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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결네트워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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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간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2/3edfec5a4fc95d8af03711f9c082d6c1114518.jpg" width="247" align="left" class="photo" alt="">&nbsp; 사람은 절대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nbsp;</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돛단배의 돛을 조정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원하는 방향을 중심으로 목적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현명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지금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아량이 없고, 소화해 낼 여유가 없기에 가능하면 마음 다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영양가 없는 대화보다는 혼자 노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더 깊은 산속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상 누구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체질이 못되기에 사람을 피하여 은둔의 장소를 찾으려 했는데 어딜 가나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고 불편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젊어서는 헤프게 인연을 맺고 친분을 넓혀 갔지만 이젠 조금 진지하게 살고 싶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옛말에 "가마가 많으면 모든 것이 헤프다"는 말이 있다. 일이나 살림을 여기저기 벌여 놓으면 결국 낭비가 많아짐을 이르는 말인데, 그럴 능력도 없지만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꼭 필요한 만남외엔 가능하면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혼사족'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혼밥족은 알겠지만 혼사족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았더니 혼자 죽는 고독사를 일컫는단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람은 어차피 혼자 죽는다. 문제는 그 임종을 누구도 지켜주지 않고 죽음을 알지도 못하는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데, 주의 사자의 손에 이끌려 천당가는 사람이 혼사족인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만은 고독때문에 아무나 하고 교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만약 둘만 내 곁에 있었더라면 오히려 일을 기피하려 했을지도 모른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혼자이기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노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아름답게 디자인해야겠다는 열정이 내 안에 존재했기에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span>십년이 넘는 동안 거친 공사판에서 살다 보니 내 성격도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오가는 말투가 너무 쌍스럽고 거칠다 보니 내 생리에 맞지 않았지만 적응하는 수 밖에 없었다.&nbsp;<div><br></div><div>별 거 아닌 일에도 흥분하기 일수이고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가 난무하는 곳이고 특히나 외국인들에겐 거의 쌍욕을 해대는 걸 들을 때가 가장 안스럽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일 때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이 바닥에선 <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모기도 새'</font></b>란 말이 통용되는 곳이다. 무조건 목소리 큰 놈이 정의라고 인정되는 곳이다. 나도 예전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많이 했지만 최근엔 가능하면 줄이려 노력중이다.&nbsp;</div><div><br></div><div>주변에 말도 안되는 생각과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라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왠만하면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말이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생기는데 특히나 공사장은 이런 부침이 심한 곳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2/2abaca9839b4c555329ab5cabc84fc501153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새로운 신(神)을 섬기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가 기소돼 사형 선고받은 게 BC 399년쯤이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에서 패한 뒤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침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희생양이 필요했고, 소크라테스는 좋은 제물이었다.&nbsp;</div><div><br></div><div>`너 자신을 알라’며 평소 권력자·작가·시인 등 아테네의 실력자나 지식인들을 깨부수고 다녔던 소크라테스에게 박힌 미운털의 역습이었다. 하지만 따져보면 소크라테스는 대책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가장이었지만 평생 돈을 벌어본 적 없이, 허구한 날 시장에서 젊은이들과 공론했다. 가장이 내팽개친 가정사를 책임진 건 아내 크산티페였다.&nbsp;</div><div><br></div><div>`악처’의 대명사로 남은 그 이름이다. `세기의 재판이야기’ 저자는 크산티페의 명예 회복을 주장한다. “지아비 섬기고 대문 밖은 얼씬도 하지 않은 정숙한 부인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살기 위해 몸부림 친 이 여인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는 것이다.&nbsp;&nbsp;&nbsp;</div><div><br></div><div>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죽었다.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진 게 있네. 기억해뒀다가 꼭 갚아주게.’ 마지막 유언이 이랬다. `철학자의 가장 완벽한 죽음’(`세기의 재판이야기’)이라는 평가 이면 `무책임한 가장의 허세’로도 이해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선택했고, 독이 든 잔을 건네 받았다.&nbsp;&nbsp;</div><div><br></div><div>그는 슬픔에 빠진 동료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의 영혼의 불멸에 대하여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죽음은 곧 육체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것이라고 보았고, 진정한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크리톤 등은 소크라테스에게 도주를 권유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부했다. “철학하는 자유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내 이성의 명령이네.”&nbsp;&nbsp;</div><div><br></div><div>BC 399년 5월에 소크라테스는 한 달 동안 제자들과 담소하다가 독차를 마시고 죽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에게 평온한 죽음을 보장해주는 독약을 내려준 것에 감사하였고, 곧 독약을 마시고는 숨을 거두었다.&nbsp;</div><div><br></div><div>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병패는 철학이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나 언론에서 철학을 발견한다는 건 해변에서 바늘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울 정도이다. 요즘 언론의 양태에 대하여 실망감을 넘어 허탈감에 빠져 거의 뉴스나 만평을 시청하지 않는다. 전엔 연속극을 기피했지만 요즘은 뉴스까지도 귀를 막아 버렸다. 기대와 달리 대개의 보도는 주변적인 호기심, 또는 알아도 몰라도 그저 그런 주변적 담론만 되풀이하고 있다.</div><div><br></div><div>생각이 다른 사람을 붙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곤혹(困惑)스러운게 없다. 요즘 내 주변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nbsp;&nbsp;담론(談論)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무슨 주제가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더더욱 아니며 영양가없는 말을 주고 받는게 전부인데 왜 내가 이런 저런 말을 다 들어주며 시달려야 하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노인이 되어갈 때 아름다워야 한다. 뒤에 나선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빠르면 어서 좁은 길을 비켜서서 앞서가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연륜이 묻어난 당부를 하는 것이 도리이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도 있다. 결코 좋은 뜻은 아님에는 분명하다. 순수해진다는 좋은 의미로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순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6/02/6d63541cb88b66fac6ce4ea0412aff2f1155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한 때 생각이 많아 몹시 곤고하게 산 적이 있었다. 길거리에 앉아 왜 나만 거머리같은 상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청승을 떠는지 내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분노도 용서도 사그러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갑짜기 피곤이 몰려 오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힘든 나날이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고지가 바로 눈앞이기에 견디는 방법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귀촌의 삶의 질이란 여가 만족도와 직결한다.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귀촌하였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혼자 놀 줄 모르면 귀촌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 뭐가 유익하고 이득인가를 버린지 오래이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아니다. 하다못해 하루종일 남의 일에 동원되었어도 손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운동을 하여 근육량이 늘어 났을 것이고 혈당을 떨어트린 날이었다고 자평하며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노동에 매달린다는 말은 아니다. 그 짧은 시간에 내 존재의 의미를 찾고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난 농사 일은 커녕 평생 낫 한번 잡아 본 일이 없다. 인터넷으로 공부하면서 조경을 하고 식물을 심는다. 아마도 얼마 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자리잡아 갈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없는 일에 녹초가 될 지경이지만 나를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왕초보에게 배울게 뭐가 있다고 이곳을 찾아 준 분들에게 한편으론 미안하고 고마웠다. 은퇴를 앞둔&nbsp; 목사님 한 분이 이 정도를 가꾸는 데 얼마가 소요되었느냐고 묻는다. 막연한 질문이다. 워낙 땅을 구입하는 문제가 힘들고, 택지로 전환하여 집을 지었을 때의 경관을 고려해야하고 지형에 맟추어 정원을 꾸미고 장식하는 문제를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하였기에 딱히 얼마가 소요되었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직접 만들어 보라고 조언해 드렸다. 남의 손으로 모든걸 갖추려면 족히 몇억원은 들어 갈테니 경험삼아 직접 시도해 보라니 목회 외적인 일은 잼병이란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제길헐! 나도 잼병이긴 마찮가지였는 데, 노력하고 연구하고 배우고 힘쓰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건만 미리 못한다고 발을 뺀다. 그렇다면 거져줘도 관리도 어렵다. '죽을뻔' 몇번해야 작품이 나오는 법이지 가만히 있으면 죽도 밥도 않된다. 난 은퇴를 앞둔 그 분에게 '죽을뻔' 몇번 넘기고 깨달은바가 있어 도를 닦는 중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죽을뻔' 몇번 넘기지 않는 인생은, 목회는, 공허한 결과를 만들어 낼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원광대학교 병원을 다녀 왔다. 이젠 6개월에 한번씩 가는데 CT 촬영과 피검사 그리고 방광대시경 검사가 에정되어 있어 인부들에게 일을 지시해 놓고 병원엘 갔는데 그 큰 병원이 북새통이다. 대게는 70대 이상이고 8~90대 노인들도 눈에 띈다. 틀림없이 노인이 되면 한두가지 병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 얼마나 더 살자고 이처럼 병원 문턱을 드나드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조금있다가 백내장 수술을 해야하고 인플런트도 몇개쯤 더 해야 한다. 옛날같았으면 벌써 죽었었을텐데 의학의 힘으로 수명을 이어가곤 있지만 병원가는게 정말 싫다 어릴적엔 학교가는게 싫었고 젊어서는 군대가기가 싫었으며 나일먹으면서는 병원가는게 싫다. 은퇴 후엔 교회가는 것도 의무적일 때가 대부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태극기 부대가 광화문을 점령하면서 이삼년 사이에 기독교인 백만명이 줄었다고 한다. 익산만 해도 교회가 엄청나게 줄었다. 이층 개척교회들이 거의 문을 닫았고 목회자들도 알바에 나갈 정도로 심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골교회는 할머니 몇명이 교회를 이루고 있을 정도이다. 아! 어쩌다 그리 되었을까? 인간이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nbsp;</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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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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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02 Jun 2026 12:22:34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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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거룩한 분노</title>
			<description><![CDATA[<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거룩한 분노는</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종교보다도 깊고</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불붙는 정열은</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사랑보다도 강하다<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font></p><p class="0">  <!--[if !supportEmptyParas]--><font face="Malgun gothic" size="3">&nbsp;<!--[endif]-->  <o:p></o:p></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아<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 </span>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 물결 위에</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 마음 흘러라<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font></p><p class="0">  <!--[if !supportEmptyParas]--><font face="Malgun gothic" size="3">&nbsp;<!--[endif]-->  <o:p></o:p></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아리땁던 그 아미<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span style="letter-spacing: 0pt;">蛾眉</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높게 흔들리우며</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 석류<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span style="letter-spacing: 0pt;">石榴</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 </span>속 같은 입술</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죽음을 입맞추었네<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font></p><p class="0">  <!--[if !supportEmptyParas]--><font face="Malgun gothic" size="3">&nbsp;<!--[endif]-->  <o:p></o:p></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아<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 </span>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 물결 위에</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 마음 흘러라<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font></p><p class="0">  <!--[if !supportEmptyParas]--><font face="Malgun gothic" size="3">&nbsp;<!--[endif]-->  <o:p></o:p></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흐르는 강물은</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길이길이 푸르리니</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대의 꽃다운 혼<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span style="letter-spacing: 0pt;">魂</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어이 아니 붉으랴<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font></p><p class="0">  <!--[if !supportEmptyParas]--><font face="Malgun gothic" size="3">&nbsp;<!--[endif]-->  <o:p></o:p></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아<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 </span>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 물결 위에</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그 마음 흘러라<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font></p><p class="0">  <!--[if !supportEmptyParas]--><font face="Malgun gothic" size="3">&nbsp;<!--[endif]-->  <o:p></o:p></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변영로의 <span style="letter-spacing: 0pt;">詩 </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lt;</span>논개<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span><span style="letter-spacing: 0pt;">論介</span><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gt;<br><br></span></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br></span></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br></span></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할 말은 많지만 이&nbsp;</span></fon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詩로........</span></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br></span></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2026. 6. 1.</span></font></p><p class="0"><font face="Malgun gothic" size="3"><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땅끝칼럼</span></font></p><p class="0"><span lang="EN-US" style="mso-fareast-font-family:함초롬바탕;mso-font-width:100%;letter-spacing:0pt;mso-text-raise:0pt;"><br></span></p><div id="hwpEditorBoardContent" class="hwp_editor_board_content" data-hjsonver="1.0" data-jsonlen="14198"><!--[data-hwpj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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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김명기</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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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허리 사이즈를 30인치로 늘리기 운동</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1/f745df3b8c794f267bc5c83f402aa67f141722.jpg" width="200" align="left" class="photo" alt="">우리에게는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일이 필요하다. 힘센 사람, 박학자, 재주꾼, 활동가들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바탕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생각하지 말고 반응하라’는 모바일 시대의 생활양식이 문제이다. 모바일 기기는, 인간을 정보를 작동시키는 프로세서로 만든다. 검색하고, ‘좋아요’를 클릭하고, 톡을 보내고,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 때마다, 우리는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기계의 일부가 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젊은이들의 놀이터 쯤으로 치부하던 SNS의 세상에는 언제부턴가 중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스팩트럼이 확대되었고 그들도 알게 모르게 온라인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 내 주변을 보면 나이 불문하고 작은 틈만 있으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공사현장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잠시 쉬는 시간이면 모두가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대세가 그러니 크게 한탄할 순 없지만 외연상으로 긍정적인 문화확산이 점점 온라인 세계 속에서 오히려 자기의 주장이 강해지고, 생각과 사상이 집단의 광기 속에 갇혀 개성이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같은 사이버세계의 엄청난 영토확장은 긍정적인 부분 못지 않게 부정적 요소도 많이 가져 왔는데 그 폐해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마 악플이 아닌가 생각한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최진실씨의 자살을 필두로 수를 헤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연예인들이 악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자살의 길을 택했으며 자신과 뜻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의정활동을 못할 정도의 문자폭탄을 보내고, 종내는 의견충돌로 오프라인에서 살인이 발생하는 등 이미 금도를 넘어선 행태를 보이고 있다.</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세상이 辱이 아니면 대화가 안될 정도로 거칠어지고 있다. 하지만 辱에 대한 긍정적인 면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국 스탠퍼드대, 홍콩대 등의 공동 연구진은 일반인 276명 대상으로 게임에서 속임수를 쓴 적이 있는지, 남을 속여 이용한 적이 있는지 등을 설문해 참여자들의 정직도를 파악했다. 입이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오히려 거짓말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nbsp;&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연구에 참여한 데이비드 스틸웰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사회 규범에 덜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거친 표현이 걸러지지 않은 진솔한 감정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통적으로 온화한 말을 사회적 덕목으로 여겨왔지만 욕설을 자제하는 사람이 종종 더 기만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그럼에도 불구하고 辱은 습관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Voltaire)는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는 말을 남겼다. 상대방과 온전한 대화가 가능한 자신의 철학, 이성, 지식, 경험, 생각 등이 소진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말이 아닌 욕설을 쏟아낸다는 의미일 것이다.&nbsp;</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b style="font-weight: bold;">나도 전혀 안해본바는 아니겠지만 가능하면 辱을 하지 않으려 노력중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욕'을 모르고 자랐다. 선친의 영향이 컸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큰 소리나는 걸 들은 적이 없었으며 더군다나 욕하는 사람이 우리 형제들 중엔 없었다. 기껏해야 '요녀석' 정도가 심한 욕설이었고, 아무리 화가 나도 '욕하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배웠기에 아예 욕이란 남의 나라 이야기쯤으로 여겨질 정도였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학교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흉악하고 징그러운 욕을 일상용어로 알면서 듣고 자랐다. 내 주변 어른들은 “미친놈”이나 “지랄한다” 정도는 너무 고운 말이었다. 내가 자랄 때는 그 정도는 '욕'을 욕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욕은 상대를 얕보거나 무시하고 부모를 저주하거나 잔인하게 죽는 과정을 말하는 것 같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천부적으로 '욕쟁이'가 있다. 욕설이나 거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입이 걸다' 나 '걸레를 물다' 라는 표현을 쓰는 일도 많이 있지만, 욕쟁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 군대에 가거나 주방에 들어가면 멀쩡한 사람도 욕쟁이가 된다는 풍문이 있다. 욕쟁이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욕을 하는 게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고 사람을 구분한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1/f3c4883fbb5abacf0cc715053af3d4cc141913.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화초 두 개를 놓고 키울 때, 하나에는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다른 하나에는 욕을 하면 욕을 들은 화초가 말라죽는다고 한다. 욕은 듣는 사람도 나쁘지만 욕을 하는 사람의 뇌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평소 욕을 자주 하는 아이일수록 충동성과 공격성이 높고 학습 능력은 떨어진다고 연구 결과도 있는데, 그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나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엔 이러한 점들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div><b style="font-weight: bold;">순화된 말로 의사가 전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 할 경우에 사용되어지는 욕(辱)이라도 인격적인,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기성찰에 기반을 둔 표현이라면 좋을 것이다.&nbsp;</b><b style="font-weight: bold;">요한이 독사의 자식이란 독설을 퍼붓었지만 그의 욕(辱)은 강단에서 설교로 미화되고 교훈이 되고 있다. 춘성(春城)스님이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써서 욕(辱)쟁이 스님으로도 통했으나 그는 평생 옷 한벌 바리때 하나만으로 살다간 무소유의 실천가였기에 욕먹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았다.&nbsp;</b></div><div><b style="font-weight: bold;"><br></b></div><div><b style="font-weight: bold;">할 것 다하고, 가질 것 다 챙기면서 남을 정죄하는 차원에서 욕(辱)을 하는 것은 엄청나게 기분만 상한다. 가능하면 순화된 용어로 살아야겠지만 辱먹을 짓도 삼가야 한다. 공사 현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도 많이 거칠어졌고 내 말투도 예전같지가 않은게 사실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매일 성찰의 시간을 가지긴 하지만 가능하면 깊은 인간 관계를 맺지 않으려 노력중이다.</b></div><div><b><br></b></div><div><b>나는 지금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아량이 없고, 소화해 낼 여유가 없기에 가능하면 마음 다치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은 되도록 피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 영양가 없는 대화보다는 혼자 노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더 깊은 산속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서 생겼을지도 모르겠다.&nbsp;</b></div><div><b><br></b></div><div><b>내 성격상 누구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체질이 못되기에 사람을 피하여 은둔의 장소를 찾으려 했는데 어딜 가나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고 불편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니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젊어서는 헤프게 인연을 맺고 친분을 넓혀 갔지만 이젠 조금 진지하게 살고 싶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옛말에 "가마가 많으면 모든 것이 헤프다"는 말이 있다. 일이나 살림을 여기저기 벌여 놓으면 결국 낭비가 많아짐을 이르는 말인데, 그럴 능력도 없지만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꼭 필요한 만남외엔 가능하면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nbsp;</b></div><div><br></div><div><b>나는 지난날들을 반추해 보면 역시 실패를 부끄러워 했었지만 두려움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성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는 날이 있는데 미리 내가 그걸 선택해서도 안되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별이 참 많다. 이별이라는건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지기 어렵다.&nbsp;</b></div><div><b><br></b></div><div><b>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내가 속해있는 조직과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내가 아끼는 물건과의 이별 등등. 신기한건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그 때 그렇게 망설일 필요가 없었는데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별엔 좀 더 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쿨한 척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 감정에 쿨할 필요는 있다.&nbsp;</b></div><div><b><br></b></div><div><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1/eaae8a91ee98758d5f1d95d177317216142053.jpg" width="249" align="left" class="photo" alt="">내가 즐겁고 의욕이 생기고 순간순간 기쁨을 느낀다면 이별은 필요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이별을 하려고 한다. 물론 100% 만족하고 100% 싫은게 어디 있겠나.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내 순간의 느낌에 충실한다는 말이다. 만약 어떤 이별로 인해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나는 어떨지 등등을 생각하는건 앞으로 일어나지도 않을(그리고 꼭 내 생각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한) 것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이다.&nbsp;</b></div></div><div><b><br></b></div><div><b>넝쿨식물들을 위해 지지대를 세우고 빵끈으로 고정시켜주는 작업을 했다. 사모님이 건내주신 화초도 심었고 내 텃밭안의 잡초도 모두 뽑았다. 그간 바쁜단 핑게를 대고 게으름을 핀 후휴증이 만만지 않지만 오늘이 아니면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아 무리하게 작업을 마쳤다. 시간이 부족하여 전지작업은 내일로 미루었지만 전지를 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기에 내일 컨디션에 따라 움직일 생각이다.&nbsp;</b></div><div><b><br></b></div><div><b>인부들과 자주 가는 식당에 부탁하여 멸치조림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영양실조에 철분이 부족하단 말에 탄수하물과 철분을 보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창한 표현이지만 햇반에 물말아 멸치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해야겠다는 말이다. 먹기 싫어도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갈 순 없기에 조금씩이라도 하루 세끼를 모두 찾아 먹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허리 사이즈를 30인치로 늘리는 걸 목표로 삼았다. 한창 때는 바지 사이즈가 38로는 부족하고 40까지 육박했었는데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nbsp;&nbsp;</b></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68</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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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31 May 2026 14:22:25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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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영양실조에 걸린 재벌</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0/24a81a10b447ba9d1868b91a2c784f4a11475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구두수선공의 아이들이 맨발로 다닌다(The cobbler’s children go barefoot)"는 말이 있다. 비슷한 속담중에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는 말도 있다. 보통 남의 일은 잘 해결해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일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말은 자기 일은 자기가 못한다는 이야기다. 원래부터 세상사는 인인성사(因人成事)였다. 남의 인연에 기대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을 살면서 독불장군이란 없다. 다만 그런 것처럼 착각할 따름이다. 독불장군이란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에나 가당한 말이다.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말은 그 방면에서는 제일 잘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일을 처리할때는 할 수가 없거나, 잘 못하거나 또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들에 보통 사용하는 속담이다. 건축현장에서 이들과 전적으로 애환을 함께 한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가능하면 이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고 들어주려 노력중이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귀촌 이후 먹는 것, 입는 것은 대충하기로 했다. 없으면 안되는 것외엔 일체 지출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철저하게 냉정하고 가혹하지만 남에게는 할 수 있는한 너그럽게 베풀며 살기로 했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지난 삶을 뒤돌아 보면, 잘 살았단 생각보단 후회스러운 일들이 나무 많아 나에게 한시적으로 남은 인생 2모작은 정 반대로 살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nbsp;</span><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젠 '나의 바람'만을 고집하지 않으려 한다. 진정한 성직은 '너의 희망'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젊어서는 '나의 바람'을 주장해 왔다. 내가 가장이기에 아내는 무조건 내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자식들도 '나의 바람'대로 살길 소원했다. 교회도 '나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하지만 이젠 가능하면 '너의 희망'을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지만 가능하면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바람'을 위하여 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대면 그 때가 망령의 시작이고 은퇴의 시점이다. 이젠 가능하면 '나의 바람'을 줄여 살려 한다. 설령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의 희망'이 크다 할찌라도 원망하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매일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진즉 이렇게 철든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면 득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삶의 무게에 허덕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자 절반의 실패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현장에서 외국인이라고 하대하거나 무시하려는 사람들에겐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정색을 하며 질타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거친 말투는 용납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거의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사장엔 특히나 엄격한 갑을 관계가 존재하지만 이들이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살피고 다독여 준다. 가능하면 내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애로 사항을 드어주는 편이다.&nbsp;&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0/b5a5107e665a09846201103b9247e5b7114937.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밀레니엄 맨'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나는 배운 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는 말을 신봉한다. 경청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통의 90%는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라고 해서 다는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열지만 잘 듣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은 힘이다. 자기 말만 늘어 놓으면 사람들은 그 주변을 떠나고 싶어 한다. 심지어는 부부나 가족간에도 자기 주장만을 강요하면 대화의 문이 닫히고 불통이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 주변에는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이 정말 많다. 나르시시즘이라고도 하는 자기도취는 물에 비친 제 얼굴을 제가 사랑하다 연못에 빠지는 나르시스처럼 스스로 황홀감에 빠져드는 일이다. 요즘 그런 사람을 공주병, 아니면 왕자 병으로 비유하는 것도 이것과 비슷한 말이 되겠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해치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지나친 자기도취는 자칫 다른 사람을 무척 불편하게 할 수가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일 먹으면 잘 듣지 못하는 난청(難聽)은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질병으로 어쩜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나이가 들어 청각 기관이 약해져 생기기도 하지만 요즘은 소음에 오래 노출돼 생기는 소음성 난청도 늘고 있다고 한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히 소음성 난청은 어지러움과 전신피로, 수면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하면 고혈압, 소화 장애까지 일으킨다고 하는데 난청(難聽)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문제는 생리적인 난청도 문제이지만 도무지 남의 말에 귀를 기우려 주지 않는 무관심이 더 큰 문제이다. 자기 말만 늘어 놓는 사람도 문제이고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바른 말이 잦으면 사이가 벌어지는 법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런 사람에게 가장 서글픈 것은 사람들이 여러 번 말하다가도 안 되겠다 싶으면 자기라도 그와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어 그의 곁을 떠나버리는 일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시급한 것은 더 늦기 전에 남의 눈으로 제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일에는 늦고 빠름이 없다. 내가 내 모습을 알려고 할 때가 가장 좋을 때이고, 알려고 하지 않아 때를 놓치면 이미 주변 사람이 떠난 다음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나는 요즘 현상을 타개하려고 애써 변명하려는 사람을 측은(惻隱)한 심정으로 대하고 있다. 성격이 너무 급하고 단순하여 몇번씩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서 대략난감일 때가 많아 조금 거리를 두었더니 그게 큰 상처가 되었나 보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가정사를 비롯해 부부관계 가족관계 등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해결해 주어야 하는 곤욕(困辱)을 치루다 보니 이젠 내 자신을 위해 멀어지고 싶은 심정이다.&nbsp;</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철저하게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게 얄밉다는 생각이 들어 말문을 닫아 버렸다. 귀도 물론 닫아 버렸다.&nbsp;&nbsp;</span></div><div><br></div><div>'폴 투르니에'는 “소통이 잘 안된 이유는 내 생각이 옳다거나 내 방식대로 결론내거나 상대방을 말을 자르기 때문”이라며 “경청과 공감은 신뢰를 부르는 소통의 비밀”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절반만 듣고, 들은 것은 절반만 이해하며, 이해한 것의 절반만 믿는다. 나도 그런 부류이지만 정말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일이 더욱 힘들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30/104af02d0ff768aa3fca40a8a978aa0e11511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은퇴후 시골에 사는 지인과 함께 부안을 다녀왔다. 오랫만에 변산 해수욕장의 추억을 떠올려 보고 채석강 내소사 줄포 등지를 쏘다녔다. 모항에 있는 가족 호텔에 머물며 그간의 근황을 물었다. 처음 시골에 적응하느라 무던 애를 쓴 모양인데 이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박수를 보냈고, 곰소에 들려 낙지젓과 갈치 속젓을 한보따리 사들려 보냈다.</div><div><br></div><div>어디에서 잘못된 소문을 들었는지 건축을 하여 대성공을 했다는 말에 대하여 속빈 강정이라고 대답해 주었지만 쫄딱 망해 거지처럼 산다는 소문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제 농협에 들려 고유가 피해 보상금 신청을 하였더니 대상자가 아니라며 면사무소에 들려 확인하란 말을 듣고 찾아 갔더니 한참동안 확인해 보더니 여직원 둘이 박수를 치며 축하한다는 뜻모를 제스처를 보낸다.</div><div><br></div><div>사실인즉, 전국 30% 안에 들어 지원금 대상자가 아니라며 상위권에 든 걸 축하한다는데, 시골집 하나 가진 사람이 상위 30% 안에 든다는게 말이 안되지만 아무런 시비를 벌리지 않았다. 인천에 있는 아내도 20만원인가를 받았다는데 부부 재산은 합산이라고 알고 있는데 왜 나만 못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생각해 보니 차가 두대라 그런 것이라 이해하고 나는 지금부터 전국 상위 30% 안에 드는 재벌이라고 턱빠지게 웃었다.</div><div><br></div><div>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는 상위 30%의 고귀한 부자임에도 아직까지 스타벅스에 한번 가보질 못하고 맥심 커피만 마시는데 계속 부자인척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 남에게 손 안벌리고 사는 것만 해도 다행이며 이 나이에도 일을 하며 새로운 구상을 한다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div><div><br></div><div>내일은 교횔 다녀와 고추를 비롯 오이 토마토 등에 지지대를 만들어 주고 빵끈으로 고정시켜 주는 일을 계획했다. 무엇인가 자꾸 꼼지락거려야 그나마 건강을 유지시킬 수 있기에 건강도 상위 30%안에 들기를 열망하면서 일을 한다.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다. 당뇨 120, 혈압 110/85 콜리에스톨, 간 위장 대장 등 대부분이 정상이지만 다만 빈혈이 심하다며 철분이 많은 식품을 먹으라는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먹는일이다. 도무지 먹고 싶은게 없고 먹는 것보다 귀찮은 일이 없을 정도이다.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div><div><br></div><div>세상에 주요한 병명은 다가져 보았지만 21세기 전국 상위 30% 안에 드는 재벌이 영양실조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무래도 누군가를 꼬드겨 베트남에 가서 쌀국수와 반미라도 먹고 와야할 모양이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영양실조에 걸린 재벌이 있다면 믿어지는가?&nbsp; &nbsp;</div><div><br></div><div>&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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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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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30 May 2026 11:53:4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이것이 축복이다.</title>
			<description><![CDATA[<div><b><font size="6">이것이 축복이다</font></b></div><b><div><b><br></b></div>하나님이 축복이다.</b><div><b>살아있는 것이 축복이다.</b><div><b>내 발로 걷는 것이 축복이다.</b></div><div><b>지식과 경험이 축복이다.</b></div><div><b>90세를 바라보는 것이 축복이다.</b></div><div><b><br></b></div><div><b>아내를 일찍 만나 강산이 일곱번째&nbsp;</b></div><div><b>변해 가고 있는 것이 축복이다.</b></div></div><div><b>노인 최고의 취미 수담이 축복이다.</b></div><div><b><br></b></div><div><b>그날 그날을 가장 좋은 날로&nbsp;</b></div><div><b>생각하는 것이 축복이다.</b></div><div><b>감사감사 하는 것이 축복이다.</b></div><div><b>훌륭한 아이디어가 축복이다.</b></div><div><b>하고싶은 것을 하는 것이 축복이다.</b></div><div><b><br></b></div><div><b>해산하여 아이를 얻는 기쁨처럼,&nbsp;&nbsp;</b></div><div><b>나의 집 새들이&nbsp;</b></div><div><b>부화하여 새끼를 기르는 것이 축복이다.</b></div><div><b><br></b></div><div><b>나의 집에 새들과 함께 자연 속에&nbsp;</b></div><div><b>있음 느끼는 것이 축복이다.</b></div><div><b><br></b></div><div><b>헬렌켈러는&nbsp;</b></div><div><b>'인생은 과감한 모험이 아니면&nbsp;</b></div><div><b>아무 것도 아니다'라 했는데,&nbsp;</b></div><div><b><br></b></div><div><b>일평생 모험으로 점철된 삶을</b></div><div><b>&nbsp;산 것이 축복이다.</b></div><div><b>훌륭한 부모님 만난 것이 축복이다.</b></div><div><b><br></b></div><div><b>아랍 속담에&nbsp;</b></div><div><b>'책은 호주머니 안에 가지고&nbsp;</b></div><div><b>다니는 정원과 같다' 했는데</b></div><div><b>노년에도 각박한 세상에서&nbsp;</b></div><div><b>책과 함께 정원 생활하는 것이 축복이다.</b></div><div><b><br></b></div><div><b>'생일은 모든 축복(행복)을</b></div><div><b>&nbsp;담는 그릇이다'라 했는데,&nbsp;</b></div><div><b>이 그릇을 내게 주신 하나님과&nbsp;&nbsp;</b></div><div><b>나의 부모님이 축복이다.</b></div><div><b><br></b></div><div><b>자유민주주의&nbsp;</b></div><div><b>나라에서 한평생 산 것이 축복이다.</b></div><div><b>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nbsp;</b></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1&amp;uid=9266</link>
			<dc:creator>김승훈</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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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28 May 2026 12:42:1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 사람은 ?</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8/6453608f6e361aea9e96e308d3bf89fb10452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엊그제 옥수수 100개를 심었는데 오늘 다시 70개 정도를 더 심었다. 대충 두개씩 열매가 열린다면 300개 이상을 수확할텐데 옥수수 장사를 할 것도 아니면서 욕심을 부렸다.&nbsp;</span><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특별히 옥수수를 즐기는편도 아니면서 이렇게 많이 심는 것은 우선 담장에 심어 어설픈 농사꾼의 치부를 감추기 위함이고, 지금도 입맛이 여전한지는 모르지만 귀촌 첫해 많은 옥수수를 심어 손자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걸 보았던 기억때문이었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또한 벌레가 먹지 않는 유일한 농작물이고 소만과 망종 사이에 심는 옥수수는 그냥 던져 놓아도 살기에 사이비 농부에겐 더할나위없는 식물이기에 욕심을 부렸다. 결험적으로 볼 떄 옥수수는 성장하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잘 자라기에 이 글을 마치는 순간 수확하게 될지도 모를 정도로 식량 대체식물론 그만이기에 많이 심었다.</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1986년 대한민국 국민들 가슴에 아름다운 깊은 슬픔을 전해준 도종환의 &lt;접시꽃 당신&gt;에 </span>"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는 첫구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리며 살려했었는데 내가,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 하루의 앞날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div><br></div><div>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오고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nbsp; 아파해야 합니다.(중략)</div><div><br></div><div>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동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싯구 한 구절 정도는 읊조리며 삶을 사랑을 슬픔을 노래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그 당시에만 해도 불치병이던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랑하는 부인에게 순간순간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겪어야만 했던 어느 한 남자의 순애보에 많은 이들이 같이 울고 갗이 슬퍼하며 같이 사랑했었다.&nbsp;</div><div><br></div><div>접시꽃 당신은 그렇게 국민들 가슴에 깊고도 강하게 묻혔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던 어느날,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다고 하던 그 순애보의 주인공 도종환 시인이 처녀장가 든다고 할 때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으로 인해 ‘접시꽃 당신’을 불태워버렸던 수많은 독자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하기엔 내 식견이 너무 짧지만 많은 이들은 배신을 당했다며 허탈해 했었다.</div><div><br></div><div>애 딸린 혈기 왕성한 젊은 홀아비가 새장가 든다는데 그것도 처녀장가를 든다는데, 보통인 경우에는 축하를 해주고 이해를 해줄만 한데도, 많은 이들이 극한 배신감을 느끼고 멘탈이 붕괴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이런 구절들이 가슴 속 깊이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울려퍼져 올라오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nbsp;</div><div><br></div><div>내 집안 홀리팜 주변에 접시꽃을 많다. 직접 정원에 심진 않았지만 이웃 이장님 댁을 비롯 집집마다 접시꽃이 바람에 건들거린다. 누가 처음에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유독 접시꽃이 많아 '접시꽃 마을'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흔한 꽃이 되었다. 접시꽃은 화단에서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어귀, 길가 또는 담장의 안쪽과 바깥쪽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자란다.&nbsp;</div><div><br></div><div>할머니들이 좋아하고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줄기, 꽃, 잎,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 멀리서 보면 무궁화처럼 보이지만 아욱목 아욱과 식물이며 두해살이 풀로 분류되고 있다. 아마도 꽃 모양이 접시모양처럼 납작하게 생겼다 하여 접시꽃이라 불리워진 모양인 데, 예전엔 덕두화 촉규화 단오금 무당풀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다.</div><div><br></div><div>무당의 옷처럼 화려한 점에서 착안된 이름인 것 같은 데, 장미꽃과 한데 어울려 있으니 너무도 잘 어울린다. 장미와 접시꽃은 전혀 다른 식물이지만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넝쿨 장미가 휘감아 버렸어도 불평없이 자태를 자랑하고 한치도 물러섬이 없이 여름내내 꽃을 피우고 지기를 반복한다.&nbsp;</div><div><br></div><div><div class="imgwrap" style="width: 412px;"><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2/06/02/f47c6da96f96f04dff39e8fa3ada698f113451.pn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tyle="margin: 0px; padding: 0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난 접시꽃을 보면서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 해도 잘 자라는 것이 그렇고, 태풍이 지나가도 생체기를 감추고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에서 이 땅의 어머니를 연상한다.&nbsp;</div><div><br></div><div>성장 속도가 빠르고 2m 이상 자라기에 창가에 심으면 시야가 가리기에 금기시하고 있지만 이웃 빈집의 담장을 수놓은 접시꽃을 그대로 두고 감상하기로 했다. 내가 거실에 지쳐 잠들어 있을 때에도 방안을 기웃거린다. 창문을 열면 끝내 거실까지 밀고 들어 올 기세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해바라기처럼 해를 향해 따라 도는게 아니라 사랑해 주는 사람을 향해 피어나는 신비로운 꽃이다.</span><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nbsp;</span></div><div><br></div><div>옥수수를 심으면서<b style="font-weight: bold;">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b>를 몇번이나 읊조렸는지 모른다. 옥수수 잎은 바람을 맞을때 부대끼며 서걱인다. 그 소리는 너무 서늘해 요의(尿意)가 자연스럽다. 게다가 옥수수 잎에 비라도 들이치면, 보기에 듣기에 사뭇 낭만이다. 그래서 올해도 작심하고 옥수수를 많이 심었다. 처치하기 곤란할 정도이지만 심는 사람이 있으면 따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하여 나눠줄 사람을 떠올리면 행복한 감상에 젖을 수가 있다.&nbsp;</div><div><br></div><div>역시 옥수수 하면 뻥튀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팝콘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 처음 맛봤던 강냉이 빵맛은 잊을 수 없다. 성조기와 태극기가 엇갈려 그려진 부대자루에서 나온 그 강냉이로 만든 빵 말이다. 잉여농산물 구호물자가 배고픈 우리 아이들에게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던 식량이었다. 노릇하며 갈색으로 잘 구어진 강냉이 빵은 냄새도 맛도 구수했다.&nbsp;</div><div><br></div><div>하지만 나는 도시락을 지참하는 사람에겐 배급이 안되었기에 도시락과 바꿔 먹기도 했었다. 아예 도시락을 일부러 가지고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지금같으면 거들 떠 보지도 않겠지만 옥수수 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옥수수 차(茶)도 맛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맛이 구수하기가 보리차나 엽차와 버금간다. 차가워도 뜨거워도 맛이 삼삼한데 퍼지는 냄새 또한 그윽하다.</div><div><br></div><div>고향의 맛인지도 모른다. 사족이지만 옥수수를 심을 적엔 씨를 서너개씩 구덩이에 넣는다. 한 알만 넣으면 자라면서 쓰러진다 했다. 우리네 짧은 인생도 비오고 바람이 부는 때까지 서로 기대고 버티고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가 보다. 비오는 날 옥수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텃밭을 바라보며 꽃과의 대화를 하다가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시들 땐 더 훙물스럽게 지는걸 알기 때문이다.&nbsp;</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연은 노력한만큼 풍성함을 선사한다. 아직은 초보이기에 내놓고 자랑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땀흘린 이상의 것을 자연은 선물한다. 초야에 묻혀 살면서 난 많은걸 깨달아 간다. 또한 생소한 것이기에 이곳 할머니들도 나에게는 모두 스승이시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만 알려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경험도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 들인다고 했던가?</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간에는 사람 농사짓는 일을 했지만 지금 식물을 키우는게 훨씬 재미있다. 자연은 나에게 위대한 스승이시다. 자연은 배신하지 않는다. 살아 쉼 쉬는 자연 속에 있다 보면 인간도 미물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어느 곳에 있던지 그 사실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지 가르쳐 주는 것 같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자연은 언제나 다가서면 자리를 내주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오늘도 자연은 모나지 말고 둥글게 살라 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다. 자기가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진 안하무인을 좋아할 사람이 없다. 세상을 살다보면 잃는 것도 많고 손해 볼 때도 많다. 그 중에서도 사람을 잃는게 가장 치명적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8/f3c4883fbb5abacf0cc715053af3d4cc104748.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주공(周公)이 제후로 임명되어 임지로 떠나는 아들에게 교훈하길,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은 큰 잘못이 없다면 버리지 말고(故舊無大故 &nbsp;則不棄也)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기를 바라지 마라.(無求備於一人 )" 고 신신당부했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인재를 감동시키려면 호선망세(好善忘勢) 해야 한다고 했다.</span></div><div><br></div><div>이용 가치를 따지는 사람은 군자가 되질 못한다. 아무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이지만 달다고 간이라도 빼줄듯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고 때로는 쓴 것도 꾹 참고 삼킬줄 알아야 한다. 세상을 간사하게 살아선 않된다. 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 사람은 간사한 사람이다.&nbsp;</div><div><br></div><div><br></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br></font></b></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fe2419">&nbsp;</font></b></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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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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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hu, 28 May 2026 11:08:2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국화와 이름모를 야생화</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6/23587bee833f7b6c49f9dcd4bd0cc043224440.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은 가면 갈수록 불투명한 미래는 근심을 내려 놓을만한 여유가 없다. 어떤 사물을 보고 감성을 자아내기란 쉽지 아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에게는 많은 교훈적으로 행하고 나서야 할 일들이 많지만 답습하는 과정은 때로는 사치인 듯 당장 시간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만 산재하여 가는 삶을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여유(餘裕)를 잃었다. 노정객 손학규가 '저녁이 있는 삶'을 말했을 때 내용은 차치(且置) 하고서라도 일단 마음에 확 와닿는 명제임에 틀림없어 감명을 받았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그러안해도 웃음에 인색한 편이지만 요즘 웃을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지만 어떤 것 하나 끄집어내 미소 지을 일 하나가 없는듯 싶다. 생활은 늘 긴장 속에 반복이고 전투적인 삶을 살아간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은 여유의 시간을 찾지 못한다. 과거의 일을 회상하거나 생각 속에 즐겨갈 일들이 점점 현실에서 벗어나 버린다. 양보와 배려는 커녕 여유(餘裕)를 가진 사람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다.&nbsp;</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조선조 세종 때 유관이라는 정승이 있었다. 그는 정승이라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울타리도 없는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청렴결백하고 낙천적이었던 유관은 언제나 평안한 표정을 지으며 누구보다 기쁘게 살았는 데, 비가 오던 어느 날, 방안까지 빗물이 새어 들어오자 유관은 삿갓을 쓰고 앉아 비를 피한다. 그러면서 걱정하고 있는 부인에게 여유 있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삿갓이 없는 사람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nbsp;</div><div><br></div><div>진정한 삶의 멋은 여유로움에 있다. 여유로움은 물질의 풍요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여유는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自足)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멋스롭고 여유로운 삶일 것이다. 나는 과연 여유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득병하였으나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겨우 빠져 나왔기에 약간은 여유(餘裕)롭게 살고 싶지만 아직 여유만만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nbsp;</div><div><br></div><div>적어도 나에게는 삿갓 하나보다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삿갓없는 사람을 걱정해주는 여유가 없다. 여유는 품격의 조건이며. 인내는 품격의 형성 과정이며, 인성은 품격의 결과다. 인생은 여유로 풀어가는 품격의 게임이다. 여유와 품격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욕망의 광장은 거칠고 흉하고 사납다.&nbsp;</div><div><br></div><div>여유와 품격이 없으면 실수가 잦고 견고하지 못하며 남에게 피해를 준다. 여유와 품격은 내실과 평온을 만드는 생필품이기 때문이다. 다투지 않고 갈등을 조율하는 것은 생활의 품격이고, 버리면서 새로워지는 것은 정신의 품격이다.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게 최고의 품격이며 속이고 화를 내는 것은 최악의 품격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6/eb5360e96c7cf1c3eb59fd637d3b4ba123070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한 박자 쉬어서 실수를 줄이고, 불필요한 걱정과 근심을 버려서 견고한 내공을 쌓으며, 때로는 곡선으로 돌아가는 여유로 삶의 진미를 찾는게 현명한 길이다. 그래서 늙그막의 삶은 너무 촐랑대며 살진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nbsp;</div><div><br></div><div>난 선천적으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한다. 언젠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두 집사가 불원만리하고 이곳을 찾아 왔다. 반가운 마음이야 그지없지만 어찌할지를 몰라 쩔쩔맬 때 "목사님 악수를 하던지 아님 안아주셔야죠?"할 때 귀밑까지 붉어지며 난처해한 때가 있었다. 전혀 활달하지도 않고 좋게 말해서 세심하긴 하지만 솔찌기 말하면 소심한 성격이다.&nbsp;</div><div><br></div><div>그러나 처음이 힘들지 마음을 트기 시작한 이후로는 걷잡을수 없을만큼 깊은 정을 나눠주는 스타일이다. 혈액형은 O형이지만 A형 기질을 완벽하게 타고난 결과, 든든하고 뿌리깊은 인맥을 자랑한다.낯을 가리는 처음의 벽만 잘 극복하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와도 베스트 프랜드가 되는 허물없는 성격이야말로 더 쫀득한 인간 관계를 만들어가는, 더 관심받고 싶어하는, 더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성격이다. 처음엔 활달한 성격을 부러워 했으나 지금은 이대로가 좋다. 소심하기에 나를 컨트롤할 수가 있었다.&nbsp;</div><div><br></div><div>어제 빈집 철거작업을 하면서 뒷뜰에 버려진 국화와 이름모를 야생화를 괘나 많이 수집해 왔다. 아마도 그 집 노친네가 어디에선가에서 가져다 심었을 텐데 이젠 꽃을 보아도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잊혀진 모양이지만 아직은 꽃을 보면 살레이는 나에겐 안성맟춤이란 생각에 양해를 구하고 가져 왔다.&nbsp;</div><div><br></div><div>소장은 어차피 이사할 거라면 애써 정성을 쏟을게 뭐냐며 대충해서 대충 넘기라고 잔소리를 늘어 놓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대충'이다. 내가 과실을 따려고 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내가 수확하지 못하면 내 후손이 거둘 것이고, 내가 덕을 심으면 반드시 결실의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데,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을 쏟아낸다.&nbsp;</div><div><br></div><div>같은 말이라도 좀 크리스챤다운 말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살아왔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말들은 가리지 않으면 믿는자의 품격에 문제가 있고 복음에 역행하는 사람이 된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div><div><br></div><div>"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그런 팻말을 목에 걸고 프랑스 파리의 미라보 다리 위에서 한 장님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곁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그 걸인에게 당신이 이렇게 해서 구걸하는 액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걸인은 침통한 목소리로 겨우 10프랑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nbsp;&nbsp;</div><div><br></div><div>그 소리에 행인은 고개를 끄덕이곤 걸인의 목에 걸려있는 팻말을 뒤집어 놓으며 다른 어떤 말을 적어놓았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 그 행인이 그 곳에 다시 나타났을 때 걸인은 행인의 손을 붙잡고 감격해 하며 묻는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녀 가신 뒤 요사이는 50프랑까지 수입이 오르니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글을 써놓았기에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겁니까?"&nbsp;&nbsp;</div><div><br></div><div>그러자 행인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별다른 게 아닙니다. 원래 당신의 팻말에 쓰여 있는 글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는말 대신에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써 놓았을 뿐이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nbsp;</div><div><br></div><div>'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이라는 무미건조한 말만 가지고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았지만 같은 의미이지만 거기에 좀더 아름다운 상상의 날개를 달아줌으로서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말, 같은 생활이라도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주면 보다 맛깔스럽고 정감어린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아무런 생각없이 즉흥적인 말들을 너무 쉽게 쏟아낸다.&nbsp;</div><div><br></div><div>내 현실이 저녁이 있는 여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아직은 비관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전에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 라고 동정심을 유발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답니다.' 라고 조금 더 세련되게 나를 표현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nbsp;</div><div><br></div><div>괘나 많은 비가 올 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겨우 땅을 적실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다. 인부들을 현장에 투입시켜 놓고 국화와 야생화를 심으려 집으로 돌아왔다. 양파가 자빠지기 시작했고 마늘도 누렇게 시들해지는 걸 보니 곧 수확할 시기인 것 같다. 적당한 시기에 수확하고 그 자리에 아내의 부탁으로 당근을 심을 생각이지만 당근과 생강으론 재미를 못본 탓인지 망설여지고 그것도 틀림없이 내 것이 아닐 가능성때문에 생각을 정리중이다.</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6/8a7741485a8fa0240af02652c4140524230906.jpg" width="320" align="left" class="photo" alt="">전북 부안 위도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바다가 보이는 땅을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다가 보이면 무조건 70만원 이상간다는데 어촌일수록 빈집이 그렇게도 많은데 왜 땅값이 그리 비싼지 알 수가 없다.&nbsp;</div><div><br></div><div>아마도 도시의 투기꾼들이 쓸만한 곳은 묻지마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아직 내 한몸 운신할 곳이 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탁했다.</div><div><br></div><div>현장소장에게 백평 남짓한 땅을 구해 주었다. 평당 3만원에 구입했으니 열흘 인건비 정도에 불과한데 이 땅에 시간이 나는대로 농막을 지으라 선물했더니 좋아라 한다. 건축자재도 준비되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그럴듯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nbsp;</div><div><br></div><div>소장은 큰 집을 구해 함께 살았으면 하지만 내 체질이 <b>독고다이</b>란 걸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여럿이 있으면 시상이 떠오르지 않고 중국인들도 나 못지 않게 지저분한데 둘이 함께 살면 돼지우리가 될게 뻔하기에 사양하기로 했다. 소장도 한곳에서 십여년 살다보니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본데 자투리 땅에 농막 정도의 집을 만들어줄 생각이다.</div><div><br></div><div>사장님 노후는 자기가 책임지겠다는데, 그건 어림없는 수작(?)이다. 내 노후는 주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고 설령 고독사하여 백골로 발견된다 하더라도 주의 천사들의 환송을 받으며 세상을 하직하는게 내 소원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nbsp;</div><div><br></div><div>&nbsp;</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64</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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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Tue, 26 May 2026 23:05:56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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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title>
			<description><![CDATA[<div><font color="#0021b0"><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5/f7f3811002a9fe84840b287381debd8a23261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추억이란 어느 분위기 좋은 찻집 벽에걸려있는 마른꽃과 같은것이다. 생화처럼 싱그러운 향기는 없지만 오래 오래 마음속에 액자처럼 걸려 있는 것, 그래서 본래의 빛깔이나 향기는 사라졌다 해도우리들의 마음안에 늘 은은하고 곱게 자리하고 있는 소중한 기억이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사람은&nbsp; 누구에게나 추억이 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은 시간이 흘러가고 나면 하나의 추억이 된다. 부모님에 대한 추억, 형제 자매가 어린시절 같이 살았던 추억, 학창시절의 추억, 연애시절의 추억 등 불행이든 행복이든 모든 과거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하지만 의외로 사람에겐 옛 추억을 골라서 생각하는 능력이 없다. 불수의(不隨意) 능력이라선지 자신의 의지이면서도 자신의 맘대로 다룰 수가 없다. 그러기에 어떤 특별히 지정된 정보 또는 지식을 딱히 골라 뽑아 되새긴단 의미와는 분명 다르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나는 때로는 독종이란 소릴 듣기도 한다. 해가 지면 어둠속에 갇혀 버리고마는 이런 깡촌에서 어떻게 혼자 사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고 아침 저녁으론 아직도 쌀쌀한 날씨인데 보일러도 없이 어떻게 나는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하루중 이 곳에서의 시간이 가장 진지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있으며 우주적인 사고로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라 믿기에 외로움이나 고독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가끔 잊을만 하면 불현듯 꾸중물을 일으키는 못된 것들이 있어 탈이지만 그것마저도 長江의 물도 윗물에 밀리듯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하고 모질게 마음을 먹고 내 삶을 디자인해 가는 중이다.&nbsp;</b></font></div><div><div><font color="#0021b0"><b>서울에서 오랫만에 친구가 내려와 60년된 인연을 그렇게 무우자르듯 할 수 있느냐며 자주 만날 것을 종용하지만 미워서가 아니고 싫어서도 아니라 피차에 갈 길이 다르기에 더이상의 만남을 이어가지 않는게 좋다 생각하여 찾지 않았을뿐인데, 어거지로 관계를 복원시키자 한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냥 추억속에 묻어 두고 가끔 빚바랜 사진첩을 꺼내 보는 정도로 위안을 삼으려고 마음먹었는데 억지춘향이 되라고 강요한다. 내 지론인즉, 사람은 관뚜껑을 덮기 전까진 변하지 않는다. 모래 사장에 똥덩어리를 묻었어도 일시적으로 가려졌을뿐이지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듯 본성이 변하려면 바울사도처럼 날마다 죽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nbsp;&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래서 때로는 추억에 잠길 때도 있을테지만 추억은 아련하게 남아 있을 때 좋은 것이지 매시간 꺼내 보는 건 차라리 고통이라는 생각으로 혼자 가는 길을 선택했다. 친구는 나를 독종이라고 타박을 하겠지만 더이상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苦肉策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친구가 아니기에 그러는게 아니라 내가 좋은 친구가 될 자신이 없어서라고 볼멘 소릴했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냥 추억속에 간직하는게 더 나을 거란 말에 더이상 강요를 하지 않는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추억과 잊어버리려 애쓰는 추억이 간단히 구분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잊으려 애를 쓰면 쓸수록 가슴에 각인되는 깊이는 거꾸로 더 깊어진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의지는 기억의 창고에 수납되기가 쉽고 무의지한 감성적 느낌이라야 추억의 골방에 남겨진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추억이란 말이 붙으면 그건 이미 절반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자신의 옛일일 따름이다. 추억은 바다와도 같은 것 날씨에 따라서 잔잔히 흐르는 것도 있고 격랑을 이루며 구비치는 것도 있다. 좋은 날씨의 추억은 햇살을 닮아 맑고 투명하지만 흐린 날씨의 추억은 역시 회색이며 무겁다. 가장 괴롭고 어려운 추억은 거친 격랑에 휩쓸리듯 사나운 추억이 아니다. 끝도 모르는 바다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방향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오리무중인 것이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은 맑고 투명하지만, 맑은 술 한 잔 앞에 놓고 떠올리는 추억은 매번 진회색 투성이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젖어드는 추억은 커피색처럼 진하다. 색만 진하지 한숨 한 스푼에 온기는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다. 무심한 사람들이 미처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단맛은 식은 커피가 더 달다. 시간도 우려 넣고 한숨도 우려 넣고 빈 눈길로 오래 휘저었으니 마냥 우러난 커피가 더 단 건 당연하다.&nbsp;&nbsp;</span></b></font></div><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div><font color="#0021b0"><b>오래된 어릴 적 추억은 돌아보며 슬며시 미소를 보이지만, 근래 만들어진 추억은 눈물 한 방울 ‘찍’ 묻어나는 게 많다. 아직 설익은 탓이리라. 날 살찌게 하는 추억도 있고 마르게 하는 추억도 있다. 이미 청춘을 한참 넘어선 나이지만 추억의 깊이를 헤아릴 정도는 된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5/937547981ab90a17c66e217543621a9d232739.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실 때에 떡과 잔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이것들을 나누어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22:19～20) 그 후 제자들은 박해의 위기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주님의 떡과 잔을 나누며 주님을 기념했다.&nbsp;</b></font></div><div><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font color="#0021b0"><b>그때 그들은 주님과 함께 지낸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위로를 얻고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nbsp;&nbsp;그래서 성만찬은 주님을 추억하는 행위이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하며 주님을 추억했고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했다.&nbsp;<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양심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비내리는 날에는, 비가 뿌리는 우수(憂愁)에 젖어드는 건 괜찮은 느낌이다. 한번쯤 무상을 느껴보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슬픔 속에 흠뻑 젖어들어도 좋을 것이다. 잠시 감성의 비를 맞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 그런대로 견딜만한 시간이 될 것이다.&nbsp;</span></b></fon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br></b></font></span></div><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color="#0021b0"><b><font size="3">비에 젖어 본 새는 다시 비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기가 처한 환경을 탓할 때가 많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고, 찾을 수 없을 때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기까지 한다. </font><span style="font-size: medium;">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나를 그곳에 다 던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medium;">무엇을 하든지 거기에 온몸을 던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이 자유로워진다. 지금 열심히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멈추면 안 된다.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한쪽 문은 열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span><span style="font-size: medium;">왜 많은 일과 장소가 있음에도 일단 촌구석을 선택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medium;">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에만 급급해 일상을 즐길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살아왔기에 이젠 여유를 가지고 내 삶을 반추해 보기로 했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medium;">당시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이 일조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trong style="font-size: medium; letter-spacing: 0px;"><font color="#0021b0"><br></font></strong></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medium; letter-spacing: 0px;">"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 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nbsp;</span><span style="font-size: medium;">시인의 말처럼. 떠날 것은 그저 집을 떠나 낯선 도시와 먼 외국어로 가는 것뿐 아니라, 내 익숙해져 버린 타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습관이기도 하겠다. 아니 사실은 그게 더 필요한 것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로부터 떠나는 시간들 역시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span></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AppleSDGothicNeo-Regular,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system-ui, -apple-system, Helvetica, sans-serif;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span style="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span></p><div><font color="#0021b0"><b><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font></div><div><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font color="#0021b0"><b>&nbsp;</b></font></span></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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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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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25 May 2026 23:29:1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불효자 교회'</title>
			<description><![CDATA[<div><br></div><div><b><font size="7">'불효자 교회'</font></b></div><b><div><b><br></b></div>'배움(지식)이 인간을 선하게 하는지&nbsp;</b><div><b>악하게 하는지 의문이다.'(미상)'라 했다.</b><div><b><br></b></div><div><b>위의 글을 생각하며,&nbsp;</b></div><div><b>나는 기독교가 사람을 선하게 하는지&nbsp;</b></div><div><b>악하게 하는지 의문일 때가 있다.</b></div><div><b><br></b></div><div><b>일반 세상 보다&nbsp;</b></div><div><b>기독교가 나은 것이 무엇일까?</b></div></div><div><b><br></b></div><div><b>누가 말하기를 '법의 정의'를 가장 쉽게</b></div><div><b>말한다면 '최소한 지켜야할 선'(라인)이라 했다.</b></div><div><br></div><div><b>어느 교단 어느 목사가 은퇴할 때가 되었다.</b></div><div><b>원로 목사로 추대하는 문제를 놓고</b></div><div><b>그 교회로부터 새어 나오는 말은 듣기가&nbsp;</b></div><div><b>참으로 민망스럽다.</b></div><div><b><br></b></div><div><b>이럴 때는 </b><b>교단 법이 우선이 되어야하는데,</b></div><div><b>저들에게는 법이고 나발이고 욕심이 우선이다.</b></div><div><b><br></b></div><div><b>윌리엄 세익스피어는&nbsp;</b></div><div><b>'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는 것은</b></div><div><b>&nbsp;독사의 이빨보다 더한 고통이거늘' 이라 했다.</b></div><div><b><br></b></div><div><b>나는 은퇴하는 목사가 얼마나 고통을 받을까&nbsp;</b></div><div><b>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b></div><div><b>실제 기독교가 세상보다 도덕적으로 나은것일까?</b></div><div><b>세상은 현재, 스승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b></div><div><b><br></b></div><div><b>'가나안 신자'가 계속 기하급수로</b></div><div><b>불어나고 한국에서 기독교가 쪼그라 들고있는&nbsp;</b></div><div><b>있는 것은 무슨 원인일까?</b></div><div><b><br></b></div><div><b>내게 절대권한이 있다면 '</b><b>00교회'&nbsp;</b><b>이름을&nbsp;</b></div><div><b>&nbsp;'불효자 교회'로 바꿀 것이다.&nbsp;</b></div><div><b>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b></div><div><b>참고 : 우회하여 글을 올렸다.</b></div><div><b><br></b></div><div><br></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1&amp;uid=9262</link>
			<dc:creator>김승훈</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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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Mon, 25 May 2026 06:40:04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스타벅스와 넝쿨장미</title>
			<description><![CDATA[<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img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2/seoul/20260522001420028fyrl.jpg" alt="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판매 촉진 행사로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을 합성해 이를 조롱하는 듯한 사진·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는 등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 2026.5.21 온라인 커뮤니티" style="color: rgb(0, 51, 102);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16px;"></p><p style="border: 0px; 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br></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동기생이 스타벅스에 관한 동영상을 보내왔다. 요즘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에 신세계 그룹이 뜬금없이 탱크데이란 이벤트를 만들어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저급한 장사치의 속성을 들어내었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스타벅스가 얼마나 유명한지 잘모르지만 나는 커피하면 맥심외엔 별로 아는바가 없고 베트남 커피 G7나 다람쥐 커피가 맛있다 하지만 입에 달달한 맥심외엔 마시지 않기에 스타벅스가 그렇게 유명한 브랜드인지를 알지 못했다. 스타벅스를 기독교가 지켜야 한다고 선동하는 김아무개 목사를 향해 미친놈 날굿이 한다고 욕해 주려다 참았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우리들의 생애 어느 한 날 무의미한 날이 없겠지만 무미건조(無味乾燥)함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을 향한 상술이 만들어 낸 기념일은 지나칠 정도로 많다. 이런 상술을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일상에 뭔가 스토리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서 영업을 확대하는 전략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특히 현대와 같이 매스컴이 발전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있는 그대로의 단순한 정보제공은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당길 수 없으므로 뭔가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스토리를 만들어 이를 통해서 더욱 많은 성과를 거두는 전략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원래 스토리텔링은 문학용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혹은 구전을 말하는 것인데, 사건과 사물에 대한 사실보도(report)가 아닌 인물과 사건에 대해 이야기로 지어서 말하는 것으로, 마케팅에서도 상품에 대해 이와 관련한 인물이나 배경 등을 설명하는 기법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모든 장사꾼은 거짓말쟁이다(All Marketers Are Liars)’라는 책을 써서 스토리텔링 마켓팅의 전도사가 된 세쓰 고딘(Seth Godin)은 또 이렇게 말한다.&nbsp; "People buy what they want, not what they need, and that they demand stories from marketers to help convince themselves to buy what they already decided they want."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산다. 그리고 그들이 뭘 원하는지를 이미 결정해 놓고도 그것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 장사꾼들로부터 스토리를 원한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스토리텔링은 최근 경영의 화두로도 부상하고 있는 데, 목회도 원래가 말씀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말씀에 심어지는 스토리가 아주 중요하다. 아무 고민없이 아무 준비없이 자신만의 경험이나 느낌만으로 설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조사하고 공부해야하는 것이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역사와 철학등의 문제제기와 문학적 뒷바침이 없는 설교가 힘을 줄리가 없다. 이러한 인문학적 연구와 사회과학적 고민없이 목회를 한다는 것은 교회를 하나의 물건 파는 가게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 없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0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회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48.4%로, 2009년 33.5%보다 무려 14.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발표되었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지금은 수치를 말하기에 너무 부끄러운 정도이다. 이는 특정 사건의 영향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석하면서 비기독교인의 개신교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개신교회 성장에 중요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교기관의 신뢰도 순위를 보더라도 가톨릭교회(41.4%), 불교(33.5%), 개신교회(20.0%)의 순으로 3개 주요 종교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b></font></p><p style="border: 0px;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아무리 옥수수 밭이 탐이나더라도 한 곳에 머물면 철새는 죽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금강하구는 겨울철 철새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수십만 마리의 군무를 보노라면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철이 지나면 황망한 땅으로 비워진다. 철새들을 위해 일부러 추수하지 않는 너른 평야의 곡식 낱알이 이들에겐 매력적이지만 이들의 발목을 잡지 못한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떠날 때를 알고 비워주어야 할 때를 알기에 북쪽으로 향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너무 안주하고 있다. 미래를 너무 낙관하고 있다. 얼마나 심각한지를 잊고 있다. 목회현장에서 보는 것과는 너무 다른 체감온도라는게 있다. 실제보다 훨씬 춥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교회가 혐오시설이라고 인식된지가 오래이다. 심지어는 방폐장이 들어서는 것보다 교회가 들어오는걸 꺼질 정도라면 지나친 경고인가? 목회자에게 허울뿐인 직함을 맡기는 것은 목사를 상품화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일부 단체들은 목사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후원금과 회비만 잘 내면 무분별하게 감투를 씌워주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 목회자들 중 일부는 명예욕에 불타 이를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후원금과 회비는 거의가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중 일부는 자신을 상품화시키고 있다. 또한 자신을 포장하는데 들어가는 경비를 자신이 부담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대부분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을 물 쓰듯이 마구 사용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목소리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여기에 염증을 느낀 교인들은 목회자의 곁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목회자들은 망각하고 있는 듯 하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아고 하셨던 요 2:15∼16절의 예수의 성전정화가 다시금 필요한 시기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오늘날 한국교회 전반에 만연한 사행과 물질주의의 첨예화는 이미 지적자체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갱신과제다. 지금 급선무는 평판을 바꾸는 일이다. 너무 평판이 안좋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은 성공의 첫 번째 요소로 ‘평판’을 꼽았다. 성공에는 수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다른 건 다 제쳐놓고 평판을 최고로 강조했다. 그만큼 평판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4/9780fa28a0d4db21249a653e4f78397723152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모든 평판은 평생 가는 것이다. 연기는 잠깐 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의 본성까지 평생 연기할 수는 없다. 정말로 진실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남을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전혀 하지 말아야 한다. 일부는 속일 수 있겠지만, 마지막까지 속일 수 없는 자기 자신이 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연기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신뢰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값'은 경제생활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바로 자신의 브랜딩 값이 자신의 연봉과 직결되는 시대이다. 경제 위기 이후 자신의 이름값으로 먹고 살아가는 직업군이 점차 늘어나면서 대한민국의 평판 산업은 자연스럽게 발전되어 왔고 급속도로 성장해 왔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나는 가끔 세상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할까에 시선이 고정될 때가 많다. 남이 뭐라하던 내 방식대로 살 순 없는 일이기때문에 더욱 고민스럽다. 어떤 사람에 대한 평판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부풀려지거나 축소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나 타인의 평판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평판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구약 성경’의 ‘열왕기’에는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아라비아반도 시바라는 곳에 사는 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확인하고 많은 예물을 바친 뒤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간의 손가락질이나 비난을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염두(<span class="phonetic"><daum:word id="hhw000002700">念</daum:word><daum:word class="over" id="hhw000011231">頭)</daum:word></span>해 두고 살았지만 그것도 자신있게 말하긴 어렵다. 때로는 내 생활이 자꾸 어려워지는 이유중에 하나는 주변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여 훗날 나쁜 소리라도 들을까 늘 긴장하다보니 힘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 소심해진다.</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나는 2011년 5월 마지막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그간 정들었던 인천을 떠나 귀촌이란 이름으로 촌으로 숨어 들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음성을 역행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처럼 그런 기분으로 무작정 내려 왔다.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없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토록 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냥 "너무 오랫동안 시무했기에 이젠 자리를 비워주는게 좋겠어!"라는 말 한마디만 남겼다.&nbsp;&nbsp;1988년 5월 30일 울산에서 인천으로 올라 갈 때에도 무작정이었다. 어떤 교회인지 몇명이나 모이는지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다만 담장마다에 눈부시게 핀 넝쿨 장미를 보면서 핑크빛 감상에 젖어 아름답게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im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 src="http://www.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15/05/31/1602c5bc11f74ddfe0f3c9fa933e7fd4205306.jpg" style="margin: 0px; padding: 0px;"></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리고 24년을 고운정 미운정 들이면서 숨가쁘게 달려왔다. 마지막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전 난 사십회에 걸쳐 &lt;화려한 외출&gt;이란 글을 연재했었다. 교회 카페에도 동시에 올렸으니 대게는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컨셉을 &lt;88년 장미&gt;로 정하고 심정을 솔찍 담백하게 적어 내려 갔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처음 인천의 부름을 받았을 때 00교회는 불과 열명 남짓 모이는 교회였고, 예배당은 하꼬방 수준이었다. 상견례도 할 틈이 없이 부임부터 이루어졌다. 처음 부임 설교를 하고 부터 교회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임 교역자와의 불화로 교회가 분열되어 교인들이 거의 다른 교회로 떠나고 00교회는 희망이 없는 교회로 지방회에서도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은 교회였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러나 나는 희망을 보았다. 최소한 내가 몇년간 시무할지는 모르지만 반듯한 교회로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의욕이 있었고, 교인들도 모두 안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짓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래도 00교회는 훨씬 양호한 형태였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런대로 교회가 몰라보게 변했고, 어느 덧 지방내 세번째 크기의 교회로 성장했으며, 예배당도 4층으로 지었다. 한 때 많은 부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선교비만큼은 줄여 본 적이 없었다. 목회의 여정에서 때로는 질식할 것 같은 숨막히는 답답함이 치밀어 오를 땐 5월의 장미를 연상하며 참는 연습을 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난 배고픈 건 잘 참는 편이다. 그러나 자존심을 건드리면 그 땐 모든걸 내려놓는 버릇이 있다. 난 어느날 이 교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지론인 &lt;양은 뿔이 없다&gt;는 모토로 살아 왔기에 내가 인격적으로 대해주면 뿔로 받지는 않을거라고 믿어 왔다. 설령 그래도 받는다면 그대로 감내하리라고 수없이 되뇌이며 지내왔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그러나 갑작스런 득병으로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미 이 교회에서 내가 할 일이 끝났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임지를 옮기거나 조기 은퇴를 늘 마음 한자락에 깔고 있었다. 나는 목회하면서 마음속으로 날 반대하는 사람이 세사람 이상이면 미련없이 사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b></font></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교인들과 인상찌뿌리며 주접떨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젠 떠날 시기라는 생각이 들자 지체하지 않고 오월에 와서 오월에 떠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하니 같은 오월이지만 내 눈에는 그전의 장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설레임도 감동도 모두가 벌레먹은 장미뿐이었다.&nbsp;</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16px;">난 꽃중에 장미를 제일 좋아한다. 아마도&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겨울철 흰 눈이 내릴 때까지도 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길고 다른 꽃들이 흉내를 낼 수 없는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난 시간이 허락된다면 현재 장미가 백여종 유통된다는데 더 많은 장미를 홀리팜으로 가져 올 생각이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16px;">20세기의 천재 시인인 릴케가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유달리 장미를 좋아했는데, 그가 만년에 살았다는 론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오래된 성의 정원에는 지금도 수많은 종류의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차가운 돌로 지어진 오래된 성에서 수도승처럼 혼자살며 시를 지었던 릴케. 그는 어느날 자신을&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찾아온 손님을 정원까지 배웅하다 나무 뒤에 피어있는 장미를 발견한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span style="font-size: 16px;">그리고 그 장미 가시에 손가락이 찔리는 바람에 패혈증으로 고생하다 그해 12월 29일에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 사인이 백혈병임에도 이런 전설이 전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nbsp;&nbsp;</span><span style="font-size: 16px;">아마도 릴케라는 시인의 섬세한 이미지와 함께 생전에 그가 기이할 정도로 장미를 좋아했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내가 처음 인천으로 부임할 때 주안2동은 장미넝쿨이 집집마다 있어 너무 감명이 깊었었다. 이처럼 화사하게 교회를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결심했었다.&nbsp;</span></b></font></p><p style="border: 0px;"><span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span></p><div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난 장미를 보면 그 때의 교회와 그 때의 몇사람의 얼굴을 떠 올린다. 참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어 가까히 하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전임자는 교회를 떠난지 얼마만에 나를 찾아와 두사람을 조심하라고 간곡하게 충고했다. 난 두사람을 조심할게 아니라 두가지를 빼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b></font></div><div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br></b></font></div><div style="font-size: 16px;"><font color="#0021b0"><b>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쓸개는 빼버렸는데, 간을 빼주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간이나 쓸개는 결정적으로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다. 물론 인생사 스트레스 없는 직업이 없을 수는 없지만 특히 목회자에게 있어 정신적인 압박은 치명적일수도 있기에 가능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말기를 충고 드린다. 난 목회의 여정에서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처음 보았던 장미를 떠올린다. 장미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꽃이 아니다. 최고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b></font></div><p style="border: 0px;"><font color="#0021b0"><b><br style="font-size: 16px;"></b></font></p></div><p style="border: 0px;"><br style="color: rgb(0, 33, 176); 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font-size: medium;"></p><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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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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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un, 24 May 2026 23:17:39 +00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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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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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다는 것이 황홀하다.</title>
			<description><![CDATA[<font size="6"><b>산다는 것이 황홀하다.</b></font><br><div><br></div><div>헬렌켈러는&nbsp;<div>'인생은 과감한 모험이던가 아니면&nbsp;</div><div>아무 것도 아니다'라 했다.</div><div>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nbsp;</div><div>무엇이고 모험을 걸고 깊이 빠진다.</div></div><div><br></div><div>바둑을 좋아해서 66년 째 빠져있고&nbsp;</div><div>바둑책은 적어도&nbsp;</div><div>300권이 넘을 것 같다.&nbsp;</div><div><br></div><div><br></div><div>새를 좋아해서&nbsp;</div><div>서점에서 새 책을 발견하고는&nbsp;</div><div>출판사에 전화하여 저자를 찾아내 지금까지</div><div>조류학 교수와 46년 째&nbsp;&nbsp;</div><div>죽마지우 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다.&nbsp;</div><div><br></div><div>아내를 중매로 처음 만나,</div><div>&nbsp;'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생각되어</div><div>처녀 측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nbsp;</div><div>있는지도 모르면서 토요일 선보고&nbsp;</div><div>이틀 뒤인 월요일 처녀집을 무작정</div><div>처들어(?) 가자,&nbsp;</div><div><br></div><div>처녀 아버지 왈,</div><div>눈을 부릎뜨고&nbsp;</div><div>"자네 왜왔나?"고 소리치던 생각이 난다.</div><div><br></div><div>그때 그 처녀와 1964년,&nbsp;</div><div>8월 24일 선보고&nbsp; 9월 7일 약혼,&nbsp;</div><div>10월 12일 결혼하여 지금까지 62년째 살고 있다.</div><div><br></div><div>하나님 사인이 나서 아내와 내가&nbsp; 앞으로 8년을&nbsp;</div><div>더 산다면 결혼 70주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div><div>그러나, 하루 일을 모르는 인생이기 때문에&nbsp;</div><div>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div><div><br></div><div>내가 잘 아는 목사분이 있었다.&nbsp;</div><div>그는 그당시 80세가 거의 되어가는 분으로&nbsp;</div><div>부흥강사요, 지역총회장도 한 분이다.</div><div><br></div><div>어느 날, 내게 말하기를&nbsp;</div><div><b>"김목사!&nbsp;&nbsp;</b><b>나는 모세 나이&nbsp;</b></div><div><b>120세까지는 살 수 있을 것 같다"</b></div><div>했다.</div><div>그말 하고, 그가 일년도 체 안되어 소천했다.</div><div><br></div><div>어제는 나의 서재 책장에 송판을 준비하여&nbsp;</div><div>책장에 앞으로 끼워 놓으니 책장의 공간이&nbsp;</div><div>앞으로 크게 널어났다.&nbsp;</div><div>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좋은게 아니다.</div><div><br></div><div>오늘을 내가 즐기는 이동 바둑탁자가&nbsp;</div><div>앞 뒤로만 움직이지 옆으로 움직이지 않아,</div><div>여간 불편한게 아니다.</div><div><br></div><div>물건을 잘 만드는 지인에게 전화하여 알아보니</div><div>전후좌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려면&nbsp;</div><div>철물점에 가서 자유롭게 회전하는 바퀴만&nbsp;</div><div>사서 달면된다는 말을 들었다.</div><div><br></div><div>얼커니! 그동안 몰랐는데 바로&nbsp; 바퀴를 사서 달 것이다.&nbsp;</div><div>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슨 일이고 몰두하며 빠진다.</div><div><br></div><div><br></div><div>46년 전이다.일기를 쓰면서, 남이 내 일기를&nbsp;</div><div>볼 수도 있겠구나</div><div>생각하니 기분이 별로였다.</div><div><br></div><div>생각하다가 속기를 쓰면 아무도 내 일기를 볼 수 없겠다는</div><div>생각이 들었다.&nbsp;</div><div>나는 서점에 가서 속기 책을 한 권 사와서,&nbsp;&nbsp;</div><div>참고만 하고 나만이 알 수 있는 속기를 만들었다.&nbsp;</div><div><br></div><div>일기를 46년 째 쓰면서 속기로 기록한다. 아무도 내 속기를 알 수가 없다.</div><div>&nbsp;처음 속기를 만들 때, 이 삼일 잠을 자지 않고 그 일에 몰두하자</div><div>몸살이 크게나서 아팠다.&nbsp;</div><div><br></div><div>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즐기면서 깊이 빠진다.&nbsp;</div><div>그야말로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div><div>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div><div><br></div><div><br></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1&amp;uid=9260</link>
			<dc:creator>김승훈</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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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23 May 2026 12:33:02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사유(思惟)하지 않으면 인간은 괴물이 된다.</title>
			<description><![CDATA[<span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3/3901161a27feecf9bf2835a96ad51245113651.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몇년을 살았는지와는 상관이 없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그 돌아봄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지난 시간을 반성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살아온 그 시간이 의미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이기도 할 것이다.&nbsp;&nbsp;</span><div><br></div><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나는 할일없이 가만히 있는 것보단 무엇이라도 하려 마음먹었기에 일을 만드는 스타일이다. 물론 그것이 수익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이기에 무모한 짓이란 소릴 듣지만 내가 세상을 살면서 무모한 일을 한두번 한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거의 올인하는 버릇이 있다.&nbsp;</div><div><br></div><div>목회만 해왔던 사람이 어느날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그랬다. 그래서 관련서적을 뒤적거리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견습을 많이 했다. 일생에 집한칸 만들기도 힘들다는 데, 난 경험을 축적하려고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며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몇번은 더 시도하겠지만, 그리고 한계가 있는 일이긴 하겠지만 내가 원하던 그런 그림을 그리는 순간 멈추게 될 것같다.&nbsp;&nbsp;</div><div><br></div><div>세상엔 편한게 없다. 남들이 보면 쉬워 보이는 일도 직접해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가까운 지인들이 농담으로 건네는 말중에 <b style="font-weight: bold;"><font color="#ba4b01">'어이 집 하나 지어줘!'</font></b>이다. 금방 똑딱하면 집이 만들어지고 그럴듯하게 정원을 꾸며 놓으니 손쉬운 거로 생각하는가 본 데, 한번 지어보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nbsp;&nbsp;</div><div><br></div><div>건축 설계를 의뢰하는 순간부터 준공검사를 마칠 때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지 모른다. 안전사고는 물론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건축과정에서 때려 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왜 사서 고생하나 싶을 때가 수없이 든다. 예상에서 빗나가기 일수여서 정말 못해먹을 것중에서 건축이 의뜸이다.&nbsp;&nbsp;</div><div><br></div><div>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축 일이 재미도 있고 즐겁다. 아니 즐기는 편이다. 아파트가 정말 편리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에는 편한 것만이 좋은 건 아니다. 아무런 속박을 받지 않는 독신생활이 좋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소가없으면 구유는 깨끗할지 모르지만 이로인하여 얻는게 많기에 소를 키우는게 아닌가?&nbsp;</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의미를 상실한 사람에겐 세상에 어떤일도 만족을 얻을 수 없다. 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장)를 설교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장구한 교회 역사와 현대교회 강단에서 수없이 해석되고 가르쳐진 내용이다. 모두에게 친숙한 이야기이기에 굳이 사족을 보탤 의도는 없지만 예수님 당시 ‘강도 만난 사람’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nbsp;</div><div><br></div><div>이타적으로 그를 도왔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현대적 적용은 무엇인지, 도대체 제사장과 레위인은 무슨 핑계와 합리화로 피해자를 외면한 것인지, 복음의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현대교회가 짐짓 회피하고 있는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 등 지금도 던져지는 질문들이 이 비유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3/05059cf05bfe30430da2433c4266794c11381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현대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이 불편해지는 지점은 강도 만난 사람을 앞장서서 도울 것으로 기대됐던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유기다.&nbsp;&nbsp;만일 제사장과 레위인을 종교법정에 소환한다면 그들은 아마도 ‘회 칠한 무덤’(마 23:27)처럼 고상하고 설득력 있게 자신을 변호할 것이다. 종교 업무상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고 핑게를 댈지 모르겠다.&nbsp;</div><div><br></div><div>불교계에 이판승(理判僧)보다 사판승(事判僧)이 더 많았던 것처럼 경건이나 선교에 소홀히 하고 정치한답시고 나돌아 다니는 사판목(事判牧)들이 너무 많다. 교단의 주요 요직을 몇번이고 사양하는게 정상인데 그 자리에 가고 싶어 안달이고 꼼수가 난무한다.&nbsp;</div><div><br></div><div>그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아니었다. 꼭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현대적 해석으로 목사나 성직자가 강도 만난 이웃이 아니고, 오히려 질시를 받는 사마리아인이 선하다는 평가가 내려진다면 그건 아니라고 강변할 수있는가? 이재록 사건이 그렇고, 명성교회 사건도 일반 사회인들로 부터 교회와 성직자는 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평가가 내려졌던 결과물이다.</div><div><br></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이제는 당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가, 목회자가 어떤지를 살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맹목적 순종을 강요한다면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독교의 탈을 쓰고 무속신앙으로 범벅이 된 언어가 지금도 공동체 속으로 깊이 파고 들고 있다. 교회 강단위에서 “목사를 내 쫓더니 암 걸려 죽었다” “십일조 내면 암에 안 걸린다” “예수 잘 믿으면 고속도로에서 펑크 안 난다” 이런 말을 듣고 열광하는 대형교회 신도들 중에는 지식인들도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너무 맹목적으로 길들여져 사유(思惟)하는 힘을 잃었다. 사유(思惟)하지 않으면 인간은 괴물이 되는데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생 제군은 내게서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철학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즉 다만 흉내 내기 위해서 사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사유(思惟)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사실, 우리에게는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알차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일이 필요하다. 힘센 사람, 박학자, 재주꾼, 활동가들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바탕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 ‘생각하지 말고 반응하라’는 모바일 시대의 생활양식이 문제이다. 모바일 기기는, 인간을 정보를 작동시키는 프로세서로 만든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검색하고, ‘좋아요’를 클릭하고, 톡을 보내고, 사진을 올리고, 댓글을 달 때마다, 우리는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기계의 일부가 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을때까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간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결국 잠자리에 누워서는 내가 오늘 무슨 생각을 했지? 내가 정말 알고 있는게 뭐지? 아까 생각했던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 등등 생각의 홍수속에 살아가고 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세상을 살다보니 전혀 예상못한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인생을, 세상을, 교과서적으로만 살 수 없다는게 고민이다. 점점 세상은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계속 성장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게 되며 점차 뒤쳐져 결국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버리게 된다. '자연도태(自然淘汰)'라는 말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이러한 세태를 나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마 미래에도 여전히 그 때의 세태를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비록 교과서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하고, 꼭 들어맞는다고는 말할 수없지만 그렇다고 완전 세상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써놓은 책도 아니고, 세상의 밝은 면만 강조하기 위해서 거짓말만 잔뜩 써놓은 책도 아니기에 참고서보단 교과서적으로 살려하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3/4bc2f76c3bd0c65585500bf24d489a89113925.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나는 살인과 도적질을 빼놓고는 무엇이던지 도전해 볼 생각이다. 때로는 생각치도 못했던 난맥상(亂脈相)이 있을 수도 있고 난기류(亂氣流)를 만날 때도 있을 것이다. 난기류는 방향과 속도가 불규칙하게 바뀌면서 흐르는 기류. 항공기가 운항할 때 기체가 흔들리거나 고도(高度)가 갑자기 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듯 내 인생에도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믿진 않는다.&nbsp;</div><div><br></div><div>과거에도 있었고 사는 날까진 또 찾아 올 것이다. 강한 기류가 산맥을 넘을 때 그 산맥의 바람이 아랫쪽에 강한 회오리 바람이 생기기 때문에 발생하고, 성층권과 대류권 사이의 경계면에서 생기는 것은 강한 제트기류(Jet Stream)로 인해서 그 주변 공기가 교란되기 때문에 난기류가 형성된다.&nbsp;</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항공기가 순항 중에 난기류 지역을 지나게 되면 기체가 요동을 치면서 순간적으로 급강하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고도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그 폭이 무려 상하 60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이 세상엔 난맥상(亂脈相)없는 곳이 없고 난기류(亂氣流)는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러기에 인류는 진보한다.&nbsp;</div><div><br></div><div><div>그나마 난기류(亂氣流)가 적게 일어나는 곳이 시골이고, 비록 전혀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농사일이 다. 아예 기대하지 않고 시작하는 일이니 놀랄일도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늙으막에 시골가서 농사나 짓겠다는 소릴하는 데, 농사짓는 것이 가장 속편하다는 말은 개가 풀뜯어 먹는 소리다. 뙤약볕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농부를 보면 그런 사치스런 말이 안나올 것이다. 벌레에 물리고 모기에 피를 빨리면서 죽어라 땀흘리고도 본전도 못 건지는게 농사다.&nbsp;</div><div><br></div><div>내가 농사짓는 대부분은 지인들에게로 돌아 간다. 오늘도 가위로 부추를 베어 친구에게 주었다. 고생하여 키운걸 그냥 가져가기 미안한지 망설이는 녀석에게 기대 이상으로 상추도 수거해 가고 조금있으면 오이 가지 토마토 애호박이 생길텐데 내가 없어도 가져 가라고 허락해 주었다. 현장에서 일찍 돌아와 차를 파킹하면서 보니 동네 할머니 한개(?)가 오디 열매를 따고 있다.&nbsp;</div><div><br></div><div>아무리 시골이지만 남의 집에 들어와 오디를 딴다는게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눈감아 주었지만 혹시 이 할멈이 낫과 호미를 가져가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벌써 몇번째 농기구를 가져가는 손버릇 나쁜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이다. 지인에게 몇번 얻어다 놓았지만 계획 없어진다. 군산 공설시장 대장간에서 만들어 온 호미는 꼭 현관에 들여 놓을 정도이다.&nbsp;&nbsp;</div><div><br></div><div>하늘이 더 크린해지고 공기가 상쾌해졌다. 비가 그치니 풀벌레 소리가 더 청아하게 들린다. 자연의 소리가 너무 아름답다. 해가지면 적막강산에 빠져드는 곳이지만 대신 자연의 소리가 더 선명해진다. 소쩍새가 울고 산비들기들이 구구대는 소리에 내 마음이 가장 순수해지고 맑아진다.&nbsp;</div><div><br></div><div>보름달이 아니면 가로등 하나 없어 어둠속에 잠기는 곳이지만 조명을 끄면 상념의 세계가 열린다. 조명을 줄이면 자연의 세계가 열린다. 도시의 레온사인은 인간의 혼줄을 빼어버린다. 정신을 황패시켜 버리지만 불을 끄면 자연이 보이고 삶의 방향이 더 잘 보인다.</div></div><div><br></div></div></div><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nbsp;&nbsp;<div><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div></div>]]></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59</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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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23 May 2026 11:39:55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마시멜론 법칙</title>
			<description><![CDATA[마시멜로 법칙<br />
​일요일 오후 두 시, 예배당 가득 찬송이 흐른다. 약국에서 쉬다가 오후 예배를 드리러 갔다. 오늘 설교 제목은 ‘마시멜로 법칙’이다. 아침에 본 설교 제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법칙이 뭔지 알았다. 성벽을 빼앗는 용사보다 제 마음을 다스리는 이가 낫다는 말씀. 참으로 마음을 조절하기란 쉽지 않다. 유혹을 이기고 인내하라는 말이다.<br />
​요즘 사람들은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스스로 먹을거리를 줄이고 매일 걸으면 몸무게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이는 백 명 중 열다섯 명, 금연에 성공하는 이는 다섯 명에 불과하다던가.<br />
​우리 약국에도 살 빼는 약을 찾는 발길이 꾸준하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서 온 이방인들이 자주 문을 두드린다. 고기를 즐겨 먹는 그들 체구는 대체로 넉넉하다. 서툰 한국말로 몸짓을 섞어가며 조심스레 약을 묻는 눈빛에서 고단한 삶을 본다.<br />
​오래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실험실로 가본다. 연구원은 빈방에 네 살배기 아이를 홀로 앉혀 두었다. 책상 위에는 하얗고 말랑한 과자 하나가 놓였다. 방문을 나서며 연구원이 나직하게 속삭였다.<br />
​“십오 분만 참고 기다리면, 하나를 더 줄게.”<br />
​아이는 침을 삼키며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가만히 서 있는 초침이 야속했다. 그 짧은 시간을 견뎌 낸 아이는 여덟백 명이 넘는 이들 중 서른 명 남짓이었다.<br />
​십 년이 흐른 뒤 연구진은 그 아이들 삶을 추적했다. 유혹을 이긴 아이들은 학업 성적이 좋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만족 지연’이라 불렀다. 눈앞에 놓인 단맛을 참아야 내일 더 큰 열매를 맺는다는 이치다. 잠을 줄이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공부에 전념하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얻을 수 있다. 다만 인내와 자제가 늘 어려울 뿐이다.<br />
​경남 진영에서 약국을 하던 시절이다. 약국 창밖으로 학생들이 지나갔다. 마주 앉아 있던 교사 L에게 물었다.<br />
​“공부 잘하고 순종하는 학생이 나중에 성공할 확률이 높겠지요?”<br />
​L은 고개를 끄덕였다.<br />
​“아무래도 그렇겠지요.”<br />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놀기만 좋아하던 동창들 가운데 어른이 되어 고단하게 사는 이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br />
​고등학교 첫 여름방학, 초등학교 동창들이 오랜만에 모교 교실에 모였다. 그때 동창 H가 느닷없이 소주병을 들고 나타났다. 청소년인 우리 앞에 선 그 모습은 낯설고 위태로웠다. 붉은 얼굴로 책상 위로 올라선 H가 소주병을 내던지며 소리쳤다.<br />
​“야, 이 소주!”<br />
​쨍그랑 소리와 함께 깨진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 교실 안에는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나는 바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H 집은 동네에서 큰 가게를 하여 유복했다. 하지만 그는 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모양이다. 스스로 다스리는 힘이 없던 그 친구는 결국 먼 길을 먼저 떠났다. 유혹을 견디고 시련을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산다. 세상은 이처럼 정직하게 흘러간다.<br />
​세월이 흐르고 학자들은 또 다른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자란 환경을 살폈다.<br />
​약속이 늘 지켜지는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십오 분을 기다린다. 그러나 내일 당장 식탁에 빵이 오를지 모르는 불안한 환경 속 아이는 눈앞에 놓인 과자를 서둘러 입에 넣는다. 기다려도 아무 보상이 없으리라 직감한 까닭이다. 참는 힘은 부유가 아니라 신뢰에서 싹튼다.<br />
​책상 위 과자는 달콤하다. 하지만 충동을 누르고 제 마음을 다스리는 이는 용사보다 강하다.<br />
​실험실 빈방에 홀로 앉아 시계를 바라보던 아이들. 우리 역시 가난한 시절을 건너왔다. 사탕 한 알이 귀하던 그때, 내가 그 방에 있었다면 과연 기다릴 수 있었을까. 나 역시 서둘러 입에 넣었으리라.<br />
​초여름이다. 가로수는 짙푸른 빛을 더해가고, 하늘에는 흰 구름이 한가로이 흐른다. 선풍기 바람이 이마를 스치는 오후, 어린시절 큰 유리병에 담아 팔던 왕사탕 한 알을 할머니 몰래 준 P가 생각난다. 정말 맛 좋았다.<br />
마시멜론도 그 맛일까?]]></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58</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58</guid>
			<dc:date>Sat, 23 May 2026 05:57:19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시골에 살려면 억척스러워지고 만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title>
			<description><![CDATA[<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2/98e6ea0dcfc0173504024ee07271bdb1111054.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잡초가 잘 뽑아지기도 하지만 아침 나절에 옥수수를 백개를 심는데 예상보다 뤌씬 수월하게 심었다. 비가 흡족하게 내린 탓에 식물들이 땅맛을 알았는지 잘 자라고 있다.</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식물들에겐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했는지 모르지만 비는 사람의 마음을 우울 모드로 만들어 버린다. 유리창에 포물선을 그으며 빗방울 하나가 떨어질 때 작은 알갱이로 있었으면 저렇게 속절없이 낙하하지는 않았을텐 데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무거우면 추락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그래서 새털처럼 가볍게 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얼굴은 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능하면 정리할 건 정리하고 살려 노력중이다. 오늘 문득 미처 버리지 못한 잉여의 것들이 축제를 축제로 여기지 못하도록 나를 막았던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실제로 비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머릿속일 것이다. 정리된 마음은 정리된 환경에서 나올 것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오늘 갑자기 먼지를 날리며 쉬지 않고 정리를 하기로 했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아침부터 땀을 흘렸더니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오전내에 농삿일을 마치고 현장으로 출근해야 하기에 쉴틈없이 작업을 했는데, 난 식물들을 보면서 지난 세월 내 목회 여정을 반추한다. 모두가 주인의 손길만을 바라보는 애처로운 몸짓을 하고 있다. 잡초는 제발 자라지 말라해도 얼마나 생명력이 끈질긴지 뽑아도 뽑아도 이겨낼 재간이 없을 정도이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어차피 식물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 텃밭 근처엔 제초제 사용을 일체 금하고 있지만 대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풀을 뽑아도 장마가 시작되면 난 결국 포기하게 될 것이다. 텃밭에서 좀 멀찍이 자라면 잡초도 생명이기에 구태어 악날(?)한 방법을 동원하고 싶진 않지만 꼭 이것들은 식물과 뿌리를 함께 내리고 기생하려 한다. 신기한 것은 파밭엔 파와 생김새가 비슷한 풀들이 자라고 이파리가 큰 작물곁엔 생김새가 비슷한 것들이 자란다. 주인을 헷갈리게 만들려는 수작이다. 목회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nbsp;</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처음부터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흔지 않다. <span style="line-height: 1.5;">어떤 땐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럴듯하고 좋아 보일 때도 있다. 교역자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목소리를 내리 깔면 신령하게 보이고 팔에 줄이 두어개 그려진 가운을 입혀 놓으면 실제로 유식하게 보인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어차피 교인들이 못 알아 듣는 설교이기에 영어 몇마디쯤 섞어 유식한 티를 내야 인정받는다.</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 class="imgwrap"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width: 412px;"><div class="exifwrap"><div class="caption"></div></div></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span style="line-height: 1.5;">매일 물주고 비싼 거름을 주며 가꾸면 자양분을 잡초들이 다 빨아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 사생결단하듯 풀을 제거한다. 잡초도 생명이라는 자연론자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지만 식물을 키우는 농부의 심정이나 목양을 하는 목회자의 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린 식물들이 억센 풀들 틈에서 자라기엔 너무 힘든 여건이다.<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잡초는 내버려 두어도 환경에 구해받지 않고 자라지만, 심지어는 돌틈에서도 자라지만, 식물은 조금만 방심하면 말라 죽거나 병충해의 습격에 시들어 죽게 된다. 그렇다면 선택은 자명하다. 여린 식물에 더 관심과 애정을 쏟는 방법밖에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힘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치닥거리하느라 점점 기력을 잃어 간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농부의 심정이 아니라 기업가의 판단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목사가 목자인가? CEO에 가까운 목회자가 대부분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경영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목사는 많지만 목회자가 사라지는 추세이다. 교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목사들이 많다. 자그만 텃밭을 일구다 보니 정말 내 목회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실감하고 있다.</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텃밭에 가득한 잡초들을 손마디가 부서져라 뽑는 이유는 식물을 지키기 위함이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굳은 살이 박혔지만 날이 갈수록 애정의 강도는 더해만 간다. 이런 심정으로 목회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남은 내 생애는 진지함을 더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nbsp;</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span style="line-height: 1.5;"><div><span style="line-height: 1.5;">내 텃밭엔 어느 것 하나 저절로 핀 것이 없다. 내 손 길을 거쳐 만들어진 식물들과 꽃들이기에 애정이 더간다. 황혼에 비춰진 꽃들이 정말 아름답다. 홀리팜을 거닐며 내일 일을 구상한다. 지칠만 하지만 일하는 동안은 항상 마음이 가볍다.&nbsp;</span>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덕담을 건넨다. 식탐이 줄어 먹는게 부실하다 보니 체중이 많이 줄었는데도 건강해 보인다며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고 묻는다.&nbsp;</div><div><br></div><div>건강의 비결? 잘먹는 것도 아니고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데, 건강해질리가 없다. 구내어 말하라면 노동을 즐긴다는 점과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한다는 걸 신조처럼 신봉한다는 점일게다. 어차피 도움받을 곳이 없다는 점과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가능하면 짜증내지 않고 노동을 즐기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난 홀리팜 마당을 필드라고 부른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나이샷을 외친다. 그 뿐이다.&nbsp;</div><div><br></div><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2/4d9255909f4e416e6535b79eb6fe4021111156.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하루가 다르게 식물들이 성장하기에 내 쉼의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일손을 놓을 수가 없다. 다른집에 비해 내 텃밭은 물과 정성만을 가지고 키우기에 힘이 배나 더 든다.&nbsp;</div><div><br></div><div>제초제로 풀을 제거하고 화학 비료와 농약으로 벌레를 퇴치하면 훨씬 일이 줄어들고 수확도 많아지겠지만 일일히 수작업으로 풀을 뽑고 물만으로 키우려니 내 손은 항상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되어 가고 있다.&nbsp;</div><div><br></div><div>저녁이면 바늘로 물집을 터트리고 일회용 밴드를 붙히고 잠에 들고 자가가도 다리에 쥐가 나 한두번씩 깨어자지만 그래도 고달프단 생각보다는 시골생활을 하면서 가능하면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난 원래 콩밥을 싫어하여 어렸을 적부터 콩은 골라내고 먹는 버릇이 있었고, 청국장이나 된장은 생김새가 꼭 거시기 같아서 입에 대지 않았는데, 요즘은 일부러 찾아 먹을 정도로 까다로운 식성이 변했다.&nbsp;</div><div><br></div><div>변한게 식성만이 아니다. 모든걸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기에 세탁기 사용법에서 부터 농작물을 키우는 법, 농기구 다루는 법까지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며 응용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식물들에게 시선을 돌리기에 너무 바쁜 나날이다. 건축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들지만 혼자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사색하는 시간이기에 불만이 없다.</div></div><div><br></div><div><div>시골에 살려면 억척스러워지고 만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봐도 대견스럽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시골로 가겠다고 했을 때 석달을 못견디고 올라 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끔 친구들은 이제 지치거나 실증이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난 지금 생활에 내 삶의 활력을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nbsp;</div><div><br></div><div>일하는게 즐겁다. 지금의 나는 비닐 하나도 그냥 버리질 않는다. 시골생활은 모든걸 재활용할 수가 있기에 버리면 손해라는 생각으로 모두 모아놓았다가 재 사용한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도 하소연 할 사람도 없기에 모든걸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무조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버린지가 오래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떨지는 모르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매일 매일 쏟아 붓고 있을뿐이다.&nbsp;</div><div><br></div><div><img src="http://holynetworknews.com/board/files/2026/05/22/eb5360e96c7cf1c3eb59fd637d3b4ba1111322.jpg" width="400" align="left" class="photo" alt="">최고는 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려 한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찾으려 노력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너무 편하고 너무 흔했기에 소중한걸 놓치고 살아 온 지난 날이 후회스럽기만 하다.&nbsp;</div><div><br></div><div>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너무 많으면 귀한줄 모른다. 가까히 있으면 소중한줄을 모른다. 부모도 세상을 떠나야 불효한 것이 생각난다. 난 개척교회로 부터 중형교회를 담임하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처음 개척교회 시절 신자 한 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 살이라도 뜯어 먹여주고 싶은 심정으로 목회를 하였었다.&nbsp;</div><div><br></div><div>나중에 교인이 많아져 할 일이 많아지니 의도적은 아니지만 초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물론 세상도 마찮가지이지만 많아지면 손길이 덜 가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누구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lt;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gt;는 성경구절을 목양실에 걸어두긴 했지만 목회 외적인 일에 마음을 빼앗겨 전심전력을 하지 못한걸 후회한다.</div><div><br></div></div></span></span></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div class="attach" style="padding: 10px 0px 0px; line-height: 19.2px;"><ul style="margin: 0px; padding: 0px;"></ul></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font></span></div><div><span style="line-height: 1.5;"><br></span></div></span></div></span></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div><div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br><br></div><font color="#0021b0" face="Malgun gothic" size="3"></font>]]></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57</link>
			<dc:creator>정삼열</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2&amp;uid=9257</guid>
			<dc:date>Fri, 22 May 2026 11:14:33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생명수 세 가지</title>
			<description><![CDATA[생명수 세 가지 <br />
<br />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돈이<br />
만든 세상에서 산다. 스마트폰<br />
요금, 아침 식탁에 오른 밥 한<br />
그릇, 국 한 그릇, 일터로 향<br />
하는 버스비에 이르기까지, 우<br />
리는 돈으로 시작하여 돈으로<br />
마무리한다. 돈은 단순한 교환<br />
수단이 아니라, 현대인이 일상<br />
을 유지하는 바탕이 바로 돈이<br />
다. 돈을 떠나 살 수 있다는<br />
말은 거짓말이다. 아파트 문을<br />
여는 순간 호주머니에 돈이 없<br />
으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br />
지갑 없이 거리에 나선 본 경<br />
험이 있는가.<br />
0 "아, 내 지갑,"<br />
그럴 경우 진공 상태가 된다.<br />
의식주는 기본값이 모두 돈이<br />
라는 숫자로 계산되는 세상에<br />
산다. 돈은 결코 '있어도 되고<br />
없어도 되는' 선택할 문제가<br />
아니다. 생활 필수품이다.<br />
하지만 이 귀중한 돈도 '사랑'<br />
이라는 온기가 없다면 사막이<br />
된다. 상상해 보라. 물질적으<br />
로는 풍요로우나 서로 사랑하<br />
지 않는 가정, 효율성만을 따<br />
지는 사회, 그리고 자국 이기<br />
주의로 똘똘 뭉친 나라를 생<br />
각해보라. 그곳은 생명이 살<br />
수 없는 사막이다. 돈이 하드<br />
웨어라면, 사랑은 소프트웨어<br />
다. 돈이 우리를 자유롭게 움<br />
직이게 한다면, 사랑은 우리가<br />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br />
를 알려준다. 돈은 많으나 사<br />
랑이 없는 집은 스위트 홈이<br />
아니라 헬 하우스이다. 결국<br />
돈과 사랑은 우리 삶을 지속하<br />
게 하는 필수적인 생명수다.<br />
얼마 전, 아내가 J에게 오래된<br />
소금을 한 자루 얻었다. 간수<br />
가 빠지고 누렇게 변한 소금<br />
덩어리를 뒷 베란다 입구에 부<br />
어놓았다. 별로라 생각했으나,<br />
아내는 달랐다. 아내는 변색된<br />
소금 덩어리를 깨고, 털어 깨<br />
끗한 소금만 골라냈다. 그리고<br />
그것을 내가 쓰는 양치용 유리<br />
병에 담았다. 다음 날 아침,<br />
나는 소금물에 담가두었던 칫<br />
솔을 꺼내 양치했다. 입안을<br />
감도는 짭조름한 기운이 입안<br />
에 맴돌았다. 문득 궁금증이<br />
생겼다. 만약 인간이 몇 달 동<br />
안 소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br />
다면 어떻게 될까? "*<br />
조사해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br />
소금은 단순히 맛을 내는 조미료가<br />
아니었다. 체내 수분을 조절하<br />
고 신경 신호를 전달하며 근육<br />
을 움직이게 하는 핵심 물질이<br />
다. 소금을 1주~2주만 섭취하<br />
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한다.<br />
요즘 유튜브에 아침 공복에 소<br />
금을 마시면 나타나는 놀라운<br />
변화라면서 소금물을 마시라고<br />
권장한다. 돈은 생활 필수품이<br />
고, 사랑은 생존 필수품이라면,<br />
소금은 생물학적 생존 필수품<br />
이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br />
일만 악의 뿌리'라고 경고한다.<br />
그러나 동시에 현실에서 돈은<br />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br />
'만병통치약'이다. 병원비를<br />
지불하고, 배고프면 밥을 사<br />
먹고,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br />
을 때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br />
힘이 돈이기 때문이다. 소금<br />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 많으면<br />
고혈압을 일으키고 몸을 망치<br />
지만, 적당한 염분은 상처를<br />
소독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약<br />
이 된다. 사랑 또한 너무 집착<br />
하면 독이 되지만, 주님이 말<br />
하는 믿음, 소망, 사랑 중에<br />
제일은 사랑이고 하는 그 사랑<br />
을 실천하면 죽어가는 영혼을<br />
살린다.<br />
결국 돈, 사랑, 소금 이 세 가<br />
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br />
첫째는 무엇일까. 평소에는 그<br />
가치를 절감하지 못하지만, 결<br />
핍되는 순간 삶은 무너진다.<br />
공기처럼 늘 곁에 있다고 착각<br />
하기 쉽지만, 그것들이 사라지<br />
면 비극이 온다. 다음은 '균형'<br />
이다. 과하면 교만과 탐욕, 집<br />
착을 낳고, 부족하면 빈곤과<br />
고독, 죽음을 부른다. 그다음<br />
은 이들은 모두 '순환'해야 가<br />
치가 있다. 고인 물처럼 갇힌<br />
돈은 부패하고, 표현되지 않는<br />
사랑은 소멸하며, 짜지 않는<br />
소금은 사람들이 밟히는 돌덩<br />
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매일<br />
돈을 벌고 쓰고, 누군가를 사<br />
랑하거나 그리워하며, 음식 속<br />
에 든 미량 소금을 섭취하며<br />
살아간다. 이 평범한 일들이<br />
생명을 유지한다.<br />
누렇게 변한 소금을 손질하는<br />
아내 손길을 통해 새삼 깨닫는<br />
다. 내일 아침, 다시 소금물에<br />
담긴 칫솔을 들 때 나는 생각<br />
하리라. 내 삶에서 이 세 가지<br />
농도는 적당한지, 내 주머니에<br />
든 돈과 내 가슴에 담은 사랑<br />
은 필요한 곳으로 잘 흘러가고<br />
있는지 말이다. 이 세 가지 생<br />
명수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br />
비로소 우리 삶이 활력이 넘친<br />
다. 돈, 사랑, 소금은 매우 중<br />
요하다.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br />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br />
되기도 한다. 율법은 사랑으로<br />
완성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br />
방법은 돈이다. 돈이 따르지<br />
않는 사랑은 위선이 아닐까.<br />
오늘도 주 안에서 평안하기 바<br />
란다.<br />
2026.5.3. <br />
God bless you!]]></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56</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56</guid>
			<dc:date>Fri, 22 May 2026 07:20:3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오늘이라는 선물</title>
			<description><![CDATA[오늘이라는 선물<br />
<br />
나는 한 달에 두어 번쯤<br />
작가에게 책을 받는다.<br />
책을 보낸 사람에게 감사한다.<br />
책을 받으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br />
먼저 서문을 읽거나 대표가 될 만한 글 한 편을 본 후 보내 준 사람에게<br />
감사하다는 글을 전한다. 예의이기 때문이다.<br />
이번에 받은 책은 고급 양장본이라 더욱<br />
소중했다. '빛나는 순간'이다. 제목은 짧지만 마음에 남는 말이다.<br />
궁금하여 곧바로 책을 펼쳤다.<br />
작가는 '현재'를 '빛나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br />
평범한 하루를 빛난다고 하는 말을 새롭게 느꼈다.<br />
우리는 보통 오늘을 당연하게 여긴다.<br />
나 역시 그날이 그날이라고 생각했다.<br />
하지만 작가는 그 오늘이 가장 소중하다고 강조한다.<br />
당연한 말이지만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br />
오늘 아침에도, 내일 아침에도 해가 뜨는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일 뜨는 해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사람이 하루에 980명이다. 한국에서다.<br />
이 표현을 보면서 나는 이 책에서 인용한 한 문장이 떠올랐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br />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현재라고 부른다." 이 말은 빌 키언이 한 말이다.<br />
짧은 문장이지만 생각할수록 깊은 뜻이 담겨 있다.<br />
이미 지나간 시간은 우리 권한 밖에 있다. 우리 주변에 과거형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br />
"나도 왕년에 천만장자였어." 옛날에 금괴 백 개 있었다는 말은 과거일 뿐 현재 빈털터리라면 거지다. 옛날에 아버지가 술꾼이라면 아들 역시 술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를 교훈으로 삼지 않아서다.<br />
아직 오지 않은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은<br />
오직 오늘뿐이다.<br />
그 오늘이 선물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좋다.<br />
영어로 '프레젠트(present)'는 현재라는 뜻도 있고 선물이라는 뜻도 있다.<br />
같은 말 안에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일이 곧 선물을 받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br />
선물은 좋다. 선물은 크든 작든, 저가이든 고가이든 받으면 엔도르핀이 생긴다.우리는 선물인 하루를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짜라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로 무심하게 흘려보낸다.<br />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오늘은 빛나는 순간이 된다.<br />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고,<br />
친구와 밥을 먹고 놀러 다니며, 바둑 두고 유튜브 보며 하루를 보낸다.<br />
사실은 오늘내일하는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는 사람에게는 금쪽같은 시간이다.<br />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늘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을 더 아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글은 우리 생각을 바꾸어 준다.<br />
나는 오늘도 하루를 무료로 준 날이라 여기고 무심코 살아간다.<br />
지난 토요일에 P가 소천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예배 시간에 내 옆 자리에 앉아 악수하며 생기가 넘쳤다. 몸이 이상해 서울에 치료받으러 다녔다.<br />
수술도 받았지만 얼굴에 병색은 전혀 없었다.<br />
그러던 분이 입원하고 2주 만에 그만숨을 거두었다. 몸이 아파 골골했던 분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충격을 많이 받은 L은 기도를 정말 진지하게 했다.<br />
요즘 무빈소로 장례를 치르는 가정이 많다고 하는데,<br />
고인을 찾은 많은 조문객들과 수많은 30개 조문 화환들이 빛나는 하루를 살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br />
빛나는 순간들이 모여 빛나는 인생사를 만들어준다.<br />
동혜실에 진열되어 있던 P 장로 영정 사진을 보고 빛나는 어제, 오늘, 내일을 생각해본다.<br />
하나님은 공평하다. 오늘이라는 현재라는 선물을 악인, 선인, 아이, 어른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br />
이 선물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br />
코발트빛 하늘, 연초록 가로수,<br />
따스하게 스며드는 햇살,<br />
하나님, 감사합니다.]]></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55</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55</guid>
			<dc:date>Fri, 22 May 2026 07:18:4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고유가 지원금</title>
			<description><![CDATA[지원금과 진정한 약자 <br />
<br />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다정한 아버지와 어린 딸 같았다. 중년 남성은 안경을 썼고, 그 옆에 있는 아이는 선글라스를 쓴 채 아버지와 들어왔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까, 단정하지만 당돌한 목소리가 약국 안을 채웠다.<br />
​"선생님, 식물성 비타민 C 있어요? 동물성 말고 꼭 식물성으로 주세요."<br />
​순간 당황했다. 약사인 나조차도 평소 잘 쓰지 않는 '식물성'이라는 용어를 어린아이가 서슴없이 내뱉었기 때문이다. 키는 아버지 어깨에 겨우 닿을 법한 작은 체구였지만, 아이 말투는 묘한 자신감을 느꼈다. 나는 Y제약회사 비타민 제품을 꺼내 보여주었다.<br />
당돌한 말은 계속 되었다. <br />
"가격과 유통기한요?"<br />
​"2029년 2월까지니 넉넉하네요. 한 통에 25,000원입니다."<br />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소곤거리더니 두 통을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내친김에 오메가3까지 찾는다. 속으로 '요즘 아이들은 참 영악할 정도로 유식하구나' 생각하며 무심코 선글라스 너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아차 싶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아이가 아니었다. 앳된 체구와 목소리에 속았을 뿐, 주름진 눈가와 얼굴은 성숙한 여인이었다. 그들은 부녀가 아니라 부부였다.<br />
​여자는 내가 행동을 눈치챘는지, 아니면 자기 태도가 낯설게 보일까 염려되었는지 나직이 말했다.<br />
"제가 시각장애인이예요."<br />
성분 같은 걸 꼼꼼히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거든요하고 말했다.<br />
​남자는 정부에서 발급한 지원금 카드 세 장이 들려 있었다. 비타민 C 두통과 오메가3 한 통을 더 달라고 했다.<br />
"오메가3도 식물성으로 주세요."<br />
조류도 있지만 멸치, 정어리, 고등어에서 나온다.<br />
"대부분 어류입니다."<br />
결제 금액은 순식간에 19만 원에 달했다. 카드를 긁는 남자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긁게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내 마음 한구석에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내 돈이라면 저렇게 선뜻 영양제에 큰돈을 쓸 수 있을까.' 땀 흘려 번 돈은 10원 한 장 허투루 쓰지 못하는 법인데, 공짜로 생긴 돈이라니 저렇게 쉽게 쓴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처럼, 지금 당장 뿌려지는 지원금이 결국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가 짊어져야 할 나랏빚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입맛이 썼다.<br />
​오후가 되어 습관대로 왕릉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왕릉 입구에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오전에 온 그 부부였다. 그들은 다른 장애인 단체 회원들과 함께 관광을 온 모양이었다. 한결같이 선글라스를 쓴 그들은 함께 입장하려고 대기 중이었다. <br />
 잠깐 옹졸하게 생각했지만 그들 잘못은 전혀 없다. 그들에게 오늘 하루는 지원금 카드로 산 영양제가 더 값진 위로가 되었으리라. 사회적 약자인 그들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모습에서 마음이 따뜻해졌다.<br />
​하지만 그 온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유튜브 뉴스 때문이었다. 연봉 1억 5천만 원을 받는 S사 근로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의했다는 소식이었다. 한 달에 천삼백만 원이 넘는 월급을 받는 이들이 스스로를 '약자'라 칭하며 투쟁의 깃발을 올리는 현실. 노동조합은 본래 진정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보루가 아닌가. 그들이 약자인가, 아니다. 상위 3%에 드는 사람들이다.<br />
​국가의 빚은 6,500조에 육박하고, 누군가는 정부 지원금 카드 한 장에 생기를 얻는다. 반면 누군가는 이미 넘치게 가진 권리를 더 채우기 위해 나랏돈을 낭비한다. 진짜 약자는 누구이며, 우리가 보호해야 할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왕릉에 갔다오는 길, 초여름 햇살은 부드러웠으나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가시지 않는 씁쓸한 앙금이 남아있다. <br />
우리나라는 진리로 운행되는가?<br />
아니다. 진리=자유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한국이 되면 굿이다.<br />
갇혀 있는 앵무새보다 창공을 마음껏<br />
날아다니는 참새 한 마리가 행복하지 않는가.]]></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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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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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2 May 2026 07:16:54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따뜻한 말</title>
			<description><![CDATA[따뜻한 말 한마디<br />
<br />
새벽 예배를 가면서 접촉 사고를 냈다. 조급한 마음이 부른 결과였다. 불과 2분 먼저 가려다가 그렇게 되었다. ㅔ내 잘못이다. 삼십만 원이 빠져나갔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일은 당장 발이 묶였다는사실이다. 아내가 나를 태워주던 출근길이 막혔고, 일상생활을 하던 아내 발을  묶었다.<br />
매일 가던 새벽 예배, 복지관 공부길, 출근길, 쇼핑하던 길이 막혀 하루 내 아내를 집에 머물게 했다.<br />
당일 아침 출근길, 김해콜과 중앙콜을 번갈아 불러보았지만, 차가 없었다. 러시아워이기 때문이다. 아내 역시 9시까지 교회에 가야 했다. 1층 엘리베이터 앞, 마침 같은 라인 1층에 사는 삼십 대 후반 여성을 만났다. 여성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려던 참이었다. 평소 출근길에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지만, 나는 선뜻 태워달라는 말을 꺼낼 엄두조차 못 냈다. 야구복을 입은 아이를 가끔 보았다.<br />
​그때 아내가 슬쩍 말을 붙였다.<br />
"혹시 저희 약국까지만 태워주실 수 있어요?"<br />
돌아온 대답은 '예'였다.<br />
"그럼요, 타세요."<br />
기꺼이 문을 열어준 여성은 차 안을 대충 치운 후 우리를 태워주었다. 소형 전기차로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차 안에서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주말 부부며 자기는 오빠 회사 경리를 본다고 했다. 금방 우리는 가까운 사람처럼 되었다. 아내가 붙인 말 한마디가 이런 결과를 맺어줄 줄 몰랐다. 아내가 말했다.<br />
"무엇으로 보답하지?"<br />
그날 오후 ​퇴근길, 우리는 나란히 택시에 올랐다. 차가 여고 사거리를 지날 무렵, 아내는 기사에게 말을 건넸다.<br />
"아침엔 콜택시 잡기가 정말 어려워요."<br />
핸들만 잡은 기사는 기꺼이 설명해주었다.<br />
"시간대에 따라 달라요."<br />
카카오택시가 많다면서 카카오 앱을 추천해주었다. 어르신들은 사용하기 조금 불편해하실 수도 있지만, 편리할 거라고 했다.<br />
​집에 돌아와 내려받은 카카오 앱은 신세계였다. 다양한 옵션과 빠른 배차 시스템은 내 불안을 해결해주었다.사고로 차가 없는 이틀이었지만, 이웃을 더욱 가깝게 해주었고 좋은 앱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웃 여성의 차를 얻어 타며 느낀 친밀감과 기사가 건넨 실질적인 도움은 모두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얻었다.<br />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옛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적절한 때에 건네는 따뜻한 말은 닫힌 마음을 열고, 멈춰선 일상을 다시 흐르게 했다. 적절한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차 없는 이틀, 귀중한 말 한마디에서 배웠다.<br />
초여름이지만 아침 바람은 차다.<br />
"아이 엄마, 기사님 감사합니다."<br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잠언 25장 11절)]]></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53</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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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2 May 2026 07:15:26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공주공원에 선 나무</title>
			<description><![CDATA[공주공원에 선 나무<br />
우리 아파트 앞에는 조성된 지 삼십 년이 되어가는 공주공원이 있다. 원래는 주말마다 소음 민원이 끊이지 않던 어린이 야구장이었다. 결국 야구장은 장유로 자리를 옮겼고, 텅 빈 운동장에는 굵직한 정원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처음 심은 편백나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키가 이십 미터를 넘긴다.<br />
가끔 하늘로 치솟은 나뭇가지들을 올려다보며 묻는다.<br />
“저 나무들은 나보다 훨씬 오래 살 텐데, 과연 행복할까?”<br />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무에게 행복을 물을 수 없다. 순전히 내 잣대일 뿐이다. 나무에게는 기뻐하고 슬퍼할 마음이 없다. 그저 한자리에 묵묵히 뿌리를 내린 채 수십 년, 수백 년을 버텨내는 생명체일 따름이다. 모진 비바람이 몰아쳐도, 살을 에는 겨울이 찾아와도 피하거나 원망하는 법 없이 그저 제자리를 지킨다.<br />
올해로 백이십팔 년이라는 깊은 역사를 품은 모교, 동광초등학교 정문에 서 있는 백 년 넘은 늙은 은행나무도 그렇다. 옛 추억을 더듬어 학교를 찾을 때면 백 년이 넘도록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은행나무를 마주한다. 발걸음을 옮길 수도, 나처럼 번민을 할 수도 없기에 저 나무는 여름 뙤약볕과 한겨울 눈보라, 육이오전쟁 시 흑인 보초병과 서 있었지만 그 사실에 연연하지 않는다. 마음이 비었기 때문에 인간보다 더 오래, 굳건히 살아남는지 모른다.<br />
우리가 백 세까지 살 확률은 0.017%라고 한다. 고작 백 년도 못 사는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거대한 나무 수명에 비하면 우리 삶은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나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br />
무엇보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나무와 달리, 나는 내 의지로 독일, 영국, 프랑스에 다녀왔다.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낯선 이와 손을 맞잡으며 스스로 삶을 만든다.<br />
“지금은 다리가 불편해 오래 못 걸으시지요?”<br />
이웃이 건네는 말에 나는 그저 %%웃는다. 두 발로 어디든 간다는 사실이 살아있다는 증거다.<br />
또한 우리에게는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다. 고뇌가 많으면 때로 나를 깊은 수렁에 빠뜨리지만, 동시에 삶에 무늬를 새긴다. 스쳐 가는 바람결에서 사계를 읽고, 떨어지는 낙엽과 하얀 눈에서 창조주를 본다. 그리고 그 감상을 글 한 편으로 남길 수 있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다채로운 감정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삶을 자신만의 색깔로 칠해가는 일은 오직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br />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 삶이 짧기 때문에 매 순간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수백 년을 사는 나무에게 오늘과 내일은 그저 반복되는 시간일지 모른다. 그러나 유한한 생명을 가진 우리는 하루하루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다. 질병과 노화, 피할 수 없는 이별이라는 뼈아픈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br />
지난 사 월,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지인 피가 세상을 떠났다. 주일마다 예배당 내 오른편에 앉았던 이였다. 아직도 빈자리를 볼 때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얼굴이 눈에 아른거린다. 동혜실에 진열된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경 너머로 보이는 생생한 눈빛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듯해 가슴이 가라앉는다.<br />
나무는 곁에 있던 다른 나무가 베어지더라도 슬퍼하지 않지만, 내 곁을 떠난 큰형과 형수를 그리워하며 가슴이 젖는다. 나는 이 덧없고 짧은 생명 속에서, 이별을 아파한다.<br />
보통 소나무나 잣나무, 은행나무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을 산다고 한다. 고목이 나이테를 자랑한다면, 사람은 짧은 삶 속에서도 누군가를 숭고하게 사랑하고 기억할 수 있음을 자랑할 수 있다. 비록 나무보다 오래 살지 못하고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해도, 내 의지대로 걷고, 깊이 생각하며, 마음 다해 사랑할 수 있기에 인간 삶은 고목보다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br />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br />
“모진 세월을 그저 견뎌내는 몇 백 년 묵은 은행나무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상처받고 아파할지언정 사랑을 품은 현재 내 모습대로 살고 싶은가.”<br />
내 대답은 명확하다. 나는 기꺼이 내 모습대로 살아가겠다.]]></description>
			<link>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52</link>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guid>http://holynetworknews.com/board/?r=home&amp;m=bbs&amp;bid=Column03&amp;uid=9252</guid>
			<dc:date>Fri, 22 May 2026 07:14:09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신호등</title>
			<description><![CDATA[신호등<br />
찰나였다. 노란불이 빨간불로 넘어가려던 순간이었다. 나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br />
 ‘지나갈 수 있겠지.’<br />
 순간적이었다. 곧바로 우리차가 오른쪽 뒤편에서 달려오던 차를ㅃㅃㅂㅁ스쳤다. 큰 사고는 아니었다. 상대 차에는 흠집만 남았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도 못 느낄 정도였다. 차를 세우고 찌그러진 뒷 범퍼를 바라보았다. 이미 지나간 뒤였다.<br />
그날 이후로 신호등 앞에만 서면 그 순간이 떠오른다. 노란빛 하나가 사람 마음을 흔든다. 멈춰야 한다는 생각과 조금만 더 가 보자는 생각이 동시에 올라온다. 보통 사고는 짧은 시간에 생긴다.<br />
교통사고는 늘 움직이는 동안 일어난다. 멈춘 차는 누구도 들이받지 않는다. 정지선 앞에 선 차는 조용하다. 위협도 없다. 붉은불 아래 멈춘 차는 책임이 없다. <br />
그저 기다릴 뿐이다.<br />
반대로 파란불은 사람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길이 열렸다는 이유만으로 속도를 높인다. 좌우를 살피는 눈도 줄어든다. 노란불은 더 미묘하다. 이제 곧 멈춰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은 속도를 올린다. 단 몇 초라도 아끼고 싶어서다.<br />
예전에는 빨간불이 답답했다.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사고 뒤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붉은등은 길을 막는 표시가 아니라 잠시 멈추라는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무리한 선택은 하지 않는다.<br />
며칠 전에도 봉황교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아침 햇살이 다리 난간에 떨어져 붉은 꽃이 반짝였다. 차 안에 따뜻한 아침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운전대를 잡은 아내가 창밖을 보며 물었다.<br />
“저 꽃 이름 뭐예요?”<br />
찾아보았다.<br />
“사피니아래.”<br />
아내는 수긍했다. 그리고 다시 꽃을 바라보았다. 짧은 대화였는데도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만약 신호가 바로 바뀌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었다. 멈춘 덕분이다.<br />
사람은 늘 앞으로 가야 한다고 배운다. 빨리 가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막힘없이 풀리는 삶을 보면 성공했다고 말한다. 일마다 잘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고, 길 앞마다 파란불만 켜지면 마음도 함께 올라간다.<br />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사람은 주변을 놓친다. 속도가 붙은 마음은 브레이크를 늦게 밟는다. 앞만 바라보느라 옆자리에 앉은 사람 표정도 지나친다. 창밖 풍경도 흐릿해진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평온했는지조차 모른다.<br />
얼마 전에 한 탈북민 유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남한에 와서 처음 KTX를 탔다고 했다. 창밖 산과 들을 오래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었다고 한다. 기차가 너무 빨랐다고 했다. 풍경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br />
“너무 빨라서 안 보여요.”<br />
그녀가 한 말이 오래 남아 있다.<br />
우리도 비슷하다. 남보다 앞서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중요한 장면을 놓친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살다보면 저녁에 기억나는 장면이 없다. 그날이 그날이기 때문이다.<br />
노란불은 묘하다. 아직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남겨놓는다. 사람은 그 가능성 앞에서 욕심을 낸다. 내가 낸 사고도 그래서다.<br />
“이번 한 번만.”<br />
 그 말은 늘 위험한 순간 가까이에 있다.<br />
사고 뒤 며칠 동안 나는 운전할 때마다 노란불을 의식한다. 사고 당일은 그  노란불은 빨리 가라는 신호였고, 그 이후 신호등은 브레이크를 밟아라는 신호였다. 오늘 새벽에 종탑 앞에서 천천히 갔다.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br />
“왜 이렇게 천천히가요?"<br />
"그냥."<br />
잠시 조용했다. 창밖에는 아침동이 텄다. 천천히 가면서 얼마 전 개업한가게 앞에 붙은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 화분도 보였다. <br />
속도를 줄이면 볼거리가 많다.<br />
사람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일이 막히고 계획이 어그러지면 사람은 먼저 조급해진다. 왜 하필 지금인가 싶어진다. 멈춰 선 시간은 뒤처진 듯 느껴진다. 그러나 돌아보면 꼭 그런 시간에만 보이는 장면도 있다.<br />
숨을 크게 쉬게 되는 날이 있다. 요즘은 빨리 걷고 싶어도 빨리 걷지 못한다. 천천히 걸으면 음을 사물이 다 보인다. 그때 비로소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곁에 누가 있었는지도 본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다시 묻게 된다.<br />
빨간불은 늘 손해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br />
그 앞에서 사람은 잠깐이라도 멈춘다. 멈춘 동안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이전에는 지나쳤던 풍경을 본다.<br />
오늘도 횡단보도 앞에 차들이 줄지어 섰다. 신호등 아래 숫자가 천천히 줄어든다.<br />
 "9, 8, 7."<br />
나는 그 숫자를 조용히 읽는다.<br />
 예전보다 조금 느린 마음으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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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오형칠</dc:creator>
			<category><![CDATA[]]></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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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Fri, 22 May 2026 07:12:29 +00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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