고 선착하는게 아니건만 속도 경쟁에 내몰리는게 아닌지를 우려한다. 속도가 대세인 것 같아도 방향을 잘못 잡았다면 그 속도는 결국 후회를 낳게 될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옛말에 '호박 넝쿨과 딸은 옮겨 놓은 데로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방향을 잘 잡아주어야 한다는 말일게다. 난 딸들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어느 부모나 자식에 대한 자랑을 팔불출소릴 들으면서도 해대겠지만 마음이 참 고운 애들이다. 내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복중에 가장 큰 복이 바로 이것이다. 그냥 방향만 잡아주었을뿐인데,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잘 자라주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5/f7d31de0484726d2332ae4b772a389ac23081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딸들을 만나면 억지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하고 있어도 애들에게 짐이될까봐 일부러 아빠의 건재함을 들어내려 한다. 물론 사려 깊은 애들이기에 '아빠의 뻥'을 눈감아주려 애쓰는 게 눈에 보인다. 나는 정말 친한 관계가 아니면 속내를 들어내지 않는다. 어찌보면 나같은 성격이야말로 스마일마스크증후군(smile mask syndrome)에 걸릴 확률이 높다.&nbsp;</div><div><br></div><div>웃고있어도 울 때가 더 많다. 충청도 사람 기질이 '괜찮아유!' 할 때 정말 괜찮을 거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벙어리도 날수 가는줄은 안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자기 생각은 있기 마련이다. 느긋한 것같으면서도 결코 녹록지 않은 충청도 사람의 기질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무 일도 안하기엔 너무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고, 그 일로 인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부모는 되지 않으려고 거의 쉴새없이 꼼지락거리지만 큰 성과가 있는지는 자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민약 내가 아무 일도 안하고 백수로 살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 예상대로 라면 앞으로 5년은 더 일할 수 있고, 이 기간동안 남에게 의존하여 살지 않을만큼의 자금이 필요하며 손주들을 일년에 한두번쯤 비행기를 태워주려 독한(?) 맘을 먹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자연속에 살면서 미물들을 통해 많은 교훈과 도전을 받고 있다. 한결같이 모든 동식물은 건성으로 사는 법이 없다. 본능인지 경계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들은 사람 그림자만 얼핏 가까워 져도 기겁을 하고 날아간다. 해칠 마음 전혀 없이, 그냥 사는 모습이 궁금해 살금살금 다가가보지만 새들은 사람이 가까이 다가서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기적인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새들은 한낱 미물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새끼 사랑은 상상을 넘어서고, 생존을 위한 싸움은 치열하고 진지하다. 어미 새들이 아기 새들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숭고하고, 새끼 새들이 홀로 설 수 있기까지의 과정에는 치맛바람 같은 열성이 넘쳐난다. 새들에게도 인고의 시간은 빠지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새들 중에는 소쩍새처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야 하는 새들도 있고, 삼광조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긴꼬리 딱새 처럼 해와 달 그리고 별까지를 품은 듯 자태를 뽐내는 새들도 있다. 인간은 지혜가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을 능가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풀벌레나 미물에게도 배울 점이 많은 것이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요즘 생각이 많아진다. 내 삶을 돌아보고 관조해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소나무도 겨울이 되면 솔잎을 많이 떨구고 최소한만 갖고 겨울을 지낸다고 하는데, 늙어서 어디 오라는 데도 없는 자들이 서로 미워하고 욕하면 너무 처량하지 않은가? 용서하고, 잊어주고, 하늘나라와 거기 계신 예수님 생각하며 평안히 살고 싶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성질 급한 소장이 벌써 우리집에 도착하여 제촉한다. 부동산 업자들이 출근할 시간이 아직 멀었음에도 매일 일나가던 것이 습관이 되어 집에 있기가 거북한 모양이다. 커피를 끓여 먹으면서 잠시만 기다리라 하고 어디로 갈지를 고민한다. 체면에 손바닥에 침을 뱉어놓고 튀는 방향을 정하기도 거시기하고 일단 김제 공덕쪽으로 핸들을 돌려야겠다.&nbsp;&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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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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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05 Jul 2026 23:09:53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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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랜 가믐끝에 내리는 비에 땅이 스펀치가 되어 간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4/a6e238b3084375c78cdaa315fe76bb2c22132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오늘은 우요일(雨曜日), 새벽녁 엄청난 물폭탄이 쏟아졌고 아침 출근 시간인데도 강한 빗줄기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비가 내리는데 과연 인부들에게 출근을 지시할지 말지를 고민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칫 출근시켰다가 계속 비가 내리면 오늘 하루 일당과 식대로 90만원 정도가 날아가기에 선뜻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아 일기예보를 몇번씩 확인하면서 망설였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일단 소장의 의견을 청취하니 소장도 쉽게 그칠비가 아님을 알기에 공연히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강요하기가 어려운지 내 뜻대로 하라고 떠다 민다. 30분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하염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일날이니 그냥 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일단 출근을 저지시켰다.</span><div><br></div><div>밤새 칭얼대던 개구리는 몸조심하느라 그런지 아침이면 조용해 진다. 밤새 굶주린 백로가 논에 새포시 내려 앉아 만찬감을 찾느라 분주하기에 개구리들은 날이새면 쥐죽은 듯 조용해 진다. 개구리들이 요즘 한창 짝짓기에 여념이 없고 이들도 한철이라 시끄러울 수 밖에 없지만 백로 입장에서도 새끼를 키우며 생존본능을 위해서 미꾸라지 개구리를 닥치는대로 먹어 치워야하기에 작은 논안에서 먹이 사슬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nbsp;<div><br></div><div>이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사바나의 운명이긴 하지만 인간 세상도 예외는 아닌듯 싶다. 무리속에서 살 때는 잘 몰랐는데, 좀 떨어져 나와서 전체를 보니 그렇다. 윤리학 교수가 더 비윤리적이고, 종교인이 더 비신앙적이다. 교육자가 더 무식할 때가 있고, 정치인이 정치란 무엇인지를 가장 모르는 집단이다.&nbsp;</div><div><br></div><div>재벌이 되고 부자가 되었다는 건 하나님이 모두에게 주신 만나를 더 많이 가져 갔다는 것이고, 남의 것을 더 많이 가져 갔다는 것은 결국 전체에게로 파급되어 어느 곳에서는 부족 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맹점이다. 사자나 동물의 세계는 배부르면 더이상 살생을 안한다. 극히 일부는 먹이를 땅에 묻어놓긴 하지만 그것도 생존을 위한 지혜일뿐 최소한이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인간은 그렇지가 않다. 욕심이 끝이 없다. 수의엔 주머니가 없지만 인간은 다 쓰지도 다 먹지도 못할껄 남기려 혈투를 벌리고 있다. 서로 원망없이 살아가는 미물들의 생활을 통해 느끼는 바가 많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추구하는게 다르다. 문제는 내가 그 사람의 입장에 서보면 간단하다. 길이 있고 해결책이 있다.&nbsp;</div><div><br></div><div>허나 인간들은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에 죽일놈 살릴놈하며 원망일변도이다. 난 말을 섞고 싶지 않을 때일수록 주로 듣고만 있을 때가 많다. 나에겐 식물에게 언제 물뿌려 주어야할지가 더 관심사이다. 가지마다 열매가 영글어 가는데 그 생명의 신비로움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는데, 무슨 대수랴!</div><div><br></div><div><div>내 주변 사람들은 일하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놀자, 먹자하면 일개 소대라도 집결하지만 일 좀 거들어 달라하면 이런 저런 핑게를 대고 얼씬거리지 않는다. 하긴 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다. 나는 막일 할 사람 한 명을 고용하면 좀 수월하겠지만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일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다.</div><div><br></div><div>아무리 일벌레라고 해도 일하는 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때론 정신없이 일을 하지만 어찌보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농촌사람들도 요즘은 모두 기계화가 되어 있어 기계가 대신하기에 수월한 편이다. 로타리 치는 것과 농약 살포, 심지어는 씨를 심고 거두는 것까지 모두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nbsp;</div><div><br></div><div>예전같으면 고추를 수확하고 말리는 일이 하루 일과였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고추말리는 기계가 보급되어 마당에서 멍석을 깔아놓고 고추를 말리는 사람이 없다. 모를 심고 추수하는 것도 역시 기계가 한다. 나는 일일히 수작업으로 호미로 땅을 일구고 들께를 심는 데, 이웃집은 트렉터로 밭을 갈고 지팡이처럼 생긴 참께 심는 기구를 이용하여 그저 꾹꾹찌르듯 심어 나가는 걸 보며 부러워 한 적이 있었다.</div><div><br></div><div>아마도 많이 경작을 하니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나는 여러 품종을 조금씩 심기에 해당 사항이 아니다. 또한 취미로 하는 일이기에 남 흉내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필드에 나가 운동하는 셈치고 땀을 흘린다. 그래서 이 동네에선 내가 제일 농사를 조금 하지만 품종면에선 나를 따라 갈 사람이 없다. 적어도 30여 가지를 심기에 홀리팜엔 없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div><div><br></div><div>난 보기와는 달리 혼자서 조용히 일하는게 편하다. 성격상 시끄러운 건 질색이다. 집에서도 아직까지 큰 소리를 내 본 적이 없다. 화가나면 말을 안하는 편인 데, 그건 목회에서도 마찮가지였다. 난 교회에서 목소리 큰 사람을 가장 혐오했다. 기분이 언잖을 땐 더욱 말을 아꼈고 가능하면 속으로 삭이려 애를 썼다.&nbsp;</div><div><br></div><div>내 공사현장 주변엔 포도나무 밭이 펼쳐져 있다. 백구포도라면 꽤나 알아주는데, 언제부터인지 이곳에 포도를 경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하는 싯귀도 있지만 유달리 과일 중에 먹을만한 것이 포도라 그런지 탐스런 포도를 바라보면 안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든다. 나는 저 야트막한 포도밭처럼 살고 싶었다 산등성이 아래 몸을 구부려 낮게 낮게 엎드려서 살고 싶었다. 아니 앞으로는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nbsp;</div><div><br></div><div>나는 이미 세상의 술틀에 던져진 포도알이었는지도 모른다. 채익기도 전에 으깨어져 붉은 즙액이 되어 버린 포도나무의 눈물이 유리병속에 담기고 사람을 황홀하게 만들어 버린다. 얼마나 열매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던졌는지를 무언으로 설명하는 포도밭엔 적막이 흐른다. 앙상한 가지에서 이렇게 탐스런 열매를 만들다니 정말 볼수록 신기하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4/543529a23efa83af932f7e86c2a01832221415.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나에서 처음 행하신 처음 이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다. 아마도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실 때 가장 세상에서 빈약하고 흠모할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 주시겠다는 암시였는지도 모른다. 그걸 십자가 위에서 증명해 보이셨다.&nbsp;</div><div><br></div><div>그리고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하셨다. 여우는 포도원에 침투하길 좋아한다. 애써 여우를 잡아내지 않으면 포도원은 이내 초토화될게 뻔하다. 포도원이 망하는 건 간단하다. 작은 여우 하나때문에 포도원이 절단난다. 크고 작은 교회들마다 여우들때문에 혼난에 빠지고 포도 농사를 망치는 경우들이 수없이 일어난다.</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이 넘어지는 건 태산때문이 아니다. 작은 돌뿌리에 사람이 넘어지는 것이다. 사소한 말한마디에 기운이 빠지고 의욕을 잃어버리는 사람을 수없이 보아왔다. 하루아침에 포도원이 무너지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모든 영양분과 수분을 위로 올려보내고 결국 줄기가 말라 비틀어지는 운명속에 자신을 던진 포도나무를 뉘가 험담하는가?</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나는 결정된 운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은 어떤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인과성을 모두 알 수 없기에 예측하지 못했던 그것을 운명이라 에둘러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운 혹은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세상 만물을 모두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사람은 본시 연약한 존재이며 한계를 갖는 존재이기 때문이다.&nbsp; &nbsp;&nbsp;<div><br></div><div>그렇기에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한계를 고스란히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 그 건 오직 神의 영역이기에 감히 넘볼 수 없는 내 한계를 인정하고 순응할뿐이다. 다만 주님의 뜻을 온전하게 따르지 못하기에 은혜를 구하는 존재로 살아갈뿐이다.&nbsp;&nbsp;하지만 나는 자비를 구하지만 사람들에게 실망을 느낄 때가 많고 모질어 질 때가 너무 많다.&nbsp;</div><div><br></div><div>내가 평생을 꿈꿔왔다고 믿었던 오늘,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들…. 살다보면 그 모든 것들의 ‘진짜 모습’에 대한 고민이 불쑥 가슴을 파고드는 때가 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적극적인 대처를 하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하연 쿨하게 포기하고 통과의례(通過儀禮)라 생각하기로 했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피할 수 없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 문제는 훨씬 작아진다.&nbsp;&nbsp;</div><div><br></div><div>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천둥 번개가 치는 듯한 도입부가 인상적인 운명 교향곡은 마치 잊고 있던 운명이 뇌리를 강타하는 것처럼 강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베토벤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작곡 동기를 설명했다고 한다.&nbsp;&nbsp;</div><div><br></div><div>가시 돋친 한마디에 마음을 베이는 날이면 마음은 한없이 작아지고,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깨트리는 걸 보면 외로움까지 쏟아진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다. 그럴 때마다 '지켜보는 가마솥은 더 늦게 끓는다'는 격언을 떠올린다. 아직은 실망하기에 이르다는 생각을 품고 가능하면 관대해지자고 다짐하기도 한다.&nbsp; &nbsp;&nbsp;&nbsp;</div><div><br></div><div>"나무와 사람은 자빠져 보아야 길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 보면 모두가 훌륭하고 인격자이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정말 구린내가 진동한다. 문제는 그게 구린내라는 걸 느끼지 못하는 후각(嗅覺) 장애가 만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좋은 친구를 가졌다는 것은 깨달음의 반을 이룬 것이 아니라 전부다”는 말이 새삼스럽다.&nbsp;</div><div><br></div><div>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의 크기를 알아 본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넘어지면 비로서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람도 곤경에 처해봐야 진정한 우정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그릇 크기는 이해관계에 있을 때의 처신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되고, 거래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 그래서 더 이상 볼 일이 없다고 생각될 때 처신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그릇 크기를 알 수 있다.&nbsp;</div><div><br></div><div>"말(馬}이 힘이 있는지를 알려면 먼 길을 가봐야 알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시간이 오래 지나봐야 한다." 명심보감 계선편에 나오는 이말은 백 번 들어도 지당하다. 나와 이해관계가 있을 때 친절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끝났을 때도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7/04/e443124cbef78ea0eb025deb9eb3b48d22154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들 중에도 죽을 때 그 많은 재산을 싸짏어지고 갈 거냐고 핀찬을 하는데, 사실관 동떨어진 말이지만 날 여전히 돈많은 늙은이로 알아주는게 고맙고, 찢어지게 가난하단 말보단 부자라고 착각하는 녀석들이 밉지 않다.&nbsp;</div><div><br></div><div>정말 임종이 임박했을 때 자식들에게 마늘밭 어디를 파보라고 말하는 초라한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며 앞으로도 4~5년은 더 자린고비로 살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nbsp;</div><div><br></div><div>나는 늙었다는 이유로 대접받기를 거절한다. 가능하면 대접하며 살기를 열망한다. 나는 딸들을 여전히 '손님'처럼 대우한다. 무거운 중압감을 가지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과 아빠집에 왔을 때 편하게 쉬다가는 곳이어야지,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늙음이 무슨 벼슬인가?</div><div>내 집에 오면 최선을 다해서 대접하고 편히 쉬다가면 그것으로 만족이다.&nbsp;</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내 선친께서도 그리 하셨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본가를 방문하고 돌아갈 때 기름값을 넣어 주시곤 했다. 한사코 사양해 보았지만 에비가 주는 돈은 무조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넣으라고 강제하셨다.&nbsp;</span>친하게 지내던 친구 몇이 세상을 떠나고 이제 얼마남지 않은 친구중 한명이, 그래봤자 자식들만 좋은 일 시킨다는데, 당연히 부모로써 자식들 좋은 일 시키고 가야지 자식들 괴롭게 만들고 가는 건 불량 에비가 아닌가?&nbsp;</div><div><div><br></div><div>그나저나 돈 몇푼때문에 꼭 그러는 건 아니다.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면서 체험한 것이지만 일하는 걸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죽어라고 땅을 판다. 남들 골프치는 대신 난 호미질을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안의 텃밭이 200평 남짓이지만 항상 너무 작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조금 더 큰 텃밭이 있다면 또 이사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 생전 백번은 이사 다닐 생각이다.&nbsp; &nbsp;</div><div><br></div><div>난 가만히 있으면 병이나는 체질이다. 요즘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은 무색해지고 있고, 멀지 않아 인생 구십, 인생 백세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오래 사는 것이 복된 일이긴 하지만, 몇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60세에 은퇴한다고 생각해도 25년 내지 30년 정도의 은퇴 후의 삶을 대비해야 한다.&nbsp;&nbsp;</div><div><br></div><div>행복한 은퇴 후의 삶을 위해서는 건강, 화목한 가정, 다양한 교우관계, 보람 있는 취미나 직업 등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또한 평생 목회자로 산 까닭에 매일 처음 발자국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살려하니 일이 많은게 걱정이 아니라 무료해질까봐 염려스럽다.</div><div><br></div><div>비가 계속 내릴 모양이다. 그간 너무 가믐이 심했으니 단비겠지만 내일도 시급한 공사가 있기에 오늘 흠뻑 내리고 그쳤으면 좋겠다. 예배를 마치고 새로 구입할 집을 다녀와 풀을 뽑을 생각이다. 인천공항 240분 교회 90분이란 말에 화들짝 놀란 박목사님이 교회가 멀어지면 안된다고 만류하지만 공항까지는 리무진으로, 교회는 걸어서라는 말에 싱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나는 인천 텃줏대감 임석빈 형이 제일 부러운 것은 공항에 가까히 사니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얼마전 라오스를 다녀 오면서 5시간 비행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아직도 비엔티엔에서 날아온만큼 다시 리무진으로 댓시간 더 가야 하니 임형은 지금 집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있을텐데 아직 당진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과연 복받은 인사란 생각을 해본다.&nbsp;</div><div><br></div><div>울안에 커다란 감나무 몇그루가 있어 구입하려 마음먹었고, 일단 계약금을 건내고 시간이 나는대로 정원을 꾸미려 작정했지만 집주인이 마당 전체에 풀나지 말라고 자갈을 깔아놓아 원상복구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테지만 또 할일이 생겼다는게 너무 좋고 출입구에서 길다랗게 길이 있고 안쪽에 집이 있어 주변인들과 교류가 제한된다는 점이 좋아 선택하려 한다.&nbsp; &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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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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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6 22:28:50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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