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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책세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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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language>ko</dc:language>
		<item>
			<title>2014, 교단 설교핸드북 간행</title>
			<description><![CDATA[<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3/12/12/3153df5697d0ddf418e3d507c25efdf4234157.jpg" width="720" align="top" class="photo" alt=""><br><br>총회교육원(원장 한기채 목사)에서 제작한 ‘2014년 설교핸드북’(기독교대한성결교회 출판부 간)이 절기마다 고민하는 목회자들에게 신선한 해결책이 되고 있어 호평을 얻고 있다.<br><br><div>이 책에서는 절기 따라 주일 오전예배 설교와 오후·저녁예배 설교, 특수 기념주일 예배 설교를 게재해 목회자들이 1년 전체 목회를 계획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br><br></div><div>이 설교핸드북은 서울신학대학교의 정인교 교수, 오성현 교수, 박창훈 교수, 하도균 교수 등이 집필에 참여했다. 펴낸이는 우순태 목사, 편집책임은 한기채 목사, 편집인은 유윤종 목사, 총기획은 김기택 목사, 편집은 은호영 목사와 윤기중 간사가 맡았다.<br><br>이 설교핸드북에 대해 한기채 목사(총회교육원장)는 “목사는 설교로 말하는 사람”이라며 “목회자에게 있어 설교의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 신자와의 관계의 질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에 발간되는 설교핸드북을 선용해서 더욱 풍성한 말씀의 잔치가 교회의 강단마다 펼쳐지기를 기대한다”며 “집필에 참여한 정인교 교수를 비롯한 모든 설교자들과 총회교육원 실무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 드린다”고 전했다.<br><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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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이병창</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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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12 Dec 2013 23:42:07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서평]「나르시시즘과 후안무치의 결정판, 「한국기독교 출판문화의 파노라마」</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text-align: justify;"><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3/11/27/62cad72d153640fbd558c5257f205ee2233338.jpg" width="340" align="left" class="photo" alt=""><br><span style="line-height: 1.5;">목사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nbsp; &nbsp; &nbsp; &nbsp;</span></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먼저 이 글의 제목의 뜻을 설명하고자 한다.  &nbsp;&nbsp;</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나르시시즘(narcissism)</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자기 자신을 사랑함  &nbsp;&nbsp;</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후안무치(厚顔無恥)</div><div style="text-align: justify;">1) 뻔뻔하고 부끄러움이 없다&nbsp;</div><div style="text-align: justify;">&nbsp;2)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름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나는 오늘 오후, 이 책을 지인에게 받아보고서 번뜩 ‘나르시시즘’ 이라는 단어와 ‘후안무치’ 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바로 이 서평을 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1600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 전 페이지를 컬러 인쇄물로 만든 이 책은 (집에 가져와 체중계에 달아보니) 그 무게만 해도 3.2㎏이나 되었다. 들고 오는 것만 해도 힘들었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니깐 작년 그러께, 이 책의 저자인 백수복목사가 나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꼭 만나자”고 몇 주 전에 전화 약속을 해서 목포역까지 마중을 나간다. 점심을 대접하고 근황을 나누는 중에 자신은 앞으로도 20년간의 스케줄이 있다는 플랜에 대해서 들으면서 나는 기겁을 했다. 그가 김목사도 자신과 함께 이 사업을 같이 하자고 했다.&nbsp;</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나는 정중히 사절하면서 나는 나의 기대수명을 70세로 보기 때문에 앞으로의 삶이 18년 밖에 남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목회자로서 열심히 목회하고 남은 삶을 잘 마무리 하는 일을 해야지 그런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일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으니 목사님 혼자서 열심히 하시라고 했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식사를 마친 후 자신이 신안의 어느 섬에 들어가야 하는데 선착장까지 안내를 해달라고 해서 목포역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선착장까지 모셔다드렸다. 이 분을 선착장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하 선착장까지 대중교통이 불편한 것을 알고 기사로 쓰기 위해 나를 불렀구나. 하하하. 참 꾀돌이구나” 왜냐하면 자신과 같이 일하자는 것을 김명기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을 그는 미리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고, 그가 나에게 제안한 것은 전혀 ‘긴히 드릴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드디어 그가 ‘한번 더’ 대형 사고를 쳤다. ‘한번 더’ 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는 교단 기관지인 ‘활천’의 사장으로 교단의 녹을 먹고 있을 때, 한번 사고를 친 화려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고라는 것은 그가 활천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주말마다 전국의 교회에 전화를 넣어서 자신이 설교할 강단을 허락하여 달라는 부탁이었다. 말이 부탁이지 사실은 강요였다고 당시의 강단을 내어준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말하였다.&nbsp;</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이런 민원이 쌓이고 쌓여서 그는 드디어 당시 교단의 깡패(?)들이라고 불리우던 3인방에 의해서 강제로 사표를 쓰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억울하여 교단의 원로 그룹인 성백회를 움직여서 3인방을 공격하고 자신을 정치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 한편, 활천사 운영위원장 명의로 성명서를 내고 난리 굿을 하였다. 당시 성명서의 제목은 “활천사 사장은 강압에 의해 퇴진할 수 없다” (활천 2001년 6월호)였다.&nbsp;</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여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이미 주일마다 강단 내어주기를 강요하는 그의 행태에 신물이 난 전국의 목회자들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그는 결국 이 일로 “사장” 옷을 벗었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그 때도 교단의 지위를 이용하여 전국교회에 “민폐”를 끼쳤던 그가 정년 은퇴를 한 후 또 한번 전국교회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 민폐의 내용은 이 책의 정가가 150,000원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그는 이 책을 전국의 교회에 임의로 3권씩이나 발송한 후 책값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강매이다. 그는 상업고등학교 출신인데 자신의 출신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저자거리 장사꾼 같은 속성을 단단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이 책에는 총 297인의 교단의 인물이 소개되고 있고, 157명이 글을 보태주었다. 아마 157명에게는 틀림없이 원고비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297인과 157인은 대부분 중복되지만 수학적으로는 454명이다. 이들이 자신의 이름이 들어갔다는 것으로만, 적선한다 치고 이미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배달된 책을 3권씩 사준다면 1362권이다. 책값으로 치자면 2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충분히 출판비가 나오고도 너무 많이 남는 셈이다. 그리고 전국 교회에 임의로 보낸 책의 수금액은 고스란히 뽀너스 수입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게다가 이 책을 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1600페이지의 모든 내용은 ①저자가 자신을 마치 한국 교계의 큰 일꾼인 마냥 스스로 선전하고 ②원고를 제공한 사람이 저자에게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③저자가 자신의 가족사와 자식들 즉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들을 자랑하고 있고 ④저자가 자신의 역사를 들추면서 자신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일에 시종일관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나는 53년의 나의 인생에 있어서 수많은 책을 읽어 왔지만 이렇게 후안무치한 종류의 책은 처음이다. 조선시대의 용비어천가는 정확히 말해서 후손(세종)이 국가의 이데올로기 확립을 위해 자신의 선조들을 6대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찬양한 것이다. 그러나 용비어천가는 신생국 조선의 국가체제를 확립하고 새로 발명한 한글을 보급하기 위한 국가적 목적으로 만들어졌지 세종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찬양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이 책은 정확히 저자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의한 자신의 우상화와 자신 가족에 대한 자랑거리를 선전하기 위한 지극히 상업적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밖에 없다. 157명의 저자들은 마치 그를 만나 식사대접하고 선착장에 데려다 준 운전기사 노릇을 했던 김명기처럼 이용되었고, 297인은 그의 상업적 목적에 부합되는 등장인물들로 이용되었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이 책을 보지 못한 분들은 김명기가 저자를 너무 죽이는 것 아니냐라고 반응하실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그가 처음부터 정석을 걷는 문학도였다면 노벨문학수상작을 냈을.......”(‘정병수 목사가 본 백수복목사’ 중에서 p.830)</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이처럼 여기에 글을 실은 157분의 글들은 하나같이 백수복 목사의 용비어천가로 이용되었다. 후안무치의 극치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나는 이 책 1271쪽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여 말하고 싶다. 저자가 신문기사에서 스스로 주장하는 내용은 “가식적인 것 추구하지 않고 예수님의 정신 본받아야”이다. 나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먼저 너부터 가식적인 것 추구하지 않고 예수님의 정신 본받아라” 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 남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정신을 스스로는 책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백수복 목사는 이처럼 방대하게 자신과 자신 가족의 선전을 책으로 낸 것은 정녕 예수의 정신을 본받아서 그러했다고 할 것인가?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이 책에서 저자 백수복 목사는 자신의 사역이 하나같이 한국교계와 문서선교를 위한 일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그는 전국 교회에 동의없이 임의로 책을 택배하여 책값을 강요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선교 행위는 장사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이런 행위는 딤전 6:5에 말하는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의 전형이라고 본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이 책은 1580~1599쪽에 걸쳐 20여 쪽의 색인도 수록하였다. 이 색인에 나오는 데이터는 거의 맞지 않았다. 출판 과정에 있어서 중대한 오류가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1580~1583쪽 4페이지에 걸친 저자의 사진 40매는 저자가 중학생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프로필 사진(일명 명함판 사진)을 모아놓은 것인데, 나는 여기서 저자의 나르시시즘의 극치를 본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이 책은 나르시시즘과 후안무치로 발라진 전혀 품위가 없는 책이다. 단지 재능있는 한 은퇴목사가 자신의 나르시시즘과 후안무치를 교묘하게 짜깁기하여 상업적으로 만들어낸 천박한 싸구려 상품일 뿐이다. 이런 천박한 싸구려 상품에 15만원이라는 정가를 매긴 그의 정신은 독자들에 의해서 감정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의 후손들은 입을 쩍 벌리고 “역쉬 ~ 우리 아버지야” 할 지는 몰라도 이 책을 강매당한 입장에서는 전혀 유쾌하지 않다. 같은 목사로서 매우 짜증난다. 목사가 인생을 꼭 이렇게 살아야하나? 하고 말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이 책은 한마디로 평하자면 나르시시즘에 충만한 저자가 후안무치한 정신으로 주변의 454명을 이용하여 자신의 우상화와 자신 가족사를 자랑하는 일에 총력을 다한 가족용 족보 사진첩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독자들은 이 사진첩을 통해 저자가 자신의 마눌님과 함께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생생한 사진을 보면서 정작 독자 자신은 마눌님과 유럽, 미국여행은 물론 성지순례 한 번도 가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탄할 것이며, 88쪽에 걸쳐서 자랑하고 있는 저자의 가족사를 들여다보고는 입을 쩍 벌릴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자신의 가계도까지 그려 넣었다. &nbsp;&nbsp;</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그러나 그런 독자들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 저자는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지금도 전국의 교회와 새까만 후배 목사들에게 책 사달라고 구걸의 전화를 돌리고 있는데...(아마도 예상 판매 수익은 3억원 정도를 기대할 것이다) 독자들은 적어도 남들에게 구차하게 구걸하는 일은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걸은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지 목사들이 할 일은 아니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또 저자는 이 책에서 23쪽에 걸쳐 자신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의 압권은 가짜 박사학위를 받고 자랑스러워 하는 그의 사진이 아니라, 1415쪽 11째 줄에 기록된 “순천한소망교회 방문(교통사고 11주년 기념)” 이라는 약력이다. 자신의 교통사고 당한 경력까지 몇주년 기념식으로 만들어 관리하면서 교회를 방문하여 강단에 서고자 하는 그의 독특한 의지가 역력히 들어있는 그의 정신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정신을 양아치 정신이라고 부른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앞으로 교단의 동료 목사들이 이런 얼빠진 짓거리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문서선교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교회에 강요 판매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받은 목사에게 이 책값을 보내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여러분은 이 서평을 보고 궁금해서 이 책을 사는 어리석은 행위는 하지 마시라. 320원짜리 폐지를(폐지 1킬로에 100원) 15만원에 사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이 책은 우리교단의 역사에서, 2011년에 여성삼이 펴낸 「성결교회 박사학위자 인명록」에 이어 두 번째로 귀중한 자원을 낭비한 대표적인 책으로 기록에 남을 것이다.  &nbsp;&nbsp;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div><div style="text-align: justify;">김명기&nbsp;<span style="line-height: 1.5;">(2013. 11. 26.) &nbsp; &nbsp; &nbsp; &nbsp;</span></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book&amp;uid=112</link>
			<dc:creator>김명기</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category><![CDATA[백수복]]></category>
						<category><![CDATA[ 파노라마]]></category>
						<category><![CDATA[ 인명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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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27 Nov 2013 23:32:37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진짜 실미도</title>
			<description><![CDATA[<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3/12/05/026ba13d13940b504a399f7e6599f08e021520.jpg" width="140" align="top" class="photo" alt=""><br><br></div><font size="3" face="Malgun gothic"><span style="color: rgb(0, 51, 102);">유래없이 
길었던 열대야 현상도 이제 막을 내리나보다. 오늘은 말복과 입추가 지난 지 닷새째, 정오 즈음부터 내렸던 삼삼한 빗방울이 대지의 열기를 식히더니 
밤부터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마리아 라이너 릴케의 ‘가을 날(Herbsttag)’ 이라는 시가 머리에서 
맴돈다.</span>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span></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span lang="EN-US">Herr, 
es ist Zeit.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span><br><span lang="EN-US">Der 
Sommer was sehr gross. (지난) 여름은 정말 위대했습니다.</span></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그런데 
그 다음의 싯구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이어진다.</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주여, 
때가 되었습니다.<br>여름은 
정말 위대했습니다.<br>녹색혁명을 
노래하셨던 가카께서 <br>위대하신 
4대강 사업으로 강물을 틀어 막으시더니 <br>드디어 
4대강을 녹색으로 물들였나이다.<br>주께서는 
열심히 일한 가카께 큰 상을 내려 주셨나이다.<br>지금 
4대강에 가득 찬 녹차라떼가 바로 그것이나이다.</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br>부디 
이 녹차라떼를 전부 The Blue House에 다 보내주셔서<br><span lang="EN-US">The 
Blue House를 The Green House로 변화시켜주시고</span><br>가카께서 
이루신 녹색혁명의 대미를 장식하게 해주소서.</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하지만, 
<br>녹색혁명을 
이루었다고 아무리 자화자찬을 해도<br><span lang="EN-US">12월에 
전국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싶은, </span><br>로고가 
새빨간 새빨간당은<br>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face="Malgun gothic"><font size="3">외로운 
가카는 오랫동안 외로이 머물 것입니다.<br>잠 
못 이루어 독서하고 <br></font><font size="3">캠프 
데이빗 골프장에서 카트를 몰면서 <br>돈독한 우정을 쌓았던 부시에게 <br>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br>그리고 
잎이 지면 녹색 강물 사이를<br>불안스레 
이리 저리 헤멜 것입니다.</font></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font size="3" face="Malgun gothic">---------</font></span></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어쨌든 
위대했던(?) 여름은 이제 막을 내릴 모양이다. 우리집 앞에 펼쳐진 광활한 간척지 벼농장에 방역하는 헬기의 굉음이 요 며칠간 작렬하는 걸 보면 
곧 수확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통계에 의하면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계절은 여름이다. 요즘 대한민국의 가을은 책읽기 보다는 놀러다니기에 더 
바쁜 계절이라는 것이 서점연합회의 결론이다. </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이번 
여름에 나는 특별한 책 한권을 읽었다. “자넨, 하나님이 살렸네” 라는 부제가 붙은 2004년 3월에 발행된 양동수 장로(아현교회)가 쓴 
?실미도 생존실화?라는 단행본이다. 2003년 12월 24일 성탄절에 맞추어 개봉된 영화 ‘실미도’는 개봉 58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이다. 나도 그 천만 관객 중 한 명이었다. ‘대중 매체’라는 것은 그 영향력과 중독성이 매우 강력하여 나 자신도 이미 ‘실미도’에 
관한 정보는 ‘영화’를 통해 각인되어 있었다. </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span></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font size="3" face="Malgun gothic">‘도가니 
법’이라는 법까지 제정하게 된, 최근에 상영된 ‘도가니’ 라는 영화의 영향력에서 보듯이 오늘날 우리들은 영상물의 영향력에 끌려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미도’의 생존자 양동수 장로의 증언인 이 책은 부시의 동네 할리우드식 상업적 영화가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고 
악영향을 끼치는지 소름 돋게 알려주고 있다.</font></span></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아무리 
흥행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영화 ‘실미도’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의 저자 양동수는 영화 ‘실미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훈련병들을 흉악범이나 사형수로 몰고, 국가를 파렴치범처럼 그린 점은 영화가 아무리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해도 너무나 어이없고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만으로 유가족들의 한맺힌 가슴에 상처를 하나 더 남기면서까지 상업화할 수 있는지 의문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말이 영화 ‘실미도’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며 저자는 그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실미도 생존실화’라는 책을 쓴 
것이다.</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span></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font size="3" face="Malgun gothic">‘진짜 
실미도’의 진실을 담은 ‘자넨 하나님이 살렸네’의 저자 양동수는 동 시대를 사는 신앙인으로서 충분히 존경받을만 하다. 그 이유는 그가 그 비극적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다시 만난 믿음의 승리와 타인을 배려하는 진한 휴머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책을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font></span></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span></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font size="3" face="Malgun gothic">1. 
저자는 사건 당일 날,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어린 시절 교회학교에서 배웠던 사자굴 속에서 하나님이 지켜주셨던 다니엘과 타는 불속에서도 
하나님이 살려주셨던 다니엘의 친구들의 성경 속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기도했다. 저자는 자신이 드라마틱하게 생존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이를 신앙고백으로 체계화 시킨 것이다.</font></span></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span></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font size="3" face="Malgun gothic">2. 
여러분은 'The Deer Hunter' 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월남전에 참전한 후 사고로 제대하여 고향에 돌아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예비역 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전쟁을 겪은 군인들은 대개는 전쟁경험 트라우마에 평생 고통을 받는다. 
실제로 실미도 사건에서도 기간병 생존자중 한 사람은 트라우마와 우울증에 의해 일찍 삶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저자 자신도 그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서술이 나온다. 그러나 저자는 교회 공동체(아현교회)에서의 주일학교 교사와 농촌 봉사를 통해 ‘덤으로 얻은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font></span></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span></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font size="3" face="Malgun gothic">3. 
우리나라는 60여년 전에 동족상잔이라는 전쟁을 겪었고, 나는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보다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더 많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을 역사적이고 객관적으로 후세대들에게 교육하는 것을 하지 못했다. 군사 
정권으로 집권한 자들이 한국전쟁에 대해서 자신들의 체제 선전을 위한 도구로 혹은 전쟁을 경험한 자들의 경험에 의존하여 적(북한)에 대하여 
적대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도구로만 이용한 측면이 있다. 이런 것들은 앞으로 국가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저자는 ‘실미도’ 사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분단된 조국의 문제이며 냉전시대의 산물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를 일으킨 ‘훈련병’ 들에게도 적대감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대한다. 그리고 훈련병들을 흉악범이나 사형수로 몰고, 국가를 파렴치범처럼 그린 상업주의 영화에 대해서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font></span></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span></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font size="3" face="Malgun gothic">4. 
저자는 ‘실미도 사건’ 이라는 하나의 역사에 대해서 정치적이든 상업적이든 왜곡시킨 상황에 대해서 그저 분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역량을 가동하여 진실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고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프락시스야말로 그가 진정 존경받을 만 한 신앙인의 자세이며 
하나님이 그를 살려낸 진짜 목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font></span></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어느 
역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그토록 참혹함에도 불구하고 그치지 않는 것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전쟁의 참혹함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그래서 
더더욱 기록이 중요하다. </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span></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 lang="EN-US"><font size="3" face="Malgun gothic">1992년에 
유럽의 발칸반도 보스니아에서 발생한 내전은 종교와 민족주의를 앞세운 인종청소 전쟁이었다. 물론 그 속에는 정치적 동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2년간 
계속된 이 전쟁으로 27만명의 사망자와 2백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br><br>로스엔젤레스 타임스의 기자 피터 마쓰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원제 : A Story of War, 미래의 창, 2002 발행)는 20세기 말에 유럽에서 발생한 이 야만을 고발하면서 “이 기록은 
전쟁터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전하고자 했던 자신의 노력이 강대국들의 정책에 영향을 미쳐 결국은 보스니아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는 가슴 뿌듯한 
해피엔딩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지 진실을 밝히고 알리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간단히 무시되고 결국은 무위로 돌아간 것에 대한 
좌절의 기록”임을 말하고 있다. <br><br>그럼에도 이 기록을 남긴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안정되어 있다고 해도 그 안에는 
선동가들에 의해 분열될 수 있는 수많은 틈새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br><br>피터 마쓰의 이러한 입장은 내가 
글쓰기를 하는 입장과 동일하다.</font></span></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실미도 생존실화 - 자넨 하나님이 살렸네’를 일독해 보실 것을 권해드린다.</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style="color: rgb(0, 51, 102);"></span>&nbsp;</font></p><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김명기</font></span></p><font size="3" face="Malgun gothic">
</font><p class="바탕글"><span style="color: rgb(0, 51, 102);"><font size="3" face="Malgun gothic">(2012. 
8. 12.)</font></span><span style="color: rgb(51, 51, 153);"><span style="color: rgb(0, 0, 128);"></span></span></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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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diakonie</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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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3 Oct 2013 23:56:33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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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나의 런치타임은 언제인가?</title>
			<description><![CDATA[<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3/12/05/db1d53275778b910eb8ec0a2bad76fe2021227.jpg" width="180" align="top" class="photo" alt=""><br><br>이 책을 집어든 나는 숨 가쁘게 읽어내렸다. 자신의 작업을 통해 풍성한 삶의 의미를 추구했던 그리고 그 삶의 의미를 기꺼이 타인과 공유하고픈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한 아티스트의 잔잔한 삶의 성찰이 이제 갓 50에 접어든 나에게 남의 일 같지 않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주었던 것이다.&nbsp;<br><br><div>그는 거대 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네와 다른 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테두리에 안주하지 않고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후반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일상의 삶을 잠시 접고 용감한 도발(?)을 감행했다는 데에 있다. 그 것(?)을 찾기 위해 저자는 로키 산맥의 아름답고 작은 마을 재스퍼로 놀.러.갔.다. 그것도 아내와 두 아이 식솔들을 다 데리고 말이다.&nbsp;</div><div><br></div><div>자신을 찾기 위해 감히 재스퍼를 향해 떠났던 그는 책의 첫 페이지에 이렇게 말한다.&nbsp;</div><div><br></div><div>&nbsp; “퍼내기만 했던 영감의 밭을 이제 쉬게 하리라.” <br>&nbsp;</div><div>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고민과 갈등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해서 그는 그 실천 방법으로 ‘런치타임’을 고안해 내었다.</div><div><br></div><div>&nbsp; “푸른 자연 속에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보리라. 내 인생의 점심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nbsp;</div><div><br></div><div>이 책의 제목 런치타임은 그렇게 시작한다. 40년 전반기의 삶을 살아온 그로서 후반기 50년 삶을 기대하면서 잠시 쉬는 ‘점심시간’을 창조해 낸 것이다. 푸른 자연 속에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 보겠다던 그는 이렇게 본문을 시작한다. <br><br></div><div>&nbsp;&nbsp;“나는 재스퍼에 놀러 갔다. 놀아야 내가 보일게 아닌가.”<br>&nbsp;</div><div>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재벌의 아들 쯤 되는 양, 숨막히는 서울의 일상을 탈출하여 가족과 함께 경치 좋은 로키 산맥의 그림 같은 작은 마을로 신선놀음을 하러 간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럼에도 그는 <br>책 속에서 여전히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아무런 장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한 힘없는 가장이며, 한 여인의 지아비요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에게는 자신의 삶 뿐 만 아니라 가족의 삶도 책임져야 하는 모든 중년의 나이에 있는 아버지들이 가져야 하는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모아온 돈을 하루 하루 축내며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불확실성에 대해 무기력한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숙명 같은 것 말이다. <br>&nbsp;</div><div>그러나 그는 그 불완전한 놀이와 동거하면서 그 속에서 이웃들을 만나며 자녀들을 키우면서 자신을 성찰한다. 특별히 갈 곳이 없는 그가 하는 수 없이 이방의 작은 시골마을의 어느 집 2층의 작업실에 올라가서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는, 옹송그레 앉아 있는 사내, 45년 이상을 살아온 육체, 변화를 싫어하는 묵은 정신을 가진 한 중년의 사내를 만나면서 말이다.<br><br></div><div>&nbsp;“재스퍼에서 나는 미술사책 한 권 읽지 못했다. 재스퍼에 나른한 오후 같은 한가함은 사실 없었다. 거기엔 나의 잘못된 생활 습관, 불안감 안달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들과 정면으로 <br>대면했다. 재스퍼는 그동안 살아온 방식에 대한 반성의 토대가 되었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나는, 내면에 쌓여 있던 잘못된 신념들과 싸웠다. 나는 2년 동안 나와 불화했다. 재스퍼 안식년이 평안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본문인용)<br>&nbsp;</div><div>그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렀던 The Sound of Silence 의 노랫말처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br>&nbsp;</div><div>&nbsp;“재스퍼에서 부끄러운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허울만 좋은 거짓의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재스퍼에 간 지 일 년쯤 지나자, 나의 오래된 문제들과 나쁜 습관들이 서서히 드러났다. 한편으로, 내 삶의 가능성과 소원들도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본문인용)<br>&nbsp;</div><div>그는 로키산맥의 대자연 속에서 놀.면.서. (그러나 마음 편안한 놀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발견해나간다. 그가 자신을 성찰하고 돌이켜 새로운 자세를 곧추 세울 수 있었던 이유로 나는 감히 그가 예수가 말한 복의 정신을 소유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본다.&nbsp;</div><div><br></div><div>예수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허울만 좋은 거짓의 삶을 감히 버릴 줄 아는 가난한 마음을 가졌었고, 자신의 부끄러운 속을 들여다 본 애통함이 있었다. <br>&nbsp;</div><div>그의 글을 읽으면서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 1872~1945 독일, 문화사학자)가 말한 ‘호모 루덴스’ 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그는 “놀이는 문화 그 자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일정한 크기로 존재해 왔으며, 태초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기에 이르기까지 항상 문화 현상 속에 함께 있었다. 인간 사회의 중요한 원형적 행위에는 처음부터 전부 놀이가 스며들어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놀이는 진지함에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놀이와 진지함의 대립은 결정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br>&nbsp;</div><div>&nbsp;“삶에는 의미가 필요하다. 마음을 비우고 쉬는 것이 좋지만, 우리는 쉬려고 살지는 않는다. 노는 것이 일상이 되면 거기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놀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며 사는 존재들이 아닐까?” (본문인용)<br>&nbsp;</div><div>그렇다. 놀이는 진지함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중요한 원형적 행위이다. 그의 글에서 나는 진지한 삶을 찾기 위해 놀이를 선택한 그의 혜안을 보았다. 로키산맥의 평화롭고 작은 마을 재스퍼는 단지 진지한 삶을 찾기 위한 그 원형적 행위인 놀이의 도구였을 뿐이다.&nbsp;</div><div><br></div><div>그렇다면 나의 런치타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나는 그 답을 본문 269쪽 에필로그에서 찾았다.)<br><br></div><div>&nbsp;“아내에게 물었다. 재스퍼 2년간 대자연에 살면서 얻은 것이 무엇일까? 행구는 기간 아니었을까? <br>40년 넘게 쓴 기계를 맑게 닦는 기간.” (본문인용)<br>&nbsp;</div><div>그는 재스퍼의 2년을 이렇게 말한다. <br><br></div><div>&nbsp;“너무 오랜 길을 돌아왔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이제야 제대로 깨닫고 있다. 비로소 평화를 느낀다.”&nbsp;</div><div><br></div><div>그리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이렇게 말한다. <br><br></div><div>&nbsp;“나이가 들수록 더욱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일러스트레이션, 그것은 빛의 나눔이며 정신의 나눔이다. 보석 같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사람들의 가슴에 심게 되는 행운이 있게 되길 소망한다.”<br>&nbsp;&nbsp;</div><div>나는 그가 런치타임 이후의 소망을 꼭 실현하기를 기원한다. 특히 본문 속에 들어 있는 그가 직접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은 나를 로키산맥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 재스퍼에 살았던 주인공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는 것을 저자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nbsp;</div><div><br></div><div>김명기</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book&amp;uid=30</link>
			<dc:creator>diakoni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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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03 Oct 2013 23:50:41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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